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Ⅱ, 친구들에 대한 실망(욥기 6:14~30)
* 본문요약
욥은 낙심에 빠져있는 자신을 동정하지는 않고
잘못만을 들추어내려고만 하는 친구들을 가리켜
물이 말라버린 개울과 같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그들에게 절망한 자가 뜻 없이 절규하며 외치는 말의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는 일을 중단하라고 말하며,
이런 일은 고아를 제비 뽑고 친구를 팔아넘기는 일만큼이나 잘못된 일이라고 경고합니다.
찬 양 : 363장(새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406장(새 300) 내 맘이 낙심되며
* 본문해설
1.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들(14~20절)
14) 비록 피곤한(낙심한) 자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전능하신 이를 경외하는 마음을 저버렸을지라도
벗이라면 마땅히 그 고난 받는 친구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어늘
15) 그러나 내 형제들은(나의 친구라는 자들은) 성실치 아니함이(변덕스러움이)
넘쳐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또다시 흐르는 시냇물 같구나.
16) 얼음이 녹아 흐르면 흙탕물이 되어 검어지고, 그 물속에 눈이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17) 날이 따뜻해지면 물이 마르고,
더워지면 그곳에 물이 흘렀다는 그 자취마저 사라져 아주 없어지나니
18) 떼를 지어 가는 대상(隊商, caravan)들이
그들의 정해진 여행로를 벗어나서 물을 찾아다니다가 광야로 가서 죽고
19) 데마의 상인들도 물을 찾으려 했고
스바의 행인들도 개울을 찾으려고 사모하다가(애를 태우다가)
20)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설명 : 거기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말라버린 개울을 찾아서 이렇게 헤매고 다녔나”
싶은 생각에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 넘쳐흐르다가 마르고 말랐다가 또 다시 흐르는 시냇물(15절) :
계절에 따라 물이 넘치기도 하고 마르기도 하는 와디(wadi)를 가리킵니다.
산에 물이 녹으면 그 물에 개울이 넘치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산의 눈이 다 녹으면 곧 말라서
물이 흘렀다는 그 흔적조차 사라지는 사막의 개울을 ‘와디’라고 합니다.
- 대상들(18절) :
대상(隊商, caravan)은 사막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무리를 지어 먼 곳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상인을 말합니다.
18절은 이 대상들이 물을 찾아 정해진 여행로를 벗어나서 개울(와디)를 찾았으나
그곳에서도 물을 얻지 못해 결국 죽는 상황을 말한 것입니다.
- 데마의 상인들도~(19~20절) :
데마의 상인들이나 스바의 행인들도 물을 얻고자 와디를 찾았으나,
정작 그곳에 가보니 물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실망에 빠지고 마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2. 낙심한 자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친구들(21~27절)
21) 너희도 허망한 자라(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라, 너희가 이 개울과 무엇이 다른가?)
너희도 내 몰골을 보고서 두려워 떨고 있지 않은가?
22) 내가 언제 너희더러 무엇을 좀 달라고 말하던가?
내가 언제 너희의 재산을 떼어서라도 나를 좀 살려달라고 말하던가?
23) 내가 언제 원수의 손에서 나를 건져 달라고 하던가?
극악무도한 폭군의 손에서 돈을 주어서라도 나를 좀 빼내어달라고 말하던가?
24) 어디 내가 알아듣게 말을 좀 해보게.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말해보게.
그러면 내가 잠잠히 듣겠네.
25)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어찌 그리 힘이 있는지,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지).
그러나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책망은 무엇을 책망하는 것인가?
26) 너희는 남의 말의 꼬투리나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절망에 빠진 사람이 외치는 말은 그저 바람과 같은 것이거늘….
27) 너희는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 친구라도 팔아넘길 자들이로구나.
-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25절) : 마라츠
‘유력한’에 해당하는 ‘마라츠’는
‘힘 있는, 효과적인, 설득력 있는, 기분 좋은’의 뜻 외에
‘비탄에 젖은, 고역스러운’의 뜻도 있으므로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정직한 말은 어찌 그리 힘이 있는지’와
‘정직한 말은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지’의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합니다.
-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27절) :
절망에 빠진 자를 동정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의 말의 꼬투리를 잡아 공격만 일삼는 이들의 행동은
마치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
친구라도 팔아넘기는 일과 다름없는 죄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일을 중단하라(28~30절)
28) 그러니 이제 너희는 잠잠히 하고 내 얼굴을 바라보라.
내가 너희의 얼굴에 대고 거짓말이야 하겠는가?
29) 부탁하건데, 나를 억울하게 하는
이 고약하고 불의한 일을 하는 자가 되지 말게나(혹은, 행악자가 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일을 하지 않았으니 내 의를(나의 정직함을) 의심하지 말게.
30) 내가 혀를 놀려서 불의한 말을 한 적이 있던가?
내가 입을 벌려서 악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떠든 일이라도 있었나?
* 묵상 point
1. 사랑이 없는 경건은 가짜 경건
1) 벗이라면 마땅히 그 고난 받는 친구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 아닌가(14절)
욥은 자기가 혹시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는 불경한 언어를 하였을지라도
벗이라면 마땅히 고난받는 친구 욥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지금 엄청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신앙적인 충고보다
그 고통에 동정하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2) 엘리바스를 물이 말라버린 허망한 시냇물에 비유하는 욥(14~20절)
욥은 자신의 친구들을 사막의 시냇물 와디에 비유합니다.
와디는 봄에 눈이 녹으면 개울이 넘치도록 물이 흐르다가도
날씨가 더워져서 눈이 다 녹으면 물이 있었던 흔적조차 사라지는 사막의 개울입니다.
사막을 지나던 자들이 혹시 개울에 가면 물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찾았다가
바싹 말라서 물이 흘렀던 흔적조차 사라진 것을 보고 실망하는 와디처럼,
욥의 친구들도 낙심한 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동정은 하지 않고 욥의 잘못만 들추어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나는 주변의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들이 되고 있지 않았는지
우리들 자신을 살펴봅시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의 아픔은 무엇인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닌지,
오래 쌓인 아픔과 상처로 하루하루 견디기도 힘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는 않고
그들의 흠집만 찾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어떤 습관이 눈에 거슬린다거나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는 둥 입방아만 찧고 있지는 않았는지.
물이 없는 개울을 개울이라 말할 수 없듯, 사랑이 없는 경건은 가짜 경건입니다.
● 묵상 :
돕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아픔을 주는 말은 하지 않는 자가 되기로 결심을 합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성도들끼리 나눈 말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납니다.
2. 도움을 청하는 자들을 보고 겁을 내는 사람들
1) 너희도 내 몰골을 보고서 두려워 떨고 있지 않은가(21~27절)
욥의 친구들은 욥과 대화는 하고 있으나 욥의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있습니다.
참혹한 욥의 모습을 보고 겁을 내는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을 보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내가 언제 너희의 재산을 떼어서라도 나를 좀 살려달라고 말하던가?
내가 언제 원수의 손에서 나를 건져 달라고 하던가?
극악무도한 폭군의 손에서 돈을 주어서라도 나를 좀 빼내어달라고 말하던가?”
욥은 그저 자기가 당하는 고통에 동정하는 말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그 고통에 대해여 친구들이 해 줄 것은
고작해야 “얼마나 힘드냐”하는 동정의 말뿐입니다.
그것이 허망한 말이라 할지라도 욥은 그저 그 말이 듣고 싶을 뿐입니다.
2) 말의 꼬투리나 잡는 자들 ➠ 고아라도 노예로 넘기고 친구라도 팔아넘길 자들(27절)
그런데 엘리바스는 너무나도 큰 고통에 하나님께 울부짖은 말을 꼬투리 잡아
욥을 매일 불평이나 일삼는 악한 건달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욥은 친구들을 향하여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
친구라도 팔아넘길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이 이런 정도로 자기를 더욱 아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도 이런 때가 있지 않은지 우리들 자신을 살펴봅시다.
도움을 받아야 할 자들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으면서도
임대 아파트 사람들이 자기들 구역에 오지 못하도록 담을 쌓거나,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별도로 사용하게 한다는 소식을 가끔 듣습니다.
자신의 마을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데모를 하는 것을 본 일도 있습니다.
● 묵상 :
이렇게 연약한 자들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담을 쌓고 아예 그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
1) 엘리바스의 헛된 경건(14절)
욥은 친구들에게 “비록 낙심한 자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전능하신 이를 경외하는 마음을 저버렸을지라도, 벗이라면 마땅히
그 고난 받는 친구에게 동정을 베풀어야 할 것이 아닌가?”하고 말합니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건은 율법의 규칙보다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죽어가는 사람에게
왜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외치는 것이 경건이 아니라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살리는 것이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규칙은 그가 회복된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고통 중에 절규하며 외치는 말들이나,
절망에 빠진 사람이 삶에 지쳐서 내뱉는 의미 없는 말들을 듣고
그 말꼬리를 잡아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2) 물 없는 시냇물 ➠ 그 능력을 상실한 헛된 경건, 바리새인의 경건(15~20절)
욥은 이런 그의 친구들을 가리켜 물 없는 개울처럼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련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없고 오직 교리만 강조는 율법주의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저 그들이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것만 주목하며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를 반복하여 말씀하시면서
가장 무서운 진노를 보이셨습니다.
● 묵상 :
교회가 이렇게 교리만 내세우며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면,
그 교회가 오히려 하나님께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교리를 내세우기보다 먼저 낙심한 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갖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기도제목
1. 낙심한 자들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2. 연약한 자들과 스스로 담을 쌓는
완고한 마음과 태도를 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