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41권 6편
통일식구의 사명 (훈독본) 9600
1971.02.16 (화), 한국 성동교회
오늘은 '통일식구의 사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통일교회는 먼저 기독교를 통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오시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죽으러 이 땅에 오셨다. 내 죄를 위해서 신랑되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가지고, 나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져 가지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 하며 예수님을 대속(代贖) 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예수님은 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원수 국가인 로마 나라를 타고 앉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님이신데 이 원수 나라에 끌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이 그를 배신한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뜻에 따라서 신부를 맞이하여 장가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부는 하나님의 며느리입니다. 그 아들과 며느리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손자 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손자 손녀 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손자 손녀의 3대(代)쯤 가다가 끊어지기를 바라겠어요, 증손자 고손자 고고고…손자까지 영원히 대가 이어지기를 바라 겠어요? 영원히 그 대가 이어 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지파와 족속과 나라가 생겨났겠어요, 안 생겨났겠어요?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아도 천당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아들딸도 예수 믿어야 됩니까?
예수님이 죽었으니 다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도 없어졌고, 아들 딸의 자리도 없어졌고, 예수님의 손자를 중심삼은 예수 지파 자리도 없어지고, 족속의 자리도 없어지고, 민족의 자리도 없어지고, 나라의 자리도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혈통의 씨가 마르고 없으니 다시 로마정권의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구원의 한계
예수님의 족속이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그 족속과 사돈 될 가망성이 있어요, 없어요? 이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만일에 그렇게 되었다면 그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도 애급에 들어가 가지고, 그 사지에서도 자꾸 번성해 가지고 애급 나라가 불쌍해질 뻔했는데, 만약에 예수님의 직계의 아들딸을 남겨 놓았다면 잘 퍼졌겠어요, 안 퍼졌겠어요? 하나님이 잘 퍼지게 하겠어요, 안 퍼지게 하겠어요? 잘 퍼졌으면 나라가 이루어졌겠어요, 이루어지지 않았겠어요? 나라가 이루어졌으면, 그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하나의 주권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일 수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원해서 죽었어요, 몰려 가지고 죽었어요?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기도는 기성교회의 주장대로라면 잘못한 기도라구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예수님을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나라와 교단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땅과 백성과 주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백성을 갖고 주권을 갖고 땅을 갖고 있습니까?
기독교는 나라와 땅이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 몰리면 쫓기고 죽어가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인 죄를 오늘날 기독교인이 탕감해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600만명이나 히틀러에게 떼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은 데 대한 탕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그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느냐?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천국 갈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도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한을 가진 사람이 그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까? 원한을 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왜 원한을 남겼느냐? 신부를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못 찾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만왕의 왕비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왔기 때문에 인류는 만왕의 왕후를 받들어 모셔야 됩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
인류의 아버지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 혼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부인이 없으면 부모는 못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무엇 때문에 한이 맺혔느냐? 그것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데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두 제자의 입장과 그들의 불충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 믿고 천국가자'고 합니다. 천국은 믿어야만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더라면 죽긴 왜 죽어요?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다면 가만히 있어도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이종 사촌 형이 되지 않아요? 서로 형제지간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유대 나라에서 천재라는 명성이 붙어 가지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만히 있으면서도 그러한 형을 내세워 가지고 하게 되면 유대 나라는 한꺼번에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긴 왜 죽어요?
예수님의 12사도는 무엇이냐 하면 한 나라의 충신의 대신자요, 교회의 제사장의 대신자요, 가정의 12지파 중 열두 아들의 대신자입니다. 이러한 3단계적인 가중된 책임에 입각하여 예수님은 오로지 그것을 위하여 정성을 다했는데도 그들은 가정의 부모된 입장도 버리고, 교회의 제사장된 입장도 버리고, 나라의 군왕된 입장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신부를 찾아 다시 오심
그러니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예요? 예수가 왜 죽었습니까? 신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신부를 못 찾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나타나서 '내가 다시 오마'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오는 데는 신랑으로 신부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만왕의 왕의 왕후를 책정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어머니를 책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사모님을 책정하기 위해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 위에 오셔 가지고 나라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나왔더라면 뜻은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 가지고 이러한 내용을 갖춘 세계적인 판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이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왕자는 왕권을 잡기 위해서 왕궁을 세우고 황족권을 만들고 세계를 지휘하기 위해 오십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내주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우주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온 천지가 깜깜했어요. 세시간 동안 깜깜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의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하시어 메시아를 보내셨는데 그 메시아가 보혈의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시간이 영광의 시간이예요, 아니예요? 영광의 시간이었다면 왜 천지가 깜깜했느냐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아서 버렸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니 하나님도 예수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까지 보냈는데 사명을 완결짓지 못한 것이 원통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식으로 보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팎으로, 영적 육적으로 다 틀어져 버리니까 영적으로라도 구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땅을 상징하고 마음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사탄이가 침범해서 못을 박고 했지만, 예수님의 정신은, 예수의 영은 거기에 무한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 육신은 녹아나 없어지더라도 하늘과 상대되는 내 마음과 사상은 거룩히 하고, 침범받지 않겠다고 몸부림쳤다는 거예요. 죽더라도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장을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3대 한을 해원성사하는 것이 통일식구의 사명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하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세째는 이스라엘의 한이 맺힌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한은 역사적인 인류의 한이 맺힌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예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3대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이 한을 풀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적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가졌다면 한꺼번에 다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었다면 씨족도 통일이 되는 것이요, 교회도 통일이 되는 것이요, 나라도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통일되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연결된 것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주권자를 중심한 국가가 하나된다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뜻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이 맺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리고 고생을 했습니다. 나라가 예수님을 반대해서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반대하니 교회도 잃어버렸지요? 그 다음 요셉 족속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들린 자라고 전부다 비난했지요?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마리아도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에 가려고 해도갈 수 없고, 씨족을 찾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교회를 찾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나라를 찾아가려고 해도 갈 데가 있어요? 이렇게 되니 죽는 것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머무를 데가 없었다는 거예요. 의붓아버지인 요셉의 등살에 뼛골이 녹아 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했던 세례 요한
예수 가정이 그를 믿고 철옹성 같은 울타리가 되었다면 열두 제자는 누가 되는지 알아요? 베드로 같은 어부나 무식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형제들이나 사촌, 육촌, 팔촌 등 문중에서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 7∼8)". 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갔던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께 세례를 해주기 위해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하고 수작을 했던 것입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 거 아니냐? 세례 요한 자신이 이루어야 할 천국을 힘쓰는 베드로가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찾아 세운 제자들마저 끝까지 따르지 못했으니
그러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은 무엇이냐?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는 기간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부를 준비했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30세가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것을 생각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도 요셉과 마리아 때문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가 아니요,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가 아니요, 형제가 있어도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중이 있어도 문중과 자기가 상관할 수 없었고, 교회가 있어도 교회와 상관할 수 없었고, 나라가 있어도 나라와 상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정 대신 상관할 수 있는 패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두 가정을 중심삼은 대표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집을 나와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하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 교단과 요셉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터전은 온데 간데 없어졌으니 집시나 방랑자와 같이 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되니까 사탄이 예수님에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고 시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개인을 걸고, 가정을 걸고. 나라를 걸고, 세계를 걸고 싸워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기가 막힌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게 될 때 예수님을 따르던 5천여 군중은 다 어디 가고 12제자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따라 죽은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상속을 받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망명객으로, 뜻을 이룰 수 있는 예수가 못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열매를 못 맺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영육 완전 구원이 아닌 일부분인 영적 구원이라도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뜻이요, 예수님이 바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성경에 십자가의 곡절이 역설적인 내용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
이스라엘은 총각 예수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신랑된, 남편된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아버지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할아버지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그리고 씨족의 족장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민족의 중심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국가의 주권자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다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이요, 이스라엘이 바라는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쫓겨다니는 예수밖에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한입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이나 세계에 유리고객하며 가는 곳곳마다 말발굽에 밟혀 죽고 칼에 찔려 죽으며 얼마나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는지 알아요?
그래서 특별한 시기를 맞아 이스라엘 민족 600만이 학살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죄를 다 탕감하게 하셨고, 재봉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새로운 세계 역사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뭐 우리를 위해 죽으러 왔다고요?
죽는 날까지 이 3대의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한을 풀고, 그 다음엔 예수님의 한을 풀고, 또 그 다음엔 이스라엘의 한을 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풀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3대 한을 풀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3대 한을 전부 다 풀 수 있겠느냐? 통일교단과 기성교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국애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애국 애족하는 교회다. 저들의 사상이 아니면, 저들과 같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갈 길이 어떻다' 하는 것을 이 민족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열두 지파와 요셉 종족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하여 종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민족을 대신하고, 교회를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부모를 대신하고, 형제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의 할아버지, 할머니, 형님, 누나, 동생, 아주머니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그들을 대신하여 이 사람을 예수로 알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민족과 교회와 종족과 가정이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았으니 개인의 뜻을 종족으로 넓히기 위해서 사랑 못 한 형을 찾아서 사랑해야 합니다. 누나가 있으면 누나를 예수님 대신 사랑해야 되고, 아줌마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아줌마를 예수님 대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데도 예수 대신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것을 지금까지 실천한 사람들이 통일교회 무리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총각 예수가 아닙니다. 축복가정은 예수 아저씨, 예수 아줌마를 대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예수를 믿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종족을 편성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황족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면 앞으로 천국은 어떻게 이룰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세계 사람을 사랑을 해야 됩니다. 세계 사람을 사랑하라 이겁니다. 국경을 초윌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여 사막이나 아프리카의 오지의 사람이나 그 누구나 자기의 자녀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 대신 누나와 같이, 예수 대신 동생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편화된 세계가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한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는 식구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식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식구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 아닌 부모, 형제 아닌 형제를 자기의 친부모를 모시는 것보다도, 자기의 친형제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의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안 되는 거라구요.
통일 식구의 사명
그러면 통일식구의 사명이 무엇이냐? 가정에 있어서의 사랑, 교회에 있어서의 사랑, 나라에 있어서의 사랑, 이 3대 사랑의 한이 맺혔던 것을 우리가 풀어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 하면 믿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도 못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짜 사람도 잘 믿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지 말고 복을 주기 위해서, 그가 복을 받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복을 받자고 해서 위하면 지옥 가는 거예요.
복을 베풀어 주어야 됩니다. 선을 행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참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말씀선집 41권 6편, 원문
통일식구의 사명
1971.02.16 (화), 한국 성동교회
오늘은 '통일식구의 사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많습니다. 불교, 기독교, 유교, 회회교 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만을 보더라도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수백의 종파로 분립되어 세계에 널려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그 가운데의 한 교파입니다.
끝날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때
어떠한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말합니다. 또,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고 믿는 것과 동시에 자기가 믿는 종교가 세상에서 제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신도들은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를 중심삼고 모든 종교가 하나되기를 바라고, 또 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불교를 중심삼고 모든 종교가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종교면 종교, 종파면 종파의 교인들은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나 종파를 중심삼고 세계 제일이 되기를 바라고 전세계가 우러러 받드는 종교나 종파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도 한 교파로 생겨났습니다. 통일교회는 먼저 무엇을 통일해야 되느냐 하면 기독교를 통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파로 갈라져 가지고 서로서로가 반목질시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만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도리나 사상은 하나입니다. 말씀도 하나이고 그 계시도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그 내용이 달라져 가지고 수많은 교파로 갈라지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날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끝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끝날에는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나서 삶이 끝나게 될 때까지의 살아온 과정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봄절기에 시작하여 여름절기를 지내고 가을절기를 맞이하여 끝날이 되면 나무면 나무가 일년 동안에 어떻게 지내왔는가 하는 사실이 드러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역사시대의 끝날이 되면 종교면 그 종교의 전체가 전부 드러나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비단 종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두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오늘날 여러분,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현재에 처해 있는 그 개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시대의 우리 선조들의 혈통적 인연을 상속받아 가지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그 개인이 선조로부터 받아 내려온 그 결실, 그 결실이 잘된 결실이냐 잘못된 결실이냐 하는 사실이 끝날에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듯이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잘되고 어떤 가정은 못되고 하는 것이 끝날에는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움직임으로써 수많은 가정이 드러나고, 그 가정이 역사적 국운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지내온 그 가정의 현재 입장이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러하면 나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 민국이 반만년 역사를 거쳐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곡절이 많았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열매로서 나타난 게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씨가 좋은 밭에, 옥토에 뿌려져 가지고 좋은 농부의 손을 거치면서 풍부한 양분을 공급받아 잘 자라는 곡식과 같은 입장에 선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조들이 부흥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이런 역사시대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 민족은 반드시 후진국가가 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한 나라도 끝날이 되면 될수록 그 나라가 지내온 과정이 차차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어서 망했다 흥했다 하는 여러번의 수난길을 거쳐 오면서 결국 끝날에 와서는 나라마다 전부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에 있어서 선진문명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현재에 있어서는 중진국 또는 후진국, 미개국으로 몰락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걸 볼 때 반드시 그 끝이 좋든 싫든간에 역사의 과정에 따라서 그 역사적인 결과는 나타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을 보게 되면, 50살까지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70살까지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80살까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흑은 100살이 넘게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전부 다른 연령에서 한 개인의 생애가 끝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시작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큰 종교일수록 나중에 빛이난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회회교면 회회교, 이런 세계적인 큰 종교가 언제까지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라든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뜻을 많이 계승받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종교일수록 나중에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사명을 짊어진 종교일수록 환경에 적응해 버림으로써 그 사명이 끝나기 때문에 그 종교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흘러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면 4대 종교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전세계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인류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는 종교가 오늘날의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기독교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이 오는 것입니다. 가을 절기와 같은 때가 오는 것입니다.
가을 절기가 찾아오면 무성하던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봄절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봄절기에는 하나의 잎이 나와서 두 잎이 되고 두 잎이 네 잎, 이렇게 점점점 배가 되어 가지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줄기가 튼튼하지 못하면 아무리 잎이 무성하다 하더라도 곧 시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름에 자랄 때는 그 줄기가 아무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줄기야말로 수많은 잎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줄기에서부터 새로운 생애와 새로운 가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꽃도 줄기에서 피는 것이요, 열매도 줄기에서 맺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초대교회 시대가 있고, 그 다음에는 부흥하는 시대가 있고, 그 다음에는 점점점 발전하여 전성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전성시대가 오면 그 전성시대를 거쳐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포화 시대를 거쳐 반드시 내려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름에 모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전성기를 지나 가을에 들어서게 되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그렇게 되면 그 전성기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맨밑창에 왔다가 다시 올라가게 되면 거기에서 생명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올라갈 때 거기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은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생명을 유지하면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그런 씨의 바탕을 갖지 못하면 영영 가을과 더불어, 겨울과 더불어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일년의 춘하추동을 보면 우리가 그것을 잘 알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볼 때,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소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 전체는 돌고 도는 순환 법도에 따라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는 것이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것이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거예요. 시작하는 때가 있으면 전성의 때가 있고 그 다음에는 반드시 결실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결실하는 때는 줄어드는 것입니다. 무성하게 뻗어 나가게 하는 그 모든 진리을 한 생명체에 집약시키기 위해 흡수해 가지고 열매를 익게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잎은 점점 말라가고 열매는 나무에서 진액을 빼 가지고 점점 익어가는 때라는 거예요.
종교에도 이처럼 반드시 가을절기와 같은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에도 반드시 가을 절기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가을절기가 오면 어떻게 되느냐? 새로운 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종교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계승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하나의 터전이 마련되면 새로운 종교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봄절기를, 새로운 문명시대를, 새로운 문화권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종교 출현의 필연성
오늘날 전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지금의 때는 종교계가 예고하고 있는 말세의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싸우고, 불교는 불교대로 싸우며, 유교는 유교대로 싸우는. 이렇게 모든 종교가 싸우고 있는 실상을 바라볼 때에, 이것은 종교로서의 본질을 상실하고 종교로서의 소원하던 목적과 완전히 이탈된 모습입니다.
이렇게 그대로 서로 싸우면 어떻게 되느냐? 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고, 그 다음에 형제끼리 세 번만 싸우게 되면 그 가정은 이미 볼장 다 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시련의 한 골짜기에 떨어졌다가 다시 차례로 올라와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 모든 종교가 예고한 말기를 맞이해야 할 이런 세계적인 정상에 있어서는 기독교면 기독교, 불교면 불교도 다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때에 있어서 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되느냐? 기독교면 기독교에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불교면 불교에서도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과거의 모든 그릇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보강함으로써 새로운 싹이 나오듯이 새로운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잎도 없고 가지도 앙상하게 말라붙어 쓰러져 가는 나무에서 하나의 새순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이 나무를 거름삼아 잘 자랄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마련되고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의 것을 그냥 가지고는 사회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참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배경을 갖고 나왔지만,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기성교회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과거에 믿고 나오던 기성 교회와 마찬가지의 교파로서 나왔다면 통일교회 역시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과 더불어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흘러가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하나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흘러가는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박아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부패되었습니다. 미국을 보나 구라파를 보나 현재의 한국 교계를 바라보나 기독교는 이미 끝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계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끝장난 기독교를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부르짖던, 혹은 기도하고 사고하고 성경을 보고 설교하던, 그 당시의 것이 그냥 그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끝장이 난다는 것은 내용이라든가 형식이라든가 그 무엇이 본질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용이라든가 형식이라든가 하는 것이 그냥 두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것, 내용이 다르면 더욱 좋지만 내용이 같더라도 그것을 보다 충실히 갖추고, 형식도 보다 충실히 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조에 맞을 수 있다면 이 문화세계 발전도상에 있어서 상관적인, 상응적인, 보응적인 관계로써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옛날의 그것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 옷이 다 낡아서 입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낡은 옷감을 가지고 새 옷을 짓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 옷을 지으려면 감을 새로 떠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한복이었다면 그것을 뜯어 가지고 요즘 유행하는 미니스커트를 만든다든가 하는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폐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역사적인 종말이 수많은 종교 앞에 혹은 수많은 종파 앞에 부딪쳐 오는 현시점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사실은 내용이야 어떠한지 모르지만 그 표현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을 이렇게 저렇게 헤아려 볼 때에 수많은 종교들이 어차피 떨어질 나뭇잎과 같고, 어차피 쓰러져서 썩어질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목표라든가 소망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안 되면 뭐든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고, 새로운 형식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통일을 표방하고 나선 통일교회
그러면 통일교회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했느냐 할 때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알고 있는 사실이 진짜 그러냐 아니냐, 그러면 거기에서 보다 더 가중된 내용이 통일교회에서 제시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현재보다 나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함으로써 끝장이 난 기독교권이지만 몇발자국이라도 끌고 갈 수 있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다 죽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싱싱한 녀석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그들을 끌고가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통일을 표방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통일하기가 쉬워요? 핀트를 맞추려고 해도 제대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통일교회가 이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느냐 할 때 통일할 수 있다 하면 통일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레일을 만들어 놓고 기차를 싹 밀면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전부다 밀려가는 거예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그 레일 위를 가려면 기차바퀴 모양을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전부다 그런 모양을 하지 않고는 거기를 못 가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공식적인 방안이 있으면 통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말세의 이 땅 위에 수많은 종파가 부패된 이런 입장에 섰지만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달리해 가지고 발달해야 되겠다'는 신념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대에 있어서 혼란을 야기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경각적인 의미에서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필요없을 것 같아요? 기성교회 입장에서는 필요없다 할 것이고, 통일교회에서는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렇고 저렇고 떠들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뭐 필요 있다 없다 떠들 필요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진짜입니다. 가짜는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이외에는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가짜는 입고 있으면서도 '이걸 벗어버리고 진짜를 한번 입어 봤으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가짜는 모양이 번듯한데도 불구하고 벗어버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옷을 항상 입는 신세를 지면서도 '이것을 언제 벗어버리나, 진짜가 언제 생길꼬' 하고 진짜를 바랄 것입니다. 이게 어거지라면 어거지고, 형편없는 망상이라면 망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짜는 누구나 다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되는 데 있어서 가짜에 의해 통일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할 때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되는 데는 지금은 안 되지만 이제라도 진짜에 의해서 통일되어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진짜만 나오면 통일되지 말라고 해도 자연히 통일됩니다. 그러나 진짜가 나왔더라도 가짜가 많은 세상에서, 가짜가 수천만도 더 되기 때문에 외롭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짜는 수두룩한데 진짜만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찾은 사람이 진짜라고 말하면 말할수록 거짓말로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니 진짜와 가짜를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요? 어디 툭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믿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고락을 같이해야 될 거 아니예요?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은 목사들 가운데 누가 진짜냐는 거예요. 진짜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세계의 수많은 목사 가운데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진짜는 하나입니다. 그럼 그가 누구냐? 모르긴 모르지만 그 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와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진짜 같은 것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진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만히 들여다보고 진짜 같다고 해서 도망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어차피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찾는 물건을 사려고 하는 상점은 이 상점이 아니다, 이 교회가 아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인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여기는 내가 물건을 사려고 하는 상점이 아니다' 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진짜가 아니면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련없이 퍼뜩 가라는 것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게 되어 있어
그러면 진짜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군자같이 점잖게 생긴 사람이 자기를 중심삼고 사람들은 다 이렇고 이렇고 하지만 자기만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는 줄 알아요?(웃음) 그런 사람이 바보라는 거예요. 그 군자라는 사람이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됐느냐는 거예요. 진짜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진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를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진짜를 아는 사람을 만나도 그가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짜예요, 진짜예요? 섭섭할지 모르지만 우리 한번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진짜 같아요, 가짜 같아요? 자기집 개가 집안 마당에다 똥을 쌌다 하더라도 주인은 그것을 용서할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안방에 들어가 가지고 주인에게 쓰다듬을 받다가 뛰쳐나온 개가, 대문간에 주저앉아 가지고 주인을 보고 좋아하는 개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자기는 그렇지만 그것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주인이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믿어도 그렇고 하나님을 믿어도 그렇다는 거예요. 자기 자체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자기 자체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싸움판에서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을 가만 보면, '내가 잘못 했다' 하는 녀석은 없습니다. 싸움하는 것을 보면 되레 잘못한 녀석이 나 혼자 잘했소 하고 큰소리칩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를 두고 볼 때 사람들이 삼팔 이북이냐, 삼팔 이남이냐? 그렇지 않으면 중간위치에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하는데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다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지만, 나 자신이 지금 사기왕이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지만 자신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다 안다는 거예요. 수천 가지 말이 다 사기치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자기가 한마디의 참말을 했다면, '그 말도 습관이 되어서 사기치는 말인지 모르지'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사기꾼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옳은 말을 한 것은 그래도 사기치려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내가 지금 좋은 말을 하고 있는지 나쁜 말을 하고 있는지, 좋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요, 몰라요? 이것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좋은지 나쁜지 헤아릴 줄을 알면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른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역사에 실재했던 인물이냐, 이것은 예수 패거리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공산당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 예수님 봤어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다고 합디까,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있는 것은 모르지만 있었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예수님이 있었다고 하는 말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애수가 있건 없던간에 예수와 상관 없는 사람이 말해도 있다는 것을 먼저 스스로 자신들이 마음속 깊이 느껴야 됩니다. 잘난 목사가 얘기하든, 못난 목사가 얘기하든, 예수님이 있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그럴는지 모르지' 할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먼저 누구 말을 믿어야 되느냐? 사람 말을 믿지 않고는 예수님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 말을 먼저 완전히 믿어야 예수님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목사나 장로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말을 무조건 백 퍼센트 믿기 전에는 백 퍼센트 가치의 내용을 지닌 예수님은 만날 수 없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할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기분 나빠요?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으려면 먼저 누구를 믿어야 되요? 목사나 장로의 말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사나 장로는 예수님을 만나 보았느냐고 하면 만나 보았다고 대답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님을 믿는 그 자체도, 예수를 믿겠다고 나서는 그 자체도 훌륭하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실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확실히 알고 믿어야
사람은 자기가 말한 것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안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저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지 확실히 안다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얘기할 때 다른 사람은 좋게 말을 한 것인지 나쁘게 말을 한 것인지 감지하지 못하는 거예요. 감지 못하는 사람은 좋을 것이 있는 곳만을 골라 다닐 수 있으면 모르지만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남을 믿고 나서 무슨 다른 행동을 하는 것보다도, 믿었으면 그런가 안 그런가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성경에 있더라도 그 성경이 조작이냐 아니면 사실이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아봐야 되는 거예요. 성경이 가르쳐 준 것같이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은 어떠한 인물이 있었는지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나 예루살렘 성이나 베들레헴을 가 보고 예수님이 다니던 갈릴리 해변가에도 가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곳 사람들이 농사꾼이고 바보천치 같은, 즉 강원도 산골짜기 감자바위와 같은 할아버지라도 옛날에 이 동네에 이러 이러한 사람이 살았다는 그 기억이 있다 할 때에는 목사보다도 나아요, 안 나아요? 분명히 낫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다고 단에서 큰소리는 치지만 정작 사실을 전해 주는 그런 농군, 비록 형편없는 몰골이지만 사실을 들고 나와서 예수가 있었다고 전해 주는 농군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어떠한 천만 목사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 주장하는 사람이 학박사라고 해서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는 체해도 사실을 보여 주고 사실이 그렇다는 현실적인 내용을 지니게 될 때는 비로소 그것을 신뢰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누구 말을 먼저 믿어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기분 안 나쁘겠지요? 예수를 믿기 전에 목사들 말을 믿었는데 그 말을 예수님 말처럼 알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말을 하나님 말처럼 알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알았는데 그 사람이 한번 비뚤어지게 되면 그 사람을 보고 믿던 신앙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딴소리 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예요. 그래 가지고 어디 예수님 믿는다고 하겠어요? 누굴 믿는다는 거예요? 예수님 믿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상세하게 분석해 가지고 비판해야 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구나 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를 찾아 나가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예수를 믿는 사람부터 알아보자는 거예요. 예수를 알아보기 전에 예수를 믿는 사람부터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리라는 것은 이런 것인데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아보자는 거예요. 그걸 알아보면 믿는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보게 되면 나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3분의 1은 집어치우고라도 3분의 2만이라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이렇게 믿어야 할텐데, 목사가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와 차이가 있다 할 때는 목사가 열 시간 기도하면 나는 열 한 시간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목사보다 더 정성을 들이고 악착같이 믿으면 목사보다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기독교면 기독교의 예수 믿는 신자들 중에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여러분 그것을 알아요, 몰라요? 대한민국의 2백 5십만인지 3백만인지 하는 그 많은 신자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거예요. '나도 믿는데 누구를 믿느냐? 종교가 뭐냐? 하면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교회요. 그래 예수님을 믿으니까 얼마나 훌륭해요' 합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 물어 봅시다. 자기가 자기 자신도 못 믿으면서 예수를 믿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기분 나빠할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알아봅시다. 기독교 패들은 대관절 어떠한 패들인지 한번 씨름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런 사람은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 같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같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그 가운데 내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반성해야 할 기성교인들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한 나무로 말하면 종대와 가지의 위치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잣나무가 있으면 그 잣나무의 종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가지가 커 나갑니다. 그렇지요? 동쪽에 있는 몇번째 가지, 남쪽에 있는 몇번째 가지, 그렇게 가지마다 제각기 자리잡은 위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가지가 향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가지는 종대의 상대적 입장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종대가 아니면 종대의 상대적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주체면, 나는 그 주체에 대해서 어떤 방향에서 대상 관계를 맺고 있느냐? '나도 그 자리에 서야 되겠다. 나도 그런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관계를 맺지도 못하고 예수 믿는다고 합니다. 할머니들 보게 되면 그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성신이여 강림 하사...' 찬송하며 예수 믿는다고 떡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랑되신 주님께서 오시면 세상을 불바다를 만들어 심판하시고 우리는 주님과 같이 구름타고 공중에 올라가서 천년 만년 산다' 이런 수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주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강을 건너갔는지, 산을 넘어갔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주님만 기다린다는 거예요. 이게 옳다고 가르친다 이겁니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어릴 때 자기보다 큰사람이 때려서 같이 안 놀면 '저 애는 저렇다' 대번에 그럽니다. 자기는 놀기 싫어하면서 그런다는 거예요.
이렇듯 자기 자신 하나 앉을 자리도 잡지 못하고 있으면서 남이 자리를 못 잡는 것은 잘 알아 맞힙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그릇된 것을 보고 그릇 되었다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못했더라도 추켜세워 주면 자기가 잘못 하면서도 기분 좋아하거든요. 자기가 다른 사람을 속였는데도 추켜세워 주면 그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성동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본부를 중심삼고 보면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성동교회에서 본부가 어디냐고 물으면 어디긴 어디야. 해올라오는 동쪽이지'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동교회에서 볼 때 본부는 서남쪽에 있습니다' 해야 됩니다. 모르는 녀석들은 본부가 어디냐고 물으면 '본부가 어디긴 어디야. 동쪽이니 해 올라오는 곳이지'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암만 그곳을 찾아봐도 모릅니다.
여러분 라디오를 들으려면 방향을 맞추고 싸이클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라디오도 한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웃음) 자신의 혈족만 따라다니면서 딱 맞는 패들만 인사하거든. 그저 조금만 다이얼을 돌려놓거나 기분 나쁘면 소리가 안 나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들은 뭐 주님이 오시면 자기가 일시에 승격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부인으로 말이예요. 앞으로 오실 주님은 신랑이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라는 거예요. (웃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늘나라의 왕자님인데 그 왕자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그 기준이 거룩하시지. (웃음) 기가 막혀서.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그 마음에서 신부되겠다는 욕심을 빼 버리면 뭐가 남아요? (웃음) 쓰레기 장사도 거들떠보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그저 욕심이 그런 다는 거예요. 그런 모습으로 처녀는 총각한테 시집가게 되어 있는 것은 알아 가지고 이웃 동네에 김 아무개 총각이 있는데…' 아, 나는 처녀니까 이러이러한 총각이라야 된다' 그럴 수 있어요? 병신될 대로 다 되어 가지고 밥 한 술 못 떠먹는 주제이면서 뭐요? 아무 총각이라도 좋다고 하면서 가야 되는데 암만 해봐야 그 격이라는 것입니다.
신부 되려면 신부 될 거동을 해야 됩니다.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알아야 됩니다. 얼굴을 맞대고 '여보세요'라고 불러 봐야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떡 서 가지고 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잘난 체하는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문제에 걸리는 것을 많이 생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관절 하나님이 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네가 하나님을 봤어 ? 하나님이 있는 줄 알아' 하면 '들어서 알지'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진짜 사람입니까? 전부다 보면 가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짜가 가르쳐 준 그것이 진짜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까지 진짜인 줄 알고 믿고 살았지만 감정하는 곳이 나왔다면 체면을 불구하고 가서 한번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장관집 마나님이 아니라 대통령 마나님이라도 체면 불구하고 감정사 앞에 가서 그걸 분석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감정받아 봐야 되는 거예요, 감정을 받아 봐야 할 텐데 감정사가 나왔다면 가서 받아 봐야 되겠어요, 안 받아 봐야 되겠어요?「받아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잡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선생님이 통일이라는 말을 들고 나올 때 자신 있어 가지고 나왔겠어요, 자신 없어 가지고 나왔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 있어 가지고 나왔다면 이것은 굉장한 문제일 거예요. 그래 자신이라는 문제를 내걸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면 굉장한 관심거리입니다. 관심거리 중에서도 굉장한 관심거리일 거라구요. 오늘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해서 이단 괴수, 뭐 뿔 달린 이단 괴수라고 합니다. (웃음)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면 큰 사고라고요. 병 고치러 온 의사있데도 불구하고 '너 같은 게 무슨 의사야' 하며 양심을 다 꺾어 버리고 병 낫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
다시 돌아가서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여기 있는 남자들 가운데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난 이만 하면 돼' 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저 교장 선생님은 자랑스러운 듯이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며 교육자로서 일생을 바쳐 생애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만 못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어디 한번 대답해 보세요. 자신을 믿는다고 하면 그건 진짜 가짜입니다. 믿지 못하는 거예요. 그것을 누가 믿을 수 있다고 하늘의 공인을 받았어요? 아무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믿다가도 내일은 믿을 수 없는 거예요. 지금 이 시대에는 믿을 수 있겠지만 몇 백년 몇 천년 가다 보면 다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 씨가 될 바에는 참된 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될 바에는 참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줄기가 될 바에는 참된 열매를 맺는 줄기가 돼야 되겠다는 거예요. 또, 참된 씨에서부터 생겨난 뿌리를 갖는 줄기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근본이 옳았느냐, 참되었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과정이 옳았느냐, 현재 이 시점이 옳은 것이냐, 미래가 옳을 것이냐 하는 말입니다. 과거가 옳았다고 해도 그게 옳았는지 그릇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현재가 옳은 것인지, 미래가 옳을 것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뒤집어 보고 나가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전부 다시 만들어 가지고, 과거에도 옳고 현재에도 옳으며 미래에도 옳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다면 모두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들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원하겠어요, 원치 않겠어요?「원합니다」 원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인간개조라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을 개조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을 개조하는 게 눈을 뒤집어 박는 거예요?(웃음) 개조가 뭐예요? 그 개조라는 것은 믿는 방법이 틀린 것을 새롭게 맞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세가 틀렸고, 생각하는 방향이 틀렸다는 거예요. 이것을 고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그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옛말에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 했습니다. 조그마한 봉우리만도 못한 인간, 요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여러분 마음도 요랬다 저랬다 해요? 그럴 때가 더 많을지 모르지만 다 탕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탕감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도 이제는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던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일한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살펴보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비판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현재 이러고 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비판해 보아야 되고, 앞으로 옳을 것인지 그를 것인지 전부 가려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는 틀림없이 이런 것이다' 하며 자신이 볼 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건더기를 남겨 놓겠다고 해야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믿을 수 있는 건더기를 갖고 있고, 과거에도 믿을 수 있는 건더기를 갖고 살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건더기를 모아 놓은 것이 지금 살고 있는 믿지 못하는 것보다도 커야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가망성이 있지 작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의 중요성과 성경 해석의 문제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관절 예수가 이 땅에 났느냐 안 났느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야 딸이야? 요즘은 남자가 여자 될 수 있고 여자가 남자 될 수 있는, 성전환을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웃음) 예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서른 세 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다는데 그것도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한국에 서른 세살난 총각 있는가 보라구요.
예수가 서른 세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다고 해서 장가 보내야 되겠다고 중매하러 왔다갔다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남자냐 여자냐?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 자기가 뭐 잘난 것이 있다고 하나님의 독생자란 간판을 내걸고 미친 일을 하다가 죽었느냐? 과연 옳은 일을 하다가 죽었느냐?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예수가 소개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부정 못 하겠지요? 알아봐야 되겠지요? 알아보지 않고 신앙하는 사람은 그냥 그대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줄기가 안 되고 낙엽이 되는 거예요. 추풍 낙엽이 되어 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낙엽이 아닌 가지가 되면 누구도 꺾을 수 없고 떼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 붙여진 생명의 힘보다도 더 큰 생명의 힘이 와서 부딪치기 전에는 떼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어차피 망합니다. 지금 병이 나 가지고 망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럼 무엇이 병이냐는 거예요. 무엇이 병폐냐는 거예요. 이런 세계가 망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죽이나 잘 믿었어요? 믿지 못할 사람의 말을 그저 덮어 놓고 믿고 나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잘 믿었는데 왜 병들었느냐? 예수님의 인격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옳았는데 소개를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있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완전히 되었다면 올바른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올바른 사람들이라면 올바로 발전해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왜 가다가 병이 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는 틀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의 말씀이 틀렸느냐? 그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나 행동이 예수가 가르쳐 준 그 내용과 일치가 되었느냐? 거기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틀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가르쳐 준 그 말씀의 내용이 오늘날 사람들이 아는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옳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말씀은 이렇다고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르친 것이 잘못되었으니까 그래야 되는 거예요. 교과서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잘못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이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알겠어요?
기독교가 망하게 된 이 판국에 그래도 소망을 가지고 성경을 붙들고 그 내용을 달리해서 하나의 길을 모색하게 될 때, 비로소 여기에는 예수님이 바라던 새로운 인격을 갖출 수 있고 만민이 바라던 인격을 갖출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가망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봅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오시지 않았다
그러면 그게 어떤 내용인가 한번 들어 볼래요? 바쁜 사람들은 가도 괜찮습니다. 듣기 싫은 사람은 가도 괜찮습니다. 그건 자유이니까. 말씀 중에 기분 나쁘게 나가지 말고….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죽으러 이 땅에 오셨다. 내 죄를 위해서 신랑되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가지고, 나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져 가지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 하며 예수님을 대속(代贖) 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예수님은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잘 죽었다는 것입니다. 보혈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아요, 조금 흘리는 것이 좋아요?「많이 흘리는 게 좋아요」(웃음) 웃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보혈을 흘리는데 있어서 이왕에 죽을 바에는 만민을 위해서 한꺼번에 보혈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아요?(웃음)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웃어 넘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는 데 있어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하고 덜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가겠습니까? 비참하게 죽은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죽었다 하더라도 총 한방 맞고 죽은 사람보다 비참하게 피를 많이 흘리고 죽은 사람이 더 동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이왕지사 우리들을 위해서 피를 많이 흘리고 죽으면 그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한꺼번에 많이 쏟고 죽기를 원했어요? 어때요?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보혈을 흘렸어요? 그러면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이 죽기를 원했을까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님은 신랑이신데 신랑된 그 분이 나를 위해 죽겠다고 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신랑인 예수님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신랑된 예수가 죽는다는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신랑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다는 것입니다. 몰랐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아직까지도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람의 손을 통해서 죽게 하려고 하였다면 가룟유다가 죽이게 하기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제물이 되는 입장이므로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예수님을 잡아죽여야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기 기성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지금까지 문선생 말씀을 들어 보니 예수님이 불쌍하지요?
거 뭐하러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어내 가지고 살게 했습니까? 그것은 오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주님에게 총알이 날아오면 대신 맞아 죽고, 주님이 내몰리면 대신 몰리고, 로마 제국이 주님에게 달려들면 대신 대적하여 싸워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 주고, 철옹성 같은 궁성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신랑으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만년 공사를 세계적으로 준비시키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어내셨던 것이지 오실 주님을 죽이라고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죽으러 이 땅 위에 오셨다고 하는 사람 말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하고 어느 쪽이 이치에 합당한 말이겠습니까? 한번 얘기해 보세요. 「통일교회 문선생님 말씀이요」 통일교회 문선생 말이 이치에 합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괜히 4천년 동안 준비했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다면 누가 죽입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몰아 죽이지 않았다면 누가 예수님을 죽이냐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죽여요, 세례 요한이 죽이겠어요? 로마 백성도, 로마 병정도 예수님을 못 죽이는 것입니다. 원수 국가인 로마 나라를 타고 앉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님이신데 이 원수 나라에 끌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이 그를 배신한 것입니다.
유대교는 2천년 동안 오직 메시아만을 바라고 나온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해 가지고 야곱을 21년 동안 하란 땅에 보내었다가 다시 끌어내고, 또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 들여보내 400년 동안 고생시켜 가지고 별의별 기적을 다 일으키면서 보호육성하여 끌고 나온 민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라고 그렇게 해 나오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죽이고자 했어요? 그럼 하나님이 뭡니까?
만약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장가를 갔겠어요, 안 갔겠어요? 또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혼자 살다가 늙어 죽겠어요? 만약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냥 남자로 늙어 죽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새로운 뜻에 따라서 신부를 맞이하여 같이 살다가 죽었을 것인가? 남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장가가야 됩니다」 장가가야 돼? 여자들은 어때요?「장가가야 됩니다」 장가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인 것을 누가 알아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부는 하나님의 무엇이예요?「며느리입니다」 하나님의 며느리입니다. 그 아들과 며느리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무엇이예요? 손자 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손자 손녀 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혼자서 살아야 됩니다.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전도하기를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 하나님은 죽은 송장도 끌어 안고 전도하면서 똥 묻은 것도 닦아 가지고 아들로 삼기를 원하는데, 깨끗하고 죄 없는 신랑되는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여 죄 없는 아들딸을 낳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시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안 원하시겠어요?「좋아하시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며느리가 낳은 아들딸은 하나님의 무엇이라고요? 손자 손녀입니다. 그 손자 손녀가 낳은 아들딸은 하나님의 뭐예요? 증손자 증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손자 손녀의 3대(代)쯤 가다가 끊어지기를 바라겠어요, 증손자 고손자 고고고…손자까지 영원히 대가 이어지기를 바라 겠어요? 어느 족을 바라겠어요? 고고고…손자까지 영원히 그 대가 이어 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지파와 족속과 나라가 생겨났겠어요, 안 생겨났겠어요? 「생겨났겠습니다」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아도 천당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의 아들딸도 예수 믿어야 됩니까? (웃음) 아들딸이 예수 믿어야 천당가느냐는 거예요. 예수의 아들딸은 예수 안 믿고 천당가기 때문에 그 아들딸의 아들딸도 예수 안 믿어도 그대로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 앞에 슬픔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잘 받들지도 못하는데 예수님이 와서 뭘해요? 그래 놓고 바라기는 뭘 바라느냐는 겁니다. 예수가 와서 뭘 어떻게 하겠어요? 가당치 않는 수작들 그만하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었으니 다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도 없어졌고, 아들 딸의 자리도 없어졌고, 예수님의 손자를 중심삼은 예수 지파 자리도 없어지고, 족속의 자리도 없어지고, 민족의 자리도 없어지고, 나라의 자리도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혈통의 씨가 마르고 없으니 다시 로마정권의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사탄 세계에서 그래도 예수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어 가지고 미국을 세워 전세계를 압도하게 만들었는데, 예수님의 직계 아들딸이 있었다면 얼마나 축복을 잘 해주시고 세계를 통일하게 해주실 것이냐는 거예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운명을 가진 기독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구원의 한계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안 맞는 것 같아요? 내 말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참이라는 것이 믿는다고 참이 되고 안 믿는다고 참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한 것하고 기성교회에서 말한 것하고 어느 쪽이 참 같아요? 「선생님 말씀요」 통일교회 교인들 입장에서 대답했다면 나는 그거 싫습니다. (웃음) 사탄에게 물어 봐도 문선생의 말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속이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그 족속과 사돈 될 가망성이 있어요, 없어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이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만일에 그렇게 되었다면 그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도 애급에 들어가 가지고, 그 사지에서도 자꾸 번성해 가지고 애급 나라가 불쌍해질 뻔했는데, 만약에 예수님의 직계의 아들딸을 남겨 놓았다면 잘 퍼졌겠어요, 안 퍼졌겠어요? 하나님이 잘 퍼지게 하겠어요, 안 퍼지게 하겠어요? 잘 퍼졌으면 나라가 이루어졌겠어요, 이루어지지 않았겠어요? 나라가 이루어졌으면, 그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하나의 주권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일 수 있어요? 하나의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하늘 앞에…. 그렇게 되었으면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가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이 하나님의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속이 있었다면 우리도 친척이 될 수 있고 사돈도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돈이 되면 예수님에 대해서 사돈님 한다는 것입니다. 별수 없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과 사돈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있다면 비록 타락한 인간이지만 타락한 세계의 아가씨를 보고, '저 아가씨가 아니면 난 죽는다'고 하면서 예수님께 결혼시켜 달라고 떼를 쓰면 예수님도 별수 없습니다, 결혼시켜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는 식이 다르다는 거예요. 탕감과정을 거치는 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세계의 사람들이 예수님하고 친척을 맺을 수 있어요, 없어요? 예수님하고 사돈을 맺을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렇다면 왕궁에 있는 훌륭한 패들은 모두 예수님의 친척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나라가 예수님의 권내에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겠어요? 「들어갑니다」 다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기독교가 지금까지 몰리고 쫓기고 구름떼처럼 해 가지고 나라없는 신세가 되어 억울하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구요.
그러면 예수님이 원해서 죽었어요, 몰려 가지고 죽었어요? 「몰려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기도는 잘했어요, 못했어요? 기성교회의 주장대로라면 잘못한 기도라구요. 아버지의 뜻이 어디 있고 내 뜻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도 수작이 되는 거예요.
그 기도 내용을 보게 될 때, 그 기도 내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이것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아는 입장에서 한 기도예요, 죽지 않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는데 죽게 되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고 놀라서 한 기도예요? 놀라서 한 기도예요. 그러한 기도를 세 번씩이나 했던 것입니다. '내가 그래야 되겠습니까? 본래는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으면 모든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나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만민을 긍휼히 여기는 입장에서 후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렇게 피를 흘리며 따라올 수많은 신도들, 그런 기독교의 비참함을 생각할 때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그런 기도를 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할수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놓쳐 버린다는 겁니다. 두 손에 떡을 쥐었다가 다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손만이라도 떡을 쥐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영육 두 세계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육적인 세계를 버리고 영적인 세계라도 구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영적인 천국을 모색해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예수님을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나라와 교단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땅과 백성과 주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백성을 갖고 주권을 갖고 땅을 갖고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미국이 그래요? 천만예요. 미국의 대통령하고 기독교 지도자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만왕의 왕입니다. 그는 주권자 중의 최고의 주권자입니다. 오늘날 교구장이면 교구장들은 최고의 지도자라는 거예요. 이런 등등을 볼 때,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발판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은 내 나라요, 내 땅이요, 내 집이요, 내 백성이요, 내 주권이라고 할 수 있는 발판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나라와 땅이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 몰리면 쫓기고 죽어가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나온 것입니다. 기가 막힌 서러움을 겪으면서 나온 불쌍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인 죄를 오늘날 기독교인이 탕감해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는, 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속죄를 받지 못합니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수 있다면 예수로 인한 속죄보다 내가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600만명이나 히틀러에게 떼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은 데 대한 탕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천지의 왕도 되고, 인류의 부모도 되고, 최고의 스승도 되는 거예요. 3대 명함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만왕의 왕이요. 인류의 부모예요, 부모. 그 다음에 스승 중의 스승이라구요. 그러한 3대 내용을 갖춘 예수님을 죽였으니 용서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죄인을 용서해 주는 법이 있어요? 하나님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기가 막히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럼 이제부터는 '통일식구의 사명'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죽지 않았어야 할 예수님의 그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느냐?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천국 갈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은 천국에 가서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도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총각의 귀신을 무슨 귀신이라고 합니까? 총각이 억울하게 죽으면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남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조상이 타락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살다가 죽었다면 그들에게 원한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원한을 품지 않고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도 좋아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살다가 죽어서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이 지으신 천국입니다. 그것이 본래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한을 가진 사람이 그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까? 들어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한을 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다시 와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원한을 남겼느냐? 신부를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못 찾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총각으로 이 땅에 와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만왕의 왕으로서 만왕의 왕비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권을 갖기 위해서는 만왕의 왕비의 기준을 갖춘 신부를 맞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래의 왕권의 자리에 못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아담이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부부의 인연을 갖추어서 만물을 주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바로 남녀 평등권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자는 인간의 종지조상이었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만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본래의 그 기준에 합당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왔기 때문에 인류는 만왕의 왕후를 받들어 모셔야 됩니다. 인류의 아버지로 오셨다면 인류의 어머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또, 인류의 스승으로 오셨다면 사모님을 모셔야 됩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을 정성을 다하여 모셔야 완전한 효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효자인 것입니다. 아버지 혼자에게만 효도하고,어머니 혼자에게만 효도하는 사람은 효자라 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백성이 나라님을 위해 충성을 하는데 나라님만을 위하여 충성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님 부인까지를 위하여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전한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선생님과 그 사모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천법. 알겠어요?
예수님이 그러한 천리의 원칙 앞에 합당할 수 있는 만왕의 왕권을 갖추는 데는 혼자서 됩니까? 혼자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부인이 있어야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남자 혼자서 사는 게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에게 영광이 되니 나 혼자 하자. 잘살게 된다면 나 혼자 천년 만년 산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돼지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그 영광된 자리에는 누굴 데리고 가고 싶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들보다도 색시가 낫다는 거예요?(웃음) 그러니 기쁜 일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기쁜 후에 자랑할 수 있는 대상이 없으면 그 기쁨도 허수아비입니다. 한바탕 기뻤으면 그 다음엔 자랑할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자랑하려니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부부끼리 자랑하게 되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아들딸 앞에서 '야야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자랑해야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면 왕후가 필요하겠어요, 안 필요하겠어요? 뒤에 처음 온 젊은 청년들, 어떨 것 같소? 예수님이 만왕의 왕인데 왕비가 필요하겠어요, 필요하지 않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인류의 아버지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 혼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혼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혼자서는 못 되는 거라구요. 부인이 없으면 부모는 못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라면 짝이 없어 가지고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부인을 모셔 가지고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못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라를 갖기 전에 먼저 무엇을 가져야 되겠어요? 자식을 갖기 전에 먼저 무엇을 가져야 되겠어요? 부인을 먼저 맞이해야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딸로 만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의 자격으로 왔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합니다. 기성교회와는 달라요. 신부가 없는, 외짝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참 멋진 기도를 하지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참 대왕마마, 중전마마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하면 선생님 부부가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 그래 어떤 것이 좋아요? 쌍이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쌍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생각해 보세요. 태어날 때 큰일났다고 걱정했어요? 벌써 그건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임자네들은 꿈도 안 꾸어 보고, 그걸 알게 되어 있어요? 그걸 내가 풀었다구요.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한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한이 맺혔느냐? 그것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데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전에 교회를 찾아야 되고, 교회를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기 전에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신부를 찾지 못하면 가정도 없는 것이요, 종족도, 민족도,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세계의 제일 종지 중의 종지요, 근본 중의 근본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본연의 천명에 의한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나라가 배반하고, 교회가 배반하고, 씨족이 배반하니 모두가 한결같이 돌팔이꾼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할 수 없이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며 살아가는 그 생애에서 다시 한 번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3년 공생애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예수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종교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기 위해서 공생애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로마의 앞잡이가 된 이스라엘 민족과 대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신부로 세워 가지고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민족을 세우기 위해 나선 것이 3년 공생애노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처량한 노정이었습니다.
그 계획했던 코스대로 전부다 가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안팎으로 에워싸여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에 보내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죽을 것을 의논하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한이 뭐라구요?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기 처녀들, 시집 못 가 보고 죽으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또 남자가 그러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맺힙니다. 여자가 한 맺힌 것에 대하면 남자가 한 맺힌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자는 나이 80이 되어서도 장가들겠다고 하지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천리 원칙이 그렇습니다. 천국은 본래의 선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우주의 모든 피조물이 그와 더불어 화동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아들딸을 낳아 사랑하고, 그 아들딸들에게 모든 것을 다 상속해 주고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뭐 아버지는 가고 어머니는 못 가는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모두 다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열두 제자의 입장과 그들의 불충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 믿고 천국가자'고 합니다. 천국은 믿어야만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천국은 자동적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더라면 죽긴 왜 죽어요?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다면 가만히 있어도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막에 가서 구덩이를 파며 농사짓는 농부가 되더라도 뜻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무슨 전도예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그 어부 짜박지들을 전도해 놨지만 그들로서 무엇을 하느냐 이거예요. 신부를 맞이하여 아들딸 낳아 훌륭하게 키워서 장가 보내고 시집 보내 가지고 친척관계를 맺음으로써 철옹성 같은 인연의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지에서 도망가는 그따위 패들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식민지권내에 있더라도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그 뜻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이종 사촌 형이 되지 않아요? 서로 형제지간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유대 나라에서 천재라는 명성이 붙어 가지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만히 있으면서도 그러한 형을 내세워 가지고 하게 되면 유대 나라는 한꺼번에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긴 왜 죽어요?
그때는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나라를 점령한 입장, 아랍권 전체가 로마의 속국이었으므로, 유대 교회가 돌아가게 되면 유대 나라가 돌아가게 되고, 유대 나라와 유대 교회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스라엘이 봉기만 하게 되면 일시에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편싸움이 벌어져 중동지역에 로마를 대신한 새로운 국가권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 제국을 잡았더라면 예수님의 기독교가 왜 순교의 종교가 되겠어요? 예수가 죽긴 왜 죽어요?
그러니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워서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고 싶겠어요, 자기의 혈육을 낳아서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고 싶겠어요? 어떻게 하고 싶겠어요?「자기 아들딸입니다」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뭐예요, 사도가?
예수님이 자기의 직계 아들딸을 찾을 방도가 없으니까, 할수없이 제 1기반을 닦기 위하여 대표적인 인물을 세워 가지고 교회와 나라를 얽어매기 위한 외적인 일을 준비하려니 제자들을 안 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렸으니 나라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충신들을 모아 놓아야 되고, 교회를 잃어버렸으니 교회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하나님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하고 교회가 위하고 종족이 위할 수 있는 그런 패들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나라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모두 다 잃어버리고 무슨 면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요?
그래도 충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적어도 열두 사람은 세워야 하고,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못해도 열두 사람은 세워야 됩니다. 또, 지파가 열두 지파이니까 열두 지파를 대표할 수 있는 열두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거라구요.
예수님의 12사도는 무엇이냐 하면 한 나라의 충신의 대신자요, 교회의 제사장의 대신자요, 가정의 12지파 중 열두 아들의 대신자입니다. 이러한 3단계적인 가중된 책임에 입각하여 예수님은 오로지 그것을 위하여 정성을 다했는데도 그들은 가정의 부모된 입장도 버리고, 교회의 제사장된 입장도 버리고, 나라의 군왕된 입장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열두 제자는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국가의 애국자의 대표자요, 교회 제사장의 대표자요, 종족, 씨족, 가정의 아들의 대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도 그들을 세웠고, 교회에도 그들을 세웠고, 씨족에도 그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대표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뿌리를 박아 가지고 씨족과 연결시키고, 교회와 연결시키고, 나라와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할 대표적인 중요한 인물들이 그 꼴이 되어 버렸으니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모두가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원수가 되어 버렸으니 사돈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누구하고도 사돈을 맺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좋은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 같이 가야 됩니다. 안팎을 다 갖추어 가지고 4천년의 역사적 인연을 계승할 수 있는 틀거리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곡절의 배후가 엉클어져 있는 하나의 딸,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패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도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몰려서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예요? 예수가 왜 죽었습니까? 나라 때문에 죽었어요, 아니면 교회 때문에, 친척 때문에 죽었습니까? 모두다 아닙니다. 신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신부를 못 찾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문제입니다. 기독교가 종 떼거리 같은 그런 백성을 두어 가지고 뭘 하느냐 이거예요. 예수님께는 신부를 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전체가 낙원에 가서 무릎 꿇고 기다려야 됩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 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알아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이치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나타나서 '내가 다시 오마'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오는 데는 신랑으로 신부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를 찾으러 오겠다는 말은 지금 선생님이 얘기한 말과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 신부를 찾기 위해서,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하여 온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만왕의 왕의 왕후를 책정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어머니를 책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사모님을 책정하기 위해 오신다는 뜻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 자신을 아버지로 책정하고, 사부로 책정하고, 만왕의 왕으로 책정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안팎의 핵심을 결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신랑된 남자로서 모든 핵심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만왕의 왕이요, 만인의 아버지요, 만인의 스승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신부되는 사람은 만왕의 왕비요, 만인의 어머니요, 만인의 사모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어야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늘땅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 위에 오셔 가지고 나라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재림주님은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신랑 신부란 말이 왜 나왔느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천당간다고 하며 목사들을 무조건 '우리 주님은 거룩하신 신랑이요, 그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신부이기 때문에 남자도 신부요, 여자도 신부다' 라고 하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남자가 신부예요? 그런 엉터리의 말, 얼토당토 않는 말을 믿는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믿는 데는 기독교인들이 제일입니다. 여기 아가씨들, 남자가 신부예요? 남자를 보고 '그 신부 잘났다' 이래 보십시오. (웃음) 기성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큰소리치고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배짱이 땅 거죽보다 더 두껍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버티고 있다는 거예요. 나 같으면 얼굴도 못 들겠어요.
남자가 신부되는 법이 있어요? 그런 말 어디서 배운 적이 있어요? 예수 믿는 남자들이 '신랑되시는 주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이 과연 기분이 좋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는 수작들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신부라는 말은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이냐? 여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자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땅을 대표해서 하늘의 왕자로 오셨던 예수님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신부를 맞이해야 했지만 그런 신부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맺힌 것입니다. 이 한을 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넓고 높은 자리인 세계적인 무대에서 신부를 찾아야 되겠기 때문에 기독교를 발전시켜 세계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에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데에서 보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데에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있지 그보다 낮은 데에서 신부를 찾았다 가는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역사 이래에 없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여성을 세워 가지고 인류의 어머니로 삼고, 만국의 황후로 삼고, 만교회의 사모님으로 삼아야 됩니다.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끝날에는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그 신부를 찾게 되면 예수님의 한은 해원성사되고, 여기에서 비로소 이 땅 위에 새로운 판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부를 맞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서 내 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들딸만 가지고 해원하겠어요? 본래 천지를 지을 때 땅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니 어머니 아버지의 땅입니다. 그래야 천지가 다 풀리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땅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교인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나라가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나왔더라면 뜻은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 가지고 이러한 내용을 갖춘 세계적인 판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이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왕자는 왕권을 잡기 위해서 왕궁을 세우고 황족권을 만들고 세계를 지휘하기 위해 오십니다. 이 사상이 바로 재림사상인 것입니다. 참 근사하지요? 이렇게 되어야 이치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신부 찾아왔다는 말이 틀립니까,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신부를 찾았겠어요, 못 찾았겠어요? 예수님을 유대교가 받들고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었다면 예수님을 사위 삼고 싫어하는 문중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러분, 여자 같으면 시집가고 싶겠어요, 안 가고 싶겠어요?「가고 싶어요」 그렇지요? 생기긴 못 생겼어도 시집은 다 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웃음) 세상에 꽉 찬 것이 신부감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여성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희망의 꽃처럼 피어올라 모든 여성들이 나비와 같이 예수님께로 날아들어야 하는 이런 신랑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잘 죽었구만 잘 죽었어.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죽었어요? 세계를 위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게 내버려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지금까지 예수 믿던 사람들 뭘 했습니까? 죽도 못 쑤고 밥도 못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뭐 통일교회 문선생 보고 이단 괴수니 뭐니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몰라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하기야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섭기도 할 것입니다. 몸집을 보더라도 내가 뚱뚱하기는 합니다. (웃음) 지금 기성교회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에도 어떤 호텔에서 목사들 90명 가까이가 통일교회의 원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제는 반대하더니 이제는 와서 듣겠다고?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 가지 말라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통일교회 말 듣겠다고 해 가지고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습니다. 내가 요즘은 살맛이 납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집안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전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겁니다. 통일교회 잘한다 하면서 추파를 던지는구만. (웃음) 그래 예수님이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잘못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설명이 필요없어요. 이제 결론을 맺어야겠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내주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가지고 장가도 못 가고 죽으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한이 맺히는 거라구요. 뭐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내가 못난 사람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성교회 목사들의 편견입니다. 내가 예수만큼 못나지 않았다 이거예요. 예수가 매일 아침 나한테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보다 못났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은 잘 모를 겁니다. 근거없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얘기하게 되면 여러분이 홀딱 반하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 것입니다. (웃음)
통일교회에 가면 달라붙는다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아요? 사람은 손해 나는 길은 절대 안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도 10원이라도 손해가 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남을 줄 알고 왔지, 손해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인들에게 딱 가르쳐 주기만 하면 내가 저 깊은 골짜기에 가 있더라도, 백두산 꼭대기에 가 있더라도 여러분들은 다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굴속에 가 있으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통곡을 하면서 늙어 죽더라도 만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안 만나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가면 이익 나는 줄 알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만 못해서 욕을 먹으며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눈을 보라구요.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나? 지금 내 몸이 이렇지만 옛날에는 내가 안 해본 운동이 없습니다. 운동을 해서 단련된 몸입니다.
바쁠 때는 벼락불이 납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한테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한 대 갈기면 어디 갔는지 씨알머리도 없을 패들한테 말이예요. '얼마나 센가 한번 보자' 이러고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이 못나서 그래요. 잘나서 그래요? 내가 힘내기를 해도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씨름의 참피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맞고 있다는 거예요. 또 선생님 말 빠른 것을 보세요.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알아요? 악에게 지고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선에 대해서는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는 사람입니다. 악을 반대하는 싸움을 많이 해왔습니다.
또, 내가 길가에 가다가 싸움 구경은 절대 안 하는 사람입니다. 싸움 구경을 하는 날에는 옳은 녀석 편이 되어 가지고 잘못한 녀석을 패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 구경을 안 합니다.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yes(예스)인지 no(노)인지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욕을 먹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신생님이 말을 하게 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이론적인 사람이라구요. 주먹 구구식으로 살지 않아요. 이래도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
하나님, 성신을 받아야 할 텐데 하고 이렇게 막연하게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런 식으로 나를 따라오려고 하면, 그런 사람들 내 손에 잡히는 족족 등골이 빠지도록 부려먹을 것입니다. 그래도 따라오겠어요, 안 따라오겠어요? 「따라가겠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따라오니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시킨다는 겁니다. 두고 보라고요.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들이 아무리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 반대하는 패들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죽겠다 살겠다' 하는 놀음이 벌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우주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을 하나님이 대할 때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온 천지가 깜깜했어요, 안 했어요? 세시간 동안 깜깜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분 좋아서 그랬겠어요? 하나님이 이 땅 위의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하시어 메시아를 보내셨는데 그 메시아가 보혈의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시간이 영광의 시간이예요, 아니예요? 영광의 시간이었다면 왜 천지가 깜깜했느냐는 거예요. 천지가 광명의 빛이 나야 할 텐데 왜 깜깜해졌느냐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기도를 했어요, 안 했어요?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아서 버렸겠습니까, 기분 나빠서 버렸겠습니까? 기분 좋은데 버렸겠어요? 근본문제를 탐구하지 않고 그저…. 무지에서 완성이 나옵니까? 오늘날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조직을 짜 가지고도 틀어져 나가는데, 주먹구구식으로 해먹을 수 있어요? 이런 것을 보니 하나님도 예수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까지 보냈는데 사명을 완결짓지 못한 것이 원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걸 보고 원통해 했다는 거예요.
3대 한을 해원성사하는 것이 통일식구의 사명
예수님을 자식으로 보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팎으로, 영적 육적으로 다 틀어져 버리니까 영적으로라도 구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쌍동이 형제가 다 물에 빠졌을 때, 둘 다 구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둘 다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한 명만이라도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격이라고요.
예수님의 영과 육을 통해서 천지를 구해야 되는데, 땅 위의 터전은 사탄들이 지배하여 전부 악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영계의 끝을 중심삼은 한편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비상대책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 뱃속에서 태어난 쌍동이라 할지라도 둘 다 구하지 못할 상태에서는 하나라도 구해야 됩니다. 둘 다 구하려 했다가는 둘 다 죽는 것입니다. 둘 다 죽으면 씨가 없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상대책으로 사탄이 침범한 육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땅을 상징하고 마음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사탄이가 침범해서 못을 박고 했지만, 예수님의 정신은, 예수의 영은 거기에 무한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 육신은 녹아나 없어지더라도 하늘과 상대되는 내 마음과 사상은 거룩히 하고, 침범받지 않겠다고 몸부림쳤다는 거예요. 죽더라도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장을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발판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는 한 조각의 땅도 하나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한 나라의 국토도 하나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은 이 땅 위에 주권을 세워 가지고 이 지구성을 하나님이 관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이 누구 땅이 되었습니까? 전부 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땅을 복귀해야 됩니다. 빼앗긴 이 땅을 되찾는데 있어서 이 땅 위에 발판이 없는데 주님이 공중으로 와 가지고 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 공중 잔치해요? 주님이 공중으로 와 가지고 될 게 뭐예요? 구름 타고 와 가지고 돼요? 땅이예요, 땅. 땅으로 오셔 가지고 모든 문제를 이론적으로 풀어 나가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요즈음 학박사들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민대가리가 되어 가지고 뜻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망해야 되는 거라고요.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사상태에 들어간 뒤에 주사를 놓아 다시 살려 가지고 끌고 갈 것입니다. 그것 좋은 생각이예요,나쁜 생각이예요? 「좋은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예요?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아도 안 되니까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예수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이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독생자 외아들이 죽은 날 저녁에 그 아버지의 마음이 편안했겠어요, 안 편안했겠어요? 편안했겠어요? 외아들이 죽은 그 아버지의 마음이 천하를 다 준다 한들 좋을게 있어요? 하나님이 기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한이 맺힌 것입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세째는 이스라엘의 한이 맺힌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한은 역사적인 인류의 한이 맺힌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예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3대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이 한을 풀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적 사명입니다. 이걸 똑똑히 알라구요. 무슨 사명이예요? 이렇게 3대의 한을 해원성사시켜 드리는 것이 통일식구의 사명입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통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대해서 신도라 하지 않고 식구라고 합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왜 식구라는 말을 했느냐? 이 말을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갖다 붙였느냐, 아니면 할 수 없어서 붙였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요?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님을 위해서 준비되었지요? 유대교도 예수를 위해서 준비되었지요? 그렇지요? 요셉 족속도 예수를 위해서 준비되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예수를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심은 유대교요, 유대교의 중심은 요셉 족속이요, 요셉 족속의 중심은 마리아요, 마리아의 중심은 예수입니다.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예수님은 마리아의 중심이니까 요셉 족속의 중심이 돼요, 안 돼요?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 교회의 중심이 돼요, 안 돼요? 나라의 중심이 돼요, 안 돼요? 예수님이 이런 중심된 자리에서 가정을 가졌다면 그 가정은 중심된 가정이 돼요, 안 돼요? 중심 가정이니까 종족의 중심도 되고, 민족의 중심도 되고,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가정을 가졌다면 한꺼번에 다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었다면 씨족도 통일이 되는 것이요, 교회도 통일이 되는 것이요, 나라도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통일되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연결된 것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듯 지금까지 종적 역사를 거쳐오면서 생겨난 나라와 교회와 씨족과 가정이 한꺼번에 통일되는데 그 통일된 가정은 새로운 가정이요, 통일된 씨족은 새로운 씨족이라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달라지니 모든 것이 새로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또, 교회도 통일된 그 교회는 새로운 교회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통일되면 그 국가는 새로운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일시에 다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주권자를 중심한 국가가 하나된다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뜻이 성취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소원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소원하던 그 소원이 성취되고, 요셉 족속에 대한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다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소원성취가 다 되었으면 하나님의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또, 예수의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안 맺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의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한이 맺히지 않고 일시에 다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이 맺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리고 고생을 했습니다. 나라가 예수님을 반대해서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반대하니 교회도 잃어버렸지요? 그 다음 요셉 족속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들린 자라고 전부다 비난했지요? 하나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하나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심정을 갖지 못했고 자기의 생명을 바쳐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따라다녀야지 왜 따라다니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책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했습니다. 이걸 보면 어머니가 뜻대로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따라다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남아졌어요?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에 가려고 해도갈 수 없고, 씨족을 찾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교회를 찾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나라를 찾아가려고 해도 갈 데가 있어요? 이렇게 되니 죽는 것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머무를 데가 없었다는 거예요. 의붓아버지인 요셉의 등살에 뼛골이 녹아 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건 모르지요?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정을 상세히 알아보면 땅을 치고 통곡할 사연이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의붓아버지나 의붓어머니에게서 자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잘 해주어도 잘 해주지 않은 것 같고 항상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데려온 후 당당하지 못했던 요셉
성경을 보게 되면 유월절이 되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다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렀는데 그것도 모르고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님이 없음을 알고 찾다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성전에 머물러 있는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하면서 뒤로 뺐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했습니다. 그 말이 좋은 말이예요? 천만에요.
어미라는 사람이 어린 아들을 사흘씩이나 내버려 두고 지금에 와서 이제 뭐냐는 뜻이예요. 왜 그런지 알아요? 어머니라는 사람이 사흘씩이나 자기의 어린 아들을 버려 두고 갔다 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그게 에미 애비예요? 사람 많은 곳에서는 혹시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데리고 다녔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내팽개치고 자기들 둘이 돌아다니다가 사흘 후에야 와서는 성전에 있는 예수를 보고 '너 여기서 뭘 하는 거냐' 하고 꾸중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뭐 어쩌고저쩌고…. 똑똑히 모른다는 거예요. 내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안 맞을 것 같아요?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예수가 언제나 불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자기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서….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했을 때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한테 의논하고 데려왔을까요, 살짝 데려왔을까요?한번 생각해 보세요. 또, 대낮에 데려왔을까요, 아니면 밤에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데려왔을까요? 감쪽같이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그 집에 이틀 사흘, 며칠 동안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오던 길로 보이지 않게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유대 나라에 가 보면 변소 같은 데도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빨리 다녀와야 된다는 거예요. 요즘은 문화시설이 잘 돼 가지고 구석진 방안에 있으면 1년을 가도 모르지만 당시에 그럴 수 있어요? 지금도 유대 나라에는 지붕없는 집들이 많습니다. 비가 안 오니까요. 그러한 집에 총각녀석의 방이나 따로 있겠어요? 그런데 방에다 처녀를 떡 데려다 놓았으니 며칠 후에는 그 소문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동네 어른들까지도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 수군수군하고 다녀서 다 알았다는 거라구요. 요셉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러한 소문을 들었겠어요, 못 들었겠어요?
요셉의 어머니 아버지가 소문을 듣고 와서는 요셉에게 '어찌된 거냐' 하고 물을 때, 요셉은 자신만만했어야 됩니다. 마리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당당하게 얘기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꾸물꾸물댔다는 것입니다. 또 친구들이 '이 녀석아, 저 여자를 왜 데리고 왔어' 할 때 요셉이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꾸물꾸물댔다는 것입니다. 그 배는 얼마나 불렀겠어요?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요셉 가정
그 당시에는 처녀가 아기를 배게 되면 돌로 맞아 죽는 시대였습니다.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가지고 가르쳐 줘서 마리아를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도 마리아가 성신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요셉이 믿을 수 있어요? 약혼녀가 애기를 뱄을 때 그 신랑될 사람이 그 애기의 애비는 누구냐 할 때, '애비가 누군 누구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신으로 잉태했어요' 하면 그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어디 믿겠다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러니 요셉의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기분은 나빴지만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데려다 놓고, 그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애기를 가졌는지 물어 보고 싶겠어요, 물어 보고 싶지 않겠어요. 「물어 보고 싶겠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그렇게 물어 볼 때, 만약 마리아가 요셉이 자기 남편인데도 불구하고 '내 복중에 있는 애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신으로 잉태했습니다' 했다면 그 대답을 믿겠어요? 그런 대답을 했다가는 '내가 너를 구해 주고 살 길을 열어 주었는데 아직까지도 날 속이기 위해 그런 수작을 부리느냐'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때부터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마리아의 배가 불러 있으니 요셉이 마리아에게 다그쳐서 추궁했는데 대답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충돌이 생기고 하다 보니 그러한 사실이 온 동네에 다 소문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는 어디에 가서 애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가졌더라도 그런 판국에서는 '나 애기를 낳겠어요' 하게 안 되었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갈 수 있는 길은 사람이 없는 무인지대, 사막지대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 스스로도 하늘 앞에 눈물지으며 호소하던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왕자로서, 이스라엘의 왕과 제사장들이 예물을 드리고 경배를 드리는 그런 영광된 자리에서 태어나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세상도 모르게 감쪽같이 낳으니 이방에서 계시받은 동방박사 세 사람만 찾아왔던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을 인류의 참군왕으로서 인간이 맞아들였다는 조건을 세우고 인간으로 하여금 체면을 세우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국경을 넘어 찾아오게 하여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게 했던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억울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 때문에 싸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들까지도 예수님을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형인 예수가 혼자 있을 때 동생들이 와서 '세상 사람들이 형님만 나타나기를 바란다며 사람 많은 데 가서 선전하지 왜 여기 있소' 하며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생들의 비난까지 받으면서 처량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 가지고 다 이야기를 들어서 안 것입니다. 내가 꾸며 가지고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언제나 예수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와 동생들은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도 길을 가다가 형제들에게 물을 떠 먹이더라도 그 어머니는 예수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예수에게 먼저 떠 주고 하니 그 길에서도 트러블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올라갔다가 돌아갈 시간에 기분이 나빠 가지고 서로 싸우면서 돌아갔던 것입니다. 싸우는 마리아의 신세를 본 예수도 어떻게 얘기를 할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요셉도 마리아에게 예수를 데리고 가자고 얘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도 안 데리고 돌아가서 마을까지 거의 다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간 것을 알고 있는데 가만 보니 꼴이 안 되겠거든? 할 수 없으니까 둘이 만나 얘기해서 사흘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은 것입니다. 성전에서 한 예수의 말이 항거의 말인 줄도 모르고 칭찬의 말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머니를 대하여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마리아가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이 정도 얘기하면 이해가 되지요? 천주교인들이 마리아를 잘 모시는데 영계에 가 보라는 겁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러니까 예수가 쫓겨나면 마리아도 당연히 따라나가야 될 게 아니예요?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요셉도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면 예수 때문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를 따라야 되는 거예요. 예수가 밥을 굶으면 자기도 굶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대신 밥을 얻어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가 집을 나가게 될 때 요셉과 마리아가 따라 나서면 예수 동생들도 따라 나서겠어요, 안 나서겠어요? 나서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이 그 동네에 있어서 중심되는 가정이라면 이종사촌인 세례 요한도 따라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했던 세례 요한
예수 가정이 그를 믿고 철옹성 같은 울타리가 되었다면 열두 제자는 누가 되는지 알아요? 베드로 같은 어부나 무식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형제들이나 사촌, 육촌, 팔촌 등 문중에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이라도 되는 거예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 7∼8)". 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갔던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께 세례를 해주기 위해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하고 수작을 했던 것입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 거 아니냐? 세례 요한 자신이 이루어야 할 천국을 힘쓰는 베드로가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못생겨서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여인에게서 낳은 자 중에 컸으면 영계에 가서도 커야 되는데 거꿀잽이라구요.
선지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과거의 모든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예언적인 증거를 했지만, 예수님의 실체를 보고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세례 요한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이 제일 큰 선지자라구요.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세례 요한은 맨 꼴찌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간 수많은 선지자들은 먼 미래를 두고 메시아를 증거했습니다. 메시아를 직접 모시는 입장은 아니지만 영계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는 맨꼴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해석해야 풀리는 거지 거꾸로 들이 맞춰 가지고 될 게 뭐예요? 성경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찾아 세운 제자들마저 끝까지 따르지 못했으니
그러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은 무엇이냐?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는 기간인 것입니다. 13년은 정말 원통한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받들고 따라 나서기만 했더라면 집안이 다 따라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모도 마리아가 속닥속닥하면 예수를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 해 놓고 여자들 입을 틀어막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리고 마리아는 뭘 했어야 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신부를 준비했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30세가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것을 생각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도 요셉과 마리아 때문인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생활해 갈 수 있게 모든 것을 준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갈 길을 닦아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파괴행위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가 아니요,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가 아니요, 형제가 있어도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중이 있어도 문중과 자기가 상관할 수 없었고, 교회가 있어도 교회와 상관할 수 없었고, 나라가 있어도 나라와 상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정 대신 상관할 수 있는 패를 만든 것입니다. 종족 대신 패를 만들고, 교회 대신 패를 만들고, 나라 대신 패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두 가정을 중심삼은 대표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집을 나와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하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 교단과 요셉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터전은 온데 간데 없어졌으니 집시나 방랑자와 같이 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되니까 사탄이 예수님에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고 시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개인을 걸고, 가정을 걸고. 나라를 걸고, 세계를 걸고 싸워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기가 막힌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을 나와 가지고 이렇게 3년 공생애노정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집을 나와서 돌아다니다 십자가에 가게 될 때 예수님을 따르던 5천여 군중은 다 어디 가고 12제자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따라 죽은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겠어요? 수습할 도리가 있어요? 이방에 가서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곳으로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상속을 받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망명객으로, 뜻을 이룰 수 있는 예수가 못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열매를 못 맺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영육 완전 구원이 아닌 일부분인 영적 구원이라도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뜻이요, 예수님이 바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성경에 십자가의 곡절이 역설적인 내용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다 잃어버렸지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사랑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소원해 나왔었던 것이 무엇이냐?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이 사랑하고, 교회가 사랑하고, 종족이 사랑하고, 가정이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놓고 소원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아들을 위해서 준비했기 때문에 준비해 나온 그 나라와 교회와 씨족과 가정이 일치 단결하여 예수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준비된 그것들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앞에 가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장이 되는 거라구요. 사랑해야 했다는 거라구요. 이와 같은 일을 못 했기 때문에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고, 형제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고, 종족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으며, 교회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전부다 반대라구요.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한이 맺히지 않게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왔는데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던 이 한을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총각 예수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신랑된, 남편된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맞이했었어요? 아버지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할아버지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그리고 씨족의 족장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민족의 중심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국가의 주권자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다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이요, 이스라엘이 바라는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쫓겨다니는 예수밖에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한입니다. 이렇게 원한에 사무치게 되었으니 그 백성이 남아 있겠어요?
그래서 2천년 동안이나 세계에 유리고객하며 가는 곳곳마다 말발굽에 밟혀 죽고 칼에 찔려 죽으며 얼마나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는지 알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지요?
그러고 나서 1948년 8월 1일 유엔의 결의에 의해 비로소 독립이 되어 재봉춘의 때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그 민족으로서 맞이할 수 있는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죄를 세계 앞에 탕감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특별한 시기를 맞아 이스라엘 민족 600만이 학살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죄를 다 탕감하게 하셨고, 재봉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새로운 세계 역사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2천년 동안 왜 나라가 없었는지 알아요? 그러니 그렇게 된 게 싸요, 안 싸요? 나라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이스라엘은 선민의 나라였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의 한은 인류의 한이요, 역사적인 한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에 관한 내용도 모르면서 반대하는 기성교인들
예수 할아버지란 말 들어 보고 예수 할머니란 말 들어 봤어요? 다 못들어 봤을 것입니다.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간 입장에 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뜻을 이루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님이 종가집 주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민족의 책임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 같으면 그런 것을 바랐겠어요, 안 바랐겠어요? 예수님이 '난 이렇게 다니다 죽겠다'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예수님은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세계를 전부 구원해 가지고 이 땅 위에 하늘나라를 이루고 가겠다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혼자 천국을 이루겠다고 생각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뭐 우리를 위해 죽으러 왔다고요? 이 강도 같은 녀석들. 지금까지 몰랐으니까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통일교 회를 반대하는 교회들, 앞으로 남아지나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 나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14년 전에 얘기한 것이 지금 다 들어 맞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중심삼고 보면 다 들어맞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한마디 해 놓으면 그것이 다 들어맞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악착같이 문선생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
선생님이 한번 말을 하면 기분 나쁘리만큼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3대의 한을 푸는 것이 누구의 사명이라고요? 죽는 날까지 이 3대의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생각하면 목이 타는 사람이라고요. 다른 사람을 시켜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어떤 것이 통일교회 식구의 사명이라고요? 하나님의 한을 풀고, 그 다음엔 예수님의 한을 풀고, 또 그 다음엔 이스라엘의 한을 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기성교회에서 쫓겨났지요? 예수 무리가 가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문선생도 기성교회에서 쫓겨나 가지고 이북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로부터 쫓겨나 가지고 이방에 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 이야기를 했지요? 그 얘기가 어떤 얘기인지 알아요?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반대를 받고 기성교단의 반대를 받아 이북에 가서 몇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북 땅에 가서 모든 역사적인 탕감 내용을 세워 가지고 몇 사람을 찾아 가지고 이남 땅에 왔습니다. 원수 나라의 사는 걸 보고 왔어요. 이남에 와서도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나를 반대하고 때려죽이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죽질 않았습니다. 벌써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 안에 내가 들어 앉았다는 거라구요. 없어진 줄 알았더니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거든? 이제는 내가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도장만 누르면 세계가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통일교회의 신세를 져야 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통일교회 지독하지요? 지독한 패가 우리 패들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 지독한 패들을 이끌려니 통일교회 문선생도 지독해야 되는 거라구요.
어떻게 해야 3대 한을 풀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3대 한을 전부 다 풀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단과 기성교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해방 직후에 대한민국은 주권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주권이 없었으니까 기성교단과 우리와 합했더라면 상당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유당을 편성할 때 발기인의 한 사람이었다면 꽃 같은 젊은 시절에 출세했을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반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이승만 박사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때에 기반이 닦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만 되었다면 일시에 뜻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직까지 유엔에 가입을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이 언제 유엔에 가입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어요? 우리 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을 때 일본 나라가 공격을 받았지만 우리 나라는 폭탄 하나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승만 박사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소련 공산당은 벌써 내 손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박사로 하여금 선생님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박마리아가 4대 장관과 합세하여 별의별 소문을 다 내어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하고 잡아죽이려고 했지만 자기들 뜻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반대하고 급살맞아 죽으라고 하고 원수시했던 선생님은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아들딸…. 끝을 다 보고, 악은 악대로 공포를 다 해버리고서야 죽으면 죽지 그냥은 안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자유당 때, 민주당 때, 그리고 지금 혁명정부가 통일교회가 좋아서 지금까지 나오게 한 줄 알아요? 지금까지 얼마나 못살게 굴었어요? 반대를 받으면서 이렇게 커 나온 것입니다.
애국 애족하는 데 있어서는 이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애국자면 애국자, 박대통령이면 박대통령한테나 이 나라 이 민족의 어느누구한테도 선생님이 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나라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독을 채우고도 남았을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부인들을 한번 보세요. 축복가정 부인들은 전부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이상으로 애국애족하는 사람은 없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국애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애국 애족하는 교회다. 저들의 사상이 아니면, 저들과 같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갈 길이 어떻다' 하는 것을 이 민족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그 말이 점점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애국 애족하는 무리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무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유대 교회를 대표하고 기성교회를 대표해 가지고 그 이상의 것을 새로운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열두 지파와 요셉 종족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하여 종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친척들이라구요. 거 알아요? 죽자 하면 한꺼번에 같이 죽는 거예요. 배를 가르자 하면 같이 가르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 가정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쫓겨 났었지만 다시 찾아와서 찾을 것 다 찾아 놓았다는 거예요. 유대 나라와, 유대 교회와, 요셉 종족을 대신하여 이 나라와 사회와 교회와 가정을 중심삼고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을 다 닦아 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단체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단체가 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민족을 대신하고, 교회를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부모를 대신하고, 형제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여기에 있는 지구장들 이걸 하게 되면 역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걸 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의 할아버지, 할머니, 형님, 누나, 동생, 아주머니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그들을 대신하여 이 사람을 예수로 알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해야 되고 우리 족속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민족과 교회와 종족과 가정이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았으니 개인의 뜻을 종족으로 넓히기 위해서 사랑 못 한 형을 찾아서 사랑해야 합니다. 누나가 있으면 누나를 예수님 대신 사랑해야 되고, 아줌마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아줌마를 예수님 대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데도 예수 대신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것을 지금까지 실천한 사람들이 통일교회 무리들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섬기고, 교회 사람들을 모두 섬기려고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그저 주려고 하고, 못살게 되면 살길을 가려 주려고 하고...
사랑하라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할머니, 교회의 아주머니, 교회의 누나, 교회의 형님, 교회의 동생들을 족속을 대표하여 전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함으로 말미암아 누구의 한이 풀린다고요? 사랑을 했으니까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총각 예수가 아닙니다. 축복가정은 예수 아저씨, 예수 아줌마를 대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예수를 믿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종족을 편성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황족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아들딸, 예수님의 친족을 맞이하지 못했던 것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스라엘의 한을 풀 수 있는 인연을 갖고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님을 모시게 될 때, 그 자리는 바로 지상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지상천국은 예수님 중심삼고,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면 앞으로 천국은 어떻게 이룰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세계 사람을 사랑을 해야 됩니다. 세계 사람을 사랑하라 이겁니다. 국경을 초윌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여 사막이나 아프리카의 오지의 사람이나 그 누구나 자기의 자녀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 대신 누나와 같이, 예수 대신 동생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편화된 세계가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고 가고 가야만 천상천국에 들어가지 그러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친척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종족을 중심삼고 되어졌어야 할 환경을 우리 통일교회에서부터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한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는 식구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식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식구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여자들은 어떤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를 내 상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예수와 같은 오빠로 생각하고 섬기고 나서야 시집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몰라서는 안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미완성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남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 나이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해서 '결혼상대로 괜찮구만' 하는 말을 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상대자를 못 가졌는데 그런 사람이 상대자를 가질 수 있어요?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도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들을 대하여 아저씨와 같이 생각하고 오빠와 같이 생각하고,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해 누나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또, 나이 어린 사람을 예수님 동생으로 여기고 사랑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인간,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다운 인간이 되어 공적인 세계를 이룸으로써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인류의 부모가 되는 거예요. 이것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식구들의 뭐라구요 ? 「사명입니다」
이렇듯 부모 아닌 부모, 형제 아닌 형제를 자기의 친부모를 모시는 것보다도, 자기의 친형제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의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안 되는 거라구요. 국경없이 살자는 것입니다.
천국에 무슨 국경이 있겠어요? 이 세계는 우리 아버지의 땅이요,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딸이니 이 세계는 바로 우리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는 데는 식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의 출발 지점이 식구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통일교인을 신도라 하지 않고 식구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식구의 사명이 무엇이냐? 그러한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의 사랑, 교회에 있어서의 사랑, 나라에 있어서의 사랑, 이 3대 사랑의 한이 맺혔던 것을 우리가 풀어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예수가 한(恨) 맺히게 한 그 이상의 자리에서 한을 풀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서 천국을 이루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을 괜히 축복시켜 준 줄 알아요? 그럼으로써 예수님이 신랑이 못 된 것을, 자기 아들을 보지 못한 것을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골수사상입니다. 이렇게 횡적으로 전부 다 탕감하는 것입니다. 참 멋진 내용이지요? 알겠어요?「예」
이런 사랑이 통일교회 식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 하면 믿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도 못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짜 사람도 잘 믿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지 말고 복을 주기 위해서, 그가 복을 받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복을 받자고 해서 위하면 지옥 가는 거예요.
복을 베풀어 주어야 됩니다. 선을 행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참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저희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저희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자리이며,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이고, 저희들이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내용과 형식이 다를지라도, 서로가 다른 각도에 있을지라도 그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오늘의 자기 자신에게 주이진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모든 사실들을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성동지구를 방문하게 하시어 만나고 싶었던 식구들을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한 시내에 있으면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마음의 미안함과 더불어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이들을 더욱 참다이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또다시 아버지의 뜻 앞에서 보다 더 자주 만나 사연을 털어놓고 아버지의 뜻을 사모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슬픔의 노정을 감으로써 아버지를 위하는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전한 말씀이 아들에게 절대 필요한 말씀이 되어서 말씀의 실체로서 이 말씀을 실천하고 가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더우기 아버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해원할 수 있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되고 엄청난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런 한을 풀 수 있는 승리의 기틀을 스스로 닦기 위해 서는 악을 가까이해서는 안 될 저희 자신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편안해 가지고는 갈 수 없는 통일의 길이요, 식구의 인연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서로서로 사랑하며, 예수를 중심삼고 서로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저희들이 아버지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없고, 아버지의 나라를 계승받을 수 없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1971년도부터 70년대를 당신께서 승리하시어 장중에 두시옵소서. 당신께서 준비하신 그 세계, 하늘의 만민들이 부르고 있는 그곳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