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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큐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7)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5.13|조회수2,510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브리서 11:1~7)

 

* 본문요약

 

  ※ 그동안 우리는 히브리서 3장부터 10장까지에서

    구약의 대제사장과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길고도 자세한 히브리서의 호소와 증거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부분인 10:32~39에서 우리를 구원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니

    어떤 시련이나 환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도리를 끝까지 붙잡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되자고 다시 한번 호소하였습니다.

 

    이제 11장에서 구약의 백성들의 삶을 예로 들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믿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을 손에 잡히는 현재적 실체와 같이

    분명하고 확실한 것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으며,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 일에 경고를 받아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찬 양 : 342장(새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344장(새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 본문해설

 

1. 신앙의 본질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2) 선진들이(믿음의 선조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줄을 우리가 아나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은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

 

-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절) : 엘피조메논, 휘포스타시스

    • ‘바라는 것들’에 해당하는 ‘엘피조메논’은 현재분사로

      계속해서 줄곧 소망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 ‘실상’에 해당하는 ‘휘포스타시스’는

      ‘의심할 수 없이 확고하게 구축된 객관적인 실체,

      사람의 생각에 따라 좌우되는 주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객관적인 실체,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3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할 때

      ‘본체’의 뜻으로 휘포스타시스가 사용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우리의 믿음의 실체이며 본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계속해서 간절히 소망하며 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분명히 믿고

      줄곧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절) : 프라그마톤, 엘렝코스

    • ‘보지 못하는 것들’에 해당하는‘프라그마톤’은 ‘사실, 행위, 사건, 업무’로

      하나님 나라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사건으로 장차 다가올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를 뜻하고,

 

    • ‘증거’에 해당하는 ‘엘렝코스’는 법률 용어로,

      ‘그것이 객관적인 실체임을 증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였다’의 뜻입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치 실험을 통해 얻은 확실한 증거처럼, 분명한 증거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확실한 증거물처럼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2절) : 에마르튀레데산

    ‘증거를 얻었다’에 해당하는 ‘에마르튀레데산’은

    1절의 ‘엘렝코스’와는 전혀 다른 말로

    ‘증거하다, 입증되다, 인정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선조들이 1절과 같은 믿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2. 아벨, 에녹, 노아의 믿음(4~7절)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인정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의 예물을 받으시고 그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 것이라.)

   그는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으므로 그는 더 이상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으니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상주시는 이심을(6절) : 미스다포도데스

    ‘상 주시는 이’에 해당하는

    ‘미스다포도데스’는 ‘보상하는 자, 임금을 지불하는 자’를 뜻하는 것으로,

    주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 자신을 상으로 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 묵상 point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한국 교회의 잘못된 해석)

 

    히브리서를 하나의 산으로 본다면

    그 산의 정상(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 히브리서 11:1~3입니다.

    그동안 히브리서는 이 말씀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 전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려 합니다.

 

    히브리서 11:1은 히브리서 전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에서 가장 엉터리로 해석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잘 읽어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

 

    먼저 히브리서 11:1의 이 말씀이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잘못 해석되고 이해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절)

    ➠ 한국 교회의 잘못된 해석 : ‘바라는 것’에 중점을 해석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말이 ‘비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비전들이 누가 계획한 누구를 위한 비전인가,

    누구의 비전인가, 누구의 꿈이며 누구의 계획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동안 많은 경우에 한국교회에서 하나님은 철저히 들러리가 되고,

    오직 사람들만을 위한 종교적 감상놀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자기만족, 자기 욕구를 채우는 교회로 타락한 것은

    이 구절의 중심점을 ‘바라는 것’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한글 번역을 그대로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내 앞에 구체적 실체로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인데,

    많은 경우에 한국 교회는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구할 때

    구체적 실체가 있다고 믿고 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2) 그 결과 ➠ 잘못된 성공주의, 적극적 사고방식에 따른

                   엉터리 비전들이 난립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나는 폭스바겐을 원합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폭스바겐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그 폭스바겐이 어떤 색깔이고,

    내부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구체적인 그림을 내 마음에 그리고

    그것이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믿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성도가 한 명뿐이라도

    교회 안에 성도가 가득한 것으로 믿고 구하고 자신 있게 설교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라며 본문 히브리서 11:1을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본문의 말씀을 정반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구약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했고,

    광야 사막이나 토굴 속을 전전할지라도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라는 말씀이 히브리서 11:1인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내가 원하는 나의 욕심과 욕망을 이루는 기도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방식의 목회가 교회를 망치고 있고,

    이런 방식의 비전이 교인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본문의 바른 해석)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이 부분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바라는 것들’과 ‘실상’을 위 본문해설의 단어설명으로 그 뜻을 먼저 파악한 후

    아래의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이 말씀을 한글 번역으로 보면

    내가 바라고 구하는 것이 마치 내 앞에 구체적 실체로 있는 듯 믿고 구하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실상’은

    우리의 믿음의 본체이며 실상인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바라는 것’은   ‘계속해서, 줄곧 간절히 소망하며 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인 실체로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믿고 계속해서 구하며 사는 것, 이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꿈에도 바라고 소망하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의심할 수 없이 확고한 실체로 믿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어서 내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세상에 있는 것들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더욱 확실히 믿으면서

    간절히 소망하며 구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1절)

 

    우리가 믿는 모든 것들은 다 장래의 일이므로

    지금은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것도,

    구원받은 자들이 들어가게 될 천국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들어가게 될 지옥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주의 재림과 심판에 관한 이 모든 말씀들을

    분명한 증거를 가진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단순히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장차 들어가게 될 그 하나님 나라가 지금 나의 현재 속에 함께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 자들, 주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은 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심판 때에 그 의를 인정받아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실체적인 현실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뜻하는 의미합니다.

    예배드릴 때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자처럼,

    그 천국이 오늘 예배드리는 이 현장에 우리와 함께하는 것처럼 믿고

    그 기쁨을 주님께 표현합니다. ➠ 이것이 믿음이고 예배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눈앞에 펼쳐진 실체적 사건으로 믿는

    그 두려움으로 주께 회개하며, 주님을 섬깁니다. ➠ 이것이 믿음이고 경외입니다.

 

 3)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3절)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저 우주의 별들까지

    모든 세계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만드셨습니다.

 

묵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보다 더 확실히 믿고 의지합니다.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은 곧 낡아져서 없어지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미래의 일을 확신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미래의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빌립보서 3:13).

    그것을 바라며 마음속에 항상 품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로마서 8:24~25)

 

 

3.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6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2절)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등 구약의 선조들이

    이 믿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고,

    믿음으로 주께서 가지신 완전한 의를 선물로 받으며,

    믿음으로 우리가 완전한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만한 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말하기 전에 일반적인 믿음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1) 단순히 지적으로 동의만 하는 믿음

 

    단순히 지적으로 동의만 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멈춘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1 더하기 1은 2’ 라는 것을 믿고

    그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수준의 믿음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단순히 그런 지식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을 신뢰하기만 하는 믿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니 위의 경우보다는 조금 나은 것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만 믿고,

    그 사랑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내 문제를 간구하고 응답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습니다.

    주께 나를 드려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께 도움만을 받고 편안하게 예배드리기를 원할 뿐입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힘든데 나에게 더 무엇을 원하느냐는 식의 믿음 역시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3)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믿음

 

    정통 교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무조건 ‘이단(異端)’으로 몰아치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 때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런 자들입니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이 주께서 말씀하신 믿음과 같은 것인지,

    내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데,

    이런 자들은 자기 생각이 가장 옳다고 믿고,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신앙입니다.

    마치 이슬람의 과격주의자들처럼 파괴적인 자들이 되기 쉽습니다.

 

 4)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나를 드려 헌신하는 믿음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 헌신하며 영광 돌리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믿음입니다.

 

    내가 주께서 말씀하신 그 믿음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항상 자기 생각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 묵상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은 항상 그때그때 회개하여 자기의 영을 정결하게 유지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주께 찬양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6)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을 찾고 또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주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는 오늘도 주님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말씀만을 믿고 행동하는 신앙

 

 1) 믿음으로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려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4절)

 

    아벨의 믿음은 예배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나야 할 곳이

    바로 예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자기의 양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단순히 좋은 것을 드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예배였습니다.

    아벨이 양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드린 것은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예물 속에는 기쁨과 헌신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가인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해결하지 않은 채 그저 와서 예배만을 드렸습니다.

    예배에 참여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어떤 헌신도 기쁨도 없이 그저 예배에 참여만 했을 뿐입니다.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배 드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요술 방망이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의 예배를 통해 기뻐하심을 얻은 후에 그 영광이 우리에게 내려질 때

    아벨처럼 주께 그 믿음을 인정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내가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먼저 회개하여 나의 영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벨처럼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 속에

    나의 감사와 기쁨과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 주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때

    우리도 아벨처럼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며(5절)

 

    에녹은 믿음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에녹에게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에녹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채로 그대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에녹에게 이런 특별한 선물을 주신 것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인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3)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고를 받아(6절)

 

    노아 때에는 비가 없었습니다.

    창세기 2:4을 보면 그때에는 온 땅에 안개만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경험한 일이 없으니 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비가 와서 물이 산을 덥게 된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어 온 가족을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묵상 :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는다면 그 믿음 있음을 행동으로 보이십시오.

    믿는다면서 그 믿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거짓 믿음이 됩니다.

    당신의 믿음이 산 믿음이라는 것을 당신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내 보이십시오.

 

 

* 기도제목

 

1.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의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2. 에녹처럼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노아처럼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고 신뢰하게 하옵소서.

 

4. 중보의 기도 : 육의 일에 분주하여 믿음의 길을 걷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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