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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2.01.21|조회수104 목록 댓글 0

서문

 

무기에 대한 환기

 

래리 프랱(Larry Pratt)

미국 총기소유협회 대표이사,

버지니아주 전 하원의원

 

 

이 책은 현대 기독교의 측면에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유기에 관한 역사적인 분석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미국 수정헌법 2조1) 에 대한 신학적인 방어를 제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전세계에 걸쳐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아주 많이 받을 만하다.

 

현대 교회에서는 자기 방어와 관련된 구약의 경고들은 더 이상 토론의 주제가 아니다. 탈리오 법칙(복수법: lex talionis)에 관한 토라의 주장은 야만적인 것으로 비난받아 오고있다. 이 법(토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네가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이니라” (신명기 19:21).

그러나 이런 경고는 보복적인 잔인성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행위에 대한 공정한 정의의 원칙을 언급한 최초의 공식적인 선언이라 볼 수 있으며, 하류계층으로부터 힘들고 보다 가중된 처벌을 가했던 모세이전 관습의 종말을 나타낸다.

 

유사하게, 여섯 번째 계명에 대한 오해는, “그대는 살인하지 말 것이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성직자들이 방어용 무기구입 지출을 금지하자고 외치게 하는 계기를 촉발시켰다. 그런 오해는 러시아에서 퀘이크 교도들이 이(빈대)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어딘가에 그냥 두게하자고 하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계명에서 언급된 ‘죽이다’는 단어, 즉 히브리어(유대어) 단어로 ‘죽이다’는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나 학살을 의미한다. 그 단어는 결코 합법적인 죽임으로 즉 사형집행 혹은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살인하다’는 의미가 의도적인 살인에만 적용된다는 주장은 하나님 자신이 구약 전부분에서 인간 살해를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약 1,000여개의 구절에서, 하나님은 강한 처벌을 실시하는 집행자로 묘사되어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모세의 하나님은 사형과 동등하게 되어져야 하는 도덕상의 범죄 목록을 예시하고 있다. 그 목록은 살인, 자신의 부모에 대한 신체적인 상해, 희생자를 노예로 팔아넘기는 유괴, 간통, 근친상간, 동성애 그리고 수간(동물과의 성교)을 포함한다.

 

그런 처벌이 필요한 것은 고대 히브리 사람들이 사형 집행을 실시하는 일에 끊임없이 관여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은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아주 흔한 경우는 아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형을 당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선, 단지 상황적이며 환경적인 증거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제거하지는 않았다. 하나는, 그 사람이 사형으로 처벌받아야하는 법을 어기는 것을 목격한 두명의 명백한 목격자가 필요했다. 그 다음, 이 두 목격자는 피고에게, 심지어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금지된 행위를 범하여 그가 받을 수 있는 사형에 대해 미리 경고했어야했다. 마지막으로 그 가해자는 경고에 대해 직접적인 반항을 하여 범죄를 저질렀음이 틀림없어야 했다. 위와 같이 범행을 하려는 어떤 망설임이 있었다면 그런 경우에는 사형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과 같은 남성 동성애와 동성혼의 시대에서도, 동성애를 처형하는 사형은 잔인무도하며 야만적이라는 생각이 거의 대다수의 신도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런 추론은 문형진 목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동성애 금지는 유대교의 아주 본질적인 부분과 토라(구약)의 다음 경고에서 유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괴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여 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에게 복종하며 그의 계명과 규율과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송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네가 오래 동안 거주하리라.

(신명기 30: 15-20) 2)

 

현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제기되는 모세의 하나님을 유기하고 비난하는 주요 이유는 구약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동되어진 집단학살의 이유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재되어 있다. 여호수아 6장에 의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여 그들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 - 죽이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았다. 여호수아에 의하면, 그들은 이 명령에 복종했고, 그 사막은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이런 성경구절에 반응하여, 리차드 다우킨스(Richard Dawkins)은 구약의 하나님을 “모든 자료에서 가장 불쾌하게 비유되는 인물”로 지칭했다. 다우킨스는 심지어 구약이 지어낸 이야기로 서술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많은 내용들이 수천명의 고고학자들의 삽질(발굴)로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 하나님을 불쾌한 인물’로 표현했다. 더군다나, 현대의 성직자들과 목사들은 대체로 다우킨에 동조하며, 크게는 폭력을 용서한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표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한편 어떤 사과의 구절을 발표하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런 구절을 너무 과장되게 해석되어 있다고 묵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집단 대학살 행위들을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에 관한 오해로 다루거나 혹은 여호수아서를 토라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원시적인 사고의 반영으로 그리고 신에 대한 원시적인 이해로 격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집단학살의 행위는 필요했다. 이런 황량한 지역의 혹독한 환경으로 인해, 가나안 부족들은 물과 경작할 수 있는 땅을 끊임없이 찾아야만 했다. 전쟁은 끊임없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했다. 스키타이족 남자들은 흉포한 수염을 기른 거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마차에서 생활하고 살기 위해서 싸우고 싸우기 위해서 생존하고 적의 피를 마시고 냅킨으로 적의 머리가죽을 사용했다.

스키타이족 여자들은 처녀일 때, 말을 타고 활을 쏘았으며 말 위에서 창을 던졌다. 그들이 처녀티를 벗게될 때는 세명의 적을 죽인 후였다. 이 부족 여성들의 오른쪽 가슴은 잘라내어지고, 그들의 모든 힘이 오른쪽 어깨와 팔로 전달되도록 지져졌다. 히타이드족도 똑같이 격렬했다. 그들은 군사적인 힘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의 수자원을 통제했다. 그들은 아르메니아 지역 산에서 철을 캐내어, 강력한 전사가 되도록 철제 무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생포한 남자들은 광산에서 일하게 하고, 몸매가 좋은 여자들은 첩으로 매매되었으며, 노약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덧붙이면, 가나안 부족들은 원시적 신에게 아이들을 희생물로 바쳤다. 성경에서 아동 제물은 가나안 부족과 주변 나라들의 종교에서 관례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증오하는 모든 혐오스러운 행위들을 그들의 신을 위해 자행하고 심지어 그들의 아들 딸을 불에 태워 그들의 신에게 바치기도 했다: (신명기 12:31)

 

하나님이 모든 가나안 부족들을 멸하도록 명령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결과로, 이런 풍습이 이스라엘 문화와 그 이후의 종교에 스며들게 되었다. 집단학살과 더불어 성전(신성한 전쟁)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약속의 법궤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무리가 전투에서 패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제에 의해 싸우는 지역으로 옮겨졌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제사장이 다음과 같이 히브리 군대에게 연설하는 것은 의무적이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 이렇게 고하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적들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들을 치고 너희에게 승리를 안겨주며, 너희와 함께 행하시는 자니라.”

(신명기 20:2-4)

 

미국 수정헌법 2조 지지자들은 이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한다, 모세 하나님은 자기 방어를 위해 무기사용을 용납했으며, 사형을 요구했고 정당한 전쟁을 신성시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어떠한가? 현대의 많은 사제들과 목사들은 심지어 자기방어 목적으로도 총기소유는 반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교한 ‘평화주의자’였다고 주장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어질 것이라”(마태복음 5:9).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폭력 행위를 꾸짖었다. “검으로 사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오늘날 일부 성직자들은 마르키온(Marcion)처럼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즉 모세 율법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별허가를 포함하는 견해를 사람들에게 제시했다. 그들은 산상설교의 다음 구절을 언급하면서 이 주장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어 주라” 

(마태복음 5: 38-39)

 

그러나 예수의 그런 표현은, 이 책에서 설명했듯이, 역사적으로나 경전 측면에서 정확하지 않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몰아내기 위해 채찍을 들었으며, 통렬한 말로 그 당시의 성직자들을 저주하며, 제자들에게 선포했다 : “내가 세상에 화평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음: 10:34). 게다가 심지가 약한 남자로서 예수님을 묘사한 것은 누가 복음 이 구절을 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매, "내가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너희를 보내었을 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없었나이다.”그들이 대답했다.

이어서 말씀하시길, “그러나 이제는 전대가 있으면 그것을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기록된바 '그가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라고 기록되었으며,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하니라. 그렇다. 내게 관해 기록된 것이 이뤄져 감이니라. 제자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두 개의 검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시니라.

누가복음(22: 35-38)

 

비슷하게,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모세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됨을 허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마치 예리한 칼로 깍아내듯이 했는데, 산상설교의 이런 말씀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많은 부분을 잘라내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 까지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그 율법을 실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크다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능가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 5:17-20)

 

오늘날의 총기통제 지지자들은 무기 소지와 신성한 전쟁을 지원하는 2000년에 걸친 그런 가르침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전통은 미국독립운동 중에 기독교 성직자들의 중심적인 역할을 설명해준다. 1776년, 존 피터 물렌버그(John Peter Muhlenberg) 목사는 버지니아주 우드척 지역 신도들에게 하는 행한 설교 후반부에서 그의 군복을 드러내기 위해 성직자 옷을 집어던지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기도할 시간이 있고, 싸워야 할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이제 다가왔습니다!” 물렌버그 목사는 찰스톤과 브랜디와인, 스토니 포인트, 요오크타운 전투에 참가했으며, 밸리 포오지 겨울에도 그러했다.

 

조나단 메이휴(Jonathan Mayhew) 보스톤 서부교회 목사는 전제군주에 대한 반란은 영광스런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설교하면서 영국 억압자들에 대항하여 무기를 드는 도덕적 신성함을 역설했다. 제임스 칼드웰(James Caldwell) 장로교 목사는 1780년 미국인 반란군이 스프링필드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그는 동료 반란군들이 머스켓 총과 긴 장총의 총열 안에서 화약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는 종이로 된 충전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마자, 칼드웰은 근처 교회로 달려가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찬송가 책을 갖고 돌아왔었다. 전쟁후 1792년, ‘민병대법’은 총기소유와 민병대를 자발적인 선택이라기 보다는 법적인 의무로 만들었다.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신구약 성경과 2000년 기독교 전통에서 단단히 뿌리내려져 오고 있다. 자기방어용으로 혹은 가족, 친구와 사랑하는 자들 뿐만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의무이다. 그것은 단지 시민의 권리 혹은 정치적인 특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런 주장에 관한 증거는 이 책의 여러 쪽에 걸쳐 나열되어 있다.

 

 

Pro its qui quaerunt veritatem

 

For those who seek the truth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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