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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큐티

엘리후의 세 번째 연설 : 어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가(욥 35:1~16)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9.07|조회수39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엘리후의 세 번째 연설 : 어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가(욥기 35:1~16)

 

* 본문요약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롭다고 주장했다고 말합니다.

    욥이 자기가 의롭게 살았음에도 이런 재앙이 왔는데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엘리후는 사람이 선하든 악하든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오직 사람에게만 영향을 줄 뿐이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께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재앙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기만 할 뿐

    하나님 그분을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욥처럼 헛된 기도만 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찬 양 : 408장(새 302)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416장(새 294) 하나님은 외아들을

 

 

* 본문해설

 

1. 욥과 세 친구를 무시하는 엘리후(1~4절)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욥 어른이여, 당신은 계속 자신이 옳다고 하실 것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하는 주장을 계속 주장하실 것입니까?

3) 욥 어른은 ‘내가 죄를 짓는다고 하여 그것이 나에게 무엇이 유익이 되며,

   내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여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하고 말했었지요.

4) 이제 내가 욥 어른과 세 친구 분들께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 죄를 짓는다고 하여 그것이 나에게 무엇이 유익이 되며…(3절) :

    엘리후가 욥이 이렇게 말했다며 하는 말입니다.

    엘리후는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았음에도 이런 재앙이 왔다면,

    범죄하지 않고 의롭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욥이 불평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 뜻과 내 의지대로 살겠다고 하나님 앞에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제 내가 욥 어른과 세 친구 분들께 대답해드리겠습니다(4절) :

    엘리후는 욥이나 욥의 세 친구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형편없는 자들이라 인정하고,

    이제부터 자기가 하나님의 참 지혜의 말을 전하고 말할 테니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2. 사람의 행동은 사람에게만 영향을 줄 뿐(5~8절)

 

5)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궁창(구름)이 얼마나 높이 떠 있습니까?

6) 욥, 당신이 죄를 지었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가며,

   당신의 죄가 크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7) 또 당신이 의로운 일을 하였다고 한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되며,

   하나님이 당신의 손에서 얻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8) 당신의 악은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나 해를 끼치고,

   당신이 의로운 일을 했다고 해도 사람에게나 유익을 줄 뿐입니다.

 

-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구름이 얼마나 높이 떠 있습니까?(5절) :

    하나님은 저 높은 구름보다 더 높이 계신 초월적인 분이시므로,

    사람이 선하든 악하든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하든 악하든 그것은 오직 사람에게만 영향을 줄 뿐,

    높이 계신 하나님은 그런 것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악인에게 무관심한 하나님(9~13절)

 

9) 사람들은 학대가 심해지면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 눌려서 부르짖습니다.

10) 그러나 (이렇게 자기가 어려운 때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밤중에 (고난의 때에) 노래를 부르게 하시는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11) ‘땅의 짐승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며,

     공중의 새들보다 우리를 더 지혜롭게 하시는 분이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12) 그들이 도와달라고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것은,

     그들이 교만하고 악하기 때문입니다.

13) 하나님은 사람들의 헛된 간구를 듣지 않으시고,

     전능하신 이가 돌아보지 않으십니다.

 

-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10~11절) :

    엘리후는 자신의 문제에는 간절하게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은 많은데,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자들은 참으로 적다는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 역시 그런 범주의 사람이라 여기고,

    그렇게 재앙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만 하고

    기어이 하나님은 찾지 않을 작정이냐며 욥을 공격합니다.

 

 

4. 욥을 향한 하나님의 침묵(14~16절)

 

14) 하물며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모든 사정이 그에게 알려졌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다’하고 말하는 당신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설명 : 욥과 같이 하나님은 찾지 않고 자기 기도만 하는 헛된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냐고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15)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도 않으시며,

     죄를 짓는다 해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6) 당신은 정말 헛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처럼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 묵상 point

 

1.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이는 어디에 계십니까?

 

 1) 하나님을 찾는 이가 없음을 한탄하는 엘리후(10절)

 

    엘리후가 본문 10절에서 말하고 있는 이 구절은

    가장 감동적인 성경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엘리후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밤중에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는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밤중은

    지금 욥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극심한 고통의 때를 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우리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찾는 이가 없음을 한탄하는 엘리후에 말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2) 고통 중에도 노래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

 

    엘리후의 말대로 절망과 고통의 때인 밤중에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니

    우리가 소망 중에 노래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묵상 :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밤중에도 노래하게 하십니다.

 

 

2. 그러나 엘리후는 욥을 판단하는데 잘못을 범합니다.

 

 1) 패기 있는 젊은 지식인 엘리후 : 그는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엘리후의 이 말을 가장 감동적인 성경구절 중의 하나로 꼽을 만큼

    엘리후는 말씀의 지혜를 간직한 사람이요, 패기 있는 젊은 지식인입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와는 다르게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후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데에는 열심히 하면서,

    정작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찾지 않는 것에

    큰 실망을 느낀 사람입니다.

 

    엘리후의 시대적 판단은 정확했고,

    그의 안타까움 역시 신앙인으로서 바른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칭찬받을만한 시대적 고민을 가진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2) 그러나 그런 그의 안타까움을 욥에게 적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엘리후는 욥 역시

    그가 실망한 그 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은 자로 보았습니다.

 

    욥이 극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절규한 것을 보고

    욥 역시 자기 문제를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 그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헛된 기도자로 본 것입니다.

 

    재앙을 만나기 이전의 욥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엘리후는

    고통스러워하는 욥의 신음 소리만 듣고

    욥의 전반적인 인격을 판단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묵상 :

 

    욥기가 계속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말 몇 마디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맙시다.

    육체적 폭력보다 언어폭력이 더 무섭습니다.

 

 

3. 좋은 구절로 포장된 신의 없는 말들(말만 그럴듯한 사랑 없는 지혜)

 

1)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 :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고

 

    이러한 엘리후의 실수는 우리들 역시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입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여

    좋은 성경구절 몇 마디 던져주고 기도하면 된다고 말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나오는 식의 심방이 그렇습니다.

 

    또 재앙을 만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하지 않으니까 저런 재앙을 만났다’는 따위의

    뒷담화들을 하는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2)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는 비록 마음으로나마 그와 함께 아파하는 것이

    좋은 성경구절 몇 마디 던져주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아픔 때문에 나도 슬프다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그의 신음소리를 그 말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괴로워서 내뱉은 신음소리를 가지고 그의 인격 전반을 판단하는

    욥의 친구들이나 엘리후와 같은 실수를 우리는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아픔의 소리, 신음소리는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그저 내뱉는 소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욥처럼 1초도 쉬지 않고 그를 공격하는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은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미래의 소망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 아픔과 시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아픔 속에서 외치는 신음소리나 절규는 논리적일 수 없습니다.

    내뱉는 소리요, 절규의 외침입니다.

 

묵상 :

 

    우리도 고통과 시련이 현실인 사람들 앞에

    왜 믿음을 바르게 갖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공격했던 적이 없었는지

    각자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그동안 우리는 비난은 쉽게 하면서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적게 한 적은 없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4. 본문의 엘리후의 말 속에 다른 실수들

 

    10절의 말씀은 참으로 감동적인 성경구절 중의 하나였습니다만,

    본문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말을 과격하게 하다가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1)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5~8)는 것에 대하여

 

    ➀ 사람이 죄를 지은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되며

       사람이 의로운 행동을 한들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되는가(6~7절)

 

       엘리후는 욥이 자기가 범죄하지 않고 의롭게 살려 애를 썼는데도

       이런 재앙이 왔다며 하나님께 원망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욥이 의롭게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고,

       욥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엘리후의 이 말은 사람이 아무리 악해도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위협할 수 없고,

       사람이 아무리 선해도

       하나님께 실제적인 도움이 될 만큼 선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엘리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 말을 했습니다.

 

    ➁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는 상관없는 독립적인 영역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말하던 엘리후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이 그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사람에게만 영향을 줄 뿐이라고 하여,

       하나님과 사람은 완전히 독립된 다른 영역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다릅니다.

       자녀가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프듯,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더 아파하십니다.

 

       자녀가 잘되면 부모가 기뻐하듯,

       우리가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면 주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쁘고 즐거워하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➂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시며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완전히 독립된 개별 영역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시기도 하시지만 바로 우리 옆에도 계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까지 들어와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아버지”하고 부르면

       주께서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선이나 악은 오직 인간에게만 영향을 줄 뿐이라’(5~8절)라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원칙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으나,

    그 복음을 사람을 통해 전달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하고 착한 일을 했을 때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도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구원사의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후가 인간의 선이나 악은 오직 인간에게만 영향을 줄 뿐이라는 것은

    그가 욥을 공격하다가 흥분하여 성경에 없는 말까지 한 것으로 잘못된 말입니다.

 

묵상 :

 

    혹시 우리도 엘리후처럼 상대방과 대화하다 흥분하여

    성경에 없는 말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며 말하는 경우가 없었는지

    우리들 자신을 돌아봅시다.

 

 

* 기도제목

 

1. 말만 그럴듯한 사랑 없는 지혜를 가진

   엘리후 같은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대화하다 흥분하여 성경에 없는 말까지 지어내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상대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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