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Ⅰ, 견딜 수 없는 고통(욥기 6:1~13)
* 본문요약
욥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바다의 모래만큼이나 무거운 것이어서
자기의 말이 다소 거칠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하여 독이 묻은 화살을 쏘셨다며,
그 독이 자신의 영에 퍼져 하나님의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고 독백합니다.
그래도 그가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
유일하게 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욥은 이렇고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보아야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면서,
하나님께서 차라리 자기를 이쯤 해서 목숨이 끊어지게 해주신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그 어느 곳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철저하게 고독하고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찬 양 : 500장(새 446) 주 음성 외에는
509장(새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 본문해설
1. 견딜 수 없는 욥의 고통(1~4절)
1) (엘리바스가 말을 끝내자) 욥이 대답하하여 이르되
2) 나의 분한(괴로움)을 달아볼 수만 있다면,
내가 겪고 있는 이 재앙(비참함, 고통)을 모두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만 있다면
3) 그것은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
내 말이 경솔하였다면(거칠었다면) 바로 이 때문이네.
4) 전능하신 이가 나를 과녁으로 삼고 (독이 묻은) 화살들을 쏘시니,
그 화살이 내게 박혀서 내 영이 그 독을 마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휘몰아치시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내게 엄습하여 오는구나.
- 나의 분한을 달아볼 수만 있다면 … 경솔하였다면 바로 이 때문이네(2~3절) :
본문 2~3절의 이 말은, 5:2에서 엘리바스가
‘미련한 자는 자기 분노 때문에 죽는다’하고 공격한 것에 대한 욥의 반박입니다.
욥은 자기가 지금 하나님 앞에 경솔한 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화살들(4절) :
하나님께서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욥을 공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화살에 묻은 독의 고통을 욥이 당해낼 수 없습니다.
욥은 그 재앙 속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 하나님의 두려움이 내게 엄습하여 오는구나(4절) :
욥은 자신이 당하는 재앙이 단순한 질병의 고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욥은 이 재앙을 통해 자기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욥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단절이기 때문입니다.
2. 역겨운 엘리바스의 말(5~7절)
5) 뜯을 풀이 있는데 나귀가 어찌 울겠으며,
먹을 꼴이 있는데 소가 어찌 울겠는가?
6) 싱거운 음식을 소금도 치지 않고 먹을 수 있겠는가?
달걀 흰자위를 무슨 맛으로 먹겠는가?
7) 나는 그런 것들을 건드리기도 싫고,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진다네.
- 뜯을 풀이 있는데 나귀가 ~(5절) :
자신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단지 육신의 고통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은 것 같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삶의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음을 고백합니다.
- 싱거운 음식, 달걀 흰자위(6~7절) :
싱거운 음식이나 달걀 흰자위는 엘리바스의 충고를 빗댄 말입니다.
엘리바스가 한 말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표현한 것입니다.
3.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욥(8~13절)
8)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간절히 바라고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나니
9) 이는 곧 하나님께서 나를 멸하기를(나를 산산이 부수기를) 기뻐하셔서
그 손을 들어 나를 속히 끊어버리시는(나를 죽이시는) 것이라.
10)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될 텐데,
이 무정한(그칠 줄 모르는) 고통 중에서도 (유일하게) 내게 기쁨이 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것이라.
11) 그러나 내게 무슨 기력이 있어서 더 견뎌내겠으며,
마지막에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더 버텨내겠는가?
(무슨 좋은 일을 더 보겠다고 더 버티며 살겠는가?)
12) 나의 기력이 바위의 기력이라도 된단 말인가?
내 몸이 놋쇠라도 된다는 말인가?
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으니(의지할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으니)
나의 지혜가(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설명 :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아득하다는 것)
* 묵상 point
1. 더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는 절망감
엘리바스가 욥을 공박하자 욥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그러나 대답이라기보다는 자기 독백에 가깝습니다.
1) 계속되는 고통에 지쳐가는 욥(1~4, 11~13절)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앞으로 나아질 소망이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지금의 현실이 나아질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좌절감과 절망감을 갖게 됩니다.
욥 역시 지금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과 고통과 비참함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아마도 바다의 모래들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1주일이 넘게 앓고 있는 악성 종기의 고통보다
지금의 현실이 앞으로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의 미래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11~13절).
나아질 희망이 있다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어떻게든 견뎌보겠는데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마저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이 상황에서
그가 바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 욥을 더 절망스럽게 하는 외로움 : 하나님의 두려움이 내게(4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겪고 있는데다
미래까지 어둡기만 한 욥을 더욱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에게까지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과녁으로 삼아 독이 묻은 화살들을 쏘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독이 자신의 영에 하나님의 두려움을 갖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욥을 도우실 뜻이 없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욥의 고통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견딜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아둘람 굴에서 지낼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 절대고독 : 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리셨다는 느낌
이런 절대고독에서 욥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일을 이미 다 알고 계셨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닌 것을 잘 알고 계셨음에도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절대고독을 느끼셨습니다.
3)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어가는 욥(5, 12~13절)
“나의 기력이 바위의 기력이라도 된단 말인가? 내 몸이 놋쇠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 이제 의지할 곳도 없고 도움을 구하러 갈 곳도 없으니
그저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아득하다네.”
“뜯을 풀이 있는데 나귀가 어찌 울겠으며, 먹을 꼴이 있는데 소가 어찌 울겠는가?”
현실의 고통도 죽음만큼 힘들고, 앞으로 미래도 보이지 않고,
거기에 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철저한 절망 속에서
욥은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기력이 바위의 기력이라도 된단 말인가? 내 몸이 놋쇠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 이제 의지할 곳도 없고 도움을 구하러 갈 곳도 없으니
그저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아득하다네. ”
현실의 고통도 죽음만큼 힘들고, 앞으로 미래도 보이지 않고,
거기에 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철저한 절망 속에서
욥은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2. 역겨운 음식과 같은 엘리바스의 충고
1) 달걀 흰자위와도 같은 엘리바스의 충고(6~7절)
욥은 이렇게 절체절명의 고통을 받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며 욥을 몰아붙이기만 했습니다.
욥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엘리바스의 이런 충고에
욥은 소금을 치지 않은 싱거운 음식이나
달걀 흰자위를 먹는 것 같은 메스꺼움을 느낄 정도로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2) 아파하는 자에게 왜 아파하냐고 하지 마십시오.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자에게 그깐 일로 절망을 느끼느냐고 핀잔을 주지 마십시오.
연약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침 소리에도 기절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주님의 백성다운 태도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가 나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받는 자일 수 있습니다.
내가 촌스럽다고 빈정거린 사람이,
혹은 별것 아닌 것으로 절망한다며 업신여긴 사람이
나보다 더 하나님께 존귀함을 받는 자일 수 있습니다.
● 묵상 : 내 판단, 내 지혜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십시오.
이 마음을 잃으면 나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 기도제목
1. 심신이 연약해져서 작은 일에도
쉽게 절망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2. 절대절망의 빠진 때에라도
주께서 나를 지키고 계심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3.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