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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큐티

엘리후의 마지막 연설Ⅰ : 고난의 유익(욥 36:1~16)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9.08|조회수35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엘리후의 마지막 연설Ⅰ, 고난의 유익(욥기 36:1~16)

 

* 본문요약

 

    엘리후는 자신이 불원천리 먼 곳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웠으므로,

    자신이 하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악인을 벌하시고, 고난받는 자들의 권리를 세워주신다고 말합니다.

 

    의인일지라도 그들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면

    그들에게 고통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을 열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고통의 자리에서 그 교훈을 받아들이면

    환난에서 이끌어 내어 평안한 곳으로 옮기시지만,

    그러나 고통의 자리에서조차 끝까지 거부하면

    한창 때에 단명하여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찬 양 : 405장(새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63장(새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본문해설

 

1. 엘리후가 욥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교훈하겠다고 말함(1~4절)

 

1) 엘리후가 또다시 말을 이르되

2) “조금만 더 참고 들어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혹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3) 내가 아주 먼 곳을 찾아다니며 얻은 지혜를 다 짜내서라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의를 돌려 드려야 하겠습니다.

  (혹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말해야 하겠습니다.)

4) 나는 온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므로,

   내가 하는 이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2~3절) :

    엘리후는 아주 먼 곳을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지혜를 다 배웠다고 말하면서,

    이제부터 욥과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2. 의인을 영광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5~7절)

 

5)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그 누구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또 지혜가 무궁하시므로

6) 악한 사람은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받는 자들의 공의를 베풀어 주십니다(고난받는 자들의 권리를 세워 주십니다).

7) 그의 눈은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왕과 함께 앉혀서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십니다.

 

 

3. 고통의 유익 : 환난과 고통으로 가르치시는 하나님(8~16절)

 

8) 그러나 만일 그들(의인들)이 누설(사슬)에 매여 있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하나님은 그들이 한 일을 일깨워주셔서

   그들이 저질러 온 교만한 행위들을 알게 하십니다.

10) 하나님이 또한 그들의 귀를 열어서 교훈을(경고를) 듣게 하시고,

     그들에게 죄에서 돌아서게 하십니다.

11)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섬기면,

     그들은 형통한 날을 보내며 평생을 즐겁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12) 그러나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칼에 망하며,

     그들이 왜 죽었는지 모르는 채 지식 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나 마음이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마음속에 분노를 쌓아 놓고는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와주시기를 간구하지 않습니다(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14) 그들은 한창 젊은 나이에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男娼)들처럼 끊어질 것입니다.

15) 하나님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학대당하고 고난받을 즈음에 그들의 귀를 열어 하나님의 경고를 듣게 하십니다.

16)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이 고통을 통한 하나님의 훈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재앙과 고통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환난에서 이끌어 내셔서 넉넉하고 평안한 곳으로 옮겨주실 것이고,

     당신의 식탁에 기름진 것을 풍성하게 차려주실 것입니다.

 

- 누설에 매여 있거나(8절) : 지킴

    ‘누설’에 해당하는 ‘지킴’은 ‘족쇄, 쇠고랑’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포로나 죄인들을 속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바로 그다음 구절인 ‘환난의 줄’과 함께 고난과 역경의 의미로 사용되어

    의인들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지식 없이 죽게 될 것이라(12절) :

    지식 없이 죽게 된다는 것은

    자기들이 당한 재앙에 담긴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앙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마지막 구원의 손길인데,

    이것을 거절하여 재앙에 담긴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죽는 것을

    엘리후는 가장 끔찍한 재앙으로 여기고,

    욥에게 이런 재앙을 당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 그 생명이 남창(男娼)들처럼…(14절) :

    여기에서 말하는 남창은 고대 가나안 종교에 있었던 신전의 남자 창기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무수한 성행위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일찍 죽었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된 교훈을 알려주셨음에도

    그 교훈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면

    이들처럼 한창 때에 일찍 단명하게 죽게 될 것이라고 욥에게 경고합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을 환난에서 이끌어 내셔서…(16절) :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하여 사람에게 복된 길을 가르치신다고 말한 엘리후는,

    욥에게 임한 이 재앙도 하나님께서 욥을 교훈하고 훈련시키시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욥이 이 재앙에 담긴 하나님의 교훈을 잘 받아들이면

    욥을 그 환난에서 이끌어 내어

    넉넉하고 평안한 곳으로 인도하시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다음 절인 17절에서 욥이 이 재앙에 담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욥은 재앙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 묵상 point

 

1. 고난의 유익

 

  • 엘리후는 욥에게 고난이 주는 유익에 대해 설명합니다.

 

    엘리후의 이 말은 욥의 세 친구들의 말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감동적인 말입니다.

 

    엘리후가 비록 욥의 말 중에 일부를 과장하며

    욥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엘리후의 존재를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보는 이유는

    고난에 대한 엘리후의 말 때문입니다.

 

 •• 엘리후는 때때로 의인에게도 고난이 찾아온다고 말합니다(7~11절).

 

    일단 엘리후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에게는 벌을 주시고 의인에게는 복을 내려 주신다는 일반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의인에게도 고난이 오는 것은,

    의인도 때로 교만에 빠지거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고난을 통해서 자신이 말씀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엘리후가 말한 고난의 유익을 정리한 것입니다.

 

 1) 훈련으로서의 고난(8~9절)

 

    욥의 세 친구들은 고난을 무조건 죄로 인한 형벌이라고만 말했는데,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지만,

    그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자리에까지

    그 말씀이 자리 잡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때때로 당하게 되는 고난의 자리에서

    우리를 훈련 시키시는 하나님과 만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갈 때 사막에서 무려 40년이나 머물게 하신 것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 자신의 영적 현실을 깨닫게 하는 고난(9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의인이라 하더라도

    때때로 게으름과 나태함, 교만의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죄는 살인이나 간음과 같이 명확하게 보이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죄에 빠졌는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망의 자리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난을 내리셔서

    자신의 신앙이 매우 건강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신앙의 길을 다시 한번 다잡는 기회를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 말씀을 듣는 마음을 열게 하는 고난(10절)

 

    게으름과 나태함과 교만이 위험한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전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섬기는 일들이 너무 좋았는데

    어느 틈엔가 이런 일들이 싫어지고,

    그동안 멀리했던 세상일들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난을 내리셔서

    말씀에 닫혀진 마음이 다시 열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고,

    고난을 통해 기도와 찬양의 자리가 다시 회복이 되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자리가 다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평강의 자리로 이끄는 고난(11절)

 

    그러므로 엘리후는 고난이란 하나님과 다시 친밀한 관계로 회복되는 길이요,

    고난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평강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고난에 대한 엘리후의 이 말은 욥의 세 친구들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성경에서 증거하는 고난의 유익을 모두 정리한 것과 같이

    대단히 훌륭하고 감동적인 글입니다.

 

묵상 : 고난은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장

 

    엘리후의 말처럼 고난은

    우리를 더욱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장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난이 올 때 기뻐 뛰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주님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2. 재앙에 담긴 교훈을 받은 자의 복

 

 1) 고난은 말씀을 듣는 마음을 열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10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난과 고통은

    말씀을 듣는 마음을 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에 감추어진 가르침과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환난에서 이끌어내셔서 넉넉한 곳으로 옮겨주실 것이고,

    그들의 식탁에 기름진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2) 이런 의미에서 재앙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마지막 구원의 손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재앙을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판이라고 공격하였으나,

    엘리후는 재앙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라 말합니다.

 

    엘리후의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난을 당했을 때 기뻐 뛰라고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하나님의 보내시는 구원의 손길이 되려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재앙에 담긴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3. 재앙에 담긴 교훈을 배우지 못한 자에게 내리시는 심판

 

 1) 재앙을 당한 욥의 태도를 보고 욥을 악인으로 몰아붙이는 엘리후(13~15절)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겪는 끔찍한 재앙에 주목했습니다.

    욥이 재앙을 당한 그 모습만 보고 욥을 향하여 죄인 중의 괴수라며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재앙을 당한 욥의 모습이 아니라

    재앙을 당한 상태에서의 욥의 태도에 주목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인들은 재앙을 당했을 때 그 재앙에 담긴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는데,

    악인들은 자기가 당하는 재앙에 대하여 분노하고 그 재앙에 담긴 교훈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볼 때 욥이 바로 그런 악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고통의 자리에서도 끝내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남창들처럼(14절)

 

    재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렇게 끝까지 고통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그 고통에 감추어진 가르침과 교훈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재앙을 내리셨는지 알지 못하고

    그 재앙에 담긴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입니다.

 

    엘리후가 생각하기에 이런 죽음이 가장 끔찍한 죽음인데

    욥이 그런 끔찍한 죽음의 길로 걷고 있다고 엘리후는 욥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욥을 공격하면서 젊은 나이에 일찍 죽는 남창(男娼)에 비유합니다.

    남창(男娼)들이 쾌락에 빠져 살다가 기력을 너무 소모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욥이 재앙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으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묵상 :

 

  ➀ 엘리후의 지적에서 배울 점

 

      비록 엘리후가 욥의 말 중에서 일부를 과장되게 해석하여 공격하고 있지만

      시련과 고통에 대한 그의 통찰은 감탄할 정도로 말씀에 합당합니다.

 

      특히 평상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잘 들어오지 못하니

      환난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라는 엘리후의 지적은

      우리도 귀담아들어야 할 성경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평안할 때 주님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부득이하게 재앙을 내리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할 때 주님을 더욱 찾으십시오.

      이것이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길입니다.

 

  ➁ 그러나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진 엘리후의 잘못에 빠지지 맙시다.

 

      그러나 아무리 엘리후의 말이 귀담아들어야 할 좋은 교훈을 담고 있더라도

      눈에 보이는 몇 가지만으로 욥을 남창(男娼)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엘리후는 욥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남을 함부로 평가하다가는

      자칫 본인 자신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자가 될 것임을 명심합시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로 남을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엘리후처럼 내 눈으로 보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합당하고 정당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주께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고난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인도하심임을 믿어서

   환난 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건강한 믿음의 성도가 되게 해 주옵소서.

 

2. 평안할 때 더욱 주님을 찾게 하옵소서.

 

3.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의 독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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