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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조선 21대 영조 4년 무신의 란의 대략적인 경과

작성자운곡|작성시간15.11.08|조회수147 목록 댓글 0

영조임금 4년인 1728년에 일어난 무신의 난의 경과를 살펴보면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임금은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등 3명의 왕비가 있었으나 인경왕후는 두명의 딸만이 있었고

나머지 두왕후는 자식이 없었고,

숙종의 대빈 장희빈에게 태어난 昀(윤)이 20대 경종 임금에 오르고

또 숙종의 숙빈 최씨에게 태어난 昑(금)이 영인군으로 21대 영조 임금에 올랐다.

원래 경종 임금의 장남이 왕의 순서이나 4년2개월의 재위기간 동안 자식을 얻지 못하였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당파의 다툼이 치열했던 사회에서 경종 임금은 소론파의 비호를 받았고, 영인군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얻었다.

경종이 임금에 즉위한 후 노론파는 영인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소론은 정실이 아닌 숙민 최씨의 소생이라 세자로서 부적격하다고 반대 하였으나, 승하한 숙종 임금이 생전에 신하 이이명에게 당부하여 영인군으로 후사를 잇게 하라는 유지를 남겨 결국 단명에 끝난 경종의 후임에 영인군이 21대 영조임금으로 올랐다.

그후 소론의 강경파 김일경이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제 등 노론의 거두 4명이 경종을 사살하려 한다는 상소를 올려 영조는 소론의 줄기찬 요구에 결국 임인옥사로 4명의 대신을 사형시켰다.

소론과 노론은 더 극심한 파당을 하고 권세를 잡기에 혈안이 될 즈음 1724년 경종이 서거하자 소론파들은 영조 임금을 지지하는 노론측에서 음식에 독을 넣어 경종을 독살하였다는 주장을 하였고 이즈음 영조는 왕위에 오른다.

영조는 즉위 후 소론 강경파 김일경과 묵호룡을 사형하고 탕평책으로 소론 중도파를 등용하여 당파싸움을 중제 하였다.

1728년 영조는 자기를 와위에 오르게한 노론을 멀리하고 소론을 등용하였으나 소론 강경파와 온건파는 다툼을 하고 강경파는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여 난을 일으킨다.

그 주동자가 이인좌이고 영조 4년 무신의 난이다.

경종 독살설이 퍼지고 충청도의 이인좌, 평안도의 이사성, 경상도의 정희량, 전라도의 심유현(담양부사), 박필 현 등이 주동이 대어 전국적으로 큰 반란을 일으킨다.

그 당시 농민은 흉년으로 살기에 궁핍하고 세금은 해마다 그대로 거두어 가는 바람에 살아가기가 흉흉하고 정부를 불신하는 정서가 확산되자 서민등이 무신란 세력에 동조하여 전국적으로 영조를 내몰고 밀풍군을 왕의 정통성을 계승하려 하였다.

즉 조선시대의 왕의 정통성은 장남이 왕위 계승을 하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정통성이 어긋난 것은 16대 인조 임금에게서 부터이다.

내용인즉 인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소현세자인데 결혼후 자식을 두었으나 세자 책봉되기도 전 어린 나이에 소현세자는 죽자

인조는 차남을 효종 임금으로 오르게 하였고 (이때부터 장남으로 왕위를 계승한다는 정통성이 어긋남) 효종의 아들이 현종, 현종의 아들이 숙종, 숙종의 장남이 20대 경종 임금이 되었고, 경종을 자식을 두지 못하고 4년 2개월 동안 왕위에 올랐으나 단명으로 승하하자

19대 숙종의 최씨 무수리 빈 출신이 영조임금이 되었으니 왕위계승 정통성에 어긋나니 그 정통성을 바르게 계승하기 위하여 16대 인조 임금의 장남 소현 세자의 적통을 이은 밀풍군을 왕으로 세우려는 무신란의 주동자 이인좌의 주장이다.

물론 이 이면에는 노론과 소론 남임과 북인 등 권력 다툼도 복합되어 있다.

1728년 3월 15일 충청도에서 반란군은 청주성을 함락하자 영조는 소론 온건파 대신인 오명함을 시켜 난을 평정케 한다.

소론 강경파 대 소론 온건파 관군의 대결이 된 셈이다. 전국적으로 확산된 무신의 난은 결국은 영조의 승리로 끝나고 무신의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영조 임금은 조선의 최장수 임금으로 52년의 왕좌에서 82세로 22대 정조 임금에게 후사를 맡기고 세상을 떠난다. 무신란이 끝나자 당시 란에 가담했던 벼슬아치와 유신들은 각자 고향으로 낙향하여 은거하거나 잡히게 된다.  글 작성 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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