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털면서/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한국인의 애송시 II, 신예시인 48인선 중에서, 청하]===
할머니와 참깨를 터는 풍경이 정겹습니다.
빠르고 힘차게 모가지까지 터는 젊은 시인과
천천히 슬슬 막대기질을 하는 여유로운 할머니 동작들.
저녁이 다가오는 농촌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요즈음 보기 어렵지요.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우리네 모습이 아쉽기만 합니다.
=적토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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