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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후예들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3부 14장)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2.02.15|조회수45 목록 댓글 0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 14장

          다윈의 후예들

          (Darwin's Descendants)

 

  20세기 첫 60년 동안수십만 명의 미국인들과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출산하여 그들의 가정을 이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민족의 유래인종 혹은 종교 때문에 강제로 선정되어 강제로 불임을 당하고 다수가 정신병원에 잘못 수용되었으며결혼을 금지당하고 심지어 주정부로부터 독신생활을 강요당했다미국에서 어떤 인종 그룹을 제거하려는 전투는 총을 지닌 군대도 아니고 또한 소수의 혐오집단도 아닌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오히려 이런 치명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쟁은 “우생학”이라 불리는 사이비과학 운동인 인종차별주의자와 결탁한 존경받는 교수엘리트 대학구성원들부유한 기업가들 그리고 정부 공무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 목적은 아주 우수한 북유럽 인종을 만드는 것이었다.

      에드윈 블랙(Edwin Black). 『약자에 대한 전쟁』. 2012.

 

  그 어떤 것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창세기 1장에서 밝힌 성경의 말씀을 무너뜨린 진화론보다 더욱 심하게 구약성경의 페기를 추진하지 않았다. 만일 성경이 그런 잘못된 기록으로 존재한다면, 전체 모세 5경은 신뢰성이 부족해진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도덕적인 우화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막 부족들에게서 발생한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만일 구약 성경의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창조주이며 아버지가 아니라면, 인간의 정신적 본질 즉 인간이 자신의 언어로 물질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신적 영역의 존재를 시험하게 된다. 이런 정신적 영역은 인간역사의 슬픈 모습을 보여주었던 창세기에서 묘사된 데미우르게(물질적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의 작업에서 많이 제거되었다.

 

우생학의 탄생

 

  1798년 영국인 식민지 개척자인 토마스 맬더스(Thomas Malthus)는 "인구 원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유한한 혹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는 식량 공급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인구를 제한할 것이며 파국적인 대기근과 전쟁을 유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구 통제를 옹호하고 심지어 여러 예를 들어 자선단체의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대를 이은 가난을 유지시키며 결과적으로 인류 발전의 자연적 계획에 거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①

 

  1850년도에 불가지론자(무신론자의 한 부류)인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스(Herbert Spencer)는 『사회적 정역학』(물체가 평행상태에 있을 때 나타나는 힘이나 물체의 변형 따위를 다루는 학문)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서 그는 인간 사회는 자비롭고 강력한 하나님이 아닌 배려하지 않는 과학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적자생존”이란 새로운 용어를 널리 알렸다. 인간 종족은 내적인 본성에 따라 진화했기 때문에, 가장 잘 적응하는 존재는 자연스럽게 번성하여 사회를 진보시킬 것이며, 한편으론 “부적응자”는 더욱 더 빈곤하게 될 것이다. 하류 계층의 고통은 자연 법칙의 필수적인 결과라고 스펜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자연의 전반적인 노력은 그런 존재를 제거하며 보다 우수한 존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만일 그들이 살아가는 데 충분히 완성되지 않으면, 그들은 죽게되며 그들이 죽는 것이 최선이다.”②

 

사회 다윈주의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자연 선택”이란 그의 이론은 한정된 자원과 포악한 약탈자의 환경에서 모든 생물체의 생존 경쟁을 묘사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은 전체 동식물계에 많은 힘이 적용된다는 맬더스의 원리라고 명백하게 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인위적인 식량 증가가 없으며 결혼에 대한 세심한 제약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③

 

  다윈은 자연계에 대해서 이론을 정립하고 있었지만, 그 때는 주도적인 사상가들이 맬더스, 스펜스와 다윈의 이론을 곧 이어받아 ‘사회 다윈주의’라 부르는 새로운 개념으로 변화시켜 가는 시점이었다. 한편 사회 계획자들은 냉혹한 세상에서의 생존 투쟁에서 많은 개인들은 보다 무가치하고 심지어 자연스런 과정의 일부로써 도태될 운명에 처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④

           

  ‘사회 다윈주의’의 견해는 창세기 1:26-27에서 표현된 성경의 견해 즉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그래서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 가르침을 완전히 거부했다. (창세기 1:26-27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래서 그런 견해는 두명의 숭배자를 끌어들였는데, 그들은 유대교·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감을 지녔던 칼 맑스와 프레드릭 엥겔스이다.  

 

진화론이 맑시즘에 녹아들다

 

  다윈론의 발표로 인해, 맑스와 엥겔스 같은 유물론자들은 그들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단히 중요한 설명을 갖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단일 세포로부터 가장 복잡한 자의식을 지닌 존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을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무작위 변이’와 ‘자연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연계의 변하지 않는 힘은 역사와 생명체의 주요 원동력이었다.

 

  『종의 기원』 초판은 단지 1,250권이 인쇄되었으며, 그 책은 하루에 모두 팔렸다. 1권을 구입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프레드릭 엥겔스(Fredrick Engels)였는데, 그 때 그는 맨체스터에 살고 있었다. ⑤ 3주 뒤에 그는 칼 맑스(Karl Marx)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바로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사람 다윈은 정말로 대단해요.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허물어지고 있는 목적론38) 의 한 측면을 언급하고 있어요. 전에는 결코 자연계에서 역사적인 진화를 예시해 주는 이와 같은 거창한 시도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결코 이처럼 대단한 효과를 나타내지도 않았어요.“⑥

 

  1년 뒤에 맑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다윈의 저술은 물질세계에서 계획 혹은 목적을 고려해 볼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했다. 이것은 형이상학 혹은 목적론에서 토론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순수하게 물질적인 힘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윈의 저술은 아주 중요하고 그것은 자연과학에서 역사적인 계급투쟁에 대한 어떤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의 목적에 적합하며...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책에서 자연과학에서 ‘목적론’은 치명적 타격을 받은 것으로 취급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의 이성적인 의미는 경험적으로 설명되고 있다.”⑦

 

변증법적 물질주의의 기초

 

  다윈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는 비록 결코 급진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통찰력은 사회의 폭력적인 진화에 대한 맑스의 변증법 이해에 필요한 기초로써 ‘유물론자 과학’을 정립하려는 전투에서 무기로 사용되어졌다. ⑧ 맑스가 1873년 그의 첫 저서인 『자본론』의 제 2판을 발행했을 때, 그는 다윈에게 “저의 진실한 숭배자, 찰스 다윈 귀하, 칼 맑스 드림”이라고 써 넣은 그의 책 한권을 보냈다.⑨ 1883년 맑스의 장례식에서, 엥겔스는 말했다. “다윈이 유기체 본질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그와 같이 맑스는 인류역사 발전의 법칙을 발견했다.”⑩  

 

  과학적이며 물질적인 정당성을 찾고 있었던 맑스는 진화의 개념에서 해답을 발견했다. 적자생존의 개념은 역사의 원동력으로써 계급투쟁을 정당화하는 그의 목적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심지어 보다 진보한 생명체의 발전이 자연주의의 힘에 의해 추진되었듯이, 맑스는 인간 영역에서의 진보는 물질의 힘과 격렬한 혁명으로 추진되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항상 위로 향해졌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적이며 과학적』 책에서 엥겔스는 다윈의 승리를 칭찬했다. 즉 다윈은 자연계의 형이상학적 개념에 가장 심한 타격을 가했으며, 비물질적인 원인을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을 변증법과 유물론자 힘을 진화 과정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자연은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논증적으로 작용한다... 자연은 영구적으로 반복하는 원형의 영원한 절대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은 실제 역사의 진화를 거치게 된다. 이런 연결에서 다윈은 모든 다른 사람들 앞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자연의 형이상학적 개념에 가장 심한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윈은 모든 유기체, 동물, 식물 그리고 인간 자신이 수백만 년을 거쳐 진행되는 진화 과정의 산물들임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⑪

 

우생학의 상승

 

 ‘사회 다윈주의’에 매료된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운동은 우생학자들이었다. 우생학이란 용어는 실제로 1883년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갤톤(Francis Galton)이 만들었다. 그는 영국의 상류계층을 대규모로 번식시켜 인종을 보다 우수하게 유지하고 한편으론 정신박약아들을 감소시키고 싶었다. 제 1회 국제우생학 회의가 1912년 영국에서 개최되었으며 찰스 다윈의 아들인 메이저 레오나르도 다윈이 그 대회의 사회를 맡았다. ⑫

 

 우생학 지지 집단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1900년대 초기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내과의사, 과학자 그리고 사회운동가들이 미국 우생학 운동을 설립하고 조직회하기 위해 지적인 가속도를 제공했다. 찰스 대븐포트(Charles Davenport) 같은 미국인 신봉자들은 증가하는 인간의 퇴보에 대한 연구와 통제를 지원하기 위해서 부자들의 환심을 샀으며 그들을 확신시켰다. ⑬

   

 그들은 1903년에 미국 육종협회를 창립하고 또한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콜드스프링 항만실험실을 설립하여, 유전적 이력을 모으기 위해서 수백만 명의 가계(가족)를 추적했다. 1927년 미국 대법원은 장애인들에 대한 강제 불임조치는 미국 헌법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법무장관 올리버 웬달 홀메스(Oliver Wendall Holmes)는 "3대에 걸친 정박아는 불임조치를 당하기에 충분하다."고 언급했다. ⑭

 

인간 동물원

 

 오늘날의 사람들은 미국에서의 과학 인종주의의 비도덕적인 역사를 거의 모르고 있다. 『인간 동물원』이라 불린 몇 개의 비디오 기록물은 20세기 초에 발생한 이런 사실을 묘사한다.

 

 1906년 9월, 약 25만 사람들이 뉴욕시 브롱스 동물원에 모여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놀랄만한 새로운 전시물을 보러갔다. 그러나 그들이 보러 갔던 그 존재는 원숭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오타 벤가(Ota Venga)였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난쟁이(피그미), 오타 벤가는 원숭이 옆의 한 우리에 전시되었다.

 

 벤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20세기 초기에 미국 전역에 공개적으로 전시된 수천명의 토착 부족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종종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 존재했던 ‘분실된 연결고리’로써 그리고 인간진화의 보다 낮은 단계의 예로써 홍보된 이런 토착 부족들은 희롱당하고, 비하되고 그리고 조롱당했다. 그들의 대중 전시는 과학 집단이란 가장 우수한 집단에 대한 열렬한 지원에 힘입어 준비되었으며, 그 전시는 미국 주요 신문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홍보되었다. ⑮

 

우생적 불임

 

 로플린(Laughlin)의 영향력있는 ‘미국내의 우생적 불임(1922)’이란 기사가 출간되기 2년전인 1920년까지, 전국에 걸쳐 3,200명의 개인이 비자발적으로 거세를 당했다고 보고되었다. 그 수는 1929년까지는 3배로 증가했으며, 1938년까지는 3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런 운명에 처해졌다고 주장되었다. 절반 이상의 주들이 ‘로플린법’을 채택했으며 캘리포니아주, 버지니아주와 미시간주가 불임 캠페인을 주도했다. ⑯

 

 미국 연방정부, 주정부와 재정이 좋은 기관들은 2차 세계대전 말까지 이 인종차별주의에 기여했다. 에드윈 블랙(Edwin Black)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철학의 위험 요소들은 결혼 억제뿐만 아니라 강제 불임과 특별법에 의해 국가정책으로써 소중히 간주되었으며 27개 주에서 시행되어졌다. 1909년 캘리포니아주는 그런 법률을 채택한 세 번째 주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생학 전문직 종사자들은(의사들) 약 60,000명의 미국인들을 강제로 불임시켰으며, 수천명의 결혼을 가로막았고 강제로 수천명을 식민지 같은 곳에 분리 거주케 했으며, 우리가 이제 알고 있는 방식으로 실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박해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강제적인 불임의 거의 절반이 캘리포니아주에서 행해졌으며, 심지어 전쟁 이후에도 그 주는 그런 수술의 1/3을 담당했다.

 

 블랙은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그리고 해리만 철도기금 등이 과학적 인종차별에 자금을 지원하였으므로 이들 단체를 범죄자로 판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04년 카네기재단은 롱아일랜드 콜트스프링 항구에 보통 미국인에 관한 수백만장의 목록카드를 비치한 실험단지를 설립했다. 그곳에서 연구가들은 여러 가정들, 혈통 그리고 일무 종족들의 제거를 조심스럽게 모의했다. ⑱        

 

부적격자와 적격자

 

 아마 가장 악명 높은 우생학자는 ‘계획된 부계(父係)’의 설립자 마가렛트 생거(Margarlet Sanger)이다. 우리는 ‘부적격자’와 ‘적격자’ 출생율 사이의 불균형은 문명에 대한 가장 큰 현존하는 위협적인 요소라는 지적을 그의 글에서 알게 된다. ⑲ 우생학자 생거는 제거될 필요가 있는 부류를 다음과 같이 계속 나열했다.

 

 “정신박약아, 간질, 천치, 정박아, 정신이상자, 결핵 보균자, 혐오스러운 자 혹은 전염병자, 극빈자, 직업 거지, 공공의 비난을 받는 자, 범죄자, 매춘부, 혹은 어떤 형태로든 매춘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 문맹자, 영어나 다른 언어를 16세 이후에도 읽을 수 없는 사람들: 이런 모든 사람들은 출입이 금지당해야 하며 이런 조치에 대한 강화 절차는 강제적이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휼륭한 법이라 생각한다.    

 

 만일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나라에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왜 그들의 번식을 중단시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산아 제한은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피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보다 좋은 요소들을 배출하고 배양함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결함이 있는 품종에 대해서 즉 미국 문명권에서 가장 좋은 꽃을 피우는 것을 위협하는 인간 잡초들에 대한 점진적인 압박, 제거와 멸종을 의미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신박약아, 정신이상자와 매독환자의 불임을 옳다고 믿는 동안, 나는 이런 조치들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부적격자들의 연속 현상과 적용해 보면, 피상적인 제지 수단 이상의 것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적격자 혹은 다소 적격자와 완전히 부적격자 사이의 차이점은 마르키온과 발렌티누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함을 띠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3가지 완벽한 범주에 넣었는데, 첫번째는 그들 안에 진정한 지식과 신성에 대한 강력한 섬광을 지닌 엘리트 혹은 계몽자이며, 두번째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심령가들이며, 셋째는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영원히 사멸하는 대다수의 인간들이다. ㉓

 

생식(세포)질

 

 ‘정신박약 현상’은 그 당시에 다윈주의 생물학자들이 진화 규모면에서 보다 낮은 단계로 생각했던 인종들(흑인 등)을 포함하여 개탄스러운 존재들에 대한 아주 넓은 범주이다. ‘정신박약자들’도 겉으로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정상적인 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생학에 따르면 그런 현상이 아주 위험한 요소다. 정신박약자들은 아주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이므로 비정신박약자들이 그들과 결혼하여 다음 세대에 결함이 있는 생식질(세포질)을 번식시킬 수도 있다. ㉔ 

 

 생거와 다른 우생학자들은 정신박약자들은 반드시 강제적인 불임을 통해서 자식을 낳는 것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랙은 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렇게 규정된 부적격자로 그런 수술을 강요하는 버지니아주 법아래서 조직적으로 불임을 당한 순박한 산골사람들은... 종종 외과의사의 칼 아래 놓인 십대 소년 소녀들은 실제로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그들은 자신들이 맹장수술이나 혹은 다른 평범한 절차를 밟는다고 들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수술 후에 퇴원했다. 희생자들 다수는 왜 그들이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지를 몇십년 뒤에 그 사실이 버지니아주 조사관과 정부개혁자들에 의해서 그들에게 통보될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블랙은 11살에 불임수술을 받은 한 여자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메어리 도날드(Donald)는 자신이 단지 11살 때 린치버그(버지니아주 수도)에서 불임수술을 받고 그 이후 고뇌의 세월을 회상하며 많은 고통을 겪었다. 여러 해 뒤에 그녀는 한 남자와 18년 동안 좋은 결혼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를 원했음을 기억했고 ‘침대에 누워 그에게 아들을 낳아 줄 수 없기 때문에 울었다. 그녀는 아주 강한 어조이지만 느릿한 말투로 과거를 회상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남자들은 자신의 핏줄(이름)을 이어갈 아들을 원한다. 그는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가자, 그는 마음을 바꿨다. 우리는 이혼하고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 메어리는 마음이 상해 흐느꼈다.

 

히틀러의 야심

 

 ‘결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많은 불임수술과 비자발적인 감금에 대한 미국 우생학자들의 캠페인은 그 운동이 미국에서 선점된 이후 수십년이 지난 뒤에 독일에서 히틀러의 관심을 끌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치는 미국에서 우생학 지원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에 고무되어 우생학을 실행했다. ㉗ 1934년 버지니아주 서부 주립병원 관리자인 조셉 데자네트(Joseph DeJarnette)는 “히틀러는 우리 자체의 우생학 게임에서 우리를 능가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㉘

 

 히틀러는 자신이 미국 우생학 법안을 아주 충실히 따른다고 그의 참모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유전 관련 법안들을 알게 됐다. 건강하지 못하고 심하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도록 대규모로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미국 여러 주에서 일부 사람들의 자녀 출산금지와 관련하여 여러 주의 법안들을 관심있게 조사해 왔다. 모든 가능성 측면에서, 그런 사람들의 자손들은 어떤 가치도 없거나 그 인종 집단에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㉙

 

진화론 광신자들

 

 정부 재원과 거대 기관들은 ‘다윈 진화론’의 이론에 근거하여 우생학 단체에 재정지원을 했다. 그 결과는 예상 가능했다. "과학은 입증 되었다”라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논쟁이 되는 중요한 많은 토론을 아예 개최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㉚ 그것은 또한 기존의 정설에서 어떤 반대 의견을 왕따시킴으로써 강요에 의한 심리학적인 망치를 수반한다. 이런 조치는 과학적 방법에 대한 충실함이 아니라는 것은 주목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다윈주의는 아주 견고하고 심지어 도전 받지 않는 신조가 되었다. 교육기관들은 물질(만능)주의적이 아닌 어떤 생각도 허용하길 거부했다. 다음은 미국 전국생물교사협회 웹사이트에 올려진 진화론에 관한 정책 내용이다.    

 

 진화 생물학은 나머지 과학 분야가 사용하는 똑같은 방법론에 의존한다. 즉 자연계의 현상을 묘사하고 설명하기 위해 단지 자연의 결과들과 과정들에 호소한다. 과학교사들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설명하려 하고 혹은 진화론 메카니즘을 묘사하기 위해 비자연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개념을 묘사하려는 어떤 소명도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 시도는 창조과학, 과학창조론, 지적기획론 혹은 어떤 다른 유사한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개념은 과학 영역 밖에 있는 것이며 과학 교과과정의 한 부분으로 대표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생각은 증거 수집과 해석이란 공유된 과학적 기준에 충실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반대자의 증거 자료의 질적인 측면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평가해야 하는 데, 학생들은 그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독단적 견해에 상충되는 견해와 증거들을 무조건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자연법이 ‘적자생존’이며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보다 진보한 인종이 되는 것이라면, 그 과정을 줄곧 도우는 것이 진화된 상류층의 권리이며 심지어 책임이다. 19세기의 맬더스의 주장과 같은 인구과잉에 대해 폭넓게 확산된 공포감들을 고려하여, 한 국제기구는 다음과 같이 세계인구의 뚜렷한 감소를 지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원만하게 시행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을 제시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정말로 위험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100억에서 120억의 인구는 불편할 정도로 너무 많아 세계의 자원에 높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정도의 세계 인구가 합리적일까? 어떤 목표를 지향해야 할까? 인구는 무한히 지탱될 수 있을 정도로 적어야 하며, 우리 자신들과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 충분한 재량을 허용해야 한다. 또한 인구는 건전한 문명 형성을 허용할 정도로 적절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인구를 5억으로 제안한다.

 

 그런 상류층 집단이 공개적으로 5억이 그들이 선호하는 세계인구이며 현재 세계인구는 77억에 ㉝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세계인은 16명 중에서 15명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주장은 21세기 두 번째 10년 기간인 지금도 사회 다윈주의와 우생학의 신념이 살아있고 좋은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우생적 영지주의

 

 이런 신념은 영지주의 부활로 인해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마르키온과 발렌티누스 추종자들은 출산이 눈물의 계곡을 만든 악인 데미우르게를 단지 섬기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추종자들에게 성교 행위를 중지하도록 유도하며 출산제로 정책을 지지했다. 34) 이런 태도는 아래와 같이 뉴욕 타임즈 2018년 7월 26일 논평에 실린 로이 스크랜톤(Roy Scranton)의 견해로 반영되었다.  

 

  나는 나의 딸이 태어났을 때 두 번 울었다. 첫 번째는 기뻐서였다. 27시간 산고 후에 우리가 만들었던 야생동물 같은 존재가 울부짖으며 세상 속으로 나왔을 때였다. 두 번째는 슬퍼서였다. 지구에서 가장 새로운 인간을 팔에 안고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병원 주차장에 줄지어 있는 차량, 번화가 몰, 잡화점, 드라이브 스루 상점, 배수로, 아스팔트 그리고 한 때 참나무 숲이었던 쓰레기 더미들이 보였다. 파멸과 대재앙의 어떤 세상 즉 자연과의 조화가 오랫동안 저당 잡혀 있었던 어떤 세상이 보였다.

  나의 남편과 나는 이기심에(성 행위로 인해) 사로잡혀 이상향과는 상반된 어느 행성에서 우리 딸이 운명처럼 불행하게 인생을 살아가도록 했으며, 나는 미래로부터 그녀를 방패막이 해 줄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르키온이 만약 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영지주의 견해를 표현했더라면, 그는 심하게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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