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68권 2편
창조와 우리들
1973.07.29 (일), 한국 전본부교회
아버님, 당신이 이상하셨던 그 길은 평화스럽고 고요하고 사랑스럽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사랑의 맥박이 충만한 곳인 것을 아옵니다. 그곳을 흠모하며 얼마나 당신이 얼마나 수고의 길을 참아오셨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당신이 원하시고 믿을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의 대상적 존재인 아들딸을 찾기를, 또 만나기를, 세우기를, 사랑하기를, 영광받게 해주시기를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니까?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갖고 당신은 이땅 위에 만민을 찾아오셨지만 어느 한 날 인간들이 당신 앞에 그런 모습을 갖추어 '당신의 영광의 실체가 여기 있사와 봉헌하오니 받으시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 국가, 세계가 여기 있사오니 받으시옵소서' 한 적이 있사옵니까? 당신이 자랑할 만한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었습니까?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피를 흘린 그날부터…. 노아의 120년간 지루한 역사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심정의 뜻 앞에 또 한번 함의 실수라는 원통한 사실이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시의 행각의 노정에서 축복의 고향을 더듬는 그 자리에, 3대 축복을 다짐하는 그 자리에 제물 실수가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이 하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에서와 하나될 수 있는 본향땅의 터전을 못 가진 것이 한이 되었던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 야곱이 21년 탕감 해원복귀의 노정을 마치고, 천사와 싸워서 이기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물건을 에서 앞에 바치고 난 후에 환영을 받았듯이, 오늘 기독교 신자, 혹은 모든 종교인들은 그러한 운명길을 이어받아 다시금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고, 종교인들은 자기에게 귀하다는 모든 것을 세상에 넘겨주지 않고는 하늘 앞에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개인적인 입장만을 생각하던 모세는 반석이타(磐石二打)라는 실수를 범한 서글픈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서글픔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려운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의 어려움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못한 나머지 반석이타를…. 그 사실이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갈라지게 한 기원이 되고, 오시는 주님 앞에 십자가의 형틀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원한의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배운 우리들은 얼마나 얼마나 심각한 자리에서 공의의 뜻을 따라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옵니다. 저희들은 또한 공적 노정의 길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이스라엘 민족뿐만이 아니라 유대교를 대표한 대표자로서, 양세계의 교량의 역할을 한 승리적 실체로서 민족의 혜성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제사장이 되어야 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자로서 이 땅에 임한 예수님을 맞아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가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왕궁을 대신한 영광의 자리임에 틀림없는 것이요, 그가 자란 가정이 말할 수 없이 비천하고 형용할 수 없이 비참하더라도 그는 왕가의 일편의 내용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른 세례 요한은 들려오는 소문과 자기의 식견을 가지고 예수를 자기 동생의 입장에서 생각한 나머지 하늘의 권위를 망각했던 사실을 저희들은 배워 왔습니다. 그 한 사람의 행동이 이스라엘을 사망의 세계로 몰아넣었고, 유대교를 영영 예수의 원수로 등장할 수 있는 자리까지 세워 놨다는 이 놀랍고도 두려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아버지.
그리하여 비참으로 시작하여 영광으로 끝내려 한 예수의 일생은 비참으로 시작하여 비참으로 끝났고, 그 대를 이어온 기독교는 비참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길을 연이은 2천년 역사를 거쳐, 피의 강줄기를 이어서 지금까지 왔다는 사실을 아는 저희들은, 기독교를 믿고 간 선조들의 애혼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뜻을 전통적으로 이어받아야 할 기독교 자체는 이미 붕괴의 일로에 머물러 있고, 희망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자탄과 절망 가운데서 있사옵니다.
하늘이 이렇게 만들어 준 동기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불철주야 하늘을 부여안고 기도하고, 역사적인 회개를 하고, 시대적인 회개를 하고 통곡을 하여, 그 함성으로 하늘이 용서와 권유와 보호의 책임을 다짐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이 주시는 권고를 받아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기독교의 운명을 지켜 보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한가를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는 통일교회를 책임진 자요, 여기에 모여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통일교회 교인이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식구가 되는 것이 행복할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공의의 법도를 바로잡아야 할 천도와 천의를 가르쳐 주고 가려 주는, 민족의 한과 세계적인 한을 앞에 놓고, 베옷을 갈아입고 재를 깔고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민족을 붙안고, 세계를 붙안고, 민족적 대제사장권을 조성하여 세계 앞에 희생의 제물로 바쳐져야 할 책임을 할 수 있는 민족이 필요한 이때에, 그런 민족이 없고 그런 무리가 없는, 사막과 같이 메마른 이 천지에 하늘의 기수로서 등장한 우리들이 그 책임을 하겠다고 쌍수를 들어 맹세하고 나선 지 벌써 수십 성상이 지났습니다. 혈기와 기세가 당당하던 청년시대는 지나갔고, 중년시대에 접어들어 동녁을 바라보지 않고 석양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청년시대에도 동쪽을 향하여 전진해야 되겠고, 중년시대에도, 노년시대에도 동쪽을 향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이상의 광명한 그날을 위하여 전진하고, 더 어려운 무대를 향하여 전진해야 할 것이 하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던 저희들의 갈 길인데도 불구하고, 동녘을 뒤에 두고 서쪽을 향하여 가는 무리는 자멸의 길을 가고, 스스로 파탄의 길을 간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8개월을 지나 고국 산천을 찾아들게 될 때에 여기에서 소망과 희망의 오아시스가 싹트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명을 제단에 놓고 절규하여야 할 회개의 함성을 드높이 올리지 않고는 안 될 것을 아는 저로서 불쌍한 민족 불쌍한 이것들을 아버지께서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옵니다. 아버지, 버리지 마시옵고 이날 이 시간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길을 따라나선 자들도 외로운 자들이옵니다. 핍박받는 길을 따라온 자들도 핍박받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이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고 아버지께서 가누어 주시옵소서. 그래도 이들에게는 하늘이 보기에 하늘의 진노를 내릴 수밖에 없는 니느웨 성에 요나를 보내 준 거와 마찬가지로, 이들 앞에 새로운 권고와 충고를 허락받을 수 있는 오늘이 있게된 것을 감사히 알고, 옷깃을 여미고 하늘 앞에 무릎을 꿇고 천성의 자비를 고대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을 알도록 이 시간 다짐시켰습니다.
이제 제가 망하더라도 제가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망하고 민족이 망하고 국가와 아시아가 망할 수 있는 연관적 인연이 남아 있고, 세계가 망할 수 있는 연관적 인연이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연관적인 책임이 연하여 있기 때문에 이 아침도 불초의 마음들을 다 모아….
과거의 부족한 것을 뉘우치면서, 살아 있는 동안 부모 앞에 효도 못 하고 부모를 보내 버리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선 통일교회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부터라도 과거를 청산하고 하늘 앞에 당신의 사랑의 인연이 여기에 임하기를 바라는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길은 민족적 수난의 길뿐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수난의 길, 싸움의 길이 저희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애절한 애원의 소리와 세계 민족들의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이때에 얼굴을 돌이키고 세계를 향하여 동정의 손길을 펴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는 당신이 불쌍하신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벨베디아의 땅, 당신의 자녀들이 먼 그곳에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여, 이 한국을 불쌍히 보시옵고, 아시아를 불쌍히 보시옵고,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을 들이미시어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계획하고 창안하고 시작하신 분이 당신이기 때문에 일을 성사하는 분도 당신이 아니옵니까?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일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끝맺어지지 못할 때는 사탄의 조롱이 남아질 것이고, 사탄의 저주가 남아질 것을 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의 아들딸의 위신이 어떻게 되며 하늘의 위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3년 7월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다음 안식일을 맞는 날에는 이들이 희망 가운데 솟구쳐 오르고 새생명의 불길을 받아 하늘의 아들의 권위를 갖고, 삼천리 반도는 물론이요, 세계 만민앞에 당당하게 재출발할 수 있는 무리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위한 종교도 아니요, 그 누구의 편을 옹호하기 위한 종교도 아니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하나님의 편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있는 이 자식도 당신을 위하여 출발하였고, 당신의 편을 위하여 태어났사옵니다. 이런 입장에서 당신의 편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때가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저희의 가는 앞길에 길이 가중하기를 바라는 소자의 마음을 긍휼히 보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디나 이 몸이 필요한 것을 바라볼 때, 몸은 하나이고 둘이 아니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야 할 운명길이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고통스런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영 되시는 아버지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오니 제가 없을 때라도 이곳을 지키시옵고, 이 시간은 배가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소망하고 하늘의 영광의 실적을 가지고 당신 앞에 자랑을 하고, 만나는 자리에서 칭송을 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겠다고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고 출발하는 선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여기에 서 있는 이 아들의 소원인 것을 아시옵소서.
창조와 우리들의 운명은 공동적인 운명인 것을 아옵니다. 지금까지 그래도 당신을 위하여 피땀을 흘렸고, 당신을 위하여 사탄세계의 조롱을 받은 이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유종의 미를 가꾸어 세계도상에서 그 실적과 숨은 전통을 자랑할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한국 식구들이 되고,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전체를 당신의 흡족한 뜻으로 받아 주시옵기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