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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찾아서 (말씀선집 제18권 11편)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6.06.11|조회수0 목록 댓글 0

말씀선집 제18권 11편

 본향을 찾아서 (훈독본) 9764

 

1967년 5월 28일(日), 전 본부교회.

여러분, 고향은 자기가 머물렀던 곳, 떠나면 그리운 곳,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입니다. 

    본향을 그리워해 온 인간

만일 그 고향이 만민이 그리워할 수 있고 만복이 깃들 수 있는 본향이라면,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가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곳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즐기면서 그 사랑 속에 잠겨 사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역사가 지금까지 흘러오는 동안 그 중에는 수많은 선지자들도 있었고, 또 선지자를 대표하는 성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만민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본향 땅이 이곳이다.' 라고 선포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모든 성현들도 지나갔고 그 성현들이 태어났던 고향도 잊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향이란 행복을 노래하고 부모의 사랑과 가정의 사랑에 잠겨 천지만물을 주관하면서 천지가 기뻐하는 가운데 영원토록 살고 싶은 곳입니다. 

    누구나 본향을 찾기 위해 나간다

예수님도 본향을 창건하기 위해서 오셨으나 그 본향을 창건하지 못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예수님도 천국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왔다 간, 아무리 훌륭한 선지선열 성현군자라 하더라도 그 한 곳을 보지 못했고, 그 한 날을 맞지 못했으며, 타락한 선조로부터 악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들도 본향과는 아직까지 인연이 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본향을 찾기 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욕심 많으신 하나님

벌레들도 사람과 같이 호흡기관, 소화기관 등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갖추고 있는 조화스런 모든 기관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여러분은 그 세계가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욕심이 없다면 그런 것들을 지으셨겠습니까?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욕심이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기에 예수님도 욕심이 무한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계에 무한히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분이기에 가슴속에 품고 있던 욕심을 다 채우는 날에는 깨야, 쏟아져라! 하며 한바탕 재미를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욕심이 많기 때문에 선생님도 욕심이 많습니다. 
  

바다를 봐도 거기에는 별의별 어류들이 다 살고 있습니다. 또 지구도 크지요? 선생님이 수많은 나라를 다녀 보니 지구상에는 가지각색의 인종이 살고 있는데 참 흥미로웠습니다. 또 그러한 지구에 비하면 태양은 얼마나 큽니까? 태양은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데 그 태양이 얼마나 크겠느냐는 것입니다. 


    큰 마음을 가진 인간은 귀한 존재
우주 만상 가운데에서 인간만이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마음을 펼쳐 놓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대한민국을 천개 만개 몰아넣고, 온 우주까지 몰아넣어도 다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제일 욕심 많은 하나님까지도 살짝 모셔들여서 편안히 눕혀 드릴 수 있는 아량을 가진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고귀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구나 하고 선생님은 과거에 생각했습니다. 만일 인간에게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그 인간은 비참할 것입니다. 아버지인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녀로서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들의 양심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 못 할진대, 과연 양심이 작용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 목적의 최종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결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 속에 있는 타락하지 않은 사랑을 점령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아버지와 아들


많은 종교의 도주들이 찾아가는 곳은 마음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곳입니다. 만일 그들의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는 하나님을 확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확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또한 가르쳐 줄 때에도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것은 유언비어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종교 가운데 기독교를 중심삼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인간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나밖에 없다.' 고 선포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말은 아버지의 뼛골을 받고 아버지의 혈육을 받아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 아버지의 피가 동하고, 살이 엉클어지고, 뼈가 마주쳐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자식이 슬퍼하면 부모는 더욱 슬퍼하고 자식이 좋아하면 부모는 더욱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그런 부자의 인연은 세상의 그 어떤 공식이나 법도로도 끊을 수 없으며, 어떤 권세나 명예로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만대(萬代)를 다스릴 수 있는 특권적인 중심 사명을 갖고 왔다는 사실을 만유 앞에 천명하는 것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목적

예수님이 신부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는 신랑이지만, 혼인 잔치가 끝나고 난 후에는 형제입니다. 남자에게는 형이 되고 여자에게는 오빠가 된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만 망상하는 종교는 이상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입체적인 세계의 내용을 갖고 횡적, 평면적인 세계의 실상을 토대로 한 종교가 아니면 이상적인 종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입체적인 세계와 관계를 갖고 몸은 평면적인 세계와 관계를 가져서 두 세계에 이상적인 터전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형제나 남매관계가 갈라질 수 있습니까?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피가 같기 때문에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나 남매관계가 더 좋은 것입니다. 

 

만민은 그 살아가는 환경이 다를 뿐이지,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흑인 여자와 결혼해서 살면서 흑인 아이를 낳고, 그러다가 다시 백인 여자와 결혼해서 백인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백인의 아버지도 되고, 흑인의 아버지도 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아버지는 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세계 인류가 한 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한 형제라는 심정이 우러나게 하지 않으면 세계인의 통일은 불가능하고, 만대의 규합은 불가능합니다. 

  
    우주 만상이 작용하는 목적

 

사람의 마음은 운동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창조원리를 들어서 잘 알겠지만,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기준이 되어서 잘 주고 잘 받으면 힘이 생기게 됩니다. 힘이 생기게 되면 서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면 번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 혼자서는 절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이 들어맞았다는 것입니다. 좋아하게되면 까닭 없이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몸을 끌고 다니는데 '이 사람 아니면 나 죽는다.' 는 식으로 죽음을 뛰어넘어 몸을 끌고 다닙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듯 작용하는 근본 목적이 무엇이냐?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다 보태가 위해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것은 전부 다 이익을 보기 위해서이지 절대로 손해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평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은 평화와 화목, 충(忠) 화(和)인 것입니다. 평등은 수평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수평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하 관계, 고저 관계에 있던 것이 어떤 작용을 거쳐야만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고저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높은 곳에서 받아서 낮은 곳에 보태는 작용을 거쳐야만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수평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부터 힘을 보급받아야 됩니다. 자기 자체 내에서 보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보급을 해 주는 곳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급을 해 주는 곳은 높은 곳입니다. 높으면서도 나쁜 곳이 아니라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만민이 전부 가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곳, 다시 말하면 만민이 이상(理想)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이상은 뭐냐? 잘 먹는 것도 아니요, 잘 자는 것도 아니요, 참사랑입니다. 

    인간의 이상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역사 과정에서 본연의 마음을 중심삼고, 본연의 마음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단 하루도 안식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인간은 하나의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데는 두 사람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딸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자면 사람도 모여야 되고 춤과 노래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만 하면 되지 무슨 노래가 필요하겠느냐.' 고 할지 모르지만, 감정을 넣어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래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 '가만히 서서 있으면 됐지 춤은 왜 추어야 하느냐?’ 할지 모르지만 춤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을 위해서이겠습니까? 형제를 위해서이겠습니까?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겠습니까? 나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형제자매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모두가 다 나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나 때문에 세상에 나타났고, 하나님도 내 속에 들어 있고, 세계도 내 손에 달려 있으니 오직 택함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내가 주체이니만큼 주체와 대상이 잘 주고 잘 받으면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된 자리에 서게 되면 그도 나요, 나도 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법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선후 관계가 완전히 하나되어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주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활되고 중생되어야 본향의 아들딸이 된다

 

부모의 심정을 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람의 생명은 반드시 부모의 사랑을 거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는 기준이 있어야만 부모의 심정을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사랑이냐? 참다운 사랑의 주인공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다운 부모의 심정, 참다운 부모의 사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중생할 수도 없고 부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을 찾아야 하느냐? 대개 여러분들은 상대의 사랑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고 부활되고 중생되어야 비로소 본향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부모를 만났다고 해서, 부모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다시 태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세계로부터 찾아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부모가 타락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향 땅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뒤넘이쳐서 다시 한번 어머니 복중에 들어갔다 나오는 중생의 과정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천진난만한 어린애와 같은 입장에서부터 자라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려면 어머니 복중에 들어가는 입장에 서기 전에 아버지 뼛골에 들어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1960년 전까지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척 보면 심정적으로 다릅니다. 

    본향을 찾아가야 할 인간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본향 땅이기 때에 본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완성하여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지 못했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이 승인할 수 있는 참다운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참다운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세계적인 승리를 하여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를 내 동포와 같이 사랑하여 탕감의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혹은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의 접붙이는 진리는 참진리

 

끝날이 되면 기독교에서는 주님이 오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오신다면 남자로 오시겠습니까, 여자로 오시겠습니까? 「남자로 오십니다.」 주님은 남자로 오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허깨비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작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닭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격입니다. 종자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롭게 접을 붙어야 합니다. 종류가 비슷하기 때문에 접은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의 접붙이는 진리가 참진리입니다. 접을 붙이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싹둑 잘라 버리고 새로운 순을 갖다 접붙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생명력과 새로운 씨족을 접붙여서 자기의 생명 전체를 유지하는 중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는 위해 주는 종교로서 그런 역할을 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개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은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어머니입니다.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땅 위에서 여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밭이라고 하고 남자는 하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들은 생명의 씨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 그 자체보다도 생명의 씨로 돌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주님을 통해서 빚어져야만 본향 땅에서 살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내가 되어야만 역사 앞에서 비로소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 부를 수 있고, 이러한 입장에 선 개인들을 형제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형제가 모여 친척을 이루고, 이런 친척이 모여 종족을 이루고, 이런 종족이 합해지면 민족이 되고, 이런 민족이 합해져서 국가가 되고, 이런 국가들이 합해져서 비로소 세계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을 중심삼은 한 뿌리에서 생겨난 세계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세계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세계가 될 것이요, 하나님을 위주로 한 땅, 즉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본향입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있다는 자각

 

나라는 존재는 우주적인 자아이므로 만유의 전체는 나 한 사람의 완성을 위해서 역사와 더불어 동원되었고, 피조만물 전체도 나 한 사람의 완성을 위해서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 각자가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는 나 때문에 태어났고, 나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크고, 하면 할수록 더 발전하고, 하면 할수록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하는 데는 본향 땅을 중심삼은 사랑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나에게 원수가 있겠어요? 원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손에 못을 박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원수라 할지라도 원수로 생각하지 않고 저들은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이 한때에는 나를 학대하는 골짜기에 서 있지만 결국은 나를 위해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박대해서는 안 된다. 저들을 박대하게 되면 내 사명이 완결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한 것은 너희들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도 복귀노정을 가시지 못합니다. 인간들 때문에 수고했고, 인간들 때문에 6천년 역사노정에서 슬픔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 자신도 본향에까지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하면 이단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이다.' '당신은 나 때문에 있고, 내가 이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도 나 때문이다.' 라고 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가는 것이지 아버지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아의식을 더욱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기 완성의 목적-우주 완성

 

나 하나를 완성시키고, 나 하나를 위해 주고, 나 하나의 뜻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사람의 마음 자리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돌도, 이 산에 있는 풀도, 나무도 전부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관념이 다르고, 문화의 배경이 다를지라도 모두가 나의 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를 중심삼고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그런 우주권 내에 들어간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몰림의 길을 간다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 자리는 얼마나 행복한 자리이겠습니까?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천주를 완성하는 데도 하나의 세포들이 모여서 형성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천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눈을 통하는 피가 '아이고, 난 눈에만 가지 절대 저 발끝에는 안 갈래.' 이러겠어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신을 돌아서 때가 되면 저 밑창까지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 필요합니다. 

 

모든 존재의 시작부터 존재의 끝까지 전부가 나 하나만을 위해서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모든 것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나가야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온 우주가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 하나 완성과 더불어 우주가 완성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가 되어 사는 곳이 본향

 

만민은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본심이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도록 작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백 퍼센트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의 자세를 갖추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은 본래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의 왕자와 공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모든 소유와 하늘나라의 모든 운명이 우리 것이 되며,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연도 내 것이요, 아버지의 모든 소유도 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하에 갖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즉 사랑이 있고, 사랑 이외의 모든 부대 요건까지 전부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비로소 우리 인간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요, 우리의 본향인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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