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요한복음 19:31~42)
* 본문요약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치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에 군병들이 확실히 사망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릅니다.
이때 아리마데 요셉이 목숨을 걸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하고
향품을 가져온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님의 장사를 지냅니다.
찬 양 : 82장(새 95)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150장 (새 160) 무덤에 머물러
* 본문해설
1. 예수님의 죽으심을 확인하는 로마 군인들(31~37절)
31) 이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것은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출 12:46, 시 34:20)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슥 12:10) 하였느니라.
- 이날은 예비일(준비일)이라(31절)
예비일은 안식일의 예비일이라는 뜻으로,
오늘날로 하면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저녁까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므로, 이제 곧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해가 지기 전에 일을 서둘러
예수님과 두 명의 범죄자의 시신을 모두 치우는 작업을 마무리하게 합니다.
- 다리를 꺾고(32절) :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종아리를 쇠뭉치로 부러뜨리면
몸이 아래로 축 처져서 숨을 쉴 수 없어 질식해서 죽게 됩니다.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하기 위해 두 명의 죄수의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33절) :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셨으므로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뼈가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시편 34:20).
-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34절) :
예수님이 숨진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릅니다.
이로써 스가랴 12:10에서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35절) :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이 이 모든 일을 직접 목격한 장본인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2.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38~42절)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100 리트라, 약 34kg)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님을 거기 두니라.
- 백 근, 백 리트라(39절) :
약 34kg으로 왕을 장사 지낼 때 사용되는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예수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 몰약과 침향 섞은 것(39절) : 시체 썩는 냄새를 없애는 데 사용됩니다.
-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40절) :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장례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운명하시고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고 믿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께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고,
장차 우리도 다시 살리실 능력을 가지셨음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는 증거가 되려면,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이 분명히 확인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죽으셨음이 분명하게 확인이 되어야
다시 살아나신 것이 그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확실하게 목격한 사람인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 합니다.
1) 로마 군인들의 확인(31~34절)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범죄자들의 무릎을 꺾을 때에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것을 확인하고, 예수님의 무릎을 꺾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확인했다면 거짓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확인한 것이므로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34절)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공격 중의 하나는
예수님이 죽지 않고 기절만 했다가 3일 후에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이 확실히 운명하셨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
로마 군병이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섞여서 나왔다고 증거 합니다.
심장병 의사들의 말을 빌면 심장은 심낭(心囊)이라 불리는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막에는 심장의 표면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액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은
➀ 예수께서 심장이 파열되어 운명하신 상태에서 군인이 창으로 찔렀었을 때 나왔거나,
➁ 혹은 로마 군인이 심장을 찔러서
심낭의 액체와 심실 안의 피가 한데 섞여서 나왔다는 것입니다(웹스터).
어찌 되었든 간에 물과 피가 섞여 나왔다는 것은
심장이 파열되어 운명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운명하신 것을 로마의 군사들이 확인했고, 유대인들 역시 확인했으며,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자신이 직접 목격했노라고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물과 피가 나오게 한 것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이 되었습니다.
3)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38~42절)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침향 섞인 몰약을 발라 세마포에 싸서 새 무덤에 안장하였습니다.
4) 로마 군인들이 무덤을 지키고(마태복음 27:64~66)
그리고 그 무덤을 장정 여섯이 겨우 움직일만한 큰 돌로 막아
무장한 로마 군병들이 그 무덤을 지켰습니다.
● 묵상 :
이것은 예수님이 완전히 숨을 거두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확실한 증거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이때를 위하여
1)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38~40절)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고
빌라도와 개인 면담을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유대교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밤중에 몰래 찾아왔었습니다(요한복음 3장).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장했고,
니고데모는 왕의 장례식에서 사용될 정도의 막대한 양의 향품을 가져와
예수께 대한 최대의 영예와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진정한 왕으로 모신 것입니다.
이 일로 니고데모는 그동안 누려왔던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잃게 되었고,
아리마대 요셉 역시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온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더 존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2) 두 사람은 모두 지금이 바로 자신들이 섬겨야 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무덤과 향품에 사용된 막대한 양의 돈도 돈이지만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는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 예수님의 시신을 안장하려면
적어도 이들 두 명이 가진 정도의 영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동안 쌓아 놓은 모든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을 각오하고 주님을 모시는 일에 참여합니다.
● 묵상 :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곧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속한 교회에서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위해 당신을 그 교회에 보내셨다고 믿고 그 일을 행하십시오.
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아 당신의 마음이 답답함을 경험하였다면,
그 일을 당신이 하십시오.
그것을 하지 않고 불평하는 자는
모세에게 저항했던 고라 일당처럼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믿고 그 일을 행한다면
당신은 성경에 나온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들이 됩시다.
주께서 당신을 필요로 하실 때 당신도 이 두 사람처럼 하십시오.
그때를 위해서 당신이 있습니다.
* 기도제목
1.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2.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이때를 위하여 나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충성된 종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