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요한복음 7:53~8:1)
* 본문요약
예수께서 감람산에 가셨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시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잡아 와서는 모세의 율법에는 이 여인을 돌로 치라 했는데
어찌했으면 좋을지 예수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 양 : 410장(새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197장(새 263) 이 세상 험하고
* 본문해설
1.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7:53~8:5절)
7:53) [그리고 그들은 다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8:1) 예수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2) 이튿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성전에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예수께서 않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사람들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서기관(3절) :
서기관은 전문적인 율법해석자나 율법학자를 뜻하는 것으로 대부분 바리새인들입니다.
포로기 이후 전문교육을 받고 임직한 유대교 율법학자들이 등장하였습니다.
- 서기관의 세 가지 역할
➀ 율법 보존 :
전문적으로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 수호를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율법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입으로 구전되어 전해오는 율법들을 성경에 기록된 율법과 동등하게 여기고
발굴하고 수집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유대교를 형식주의로 만들었습니다.
➁ 율법 교육 :
율법을 교육하는 그들을 랍비라 불리며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➂ 율법 집행 :
산헤드린에서 율법집행을 의뢰받아 시행했으므로 법률사, 혹은 율법사로 불렸습니다.
-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4절) :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음행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것입니다.
- 모세의 율법에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였거니와(5절) :
레 20:10, 신 22:22에는 간음한 남녀 두 사람을 모두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 여자만 붙잡아 왔습니다.
2. 예수님의 판결(6~11절)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님을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계속하여 다그쳐 재촉하여 묻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슬그머니)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서 있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여자가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니(6절) :
일부 고대의 사본에는 ‘그들 각자의 죄목을 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 여자여(10절) : 구나이
‘구나이(gunai)’로 당시 사회에서 여자를 부를 때 최고의 존칭어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마리아를 부를 때 이 호칭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아주 존귀한 여자로 대하셨습니다.
- 정죄하지 아니하노니(11절) : 카타크리노
‘정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카타크리노’는 ‘판결하다, 선고하다’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의 죄를 판단하지 않으시는 것뿐 아니라,
마지막 심판대에서의 판결까지 모두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절) :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지금 그 여자가 저지른 죄와 같은 일을
반복하여 범하지 말라는 것보다 훨씬 넓은 뜻입니다.
이제 주께서 그 여자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앞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행들
1) 여인을 덫으로 사용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2~3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오로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밤새 이 여인을 지켜보았다가 현장을 급습하여 여자만 데리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에게 이 여인의 가련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룰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남자가 유부녀나 약혼한 여자와 통간을 하면
둘 다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신명기 22:22~24).
그러므로 법의 수호가 목적이었다면 남자까지 붙잡아 와서 정식 재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남자는 살려 두고 여자만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법의 수호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미워하는 예수님을 처단할 구실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가련한 여인을 덫의 미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관음증과 정치적 욕망에 빠진 사회(8:3~5)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자를 미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것은 평소에 이들이 이 여인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 말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도 소중한 것이었다면
예수님과 상관없이 그 전에 이 일을 알았을 때 곧바로 이 일을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죄를 그대로 방관하다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으로 이용하기 위해 여인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 일이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이 여인의 음행하는 현장을 급습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이 여자 몰래 미행하였다가 음행하는 장면을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율법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이 사람들이
여인의 음행의 장면을 실컷 감상하다가 한바탕 관음증의 욕망을 충족하고 난 후에
그 현장을 급습하여 이 여인을 붙잡아서
자기들의 정치적 욕망을 해소할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여기에 인권도 자비심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습니다.
● 묵상 : 관음증의 범죄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부끄러운 사생활을 인터넷에 올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하는 일 역시
본문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흉악한 범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실컷 관음증의 욕망을 채운 후에
인터넷의 누리꾼들에 의해 공개처형 당하게 하는 끔찍한 범죄에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절대로 참여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당신이 하는 모든 신앙생활을 무효로 만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3)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
가장 경악스러운 일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가련한 여인을 예수께 붙잡아 와서는
자기들이 마치 모세의 율법을 수호하는 자들인 양 의기양양하게 와서 예수께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판결하겠느냐?”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기독교는 아닙니다만, 요즈음 이슬람의 일부 과격단체가 사람을 무차별로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고 과격해질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바로 신(神)이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기독교도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여 많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 묵상 :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에 결단코 참여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은
다른 어떤 죄보다도 하나님 보시기에 흉악한 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를 지었으니
사람들이 그들의 악한 일로 하나님까지 악하게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자기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게 하는 아주 중대한 범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에 결단코 참여하지 마십시오.
2. 여인을 고발하는 자들을 오히려 심판하시는 예수님
1)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6~9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자를 붙잡아 와서 예수께 고발하자,
예수님은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재촉하여 말하자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어른으로부터 차례로 빠져나가서
그곳에는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2) 예수님은 이 여인을 고발하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땅에 쓰신 내용입니다.
비록 일부 사본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만,
예수께서 땅에 쓰신 것은 이 여자를 고발한 자들의 죄의 목록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께로부터 마지막 심판대에서의 죄의 판결까지 모두 용서를 받았으나,
오히려 이 여자를 고발하러 왔던 자들의 죄는 전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심판대의 심판자이신 예수께서 그들 죄의 목록을 기록하고 계신 것입니다.
● 묵상 : 권세의 힘으로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권세의 힘으로 연약하고 가련한 자들을 더욱 힘들고 어렵게 하는 자들은
자신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권세로 이들처럼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하면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주께서 더 무서운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
우상숭배만큼이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1) 주님의 보호 아래 있는 여인(6~9절)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고 말씀하시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자들이 어른으로부터 하나씩 모두 나갔습니다.
저 승냥이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 붙잡힌 이 여인은
꼼짝없이 돌로 맞아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주님의 보호 아래 들어왔습니다.
그들 모두 당장이라도 이 여자를 죽일 듯한 기세로 왔으나
모두 이 여자의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주께서 그의 보호 아래 있는 자를 이렇게 돌보십니다.
누구든 그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누구든 주님의 허락 없이 그를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10~11절)
사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와서
금방이라도 죽을 운명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 여인은 허물과 죄로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가련한 이 세상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의 처지가 바로 돌로 맞아 죽을 운명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이 여인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모두 영원히 저주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이 여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이 여인처럼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3)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절)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물론 이 여자가 지금 저지른 음행의 죄를
다시는 반복하여 저지르지 말라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단순히 음행의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 자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앞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죄를 모두 용서받았으니
앞으로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도 이 여인처럼 한 편으로는 죄를 용서받고,
또 한 편으로는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 기도함으로 우리의 영을 씻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웁니다.
이 일을 날마다 반복하여 행하십시오.
* 기도제목
1.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 죄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2. 죄를 씻고 말씀을 채우는 일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날마다 행하게 하옵소서.
2. 중보기도 : 죄의 습관을 벗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분열과 다툼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