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이 작가]1329회 향기통신 <총 맞은 큰애기 박순임 어르신>

작성자凡草|작성시간26.06.20|조회수12 목록 댓글 1

1329회 향기통신 <총 맞은 큰애기 박순임 어르신>

 

"국민학교 문 턱 안 넘었어도 쇼팽도 알고 링컨도 안다."

 

박 순임 (91세) 1932년 생.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서 나고 6.25 전쟁 중이던 열 아홉에 아홉살 연상 김봉곤과 결혼. 임실면으로 시집와 1녀 4남을 두었다. 서울에서 살다 지정면 판대리 이주.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셔서 '몰라'를 입에 달고 사셔도 '총 맞은 큰애기 이야기'는 줄줄 꿰신다.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힌 어머니 러브스토리.

 

덕치 거그.... 회문리. 아버지는 북촌에 엄니는 남촌 살다 한 동네서 결혼했어. 우리 형제가 다섯인데 딸 넷에 막둥이로 아들은 하나야.

우리 아버지가 뭣이든지 다 잘하지. 집도 짓고 벌도 키우고 우리 먹으라고 과실나무도 골고루 심고, 책도 잘 읽었어. 아버지 책 읽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아. 노랫 소리같이. 그런게 사람들이 책 읽어 달라고 저녁마다 사랑방에 죽 모여 앉았어. 엄니는 농사꾼이 밤새워 책만 읽으면 다음 날 어떻게 일하냐고 잔소리 하셨고.

나 어려서 아버지는 사랑방에 야학 열고 천자문을 가르쳤는디 딸자식은 학교에 안 보냈어. 계집애 가르쳐서 시집 보내면 잘사네 못사네 편지질 해서 못 쓴다고.

아버지는 장날마다 책을 사오셨어. 입덪하는 니가 갱엿 먹고싶다니까 아버지가 장날 사온다고 찰떡 같이 약속했대. 아버지가 엿을 사려니까 엿은 먹으면 똥이 되고 책은 읽으면 머리에 남으니까 책은 남는 장사고 엿은 밑지는 장사라 돈 아까워 못 사겠더래. 엄니가 종일 아버지 기다리다가 보자마자 엿 내놓으라고 했대. 아버지 말이 내가 엿장시를 때려 죽일래도 없더라 그랬대. 어머니가 서운해서 그 소리를 평생 두고두고 하셨지.

6.25 난리가 나서 갈담 구누실로 피난 갔는데 깊은 골짜기에 마을이 숨어 있어. 아버지는 부역 가고 순애 언니는 시집 가고 열 여덟살 먹은 내가 엄니 대신 살림 했어. 엄니는 여섯살 먹은 아들 죽은 담부터 막내 우천이를 땅에 내려 놓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아. 자나 깨나 품에서 안 떼어놨어. 오줌도 치마에다 받고. 옛날에 기저귀가 있가디. 미영베라고 길쌈한 거로 기저귀를 만들었어. 있는 집은 길게 만들지만 없는 집은 짤막 짤막 만들어서 오줌 싸면 금방 푹 젖어. 엄니 치마도 늘 오줌에 젖었어. 빨아서 말려 쓰고 또 쓰고. 아침에 눈 뜨면 막둥이 안고 굴에 가서 숨어 있었어. 막둥이 잃으면 집안 대가 끊긴다고 온 정신이 막둥이 한태만 있어. 내가 밥하고 동생들 챙기고 짐이 많았지. 하루는 밥 해서 밥바구니 이고 굴에 가는데 총알이 핑 밥뚜껑을 스치고 날아가. 밥바구니 뚜껑이 멧동 아래로 디굴디굴 굴러가잖아. 그거 주으러 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숨어서 보고 순이야, 아가 그냥 가그라 그냥 가! 소리를 막 질러. 그래도 기연이 밥뚜껑 주어다 덮고 굴로 갔어. 군인들이 총을 쏘아서 우두두두 밤송이 떨어지듯이 해. 하도 그러니까 무서운줄도 몰라.

한번은 굴에 밥을 이고 가는데 군인이 나를 붙잡았어. 내가 가만 있간디 나쁜 맘 먹은 놈인디. 두 손으로 멱살을 콱 훔트러 쥐고 너는 누이도 없냐 하고 죽기살기로 막 버텼더니 도망갔어.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통큰 큰애기' 라고 불렀어. 그 담부터 사람들이 뒷산 아니고 앞산에 굴을 만들었어. 높은 산 아니고 야트막한데다.

 

우리는 빨치산 보다 총 든 군인들이 더 무서웠어. 처녀들은 긴 머리 땋아서 저고리 속에 넣고 머리에 미영베수건 썼어. 각시처럼 보이려고. 정님이가 그때 일곱살인가 먹었는데 마루에서 놀다가 사람이 오면 두 팔 벌리고 "없어요. 암도 없어요." 하고 방문 가로막고 지켰어. 그때는 낯선 사람이 짐승보다 더 무서웠응게.

동네 사람들은 낮에 굴에 숨고 밤에 집으로 가추우니까 바싹 붙어서 웅크리고 자. 어느날 고모가 목 마르다니까 고모 딸이 눈 퍼오려고 밖에 나갔어. 군인이 멀리서 단발머리 고모딸을 보고 빨치산인줄 알고 총을 다다다 쐈당게. 문앞에 앉은 고모가 총에 맞고 그 자리서 죽고 그 총알이 내 왼쪽 허벅지를 파고 갔어. 고모가 돌아가셔서 사람들이 울고 난리났는데 나도 총 맞았다는 말을 못해. 엄니가 기절해서 쓰러질까봐. 피 안나오게 검정 무명치마 똘똘 말아서 총 맞은 자리에 집어 넣고 꼭 누르고 있었어. 밤에 굴을 나오니까 피 묻은 치마가 얼어서 서걱서걱 해. 집에 와서 말했더니 엄니가 우리 식구는 이제 다 살았다고 벌벌 떨어. 엄니는 우천이 밖에 모르니까 내가 모든 걸 다 했으니까 다 굶어죽는다고.

엄니가 참깨를 입안에 넣고 꼭꼭 씹어서 상처에 붙였어. 동네서 소를 잡으면 아버지가 그 집에 간다고 얻어오려고. 소고기 얇게 썰어서 상처에 붙이면 찰싹 달라붙어서 하얗게 뭣을 빨아내. 나중에 떼면 시뻘건 고기가 하얗게 되있어. 막 쓰리고 아파도 참고. 아이고. 그때는 약이 어딨어. 이거 봐. 흉이 크잖아.

그런데 군인들이 빨치산 처녀 잡는다고 마을 처녀들을 싹 다 잡아다 조사하는 거야. 너그 아버지가 군인은 아닌데 조사하는 높은 사람이었어. 처녀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암말도 못하는데. 내가 군인이 아무한테나 총 쏴도 되냐고. 고모가 맞아 죽은 총알에 나도 맞았다고. 고모 살려내라고 막 울고 불고 큰소리 했지. 다른 처녀들은 집에 보내는데 나만 더 조사 한다고 이것 저것 물어 자꾸. 너그 아버지가 내가 맘에 든 거야. 스물 일곱 노총각이었거든.

그날 집에 데려다 주고. 상처에 바르는 약 구했다고 찾아 오고. 군인들 빨래 해달라고 가져 오고. 빨래비누도 가져다 주고 자꾸 왔어. 어머니가 빨래하면 내가 떨어진데 꼬매서 보냈더니 군인들이 총맞은 큰애기 집에 재봉틀 있나 보다고 했대. 나 보담도 어머니가 신랑감 좋다고 오면 반기고 더 좋아했어. 내 맘에도 들었응게 아무말 안했지. 엄니가 사람 좋다고 결혼시키자 서두르니까 아버지도 좋다고 해서 전쟁통에 신랑은 사모관대 입고입고 나는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식을 올린 거야.

너그 아버지가 임실 군청 서기라 향교리에서 살았는디 국회의원 비서로 서울로 불려갔어. 너그 아버지가 한 달에 한번씩 다녀갔는데 너그 고모부가 신랑 각시가 떨어져 살면 못쓰는것이라고 서울로 올려보냈어. 서울에서 까막눈이라 살 수 있간디. 친척이라고 육촌 시누밖에 없는디 시누네 갈라고 해도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 몇 번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알간디. 어디가 어딘 줄도 모르고 겁나서 아무데도 못 나갔어야. 겨우 시장 가는 길 알아두고 장보러 다니며 간판 글자 보고 가나다라 외웠지.

신문 '고바우 ' 만화 떠듬떠듬 읽다가 신문 연재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를 재밌게 읽었다. 그거 읽을 욕심에 얼른 청소 일 해놓고 . 나는 국민학교 문턱 안 넘었어도 쇼팡도 알고 링컨도 안다.

 

 

지긋지긋 징글징글한 일제 시대와 눈깜박할 순간 목숨이 오가는 전쟁 중에도 살아남아 포탄에 무너진 세상에서 지문 닳도록 일 했지만 핸드폰 하나로 모든게 해결되는 인터넷 세상이 이리송 낯설다. 먼 나라에 있는 아들과 영상 통화도 신기하다.

 

 

덕치댁

 

당신이 나고 자란 땅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늘 먹던 음식만 먹고

늘 입던 옷만 입고

서울 물 먹었어도 여전히 촌사람이다.

 

잘난 남편 하늘 같이 믿고 살다

시앗에게 빼앗겨 피눈물로 살았다.

의지가지 없이 자식 다섯 먹여 살리느라

멍에 걸머진 황소처럼 살아냈다.

 

세상에 믿을 것은 오직 몸둥이 뿐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양 손 오그려 쥐고 그렇게 한 세월 살아냈다.

 

아직도 가슴에 시새움 남아

나 죽으면 지팡이 꼭 묻어주라이.

그년 만나면 후두러 패주게.

세상살이 어려움 다 잊어도

그 상처 떨쳐내지 못하는 가여운 덕치댁.

 

 

현몽 (現夢)

 

온 몸이 쑤시고 아파 그만 살고 싶다는 어머니

귀찮아 소리 입에 달고 사신다.

너그 아버지는 뭐 하느라 안 데려가나 모르것다.

어머니 넉두리에 귀가 아팠을 아버지가 현몽하셨다.

 

어디 갔다가 집에 와 본게 너그 아버지가 도배를 싹 히놨더라.

을매나 이쁜 도배지를 발랐던지 방이 너르고 환하더라.

어매 좋은 거 웃다가 꿈을 펀득 깼다.

 

며칠 뒤에 아버지가 사위를 비서로 달고 또 찾아 오셨다.

 

꿈에 생전 가보도 않은 산으로 어디로 막 가는데

맨 앞에 너그 아버지 뒤에 서 서방 내가 꼬래비로 갔다.

너그 아버지가 돌아보고 당신은 좀 있다 천천히 와 하더라.

아버지 그 마음 알겠다.

어머니 성화에 그만 데려가시려다

어머니 빈자리 서운할 자식 생각에 천천히 오라 이르셨다는 것을 .

 

 

 

보물찾기

 

밤줍기는 세상 즐거운 놀이

온 산에 밤꽃 향내 퍼지면

설레는 마음 하루하루 손 꼽아

아람이 벌고 밤톨이 툭 떨어져 구르면

산비탈 오르내리며 구석 구석 샅샅이

허리 구부렸다 폈다 재미난 보물 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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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햇님 | 작성시간 26.06.21 눈물 나면서도 정겹습니다~~^^
    어떻게 살아 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단한 장인이 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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