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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훈독

인류의 새로운 장래(희망의 날 대향연 대전 집회 말씀)

작성자무지개 왕|작성시간18.05.02|조회수195 목록 댓글 0

인류의 새로운 장래

― 희망의 날 대향연 대전 집회 말씀 ―

 

[말 씀]

 

저녁에 이와 같이 만장하신 대전 시민 여러분과, 자리가 비좁아 가지고 밖에 있는 많은 시민들에 대해서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요한 대전시에 며칠 동안 난데없는 외국 젊은 남녀들이 들어와 가지고 상당히 소요(騷擾)하게 한 데에 대해서 본인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와 같은 일을 출발하고, 혹은 시킨 장본인 되는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 상당히 궁금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장본인이 여기에 나타났으니, 그리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대전시민의 순후(淳厚)하신 성격과 관대하신 마음으로 이 저녁 많이 사랑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습니다. (박수)

 

저녁에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주제는 '인류의 새로운 장래' 혹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이 대전 시민과 같이 논해 보기를 원합니다.

 

혼란상에 처한 인류의 문제는 확실한 신관에 입각해서 해결해야

 

우리들은 지금 현재 지극히 혼란된 세계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목질시하는, 불신이 가득찬 이 세상이요, 이 세계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재에 있어서 여러 사람들은 탈() 이데올로기 시대, 혹은 가치관이 몰락한 시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듣게 되는 것입니다.

 

더더우기 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지금은 그야말로 끝날이다. 세상 끝이 다 됐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나라면 나라,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긍()하여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낙심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있어서 새로운 장래를 추구한다는 것은 새로운 지도 이념이 개인으로부터 연결되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모두 환영할수 있는 중심사상을 발견하는 외에는 새로운 장래 혹은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추구할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잠깐 살펴본다면 불확실한 신본주의사조(神本主義 思潮)가 중세시대를 지도해 왔지만. 그 신본주의사상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세계(人本主義世界)가 찾아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시대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지금에 와서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이 세계를 휩쓰는 지극히 위험한 시대에 처하여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유물사상은 물본주의사상(物本主義思想)과 같은 것으로서 종말의 사상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짐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들, 가치관의 몰락이니 탈 이데올로기니 하는 문제가 왜 일어나느냐 하면 그것은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하는 결과로 말미암아 빚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장래를 추구하는 마당에 있어서 모든 문제를 다시 수습할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인간을 초월하여서 하나님이 확실히 있느냐, 절대적인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확실히 해명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편에서 보는 주의 사상이 아니라 신편에서 보는 주의 사상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발견하지 않고는 우리 인류의 장래에 새로운 소망의 세계는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신관(神觀)에 입각하여서 인생이 무엇이며, 물질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이것이 따로따로 분립되어 가지고 처리될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중심적인 절대자와 더불어 그 통치권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없는 것입니다.

 

인체를 통한 하나님의 실재 증명

 

여기에는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대중들이 모였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인데, 이 문제를 알기 쉬운 어떤 비사(比辭)로서 한번 말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간은 사유(思惟), 혹은 생각이니, 존재니, 혹은 정신이니, 물질이니, 혹은 신()이니, 무신(無神)이니 하는 와중(渦中) 에서 시달려 왔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확실히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규명(糾明)되는 날에는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생각이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혹은 정신이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서 제일 중심 부분이 어디냐 하면, 우리 얼굴 가운데 있는 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이 좀 쉬어서 미안합니다. 우리 눈이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될 때에, 도대체 이 눈의 역사, 눈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게 어디서 나오긴 어디서 나와,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서 나왔지'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 아버지의 눈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며 자꾸 올라갈 것입니다. 조상으로부터 조상의 조상으로 올라가고 올라가게 되면 맨 나중에는 종지조상(宗之祖上)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종지조상이 아담 해와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여튼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이 지구성(地球星)에 우리 인간시조가 비로소 태어난 그 조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조상 할아버지 되는, 즉 아담 할아버지의 눈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눈 자체는 물질이라구요. 이 눈이 태어나게 될 때 공중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그거 잠깐 생각해 보라구요.

 

자체가 '내가 태어나게 된다면 공중에 태양이 있는 것을 본다'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카메라의 조리개와 마찬가지로 광도(光度)를 조절할 수 있는 눈이 돼야 되겠다는 것을 눈 자체가 알았느냐구요. 이렇게 묻게될 때에 어느누구나를 물론하고 대답하기를 '그야 뭐 물을 게 뭐야? 몰랐지' 할 거라구요. 알 수 없다구요.

 

나아가서 눈이라는 물질 자체만으로 공중에는 복사열이 있는데 복사열에 의해 가지고 눈의 수분이 증발한다 하는 것을 알았겠느냐? 이렇게 묻게 된다면 그 눈 자체가 알 수 있어요? 그 눈 자체는 모른다 이거예요.

 

우리 눈이 깜박깜박하느냐 하면 눈의 수분이 증발되어 마르기 때문이예요. 여러분이 한 30분 동안 눈을 가만 뜨고 있어 보라구요. 이건 큰일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물을 살포하는 장치를 하지 않을수 없다는 거예요. 이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은 수증기가 증발하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 종지조상 할아버지의 그 눈이 이 공간세계에 물이 증발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겠어요? 그건 물어 볼 것도 없다구요. 알 수 없다구요.

 

, 그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성에는 공기가 있어서 바람이 불면 공기가 유동(流動)합니다. 유동함으로 말미암아 먼지가 이는데 이것이 눈에 들어가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먼지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되는데 그 장치가 뭐냐 하면 눈썹이다 이거예요. 그거 재미있지요? 요 살눈썹 잘 갖다붙였지요? 그런데 눈 자체가 '내가 지구상에 나타나면 반드시 공기가 있으니 눈썹아, 너 나와라!' 할 수 있어요?

 

자체가 천문학적인 지식기반, 박물학적인 방대한 천체세계와 공중세계와 이 지상세계, 물리세계의 현상을 다 파악하는 그 모든 법도에 위배되지 않게끔, 계수까지도 맞춰 가지고 조종할 수 있느냐 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눈 자체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세상이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눈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요? 아이 닥터(eye doctor;안과 의사)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아요? 눈 의사가 많다구요. 그 눈 의사들이, 세계의 수십만 명 눈 의사가 모였다 하더라도 이 눈세계의 신비한 것을 아직까지 발견 못다 했다 이거예요. 신비의 왕궁으로서 무진장의 지식적 보고(寶庫)로서 되어 있는 거예요. 눈 하나 자체를 보더라도 놀랍고도 굉장하고도 방대하다 이거예요.

 

물질 자체로 눈이 박물학적인 견해의 내용을 스스로 조종하면서 태어날 있겠느냐 묻게 그건 그럴 없는 것입니다. 그건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눈이 나오기 전에 태양이 먼저 있었던 것을 알았고, 이 눈이 나오기 전에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고, 이 눈이 나오기 전에 수증기는 증발한다는 것을 안 어떤 존재가 먼저 있어 가지고 그 결과적 존재로서 조정되어진 결과가 눈이다 하는 것이 가장 이론적인 결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눈이라는 존재가 먼저냐 눈이 나올 있는 근본 사유가 먼저냐 하는 문제를 두고 ,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신이 먼저냐 무신이냐 하는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서 우리는 당당코 우리 종지조상의 눈이 생겨나기 전에 본래 이와 같은 것을 다 아신 분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구요. 한국 말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일본 말로는 가미사마(かみさま) 영어로는 갓(God), 여러 가지 뭐, 돌팡구라고 해도 이름은 뭐라고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러한 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단한 비사를 통해 가지고 결론을 지어도 여러분이 인식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보라구요. 눈이 사람이 서서 다닐 줄 다 알았다구요. 또 귀를 보라 구요. 산맥을 셋을 세워 가지고 잘 정돈이 돼 있지요? 여러분, 또 코를 보라구요. 요놈의 코가 아래가 좁고 위가 넘었으면 어떻게 줬을까요? 이게 뒤집어지지 왜 뒤집어지지 않았어요? 여러분, 아래가 왜 넓은지 알아요? 이놈의 입이라는 귀한 보고가 있기 때문이예요. 서서 다니는 인간이 땀을 흘릴 때. 아래가 좁으면 전부 다 입으로 들어가니까, 요걸 떡 넓혀 도랑을 처 가지고 절대 못 들어간다는 울타리를 세워 놓은 것을 볼 때, 이 모든 존재의 형상(形象)이 자의(自意)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대한 지식적 기반, 사유 혹은 사고를 기반으로 하여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물질보다는 먼저 정신이 있었다는 거예요. 물질보다는 먼저 하나님이 있었다 하는 것을 여기서 결론짓자구요. 많은 얘기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는 결론을 짓고 넘어가자구요.

 

참된 사랑·이상·평화·행복·자유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사람은 자고로,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동서양을 물론하고 참다운 사랑을 추구했습니다. 참되고 변하지 않는 사랑, 영원한 사랑, 불변인 사랑, 그런 참된 사랑을 추구함과 동시에 참된 이상을 추구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참된 행복과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를. 우리는 지금도 이 절망적인 도탄 와중에 선 현실에 있어서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이건 무엇이 틀렸다구요. 인간이 아무리 노력했댔자 이것은 찾을 수 없다는 거예요.

 

참된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신이 있으면 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참된 이상은 인간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으로부터…. 참된 평화, 참된 행복, 참된 자유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신의(神意)에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그 무엇인가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인간은 그러한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미완성하고 미흡된 불완전한 인간, 변하기 잘하는 이런 인간상을 넘어서 영원하고도 유일하고도 불변인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가 제시하는 참사랑의 도리, 참이상의 도리가 참평화와 참행복과 참자유의 도리에 맞춰 가지고 하나되는 데서만이 비로소 이상적 요건을 찾을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 그러면 하나님편에서 보는 개인을 대한 이상의 요구, 혹은 가정, 국가, 세계를 대한 이상의 요구를 따라갈 수 있는 길 외에는 우리 인간이 이미 갖은 수난을 겪어 오면서 갖은 노력을 해왔지만, 이미 실패 단계에 있는 인간으로서는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편으로 돌아가 가지고 하나님이 제시하는 길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문제예요. 지식 있는 사람은 물론이요, 종교인, 지구성에 사는 모든 인류가 총합하여서 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문제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때에,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그말을 도대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말이냐, 혼자서 성립될 수 있는 말이냐 생각할 때,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혼자 사랑해서 뭘해요? 혼자 사랑을 할 수 있어요? 혼자 있으면서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요 조그마한 먼지 하나를 가지고 이걸 보고 시를 읊고 노래를 하고 좋다고 히죽부룩 히죽부룩하면 그때는 여러분들이 바라보면 정상적인 사람이예요.

 

웃느냐? 할 때 그것 보고 웃는다 생각하지만 아무도 없는데 혼자 버룩버룩 웃고 좋다고 시를 읊고 노래를 하면 그걸 뭐라고 그래요? 정신이 돌았다고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자유라는 이러한 말들은 혼자서 성립되는 말이 아니고, 반드시 상대적 요건 하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이상·평화·행복을 성사시키는 존재는 나

 

그런 관점에서 ,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 혼자서, ', 사랑이다'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 혼자서, '내 이상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평화의 중심이다' 그럴 수 있어요? 그건 성립 안 되는 거예요. 여기에는 상대가 절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상대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아무리 전지전능한, 온 만우주를 지으시고 그를 움직이는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이 없으면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 하는 것이 가장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박수)

 

그라면 지구성을 바라보게 , 절대자 되시는 그 하나님 앞에 도대체 상대될 수 있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냐? 오늘날 어떤 학자들은 원숭이라고 하는데 원숭이가 될 수 있어요? 여러분, 동물원에 가면 원숭이가 참 거룩하지요? 어떤 동물학자들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학자를 대해서 '선생님, 당신 할아버지가 누구예요? 원숭이예요? 그러면 원숭이의 몇 수십 대 손자되시는 선생님' 하고 인사해 보라구요. 좋아해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기분 나쁜 일이라구요. 여러분, 원숭이가 여러분 할아버지라면 좋겠어요?

 

위에,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대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인간밖에 없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인간 아니고는 안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권능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인간 없이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인간의 가치는 무가치한 것으로 알아 왔습니다. '아이구 나 이 농촌에서 농사나 짓는 무명의 한 농민으로서 이렇게 살다 죽어가지' 하고 흙덩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무가치하게 살아왔지, 자기 존재가 하나님의 이상적 조건을 성사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는 놀라운 존재다.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놀라운 존재다. 내가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평화를 성사시킬 수 있는 놀라운 존재다' 하는 것을 이 시간 자각하고 돌아간다면, 여러분은 이 시간에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을 찾아 가지고 돌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박수)

 

대상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인간과 하나님

 

,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기 나이 많으신 분들, 혹은 저 대전시에 유명한 분들이 많이 오셨을 줄 알고 있어요. ', 내가 이만했으면 대전 어디에 가나 난 나로서 당당하다'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 물어 보겠는데, 여러분들, 잘난 남자 혹은 잘난 여자가 옛날에, 뭐 지금도 괜찮아요. 자기 상대를 찾는데 '자기보다도 잘난 상대를 찾고 싶으냐 못난 상대를 찾고 싶으냐? 하고 묻는다면, 대답이 어떠해요? 이 아가씨들은 좋다고 웃는구만요. 못난 상대를 찾겠다는 사람 있어요?「예」'' 하는 사람은 절름발이 남편을 얻고 곰배팔이 여편네를 얻고 싶어요. 그거 좋아요? 물어 볼 게 없다는 거예요. 누구나를 막론하고, '내 상대는 나보다도 조금은 낫기를 원한다' 이거예요. 그렇지요? 그건 틀림없는 거라구요.

 

자기보다 못난 상대를 찾는 사람은 그것은 인간 외의 사람이야, 인간 외의 사람. 세계에 40억에 가까운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인류들 가운데 '내 결혼할 때 나보다 못난 사람, 그 상대를 나보다 못난 사람 얻겠다'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누구나를 막론하고 자기 상대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원한다 이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 상대 중에 제일 귀한 상대가 뭐냐? 남편도 있고 아들딸도 있지요. 여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이런 말 하면 안 됐지만 무식한 부부, 부모의 정이니 뭣이니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수 있는 그런 부부가 있다고 합시다. 있다는 게 아니라, 있다고 하자구요. 그 아내와 남편이 애기를 낳았을 때 그 애기가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래요, 못나기를 바래요? 부모 되는 그 어떠한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 자식이 자기 보다도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본성의 욕구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해 가지고 첫애를 낳았는데 보니까, 그 어머니 아버지는 참 그야말로 미녀 미남인데, 그 안고 있는 딸이나 아들이 기왓골에 걸린 호박덩이처럼 생겼다 이거예요. 두 번만 봐도 눈이 찔끔 감길 만한 이런 애기인데도 불구하고, 그 애기를 쓱 바라보면서 '이 애기 그거 볼만한데! 이 애기는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생겼군' 하면 어머니 아버지 입은 씩 해지며 기뻐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그래요? 안 그런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구요.

 

이런 것을 보게 , 자기 상대와 자기 사랑하는 아들은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소망인 것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알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질문을 인간 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어디까지나 생각하더라도 인간 자체는 결과적인 존재지, 원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원인이 어디에 있고, 어떠한 원인으로서 자기가 태어났는지 모른다구요. 그 어떠한 창조주에 의해 가지고 창조과정을 거쳐 가지고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에, 결과적 존재임에 틀림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된 존재는 자기 멋대로 결과가 가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따라 가지고, 과정이 복잡하면 할수록, 그 원인에 의해 가지고 결과는 나타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도 잘난 상대와 만나기를 원하고,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묻는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원인적 존재를 닮아서 그렇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게 가장 타당한 결론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대해서 묻기를 '우리 인간은 자기 대상이 이러기를 바라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대상, 혹은 당신의 아들딸이 당신보다도 못나기를 바랍니까?'라고 묻는다면 원인 되는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그 하나님의 대답은,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다'라고 하는 거예요. 결국은 대상과 아들이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우리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박수)

 

오늘날 이와 같은 나라는 존재,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존재를 놓고, 이 대우주를 창조한 주인공이 자기보다도 낫기를 바란다는 이 사실을 몰랐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야 할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거예요.

 

본연의 인간의 가치의 해방 운동과 인간의 영생

 

그렇게 됐느냐? 그것은 언제 어느때인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에서는 이것을 들어 타락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대전 시민 여러분, 이 저녁에 말하는 이와 같은 본연의 인간 가치를 가졌던들 우리 인간세계에는 불행이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 이 세계가 이러한 도탄 중의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이 비참한 상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결과의 자리에 떨어졌느냐.

 

결국은 하나님을, 주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주인 되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본연의 가치를 되찾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보다도 잘나기를 바라고 있는 이 위대한 인간의 가치를 만일에 찾았다 할진대는, 그곳에서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에게 직선적으로 향할 것이고 무한한 하나님의 이상과 행복과 평화와 자유가 발견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당한 결론인 것을 아시고, 오늘 저녁 이것 하나를 여러분들이 찾고, 이 한 사실을 이제 여러분의 심중에 지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와 같은 고귀한 본연의 가치 해방 운동, 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에 이 노력의 세계적인 무대가 종교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박수)

 

여러분, 이 속세에 사는 이 인간도 그래요.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우리 인간 자체들도 사랑하는 사람, 혹은 이상적인 대상 혹은 행복의 대상, 혹은 평화의 주체 대상 관계의 자리에 선다면, 그런 존재가 잠깐 있다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예요? 그게 아니예요.

 

속세의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땅에 사는 우리 자신들도, 사랑은 영원이고, 이상은 영원이고, 행복은 영원이라고 합니다. 문학서적을 보나 시를 보게 되면 영원한 사랑이니, 영원한 이상이니, 영원한 행복이니 하고 말하지요? 안 그래요? 타락하고 본성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마저도 이렇게 바란다 할진대는 절대적인 하나님은 어떨 것이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대상으로 택해 세운 사람을 사랑하게 자리에 있어서, 그 사랑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일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구요. 그 이상적인 아들에게 '나는 영원한 존재고 너는 제한적 존재니 너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지어다' 그래요? 인간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영원하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니 그 대상의 사랑도 영원하기를 바라고, 그가 이상적인 주체니 그 대상도 이상적 대상으로 나타나기를 바라고, 그가 행복이요 평화의 주체니 그 대상적 존재도 참된 행복과 평화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칠팔십 년 인생으로서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이라면, 하나님이 영원한 한 그 인간도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이론적인 결론인 것을 알아야 돼요. (박수와 환호)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영생할 수 있다! 틀림없다!' 이런 확신을 갖는다면, 이는 여러분의 일생에 있어서 획기적인 혁명의 차원의 세계로, 그야말로 차원 높은 희망의 세계로, 차원 높은 장래의 세계로 새로이 진전될 것이 틀림없다고 하는 결론을 내리자구요. 이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고귀한 인간의 가치,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중심삼은 영생이라는 필연적인 길을 알았기 때문에, 핍박의 화살이 오고 세계노정 가운데 아무리 요동이 와도 이 철석 같은 관이 움직이지 않고 피안의 세계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과 인간은 주체와 대상 관계

 

오늘날 기성교회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기성교회를 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예요. 그들은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고 우리 피조물 되는 인간은 더러운 죄악된 존재이니, 거룩한 자와 죄악 된 인간이 동등할 수 없다! 동참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신학적인 논고에 의해 지금까지 신앙의 신조를 세워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 혼자서 사랑을 해서는 뭘해요? 사랑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자기의 대상적 가치를 가져야 된다는 것을 오늘날까지 몰랐어요.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도 타당한 것입니다. 아무리 기성교회가 반대하더라도 영계에 가 보면 이 사실을 틀림없이 알 것입니다.

 

이런 확신 선상에 있는 인간의 가치를 찾는 데에 있어서 비로소 구원완성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한계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물어 보게 되면 대답 못 할 것이 수두룩해요. 그저 믿고 천당 가자 하는데 그건 안 통합니다. 안 통한다구요. 우주의 근원을 파헤쳐 밝혀 가지고 논리적으로 체제화한 그것을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주도적인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려운 말을 해서 안 됐습니다. 막연하고 공중에 떠 있는 관념적인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같이 노닐 수 있는 하나님, 이상의 주체 대상 관계로서 설 수 있는 하나님, 행복과 평화와 자유세계를 그 품에 품어 가지고 같이 동거하면서 호흡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박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요구해 봐야 받을 없고, 아무리 하나님의 생명을 요구해 봐야 대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한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거 시간이 자꾸 가서…. 벌써 30분이 됐구만.

 

그러면 이제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여러분이 확실히 알았다구요. 알았어요? (박수) 진짜로 알았지요? (박수) 그러면 여기서 넘어가자구요. (박수)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러한 대상의 존재를 맞이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하나님 혼자 마음대로 하는 거라구요. 아들이 다 컸는데 아버지 혼자 '야야야. 이리 와 이리와' 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의논이 필요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우주창조의 공식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왕도 되고 이상의 왕도 되고 평화, 행복, 자유의 모든 왕도 되시니 지혜의 왕도 되시는 하나님께서 상대 되는 인간을 그와 같은 대상의 가치로 인정하고 나서는 여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라구요. 도대체 참된 사랑의 기원을 어디에 두느냐? 참된 이상의 근본을 어디에 두느냐? 참된 행복과 참된 평화를 어떻게 하는 데 두느냐? 그 이상의 근본문제 설정이 하나님 자신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래요. (박수) 이건 여러분들도 가장 궁금한 문제다 이거예요.

 

이상적 근원을 어디에 두었느냐? 그 근원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잡으면 나도 사랑, 행복, 이상, 평화를 하나님과 같이 가질 수 있다 이거예요. 그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제부터 그러한 문제, 그러한 내용을 말해 보자구요.

 

도대체 하나님이 자기만을 생각한다면 천지창조를 했겠느냐? 창조라는 말은 힘의 투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술가가 있으면 그 예술가는 걸작품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예술가가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 정신과 모든 일체의 정성을 다 투입합니다. 다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한 걸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완전 투입이 아니라구요. 완전 투입, 그 이상 될 수 없다 할 수 있는 여기에서 비로소 걸작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은 뭐냐? 오늘날 기성교인들은 믿기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말씀으로 지었다' 하는데, 무슨 요술을 부리듯 그렇게 지은 줄 알아요? 아니예요. 있는 지성을 다하여 자기 일신을 전부 투입하는 이런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라구요. 정성을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어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내 사상 중의 사상이요, 내 전체 중의 전체를 투입했기 때문에 희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 자체가 무엇에서 시작됐느냐 하면, 투입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거예요. 힘을 투입해야 된다구요. 힘을 투입하지 않고 무슨 물건이 생겨나지 않아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완전한 투입을 하는 데서 완전 대상이 성립한다는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을 대해 가지고 완전 투입이다 이거예요.

 

말을 바꿔서 하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위해서 있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창조역사라는 거예요. 대상을 위해서 있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창조역사라는 것입니다. (환호와 박수)

 

이것이 천지창조의 원칙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가 이상적 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면,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하라 하는 것이 아니예요. ', 나한테 와서 달라붙어라' 하는 흡수가 아니라구요. 투입이라구요. '달라붙어라' 가 아니라구요. 투입이라구요. 자체를 삭감시켜 놓는 거라구요. , 그 말을 돌이켜 하면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설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투입한 거예요. 말을 바꿔서 하면, 하나님 자신도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을 위하여 지금까지 계속해 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을 위하여서, 생사지권을 좌우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결론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박수)

 

우리는 여기에서 위해 존재하는 데서만이 참된 사랑이 성립된다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타락이 뭐냐? 이와 반대입니다. 인간 자체가 하나님을 위하는 자각을 먼저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 위주한 자각에서부터…. 반대라구요. 나를 위하는 입장에 섰다 하는 이게 타락이라구요, 천지창조 원칙에 배반된 이 사실이 인류 타락의 역사인 것을 알아야 돼요. 잘못 됐다구요.

 

'위해 존재 한다'라는 이 두 마디의 말은 하나의 말인 동시에 천지 어디나…. 이것이 통하는 데는 이상이 깃들고 참된 사랑이 나타나고 참된 행복과 참된 평화가 깃든다 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는 이 피조세계의 존재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존재자들이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이와 같은 원칙을 따라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 창조의 비결이요 공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한다면 위대한 발견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박수)

 

인간은 이상형을 상대로부터 보충할 있게 되어 있다

 

, 보자구요. 참된 사랑의 부모는 어디에 있느냐? 이 공식대로 적용해봐요. 참된 사랑의 부모란 계시기를 아들딸을 위해서 있다고 하는 분이요, 살기를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을 위해서 사시는 분이요, 죽는 데에도 자기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분입니다. 이것이 참된 부모입니다. (박수) 이것이 참된 사랑의 부모, 이것이 참된 이상의 부모, 참된 행복의 부모, 참된 평화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부모라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원칙을 중심삼고 인륜사회가 움직여야 한다 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공식을 부부지간에 적응하여 이상적 남편은 어떤 남편이냐? '내가 태어나기를 아내인 당신을 위해서 태어났소' 하는…. 부인들 그럴 거라구요. 결혼식을 딱 끝내고 '당신 지금까지 이십 몇 세 청춘시대까지 어떻게 자라 왔소' 할 때,'어떻게 자라오기는…, 당신 만나기 위해서 자라왔지' 하면, 부인의 입이 해사해져요. 그렇지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위해서 사는 거라구요. 참된 아내를 위해서 사는 거라구요. 그뿐만이 아니라, 아내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그러한 남편이라야 참된 사랑의 주인으로서의 남편이요, 참된 이상의 주체로서의 남편이요, 참된 행복과 평화의 주체로서의 남편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박수) , 반대로 아내도 마찬가지예요. 남편만이 아니라 그 아내도 마찬가지예요.

 

, 이런 공식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이 아는지 보자구요. 여기에 남자 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남자분들은 '내가 대전에서 이만한 권위를 가졌고, 이만한 자격을 가졌으면 어디에 가든지 내가 부끄럼이 없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태어난 존재의 권위 의식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남자의 근본을 파 보게 될 때, '도대체 남자가 왜 태어났어?'라고 묻게 된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생각지 않는 사람이라면, '뭐 그런 말을 다 물어 보는 거야? 남자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지' 그렇게 답변하면 이것은 천리원칙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통고하는 바입니다.

 

남자는 태어나기를 남자 자신 때문에 태어난 아니라구요. 태어나게 된 동기가 남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여자에게 있다구요. 여자들은 기뻐서 쓱 웃고 있구만요. 남자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잘났다고 자랑을 한다 하더라도 그 남자가 태어난 동기가 남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난 거라구요. , 그 반대되는 여자도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미인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남자를 보기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그 싫은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자가 태어나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여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구요. 남자가 없었더라면 여자가 태어날 필요가 없는 것이요, 여자가 없었더라면 남자가 태어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는 거라구요. (박수)

 

이러한 근원을 확실히 가지고 순리적인 천리에, 공식에 적합하게 하는 데 있어서 비로소 새로운 이상의 현현이 가능하다는 결론은 있을 수 있으되, 그저 덮어놓고 두루뭉실 해 가지고는 모든 해결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생기기를 미식 축구 선수처럼 어깨가 크다구요. , 여자는 어때요? 아래 부분이 커요. 오늘 버스를 타고 오는데 좁은 자리에 떡 앉는데 말이예요. 남자가 둘이 앉으면 밑에 구멍이 생겨 주먹이 들락날락하지만, 남자들 사이에 여자를 뚝 박아 놓으면 어때요? 딱 맞지요? 이것은 서로서로 상대적인 존재의 이상형을 보충할 수 있게 된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로서의 존재 가치가 여자에게 있기 때문에 여자를 위하고, 여자 때문에 살고 여자 때문에 죽는 데 있어서 이상적 부부가 현현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천국은 위하여 사는 데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공식을 적용하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있어서 소위 애국자 혹은 충신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문제도 간단히 발견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태어나기를 대한민국을 위해서 난 사람이어야 돼요. 살기를 대한민국을 위해서 사는 사람, 죽기를 대한민국을 위해서 죽는 사람, 이는 애국자요 충신이다 하는 결론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박수)

 

이런 관점에서 때에, 이순신 장군 같은 양반들은 우리 대한민국에 있어서 애국자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이라고 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했어요. 이것은 천리원칙, 공법, 공식에 일치되는 선언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이 시간에 확실히 알아주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박수)

 

, 대한민국에서 애국자는 보다 더 대한민국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 다음에는, 이 세계에 종교의 종주(宗主)들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니, 석가니, 공자니, 마호메트니 해 가지고 4대성인을 꼽지요. 그러면, 그 성인 중에 도대체 누가…. 일등이 필요하다구요. 그 중심 되는 성인이 도대체 누구냐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천지창조의 공식을 적용하는 날에는 대번에 발견할 있어요. 보라구요. 여기에 기독교 신자 아닌 사람, 불교 신자, 유교 신자도 많이 왔을 줄 알고 있습니다. 먼저 사죄를 빌겠어요. 미안해요. , 성인 중에 어떤 분이 역사과정에 제일 위대한 성인, 중심적인 성인이 될 수 있느냐? 이제 말한 이 공식을 적용해서 우리는 대번에 찾을 수 있다구요.

 

그러려면 보다 인류를 위해 태어났고, 보다 인류를 위해 살고, 보다 인류를 위해 죽어야 돼요. 자기가 죽더라도, 자기를 죽는 자리에 보내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원수를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수까지 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박수)

 

그러면 진정히,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합쳐 통틀어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나는 태어났고, 살고, 죽는다고 한 그런 성인이 도대체 누구냐 할 때,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타당한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는 오기를 메시아로서 인류를 위해서 왔고, 30여 평생을 인류를 위해 살았습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았다구요. 죽기도 인류를 위해서 죽었어요.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 운명 도상에 있어서도 로마 병정과 그 원수의 일당을 대하여 ', 이놈아! 벌받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하고, 원수까지 위하겠다는 사상을 갖고 왔다 갔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하여 사는 공식의 원칙으로 보게 될 때 최대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이 이러한 천지의 공법을 세워 가지고 역사시대를 치리(治理)하 시는 분이시라면 이와 같이 보다 인류를 위하는 자리에서 간 사람일수록 그에게 역사를 움직이는 축복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명실공히 민주세계를 움직이는 세계적 주체 사상으로 등장한 사실은 가장 이론적인 결론으로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 성인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신() 중의 참된 신, 영원 불변한 신이 어떤 신이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을 적용하여 우리가 찾아본다면 인류를 보다 위하는 신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그 과정에 아무리 굴곡이 많다 하더라도, 탄식이 많다 하더라도, 수난길이요 한의 길이라 하더라도 그걸 넘으면서 인류를 위하겠다고 하는 신이 참된 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신이 어떠한 신이냐 하면 우리 한국 말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박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피조세계와 인류를 위해 있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그러한 이상적 원칙을 설정(設定)했기 때문에 그 원칙에 입각하여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역사과정을 통하여 변함없는 치리의 법도로써 섭리해 나오신 분입니다. 시종여일한 자리에 선 그분이 신 중의 신, 하나님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신이 계시는 본국, 본향의 곳이 있을 것이어늘, 그 본향(本鄕)의 곳이 어디냐? 그곳을 기독교인들은 천국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극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천국과 극락이라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천리원칙을 따라 구성된 세계요, 하나님의 대상권을 주체 대상 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조직된 곳입니다. 천국이 어떻더냐 묻는다면 천국은 위해 살다가 가는 영적인 곳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여러분들은 영계(靈界)의 사실을 모를지 모르지만 여기에 선 본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을 입어 가지고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만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계의 근본을 헤쳐 보니 세계의 조직원칙은 간단하더라 이거예요. 그 세계에는 하나님의 천지원칙, 이상적 근원인 위해 존재해 살던 사람만이 가는 곳이요, 그러한 내용의 조직으로 형성된 세계가 이상적 천국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박수)

 

참된 종교는 어떤 종교인가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본향입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본향의 곳을 향하여 돌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이 다름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사방으로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을 만든 것이 수많은 종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 장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서사방의 문화 배경 등이 다름에 따라 하나님은 비준(比準;비교의 기준)을 찾아 세우면서 높은 데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본향의 곳으로 지도하여야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 때문에 온유겸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라는 거예요.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 그것은 그 나라의 법도에 맞을 수 있는 사람을 훈련해야 되겠기 때문이예요. (박수)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게 , 그 절대적인 신이 역사과정에서 모든 고차적인 종교 앞에 가르치는 그 가르침이 위하여 존재하라는 사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역사과정(歷史過程)에서 지금도 역사(役事)하고 일하고 계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수 있습니다. (박수)

 

그러면 참된 종교, 사랑의 종교, 이상적인 종교, 행복의 종교, 평화로 이끄는 종교가 어떤 종교냐?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이런 종교가 참된 종교요 이상적 종교요, 만민을 평화의 곳으로 행복의 곳으로 이끄는 종교라는 결론도 여러분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 저녁 여기에 오신 여러분들, 자기가 천국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해 보라구요. 교회에 골백 년을 다닌다 하더라도 자기를 중심하는 마음 갖고 다니면 천국 못 가요. (박수) 천국에 못 갑니다. 구원 못받아요. 만일에 여기서 문 아무개가 말하는 것이 틀린다고 생각되면, 죽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천국 못 갑니다.

 

오늘날 참된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참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고, 참된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는 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보다 차원 높은 존재권을 향하여 자기 스스로를 투입할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이것은 재창조의 역사과정, 구원역사과정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수습되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 시간에 여러분이 발견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의 일생에 있어서 위대한 발견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박수)

 

여러분들이 50평생을 살았거들랑 25년 이상을 이 우주를 위하고 천륜(天倫)을 따라서 천리(天理)를 위해 살았다면 천국가는 거예요. 그렇게 살았으면 좋은 영계에 머물 수 있는 경계선을 넘어설 수 있지만, 50평생을 사는 데 자기 위주하고 산 것이 많게 될 때는 섭섭하겠지만 선한 본향의 세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흡수시키려고 하는 악의 본향의 곳,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서 이것을 발견하고 오늘 이 저녁부터 여러분은 대전의 한 시민으로서 과거에 자기 자체가 자기를 위하여 산 것이 많거들랑 그 생활을 청산하고 그걸 부정하고 전체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여생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다면, 여기서부터 지옥이 아니라 천상의 이상세계로 향진(向進)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수)

 

, 여러분들이 이제는 대개 알았을 줄 압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이제는 알았을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게 오늘 젊은 청년들에게는 기분 좋지 않은 말이라구요. 안 그래요? '얼마나 못났으면 위하여 살아! 자기 주먹을 휘두르고 눈을 똑바르게 해서 살아도 언제 눈알 빼 가고 코 베 갈지 모르는데 위하여 살아? 그런 수작 말아. 그건 종교인들이나 하지' 그러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예요.

 

하나님은 어찌하여 '위하여 살라'는 원칙을 세우셨는가

 

그러면 지혜의 되는 하나님은 , 어찌하여 이런 '위해 살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이 내용을 파헤쳐 보자구요. 그거 여러분 알고 싶을 거예요. 이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내가 질문 하나 하자구요. 여러분을 위해서 진짜로, 뭐 가짜가 너무 많으니까 진짜라고 해야겠어요. 여러분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백 퍼센트 은혜를 입혔다 이거예요. 그러면 은혜를 받은 여러분 자신은 본심으로 생각하게 될 때, 그 백 퍼센트의 은혜를 받았으면 한 50퍼센트는 포켓에 집어넣고 한 50퍼센트만 돌려주고 싶어요, 아니면 백 퍼센트 이상 돌려주고 싶어요? 여러분의 본심이 어떠해요? 여러 분의 본심은 여러분을 진정히 위하여 은혜를 입힌 그 사람 앞에 백 퍼센 트의 은덕을 졌거들랑, 백 퍼센트 이상을 갚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박수)

 

, 보라구요.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한테 백 퍼센트의 은혜를 입혔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본심을 가진 B는 진정히 자기를 위한 A한테 은혜를 갚는 데는 백 퍼센트 이상 110퍼센트로 돌려준다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져요. 그러면 110퍼센트를 진정히 BA를 위해서 돌려주었을때 A는 그것을 그냥 갖고 싫지 않아요. 120퍼센트로 돌려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 B쪽에서 130퍼센트 그러면 또 150퍼센트, 오고 갈수록 점점 커간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여기에서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다는 거예요. 영원이 여기에서 설정된다 이거예요. 이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니다. 영원의 개념이 성립될 수 있고, 영원이 존재할 수 있고, 영원이 시작할 수 있는 기준은 이 위하는 법도를 따르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저녁에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그 다음에는 영원 뿐만이 아니고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됨과 더불어 무엇이 벌어지느냐 하면 번창이 벌어지고 발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은 영원과 발전과 번창을 요구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이렇게 위하는 도리를 세우지 않을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음에 둘째 이유는 뭐냐? 오늘 저녁 여기에 오신 젊은 사람들, 정신차려서 들으라구요. 예를 들어서 한 집안에 여덟 식구가 있다고 하자구요. 어머니와 아버지 자녀들을 전부 다 합해서 여덟 식구가 있는데, 그 여덟 식구 가운데서 제일 꼬마동생이 있다고 하자구요. 이 꼬마동생이 여덟 식구 중의 그 누구보다도 그 가정을 위해서 아침 저녁, 1년이 가나 2년이 가나 10년이 가나 누구보다도 위해서 노력하는 입장에 선다면, 이 존재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가정의 중심존재로 등장한다 하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박수)

 

어머니도 '우리의 가계(家系)를 인계해 줄 수 있는 너다' 하고, 형님 누나도 '너밖에 믿을 수가 없다' 하게 될 때는,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가정의 중심존재로 등장한다는 거예요. ?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존재로서 위해서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누구보다 위하니까 하나님의 대상 존재가 되는 자격자이므로 중심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오늘날 대전 시장 하면 대전 시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 자기의 배를 위해서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대전 시민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다 대전 시민을 더 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가 자동적으로 대전의 중심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날 젊은 청년들이 이와 같은 천리의 원칙을 몰랐습니다.

 

위하는 있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패배자의 말로에 처한 인간상들을 우리는 직시하면서, 여기에서 새로운 천리원칙을 따라 하나님이 우주를 위하듯이 우리도 위할 수 있는 터전을 정하여 나가게 되면, 그것이 오래면 오랠수록 보다 차원 높은 데로 중심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박수)

 

여러분, 지금 이 세계에 문제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정치 철학 있어서 제일 난문제가 뭐냐 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 알아야 것은, 남한테 주관받는 것은 수치요 창피로 알고 나왔는데 천만에요. 자기를 진정 위할 수 있는 그분 앞에, 그 주체 앞에 주관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가치적인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영계에 가 보게 되면, 우주의 대주재(大主宰)되시며 위해 존재하는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서 주관받고 싶고, 천년 만년, 더 나아가 만만년을 주관받고 싶은 마음의 완전 통일적인 이상형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다음에 가지는 뭐냐?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은 생각하기를, 사랑하면 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과 이상이 어디에서 오느냐? 지금까지 인간들은 자기로부터 오는 줄 생각했다 이거예요. 이것이 큰 오해인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에서부터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생명보다도 귀한 사랑과 생명보다 귀한 이상의 세계는 자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온다는 거예요. (박수)

 

고귀한 사랑과 생명보다 더한 이상을 받으려니 머리 숙여 겸손히 위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데서만이 완전히 받을 수 있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와 같은 원칙을 세웠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오늘 저녁에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해 사는 데서만이 영원이 있고 위해 사는 데서만이 번창이 있는 것입니다. 위해 사는 데서만이 중심이 생기는 것이요, 위하여 사는 데서만이 통일이 벌어지는 것이요, 위해 사는 데서만이 영원한 사랑과 이상이 보증되는 이 놀라운 사실을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아심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설정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이 시간부터 가정에 돌아가 가지고 실천한다면 여러분은 절망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새로운 이상의 세계로, 새로운 사랑의 세계로, 새로운 행복의 세계로 전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여러분 앞에 전하는 바입니다. (박수)

 

통일교회는 어떤 곳이냐

 

, 그러면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이 통일교회인데 도대체 통일교회가 뭐냐? 이놈의 통일교회 때문에 지금 상당히 요란하다구요. 기성교인들은 통일교회 때문에 지금 상당히 야단한다구요. 그거 야단할 거 없다구요. 몰라서 그러지요. 자기 갈 길이 바쁜데 통일교회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계산착오를 하고 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들이 반대하더라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구요. 그가 하나 하거든 둘 하고, 그가 셋 하거든 넷 하고, 그가 다섯 하거든 열을 하고, 열 하게 되면 백 해라 이거예요. 이러면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예요. 그거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보다 위할 수 있는 대의(大義)에 입각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 자체의 몰락과 자체의 붕괴를 위하여 자기를 옹호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천리가 용허(容許)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떤 곳이냐? 이 지구성 어느 한 모퉁이에서 이와 같이 천륜의 도리를 발견해 가지고 개인을 대해 위할 수 있는 도리를 찾아 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신다면 바라실 것이 아니냐, 가정을 대해 그럴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그걸 하나님은 그걸 바랄 것이 아니냐. 민족과 국가를 대해 그럴 수 있는 민족과 국가가 있다면 하나님이 바랄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세계를 바라실 것이 아니냐. 이 멸망의 도상이 눈앞에 오는 이런 현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상실한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을 다시 찾아서 하나님의 심정의 근본을 헤쳐 보게 될 때, 이러한 도리로 이 세계를 찾고 수습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나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넘어 가지고 이런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교회다 이거예요. (박수)

 

여기 아무개는 30년 동안 배척받아 왔지만 기성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목사 벌받으라는 말을 내 한마디도 해보지 않았어요. 별의별 갖은 수욕을 당하고, 모략 중상을 다 퍼붓더라도, 내 갈 길이 바빴어요. 내 갈 길이 바빠요. 시간이 없어요.

 

개인을 위할 있는 길을 가지 못한 , 가정을 위할 수 있는 길을 다 가지 못한 나, 민족과 국가를 위할 수 있는 길을 다하지 못한 나, 세계 인류를 위해서 살 수 있는 길을 다 가지 못한 나, 이 우주와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길을 다 가지 못한 나, 그런 내가 이러고 저러고 큰소리할 수 있어요?

 

나를 뒤에서 몰아대거든, 나라에서 나라를 위하지 못한다고 세계로 쫓아내어 세계를 위해 살라고 하는 무리가 있거든, 나라보다도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귀가 있어도 못 듣고 눈이 있어도 못 본 체하며 나오다 보니 오늘날의 통일교회는 세계에 문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전통적 사상이 하늘로부터 왔고, 그 전통의 역사적 방향 위의 정수(精髓)를 통하여 갈 수 있는 천륜의 도리와 합할 수 있는 길을 가려면 이 길을 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다 보니….

 

오늘 대전 시민들도, '그 문 아무개, 뭐 희망의 날 무슨 대향연…' 그랬을 텐데, 뭐하러 이렇게 다 몰려왔어요? 그건 여러분의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와 같은 논리적 근거에 의해서 탈() 이데올로기시대에서 합() 이데올로기 세계로 들어가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가치가 몰락하는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을 상실해 가지고 절망 도상에 있는 이 인간들이 보다 차원 높은 가치의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해서 '나를 본받아라, 나를 배워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차원 높은 가치의 세계를 추구해 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그런 놀음을 해야 될 것이어늘 고맙게도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희망이 있는 나라인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뜻은 세계구원에 있다

 

오늘날 미국이 어찌하여 세계에서 코너에 몰리게 되었느냐?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미국을 하나님은 찾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버리고 미국을 위한다면 그런 미국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는 걸 알아야 돼요. 민주세계를 주도하던 미국이 세계를 위하여 누더기 옷을 입고 화살을 맞아 쓰러지면서도 '미국 국민이여, 세계를 구하소서!' 하고 울부짖는다면, 미국은 그야말로 60년도에 세계를 제패하고, 공산권은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린 지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천륜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미국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내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이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피어린 투쟁을 하다 보니 미국 국민에게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등장하게 되었어요. 이것은 이 문 아무개에게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천리의 비법을 따른 원칙의 도리에서 탈선하지 않고 순응하다 보니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우주의 그러하신 존재라고 하게 되면, 그런 분들을 후원해 주고, 국가와 세계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도 이 원리적인 관에 입각한 이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냐 하면 세계를 구원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종교를 세운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세계 만민을 구원하는데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통일교회 앞에 형님의 자리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형님과 같이 사랑하고 싶고 형님과 같이 모시고 싶다는 거예요.

 

여러분, 위하는 원칙의 도리를 망각하고 나서게 될 때, 그 종파는 깨지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깨지는 것이요, 그 국가도 약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남북이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이런 시기에 처하여 있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 전체가 단합하여 가지고 나라를 하나 만들어야 돼요. 잘잘못을 논할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도하는 분들은 어버이와 같이, 나라의 백성은 그 어버이 앞에 자식들과 같이 보다 위할 수 있는 차원 높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손에 손을 잡고, 그 부모가 잘못 가거든 자식이 화살을 맞으면서도 가르쳐 줘야 되고, 그 백성이 잘못하거든 지도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가르쳐 줘야 되겠다는 입장에서 그들을 품고 사랑하면서 지도해야 될 것이 기독교의 책임인 줄로 알고 있는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 과거지사를 논위(論謂)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보다 차원 높은…. 이 남한 백성은 북한 백성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들고 나서야 돼요. 내 생명을 다하고 내가 죽음의 갈래길을 가더라도 이 남한 백성을 위할 뿐만 아니라 북한 백성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이 마음이 어떤 힘보다도, 어떤 주의 사상보다도 강하게 된다면 이 나라 이 민족은 이들로 말미암아 통일될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위하여. 기독교의 구원목표는 뭐냐? 기독교회, 장로교회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목적이 아니예요. 들어 보라구요. 감리교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뜻은 장로교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요, 감리교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것이요. 통일교회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박수)

 

여러분,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알아보자구요. 유년주일학교 학생까지도 잘 아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 3:16)"고 했어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지, '장로교, 감리교를 이처럼 사랑하사'가 아니예요. 세상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구세주를 보냈다구요. 구교주(救敎主)가 아니라 구세주(救世主)라구요. 소련 국민을 공산당 마수에서 어떻게 구원하느냐? 아프리카의 저개발 민족, 미개 민족을 어떻게 구하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주님이여, 당신은 기독교만의 주님이 되고 싶습니까, 세계의 주님이 되고 싶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내가 믿는 바로는 틀림없이 장로교와 기독교를 다 버리더라도 세계의 구세주가 되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을 내가 들었어요. 만나 가지고 타진 했어요. 하나님을 대해서도 '당신이 기독교만의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인류의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하고 묻게 될 때, 기독교를 희생시켜서라도 인류를 구한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거라구요. (박수)

 

오늘 여기에 오신 대전 시민 여러분! 이와 같은 천리의 원칙을 알고 의분의 사나이가 되고, 의리의 사나이가 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고 참된 사람을 수호하고 참된 윤리와 가정적 배경을 수호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상적 개인, 그러한 이상적 가정, 그러한 이상적 종족,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 그러한 천국까지 통할 수 있는, 단계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전체까지 통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원칙적 도리가 어떤 것이냐, 발전적 과정이 어떠한 것이냐를 생각할 때, 결론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나는 상대를 위해 살고, 상대와 주체가….다시 말하면, 부부는 가정을 위해 살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 살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 살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나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세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하늘나라에 못 가요. 교회만 사랑해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30년 역사를 걸어 오면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대한민국은 이렇게 가야 된다 하고 말없이 오다 보니 정부가 우리를 후원하게 됐지요. 정부하고 통일교회하고 한패가 아니라구요. 민족이 가야 할 길이 그렇고 세계가 가야 할 길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대한민국 민족이 대한민국만을 위해 사는 민족이 되어 가지고는 아시아에서 고립돼요. 대한민국 민족이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민족이 되면 지금 당장에는 불우한 입장에 설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있는 한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필시 이 사상적 형태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이상세계를 현현시킬 것이 틀림없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래에, 20세기 25세기 30세기의 시대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이 사상을 가졌다면 세계가 이 사상을 따라서 오게 될 때, 그때에 가 가지고는 총칼 없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나라를 위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살아야 돼요, 세계를 위한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전세계는 분립된 국가군(國家群)을 유지할 수 있는 때가 지나갔습니다. 전체 체제로써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지 않으면 인류가 공동적으로 멸망한다는 이런 시점에 놓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국가의 사상이 세계를 자기 국가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그 길을 모색하지 않는 한 세계는 앞으로 소망이 없어요.

 

보라구요. 소련이 지금까지 공산주의의 주도권을 쥐고 나오면서, 소련 공산당들은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은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다구요. 공산당이라는 것은 슬라브 단일 민족을 중심삼은 세계 제패지, 딴 민족은 옹호하지 않는다구요. 이런 입장에 선 1957년에 중공과 소련은 분립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련이 국가 차원을 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공산당이라면 소련 국민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 인류를 구하겠다는 입장에 서야 할 것이 천륜이 갈 길인데도 불구하고, 못 갔기 때문에 여기서 부터 공산주의는 두 파로 갈렸습니다. 미국도 그런 운명에 섰습니다.

 

그러면 이제 세계적 판도로서 하나 남은 것이 세계종교인데, 이 세계종교가 지금까지 때를 맞지 못하고 비운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이 종교단체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 종교단체가 규합하지 않고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는 때요, 세계의 새로운 천륜의 도리를 바꿀 수 없는 때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면 그 종교는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되느냐? 위할 수 있는 개인을 넘어, 가정을 넘어, 종족을 넘어, 민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영계까지 넘어서 하나님까지 위할 수 있어야 돼요. 그것이 끝나면 그 하나님은 오히려 나를 위해 있는다는 거예요. 나와 전체를 위해 있는다는 거예요. 이 놀라운 사실을 몰랐다는 거라구요. (박수)

 

보다 위하고 절대적으로 위하고 끝까지 위하라

 

이런 관점에서 , 위할 수 있는 자만이 주인이 될 수 있고, 위할수 있는 자만이 상대를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결론을 여기에서 세울수 있다는 거예요.

 

부자지간에도 위할 있는 자리에서만이 영원히 공동 소유할 있다는 거예요. 부부지간에도 그러하고, 민족지간에도 그러하고, 세계 국가지간에도 그러하고, 영계와 육계도 그러하고, 이 피조물과 창조주간에도 이와 같은 원칙으로 설정되어야 거기에 불평불만이 없고, 어느 곳에든지 머물고 싶어 하는 본심이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몰랐습니다.

 

위하는 자만이 소유할 있기 때문에, 내 것은 그대의 것이요, 그 부부의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 된다는 거예요. (박수)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이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최고의 것을, 천지를 다 갖게 되더라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수중에 넣어 품에 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그 사랑을 독차지하지 않고는 안식하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사랑, 최고의 이상, 최고의 행복, 최고의 평화의 기준, 숨겨졌던 하나님의 그 내심적인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위해 존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무한한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랑을 비로소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다 싫어한다는 거예요. 거기서 인간의 양심은 비로소 '내가 영원히 안식할 지어다!' 하는 거예요. 이와 같은 자리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체의 생활권 내에서 세계를 넘어 그런 곳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유토피아적 천국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지상에 이루어지게 될 때, 이 세계를 통일교회에서는 지상천국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믿어 주기를 바래요. (박수)

 

여러분, 이 세계에 있어서 그러한 나라와 그런 세계를 이루어 가지고 천국이 그냥 그대로 옮겨졌다 하는 그 세계가 될 때, 그것이야말로 최대의 소망의 천국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것을 아시고, 위하는 데서만이 이것이 가능한 것을 여러분이 발견해 주기를 바래요. 두고 보라구요, 전부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에게 어디에서 살고 싶으냐 , 자기를 위하는 데서 살고 싶지요? 가정도 자기를 위하는 가정에서 살고 싶지요? 나라도 자기를 위해 주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요? 세계도 자기를 위해 주는 세계에서 살고 싶지요? , 하늘땅도 자기를 위해 주는 데서 살고 싶잖아요? 그게 천리라는 걸 알아야 돼요.

 

이러한 위대한 가치의 차원 높은 세계를 가지려면, 보다 위하고, 절대 적으로 위하고, 끝까지 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만이 보다 차원 높은 새로운 장래, 새로운 희망의 지상천국이 현현하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그러한 자리에 참석해서 하나님의 보다 차원 높은 사랑과 행복과 이상과 평화를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대전 시민 여러분과 대한민국에 보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축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박수와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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