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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축약본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2권 - 1. 하나님의 날의 본의

작성자만리향|작성시간24.08.04|조회수33 목록 댓글 1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2집 1편. 축약문&

 


                          하나님의 날의 본의

 

                                                                          1969년 1월 1일(水), 전 본부교회.


* 이 말씀은 제2회 하나님의 날에 하신 것으로, <성화> 제85, 86, 87호(1969년 2, 3, 4월호)에 연재된 말씀을 정리하여 실은 것임. 제목은 편집자가 붙였음.

 

   '하나님의 날'의 본의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타락한 후손들과 더럽혀진 인류역사의 흔적을 터전으로 한 하나님의 날은 아무리 깨끗하게 준비하더라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본연의 기준적인 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모아 이날을 기념하고, 그 가치를 높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수의 핏줄을 이어받은 타락한 후손에 불과합니다. 이날은 그런 타락의 핏줄을 끊어 버리고, 즉 가지를 끊어 버리고 뿌리를 중심삼고 접붙이는 입장에서 기념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니 본연의 뿌리와 가지가 일체가 되어서 자연적인 입장에서 축하할 수 있는 날이 못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지극히 서러운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날'의 본 뜻


   하나님의 날에 대한 역사적 동기를 찾아보면, 1968년에 통일교회에서 제정해서 생겨난 날이 아닙니다. 이날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지 하나님의 창조이상 가운데 있었던 날이요,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등장할 수 있을 때 자동적으로 생겨날 수 있었던 날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소원의 터전 위에 만물을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어진 만물을 보고 지극히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이루어지게 되면 만물 자체가 사랑의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날을 축하하고 높인다는 의미에서 선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조의 위업에 모든 기쁨과 찬양의 여건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와야 할 재림의 날


    타락한 사람들이 소망의 한 날, 희망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연의 사람을 중심삼고 본연의 주인, 본연의 부모, 본연의 자녀, 본연의 종족, 본연의 민족, 본연의 국가, 본연의 세계와 하나님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오시는가? 본연의 개인, 즉 본연의 남성을 찾아 나오십니다. 또한 그 본연의 남성을 통하여 본연의 부모를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 남성의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본연의 남성으로서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의 인연을 맺으려고 신랑 신부라는 이름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발전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종교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아 해결점을 바라고 있는 것이 예수님 이후 2천년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한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재림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그날은 본연의 한 존재인 재림주, 즉 본연의 남성을 세우는 날이며, 나아가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의 소망을 전부 규합하여, 미래의 어느 역사 과정을 거쳐서 천년이 걸리더라도 이 문을 통과하겠다는 정성된 마음의 방향을 세워 놓아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교회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남성과 여성이 되어서, 잃어버린 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을수 있는 책임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고는 아무리 세계를 통일한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타락 전의 본연의 남성의 자세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연결된 남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하는 가운데 여성을 찾아 하나의 참된 부모의 인연을 이 땅 위에 탄생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종교가 되지 않고는 이 우주의 종교를 통합할 수 없고, 종교의 목적을 추구해 온 인류를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내용을 결정짓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에 참부모가 나왔다면 그 부모를 중심한 자식이 나오려면 얼마나 걸려야 하겠어요?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워 부모를 소망으로 삼고, 종족을 소망으로 삼고, 민족을 소망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부모를 가르쳐 주었고, 형제를 가르쳐 주었고, 이스라엘 선민사상을 가르쳐 주었고, 이루어야 할 나라와 천국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찾아 세운 부모의 날

 
   인간의 시조가 타락하였기에 지금 이 지구상에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직계 자녀는 없고, 전부 양자들만 있습니다. 하나님도 천지간의 위업을 상속해 주어야 할 텐데, 핏줄이 다른 양자만 있으니 쉽게 상속해 주고 싶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난데없이 생겨난 남의 자식에게 천지간의 위업을 상속해 주고 싶겠어요? 그것은 본래 창조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천지창조의 원칙은 본래의 아들딸에게 위업을 상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아들딸을 찾기 위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친아들의 사명과 자격을 갖추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일등 신부는 재림주님의 아내가 될 사람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그러한 아버지 어머니가 나온 다음에는 그분들의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 이 아버지 어머니가 나오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은 통일교회에서만 갖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역사상에 부모의 날이 생겨난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류의 승리를 찬양하고, 악에 대하여 공의의 법도로 심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우리의 부모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서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날을 선포한 것이 부모의 날인 바, 이날이 바로 음력으로 3월 초하룻날인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 과정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발견한 위대한 것 중의 하나가 부모의 날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고 하셨습니다. 부모는 한 분밖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절대적인 구원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잃어버렸던 아들딸을 구해 주는 구주의 사명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를 양자에서 친자
로 입적시키는 수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명을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수속과 절차를 가르쳐 주는 교파가 나와야 하는데, 그 교파가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세계적인 참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할 우리


   인간은 윤리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만사를 참과 거짓으로 구별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정말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병신이고 못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 문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욕을 먹었지만 그렇게 욕을 많이 먹든, 찌부래기가 됐든 뭐가 되든, 하나님께서 의논할 사람이 우주에 나 혼자밖에 없다면, 나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천지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깨어서 하나님과 가만가만 의논한 것이 꼭 맞아 들어가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몇 천억의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무슨 공식이니 원리니 하지만, 즉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니 파스칼의 원리니 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것이 전부 하나님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화를 발전시켜야 될 의논의 대상이 있어야 되므로, 그 원리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서 누구 누구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다는 것이 귀하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 선생님의 일에 함께 한 동참자이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대부분 사령관의 작전 계획과 명령이 들어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령관의 지휘 밑에서 이긴 것이지만 졸병에게도 이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문 선생님과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동참만 해서 되느냐? 동참을 했으면 선생님과 같이 영광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즉 여자가 시집갔다는 말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집을 갔으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약속하여 한 일은 넘어져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북 김일성에게 가서 술 한잔 하면서 슬쩍 이북의 전문서를 훔쳐 가지고 이북 정권을 몽땅 팔아 하나님께 바쳤다면 잘한 일이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은 참부모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올 자가 없다.' 고 말하는 그 자리는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이상의 자리입니다. 부모 이상의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냐? 메시아는 메시아인데, 형님 오빠격의 메시아가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격의 메시아입니다. 성신은 어머니요, 예수님은 아버지입니다. 즉 예수님은 참부모의 자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를 통해 자녀를 축복하여 하나님의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누가 해주는 것인가? 부모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해줄 수도 있지만,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처녀 총각들, 내가 결혼 축복을 안 해주겠다고 하면 전부 가슴이 철렁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리를 알고 나면,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라고 해도 못 합니다. 선생님이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참부모의 이름 아래서는 원수도 용서해 줄 수 있어


   신약성서에서는 타락한 이 세계의 인간들은 전부 고아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애당초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친자식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것인데, 원수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기에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아와 같은 여러분들 앞에 부모를 찾을 수 있는 한 날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세상의 단 하루, 부모를 찾은 한 날이란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기쁜 날은,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라도 붙들고 춤출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천주의 부모의 관문을 통과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졌었습니다. 그런 기쁨과 소망으로 가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부모를 만나는 환희의 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원수일지라도 배고파하는 것을 보면 먹여 주어야 되고, 슬퍼하면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수를 용서해 주게 되면 하나의 민족은 물론이요, 세계의 어떠한 국가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리고 그 부모의 인연을 무한히 고대하던 한 날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는, 자기 곁에 있는 원수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천 명의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부모가 환생해 나올 때에는, 내 한 생명을 노리던 원수 같은 존재는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생기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길


    캄캄한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캄캄한 밤을 지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침의 광명한 햇빛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한 발 앞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은 밤중을 거친 사람이야말로 광명한 태양이 떠오르면 누구도 맛볼 수 없는 희열을 맛보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태양을 만든 하나님이 바라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칠흑 같은 어둠의 맛을 백 퍼센트 보고 광명한 빛의 위대함을 흠모하는 사람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불행한 사람을 더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불행의 기준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돌려놓으면 그 자리도 행복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고난과 역경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그 길을 통해서 반대의 영광된 자리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고생이 끝날 때까지 남는 자가 되면 세계의 모든 왕권을 혼자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고생길을 진실한 기쁨으로 지배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사람은 모든 불행을 쉽게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영원한 천국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누구든지 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격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느냐? 여러분은 이날을 중심삼고 심정의 기점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새로운 통일사관, 새로운 통일철학,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건이 아시아의 한반도를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이상 하셨던 최종적인 소망의 기점이요, 심정의 기점입니다. 또한 타락 세계를 해원성사할 수 있는 기점인 것입니다. 이 기점에서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아 너와 나 자신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승리의 패권을 쥐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여, 천리의 대도를 걸어가는 당당한 아들딸의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에 만세에 맺힌 타락의 한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6천년간 원수였던 사탄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은 부모의 날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치고 7년노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 1968년 1월 1일을 기하여 하나님이 이 자리에 내려서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는 7년노정이 끝나지 않고는 내려서실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주관권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아담 해와가 축복을 받아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본 터전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면 부모, 자녀, 만물이 있게 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기준에 올라섰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문 선생이 죽는다 해도 우리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찾아온 것은 종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란 한 사람만 세워서 역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벨도 한 사람이요, 노아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세례 요한, 예수님도 한 사람, 재림주님도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상대할 수 있는 기준은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중심을 세워 상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조건 잡을 수 없는 첨단의 한 점에서만 상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사람을 중심삼고 심정을 겨루어 나온 것이 6천년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내용을 알고 기도해야 됩니다. 
   봄 기운이 점점 무르익어 생명력을 지닌 씨앗에서 푸른 싹이 트기 시작하고, 이것이 점점 푸른 녹음을 이루는 것과 같이, 이제는 복귀의 노정에 촉진을 가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속도를 가속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들의 가슴은 부풀어 있어야 됩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믿는다고 하면 전부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형사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무서운 것이 없어요. 지금 당장 죽더라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죽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또다시 재림부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천국과 낙원의 중간에 중간 영계를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 중에도 거기에 머무는 무리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원
통하고 비참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애를 바치면서 이 기준을 세워 나올 때,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철창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향하여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인 신앙을 이어받아야 할 사람들이 통일가의 자녀들이요, 이 길을 가는 식구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사상에 불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문화의 사상적 근원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새로운 통일문화의 이념이 발전하고 있는데 이 전통적인 사상의 기원은 어디에 있느냐? 바로 하나님의 날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찾아오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수고하셨느냐? 나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수고하셨느냐? 그의 역사적인 심정, 시대적인 심정, 미래적인 심정을 통해야 합니다. 수고한 아버지를 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정과 내용을 알아 위로해 드리고, 나아가 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통일교회의 사상적인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날과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 만물의 날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물이 6천년간 탄식했고, 하나님의 아들딸과 수많은 인류 선조들이 6천년간 신음하면서 수고했습니다. 나아가 인류의 부모인 예수님과 성신까지도 2천년 동안 수고했고, 인류의 아버지이시고 참원리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까지도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볼 때, 오늘 우리는 6천년의 고비를 전부 한데 묶어 넘겨야 하겠습니다. 
   
   그 축복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난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참다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자녀로서 참부모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소유할 수 있고, 그 가정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생활 전통을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은 통일교회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필요한 날입니다. 여러분들의 조상을 중심삼고도 필요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타락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복귀하여 찾았다는 승리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이러한 날을 대해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가정의 전통을 세우라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이 되고, 그 가정을 중심삼아 자녀와 만물이 규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틀이 무너졌으므로 역사는 그 기준을 복귀하는 것이고, 그 기준은 역사 이래 모든 성현들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소망의 기준에 서게 되면 공자, 예수, 석가보다도 몇 배 나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인 기준에서는 아버지격이 될는지 모르지만, 육적인 기준에서는 아버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육적인 기준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자리입니다. 실상은 예수님보다도 나은 자리인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예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격인 입장에 서지만, 육적인 면에서는 여러분은 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여러분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귀한 황태자로 태어났어도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만큼 자랐으니, 자신이 하늘의 왕자이고 하늘나라의 무리인 것을 알아서 자기의 모든 환경에 대한 예법을 갖추어, 자기의 본분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가정의 전통을 수립해야 되겠습니다. 또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가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자녀의 날을 중심삼고서는 하나의 질서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날을 기념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의 어떤 명절보다도 정성을 들이고 기뻐하며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전통의 기원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날들을 축하하는 전통을 세워 자기의 천추만대 후손에 이르도록 천적인 가법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부모의 날에서 자녀의 날로 직행하고, 여기서 만물의 날로 직행하여, 하나님의 날까지 직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의해 침범받지 않은 고차원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한 하나의 회로를 조성해야 됩니다. 이런 전통의 첫 기초 발판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명절입니다. 
  
   6천년 만에 비로소 찾아진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천지의 운세가 총집결하는 날입니다.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이날을 맞이하고 기념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날은 정성들여 맞아야 한다


   그러면 정성을 얼마만큼 들여야 되겠느냐? 만일 4천년이 지난 오늘, 그날이 이루어져서 이날을 기념하는 식장에 아브라함이 참석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처럼 입던 옷 그대로 입고,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참석하겠어요? 말할 수 없는 정성을 들이고도 송구스러워 옷깃을 여밀 것이며, 금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참석할 것입니다. 
   이날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고, 가정도, 나라도, 세계의 모든 의인들이 희생당해 왔습니다. 이러한 모든 전체의 운세가 판가름되는 엄청난 무대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식전에 참석하게 된다면 어떠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참석하겠어요? 아마 옷이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입을 것이요, 목욕을 한다면 새벽같이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 들여 이날을 기념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2천년간 고대해 나오던 이날의 의식에 참석했다면 어떠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4천년 동안 수많은 억조창생이 피와 눈물을 흘리며 찾아 나온 이날을 맞이할 때, 물론 하늘 앞에는 면목이 없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겠지만, 이날을 찾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처럼 뼛골이 우러나고 세포가 약동하는 자리에서, 이 한 날을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맞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하늘의 심정을 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심각한 태도로 이날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날에 정성들인 그 정성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매일의 생활에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정성을 세워 가정의 전통으로 이끌어 가면 여러분의 아들딸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좋은 위치에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2차 7년노정에는 이 기준에 올라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아들딸 3명을 세워서, 여러분의 자식이 복중에 있을 때부터 그들이 굴복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복귀원리에서도 배워서 알겠지만, 이렇듯 복귀의 길은 피나는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따라갈 수 있는 길인데, 여러분처럼 늑장부리면서 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과 같은 이러한 축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재산 등 모든 조건을 걸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러한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전부다 잃어버린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러한 날을 맞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이러한 날을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2권 원문&



                                  하나님의 날의 본의


                                                                                                       1969년 1월 1일(水), 전 본부교회.
* 이 말씀은 제2회 하나님의 날에 하신 것으로, <성화> 제85, 86, 87호(1969년 2, 3, 4월호)에 연재된 말씀을 정리하여 실은 것임. 제목은 편집자가 붙였음.

   '하나님의 날'의 본의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타락한 후손들과 더럽혀진 인류역사의 흔적을 터전으로 한 하나님의 날은 아무리 깨끗하게 준비하더라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본연의 기준적인 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모아 이날을 기념하고, 그 가치를 높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수의 핏줄을 이어받은 타락한 후손에 불과합니다. 이날은 그런 타락의 핏줄을 끊어 버리고, 즉 가지를 끊어 버리고 뿌리를 중심삼고 접붙이는 입장에서 기념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니 본연의 뿌리와 가지가 일체가 되어서 자연적인 입장에서 축하할 수 있는 날이 못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지극히 서러운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날'의 본 뜻


   하나님의 날에 대한 역사적 동기를 찾아보면, 1968년에 통일교회에서 제정해서 생겨난 날이 아닙니다. 이날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지 하나님의 창조이상 가운데 있었던 날이요,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등장할 수 있을 때 자동적으로 생겨날 수 있었던 날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소원의 터전 위에 만물을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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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지어진 만물을 보고 지극히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이루어지게 되면 만물 자체가 사랑의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날을 축하하고 높인다는 의미에서 선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조의 위업에 모든 기쁨과 찬양의 여건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만물을 전부 그 휘하에 넣어 가지고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동기가 무엇이었느냐, 즉 하나님이 무엇을 원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다음 직계 자녀인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모시는 가정을 편성할 수 있는 날을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날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축복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날 이전에는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은 사실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횡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는지 모르지만, 전후 좌우 사방과 연결되고 하늘과 땅이 연결된 종적인 관계, 즉 입체적인 관계에서는 기쁜 날이 못 되었습니다. 또 일방적인 면에서 자기 생활에 보탬이 되는 부분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의 기쁨에 보탬이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곧 타락한 세계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사는 사람은 기쁨이 중도에서 끊기기 때문에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되고, 수고한 후 조금 기쁨을 느낀다 하더라도 기쁨은 금방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생애를 백년으로 잡으면 그동안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이 오륙십이 되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은 권세와 경제력을 갖추어 '이만하면 나는 행복하다.'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행복함 속에 자신의 마음이 딱 뻐그러지도록, 또한 자신을 망각할 정도로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내가 기뻐할 때 하늘과 땅이 호응하여 기뻐할 수 있고 동조하여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혹은 자기의 주위를 중심삼고 기뻐했지, 역사와 시대와 미래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와야 할 재림의 날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은 어떤 기쁨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느 한 시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이상의 근본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에는 전체가 기뻐하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이 창조 이후의 역사에 반드시 등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날이 유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날이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제일 귀중한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니 본연의 가정을 잃어버렸고, 본연의 나라를 잃어버렸고, 본연의 세계를 잃어버렸고, 본연의 천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본연의 천지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본연의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처해 있는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타락한 사람들이 소망의 한 날, 희망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연의 사람을 중심삼고 본연의 주인, 본연의 부모, 본연의 자녀, 본연의 종족, 본연의 민족, 본연의 국가, 본연의 세계와 하나님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오시는가? 본연의 개인, 즉 본연의 남성을 찾아 나오십니다. 또한 그 본연의 남성을 통하여 본연의 부모를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 남성의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본연의 남성으로서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의 인연을 맺으려고 신랑 신부라는 이름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발전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종교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아 해결점을 바라고 있는 것이 예수님 이후 2천년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한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재림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그날은 본연의 한 존재인 재림주, 즉 본연의 남성을 세우는 날이며, 나아가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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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기틀, 즉 인간이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 과정에 재림의 날이 기필코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제2의 소망으로 고대해 나오는 중심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 중심 종교인 기독교를 믿는 수억의 성도들이 정성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본연의 부모의 기준만 통과하면 되느냐? 안 됩니다. 본연의 부모의 기준을 통과하면 본연의 형제, 본연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본연의 종족, 본연의 나라, 본연의 세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중심이 와 가지고 다시 출발해서, 그 중심이 본연의 부모가 되어 새로운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만 남겨 놓고, 역사적으로 왔다 간 모든 선조들을 전부 심판하면서 정리해 나갈 것입니다. 육신은 없어지더라도 영은 영원히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지옥의 구렁텅이도 정리하여 없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의 소망을 전부 규합하여, 미래의 어느 역사 과정을 거쳐서 천년이 걸리더라도 이 문을 통과하겠다는 정성된 마음의 방향을 세워 놓아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교회냐

   모든 종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참된 부모의 인연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통과해서 본연의 인연, 즉 본연의 참다운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를 복귀하려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의 최종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끝날의 세계 문화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교회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남성과 여성이 되어서, 잃어버린 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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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책임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고는 아무리 세계를 통일한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타락 전의 본연의 남성의 자세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연결된 남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하는 가운데 여성을 찾아 하나의 참된 부모의 인연을 이 땅 위에 탄생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종교가 되지 않고는 이 우주의 종교를 통합할 수 없고, 종교의 목적을 추구해 온 인류를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내용을 결정짓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에 참부모가 나왔다면 그 부모를 중심한 자식이 나오려면 얼마나 걸려야 하겠어요?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워 부모를 소망으로 삼고, 종족을 소망으로 삼고, 민족을 소망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부모를 가르쳐 주었고, 형제를 가르쳐 주었고, 이스라엘 선민사상을 가르쳐 주었고, 이루어야 할 나라와 천국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를 대표한 기독교를 중심삼고 주님이 오시게 됩니다. 주님, 즉 참부모를 중심삼고 심판의 기준만 형성되면 일시에 아들딸을 택해 세울 수 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도 편성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위해서, 또는 형제의 사랑이나 교회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형제는 사랑하지 못하면서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는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의 인연을 맺고 부모의 자리를 거친 후 민족의 환영을 받고 국가 형성의 인정을 받아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국을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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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느냐? 이러한 다리를 놓아 주지 않고서는 천국에 함께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통일교회도 이런 다리를 놓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를 놓는 데는 참부모님을 맨 첫 번째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찾아 세운 부모의 날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그 부모를 따라가는 사람은 전부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탄은 인간 조상을 유린하여 거짓 부모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도 전부 거짓 부모의 자식들입니다. 
   그 어떤 주권자나 군왕, 또는 역사적으로 시대를 호령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거짓 부모의 피를 받고 태어난 의붓자식입니다. 이 의붓자식은 적자가 태어나면 상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법에도 직계의 아들이 있을 때는 양자가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적자가 없을 경우에만 할 수 없이 상속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조가 타락하였기에 지금 이 지구상에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직계 자녀는 없고, 전부 양자들만 있습니다. 하나님도 천지간의 위업을 상속해 주어야 할 텐데, 핏줄이 다른 양자만 있으니 쉽게 상속해 주고 싶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난데없이 생겨난 남의 자식에게 천지간의 위업을 상속해 주고 싶겠어요? 그것은 본래 창조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천지창조의 원칙은 본래의 아들딸에게 위업을 상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아들딸을 찾기 위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친아들의 사명과 자격을 갖추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일등 신부는 재림주님의 아내가 될 사람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그러한 아버지 어머니가 나온 다음에는 그분들의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 이 아버지 어머니가 나오는 날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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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은 통일교회에서만 갖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역사상에 부모의 날이 생겨난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류의 승리를 찬양하고, 악에 대하여 공의의 법도로 심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우리의 부모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서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날을 선포한 것이 부모의 날인 바, 이날이 바로 음력으로 3월 초하룻날인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부모의 날은 필요 없는 날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자녀를 낳았다면 그 자녀들이 아담과 해와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날이 부모의 날이고, 하나님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뭐 계산이 틀려서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결혼을 하면 아니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결혼이 그래 나쁜 것입니까? 
   '사랑'이라는 말을 지금까지는 천박한 말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연의 사랑은 절대로 천박한 것이 아닙니다. 천리에 위배되는 자리에서 사랑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천박한 입장에 떨어진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천박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원리원칙에 어긋난 자리에 설 때 그것이 천박하고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정당한 사랑의 권내에 들어오게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역사 과정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발견한 위대한 것 중의 하나가 부모의 날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고 하셨습니다. 부모는 한 분밖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절대적인 구원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잃어버렸던 아들딸을 구해 주는 구주의 사명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를 양자에서 친자
로 입적시키는 수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명을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수속과 절차를 가르쳐 주는 교파가 나와야 하는데, 그 교파가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이 이 모든 것을 자랑한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자랑할 만한 사실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도 바보입니다. 지금 나에게 천년만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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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했던, 역사 이래 하나밖에 없는 상이 내려졌는데, 그 상을 받아들고 부끄러워서 '아이 모릅니다.' 하고 받은 상을 깔고 앉아 버리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상을 받으면 높이 쳐들고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보는 사람들도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처럼 위대한 것을 발견했기에 큰소리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참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할 우리

   인간은 윤리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만사를 참과 거짓으로 구별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정말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병신이고 못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 문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욕을 먹었지만 그렇게 욕을 많이 먹든, 찌부래기가 됐든 뭐가 되든, 하나님께서 의논할 사람이 우주에 나 혼자밖에 없다면, 나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천지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깨어서 하나님과 가만가만 의논한 것이 꼭 맞아 들어가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
습니다. 그것은 몇 천억의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무슨 공식이니 원리니 하지만, 즉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니 파스칼의 원리니 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것이 전부 하나님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화를 발전시켜야 될 의논의 대상이 있어야 되므로, 그 원리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서 누구 누구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참부모님을 발견했으면 발견한 그 자체로 끝내지 말고, 참부모로서의 권한을 갖출 수 있는 세계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겠습니다. 원수까지도 참부모에 대해서는 '옳습니다.'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자들도 참나무 몽둥이에 가시가 돋친 듯 해야겠습니다. 어떤 때에는 여자들이 참 무섭습니다. 남편은 덩치가 굉장히 크고, 부인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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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틀림없이 애기를 낳거든! 그런 것을 보면 여자들이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굳세고 무섭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무서움을 가장 잘 타는 사람이 여자이기도 합니다. 
   통일교회의 특허품이 무엇이라고요?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누가 몇천만 불, 또는 몇억만 불을 준다고 팔라 하면 내어 주겠어요, 안 내어 주겠어요? 절대로 내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다는 것이 귀하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 선생님의 일에 함께 한 동참자이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대부분 사령관의 작전 계획과 명령이 들어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령관의 지휘 밑에서 이긴 것이지만 졸병에게도 이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문 선생님과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동참만 해서 되느냐? 동참을 했으면 선생님과 같이 영광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즉 여자가 시집갔다는 말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집을 갔으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부모의 날에 관한 특허권이 선생님에게 있다는데 여러분들은 거기에 찬동해요, 안 해요? 여기에 찬동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통일교인들은 손을 들라고 하면 버릇이 되어서 잘 들지요. 진짜든 가짜든 믿어 주면 됩니다. 진짜로 믿어 주는 사람은 망하지 않고, 진짜로 믿는다고 손을 들었다가 믿음을 받을 자리에 서지 못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여러분을 진짜로 믿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진짜로 믿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해 놓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여러분의 복이 전부 선생님에게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어때요? 이런 일은 할 만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계약을 할 때 계약서의 조항을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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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하는 측이 손해 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짐을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내가 그렇게 믿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약속한 그 가치 기준만큼 빼앗기고 알몸뚱이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의 모든 조건들을 거두어 참된 사람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정말로 좋아요?「예.」그렇다면 됐습니다. 나와 완전히 하나됐으면 제일 중심의 것이 되기 마련입니다. 선생님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고맙지만, 눈치보아서 하는 수 없이 좋아하는 사람은 도둑놈의 사촌 족보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무슨 장사하는 사람 같군요. 그렇지만 장사를 해도 서로 좋아하도록 해주면 되지요. 또 사탄들의 것을 빼앗아 하나님을 부자 만들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부자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을 속여 먹어도 괜찮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기가 좋아서 약속하여 한 일은 넘어져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북 김일성에게 가서 술 한잔 하면서 슬쩍 이북의 전문서를 훔쳐 가지고 이북 정권을 몽땅 팔아 하나님께 바쳤다면 잘한 일이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은 참부모를 통해서

   여러분은 공상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공상보다는 행동을 많이 하고, 공상을 하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공상을 해야 됩니다. 실행할 수 있는 공상을 해야지, 실적 없는 공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공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험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들로 왔으면,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들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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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아버지 어머니 되는 분들은 아들의 이름을 거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올 자가 없다.' 고 말하는 그 자리는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이상의 자리입니다. 부모 이상의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냐? 메시아는 메시아인데, 형님 오빠격의 메시아가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격의 메시아입니다. 성신은 어머니요, 예수님은 아버지입니다. 즉 예수님은 참부모의 자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참된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된 가정과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를 만들어 세계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 뜻이 깨졌기 때문에 2천년을 연장하여 신랑이라는 남성 아담 앞에 신부라는 여성 해와를 다시 찾아, 한 날을 이루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사고를 냈기 때문에, 본연의 어머니 아버지 기준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인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섭섭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벌써 하나님 앞에 전매특허
를 냈습니다. 
   따라서 통일교인이라면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이상을 주고 행복을 주고 화평을 주고, 또한 세상 어떤 곳에서도 찾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권위와 승리의 요건을 갖추어 준다면, 그로 말미암아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자기 부모보다도 통일교회의 문 선생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는 반드시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교리가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를 통해 자녀를 축복하여 하나님의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누가 해주는 것인가? 부모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해줄 수도 있지만,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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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처녀 총각들, 내가 결혼 축복을 안 해주겠다고 하면 전부 가슴이 철렁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리를 알고 나면,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라고 해도 못 합니다. 선생님이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부모가 시집을 보내 준다고 해도 싫어서 본부교회로 도망와서 숨어 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올드 미스라는 것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여 시집보내 주겠다면 좋아해야 할 텐데, 왜 도망을 치느냐? 그것은 문 선생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내용을 지녔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참부모의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80살이 넘은 할머니들도 축복 못 받고 죽으면 천국 못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몇 천리 밖에 남자가 있고 몇 만리 뒤에 남자가 있어도 둘이 명주실에 매어서 축복의 조건이라도 받고 싶어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일을 해내야 하니 팔자가 사나운 사람입니다. 

    참부모의 이름 아래서는 원수도 용서해 줄 수 있어

   신약성서에서는 타락한 이 세계의 인간들은 전부 고아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애당초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친자식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것인데, 원수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기에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아와 같은 여러분들 앞에 부모를 찾을 수 있는 한 날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세상의 단 하루, 부모를 찾은 한 날이란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기쁜 날은,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라도 
붙들고 춤출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천주의 부모의 관문을 통과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졌었습니다. 그런 기쁨과 소망으로 가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부모를 만나는 환희의 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원수일지라도 배고파하는 것을 보면 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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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야 되고, 슬퍼하면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수를 용서해 주게 되면 하나의 민족은 물론이요, 세계의 어떠한 국가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리고 그 부모의 인연을 무한히 고대하던 한 날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는, 자기 곁에 있는 원수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천 명의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부모가 환생해 나올 때에는, 내 한 생명을 노리던 원수 같은 존재는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아무리 물고 뜯고 싸우더라도 참부모라는 이름을 중심삼고는 그럴 수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그리고 하나님의 날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도 사람을 보고 '나를 닮았구나.' 하시며 웃으실 것입니다. 창조의 동기를 놓고 보면 내가 하나님을 닮았다고 하지만, 나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님이 나를 닮은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도 어떤 사람이 '저 애는 엄마 닮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만약 첫 아들을 낳아서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아들이 이웃 동네 김 서방 닮았다.'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아무리 못생겼어도 자기 아빠를 닮았다고 해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길

   사랑은 복귀의 윤리 법도를 지배하고도 남음이 있는 권위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한 자리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든 아버지가 아들을 닮았다고 하든, 거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닮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자기를 닮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뜻을 안 지 몇 년도 안 되어 '아이구, 통일교회 힘들어서 못 따라가겠구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원리적인 위치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통일교회가 자기를 위한 교회인가, 하나님을 위한 교회인가? 하나님을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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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면 일단 어느 기간까지는 자기를 위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좋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캄캄한 밤을 지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침의 광명한 햇빛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한 발 앞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은 밤중을 거친 사람이야말로 광명한 태양이 떠오르면 누구도 맛볼 수 없는 희열을 맛보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태양을 만든 하나님이 바라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칠흑 같은 어둠의 맛을 백 퍼센트 보고 광명한 빛의 위대함을 흠모하는 사람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불행한 사람을 더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불행의 기준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돌려놓으면 그 자리도 행복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고난과 역경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그 길을 통해서 반대의 영광된 자리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고생이 끝날 때까지 남는 자가 되면 세계의 모든 왕권을 혼자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고생길을 진실한 기쁨으로 지배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사람은 모든 불행을 쉽게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영원한 천국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누구든지 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는 것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저런 사람과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결혼을 하여, 하나님이 나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기 책상 위에 사과 10개가 있다고 합시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집을 수 있는 혜택을 입은 사람이 제일 나중에 나쁜 것을 집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남은 사람들이 서로 좋은 것을 집으려고 싸우게 될 때, 그 나머지의 것이 전부 자기 몫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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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교회 문 선생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못난 사람입니다.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누구에게 변명 한마디 안 했습니다. 내가 욕먹을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를 놓고 아무리 욕을 하더라도 그 욕이 절대로 나에게 오지 않는 것입니다. 때가 바뀌면 음지가 양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오늘날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등 세상의 언어가 너무나 많은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타락된 것에 대한 응보인 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상 어디에도 짐승들은 다 같은 소리로 통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 말이 다릅니까? 선생님이 이런 것을 뜯어 고치려니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1차 선민사상이 깨어지고, 2차적으로 발전시킨 기독교의 역사적인 무대가 제2의 이스라엘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편성할 수 있는 선민사상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님과 함께 박자를 맞추어 화동할 수만 있다면, 세계는 순식간에 통일되어 하나의 평화의 세계, 사랑의 세계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 틀어지게 되면 천년 비운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 선생이 고생을 해 나온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잘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잘 되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천하의 누구도 갖지 못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날들과 일치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날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날을 찾아서 내가 움직이면 하나님이 움직이고, 내가 돌아가면 참부모님도 돌아간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신념을 가지고 당당히 하나님의 왕자 왕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리에 들어서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느냐? 여러분은 이날을 중심삼고 심정의 기점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새로운 통일사관, 새로운 통일철학,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건이 아시아의 한반도를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이상 하셨던 최종적인 소망의 기점이요, 심정의 기점입니다. 또한 타락 세계를 해원성사할 수 있는 기점인 것입니다. 이 기점에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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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날을 중심삼아 너와 나 자신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승리의 패권을 쥐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여, 천리의 대도를 걸어가는 당당한 아들딸의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에 만세에 맺힌 타락의 한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6천년간 원수였던 사탄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은 부모의 날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치고 7년노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 1968년 1월 1일을 기하여 하나님이 이 자리에 내려서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는 7년노정이 끝나지 않고는 내려서실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주관권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아담 해와가 축복을 받아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본 터전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면 부모, 자녀, 만물이 있게 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기준에 올라섰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문 선생이 죽는다 해도 우리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때

   이제까지는 종적인 역사였기에 예수님은 상위요, 성신은 하위였습니다. 종적인 역사는 한 점을 중심삼고 맞이하는 것이므로 조금만 틀려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한 점, 즉 초점을 만드는 일을 해왔지만, 지금은 뜻이 이루어지는 때가 왔기 때문에 횡적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제 아담을 중심삼은 해와,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의 횡적인 사랑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사방을 대할 수 있는 상대적 자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동방에서 책임을 못 하면, 서방을 중심삼고 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한국에서 책임 다하지 못하면 어디 가서든지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찾아온 것은 종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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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란 한 사람만 세워서 역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벨도 한 사람이요, 노아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세례 요한, 예수님도 한 사람, 재림주님도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상대할 수 있는 기준은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중심을 세워 상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조건 잡을 수 없는 첨단의 한 점에서만 상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사람을 중심삼고 심정을 겨루어 나온 것이 6
천년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내용을 알고 기도해야 됩니다. 
   봄 기운이 점점 무르익어 생명력을 지닌 씨앗에서 푸른 싹이 트기 시작하고, 이것이 점점 푸른 녹음을 이루는 것과 같이, 이제는 복귀의 노정에 촉진을 가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속도를 가속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들의 가슴은 부풀어 있어야 됩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믿는다고 하면 전부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형사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무서운 것이 없어요. 지금 당장 죽더라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죽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또다시 재림부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천국과 낙원의 중간에 중간 영계를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 중에도 거기에 머무는 무리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원
통하고 비참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애를 바치면서 이 기준을 세워 나올 때,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철창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향하여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인 신앙을 이어받아야 할 사람들이 통일가의 자녀들이요, 이 길을 가는 식구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사상에 불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제는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전개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가 한 대 맞게 되면 천지가 진동되고, 사방이 바뀌어질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뜻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날개 돋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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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겠어요? 또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기뻐하는 것을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옛날에는 그러한 날이 나오지 않아 하나님이 행세하실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쫓기고 몰림받았던 것입니다. 


    통일문화의 사상적 근원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새로운 통일문화의 이념이 발전하고 있는데 이 전통적인 사상의 기원은 어디에 있느냐? 바로 하나님의 날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찾아오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수고하셨느냐? 나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수고하셨느냐? 그의 역사적인 심정, 시대적인 심정, 미래적인 심정을 통해야 합니다. 수고한 아버지를 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정과 내용을 알아 위로해 드리고, 나아가 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통일교회의 사상적인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날과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 만물의 날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물이 6천년간 탄식했고, 하나님의 아들딸과 수많은 인류 선조들이 6천년간 신음하면서 수고했습니다. 나아가 인류의 부모인 예수님과 성신까지도 2천년 동안 수고했고, 인류의 아버지이시고 참원리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까지도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볼 때, 오늘 우리는 6천년의 고비를 전부 한데 묶어 넘겨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야 이미 죄악 가운데 태어난 죄인이니만큼 불행 속에서, 그리고 원망스런 자리에서 살아야 당연하다.' 고 생각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래서는 안 되겠고, 참부모님이 그래서는 안 되겠고, 참다운 자녀들이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기준을 지닌 전통 앞에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은 뻔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전통을 중심삼아 하나님의 날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가정에는 하나님의 날이 임한 것이요, 참부모의 인연과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만물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봄날을 맞이한 가정이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만, 축복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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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으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권위를 계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이 되어야만 여러분들 각자가 선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방에 벌여 놓은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입니다. 이 가정들이 하나님과 일치될 때는 선생님 가정의 중심적인 기준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들은 하나님의 날을 맞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하나님의 날을 세운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고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축복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난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참다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자녀로서 참부모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소유할 수 있고, 그 가정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생활 전통을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은 통일교회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필요한 날입니다. 여러분들의 조상을 중심삼고도 필요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타락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복귀하여 찾았다는 승리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이러한 날을 대해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가정의 전통을 세우라

   그러기 위해서는 아브라함보다도 나아야 되고, 야곱보다도 나아야 되고, 모세보다도 나아야 되고, 예수님보다도 나아야 되며, 성신보다도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과거에 왔다간 사람들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선조들은 부모의 자리를 중심삼고 천국의 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여 나왔습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소망이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소망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이 소망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모든 조상들 앞에도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왔다간 선지선열들, 공자나 맹자, 석가 등 모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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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들도 결국은 이 기준을 찾아 나왔고, 소망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이 되고, 그 가정을 중심삼아 자녀와 만물이 규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틀이 무너졌으므로 역사는 그 기준을 복귀하는 것이고, 그 기준은 역사 이래 모든 성현들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소망의 기준에 서게 되면 공자, 예수, 석가보다도 몇 배 나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인 기준에서는 아버지격이 될는지 모르지만, 육적인 기준에서는 아버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육적인 기준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자리입니다. 실상은 예수님보다도 나은 자리인 것입니다. 
   축복을 누가 먼저 받았느냐? 예수님과 여러분을 놓고 보면, 여러분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광의 자리를 먼저 상속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예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격인 입장에 서지만, 육적인 면에서는 여러분은 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여러분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귀한 황태자로 태어났어도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만큼 자랐으니, 자신이 하늘
의 왕자이고 하늘나라의 무리인 것을 알아서 자기의 모든 환경에 대한 예법을 갖추어, 자기의 본분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가정의 전통을 수립해야 되겠습니다. 또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가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자녀의 날을 중심삼고서는 하나의 질서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날을 기념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의 어떤 명절보다도 정성을 들이고 기뻐하며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전통의 기원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날들을 축하하는 전통을 세워 자기의 천추만대 후손에 이르
도록 천적인 가법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부모의 날에서 자녀의 날로 직행하고, 여기서 만물의 날로 직행하여, 하나님의 날까지 직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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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의해 침범받지 않은 고차원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한 하나의 회로를 조성해야 됩니다. 이런 전통의 첫 기초 발판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명절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이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격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날을 맞이하여 기념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활 전체를 이날을 중심삼고 결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충성과 정성을 다 모아서 이날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날을 축하할 수 있어야 하늘이 세우신 명분과 예법을 지키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6천년 만에 비로소 찾아진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천지의 운세가 총집결하는 날입니다.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이날을 맞이하고 기념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69년의 하나님의 날을 지내고 365일이 지난 1970년도의 하나님의 날을 맞이할 때는 부족함이 없는 나 자신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365일 동안 계속해서 정성들이는 마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정성들여 맞아야 한다


   그러면 정성을 얼마만큼 들여야 되겠느냐? 만일 4천년이 지난 오늘, 그날이 이루어져서 이날을 기념하는 식장에 아브라함이 참석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처럼 입던 옷 그대로 입고,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참석하겠어요? 말할 수 없는 정성을 들이고도 송구스러워 옷깃을 여밀 것이며, 금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참석할 것입니다. 
   이날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고, 가정도, 나라도, 세계의 모든 의인들이 희생당해 왔습니다. 이러한 모든 전체의 운세가 판가름되는 엄청난 무대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식전에 참석하게 된다면 어떠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참석하겠어요? 아마 옷이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입을 것이요, 목욕을 한다면 새벽같이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 들여 이날을 기념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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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예수님께서 2천년간 고대해 나오던 이날의 의식에 참석했다면 어떠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4천년 동안 수많은 억조창생이 피와 눈물을 흘리며 찾아 나온 이날을 맞이할 때, 물론 하늘 앞에는 면목이 없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겠지만, 이날을 찾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처럼 뼛골이 우러나고 세포가 약동하는 자리에서, 이 한 날을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맞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하늘의 심정을 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심각한 태도로 이날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수고하며 정성들여 온 기준에 상당하는 수고와 정성을 들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 행사가 있으면 그 행사를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들이며 준비했습니까?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제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이 스스로 제물 될 양을 길러서 제사 드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행사 때면 전부 나의 주머니를 통해서 행사를 치르고 있으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제사장이 자기의 돈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제사입니다. 그렇게 무성의하게 정성도 들이지 않고 귀한 날을 맞이하다가는 여러분의 후손이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는 하나님도 떠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하나님의 날이 어디 있으며, 참부모님이 떠난 부모의 날이 
어디 있으며, 참다운 자녀의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을 중심삼고 내 정성의 인연을 억천만세까지 남기겠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날들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써 대해야 하는 날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몰랐을지라도 앞으로는 이런 입장에서 정성을 들여 주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날에 정성들인 그 정성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매일의 생활에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정성을 세워 가정의 전통으로 이끌어 가면 여러분의 아들딸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좋은 위치에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2차 7년노정에는 이 기준에 올라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아들딸 3명을 세워서, 여러분의 자식이 복중에 있을 때부터 그들이 굴복할 수 있는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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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 나가야 합니다. 복귀원리에서도 배워서 알겠지만, 이렇듯 복귀의 길은 피나는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따라갈 수 있는 길인데, 여러분처럼 늑장부리면서 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과 같은 이러한 축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재산 등 모든 조건을 걸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러한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전부다 잃어버린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러한 날을 맞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이러한 날을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7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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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훈독왕 | 작성시간 24.08.09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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