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다 이루었느냐?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는 말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는 것은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버리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반항을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는 입장이지만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생명의 진(盡)한 것을 극복해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하늘 앞에 바치고 '다 이루었다'는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예수가 무엇을 중심삼고 '다 이루었다'고 했느냐? 십자가의 죽음 그 자체로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마음 가지고 바라던 참다운 아들이면 아들, 역사시대에 있어서 참다운 조상이면 조상들이 이러이러한 사람들로 나타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시대에 실패했던 모든 것을 종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진 나로서, 나는 역사시대의 승리자의 한 장면을 아버지 앞에 이루어 드려야 할 자가 아니냐. 이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했다고 봐야 한다는 거예요.
또, 그 다음에는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 곧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야 할 인류를 바라볼 때, 어디까지나 자기를 변명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과 다른 입장에서 자기는 이럴 수 있는 한 터전을 남겼기 때문에 세상 인간들 앞에 서서 '나는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자리를 책정했다'는 그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입장이 달랐다는 거예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신 그 이면에는 '사랑의 마음을 다해 가지고 당신 앞에 효도를 다하려고 했습니다' 하는 마음이…. 이러고 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구요? 무엇을 다 이루었다구? 예수님이 그 자리에 있어서 불효의 채찍을 남길 수 있는 한 순간이요, 하늘 앞에 6천년 생명의 원한이 조건을 남길 수 있는 무서운 자리를 넘어가는 그 심정, 불효자는 될 수 없다는 것을 각오했지만, 생명이 오락가락하고 정신이 오락 가락하는 찰나마다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고, 하늘을 반박할 수 있는 순간이 일신에 사무치는 것을 누구보다 두렵게 생각했던 예수가 아니었겠느냐.
그러한 싸움 가운데서도 지지 않고 하늘만을 위하여 충의 도리와 효자의 도리를 심고 가는 여기에서 생명이 다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자기 소신의 목적을 끝까지 관철한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은 맞는다는 것입니다. (64권 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