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히브리서 4:12~16)
* 본문요약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에 날이 선 검보다도 더 예리하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고치고 치료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긍휼하심을 받아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찬 양 : 28장(새 28) 복의 근원 강림하사
344장(새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 본문해설
1. 놀라운 말씀의 능력(12~13절)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힘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선(양쪽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날카로워)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판단하나니, 밝혀내나니, 숨은 의도를 드러내나니)
13)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중에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우리를 상관하시는(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 우리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12절) :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원리로 지금도 세상과 사람을 통치하신 것을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고 표현했습니다.
- 운동력이 있어(12절) :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그 말씀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역시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 혼과 영(12절) :
‘혼’은 우리의 육신의 목숨이나 생명을 말하고,
‘영’은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 있는 곳, 하나님과 접촉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경우처럼 ‘혼과 영’이라고 말할 때에는,
‘혼’은 정신이나 감정의 자리를 말하고, ‘영’은 신앙의 자리를 말합니다.
- 좌우에 날선 검(12절) :
양쪽에 날이 선 검은 로마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길이 60~65cm, 폭 5cm의 검입니다.
이 검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불과 5cm만 찔러도
상대방에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병법(兵法)으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여 대제국을 이룹니다.
-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12절) : 디이이크누메노스
‘찔러’에 해당하는 ‘디이이크누메노스’는
‘꿰뚫다, 관통한다, 둘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은 불과 5cm정도만 찌를 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예 사람의 몸을 관통하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사람의 세포에까지 스며드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13절) : 데트라켈리스메나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낸다’에 해당하는 ‘데트라켈리스메나’의 뜻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➀ 레슬링 선수가 상대의 목과 머리를 조여 꼼짝 못 하게 하는 것.
➁ 죄수를 처형할 때 창피함에 얼굴을 숙이지 못하도록 턱 밑을 치켜올릴 때 쓰는 말
여기에서는 ②번의 뜻으로,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2.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14~16절)
14) 우리에게 하늘로 올라가신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믿는 신앙)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동정하지 않으시는, 동정하지 못하시는)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자비)하심을 받아
때를 따라(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은혜의 보좌(16절) : 드로노
‘은혜의 보좌’에 해당하는 ‘드로노’는 왕의 보좌를 가리키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인 지성소 안의 언약궤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있는 것으로,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성전에 있는 지성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참 지성소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때를 따라 돕는 은혜(16절) :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로마의 검 글라디우스
* 묵상 point
1.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12~13절)
• 운동력과 능력과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12절)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 하시니
우리가 보는 저 광활한 우주의 별들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 말씀 자체에 힘과 권세와 운동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제거하고, 연약한 부분은 세워주며, 병든 부분을 치료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12절)
여기에서 양쪽에 날이 선 검은 로마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검입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글라디우스 검은
길이 60~65cm, 폭 5cm, 무게 700그람 정도로, 그 끝이 짧은 삼각형입니다.
➠ 로마제국을 세운 로마의 양날 검 글라디우스
로마의 군병들은 방패의 뒤에서 상대의 가슴이나 복부를 이 검으로 찔렀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병법은 사람의 몸을 베는 것인데,
상대의 갑옷과 뼈를 끊으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검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불과 5cm만 찔러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병법으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여 대제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당시 로마의 이 검은 로마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보다도 더 능력과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찔러 쪼개며 수술합니다.
우리를 수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킵니다.
2)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 말씀은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료하고 수술합니다(12절)
말씀은 외과 의사가 예리한 칼을 들고 우리 몸을 수술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찔러 쪼갭니다.
단순히 마음을 아프게 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심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말씀의 능력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잡습니다.
닫힌 마음을 엽니다. 헌신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바꾸어 더욱 헌신하게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과 정욕과 미움과 증오심을 치유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꿉니다.
마음과 생각과 영까지 우리의 인격 전체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12절)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욕구, 본능, 열정, 느낌, 동기 등
내 마음에 있는 생각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조사합니다.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4) 말씀은 나에게 활력과 에너지를 줍니다(12절)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나를 말씀에 내맡길 때
말씀은 내 안에 활력과 에너지를 줍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처럼 말씀이 내 안에 신령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 묵상 : 묵상은 내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합니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내 마음에 숨겨진 것이 드러납니다.
마음의 숨긴 것이 드러나니 때로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그렇게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이 드러나야 성령께서 나를 치유하십니다.
묵상할 때 일어나는 갈등이나 마음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 말씀이 내 안에서 운동력을 발휘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그저 읽기만 한다고 해서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심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1) 성령이 이르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을 소설 읽듯이 그저 무덤덤하게 읽으면
그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나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말씀이 가진 모든 능력이 나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이라 말하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고, 또 읽고 묵상하기를 반복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 안에서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을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로 헌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과 감사해야 할 것, 찬양하고 헌신해야 할 것,
간구해야 할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성서 묵상)입니다.
➠ 성령이 나에게 이르는 말씀을 받을 때 말씀은 나에게 능력이 됩니다.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나의 생명을 더욱 활력 있게 하는 에너지를 줍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는지를 말씀이 나를 분석하여
그 방향으로 나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나에게 이르는 말씀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2) 오늘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십시오.
나는 단지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힘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는 일을 하는 동안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잘못된 부분을 수술하고 고칩니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14~15절)
하지만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는 중이라 할지라도 또 넘어지고 넘어질 것입니다.
말씀으로 은혜받고 나오자마자 곧 싸우고 다투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유혹에 넘어지고 죄를 범할까요?
➠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자일지라도
감히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동정하지) 않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던 분이시기에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주께 나아가면 주께서 우리를 또 받아주시고 또 받아주십니다.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은혜의 자리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주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 묵상 : 말씀으로 묵상할 때 마음에 찔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볼 때마다 두렵고 답답할지라도 말씀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면 구원을 받게 되지만, 이 일을 뒤로 미루다가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는 일을 맞게 되면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담스럽더라도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려 하십시오.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3.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16절)
1) 히브리서는 사람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12절).
육신의 영역에 머무는 자, 혼의 영역에 머무는 자, 영의 영역에 머무는 자입니다.
육은 육신의 본능의 영역이고, 혼은 생각과 정서와 자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영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리로서 신앙의 영역입니다.
2) 혼에 속한 사람 : 거듭나지 못한 사람
바울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혼적인 사람(고린도전서 2:14)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자기 마음의 평안에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증과 좌절감에 빠진 자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런 마음과 정서의 안정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3)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16절)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더 깊은 중심점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더욱 깊이 나아가는 것은
마음의 평안보다는 갈등과 불안감이 더 증폭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이것은 수술을 받을 때 불안하고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말씀이 나를 치료하는 과정에 있을 때에는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마음의 불안감은 치료의 과정이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수술을 받을 때 나타나는 이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싫어
말씀에 자신일 비추어 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단지 마음의 평안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병증은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맞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더 깊은 은혜의 세계, 더 깊은 신앙의 중심점으로 들어가십시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긍휼이 끝나는 날이 옵니다.
그때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도 중단이 되고, 오직 심판만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그 긍휼함과 은혜를 힘입어 신앙의 더 깊은 곳에 들어가십시오.
* 기도제목
1. 성령이 나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게 하옵소서.
2.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일을 중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3. 말씀을 볼 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더욱 심해지더라도
말씀이 나를 치료하는 과정이라 믿고
신앙의 더 깊은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을 계속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