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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길에 꽃을 심었는가/김년균

작성자미짱|작성시간26.06.20|조회수22 목록 댓글 0

누가 이 길에 꽃을 심었는가/김년균
 
애초엔 어디든 길이 없었다
이 길도 산과 밭 사이를 경계하는 두렁이었다
기다리는 새는 없고 모기떼 파리떼 득실대고
낯선 짐승들 겁 없이 날뛰며 소란을 피웠다
허리 굽은 노인이 지팡이 집고 간혹 지나칠 뿐
고요한 이 길에 세월이 가자 변화를 시작했다
오가는 사람이 차츰 늘고 저 깊은 산을 올려다보며
배낭 맨 사람조차 나타나자 두렁은 소리없이 넓어지고
마침내 어엿한 길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을 기다렸다
길가로 억센 풀들이 도도히 활개쳤다
 
유월 어느날, 장마가 천둥 치며 기승부릴 때,
마음이 따뜻하고 부지런한 이웃집 아저씨가 
새벽부터 밭에 나와 풀을 뽑다가 발견한 코스모스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뼈대까지  굵어진 그 꽃나무를
아저씨는 함부로 어둠속에 버리지 않았다
풀들이 무성한 길가에 줄줄이 구덩이를 파고
그 나무를 옮겨 심었다 희망의 깃대를 세웠다
 
그러자 길은 비로소 마음 열고 꿈을 펼쳤다
장마가 멎고 뙤약볕에 젖은 여름이 돌아서자
코스모스는 장대같이 솟은 키다리가 되어
가지마다 꽃망울을 방울방울 매달더니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면 남들의 눈을 속이고
빨강 노랑 분홍 하양, 활짝 핀 꽃잎마다 짙게 분칠하고
서로 서로 손잡고 등 비비며 싱글벙글 웃어대다가
누군가 곁을 지나면 깜짝 반기며 허리굽혀 인사했다
같이 환하고 지나는 바람마저 향기로웠다
이윽고 길다운  길이 활짝 열렸다
 
길가는 사람아, 당신은 이 꽃을 아는가
이들은 당신이 반가워서 허리 굽혀 인사하지 않는가
눈앞에 사랑과 평화가 널려 있지 않은가
이제는 이 길을 만든 이를 기억할 일이다
길이란 생기면 엎어지고 뒤집어지기 마련이지만 
길은 항상 가꾸는 손길에 따라 달라지느니,
그를 위해 아침마다 태양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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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년균 시인 
1942.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출생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 학사
*1972 풀과 별에 시 '출항'등단*
*제 20회 한국현대시인상
*윤동주문학상 수상
*시집<오래된 습관>(2003)
         <우리들이 사는 법>(2013)
         <무슨 꽃을 피우는가>(2013)
         <사랑을 말하다>(2015)
         <그대 앞에 서면 >(2023)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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