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육적인 눈먼 자와 영적인 눈먼 자(요한복음 9:24~41)
* 본문요약
바리새인들(산헤드린)이 눈먼 사람이었던 자를 두 번째로 불러
예수님이 그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심문합니다.
걸인은 예수님이 자기의 눈을 고쳐주었다고 이미 말했는데
어찌하여 또 묻느냐며 짜증을 내며,
그가 하나님께로 오신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자기 눈을 뜨게 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를 멸시하며 쫓아냅니다.
눈먼 사람이었던 자가 유대인들(산헤드린)이 쫓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그를 찾아와서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가 누군지 알려주면 믿겠다고 하니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가 곧바로 예수님 앞에서 엎드려 절합니다.
예수께서 보는 자를 소경이 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니,
옆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소경이라는 말이냐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눈이 먼 사람이었다면 죄가 없었을 것이나,
본다고 하니 그 죄가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395장(새 342) 너 시험을 당해
502장(새 445)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본문해설
1. 산헤드린의 3차 심문 : 다시 소경이었던 걸인에게(24~29절)
24) 이에 그들(바리새파 사람들)이 눈멀었던 그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그가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다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러자 그들이 그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 죄인인 줄 아노라(24절) :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자기들이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2. 마음을 닫은 바리새인들(30~34절)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만일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훈계하느냐)?” 하고는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 이상하다(30절) : 이해할 수 없다, 황당하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뜻
- 쫓아내어 보내니라(34절) : 눈먼 사람이었던 그 걸인을 출교했다는 뜻입니다.
3.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5~38절)
35) 예수께서 그들이(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바로 그이니라.”
38) 그러자 그가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는 예수께 엎드려 절하는지라.
- 네가 인자를 믿느냐(35절) :
고대의 일부 사본에는 ‘인자’가 ‘하나님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36절) :
36절에서의 ‘주여’는 그가 아직 주님이신 줄 모르고 있으므로
보통 상대방을 높여서 부르는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 주여 내가 믿나이다(38절) :
38절에서의 ‘주여’는 신앙고백을 담은 ‘주여’로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4. 본다고 하니 그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39~41절)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눈먼 자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눈먼 자라는 말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눈이 먼 자였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고(39절) :
자기의 무지함을 깨닫고 주님의 말씀을 보기(깨닫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으로
마태복음 5장의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같은 뜻입니다.
- 보는 자는 눈먼 자 되게 하려 함이라(39절) :
‘보는 자’는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를 뜻하는 것으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뜻 깨닫기를 주께 구하지 않으니
더욱 깨닫지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 죄가 없으려니와(41절) :
자기의 무지함을 깨닫고 주께 구하는 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고 죄를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뜻.
-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절) :
바리새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멀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앞에 계신 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영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구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있으니 그 죄가 용서받지 못하고 그냥 있다는 말씀입니다.
* 묵상 point
1. 눈먼 사람이었던 자에 대한 두 번째 심문
1) 걸인에 대한 두 번째 심문의 상황(24~28절)
부모의 심문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바리새인들(산헤드린)은 눈먼 자였던 그 걸인을 두고 2차 심문을 행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걸인에게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말하자
걸인은 예수님이 죄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이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본다는 점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어떻게 하여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재차 묻자
걸인은 이미 여러 차례 말하였는데 또 묻느냐며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며 그를 향하여 마구 욕설을 퍼붓습니다.
2) 확신에 찬 걸인의 대답(29절)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걸인으로부터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말하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걸인은 출교를 당하는 것을 각오하며
예수님이 선지자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했으나
그는 그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전에는 소경이었으나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점을 반복해서 증거합니다.
2. 마음을 닫고 있는 바리새인
1) 고침 받은 눈멀었던 자를 협박하며 회유하는 바리새인들(26~34절)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그 걸인에게
예수님을 향한 그의 신앙고백을 취소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그럴수록 그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집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권위가 위협받자, 욕설과 폭력으로 반응합니다(34절).
2) 도리어 바리새인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멀었던 자(30~31절)
눈멀었던 그 걸인이 보기에 바리새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이상하다”라고 말합니다.
“황당하다, 이해할 수 없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이토록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바리새인들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 묵상 :
이렇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일자 무식쟁이인 거지조차 아는 일을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의 지식인이며 엘리트라 자부하는 산헤드린 의원들이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님의 말씀 깨닫기를 간구하면서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며 살아야 합니다.
3. 눈멀었던 자의 믿음의 변화
걸인이 예수님을 부른 호칭을 보면 그의 믿음이 자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11절)
그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예수님을 그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예수님을
자기의 눈을 떠 준 능력이 많은 사람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2) 선지자(17절)
바리새인들이 걸인에게 “너는 그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부릅니다.
선지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직은 주님이라고 분명하게 신앙고백을 하지는 않았으나
신앙이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3) 산헤드린 앞에서 담대하게 주께서 하신 일을 증거함(24~34절)
그가 바리새인(산헤드린)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이 선지자라고 대답하자
바리새인들은 그의 부모를 데려와서
그가 본래 눈먼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게 하려 합니다.
본래 눈먼 사람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은 사기극을 벌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모가 자기 아들이 본래 눈먼 사람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여
예수님이 사기극을 벌였다고 몰아가려 했던 일은 실패로 끝났습니다만,
눈멀었던 자의 부모는
아들이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산헤드린 앞에서 출교 될 것을 두려워하여
눈을 뜬 증거를 아들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눈먼 자였던 그 걸인은 담대하게 주께서 하신 일을 증거합니다.
산헤드린이 그를 향하여 욕설을 퍼부어도
도리어 그들이 주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믿지 않는 것을 황당한 일로 여깁니다.
아직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일로 결국 그는 산헤드린으로부터 출교 처분을 당합니다.
4) 주(sir, 36절)
그가 산헤드린에서 출교를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그를 만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이 말씀이 고대의 다른 사본에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로 되어 있습니다.
이때 그는 예수께
“주여 그가 누구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하고 대답합니다.
여기에서의 ‘주’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선생님’정도의 의미입니다.
아직은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시면 자신이 믿겠노라고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5) 주(Lord, 38절)
예수께서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바로 그이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곧바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여 내가 믿나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주’는 36절과는 달리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믿음을 담은 고백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오실 그 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불렀습니다.
● 묵상 : 그의 영의 눈이 떠질 때마다 그의 믿음이 함께 자라갑니다.
말씀과 기도로 당신의 영의 눈이 떠지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행하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걸인처럼 당신의 영의 눈도 떠지도록 주께 구하십시오.
4.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를 찾아오신 예수님(35~38절)
눈먼 사람이었던 자가 산헤드린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즉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이제부터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산헤드린으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으면
친구는 물론 가족들과도 대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의 고난당함을 아시고 곧바로 찾아오셨습니다.
● 묵상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주께서 우리 곁에 오십니다.
그와 우리와의 차이는 그에게는 주께서 보이게 오셨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게 오신다는 차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차이는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신다는 점에서는 그와 우리가 똑같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5.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39~41절)
1) 바리새인들을 심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을 심판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39절).
본다고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한 자들은 보게 하는 방식으로 심판하십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겨 주께 구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은
주께 구하지 않으니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으니 주께 구하지도 찾지도 않습니다.
구하고 찾지 않으니 그 죄가 그대로 있어 멸망하는 자가 되지만
스스로 진리를 모른다고 여겨 주께 알게 해주시기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해주십니다.
2)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39절)
이 세상 사람은 모두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눈을 뜬 자와 눈을 뜨지 못한 자,
곧 영의 눈을 뜬 자와 육의 눈만을 뜬 자들로 나뉩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주께 구하는 자들은
영의 눈을 뜨게 하셔서 영생의 길을 알게 하시고,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 의인으로 여겨 주께 구하지 않는 자들은
영의 눈을 뜨게 하지 않으시니 영생의 길을 알지 못하고
이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이 됩니다.
영생의 길을 아는 자들은 주님의 생명의 양식을 얻어 영생을 누리게 되고,
육의 눈만 가진 자들은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는 자가 됩니다.
3) 찾고 구하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그에게 주시지만
구하지 않는 자는 오직 자기 이름으로만 살아가야 합니다.
구하고 찾는 자에게 주님의 이름을 주시니,
주님처럼 죄 없는 자로 여김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찾고 구하지 않는 자는 자기 이름으로만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도 그렇지만, 죽은 다음 받는 심판의 자리에서도
자기 이름과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4)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절)
바리새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멀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앞에 계신 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영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께서 앞에 계신 데도
죄의 용서와 은총을 구하지 않고 찾지도 않고 있으니
그 죄가 용서받지 못하고 그냥 있다는 말씀입니다.
● 묵상 :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미 이 세상에서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스스로 부족한 자로 여기고
주께 생명의 양식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범하지 말아야 할 가장 무서운 실수는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찾고 구하는 일을 잊어버릴 만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지 마십시오.
* 기도제목
1. 예수님이 누구신지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떠지게 하옵소서.
2. 편견과 무지함으로 예수님의 일을 훼방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3. 걸인의 믿음이 자란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날마다 자라가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아직도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