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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큐티

산헤드린 공회에 심문을 받는 베드로와 요한(행 4:13~2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10.12|조회수73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산헤드린 공회에 심문을 받는 베드로와 요한(사도행전 4:13~22

 

* 본문요약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율법을 배운 일이 없는 무식한 사람인 줄 알았다가

    자기들과의 대화에서 막힘없이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랍니다.

 

    게다가 병이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있으니 달리 처벌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게 되자,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며 엄히 협박합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지 판단하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찬 양 : 359장(새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383장(새 336) 환난과 핍박 중에도

 

 

* 본문해설

 

1. 공회의 결정(13~18절)

 

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담대하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배운 것이 없는) 범인(凡人,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크게 놀라며), 또 전에 예수님과 늘 함께 있던 사람인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힐난할(비난할, 트집을 잡을만한) 말이 없는지라.

15) 그래서 그들은 두 사도에게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또한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다만, 이 일이 백성들 사이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두 사도를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앞으로는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 보잘것없는 사람, 범인(凡人)(13절) :

    ‘범인(凡人)’은 율법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이나,

    말씀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비전문가)를 의미합니다.

 

- 담대하게(13절) : 파르레시안

    ‘담대하게’로 번역된 ‘파르레시안’은

    ‘조금도 주저함이나 막임 없이 저돌적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무식하게 마구잡이로 되는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논리정연하고 설득력 있게 확신에 차서 하는 말입니다.

 

- 공회(15절) :

    산헤드린 공회를 의미합니다.

    70명의 회원과 의장인 대제사장까지 합하여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로마 정부로부터 종교 문제에 대한 재판권을 받았습니다. 사형은 금지되어 있으나

    로마 정부가 종교문제에 관한 것에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으므로

    산헤드린은 공공연하게 사형을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피고인으로 서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 말하지도 말고(18절) : 메프쌩게스싸이

    ‘말하지도 말고’에 해당하는 ‘메프쌩게스싸이’는

    ‘소음을 내다, 소리를 내다’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하는 설교를

    하나의 소리나 소음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소음으로만 들렸습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19~22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그들을 어떻게 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만 하고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라.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사람은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었더라.

 

(산헤드린 공의회 )

 

* 묵상 point

 

1. 당당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베드로와 요한

 

 1) 산헤드린 앞에서 심문을 받는 베드로와 요한(13~15절)

 

    산헤드린 공회는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재판소입니다.

    비록 로마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으나

    로마가 산헤드린에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자치권을 주어

    국회와 대법원 역할을 함께 하는 유대 사회의 최고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지식으로나, 물질로나, 권세로나

    유대 사회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로마가 이들에게 사형의 권한은 주지 않았으나,

    종교문제에 대하여는 가급적 간섭을 안 했으므로 공공연하게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피고인으로 서는 것을

    기절할 만큼 두려워하였습니다.

 

 2) 담대한 두 사도를 보고 크게 당황하는 최고 권력자 산헤드린(13절)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의 전 회원이 모두 참석한 재판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이란 전혀 배운 적도 없는 갈릴리의 무식한 사람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 앞에서 전혀 막힘이 없이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글자도 모르는 일자 무식쟁이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박사 정도 되는 세계 최고의 학자들이 모인 공식 회의 앞에서

    그 학자들이 당황할 정도로 유창하게 연설을 한 것과 같습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 사두개인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행했다고 하는 것보다 자기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전혀 막힘이 없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에 더 놀라고 당황합니다.

 

    배우지 않은 자가 배운 자보다 더 유식하게 말하는 것,

    이것은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2. 이 사람들을 어찌할꼬 : 같은 질문의 다른 의미(2:37, 4:16)

 

    여느 때 같으면 산헤드린의 공식적인 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베드로와 요한을

    소위 괘씸죄를 물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처벌하였을 텐데

    백성들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합니다.

 

    이때 산헤드린 공회에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묻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찌할꼬.”

 

    우리는 이와 비슷한 질문을 2:37에서 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백성들이 마음에 찔려 이제 자기들은 어찌해야 하는지를 물으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물었습니다.

 

    이 두 질문은 같은 질문이지만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1) 원하고 바라는 것이 다르다

 

    2:37에서는 “우리가 어찌할꼬”인데,

    본문의 산헤드린은 “저 사람들을 어찌할꼬”입니다.

 

    2장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으나,

    4장의 산헤드린은 저 사람들을 어떻게 협박하여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일을 못 하게 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입니다.

 

    2장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알기를 원하였으나,

    4장의 산헤드린은 하나님의 일을 훼방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2)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다르다

 

    2장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는 데 동조하였으니

    그 심판을 어떻게 감당할지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4장의 산헤드린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기들이 보아도 이 병자를 낫게 한 일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자기들의 명예가 흔들릴지에 대한 것만 염려할 뿐입니다.

 

 3) 그 열매와 결과가 다르다 : 구원과 멸망

 

    하나님께 용서받을 길을 구한 2장의 백성들은

    베드로의 말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4장의 산헤드린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일이 있은 지 채 30년도 못 되어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같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3. 기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산헤드린

 

 1) 당황한 산헤드린(15~17절)

 

    산헤드린은 베드로와 요한의 기적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갈릴리 사람이고 율법이란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무식한 자들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 무려 71명이나 모인 최고 재판 기관에서

    전혀 막힘이 없이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는 것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랐습니다.

 

    이건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볼 때보다도

    더 크게 놀랐습니다.

 

 2) 그 기적을 보고도 끝내 믿음을 갖지 못한 이유 : 돈과 권세

 

    그러나 그렇게 놀랐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데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에는 그들이 가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요즘 돈으로 환산하여

    1년에 적어도 수십조 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대 사회의 최고가는 귀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얻은 자리인데, 이 자리를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그 자리를 버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3) 믿음을 갖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진 그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고,

    그 복음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믿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으나,

    그들은 구약 성경도 알고,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요 메시야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과 늘 함께 있던 자라는 것도 알았으므로,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가졌습니다.

 

묵상 :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으므로 말씀에 순종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나는 어떤지 각자 자신을 살펴봅시다.

 

 

4. 산헤드린의 박해가 도리어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됨

 

 1) 하나님 앞에서 누구 말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라(19~20절)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하다가 두 사도를 불러놓고는

    앞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하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도록 협박만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지 판단하라”하고 강하게 대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길뿐입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2) 핍박과 박해가 도리어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됨(21절)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도 때로 핍박이나 고난이 있습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핍박이나 고난을 받더라도

    주님의 말씀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복음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베드로와 요한처럼 우리도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됩시다.

 

 3) 보는 이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더라(21절)

 

    베드로와 요한이 그 두려운 산헤드린의 재판정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고

    보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오직 유대 사회의 힘과 권세를 가진 산헤드린 공회원들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산헤드린은 예루살렘 성전의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자들이지만,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묵상 :

 

  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의 중요한 직분자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옥에 교회의 직분자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내가 지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느냐’와

      ‘내가 드리는 예배를 주께서 받으시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➁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면 분쟁과 다툼에 휘말리게 됩니다.

 

      나와 내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 기도제목

 

1.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산헤드린 같은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베드로와 요한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4. 베드로와 요한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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