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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지주의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1부 2장)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2.01.24|조회수99 목록 댓글 0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2

                    신 영지주의

                  (New Gnosticism) 6)

 

  영지주의는 우리에게 높은 권위를 지닌 그런 진리를 제시할 수 있다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부분인 영혼의 목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이런 영혼에 관해서는“바람은 임의로 분다”(요한복음 3:8) 라는 표현과 관련되어 있다이것이 세계적인 영지주의 세계관이 수세기의 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은 이유이다.    

  세계적인 영지주의는 항상 시기적절하게 출현했는데그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영적인식인 “정신의 지식”에 가장 잘 반응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늘날그 사상의 시기적절함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왜냐하면 두 번째 천년세월 말기 시대에는 영지주의가 제시한 커다란 의문과 답변을 피해갔던 많은 사상들이 급격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인간의 곤경들에 대한 의문점들을 밝혀주는 영지주의 답변의 선명성솔직함진실함은 감명을 주고이어서 확신을 주는데 실패하지 않았다.

     스테판 홀레(Stephan Hoeller) 『영지주의 세계관』 2018.  

 

 영지주의의 부활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다시 배포되자 진보주의 기독교 학자들은 즉각적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유형이 신세대를 위해 발견됐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성공회 주교 존 스퐁(John Spong)은 기독교인들은 마침내 한 시대의 끝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는데, 즉 대부분의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는 낡은 것이 되었으며 교회가 하나님의 유신론적인 정의관을 버려야한다고 촉구했다.①

 

  영지주의 기독교의 부활을 지지하면서, 티모시 프레케(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는 『예수의 미스테리: ‘본래의 예수’는 이교도 신이었는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발렌티누스처럼, 두 작가는 예수가 육신의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새롭게 발견된 그들의 영지주의 책의 영향력을 설명하면서, 프레케는 크리스쳔들이 기독교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믿음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어떤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고 믿거든 안믿든, 만일 그것을 믿는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본래 기독교의 메시지는 저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이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 ② 『예수 의 미스테리』 책은 대중에게 아주 잘 받아들여져,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올해의 책’ 상을 받았다.③

 

  물질에 더럽혀지지 않은 영적인 예수를 주장하는 영지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캐나다 연합교회(캐나다 최대 교파) 빌 핍스((Bill Phipps) 의장은 천국과 지옥의 실존뿐만 아니라 처녀 탄생과 육신 부활을 부인했다. 핍스는 설명하기를, 사람들은 우리 교회 안에 넓은 범위의 신앙이나 믿음이 있다고 했다.④ 그 교파 총회는 이런 주장을 지지하면서, 드물지만 혹시라도, 어떤 사람을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려고 교리 기준을 사용하는가?⑤ 또한 피터 존스(Peter Jones)는 '주류에서의 영지주의'에서 소속체로서의 교회는 이교도 일원론의 폭넓은 테두리 안으로 변화되어 왔으며, 그곳에서는 역사적인 교리를  제외한 모든 종교와 신앙 표현이 환영받는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최고 빛의 신(성경의 하나님을 초월하는 신)에 대한 영지주의 견해는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과 게이(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관심사로 이어져 장로교파 여러 단체에 의해 널리 홍보되었다. 그 단체의 격월간 출판물 『보다 많은 빛』에서, 그들은 ‘근원’과 관련된 보다 다양한 실체들의 영적인 증언들을 요청하고 있다. 이 ‘근원’ 즉 ‘신성한 존재’의 영역은 그것을 묘사하는 모든 다른 방식들과 성과 영혼 사이의 관계 등을 전달한다. 당신은 근원과 기도, 예술, 의식, 마술, 무아지경, 무용 등에 어떻게 접속하는가? 그리고 '마음을 바꾸는 물질’은 주술, 성가, 주문과 여러 신앙 단체의 양성애자들의 저서들이 있으며, 여러 신앙자들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교도, 퀘이커교도, 유니테리안교도 그리고 다른 영적인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이 포함된다.⑥

 

  ‘신의 죽음’ 신학에 환호하는 신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신학의 종결을 축하했다. 1974년 신학자 데이비드 뭘러(David Miller)는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 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지금까지 주로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사회적 질서, 윤리학, 그리고 심리학에서도 유일신을 표방해온 문명에 관한 쓸모없고 외골수인 일차원 개념에 대한 부고장이다.” 뭘러는 예언을 계속했다. “신의 죽음으로 유일신교의 전제 제국주의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실제 역사의 깊숙한 곳에 감춰진 새로운 차원들을 발견하게 되는 기회를 가진다.” 성경상의 하나님의 장례식에서, 뮐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여러 남성 신들과 여성 신들의 재탄생을 선언했는데, 여기에는 신비주의 종교와 영지주의의 여러 신들이 포함된다.⑦

 

  마르키온 사상의 회귀

 

  최근 감리교 교파 공식출판물인 『통합감리교 인사이트』에서 브라이언 신더(Brian Synder)는 “예수 성도에게 무총기”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더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하며, 그런 자기 방어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상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교파의 가르침을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손에는 자기방어를 위해 사용되도록 의도되는 총기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기방어용 총기를 소유하면, 그것은 당신이 죽는 것이 아주 두려워서 자신이나 가족을 구하기 위해 타인을 살해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총기 소유는 다른 쪽 뺨을 돌려주거나, 무력으로 사는 사람들을 대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님 선교의 궁극적인 교훈과 로마인 수중에서 그가 죽음으로 커다란 악 앞에서도 비폭력 저항을 실행한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악에 대항하여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생일 케익을 밝히기 위해서 배관공의 소형발열장치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역할을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당사자들에게 지극히 위험하다. 대신에 훨씬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썼을 때, 그는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다’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은 근본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랑은-총, 폭탄 혹은 악이 아닌-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래서 아마 우리가 악을 물리치고 싶으면, 우리는 사랑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⑧

 

  이런 주장을 유지하면서, 통합 감리교 교회는 2016년 총회에서 미국총기협회(NRA)가 정보도표를 후원하는 것을 금지시켰다.⑨ 확실히 통합 감리교 교회의 최고기관이 주장하는 하나님은 모세, 여호수아, 다윗의 하나님과는 크게 다르다. 이들의 하나님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그곳에 살았던 모든 부족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던 하나님이다.    

 

단일 성의 신

 

  2017년, 통합예수교회(UCC)는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보다 상위 층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지하고, 아래와 같이 남녀를 모두 가리키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발표했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 중성을 표현하는 언어에서 하나님에 관한 이미지를 포함시킬 것을 추구할 것이며, 특별한 배려가 언어 사용과 선택된 형상화에서 확장되어야한다. 그래서 그 용어들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하나의 성과 연관이 되어 있다’라고 무심코 암시되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그의(남성) 지혜안의 하나님’이란 표현 대신에 ‘하나님 지혜안의 하나님’, 또한 '우리를 아버지로서 지켜보는 하나님’이란 표현 대신에 ‘우리를 아버지로서 지켜보고 우리를 어머니로서 보살피는 하나님’)

 

  우리는 대명사와 사람들의 형상화에서 단일 성 즉 남성만을 의미하는 표현을 피하는 언어를 사용하게 할 것이다.

(예: 사람들을 의미할 때 ‘men’이란 단어보다는 중성적인 단어인 'people’을 사용하기(영어 단어 ‘men’은 사람들 또는 남자들을  의미함),  인간을 의미할 때 ‘mankind’  대신에

humankind’를 사용하기, 조상을  의미할 때 ‘forefathers’ 대신에 'forebears’를 사용하기, ‘어른(성인)이 되다’라고 할 때, become a man’ 대신에 ‘become an adult’를 사용하기.)

 

  우리는 다른 신체적인 상태와 사람들의 능력과 관련하여 경멸적이 아닌 언어를 포함시키려 할 것이다. 예: '모두(all)가 서다' 대신에 '사람들이(people) 서다'로 하기, '문둥이(lepers)'보다는 '나병(leprosy)을 지닌 사람들' 표현을 사용하기.

 

  통합예수교회에서 숭배하는 단일 성의 신과 토라의 신은 거의 유사점이 없다. “주님은 한 전사이다. 주님은 의 이름이다”(출애굽기 15:3).

  히브리 예언가들의 전능한 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통합예수교회의 신과는 다르다.  “주님은 전사처럼 나아갈 것이다. 는 전사처럼 의 열의를 드러낼 것이며, 는 고함을 칠 것이며, 는 전장의 함성을 외치며, 는 의 적들에 비해 우세할 것이다.”(이사야 14:13)  

  구약의 신은 통합예수교회가 하나님을 그/그녀로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남성 격이다.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언어 형태는 남성 격이다. 모세는 얼굴을 마주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말하듯이(출애굽 33;1)” 하나님과 얘기한다.⑩  50개 이상의 구약성서 구절에서는 하나님을 왕으로서(왕비가 아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시편 93절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는 왕이시다. 여호와는 위풍당당한 예복을 입고 있도다, 진실로, 여호와는 위풍당당한 예복을 입고 힘으로 무장하고 있도다.”

 

 진실의 유일한 근원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리상으로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영적인 독점현상의 주장에 근거했다. 즉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절대성, 보편성과 유일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단호한 주장이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벗어나는 어떤 종교단체도 잘못이다. 이런 가르침에 대한 최초의 표현은 시프리안 성인의 ‘가톨릭 신앙의 통일성’ 구절에서 나왔다.(240년)

 

  그리스도의 배우자는 음탕하게 될 수 없다. 그녀는 숫처녀이며 순결하다. 그녀는 하나의 집을 알고, 순결한 모습으로 하나의 신부의 침실을 사용하고, 신성함을 지켜내고 방어한다. 그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지켜준다. 그녀는 자신이 생명을 제공한 아들들에게 왕국을 부여했다. 교회와 분리되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통을 범한 여자로 멍에를 쓰게되며, 교회에 대해 되어진 약속으로부터 분리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떠난 사람이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보상으로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방인이다. 즉. 그는 신성을 더럽히는 존재이며 또한 그는 적이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교회를 소유하지 못한 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신을 소유할 수 없다. 노아의 방주 밖에 있는 어떤 사람이 탈출할 수 있다면, 교회밖에 있을 자도 또한 탈출할 수도 있다.⑪

 

“교회밖에는 어떤 구원도 없다”는 구호는 주요 교리법 박사들(성 암브로스, 성 제롬메, 성 아우구스틴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긍정되었으며, 제 4차 라테란 공회의에서 지지받았다. 1431년 플로랑스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대부분 신성로마 교회들은 가톡릭 교회 안에 살지않는 사람들과 토속신앙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인, 이교도와 교회분파주의자들도 영생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고 설교하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만일 임종 전에 꼭 같은 것이 일반 신도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해 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마태 25:41).

  교회조직의 통일성은 아주 강력하여 그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만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는 교회 성체에 속하게 된다. 또한 금식과 자선행위, 신앙심을 나타내는 다양한 기능들, 기독교 예배 활동은 영원한 보상을 생산한다. 어느 누구도 가톨릭 교회의 통합체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가 행하는 자선행위가 무엇일지라도, 심지어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피를 흘릴지라도, 그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⑫ 

 

  1856년 3월 17일 공표된 유니시 카템 회칙에서, 교황 7)  비오 9세는 “로마 사도교회는 유일하게 진실하고, 신성한 가톨릭 교회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주님의 말씀으로 바울이 세운 주교관할 구는 단 하나만 존재한다. (성 시프리안 서신 43호) 그곳 밖에서는 우리는 진정한 믿음이나 영원한 구원을  발견할 수 없다. 한사람의 어머니를 위한 교회를 가지지 않는 자는 한사람의 아버지를 위한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다.⑬

 

  바티칸 2차 공회 5년 전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레고리 대학의 훈시에서(1953,10.17)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권한으로, 성경 해석자이며 지킴이 그리고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신성한 전통의 보관소의 관점에 의하면, 교회만이 구원에 이르는 입구이다. 즉 스스로 성령의 보호와 인도아래, 교회만이 진리의 근원이다.”⑭

 

 거짓과 참의 세계교회주의

 

  가톨릭은 하나의 진실된 사도의 신앙을 대표했기 때문에 교황 비오 11세는 그의 회칙 『모탈륨 애니모스』(1928)에서 거짓과 참의 세계교회주의 사이의 차이점을 언급했다. 그 회칙은 아래와 같다.

 

  교회를 하나로 통일시키는데 그들의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실제로는 모든 교인들 중에서 은혜를 촉진시키는 데 있어 가장 고귀한 이념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은혜가 오히려 신앙을 해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어떻게 우연히 발생했을까? 사랑의 사도인 요한 그 자신이 그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신성한 마음의 비밀을 밝혀주는 것처럼 보이며, 예수님은 결코 그의 제자들의 기억 위에 “서로를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각인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예수님은 또한 자신의 설교를 훼손하고 부패한 모습을 설교했던 자들과 교류하는 것을 전적으로 금지했다.“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다가와 이런 가르침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그를 집안으로 들여보내지 말고 또한 그에게 말도 하지 마라. 하나님은 당신을 빨리 가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자비는 완전하고 신실한 신앙 위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의 신앙 굴레에 의해 원리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면 누가 기독교인 연합을 마음에 새기며 계획할 것인가? 그 연합의 구성원들은 심지어 신앙의 목표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각자 자신의 의견과 개인적인 판단을 유지한다. 비록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의 견해에 불쾌할지라도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반대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같은 믿음을 가진 연합회원들과 하나로 소속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다양한 견해들이 참으로 대단한 것은 교회의 통합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즉 통합은 하나의 가르침 권위, 하나의 신앙 규범, 하나의 기독교인 신앙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 경시 혹은 신앙무차별론 그리고 모더니즘에 이르는 쉬운 단계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된다. 불행히도, 이런 잘못된 것들에 감염된 사람들은 교리상의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신앙은 시간, 장소의 변화하는 다양한 필수적 요소들과 마음속의 다양한 경향들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변의 계시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⑮

 

가톨릭의 영지주의

 

  가톨릭의 지위는 2차 바티칸선언의 여파와 영지주의 복음 발견으로 인해서 무너졌다. 종교상의 신앙무차별론 정신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소중히 간직된 견해들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1965년 10월 28알 공표된 교황 바오르 6세의 법령인 『노스트라 아세테이트』(비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선언)에서 분명해졌다.

 

그 법령에는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힌두교에서는, 사람은 신의 신비를 묵상하고 무궁무진하게 풍부한 신화들을 통해서 그리고 철학적인 탐구를 통해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금욕적인 행위 혹은 심오한 명상 혹은 사랑과 신뢰로 신으로 향한 접근을 통해서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의 고통을 통해서 자유를 추구한다.”⑯ 1969년 8월 22일에는, 교황 바오르 6세는 힌두교도에 대한 칭송을 계속하며 마하트마 간디(Gandhi)는 신의 실존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브라마와 비슈누, 시바 신들은 성 삼위일체를 대체하고 있다’고 했다.⑰

 

  교황 바오르 6세는 『노스트라 아세테이트』에서 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불교는 인간이 진실되고 확신하는 정신으로, 완전한 해방의 상태를 획득하거나 혹은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혹은 보다 높은 조력자를 통해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⑱ 1973년 9월 30일, 그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를 영접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당신을 환영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당신은 고대 종교와 깊은 신앙에서 올바르게 행해진 인간 전통의 요람인 아시아에서 왔습니다.”⑲

  그러나 아시아는 유대교나 기독교의 요람도 아니었으며, 교황이 아주 찬양하며 초대한 신앙들은 신구약 성경의 밝혀진 진리와 가톨릭의 전통을 부인했다. 종교상의 신앙무차별론의 그런 표현은 가톨릭 교인들이 신앙전파협회의 목적과 비가톨릭신자들이 그들 본래의 종교에서 개종할 욕구와 가톨릭 선교사들의 목적에 의문을 갖게했다. 바오르 6세의 다른 종교에 관한 이런 언급은 미국 가톨릭 선교사들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와서, 그 수는 1968년 9,655명에서 1996년 4,164명으로 줄어들었다.⑳

 

인간에 대한 숭배

 

 교황 바오르  6세는 영지주의와 보조를 같이하면서, 인간의 신성과 새로운 형태의 인본주의의 부상에 관해 언급했다. 2차 바티칸 회의의 마지막 총회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의의 관심은 인간 욕구의 발견에 관해 집중되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스스로를 현대 인본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요구하는데, 그들은 가장 높은 실재물들의 초월적인 가치를 포기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의 자질에 대해서 총회에 신뢰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인본주의를 인정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어떤 다른 존재물보다 인간을 더욱 신뢰하며, 인간을 숭배한다.”㉑

 

  1971년에는, 바오로 6세는 아폴로 우주선 임무의 성공을 축하하면서 다음 성명을 언론에 발표했다. “사람은 지구의 왕이며, 하늘의 왕자다. 사람에게 영광을! 사상, 과학, 기술, 노동, 그리고 사람의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에 대한 분석력에 영광을 보낸다”㉒

 

아시지 집회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1978년 선출됨) 바오르 6세의 영지주의를 전파하는 것을 계속했다. 1986년 10월 27일에 이탈리아 아시지에서 성 프란시스 바실리카(큰 교회)에서 기도와 경배의 축하식에 전세계 여러 종교지도자들을 초대했다. 그 집회에는 유대교 랍비, 이슬람 율법학자, 불교 승려, 자이나교도, 주류 신교 목사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인디언 점성술사, 힌두교도, 배화교도가 참가했다. 그들은 평화와 종교 간의 단합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성 프란시스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제단 앞으로 다가왔다. 달라이 라마는, 기도를 드리기 전에 신성한 교회 교탁 위에 부처상을 올려놓고 향초를 켜자, 그 동안에 교황은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숙여 절했다.㉓

 

  2004년 1월 24일에는 요한 바오르 2세는 아시지 성 프란시스 바실리카에서 또 다른 범 크리스찬 집회를 개최했다. 이런 행사를 준비하면서, 모든 십자가와 전통적인 가톨릭 도구들은 휘장으로 덮었다. 바실리카(큰 교회) 보다 낮은 층에 있는 수도원 안쪽에서 이슬람교인들은 메카로 향하는 방을 제공받았다. 배화교인(불을 숭배하는 신앙인)은 나무 장작을 태울 수 있도록 창문이 있는 방을 제공받았으며, 유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도되지 않은 방을 제공받았다. 그 집회의 절정은 아이티 민간신앙 부두교(마법, 주술을 믿음) 성직자가 교황을 포함하여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부도교의 평온한 주술을 모든 참석자들에게 전하기 전에, 달그락 거리는 도구를 흔들면서 교회 중앙 안쪽의 설교단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㉔

 

신 가톨릭주의  

 

  그 집회에 반응하여, 로버트 성기니스(Robert Sungenis)는 『세계 가톨릭 변증학』 책에서 이렇게 썼다.

“만일 교황이 어떤 세계적인 종교가 가톨릭과 관련된 상호관심사에 대해 육적이며 영적인 축복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또한 이교도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지 일시적이 아니라 기정사실화 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교황의 이런 자세는 그가 어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의 기도를 듣게 되는 것과 꼭 같이 하나님은 이교도의 기도를 듣게되는 정도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이교도가 거짓 신을 숭배하는 모습과 죄악에 물든 생활형태로 인해서 아주 혼란스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또한 가톨릭은 이교도들이 거짓 숭배와 생활형태에서 벗어나도록 장려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런 행동이 옳은지 아닌지 하는 혼돈을 야기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㉕

 

  프란치스코 교황(2013.3 ~ 현재. 제 266대 교황)은 마르키온의 종교적 신앙무차별론을 가톨릭 교리 안에 삽입시키면서,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바티칸 구내에서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이슬람 기도를 하고 코란을 낭독하도록 허용했다. 그 기도예배는 2014년 6월 6일 행해졌으며,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흐무드 아바스(Mahmoud Abbas)와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Shimon Peres)가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기쁨에 넘친 교황은 언론에 이렇게 발표했다.

 

 “그 모임은 분리되어 있는 것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표시한다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불행히도 프란치스코는 아랍어로 행해진 이맘의 기도가 모든 무신앙자들의 승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못했다.㉖ 신앙무차별론의 또 다른 측면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도영상을 2016년 1월 16일 공개했다. 그 영상에서는 가톨릭 묵주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이슬람 기도 묵주만 보였으며, 성모 마리아 상 뿐만 아니라 어떤 가톨릭 성인의 상도 없이 또한 십자가가 전혀 없는 대형 촛대를 부각시키고 있었다.㉗

 

  창세기의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이런 가르침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많은 현시대의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교파에 속하는 진보적인 지도자들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변형을 비난하고 신령함과 하나님의 정당함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비뚤어지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는 실정이다.  누가복음(22:35-38)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하길, “내가 너희들을 전대나 혹은 배낭 혹은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어떤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그들이 답하길,“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하길, “그러나 지금은 전대를 갖고 싶은 자는 그것을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그것을 살지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성경 말씀은 내게 관한 것이 완성되어야 함을 말하기 때문이라: 즉 ‘그가 죄인들과 무리를 지어다녔다.’고 나에 대해 기록된 것은 이미 완성되었느니라. 그러자 그들이 말하길, “주여, 주여 여기 두 개의 검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길, “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구약성경에서 밝혀진 진실을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많은 기독교 성직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다. 구약의 진리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이 마르키온 신봉자들(주류 신교와 가톨릭의 신학교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거짓 진리 속에서 세뇌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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