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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큐티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요 4:19~30)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6.16|조회수450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요한복음 4:19~30)

 

* 본문요약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자신의 삶을 알아맞히자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예수께 예배의 장소에 대하여 묻습니다.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는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씀하시고,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시자

    여인은 동네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전하자 많은 사람이 예수께 나아옵니다.

 

찬 양 : 209장(새 285) 주의 말씀 받은 그날

          13장(새 64) 기뻐하며 경배하세

 

 

* 본문해설

 

1. 예배드리는 장소에 대한 질문(19~22절)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네 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

    (장소를 따지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 하나님께서 받으실 참된 예배(23~26절)

 

23) 아버지께 참으로(진정으로, 진실하게)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지금이 바로 그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찌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니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24절) :

    여기에서 말하는 ‘영’은 사람의 생명과는 다른

    영원하시고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 신령으로, 영으로(23절) : 엔 푸뉴마티

    ‘신령으로(영으로)’에 해당하는‘엔 푸뉴마티’는 ‘영 안에서’라는 뜻으로,

    ‘영’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음 두 가지 뜻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 사람의 영으로 : 인간 내면의 갚은 곳에서부터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의 영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과 계획이 일어나게 하는 내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집중한 상태로 드리는 예배를 가리키고,

 

  • 하나님의 영으로 :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드리는 신령한 예배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뜻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여 계시는 상태에서 드리는

    그 기쁨과 감격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 진정으로, 진리 안에서(23절) : 카이 알레쎄이아

    ‘진정으로, 진리 안에서’는 진리 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

    주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며,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자가

    주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3. 거듭난 여인(27~30절)

 

27)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라든지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하고 묻는 이가 없더라.

28) 그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나의 모든 과거를)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묵상 point

 

1. 예배드리는 장소에 대한 질문

 

 1) 예배의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 : 그리심산인가, 예루살렘인가(19~20절)

 

    예수께서 자기에 대한 것을 모두 아시는 모습을 보이자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게 된 사마리아 여인은

    곧바로 예수님께 예배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인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리심산 중 어디에서 드리는 예배가 옳은지를 묻습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마리아 족속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서로 주장하며 대결하였기 때문입니다.

 

 2) 예배의 공간을 두고 벌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싸움

 

    예배를 둔 두 족속의 이러한 대결은

    남왕국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할 때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사마리아 족속)을 참여시키지 않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족속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고 나서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것만 바른 예배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유대인과 사마리아 족속은 예배의 공간을 두고 길고 긴 싸움을 했습니다.

 

 

2. 공간이 아니라 시간 :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

 

 1) 예배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신 은혜의 통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 때부터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죄를 지은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킬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2) 그러나 구약 시대에 이방인들은 예배의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서로 자기들의 지역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며 예배의 공간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서로 자기들의 땅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며

    예배를 통한 헤게모니 쟁탈전에 몰두할 뿐이었습니다.

 

 3) 아버지께 참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23절).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가 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3.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23절)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가 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23절)

 

    이제는 더 이상 예배의 장소나 형식이나 절차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주께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중에서 먼저 영으로,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영적인 감각으로, 하나님과 영이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영이 서로 교통하고

    하나님과 서로 영적인 교류를 하는 자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1)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드리는 예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 15:7).

 

    우리가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행하신 일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2) 천국의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 메시야 잔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마태복음 22:1~14과 누가복음 14:16~24을 보면

    주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에 주님과 그의 백성들이 함께 나누는 영광의 기쁨을

    마지막 왕의 혼인 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그날의 영광의 잔치를 ‘메시야 잔치’라고 부릅니다.

 

    그때 신랑인 왕은 예수님이시고

    그 왕의 신부는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그 영광의 기쁨은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신 후에 경험하게 될 일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영광의 기쁨을 오늘 이 예배 속에서 경험하며 노래합니다.

    믿음은 실상, 그 실체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의 날의 실상을 오늘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그 기쁨과 감격으로

    지금 주께 기쁨으로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는 메시야 잔치의 영광의 기쁨을

    오늘 예배를 통해서 표현하며 경배하는 것,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 영광의 기쁨을 마치 오늘 이 자리에서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믿는 이들이

    지금 그 기쁨에 싸여 있는 것처럼 주께 영광 돌리며 예배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3) 회개하여 순결한 영이 된 자가 드리는 예배

 

    회개하여 그 영이 깨끗하고 순전하게 된 자만이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께 회개하여 그 영이 순결하게 된 자만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 들어갈 수 있고,

    그런 자만이 하나님과 그 영이 서로 교통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영이 서로 교통하는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그 영이 깨끗하고 순전한 영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영이 서로 통하여

    영으로, 영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가 됩니다.

 

 4)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예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4~5)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이,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우리의 위대하신 왕께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5) 그리고 그보다 더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과 영예를 올려드리는 예배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며 기뻐했던 그 일보다 더,

    청소년들이 가수들 앞에서 몇 시간씩 뛰면서 좋아하는 그것보다 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앞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것보다 더

    주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 진리로 :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오직 보이지 않으시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가 되려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하신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람으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주께로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주께 집중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주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돕는다는 이유로

    그 어떤 우상이나 그 어떤 이미지 형상도 만들거나 그 앞에 두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묵상 :

 

    이것은 결국 예배자가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곧 하나님과 우리가 영으로 서로 교통하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염려나 걱정이나 다른 어떤 생각도 물리치고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기쁨과 감사와 헌신이 있는 예배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셨음을 나타내는 예배,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주께 드리는 예배,

    최고의 헌신과 최고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

    다른 어떤 동기나 바람이 없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간절한 열망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는

    다른 집회 시간이나 매일 하는 묵상(큐티) 시간을 이용하십시오.

    주일 예배는 오직 주께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주일 예배는 우리를 통해서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6.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발견한 이유 : 메시야 대망

 

 1)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25절)

 

    예수께서 이제는 어디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사마리아 여자가 그동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2)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5~26절)

 

    그때 예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 순간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마리아로 달려가 메시야(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기뻐하며 증거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라는 이 한마디에

    여인은 주님을 그의 마음에 영접하고 모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3) 타락한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자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자이면 노인이라도 만나고(누가복음 2장 시므온과 안나),

    사마리아 여인처럼 타락한 사람이라도 만나십니다.

 

 4) 그리스도를 간절히 갈망하는 이 마음을 주께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순간 이 여인에게 거듭남이 일어났습니다.

 

    만일 이 여자가 구약의 시대에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지킨 자에게만 구원의 기회가 있는데

    이 여자는 이미 남자가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여자도 주님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할 수는 있습니다.

 

➠ 바로 여기에 복음의 탁월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힘이 없으나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7. 거듭난 여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거듭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지 설명하시는 예수님

 

    그러면 거듭났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1) 버림받은 타락한 여인이 예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거듭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은 불륜의 여인인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거듭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오직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자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자,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그를 기뻐하고 찬양하는 자는 거듭난 자입니다.

 

 2) 물동이를 버려두고 기뻐하며 그가 만난 주님을 전하는 사미리아 여인(28~30절)

 

    여자는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시자,

    물동이를 그 자리에 버려둔 채 곧바로 마을로 뛰어가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칩니다.

 

➠ 생각과 판단의 자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그곳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여인이 이렇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는 순간,

    그리고 그 믿음대로 자기의 입술을 열어 고백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순간

    그는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생각과 판단의 자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 중심의 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비록 거듭났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평생 행하여야 할 길고 긴 신앙생활에서 이제 첫 출발을 했을 뿐입니다.

    그동안은 육체적인 생명만 있던 여자가 이제 거듭나서 영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영적인 갓난아이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타락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본능이 불쑥 튀어나올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끝까지 주님을 붙잡는 그 믿음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은 그 여인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신 성령께서

    그 여인의 잘못된 부분을 치료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동안은 혼자 살았으나 이제부터는 주님의 성령과 함께 살아가니

    아직 이전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 못했을지라도

    그 여인은 이미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묵상 : 좌절과 갈등의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비록 거듭난 자일지라도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이 남아 있으므로

    거룩함과 타락한 본성 사이에서 수많은 좌절과 갈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심정은 분명 유쾌한 감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룩한 본성이 있기에 이런 영적인 좌절과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죄의 본성만 있다면 죄를 지어도 갈등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본성이 있기에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하거나 갈등이 있을 때

    그 심정을 주께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8. 정리,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이유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갈망

 

    타락한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여러 남자를 만났던 문란한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마리아 여인을

    어찌하여 예수께서 친히 찾아가서 만나셨을까요?

    이런 여자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과 잠깐 만나는 사이에 거듭난 여인이 되었을까요?

 

    그동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보았으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 앞에서

    한 하나의 기적도 보이지 않으시고 그저 말씀만 하셨습니다.

 

    여인은 말씀만 듣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았습니다.

    그것도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하는 이 한마디를 결정적인 말씀으로 듣고

    물동이를 버리고 기뻐하며 사마리아로 뛰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향한 여인의 갈망입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고하시리이다”(25절)

 

    비록 마음의 갈증을 남자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바람에 불륜녀가 되기는 했지만
   “그리스도 오시면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간절함을 항상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여인에게 있는 그 갈망을 보시고 이 여인을 친히 찾아오셨고,

    이 여인을 거듭난 자가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2. 참되게 예배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3.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아직 예배의 기쁨과 능력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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