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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큐티

엘리후의 첫 번째 연설Ⅰ : 엘리후가 나서게 된 이유(욥 32:1~2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9.07|조회수30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엘리후의 첫 번째 연설Ⅰ, 엘리후가 나서게 된 이유(욥기 32:1~22)

 

* 본문요약

 

    욥이 자신은 이런 재앙을 받을 만한 죄가 없다며 절규하는 독백을 모두 마치자

    욥의 친구들과 욥의 말을 모두 들은 엘리후가 말을 시작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고 말했다면서 욥에게 화를 내고,

    욥의 친구들에게도 변변히 답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욥이 죄인이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화를 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이들보다 나이가 적었으므로

    이제껏 연장자들의 말이 그치기를 참고 기다렸던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이가 들었다고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먼저 욥의 세 친구 중 한 사람도 욥의 말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자기 같으면 그들처럼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그동안 자기 나이가 적어서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마치 마개를 막아 놓은 포도주 통처럼 터지기 일보직전이라 말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이나 그의 친구 중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가감 없이 그대로 말하겠다고 말합니다.

 

찬 양 : 256장(새 515) 눈을 들어 하늘 보라

         277장(새 499)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 본문해설

 

1. 엘리후가 욥과 친구들에게 진노함(1~5절)

 

1) 욥이 이렇게 끝내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므로,

   욥이 세 친구가 더 이상 말하기를 그치니

2) 람 족속의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니,

   엘리후가 욥에게 화를 낸 것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요,

3) 또 욥의 세 친구에게도 화를 냈으니,

   그것은 그들이 욥의 말에 변변한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욥을 향하여 죄를 지었다며 정죄하려고만 했기 때문이라.

4) 엘리후는 그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그들이 말이 끝나기까지 참고 있다가

5) 세 사람이 더 이상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니라.

 

 

2. 엘리후가 이제야 말하게 된 이유(6~9절)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나이 어리고 당신들은 나보다 연로하시므로,

   내가 선뜻 나서서 나의 의견을 밝히기를 망설였습니다.

7)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이니 살아오신 세월만큼이나 지혜도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잠잠히 듣기만 하였습니다.

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곧 전능하신 이의 숨결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는 것이니

  (설명 :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이는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사람 안에 있는 전능하신 이의 숨결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는 것이니)

9) 대인이라고(어른이라고, 나이가 많다고 다 지혜로운 것이 아니고,

   연로하다고 다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연로하다고 다 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3. 욥의 세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엘리후(10~14절)

 

10) 그래서 나도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려고 하니 내 말을 잘 들어 주십시오.

11) 나는 세 분이 말씀하시는 동안 기다렸습니다.

     세 분이 지혜를(슬기를) 찾으며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12) 세 분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 보니

     세 분 중 한 분도 욥의 말을 변증하지도 못했고,

     그의 말에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했습니다.

13) 그러니 혹시라도

     ‘우리가 지혜를 찾았다. 욥을 이길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14) 욥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 것이 아니니

     나는 세 분과는 다른 방법으로 방식으로는 욥에게 말하겠습니다.”

 

- 우리가 지혜를 찾았다(13절) :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이

    한결같이 ‘보상 교리(인과응보 교리)’만을 반복했을 뿐이므로,

   “이제 우리가 지혜를 찾았다”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4. 엘리후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함(15~22절)

 

15) 그들이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자

    (엘리후가 욥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면서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군요.

16) 그들이 말없이 가만히 서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내가 더 이상은 기다리지 못하겠습니다.

17) 이제 나도 내 할 말을 하고, 내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8) 내 속에 할 말이 가득합니다. 내 속에 있는 영이 나를 압박합니다.

    (혹은, 내 심령이 나를 압박하여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19) 보십시오. 내 가슴은 배를 봉한 포도주 통 같고,

     곧 터질 것 같이 된 새 가죽 부대와 같습니다.

20) 내가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이제 내 입을 열어 속을 털어놓아야 하겠습니다.

21) 나는 이 논쟁에서 결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것입니다.

     또 누구에게 좋은 말을 듣기 위해서 아첨하는 말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혹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을 하겠습니다.)

22) 나는 본래 아첨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를 지으신 분이 즉시 나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 그들이 놀라서, 그들이 말없이(15,16절) :

    개역개정에서는 ‘당신들’이라고 말하여

    아직 엘리후가 욥의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만,

    실상은 엘리후가 욥의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한 후에,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려 욥을 바라보면서

   “이제 그들처럼 말하지 않겠다”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내 가슴은 배를 봉한 포도주통 같고(19절) :

    욥과 욥의 친구들이 자신보다 연장자들이므로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참고만 있다 보니까,

    마치 그의 가슴이 마개를 봉한 포도주 통 같다고 말합니다.

 

    마개를 ‘배를 봉한’이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포도주통의 마개가 배 부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에서는 포도주가 발효가 되고 있는데

    마개를 막아 놓았으니 터지기 직전의 생태라는 뜻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욥과 욥의 친구들의 잘못을 모두 질책하는 엘리후

 

 1) 엘리후의 등장(1~2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이름이 언급된 적이 없는 엘리후가 갑자기 등장합니다.

    아마도 그의 나이가 욥이나 욥의 친구들보다 훨씬 적어서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언급은 없었으나, 2절에서 엘리후를 소개할 때

    그가 어느 집안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자세하게 밝힘으로써

    엘리후의 등장이 흐름에서 꽤 중요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차갑고 냉철한 젊은 엘리트, 그러나 하나님께 철저히 무시당한 사람 엘리후

 

    엘리후는 욥을 포함하여 그동안 욥기에 등장한 모든 사람 중에

    고난에 대한 신앙적인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재앙을 당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일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의 이 말은 칭찬받을 만한 바르고 합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이런 바른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그 어떤 평가도 받지 못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는 욥을 향하여 하나님께 철저히 무시당한 자라는 독설을 퍼붓지만

    하나님께 무시를 당한 자는 욥이 아니라 엘리후였던 것입니다.

 

 3) 엘리후가 하나님께 무시당한 이유 : 긍휼이나 동정심이 전혀 없는 차가운 분석가였으므로

 

    엘리후가 하나님께 그렇게도 철저하게 그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 이유는

    그가 욥에게 손톱만큼도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욥을 하나님께 저항이나 하는 형편없는 자 취급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지혜나 자랑하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욥의 잘못을 호되게 몰아치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욥이 겪고 있는 재앙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과 엘리후, 이 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거절된 이유는

    그들의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재앙을 당한 욥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욥과 세 친구에 대한 엘리후의 평가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 이 점에서 욥기는 엘리후의 말을 중요하게 중요하게 여기고 무려 6장을 할애합니다.

 

    비록 엘리후가 긍휼이나 동정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서

    하나님께로부터 그의 존재 자체를 철저하게 무시당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분석하는 최고의 엘리트였으며

    욥과 그의 친구들에 대한 평가 역시 바르고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욥과 그 친구들의 기나긴 논쟁을 정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묵상 : 엘리후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하며 보아야 할 점

 

    엘리후는 첫 마디에서

    욥과 욥의 친구들이 모두 다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지적했습니다.

 

    우선 욥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말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욥의 친구들에게는 변변히 대답도 못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욥이 죄인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32~37장에서 욥과 욥의 친구들이 어떤 점에서 어떻게 잘못을 범했는지

    통렬하게 지적하는 엘리후의 연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의 지적을 통해 우리에게는 이런 잘못이 없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차갑고 냉철한 분석가 엘리후

 

 1) 그동안 엘리후는 가만히 들으며 기다렸습니다(4~6절)

 

    엘리후는 나이가 많을수록 지혜도 더 많다는 이스라엘의 속담을 생각하며,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서 어떤 지혜로운 말씀을 들으리라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세 친구들은 한결같이 욥이 재앙을 당한 것을 보니 죄인임에 틀림없다’는

    보상교리(인과응보교리)만을 반복했습니다.

 

 2)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참지 않고 말하겠다(10, 18~22절)

 

    그들의 말에 지겨워진 엘리후는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려니 자기 가슴이 마치 마개를 막아 놓은 포도주 통같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면서 이제는 말을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그동안 자신이 참아 왔던 말을 시작하겠다고 하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있는 그대로 하겠다고 말합니다.

 

    상대의 감정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때로 그가 한 말로 상대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옳다고 여긴 바를 그대로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3) 엘리트의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너무나도 당당한 엘리후

 

    엘리후는 어른들의 말이 끝나기까지 기다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사회적인 규범을 지킬 줄 아는 예의를 아는 젊은이입니다.

 

    거기에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물론

    고난에 대한 신앙적인 의미도 완벽할 정도로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유능한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진 자입니다.

 

    엘리후는 이런 젊고 패기 넘치는 엘리트가 가진 치명적인 잘못을 보여줍니다.

    자기가 가진 판단력과 지식을 너무나도 확신하여

    상대를 철저하게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묵상 : 사랑과 공의, 은혜와 분별의 균형

 

    사랑과 은혜가 넘치면 죄까지 포용할 실수를 범하게 되고,

    공의와 분별력만 강조하면 바리새인처럼 억압하고 죽이는 폭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말할 때는 ‘사랑과 공의’이 둘이 항상 함께합니다.

 

    엘리후는 공의와 분별력에는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자였습니다.

    그가 자신이 말하는 대로 정말 완벽하게 사는 자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가 하는 말에는 잘못을 지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가 없습니다.

    진단만 하고 치료는 하지 않는 의사와 같은 차가운 분석가일 뿐입니다.

 

    진단도 잘하고 치료도 잘하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 것처럼

    우리도 참과 거짓에 대한 분별도 잘하고

    사랑과 긍휼의 따뜻한 마음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오직 주님의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성령을 내 안에 모셔서 사랑과 공의의 균형을 이루는 자들이 됩시다.

 

 

3. 본문의 엘리후의 말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말들

 

 1)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13절)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이 욥이 재앙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욥이 죄를 범하여 재앙을 당했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그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씀인 것처럼 말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에게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다”하는 말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가령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공격하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말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인 것처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리로 포장하는 일 따위를 우리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됩니다.

 

묵상 :

 

    우리는 언제나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죄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 기도제목

 

1. 차갑고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할 줄 아는

   바른 분별력을 가진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그러나 그 공의의 분별력과 함께

   사랑과 긍휼을 가진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사랑과 공의, 은혜와 분별의 균형을 이룬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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