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죠부
나이와 고향에 이어 할머니에게 붇는 것이 또 있었다. 일본어였다. 할머니는
일제감점기 시절에 소학교를 다녔고, 그때 듣고 배운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나는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일본어를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침 인사가
일본어로 뭐에요?” “오하요오.” ...이어서 아버지와 어머니, 돈과 꽃,선생님과
학생이 일본어로 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곧바로 대답했다. 학교에서 한국어를
쓰면 혼줄이 나던 시절이라 할머니는 두려움 속에서 일본어를 익혔다. 어릴 때
공포 속에서 새겨진 일본어는 100년이 지나가도 잊히질 않았다. 알고 있는
일본어를 되풀이하는 가운데 할머니의 인지능력이 쇠퇴하지 않도록 새로운
일본어를 알려 드렸다. “잘 자라”는 인사말 “오아스미”였다. 할머니는
낮설어하면서도 금새 익혔다. 밤에 할머니의 머리맡에서 “잘 자라”가 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오하스미”라고 답했다. ...할머니는 “오아스미”를
웅얼거리고 이윽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본 뒤 나는 할머니가 덮고 있는 이불의 끄트머리를 괜히 한 번 더
매만지곤 했다. 오아스미와 더블어 할머니가 어렵사리 받아들인 일본어가
있었다. “괜찮다” 또는 “문제없다”라는 뜻이 “다이죠부”였다. 수많은 단어 가운데
나는 다이조부에 꽂혔고, 틈만나면 일본어로 “괜찮아요”가 뭐냐고 물었다.
200살 할머니가 괜찮기를 바랐고, 나의 상태 역시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이죠부를 골랐다.
이민ㅣ나의 200살 할머니ㅣ창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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