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사도는 마케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점쟁이 귀신들린 한 여종에게서 점치는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었습니다.
그 점쟁이 주인이 더 이상 여종이 점을 치지 못하여 돈벌이가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원들 앞으로 끌고 가서 고발하고
무리들도 일제히 일어나서 동조하여 고발을 하게 됩니다.
그때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명령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방중에 바울과 실라고 기도하고 찬송할때에 죄수들이 들었고
하나님은 지진을 일으키셔서 옥문이 다 열리고
착고에 매였던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벗어집니다.
그바람에 놀란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가서 엎드려
선생들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상관들도 바울 일행을 내 보내라고 지시하여
간수가 와서 평안히 가라고 하지만 바울사도는 가지 않고
오히려 우리는 로마 사람이라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백성의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아마도 상관들도 간수도 지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때리고 가두므로
그들이 전하던 신이 진노한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이고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도 재판없이 매를 때리거나 감옥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로마시민을 보호하지 않은 죄로 오히려
그 관리가 죽음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렇게 로마 시민권의 권리를 주장하자
관원들이 놀라서 두려워하며 직접 와서 권하여 바울 일행을 내 보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어제 주장하였더라면 매를 맞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매를 맞을때는 가만히 다 맞던 바울사도는 감옥에서 나가도 된다고 하는데
안 나가고 로마 시민권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권리 사용하는 원칙을 보게 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매를 맞을 때 로마 시민권의 권리를 사용하여
매를 맞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복음의 능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매를 맞는 것을 기꺼이 당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복음을 전하는 것에 얼마든지 강한 능력으로 친히 나타나시고
심판하시면서 사람들에게 힘과 능력으로 굴복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전도를 통하여 박해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바울이 나갈때는 다릅니다.
이미 복음이 전해진 그곳에서 전도자 바울 일행이 매를 맞고 조용히 떠나가면
빌립보 교회를 세운 바울 일행은 죄수로 영원히 기록되고
죄수들이 전한 복음으로 교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바울 일행이 떳떳하고 상관들도 두려워한 사람들임이 드러날 때
그들이 전한 복음도 비난 받지 않고 든든히 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복음을 위해서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권리나 달란트를 주를 위해 사용해야 함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때로는 복음을 위해 우리들의 이익이나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음을 위하여 우리들의 권리나 달란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하던 바울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던 바울사도가
직접 자신의 권리를 주를 위해서 사용하는 원칙을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