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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큐티

예수님의 기적을 의심하는 사람들(요 9:13~23)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7.14|조회수64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예수님의 기적을 의심하는 사람들(요한복음 9:13~23)

 

* 본문요약

 

    사람들이 눈먼 사람이었던 자를 바리새인에게로 데리고 옵니다.

    그들은 일반 바리새인이 아니라 유대인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눈먼 사람이었던 자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 눈에 진흙을 발라주어서 그것을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 중에 어떤 이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하고,

    어떤 이는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하겠느냐고 하며 서로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다시 그의 부모를 불러서 이 사람이 아들이 맞는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였었는지를 묻고,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심문합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자기들의 아들인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였다는 것은 맞지만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출교당할 것이 두려워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찬 양 : 493장(새 436)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276장(새 510) 하나님의 진리 등대

 

 

* 본문해설

 

1. 산헤드린의 1차 심문 : 눈먼 사람이었던 걸인에게(13~17절)

 

13) 그들이 전에 눈먼 자였던 그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분쟁이 일어났더니)

17) 이에 눈먼 자였던 그 사람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 데리고 바리새인에게 갔더라(13절) : 아구신

    ‘데리고 가다, 끌고 가다’라는 뜻의 ‘아구신’은

    산헤드린 공회(법정)로 체포하여 데리고 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2. 산헤드린의 2차 심문 : 걸인의 부모에게 (18~23절)

 

18)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가 전에 눈먼 사람이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였다는 너희의 아들이 틀림없이 맞느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고백)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시오’ 하였더라.

 

- 출교(22절) :

    출교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➀ 첫 번째 : 30일 동안의 출교

       첫 번째 출교는 30일 동안 회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친구들이나 아내에게 4규빗(약 1.8m)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➁ 두 번째 : 영구한 출교

       두 번째 출교는 회당의 예배에 영원히 참석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과의 교제가 일체 금지됩니다.

       또한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지리라는 산헤드린의 선언이 있습니다.

       ------------------------

    여기에서는 두 번째 출교를 뜻하는 것으로,

    눈먼 사람이었던 자의 부모는 이 출교를 두려워하여

    자세한 사항은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얼버무린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산헤드린의 심문

 

 1) 1차 심문 : 눈먼 자였던 걸인에게(13~17절)

 

    예수께서 눈먼 자를 안식일에 치료한 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웃 사람들이

    마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끌고 가듯 그를 바리새인들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기에서 ‘데리고 갔다’로 사용된 ‘아구신’은

    당시 유대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로 끌고 갔다고 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평범한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산헤드린 공회 의원들입니다.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은 대부분 바리새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바리새인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눈멀었던 자를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간 것은

    그가 눈을 뜨기 위해 행한 일(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에 발랐고,

    그는 그것을 씻기 위해 실로암 못에 간 행위)이

    안식일 법에 저촉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겼으니 선지자일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걸인에게 “너는 그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묻습니다.

    걸인은 “선지자니이다”하고 대답합니다.

 

 2) 2차 심문 : 걸인의 부모에게(18~22절)

 

    걸인이 그 무서운 바리새인(산헤드린)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고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고백하자,

    바리새인들은 걸인의 부모를 데려다가 그가 정말 눈먼 자였는지를 심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가 자기의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말하지만,

    그가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 아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 그에게 물어보라며 대답을 아들에게 넘겼습니다.

 

 

2. 신앙의 혼란에 빠졌을 때

 

 1) 예수께 대하여 혼란에 빠진 바리새인들(16절)

 

    눈먼 사람을 치유하여 주신 예수님을 두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자들 사이에 분열이 생깁니다.

 

    한쪽에서는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치유하는 것을 보면

    선지자가 분명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식일 법을 어겼으니 선지자일 리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이 두 가지가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혼란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쪽으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출교하기로 결의합니다.

 

 2) 예수님을 누구로 볼 것이냐 :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예수님을 선지자로 볼 것이냐 죄인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시며 구세주로 믿고 고백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중요한 문제를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들어오는 막대한 이익의 문제, 그 하나만을 생각하며

    그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고 단번에 예수님을 죄인으로 결정합니다.

 

 3) 잘못 선택한 사람들(22절)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죄인으로 결정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죄인으로 규정하여 출교를 하기로 하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볼만한 일체의 사건들을 조작하려 합니다.

 

    걸인의 이웃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가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고발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택의 대가는 영원한 파멸입니다.

 

묵상 :

 

    신앙의 길에서 혼란에 빠졌을 때

    바른 선택을 하게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은 자칫 영생의 길을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합니까?

    주께 바른 지혜를 주시도록 구하십시오.

    주께서 의의 길로 당신을 인도하십니다.

 

 

3. 두 고백의 차이

 

 1) 소경이었던 자의 고백(17절)

 

    바리새인(산헤드린 의원)들이 소경이었던 자에게

   “너는 그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선지자니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자는 출교한다는 것을 그도 이미 알고 있으나,

    그에게 주님의 빛이 왔으므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합니다.

 

    그가 아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는 않았으나,

    조금 전에 예수님을 그저 조금 능력이 있는 사람 정도로 보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그 신앙이 발전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고백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2) 그의 부모의 고백(20~23절)

 

    그러나 그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눈이 떠지는 기적을 보았음에도

    산헤드린의 출교를 두려워하여

    모든 것을 아들에게 미루고 자기들은 적당히 얼버무립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고백하는 일을 두려워하고 적당히 얼버무리는 일은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참되게 믿고 고백하는 길뿐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이렇게 예수께 대하여 적당히 얼버무려서

    자기들의 죄를 전혀 용서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죄 가운데서 죽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묵상 : 당신은 주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주님의 나의 구세주요 나의 왕이라 믿고 있다면

    예배드릴 때 왕께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되도록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십시오.

    그리고 세상에서 그가 나의 왕이심을 당당히 밝히고 고백하십시오.

 

 

* 기도제목

 

1. 신앙의 길에서 혼란에 빠졌을 때

   바른 지혜를 주셔서 바른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2. 욕심 때문에 영원한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게 하옵소서.

 

3. 내가 주님을 믿는 백성임을

   세상에서 당당히 고백하고 밝히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신앙의 길에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바른 선택을 하게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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