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한복음 3:9~21)
* 본문요약
거듭나는 일이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냐고 니고데모가 묻자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생이면서 이런 일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 후에,
이 일을 위하여 모세의 뱀처럼 주께서 나무에 달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보내신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찬 양 : 183장(새 283) 나 속죄함을 받은 후
404장(새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 본문해설
1.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9~15절)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절) :
인간의 노력으로 거듭나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를 묻는 것입니다.
-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12절) :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눈에 보이는 성령 사역의 결과들을 말해도 믿지 않는데
-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12절) :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령 사역의 결과로
하늘에서 나타나게 될 영생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16~17절)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심판(18~21절)
18) 그를(아들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심판은)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아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 묵상 point
1.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9절)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들은 니고데모는
예수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사람의 모든 것이 세포 하나까지 다 완벽하게 전부 다 변하고,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되 하늘로부터 다시 나서 새로 창조하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수행과 같은 훈련에 의하여 누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처럼 완전한 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 거듭남 :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일(10절)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생으로서
이만한 일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지만,
사실 이것은 니고데모와 같이 신실한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풀기 힘든 숙제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이 훈련에 의하여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많은 사람이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철학과 종교들이 나왔지만,
그 어떤 것도 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합니다.
● 묵상 :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의 훈련에 의하여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착해지고 조금 더 순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준에는 형편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2. 이를 위하여 모세의 뱀처럼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 우리의 거듭남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14절).
니고데모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거듭남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를 위하여
모세가 뱀을 나무에 달았던 것처럼 자신도 나무에 달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이 말씀을 후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겠지만,
우리가 거듭난 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완전하게 사라지고,
우리가 완전하게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 묵상 :
우리의 거듭남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3. 복음의 핵심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16~17절)
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의 독생자에게 대신 짊어지게 하실 만큼
세상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인류, 모든 족속을 사랑하십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것도
그들을 통해서 세상 만민을 구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의 근원’의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이 세상에 복을 전하는 사명을 끝내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을 구하려는데는 넘기 힘든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 중에서 죄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기도 하지만, 공의로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 있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을 대신하여 짐승이 죽는 율법을 정하셨는데
그것이 번제와 속죄제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지키기 힘든 율법이라 해도
구약에서는 사람이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이 율법에 이방 사람들에까지 전해졌다면 주께서 오시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세상 사람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끝내 거부했고,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이방인들의 유일한 기도처인 이방인의 뜰을
장사치들의 난장으로 만들어 놓아서 이방인이 구원받을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습니다.
2)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 일을 위해서는 죄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이미 자기에게도 죄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땅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살되, 죄 없는 자로 살게 하셔서
세상 만민의 죄를 지고 대신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3)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누구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처럼 죄 없는 자로 여김 받아 천국 백성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 주님을 믿기만 하면
그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죄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4)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고(17절)
세상은 이미 그들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하여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있었으므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결단코 자기 힘으로 거듭날 수 없으니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묵상 : 이처럼 사랑하사 ➠ 우리 대신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실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이 사명을 감당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모든 일을 예수께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가 완벽하게 하나도 없는 자로 여김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세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예수님을 믿어 주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래서 멸망받는 자가 되지 말고 구원받는 자가 되십시오.
4.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과 권세를 신뢰하므로 그를 의지하고, 그를 선택하고,
그를 나의 왕과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나의 몸과 나의 인생과 계획을 그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과 권세가 있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보다 더 강한 자가 없다는 것,
그래서 주님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떤 힘이나 권세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고
그 능력과 권세를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많은 슈퍼맨들이 그의 백성들을 탄압하는 독재자들이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능력만 있고 사랑이 없으신 분이라면
역사 속에 있었던 수많은 독재자들처럼
그 크신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괴롭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라
사람들이 자기 죄로 멸망 받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를 따르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참된 기쁨과 평안이라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4) 이 약속을 믿고 예수님의 시간과 질서 속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이 약속을 믿고 이 땅을 살아갈 때
예수님의 시간과 예수님의 질서 속으로 들어갑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주 주께서 부활하신 날(주일)에 주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으니
이제 우리도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5) 이 약속을 믿고 주님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주신 이 약속을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주께서 말씀하신 일을 선택합니다.
주일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선택합니다.
나의 진로를 정할 때에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도 주께서 기뻐하실 만한 말을 합니다.
이렇게 가정이나 직장이나 학교나 교회 생활에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매 순간 이런 선택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나의 왕으로 믿고 섬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5.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18절)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그의 피의 권세로 거듭난 자가 될 수 있는데,
그를 믿지 않았으니 그는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사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지극히 작은 죄로도 심판을 받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때에 있을 최후의 심판은 지금 받은 심판을 결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심판은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믿고 사느냐, 내 생각대로 내 고집대로 살아가느냐
이것으로 이미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간도 지금이고, 심판의 시간도 지금입니다.
* 기도제목
1. 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깨닫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나는 주님을 참되게 믿으며 살고 있는지
늘 자신의 영적 상황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 주님 오실 때까지
신령한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