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말씀:심문을받으시는예수님과,예수님을부인하는베드로(요한복음 18:15~27)
* 본문요약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명이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이 집 뜰 안으로 들어갑니다.
날씨가 추운 때였으므로 사람들이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불을 쬐다 한 여종의 질문에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결박한 채로 가야바에게로 보냅니다.
이때 베드로가 세 번째로 예수님을 부인하니 곧 닭이 웁니다.
찬 양 : 519장(새 46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41장(새 143) 웬 말인가 날 위하여
* 본문해설
1.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15~18절)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예수님과 함께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종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게 하였더니
17) 그때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우고 둘러서서 불을 쬐니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쬐더라.
- 베드로도 불을 쬐더라(18절) :
베드로는 지금 자기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불을 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날씨가 추우니 불을 쬐고 있는 것입니다.
그 추운 날씨에 예수께서 갖은 곤욕을 당하시며 심문을 받고 계신데
베드로는 날씨가 춥다고 불을 쬐고 있습니다.
2.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19~24절)
19) 대제사장이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서 있던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그러자 안나스가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3. 세 번째 부인하는 베드로(25~27절)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그때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렸던 사람의 일가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다시 아니라고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 묵상 point
1.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1) 베드로의 용기 : 붙잡히신 예수님을 뒤따라 감(15~16절)
베드로가 여종 앞에서까지 두려워하며 부인했던 것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연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10명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하였는데,
그나마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2) 그러나 베드로의 용기는 예수님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여기까지가 베드로의 한계였습니다.
베드로는 힘없는 여종 앞에서조차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부인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도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때 기도하여 하나님의 용기와 능력을 구하였더라면
이런 참담한 실패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대답은 아주 강력하고도 단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베드로는 단지 예수님을 부인하기만 했을 뿐이므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보다 그 죄가 조금 작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그 말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똑같이 주님을 배반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1) 여종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17~18절)
여종의 질문은 “당신은 설마 저 사람의 제자는 아니겠지요, 그렇지요?”하는 정도입니다.
여종은 베드로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종이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는 ‘저 사람’이란
경멸하는 뜻이 담긴 ‘저 녀석’, 혹은 ‘저놈’이라는 뜻으로
여종은 예수님을 경멸하면서 “당신은 설마 저 사람의 제자는 아니겠지?”
하고 혼잣말을 하듯 가볍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여종은 베드로의 대답을 꼭 들으려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 가볍게 질문한 것이었으므로
대답하기 곤란하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종의 그런 가벼운 질문에도 놀라서
곧바로 “나는 아니오”하고 부인합니다.
2)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부인(25, 27절)
그래도 첫 번째의 부인은 그저 단순히 “나는 아니오”하는 말이었으나,
25절과 27절에서는 아주 단호하고 완강한 거절의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아니다’로 번역된 헬라어‘에르네사토’는
‘의절하다, 인연을 끊다’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기 위해
“나는 저 사람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의절했다”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25절의 사람들의 질문 역시 앞의 여종처럼
“당신도 혹시 저 사람의 제자는 아니지요?”하는 가벼운 질문이었는데
베드로는 이에 완강한 거절의 의미를 담은 부인을 했고,
세 번째는 좀 더 정확히 조금 전에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귀를 자른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친척이 베드로를 보았다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공격할 때
아주 강력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말을 합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3)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똑같이 배반한 자였으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둘 다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을 뿐,
베드로 역시 예수님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의절했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으니
베드로 역시 주님을 배반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나와 회개를 함으로써
다시 그 제자의 위치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 묵상 : 울며 통곡하는 것이 회개는 아닙니다.
누가복음 22:61~62을 보면 베드로가 세 번째 주님을 부인했을 때,
바로 그 순간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그때 심히 통곡한 것은 결코 회개가 아닙니다.
앞으로 요한복음 21장에서도 보겠지만 베드로는 그 후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주님을 믿는 자로서의 신실함을 전혀 회복하지 못한 채
공허한 삶을 보낸 것을 보아도 그의 통곡이 회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란 단순한 감정적인 눈물이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했음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주님 말씀대로 살겠으니 주님의 성령을 다시 부어달라고
간절히 간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시편 51편 참조).
그러므로 우리도 감정에 치우친 거짓된 눈물만 흘릴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진정한 회개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 헌신입니다.
1) 두려움과 헌신 사이에서의 갈등
만일 베드로가 이때에 예수님의 제자임을 당당하게 밝혔다면
틀림없이 붙잡혀서 적어도 매질은 당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매질은 아주 무섭고 고통스럽습니다.
39가닥의 가죽 채찍 끝에는 쇠붙이나 동물의 뼛조각이 붙어 있어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면
당장 눈앞에 있는 이 무섭고 고통스러운 매질은 피할 있을 것이지만,
그 대신 주님의 제자인 것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에게서도 제외되고 말 것입니다.
베드로는 불을 쬐면서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를 두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2) 육신의 일을 선택한 베드로
그러나 베드로는 당장 매질을 면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매질을 면하려면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해야 합니다.
제자는 물론 아예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라고 주장해야만
매질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매질을 당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베드로는 더욱 당당하게 소리를 높여서
자신이 예수님이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결국 육신의 일을 선택하였습니다.
➠ 신앙은 선택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그것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냅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고통당하는 쪽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육신의 평안을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3) 제자와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잃어버린 베드로
베드로는 결국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저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라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부활하신 후 그를 다시 받아주실 때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의 직분은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는 위치까지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때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와 똑같은 처지가 된 것입니다.
4) 이 상황에서 능력 있는 기도란 무엇입니까?
만일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이 불이 계속 잘 타올라서
이 추위를 좀 녹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면
그 기도를 능력 있는 기도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는 고사하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기도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말하기가 두려우니
주님의 제자임을 당당하게 말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5) 헌신이란 대가를 치르는 것
베드로는 주를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치르려 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그가 한 일이란 고작해야 불을 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매를 맞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여
주께서 그를 다시 받아주실 때까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서도 제외가 됩니다.
➠ 이와 같이 헌신이란 내가 누릴 권리를 포기하고
그 일을 위하여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대가도 치르지 않으면서 주님을 헌신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내가 믿는 것을 향하여는
다른 것을 희생하고 그곳으로 모든 것을 집중할 줄 압니다.
가령 학생들은 다른 것을 모두 희생하고 공부에 집중합니다.
공부가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심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 묵상 :
오늘날 많은 사람이 편안한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헌신이 없다면 그에 대한 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구하지 말고,
주께 헌신 된 사람이 되기 위해 구하십시오.
헌신 된 삶을 살기 위해 조금 불편한 일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내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복과 은혜를 주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작은 것을 집착하여 큰 것을 잃지 말고,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십시오.
4.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거짓된 행동
1) 허둥지둥 대충 의견을 모으는 엉터리 재판(19~24절)
직전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당시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모든 일을 다 마치려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금요일 오전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목요일 밤에 예수님의 죄목을 만들어서
금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빌라도에게 가서 사형판결을 받도록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목요일 밤에 허둥지둥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도록 대충 의견을 모으는 엉터리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2) 산헤드린의 규정을 무시한 불법 재판
본래 산헤드린 공의회는 사형판결과 같은 중대한 범죄는
반드시 하룻밤을 지낸 다음에 밝은 낮에 판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흥분된 감정에 잘못된 판결을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이런 일정에 맞추기 위해
산헤드린의 모든 규정을 다 무시해 가면서 불법적인 재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안식일 법을 지키기 위하여 : 거짓된 거룩
이렇게 불법 재판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안식일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가 안식일이므로
금요일 저녁이 되기 전에 모든 일을 다 마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법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규정까지 무시해 가면서 밤중에 엉터리로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의 무지함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 묵상 :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이처럼 엉터리 불법 재판으로 십자가에 달리게 했습니다.
탐욕과 욕심에 눈이 멀면 이렇게 엉터리 거짓 신앙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기도제목
1. 세상에서 주님의 사람임을
당당하게 나타내게 하옵소서.
2. 내 것을 채워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주를 위해 기쁨으로 대가를 치를 줄 아는
헌신 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4. 탐욕에 눈이 멀어 거짓 신앙에 빠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