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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공부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1부 3장)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2.01.25|조회수75 목록 댓글 0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3

신학교 공부

(A Stay in Seminary)

 

  역사적이며 비판적인 방법은 고대 경전의 의미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성경은 다양한 상황과 그것들 뒤에 놓여있는 모든 근원에서 보면그것은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편집되어져 오고 있다이런 이유로성경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이런 방법의 사용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로 그것을 필요로 한다.

    “교회안의 성경 해석” 교황청 성경 위원회. 1994.3.18  

 

성경공부의 실망

 

  확실히 많은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그들이 주류 기독교나 가톨릭 신학교에 학생들을 입학시킬 때, 아주 망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을 받게될 것이다. 신학생들이 구약성경 수업에 참석하면, 그들은 그들에게 다음 사실을 확신하게 해주는 현대의 성경비판에 노출되어진다. 즉 성경 책은 다양하고 상충되는 출처(근원)에서 유래되었으며, 유일신교의 개념을 포함하여 근본적인 교리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부족 희생과 집단학살에 관여했던 아주 난폭하고 피에 꿂주린 유목민족이라는 것을 교육받게 된다.

 

  신약성경 수업에서 학생들은 복음서들과 사도 서신들은, 이시스(고대 이집트 풍요의 여신)와 미트라(고대 페르시아 빛과 진리의 신이며 이후 태양신)의 경전들을 포함하여 신비주의 종교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전달받게 된다. 즉 처녀 출산의 설명은 종교적 혼합주의의 결과이며, 예수의 대단한 기적들은 어떤 역사적인 근거가 없으며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시신을 굶주린 짐승들이 물고 나갔다는 사실에서 나온 독특한 신화라는 것을 듣게 된다.

 

  그들이 학위를 받을 때면, 신학생들은 성경을 어떤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위치를 지탱하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원시적 신화와 민화가 뒤섞여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들은 달콤한 것만 가르치는 성직자가 되기 쉬우며, 성경의 어떤 구절을 선별하는 한편 어떤 구절은 야만적인 과거의 것으로 격하시킨다. 이렇게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중성(아브라함 하나님의 야만성, 시편 하나님의 연민)이 나타난다. 그렇게 되어 전세계 교회에서 마르키온의 고대 이단 사상이 부활되어 나온다.

 

성경 비판의 여러 형태

 

  현대의 성서비판 및 분석의 다양한 형태는 주류 신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다. 성서에 대한 비판은 가장 근원적이고 권위있는 성서를 확립하고자 하겠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필경사(문자를 기록하는 사람들)들이 본래의 문서에 첨가나 수정을 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원고를 문자로 옮기는 역사를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①

  형태비판은 문자상의 형태로 성서의 여러 구절을 분석하며 말로써 전달된 각 구절을 추적하는 시도를 한다.②  편집비판은 성서이야기 작가들을 원천적인 자료의 편집자 혹은 교정자로 간주하며, 신학적인 목적 혹은 다양한 이야기의 표현에서 예를 들어 증명하고 싶었던 의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③

 

  에덴동산에 대해서는, 미국 주류 신학교의 학생들은 낙원의 전설은 이집트, 인도, 티벳,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멕시코의 민속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고 교육받고 있다. 이런 다양한 에덴동산 이야기는 금지한 나무와 태초의 남자에게서 불멸성을 빼앗았던 뱀과 관련된 나무들을 포함했다. 에덴동산은 또한 뱀의 충실한 악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한 여성을 부각시켰다.④ 지구에서 에덴동산의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즉시 구약성경 학자들이 단순한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의 관점에서 전체적인 설명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불타는 칼 

 

  타락 이야기의 결론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은 후, 체루빔(무장한 남자 천사들)들이 생명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동산의 동쪽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창세기 3:24) 체루빔 천사들은 모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앞뒤로 빛을 내며 살상무기 역할을 하는 불붙은 칼을 휘둘렀다.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니라. 이 남자가 선악을 알게되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도다. 그가 손을 뻗쳐 생명나무 과일도 따먹고 영생하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되느니라.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여 그에게 할당된 토지를 갈게하시니라. 하나님이 그를 내친 후, 그는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1-24)  

 

  이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히브리 민속신화의 한 이야기에서 기원전 6세기에 편집되었을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혹은 고대 근동지역의 종교에서 생명나무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의 어떤 유사함에 있는 것도 아니다.⑥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에덴 동산 거주민보다는 무장한 천사 경비원들인 체루빔의 일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 과일을 먹음으로 신의 경지로 올라갈 것이므로 천사 경비원들을 시켜 생명나무 과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⑦ 이 천사들이 칼을 휘두른다는 사실은 최초의 무기는 아담이나 사탄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근원, 역사성 그리고 그것이 작성된 시점에 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창세기 3장의 저자나 혹은 편집인들은 신이 보낸 초자연적인 존재가 무기를 소지했음을 인정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갈등을 일으키는 근원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여자들이 네피림 부족(거인족)과의 혼숙을 포함한 사악함 때문에 노아와 그의 가족이외는 모든 인간을 쓸어버린다. 네피림은 유대 백과사전에 의하면 이스라엘 부족 이전에 가나안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거인 부족이다.⑧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인을 아내로 삼은 지라.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의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가졌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었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6:1-7)

 

  하나님은 땅 위의 모든 생물을, 노아 방주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깊은 물속에서 멸하기 위해서 40일 밤낮으로 비를 오게 하여 이런 파괴를 실행했다. 현대 학자들은 노아 이야기는 하나님에 관한 다른 개념을 지닌 근원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J” 하나님은 제물이란 달콤한 냄새로 달랠 수 있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남성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나타낸다.⑨ 이런 성경상의 가장 오래된 것은 그것이 여호와라는 적절한 이름을 가리키기 때문에 “J”로 불린다.⑩

 

  “J” 하나님은 “E" 하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근원이 하나님을 “엘로힘 Elohim” 혹은 “주님 Lord”으로 가리키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두 가지 근원은 시기적으로 이스라엘이 두 왕국으로 나눠졌을 때인 기원전 922년에서 722년에 근거한다.⑪ “E”의 하나님은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보다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남성이며 동시에 여성을 나타내는 인격체이다.⑫ 노아 이야기를 증명하는 것은 두가지 다른 출처에서 유래된다. 랍비인 데니스 브래쳐(Dennis Bratcher)는 창세기 6:1-7을 창세기 6:11-13과 대조하고 있다.      

 

  이제 땅은 하나님이 볼 때 부패했고,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은 땅이 아주 부패했음을 보시고,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부패하였더라. 그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나는 사람들 때문에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모든 사람들을 멸하리라. 나는 사람들과 땅 둘 다를 반드시 멸하리라.” (창세기 6:11-13)

 

 “E”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비인간적인 행위 때문에 세상을 멸하며,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세상을 다시 만들고자 하신다. 이런 홍수 이야기 관점에서 보면, 적절한 해석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방법은 두 성격의 하나님에 대한 영지주의적 관점이다. 즉 브래쳐는 요구가 많은 “J” 하나님과 자비로운 “E”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J”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을 비교하여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보호하길 원한다. 신성한 사람들이 사람의 여자와 잠을 자서 신의 노여움을 유발하는 내용이 바로 이 이야기에서 거론된다. 하나님의 노여움에 관한 하나의 표현은 인간의 수명을 120년으로 단축시켜, 사람들과 영원히 사는 신들과의 분명한 구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또한 노아를 시켜 모든 동물들을 7층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과, 노아가 방주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노아의 동물 제물을 요구하는 것도 이 이야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J”이야기에서의 하나님은 제물들의 달콤한 냄새로 달랠수 있는데, 이것은 제물은 인간의 복종과 순종의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이 분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확실히 우월한 지위를 요구하는 어떤 하나님이다. 즉 그는 모든 창조물이 근본적으로 종이 되게 하는 최고의 왕이다.  

 

‘E’이야기의 하나님은 아주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본 죄악은 인간의 복지에 관련된 인간의 폭력이며, 이 하나님은 폭력에 반대하며 절대자는 결코 사람의 수명을 제한하지 않는다.(이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근본적인 구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하나님은 각각 생물들의 한쌍 즉 수컷과 암컷이 방주를 탈것을 요구하며, 절대자는 제물을 요구하지 않으며, 동물은 단지 그들 종족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필요하다. “E” 이야기의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에서 내리자 말자 제물을 요구하는 대신에, 사람을 축복하기 시작하며 그들에게 계명을 주게된다. 이 계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E” 하나님은 결국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약속)을 계속해서 표현하며, 육신이 대홍수로 인해 다시 파괴되지 않을 것을 보장하게 된다. 이런 약속은 계약이며 즉 계약이란 단어는 이런 맥락에서 나타나며 아주 중요하다. (창세기 9:7-17) 

언약이란 약속이다. 양쪽이 서로 동의함으로 서로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속을 한다는 사실은 절대자가 인간을 가치 있는 당사자로 본다는 것을 의미하며, 즉 반드시 동일한 존재는 아니나 근본적으로 명령을 받는 복종하는 종 이하의 존재도 아니다. 이들은 아주 다른 하나님들이다; 하나는 질투하고 우월한 존재이며, 다른 하나는 관계상 배려하고 유용한 존재다.⑬

 

적잖이, 그런 대홍수 분석에 노출된 학생들은 그것이 두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의 하나님 즉 두 성격의 완전히 구별되는 신들이 존재하는 것을 믿게 된다.

 

첨가된 혼란

 

  당연히 학생들의 혼란은 대홍수 이야기가 고대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으로 첨가되어진다. 『피라미드 건축가들의 여행』에서 로버트 쇼크(Robert Schoch)는 이렇게 썼다. “노아 홍수는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500개의 홍수 신화들 중에서 단지 하나에 불과하며, 홍수 신화는 모든 고대 신화에서 가장 널리 퍼진 것이며 또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된다.”⑭

 

아브라함의 8)  두 하나님

 

 창세기 이야기의 근본적인 자료에 관한 이런 문제는 우리가 언제 유대민족의 족장인 아브람의 이야기에 접근할 때 심화된다. 이 이야기의 뿌리는 히브리족이 하나님 숭배와 공동의 성전 관심으로 연합하게 되었던 베두인 사람들인 하피루족(기원전 2000년 후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헌에 나오는 유목민족으로 히브리족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논쟁 중)으로 알려진 시대와 관계있다.⑮  한 부족의 존재가 위협을 받을 때, 다른 부족은 하나님이 직접 무력 행동에 참여하는 성전에서 연합하게 되었다.⑯ 창세기 14:14-21은 아브람의 조카 롯이 북쪽 사마리아 엘람 왕 체도르라머에게 포로로 잡힌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포로로 잡혔음을 듣고, 그가 자기 집에 거느리고 훈련시킨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사람들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물리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 여자들과 사람들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호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온 후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왕의 골짜기)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를 만드셨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너희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며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4-21)

 

 아브람이 이긴 후에, 그는 살렘의 왕이며 제사장 왕인 멜기세덱에게서 환영받고 축복받는다. 멜기세덱은 히브리서 7장에서 그리스도의 형태로 바울에게 보여 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다. 아브람은 빼앗은 재물의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신중하게 제공했다. 이것은 전쟁의 전리품은 그들의 신과 나눠 가져야 한다고 믿은 고대 히브리민족의 풍습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투 중에 그의 백성들과 같이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적하는 적들 마음속에 공포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⑰

 

 이 이야기는 그것이 “D”(신명기 저자)라 불리는 다른 근원에서 나온다는 논쟁 이외는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학자들에 의하면, “D”의 문서들은 구 요르단의 옛날 사람들의 이름을 포함한 유사한 역사 이야기의 특징을 띄고 있다고 한다. 출애굽 이후 기록을 했던 “D”는 "J"와 “P”(제사장 격의 근원)의 하나님에 관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⑱ “D”의 신은 “J”하나님의 잔혹행위와 “P”하나님의 친절함의 일부를 지닌 데미우르게 신이다.⑲ 그러나 “J”와 “P”의 의인화 관점에서 본 신과는 달리, 이 하나님은 하늘에 남아서 단지 자신의 이름이 땅 위에 머물기를 허용하는 냉담하고 추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⑳ 그러한 것들이 성경의 첫 장과 관련하여 번역학자들이 발견한 문서들에서 증명된다.        

 

문서 가설

 

문서 가설의 도표㉑

 

“J”: 야훼 근원(기원전 7세기), “E”: 엘로힘 근원(기원전 9세기), Dtr1: 초기(기원전 7세기) 신명기 저자, Dtr2: 후기(기원전 6세기) 신명기 저자, P+: 사제 근원(기원전 5-6세기; 레위기 대부분 포함), D+: 신명기 저자 근원(신명기 대부분 포함), R:편집자, DH:신명기 계통의 역사서(여호수와, 제사장들, 사무엘, 왕들의 책)

 

 예외 없이, 창세기 안에 있는 모든 구절에 대한 근원(출처) 자료를 확인하려는 상당한 노력 덕분에, 이런 작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원근법 9)  원칙을 배제하게 된다. 그들 자신의 종교적인 견해와 선입견들은 그들로 하여금 깨어 있는 제사장들에게(D) 어떤 이야기의 한 부분을 할애하게 하며, 또 다른 역할을 우매한 야훼 저자(J)에 할애한다. 창세기 책은 두 하나님에 대한 이상한 영웅설화에 해당되며 그 중의 하나는 회피해야 할 인물로 남아있다.

 

역사적 비판과 마르키온

 

 이런 이유 때문에 폴 존슨(Paul Johnson)이 지적하듯이, 마르키온이 ‘근본적으로 현대 성서학자들과 유사한 역사적이며 비판적인 방법’을 사용했음을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㉒ 이렇게 되어 마르키온은 구약이 괴물과 같으며, 악을 조장하고 잔혹하며 다윗의 후원자 역할을 한 어떤 하나님을 표시했기 때문에 구약 전부를 거부하게 되었다. 이런 성경 분석으로 인해서 마르키온은 통일성을 지닌 정본 성서를 그가 편집하게 했으며, 또한 그는 히브리 성서와 신약성서 안에 있는 모든 유대적인 요소를 폐기했다.㉓

 

진리 찾기

 

 사람들이 서로 상충되는 근원(출처)들에서 편집되어진 구약을 어떻게 읽게 되고, 어떤 영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까? 미국 주요 신학교에서 어떻게 기독교인들의 믿음이 지속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성서는 의심과 불신을 조장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절과 절, 장과 장, 책과 책으로 따로 분리되어 쪼개져 있다. 그런 노력은 성경 이야기가 어떤 편집자에 의해 그리고 그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진리를 통해서 최종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절망적인 것처럼 보인다.㉔

 

  예를 들면 성경의 이런 구절들이 위의 경우에 해당된다. 창세기 3:22-24의 진실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적인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노아 이야기의 진실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성 때문에 세상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창세기 14: 14-21의 진실은 아브라함이 친척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민병대를 소집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진실들은 그것들 위에 첨가되어져 있는 어떤 현대적인 성경 해석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작은 위안

 

  그러나 추상적인 진실은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며 성경학자들은 같은 성경구절이 하나님에 대한 다른 개념을 지닌 다른 출처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출처들의 일부는 창세기 1:26에서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와 닮은 인간을 만들자”에서 표현된 ‘우리’라는 단어에서 증명되었듯이 유대교가 다신교였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첫 1주가 지나고 성경의 첫 부분을 공부하는 동안, 신학교 입학생들은 구약은 결코 신의 기원에 관한 교재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구약은 한편으론 유일하나 결코 응집력이 없는 것을 서로 묶어 놓은 고대 베두인족 신앙의 잡동사니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구약의 여러 페이지에서 신학생들은 진정한 깨우침에 관한 것은 없으며, 구약은 단지 용사들의 이야기, 칼을 휘두르는 천사들, 근친상간, 항문성교와 매춘을 일삼는 믿을 수 없는 고대인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으로 알게 된다.

 

 신학교 입학생들 중에서 아주 부지런한 학생들은, 창세기 이야기에 관한 역사성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물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작은 위안을 갖게 된다.

 

고고학적 증거

 

 문제가 되는 한 사례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다. 창세기에 의하면 그 도시들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거대 도시였다. 그곳은 평야 도시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 도시 자체의 왕과 동부 메소포타미아 지배자들의 영역 아래 있는 다섯 왕들이 있었다. 사해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알려진 길이 없었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그 곳을 정복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와 사해 사이의 고대 통로에 관한 증거는 1920 년대에 발견되었다. 40년 뒤인 1960년대에는, 사해를 굽어보는 동쪽지역에 거대한 공동묘지가 발견되어, 그 곳에 약 50만구의 시체들이 묻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73년과 1979년 사이에, 150만구 이상의 시체들이 매장된 네 개의 보다 큰 도시들이 다시 발견되었다. 첫 번째 도시의 무덤 물품에서 나온 도자기의 연도는 그 도시가 1,000년동안 존재했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또 다른 ‘누메이라’ 도시는 100년 미만 짧은 기간동안 존재했다. 이 도시가 탈무드에서 단 52년동안 존재 했었다고 기록한 소돔이었는가?

 

 “롯이 소알에 들어 갈 때 해가 돋았더라 그 때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세기 19; 23-25)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린 불과 유황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에 잘 붙는 역청은 사해지역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도시들 중에서 두 개 도시(밥 에드라와 누메이라: Bab edhDhra & Numeira, 소돔과 고모라의 현재 지명)의 전역에는 10~50cm의 재와 강력하고 넓게 퍼진 화재에서 나온 잔유물로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은 하나님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지질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다섯 개 도시를 끼고, 지구의 두 개의 큰 판이 서로서로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여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선이 존재한다. 그 압력은 지하물질에 압력을 가해서, 마그마 혹은 역청이 공기 속으로 나오게 한다. 지구가 번개로 인해 점화된 불이 잘 붙는 탄화수소를 대기 속으로 분출 시키고 다시 땅 위로 떨어지게 해서 이 두 도시를 질식하게 한 불과 유황으로 뒤덮어 모든 주민들을 죽였는가? ㉕ 고고학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사실로 설정했다. ㉖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현대 소도미들(동성연애자들)이 몹시 원통해 하는 역사적인 사실로 굳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주장은 고고학적인 증거가 창세기 안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해서 제공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코 그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와 트로이족, 메세니안족, 렐란틴 전쟁들을 포함하여 경험상의 증거로 고대 역사의 어떤 측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편집 비판

 

 틀림없이 “이삭의 번제(히브리어로 아케다)”에 관한 이야기의 중요성은 단지 성경 편집자의 눈을 통해서만 진실되게 파악될 수 있다. 창세기 22:2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래와 같이 명령한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한편 하나님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슨 일이든지 절대적으로 실행할 것을 확신한 후에, 하나님은 창세기 기록대로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리는 것을 멈추게 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창세기 22:12)  

 

 창세기 이야기의 편집자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반드시 죽게 되는 인간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성경학자 토마스 로머(Thomas Romer)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번제(아케다)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가진 개인적인 이미지에 관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즉 우리는 깨우친 인간의 이상에 상응하는 하나님, 공정한 하나님 그래서 이런 깨우친 인간의 개념에 부합되는 어떤 하나님을 원한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으로 공정한’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단순히 정당하게 하는 어떤 우상을 만들기 위해 성경 작가들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㉗

 

  편집자로부터의 또 다른 교훈은 공동 부족의 복지가 아주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적대적인 세상에서는 하나님이란 단어에 대해 부여되는 무조건적인 복종의 중요성이다. 그런 복종은 모든 개인의 관심사를 대신한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유일한 인간 번제는 이런 특수한 맥락에 적용된다. 즉 히브리 민족의 최초의 족장에 대한 시험. 이 교훈은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을 위해 번제 동물을 제공하는 계시로 지지받는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산양을 보고, 그의 아들 대신에 번제로 그것을 바쳤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곳을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말하듯이 ‘여호와께서 준비하리라’ 라고 불렀더라. 여호와의 산에서 ‘그것이 준비되리라 하더라’”(창세기 22:13-14)

 

 역사적인 배경에서 이 이야기는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인도 유럽 민족들 사이에서는, 유아 번제가 일반적이었으며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명령이 전례가 없거나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리아 사람이나 페니키아인들은 중요한 행사에서는 그들의 자식들을 태양신으로 여겼던 바알 신에게 번제로 드렸다. 제사장들은 축제를 위해 제복을 입고 의식에 왔으며, 신의 무릎 안에서 불타고 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요란한 나팔 소리나 피리소리로 인해 약하게 되었다.㉘

  번제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와는 아주 판이하게 대조적이며 하나님은 자비롭고 그의 민족을 위해서 준비해 줄 것이라는 고대 히브리 민족의 견해를 지탱해준다. 이런 메시지는 모세 5경(성경의 첫 다섯 경전: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통해 알려져 있고 그것은 히브리 민족 신앙의 근본으로 남아있다.  

 

 출처(근원)가 모호한 출애굽 10)

 

  그러나 편집 비판은 창세기 이야기의 역사적인 진실을 확립할 수 없다. 구약성서 안에 있는 충돌하는 근원의 문제는 출애굽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대 기독교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야기들의 신화성을 없애려고 하는 학자들의 시도는 충분한 고고학 증거로 인해 성사될 수 없는 상황이다. 성경학자들은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이 모세에게 두 번이나, 출애굽기 3장과 6장에서, 계시로 밝혀진 것을 지적한다. 이 두가지 계시는, 각각 “E” 하나님과 “P”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11)  학자들은 또한 다음 사건을 곧이어 지적하고 있다. 이런 출처는 모세가 광야에서 산에 올랐을 때 그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산의 이름조차도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J” 하나님과 “P” 하나님 측에서는 그 산은 시나이로 불리며, “E” 하나님 측에서는 그것은 호렙이라 불린다. 이런 많은 차이점들은 단지 정본상의 자료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방식들에서 발생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㉙

 

 예를 들면, 불타는 덤불은 단지 “J” 하나님 자료에만 알려지고 있다. “P” 하나님은 일곱 번의 역병을 가지며, "J" 하나님은 6번, "E" 하나님에게는 역병은 전혀 없다. "J"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밤에 급하게 탈출하나, "P" 하나님에서는 낮에 당당하게 걸어 나간다. “E” 하나님은 만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십계명, 석판과 금송아지는 “J”와 “P” 하나님에서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것이 “E” 하나님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집회용의 장막은 “E” 에서만 언급되며, “E”에서는 약속의 방주가 없다. “J”에서는 여호수아가 없으며, 미리암은 “E”에서만 알려져 있다. ㉚

 

 출애굽기는 또한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모세에 관한 세 가지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J” 하나님에서 모세는 기적을 행한 자가 아니었으며, 군대 지도자도 아니었고 종교 창시자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이용했던 영감을 받은 목자였다. ㉛ “E” 하나님에서 모세는 보다 지위가 높아진 강력한 인물이었으며 전능한 기적을 행사했다.㉜ “D” 하나님에서 모세는 모든 예언자들의 본보기였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역사를 기적으로 변형시키는 모세에 관한 언급은 없으며, 그가 전략적인 명령을 내리는 군대 지도자로써 모세는 결코 언급되지 않았다.㉝ 그런 발견들은 여러 학자들이 모세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결론 짓도록 유도했다.

 

신화로서의 모세

 

  모세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결론은 이집트에서 히브리 민족의 속박과 출애굽에 관한 고고학적인 증거 부족으로 강화되어진다. 갈대 바구니 안의 아기 모세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2360년 아카드 왕조의 건국자인 사르곤 왕의 출생 신화에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설형문자 해독은 다음 표현을 포함한다. “나는 사르곤이고 왕이며 아카다의 강력한 왕이다. 나의 어머니는 엔니투 공주였다. 나는 아버지를 모른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고 몰래 나를 낳았다. 어머니는 역청으로 뚜껑을 덮은 갈대로 만든 작은 상자에 나를 넣어 강에 나를 띄웠다. 강물은 나를 띄어 보내서 수로관리인 아키에게로 데려가서, 그가 나를 양자로 입양시켜 그의 아들로 삼고.”㉞

 

 출애굽 2:1-10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레위 부족의 한 남자가 레위족 한 여인과 결혼을 하여,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아이의 준수함을 알고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겼더라. 그러나 그녀가 더 이상 아이를 숨길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그를 위해 파피루스 바구니를 만들어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그 안에 담아 나일강 가에 있는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 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라

  그 때에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 때에, 그녀가 갈대 사이의 바구니를 보고, 시종에게 그것을 가져오라 보내어, 그것을 열고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니라.

  그 때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그러자 바로 딸이 그리 하라 하메 그 소녀가 가서 아기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녀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이가 자라며 바로의 딸에게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녀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비슷하게, 금송아지 사건 이후 석판을 깬 것은 아카드 부족의 법률 전문용어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석판을 깨는 것’은 계약의 무효를 의미한다. 우가리티 부족의 신화에서는, 모트신은 마치 모세가 금송아지를 불태워 가루로 만들어 사방에 뿌린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나스 여신에 의해 가루가 되어 사방에 뿌려져 사망했다.㉟

 

 모세가 진에 가까이 이러러 금송아지와 춤추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석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출애굽기 32:19-20)

 

  실제로, 히브리족의 속박과 해방에 대한 이야기에 관련된 유일한 비성서적 참고사항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역사학자인 마네토에서 유래된다. 그는 출애굽은 극빈자로 노예생활을 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역병에서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모세는 성직자로서 유대인 나병환자들 무리 속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집트 성직자들에게 기본이 되는 청결함을 나타내는 규칙을 제시했던 이집트 제사장이었다.㊱

 

증거의 부족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성서학자들은 선지자들이 모세와 출애굽에 관해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성서 이야기가 에즈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시대에 유대인들은 바빌론포로(기원전 540 년)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었다.㊲ 이 역사적인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다윗, 솔로몬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들이 히브리족의 해방과 몇 년에 걸친 광야 방랑생활에 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애굽 이야기에 관한 증거 부족에 관해서 스텝텐 가브리엘 로젠버그(Stepten Gabriel Rosenberg)는 『예루살렘 포스트』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출애굽의 전체 주제는 고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출애굽은 우리 유대인의 근원과 관련하여 너무도 근본적인데,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가 성경밖에 없다는 것은 당혹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관해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토라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 민족의 근본이므로, 그것들은 우리 생존의 근원이며 중요한 유월절 축제와 우리가 자유축제 첫 날에 암송하는 전체 하가다(탈무드의 비율법적인 교훈적 이야기)의 근원이다.

  그런 이유로 고고학자들이 우리 형제들과 우리 자신들에게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 이집트의 기록에는 전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노예제도에 관한 것도 전혀 없으며, 바로 왕으로 하여금 그들이 애굽을 떠나도록 허락하는 어떤 역병도 없으며, 홍해를 건너는 기적에 관한 것도 전혀 없다.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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