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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씨앗들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1부 4장)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2.01.26|조회수49 목록 댓글 0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4

 의심의 씨앗들

 (The Seeds of Doubt)

 

  우리 중에서 어떤 부류가 이런 학문적인 제국적 반셈족주의(셈족:노아의 첫째 아들 셈의 후손)를 인정할 수 있으며“진리를 위해 우리와 우리 조상들은 죄를 범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또한 우리는 거짓 겉치레를 걸치고 살아왔으며 세상에서 최악의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시인할 수 있을까우리는 모든 사람이 과거에서부터 자신의 삶의 인증서를 보여줘야 하는 역사적인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마라성경은 전능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공한 우리의 고귀함의 특허장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성경과의 관계를 끊고그것을 어떤 성경 비평가들의(웰하우젠스테이드 그리고 둠)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겨두고 다른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선민들의 후광”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내버려둔다면세상은 우리와 관계를 끊을 것이다성경 속에는 일시에 영적인 벼락부자가 될 공간은 없다그러나 이런 지적인 박해는 단지 지적인 무기로 싸울 수 있으며 만일 우리가 성경을 회복시키기 위해 스스로 우리 신학을 심사숙고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우리는 양쪽 세상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버림받을 것이다.

 

      솔로몬 세크터(Solomon Schechter), “보다 높은 비평보다 높은 반셈족주의“ 1903.3.26

 

  약 200년에 걸친 성경 비평의 결과들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이다, 많은 신학 비평가들에 의하면, 성경책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아니며 그리고 이 책들의 내용은 실제 사건들과 실제 사람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 이야기는 그것과 관련된 것들의 보다 먼 과거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 글의 역사적인 맥락을 반영한다”라고 코펜하겐 대학의 신학교수인 토마스 엘 톰프손(Thomas L. Thompson)은 서술하고 있다.①

 

  이런 신앙자들의 결론은 아주 파괴적이다. 모세 5경에 관한 어떤 것도 모세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즉 다윗과 솔로몬, 이 두 왕들이 일찍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지만, 이들은 예루살렘 주변의 작은 지역의 소규모 부족 지도자였으며, 예언자들이 말했을 수도 있는 신탁의 일부가 각색되어져 확대되고 그 내용들이 언급된 후 몇백년 뒤에 편집된 문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② 그래서 히브리족 성경은 페르시아 시대 혹은 조금 뒤에 일어났던 어떤 유대주의를 홍보하기위한 선전 기록물이다. 즉 구약은 하나님 계시의 근원일 것이라는 주장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존재하고 있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성경 해석의 공허감

 

  성경 비평가들은 그들 주장에서 여전히 고집스럽다. 그들은 신의 계시 개념을 묵살하고 그들의 이론을 반박하는 증거들을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1975년, 존 반 세터즈는 (John van Seters) 『역사와 전통에서의 아브라함』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모세 5경에 대한 그후의 모든 연구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국의 많은 주류 신학교에서 정규 교재로 남아있다. 그는 아브라함이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년 초기)에 고대 가나안 지역에 살았다는 믿음에 관한 기본 자료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그 시대의 가나안 문헌에는 천막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며, 반면에 천막 거주민에 관한 풍부한 기록이 그 다음 천년시대에 나타났다.③ 그러나 그는 단지 천막 기록의 희귀성에 근거하여 창세기 이야기에 관해서 왜 그가 보다 늦은 연대를 선호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알브라이트(Albright)와 다른 사람들이 제공한 다른 설명을 무시하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④ 최근 고고학적인 발견들이 아브라함의 성경 이야기와 그의 부족의 천막 거주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⑤ 반 세터즈의 저서는 히브리 민족의 족장에 관한 완벽한 출처로써 계속 확인되고 있다.  

 

 위와 비슷하게, 모세 이야기를 뒷받침 해주는 증거가 데이비드 로흐(David Rohl)와 다른 이집트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⑥ 그러나 그런 발견들은 그들이 볼크만 프리츠(Volkman Fritz)와 로버트 쿠테(Robert Coote)같은 유명한 성경비평가들의 주장에 도전했음으로 계속 무시당하고 있다. 그리고 코펜하겐 대학의 피터 렘치(Peter Lemche)같은 학자는 “성경속의 다윗은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다”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⑦ 그렇지만 1993년 텔단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비록 깨어진 아람언어로 되어 있지만 ‘다윗의 집’이란 문자가 새겨져 있다.⑧

  그런데 현대 성경 연구학과 문헌 및 형태 비평가들의 해체주의적12) 저서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가?

 

독일의 합리주의자들

 

 줄리어스 웰하우젠(Julius Wellhausen)과 현대 성경비평의 여러 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이론적인 근원과 모든 지식 심지어 영적인 지식에 대한 시험으로 간주했는데, 그들은 독일의 합리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의 계시라는 개념을 부정했다. 그들 관점에서 보면, 성경은 근원이 다양하며 종종 상충되는 출처에서 (J, E, P와 D의 하나님) 편집되어진 단지 인간들이 기록한 하나의 책이었다.⑨

 

 1875년, 웰하우젠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서문』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사실에 근거하여 성경이야기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토라는 모세가 쓴 것이 아니며 오히려 4가지 문헌의 편집이라고 주장했다. 각 문헌은 내용과 전반적인 모습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비록 그 내용들이 한 저자에 의해서 기술적으로 서술되어져 있지만, 각 문헌의 독특한 특성들은 성경 첫 다섯 권에서는 각각의 출처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장 빠른 것은 'J' 문헌이다. (‘J’는 신성한 존재의 최초의 이름으로, 이 출처에서 줄곧 사용되었으며 필수적인 존재가 됐다). 그 명칭은 곧 엘로히스트 문헌 즉 'E'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 혹은 ‘주님’으로 불리워졌다. 웰하우젠에 의하면 이 두 문헌은 초기 군주시대에, 아마 기원전 9-10세기에 작성됐다. 신명기 저자 문헌 즉 'D'는 레위기, 민수기와 신명기까지 이야기 식의 틀을 제시했다. 웰하우젠은‘D’ 문헌의 시기를 기원전 7세기 요시아왕 시대로 추정했다. 제사장 문서 ‘P'는 세계적인 역사와 폭넓은 법률 코드로써 주로 숭배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고 각기 기념 의식을 위한 올바른 제사를 규정하는 제사장의 관심사가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웰하우젠은 토라의 이런 출처를 바빌론 추방 이후 시대로 격하시켰으며 기원전 5세기 에즈라 법전과 연관시켰다.⑩          

변화하는 구절들

 

 웰하우젠의 방식은 줄기차게 단순했다. 그의 이론에 적합한 구약성서의 모든 구절들은 웰하우젠에 의해 정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웰하우젠이 그의 이론에 맞지않는 어떤 구절을 마주치면, 그는 히브리 단어를 변경하고 삭제했으며 그가 ‘추측하는 수정본’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삽입시켰다.⑪

 

경전 위조

 

 그의 분석으로 편집된 토라의 구절들은 진본으로 간주되었으며, 한편 그가 보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수천 개의 구절들은 위조된 것으로 무시되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위조된 내용들은 성경이 바빌론 추방 시대에 편집되어져 그 이후 성경 속으로 삽입됐다고 한다. 이 악의적인 사람은 가위와 풀로 여러 문헌들을 도려내고 붙이면서- 한 문장의 반을 이쪽으로 또 다른 반을 저쪽으로 옮기면서- 그가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되도록 만들 때 까지 네 개의 고대 문헌들을 쪼개고 꿰매면서 작업을 했다.⑫

 

유대교의 어떤 문제점

 

  웰하우젠은 이성의 눈으로 경전의 여러 구절을 없애고 벌거벗게 하려고 시도한 것 이외도 그는 반셈족주의자였다. 그의 저서들은 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악의에 찬 표현들로 고춧가루 뿌리는 것들이었다. 여러 장의 그의 글에서, 그는 유대주의의 생존은 아주 통탄스럽다고 고백했다.⑬ 그는 또한 히브리 민족의 종교적인 경험이 왜 세계 전체에 어떤 기능적인 가치 혹은 중요성을 띄게되는 것에 대해 어떤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 모압족(사해 동쪽에 있었던 시리아의 옛 왕국)의 신인 ‘키마슈’를 제치고 공정의 후견인, 우주의 창조자가 되었는지 말할 수 없다.”⑭

 

 웰하우젠은 또한 그의 경전 분석에 관한 영감은 요한 볼프강 본 괴테가 쓴 1773년 수필에서 나왔다고 고백했다. 그 작품에서 괴테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나는 유대민족을 광야와 일련의 메마른 나무들 속에서 자리잡고 있는 난폭하고 불임에 처해있는 가축으로 간주한다. 그런 나무들에게 영원한 정원사인 신이 고귀한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접목시켰다. 그래서 그런 존재에 밀착하여 예수는 가축의 본성을 고귀하게 했으며, 거기서 여러 조각들은 남아있는 나무들을 생식력이 있게 만들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다. 이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최초의 새싹에서부터 접목까지 분명히 배타적이며, 미래의 위대한 행위에 대한 기대 속에서 아마도 그것에 부합되어왔던 보편적인 사상의 작은 부분은 추구하기에는 어렵고 아마 심지어 필요없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접목이후 계속해서 전반적인 문제점이 차례로 나타났다. 사상과 역사는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비록 그것으로부터 고귀하게 된 각기 나무들은 환경에 따라 그것 자체의 특별한 역사와 그 자체의 특별한 사상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렇더라도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여기 기독교의 경우에서는 유대교 사례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 만큼 거의 의심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특별한 것은 없다.”          

 

웰하우젠의 제자들

 

  웰하우젠은 독일 주류 대학의 성경학과에서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수백명의 제자들을 끌어모았다. 웰하우젠의 가장 열렬한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인 프레드리히 델리치(Friedrich Delitzsch)는 ‘바벨과 비벨’이란 연설을 했는데, 거기서 그는 구약성경은 어떤 종교적 혹은 도덕적 가치가 결여되어있다고 말했다. 그 강연에 이어서 카이저 윌헤름(Kaiser Willhelm)은 델리치가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후광을 소멸시키는 것을 도와줬다고 말하면서 델리치를 축하했다. 또 다른 웰하우젠의 제자인 아돌프 하르나크(Adolf Harnack)은 신교도들은 성경에서 구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⑰      

 

  웰하우젠의 사상은 그의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서도 구약 비판을 주도하게 됐다. 다수의 해설서 뿐만 아니라 윌헤름 나우액(Wilhelm Nowack)과 카알 마르티(Karl Marti)가 편집한 『성경 국제비평 해설』 같은 것을 포함하여 이스라엘과 히브리 문학의 가장 중요한 역사기록들이 거의 전적으로 웰하우젠의 주장에 근거했다.⑱

 

세계적인 수용

 

 웰하우젠과 그의 학설은 그것이 19세기 말의 지적인 정신을 반영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그 시대는 프레드리히 헤겔(1770-1831)의 사상에 도취되어 있었는데, 헤겔은 인간의 모든 역사는 보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옮겨가는 진보를 나타낸다고 가르쳤다. 헤겔 철학은 여러 생물 종들은 수천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는다는 찰스 다윈의 연구 결과와 인간은 유인원과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토마스 헨리 헉슬러의 주장으로 지탱되었다.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지성인들은 유대 종교는 우상숭배에서 발전되어 많은 중간 단계들을 거쳐왔으며, 그 단계 중의 초기가 토라였고 궁극적으로 유일신인 예수에 도달했다고 전적으로 믿게되었다.⑲

 

 한편으론 위의 주장과는 상반되게 『종교와 철학 비평』에서, 왈터 카푸만(Walter Kaufmann)은 웰하우젠과 그의 학파들의 성경분석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결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분석하는 고차원의 비평가들을 상상해 보자. 그 책은 60년에 걸쳐 한 사람에 의해 집필되었다. 제 1부의 여주인공은 그레체인데, 그녀에 관한 여러 부분들은 한 작가에게 넘겨진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역할에 관한 상충되는 개념은 보다 깊숙한 분할을 요구하는 것으로 서술되며 그리고 천국의 서문은 작가의 후기 나이에서 집필된다. 한편으론 무대 위에서의 서문은 다른 작가가 언급할 것이다. 우리 비평가들은 제 2부가 다른 시대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의심은 전혀 없을 것이며, 2부는  아주 다른 생각을 지닌 많은 작가들에게 할당되어짐에 틀림없다. 예를 들면, 제 4막의 끝은 교회를 풍자하는 반가톨릭 작가를 가리키며, 반면에 제 5막의 끝은, 우리가 들은 바로는 아마 정통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가톨릭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작가가 집필한 것이다. 우리는 괴테의 파우스트 혹은 모세 5경에서 두 작품들의 문체, 사상 그리고 기획 측면에서, 어느 작품에서 보다 많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마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위의 카푸만의 지적과 윌리암 알브라이트(William Albright)같은 유명한 고고학자의 발굴 유물에도 불구하고, 웰하우젠 학파는 주류 기독교 신학교들의 목 조르기를 계속하고 있다.

 

 왜? 그 대답은 만일 여러 신학교에서 웰하우젠 등의 성경학자들이 구약에 대해 보다 강하게 악평을 하지 않는다면, 그 신학교들은 그들의 재정지원의 상당한 돈을 잃게될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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