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Ⅳ : 욥의 탄식의 기도(욥기 7:11~21)
* 본문요약
욥은 영혼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절규하며 울부짖습니다.
밤에 잠이 들면 좀 고통이 나아질까 생각했으나
꿈속에서조차 하나님께서 두렵게 하셔서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으니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왜 이렇게 크게 여기시는지,
자신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손해를 입혔다고 이러시는지
알 수 없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과녁으로 삼으셔서 욥 자신이 자기에게 짐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이제 곧 그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욥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실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찬 양 : 342장(새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341장(새 312)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 본문해설
1. 차라리 죽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함(11~16절)
11) 그러니 내가 어찌 입을 다물고만 있겠나이까?
내 마음이 아프고,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불평)하리이다(주께 울부짖지 않을 수 없나이다).
12) 내가 바다입니이까, 내가 용이니이까(혹은, 바다의 괴물입니까)?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감시하시나이까)?
13) 내가 말하기를 ‘잠자리에라도 들면 좀 나아질까,
깊은 잠이라도 들면 고통이 좀 덜해질까’하였으나
14) 주께서는 꿈속에서도 나를 놀라게 하시고,
이상(환상)으로도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혀 죽기를 원하오니
뼈를 깎는 이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나이다.
16) 이제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사는 것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어차피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나를 놓으소서(나를 내버려두옵소서). 내 인생은 헛것이니이다.
- 바다, 용, 바다의 괴물(12절) :
욥이 가나안 신화의 내용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바다’는 바다의 신 ‘얌(Yam)’이고,
‘용(혹은, 바다의 괴물)’은 혼돈의 괴물 ‘탄닌(Tannin)’을 말합니다.
가나안의 우가릿에는 바알이 이 두 괴물을 정복하여 다스렸다는 신화가 있는데,
욥이 이 신화를 이용하여 바알이 이 두 괴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듯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복하고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나를 놓으소서(16절) :
‘나를 놓으소서’는 욥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욥은 사람이 살고 죽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심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다면 욥의 인생은 그대로 끝이 날 것이니,
차라리 자신을 향한 모든 관심을 끊어달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극심한 고통에 하나님을 향한 극단의 절규를 하는 모습입니다.
2. 욥을 과녁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향한 탄식(17~21절)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대단하게)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두시나이까(그를 주목하시나이까)?
18) 어찌하여 아침마다 권징하시고(찾아오시고),
분초마다(잠시도 쉬지 않고) 시험하시나이까?
19) 주께서 언제까지 내게서 눈을 떼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 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시여,
혹시 내가 주께 범죄하였다고 한들 그것이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주님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나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죽어 저 흙속에 누우면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이 땅에)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18절) :
통증이 단 1초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 말입니다.
-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19절) :
이것은 18절의 ‘분초마다’보다도 더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아주 찰나의 시간조차도 쉬지 않고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 내가 이제 죽어 저 흙 속에 누우면~(21절) :
때가 되면 자신이 죽어 땅속에 묻힐 터이니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극한 절망 속에 빠진 욥이 하나님께 절규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 묵상 point
1. 꿈에서까지 고통을 당하는 욥
1) 날마다 악몽에 시달려 잠자는 중에도 고통당하는 욥(13~14절)
빚을 얻은 사람이 빚쟁이를 만나러 갈 때 버스 안에서 잠이 오는 것은
졸려서 자는 잠이 아니라고 합니다.
빚쟁이에게 시달릴 것을 걱정하는 내 몸이 잠을 통해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잠이 들게 하는 일종의 ‘자기 보호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내 몸이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잠을 통해서
잠시라도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잠을 통한 자기 보호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깊은 잠이 들어도 밤마다 아주 무서운 악몽을 꾸기 때문입니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고 눈을 감으면
아주 두려운 환상에 놀라 다시 눈을 뜨곤 합니다.
2) 우리도 가끔 악몽을 꾸고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욥기의 이 고백을 읽는 자들은 욥이 어떤 악몽을 꾸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시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욥에게 내려진 재앙이 욥의 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욥기 1장에서 이미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에서는 쉬지 않고 흉한 환청이 들리고
눈만 감으면 흉한 환상이 들리며
날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욥의 입장에서는 두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욥기는 이런 정도로 환상과 환청과 악몽에 시달리더라도
그것이 곧 하나님의 저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 그러므로 악몽도 꾸고 두려운 환상을 보는 일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는 꿈이나 환상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 묵상 :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특별한 꿈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매사에 꿈으로 오늘 하루의 일을 점치려 하는 행위는 우상숭배만큼이나 나쁜 버릇입니다.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신 13:3)
2. 내가 바다입니까, 내가 용입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대단하게 여기시고...
1) 내가 바다입니까, 내가 용이니이까(12절)
욥은 가나안의 우가릿 신화의 내용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욥을 부당하게 처우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불평합니다.
우가릿에는 바다에 ‘얌’이란 괴물과 ‘탄닌’이란 괴물이 있었는데,
이 두 괴물을 바알신이 정복하여 꼼짝 못하게 하였다는 신화가 있었습니다.
욥은 이 신화를 이용하여,
자신이 바다의 괴물 ‘얌’이나 ‘탄닌’이라도 되는 것이냐고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그래서 바알이 얌과 탄닌을 정복했다고 하듯,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복하여 날마다 괴로움을 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2)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대단하게) 여기시고(17절)
욥은 자신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목하실만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을 그렇게 아침마다 찾아오시고, 분초마다 자신을 감시하며 시험하실만한
그렇게 큰 인물이 못 된다고 기도합니다.
도대체 자신을 단련하여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이리 호되게 단련하시느냐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혹시 자신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 치더라도,
그 범죄로 하나님께 얼마나 손해가 된다고 이리 큰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냐고 따집니다.
3) 그러나 우리의 죄가 주께 무슨 손해가 되어
주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단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와 하늘의 세계까지 다스리시는 주께
우리가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우리가 멸망을 당하게 되니까
주께서 우리를 주목하시고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욥처럼 주께서 나를 주목하시고 내 인생에 개입하시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달라고 기도할 때도 있으나,
그 모든 일이 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혹시 욥처럼 고통과 시련 속에 있을지라도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악한 영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3. 아침마다 찾아오시고, 분초마다 단련하시는 하나님
1) 어찌하여 아침마다 권징하시고,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18~19절)
밤새 고통에 시달릴 때는 새벽이 오면 좀 나아지겠지 싶은 마음에
날이 새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도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욥은 이것을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아오신다고 표현했습니다.
단 1초도 쉴 틈이 없이 찾아오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그를 분초마다 단련하신다고 표현했습니다.
19절의 ‘침을 삼킬 동안’은 아주 짧은 시간으로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조차 쉬지 않고 고통이 찾아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욥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하는 말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이 절규는 욥이 극심한 재앙의 고통 중에 부르짖는 절규의 기도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고 고통을 주시기 위해 분초마다
우리를 주목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기 위해 단 1초도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이토록 세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우리를 살피시니
우리가 이 혼란된 세상 속에서도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주께서 나를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1) 내가 이제 죽어 저 흙 속에 누우면(21절)
욥은 자신의 현재의 병의 상태를 보니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침묵하시니 욥은 절규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이제 죽어 저 흙 속에 누우면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이 땅에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2) 자기의 고통을 가지고 장난감처럼 놀이를 하고 있다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욥(21절)
너무나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욥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그를 장난감으로 여기시고 놀이를 하고 있다고 절규합니다.
욥은 자기를 자기도 놀이를 하시니 재미있으시냐고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임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지고 놀이를 하시는 분이 아닌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같은 고통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이미 몇 달이나 계속되니
이런 절규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 역설적이게도 성경은 바로 이런 극심한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받는다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여 증거합니다.
엘리야 역시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기도한 후
지쳐서 잠이 들었을 때
천사가 와서 그의 머리를 만지며 떡과 물을 주었습니다(왕상 19:4~5).
모세 역시 끊임없이 불평하는 백성들로 인하여 지쳐서
차라리 죽게 해 주실 것을 간구했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 앞에서 모세의 권위를 친히 세워주셨고
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워주셨습니다(민 11:4~30).
● 묵상 :
그러므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더라도
주님 앞에서 절규를 할지언정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께 절규를 하는 것은 기도이지만,
절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면 영원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아픔을 겪더라도 주님과 함께 겪으십시오.
* 기도제목
1. 욥처럼 고통과 시련 속에 있을지라도
감사를 잃지 말게 하옵소서.
2. 고통 중에 주님 앞에 절규를 할지언정
절망 속에 빠지지는 말게 하옵소서.
3. 결국은 끝까지 이겨서
주님의 평강의 복을 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