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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40-200권

기다려 주세요 (61권 2편)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24.05.01|조회수10 목록 댓글 0

말씀선집 61권 2편

 

기다려 주세요 (훈독본) 9600

1972.08.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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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처한 인간이 해야 할 일

끝날은 청산짓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비해야 됩니다. 그 정비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이요, 합격할 수 없는 사람은 낙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개인으로 가고 난 후에는 가정이 가야 할 텐데…. 내 개인이 다 간 다음에 가정으로 출발했으면 좋겠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가정이 다 간 후에 국가로 출발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국가가 가고 난 후에 세계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구요. 될 수 있으면 세계의 출발과 동시에 나라가 가고, 가정이 가고, 개인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길입니다.

새로운 방안을 찾아 역사적 종말시대를 책임지자

예수는 죽었지만 영적인 승리 기반이라도 남겼기 때문에 기독교가 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문선생이란 사람이 없더라도 이 사상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 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뒤로 두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책임을 하겠다고 세계를 향하여 떠날 수도 있는 거라구요.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자가 되는 길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망하겠다고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 때문에 망하고자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주주의를 위해서 망하자는 거예요. 이 천주주의라는 말은 막연해서 여러분의 마음이나 생각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하여튼 제일 큰 주의라구요. 천주주의이긴 천주주의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천주주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거라구요.

 

끝날을 슬기롭게 맞는 방법

끝날이 될 것인데 끝날의 해결 방안이 무엇이냐? 그 끝날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 이 끝날 가운데 이것을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세계 가운데 그러한 새로운 탈피를 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면, 하나님도 망하는 세계를 그래도 인간을 위해 나오던 공적의 터전이라도, 실낱 같은 것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 그 새로운, 색다른 무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 2의 교육 방안을 짜 가지고 출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이외의 방안은 하나님에게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두고 볼 때, 그 길에 적중시키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적중시키는 그때가 어느 때냐?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는데, 지금이야말로 그때입니다. 세계적인 때는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그때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다 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끝날의 한 때를 맞을 것인가

틀림없이 때는 옵니다. 그러면 개인의 때와 가정의 때와 국가의 때와 세계의 때가 한꺼번에 맞부딪칠 때가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문제는 내가 청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청산하고, 가정적으로 청산하고, 민족적으로 청산하고, 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어디에서 성공을 이루느냐? 완전한 대상이 있게 되면 주체는 그곳으로 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소원성취는 자기 중앙지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의 목적, 뜻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상대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창조원칙이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후의 뜻은 한국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뜻이 한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상대를 결정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바라 보기 전에는, 세계를 대해서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기 전에는 세계적인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몽땅 가정 앞에 버리기 전에는 가정이 구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이 구해졌다 하더라도 복귀역사가 거기 가정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을 몽땅 종족을 위해서 버리게 되면, 다시 말해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 있었다 하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면 둘 다 사는 것입니다.

미리 알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한 때가 우리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은 때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들이 정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비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을 가지고 완전히 정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때가 어느날 몇 시라고 하게 되면 그때를 중심삼고 '아버지여! 제가 그때를 알았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소'라고 해 가지고 그때를 맞추어 가지고 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 시간이 올 자리를 찾아 그 시간이 오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때를 바라보면서 미리 준비해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느냐?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미리 가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때를 맞추어 가지고 벼락같이 달려오는 사람…. 뭐 복닥불이 나 가지고 '아이구, 기차야 고장나라. 고장나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기다려 주세요' 그게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아침 해가 떠올라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이 안 맞으면 이 우주 전체에 큰 사고가 벌어진다구요. 1초씩만 틀어진다면 우주 전체가 수천년 수만년 틀어져 나간다구요.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이 1초 연장할 수 있겠어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입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죽게 되었으니 살림보따리를 조금 짊어지고 고향에 가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전부 다 치료해 가지고…' 그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자가 '내 아버지가 죽었으니 장례를 지내고 와서 따르게 하소서' 할 때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겨 둬라'고 했습니다. 그런 심각한 말을 한 것은 다 그런 심정에서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그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될 것이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서 기다릴래요.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저 땀이 여기 코 끝에 달랑달랑해 가지고 '아이고 됐다' 하는 요런 사람이 될래요, 아니면 '아이쿠' 하며 울고 불고 하는 사람이 될래요?

 

첫번 사람은 남보다도 서둘러야 된다구요.

오늘도 뭐 서울에 홍수가 나 가지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는데, 지금 서둘지 맡고 몇 달 전부터 서둘렀으면 그렇게 많이 피해 안 났을 거라구요.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장마가 져도 '장마야 오너라 구경 좀 하자. 야. 그럴 줄 알았더니 내가 참 잘했지'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바빠요, 바빠! 밤도깨비 낮도깨비 다 됐다구요. 밤에도 안 자고 부시대고 낮에도 그럽니다.

 

첫째 번 될래요? 「예」 그러면 밤에 부시대야 됩니다. 첫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꿈에 닭소리를 듣는다구요. 잠을 자긴 한 10분밖에 안 잤는데, 꿈 가운데 닭소리를 듣고 와다닥 열두 시에 일어나서 아직도 열 시간 남았는데, 열 시간 전부터 기다렸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 이 미친 녀석아, 열 시간 남았는데 잠이나 자지 일어나 가지고 뭘하겠다는 거냐? 자야 할 게 아니냐, 내일 피곤한데'라고 할 때 그 사람 대답이 '하나님, 내일은 얼마나 기쁜 날이예요? 그렇게 열 시간쯤 이상 정성을 들이고 기다리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하는 거예요. 뚝딱똑딱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간이 온다 온다' 하며 열 시간 이전부터 기다려야 되는 거라구요. 잠 쿨쿨 자고는 그 시간에 맞춰서 복닥불 나게 준비하면 정성이 미급하기 때문에 열두 시에 일어나서 열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한 잠도 안 자는 거예요. 졸면 사고라구요. 졸면 안 되지만, 졸지 않고 초롱눈으로 기다려 가지고 그 시간에 가서 '저는 이렇게 기다렸소' 하게 되면 하나님도 '오! 그 녀석 나보다도 낫구만' 그럴 수 있다구요. 그 때에 거기서 하나님에게 항거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 내가 틀렸지요? ’하면 '아이고, 네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럴 거라구요. 하나님이 틀렸다고….

 

공적인 일을 하는 데에는 제재하는 법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고생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 사람이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고생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다구요. 고생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고생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종말시대는 목전에 다가와 있다 

내가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욕심이 많은데, 그건 무슨 욕심이냐? 세계를 위한 욕심이요, 하나님을 위한 욕심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해방하자, 예수님을 해방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한테 은혜받자고요?

 

여러분, 한 번 도와주었는데, 또 와서 '도와 달라' 해서 또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도와줬는데, 또 와서 '야 이 녀석아, 또 도와 달라' 해서 세 번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또 와서 도와 달라면 도와주겠어요? 한 번 도와줬을 때 절을 한 번 했으면, 두 번 도와줬을때는 절을 열번 백번 해야 되고, 세번 도와줬을때는 천번 만번 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회개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여러분, 하나님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신세지웠나 생각해 보라구요. 이 30억 인류가 매일같이 전부 다 '하나님, 나 살려 주소. 나 못살겠으니 살려 주소' 하는 것입니다. 한번쯤은 봐줄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기가 막힐 거라구요. 맨 처음부터 지금까지 도와주었는데, 끝날에 가서도 그렇게 해 가지고 될 줄 알아요? 아니라구요. 끝날에는 달라진다는 거예요 무자비한 공판을 내려야 합니다. 비수로 짤라 버려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정이 통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외면하니까 끝날이 되면 모든 것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못 다한 데에 있어서는, 그 책임을 하기 위해 세계까지 갔다가 돌아와 가지고 자기집에 와야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기의 출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누더기 보따리 끌며 이러고 저러고 다니게 돼 있지 않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내 갈길. 게 문선생이 가는 길이라구요.

 

아까 말한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은 어디일 것이냐? 이렇게 볼 때에, 때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말하던 역사적인 종말시대는 우리의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끝날에 하나님의 내적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이 돼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바쁜 때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도 그 아침이 되게 되면 관심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적 잔치 준비를 할 수 있는 이런 때가 됐다는 겁니다. 하늘편의 모든 치다꺼리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땀을 흘리는 사람은 역사적인 땀의 열매를 맺는 것이요, 거기에서 마음을 푼 사람은 역사적인 수난의 한의 마음을 전부 다 향취로써 꽃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 잔치를 준비할 수 있는 동참자는, 그 잔치 시간을 기다리는 그런 사람보다도 사람들을 맞기 위해 하늘편에 선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예요?

 

하나님 나라의 잔치 준비하는 사람 될래요, 아니면 그 잔치에 도착해서 '아이고 잘 됐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고. 어쩌면 이렇게 딱 적시에 왔을까. 똑딱 하기 전에, 똑 할 때 도착했으니 나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없지' 그런 사람이 될래요? 자, 시간 맞추어 오는 사람하고 시간 전에 오는 사람하고 어느 게 나아요? 

 

세 종류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될래요? 첫째 번 될래요, 둘째 번 될래요? 

하나님이 찾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

하나님의 마음만 기쁘게 할 수 있게 된다면, 놓친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가망성도 있을 수 있다구요. 열 사람밖에 못 구할 텐데, 10분 연장할 때는 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도 기다리고 싶을 겁니다.

 

기다리고 싶긴 싶은데, 하나님 자신이 정해 놨다가 자신이 연장할 수 있어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하나님, 10분만 연장이요, 연장이요, 연장이요…' 하며 몸부림치는 한 사람이라도 있게 될 때는 10분을 연장해서 만 명을 구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기다려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세계 앞에 행복의 터전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엔 '아이고 하나님, 내가 시간이 없사오니 기다려 주시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까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더 추가한 게 됩니다. 이렇게 연장 시킬 수 있게끔 하나님의 공법은 연장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공법이 인간을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한 것이기에 온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그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기다리고 싶겠어요? 「기다리고 싶겠습니다」

 

그러려면 제 시간에 가서 기다리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도, 이 사람은 제일 열심히 가서 기다려야…. 통일교회는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서 '아버지여, 기다려 주세요' 해야 됩니다. 문선생이 그런 사명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욕심이라구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래요? 이 세계가 망운지중(亡運正中)의 절벽에 부딪쳐 최후의 운명의 판가리를 해야 할 이 차제에 있어서 하나님편에 서 가지고 공의의 법도를 장악하시는 권위의 아버지이심이 틀림없기에 그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시여! 좀 기다려 줄 수 없습니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대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러하고 싶으신 사정이 있기 때문에 기다려 주세요'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에게 '야 이 녀석아, 좀 더 열심히 해라. 야 이 녀석아, 좀더 범위를 넓혀 가지고 갈구해라' 하는 소원의 일념이 있게 될 때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진 자리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맞게 된다면 하나님도 사탄 앞에 위신을 세우고 '오냐, 너를 봐서라도 이 망할 세계를 놓고 10분이고 10년이고 기다려 보자'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사람을 보게 될 때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되게 되었는데, 10년 역사가 다 지나가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하나님이 만약에 불을 내린다면 하나님이 회개해야 돼요. ‘야 아무개야, 나 하나님은 네 앞에 면목이 없구나. 그렇지만 공의의 법도를 따라가려니 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하며 하나님이 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는 사람까지 있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럴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심판은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서 심판하겠다. 너를 더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사탄도 항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공법은 '너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역사적인 모든 것을 불태웠지만, 너 하나의 수고를 막기 위해서 심판을 안 내릴 수 없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사랑으로 심판의 목적을 전부 자기에게 귀결시킬 수 있는 그런 단 하나의 길도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심판까지도 조정할 수 있는 동시에, 심판의 목적까지도 자기를 위해서 할 수 있게 되면 심판하고 난 하나님은 어디로 갈 것이냐? 그 다음엔 찾아 돌아오지 말래도 내가 북극에 가면 북극으로 찾아올 것이고, 남극에 가더라도‘너 있는 데 내가 안 갈 수 있느냐?’ 하며 하나님이 따라간다구요. 하나님이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역사시대의 종점에서 심판이 끝난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는 형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이라도 만나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종말심판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참사람의 모습이라고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사람을 꿈꾸며 그러한 사람을 향해 가자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리하여 밤이나 낮이나 '세월아, 네월아 가고 또 가라. 청춘시대야 지나가고 노년시대야 와라.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가다가 다 못 가거들랑 천년 사연을 품고 기도할 텐데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세계를 심판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은 천년 심판의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곳을 바라보고 가 보자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찾는다면 그 자리까지 바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세계와 인류를 위해 기다려 주세요 하는 통일교인이 되자

자, 그런 사람하고 '아이고 내 책임을 못 했으니 하나님 나 망합니다. 아이쿠 하나님' 하며 치마끈 두루마기끈 할 것 없이 그저 붙들고 '이왕이면 날 살려 주고 가소'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연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요? 어느 사람이 되겠어요?

 

자기 자체가 뒤넘이쳐 가지고 자기 위신을 가리지 못하고 바빠 허덕이는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하겠어요? 그건 죽어도 타락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음이다 이겁니다. 망하더라도 타락한 인간으로서, 역사적인 수고를 하나님 앞에 끼쳐 온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음이 아니냐 이겁니다.

 

차라리 내가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는 것보다도 '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대로 성취하시옵소서. 내 무슨 말을 하오리까' 하며 달갑게 받을 수 있는, 변명 없이 겸손히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도리어 죽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입장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때가 얼마나 조급하고 시급한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버지여, 뜻을 중심삼고 기다려 주시옵소서. 빨리 오는 것도 좋겠지만,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생길을 연장하더라도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 사람 말고 '아이고, 내가 망하겠으니 기다려 주소서' 하는 사람은 천당의 최고 자리가 아니라 지옥의 최고 자리에 갈 것입니다. 이 두 경계내에 선 사람이 통일교회 무리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자기가 왔다갔다 왕래하는 데에 있어서는 성공한 결과를 갖지 못한, 보고거리를 갖지 못한 그런 걸음을 죽어도 못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한 하루를 붙들고 천년의 보고 자료를 완성시킬 수 있는 한 시간으로서의 사연을 걸고 투쟁하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갖고 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자기를 중심삼고 '기다려 주옵소서' 하는 그런 사탄의 입장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연장될 수 있는 길은 여러분이 기다려 달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통해서 대신 어려움을 맞겠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나라의 망운도 방비할 수 있고, 한국의 망운도 방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자그마치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알아 주지 않더라도 그런 면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역사적이며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으로서의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고, 지금 남북이 엇갈린 자리에서 비로소 상봉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나라를 위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문제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비판해 보아야 되겠어요. 비판해 보아야 되겠다구요. 다시 한 번 가려 가지고 현재의 자기 위치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여러분이 알기 바래요.

 

여러분이 이걸 아시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말씀선집 61권 2편, 원문

 

 

기다려 주세요

1972.08.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나'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한 시대는 지나가고 지금 이 시간 이후의 새로운 시간이 나를 찾아오고 있으니, 현재만으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그러한 자리가 못 되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현재 당신이 책임져야 할 사명을 앞에 놓고 이것을 처리하는 입장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책임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찾아온 것이 아닐 수 없사옵고, 또한 그 책임은 지금부터 후대에까지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개인이 그러함과 동시에 당신이 그러하고, 우리 대한민국과 이 세계도 역시 그러한 운명에 처하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때는 가고 한때는 오는 어쩔 수 없는 갈래길에서 오는 길을 자랑할 수 있는 오늘이 필요하고, 가는 길을 빛낼 수 있는 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나'라는 이 하나의 몸을 두 세계의 과중한 욕구와 소망이 짓누르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언제 어느 때에 어젯날의 인연을 추구했으며 오늘의 중한 가치를 세워 내일의 소망 앞에 남겨질 수 있는 나의 모습을 흠모하였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흘러가는 세월 속에 덧없이 뜻의 길을 지내 버린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고, 1972년 8월 27일 이 아침을 중심삼고 이날, 이와 같은 날들이 찾아올 때까지 당신의 수난길이 있었음을 저희들이 몰랐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을 바라보시면서, 오늘 저희들 앞에 허락하고 맞아 주고 싶었던 당신의 소원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저희들이 처해 있는 이 자리가 부끄러운 자리가 아니면 영광의 자리요, 칭찬받을 수 없는 자리가 아니면 칭찬받을 수 있는 자리로, 두 갈래길에 있어야만 되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대신해서 기대할 수 있는, 내일에 남길 수 있는 뜻을 품고 몸부림을 치더라도 역사의 인연을 따라오신, 혹은 찾아오신, 싸워오신 그 소원 앞에 필요한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또 미래에 있어서 당신이 저희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하나의 참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이것을 바라신 것이 당신이요, 이 뜻을 세워야 할 것이 저희들의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하늘과 땅 가운데 있는 나 자신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천륜의 인연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언제나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이 아침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이 누구를 붙들고, 누구를 위하고,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엎드렸는가를 생각할 때에, 지금의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닌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내 연령에 해당하는 그런 시간을 경과하였기 때문이지만, 아버님의 뜻이 저희들이 나기전부터 수천, 수만의 연한(年限)을 거쳐서 오늘의 이 한 시점을 찾아 오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태어남도 그 뜻에 플러스되기 위한 존재로서 태어난 것이 틀림없는 것이요, 내가 사는 것도 그 뜻 앞에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혹은 하나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 틀림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됩니다.

오늘에 살고 있는 현시점도, 또 내일에 빛날 수 있는 당신의 소원의 짐을 짊어지고 슬프든지 기쁘든지 몸부림을 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당신이 가는 방향과 저희들이 가는 방향이 절대 엇갈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겸손히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이 원하는 소원의 동산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이 있거들랑 과거의 저희 자신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되겠고, 현재 저희 자신의 환경을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마음은 요동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따라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만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척자의 사명과 전쟁터에 선 병사의 사명을 가진 입장에 서서 악을 대비해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를 향하여 미지의 실적을 이루어 나가는 개척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지 않고는 저희의 자리는 어떤 자리이며, 저희가 찾아 나오고 저희가 태어난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그 기준을, 그 자리를 스스로 갖지 못하게 될 때는 저희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 당신은 불쌍하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역사시대 어느 한때에 소원하는 것을 이뤄 볼 수 있었으며, 현재의 때를 맞이할 때마다 역사의 슬펐던 것을 탕감복귀하지 못한 분한 마음을 갖지 않는 때가 어느 때엔들 있었겠습니까?

아버지, 당신의 노정은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며 사랑하는 자녀들과 더불어 가고 싶은 복귀의 노정이요, 전진적 행각의 노정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당신의 소원 앞에, 당신의 역사 앞에 저희들이 당신의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동조(同調)하며, 동행 (同行)하며, 동사(同事)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었느냐고 묻게 될 때, 아무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언제나 당신은 불쌍한 분이란 걸 느끼게 됩니다. 당신은 수고를 해야 되고, 개척을 해야 되고, 싸워야만 되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으니 저희들은 과정도 그와 같은 과정이요, 끝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종결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과정의 노정은 점점 작아지는 수난길이 아니라, 배가하여 입체적으로 가중된 수난길로서, 그 길을 거쳐오시는 아버지 앞에 진정한 의미에서 효도하지 못하는 불쌍한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고, 그 나라를 위한 충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찾아오시어서 저희에게 분부하시옵소서. 당신이 눈물 흘리시며 정성들여 오던 모습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시옵시고, 당신이 십자가 도상에서 참고 극복하시면서 투지력을 가지고 그 환경을 밀고 나가시던 정상(情狀)을 저희들이 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앞날에 모든 힘을 다하여서 당신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저희들은 내적 결의와 더불어 현재 강력한 투지력과 개척자의 심정을 가지고 애쓰시는 당신의 모습을 배울 수 있게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자녀들이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당신이 가는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머물러 있는 그 자리를 저희들은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가고자 하시는 소망의 곳을 향하여 나가 싸우지 못하고 슬픔의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아버지의 슬픔과 수고가 가중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내일에 그러한 사명이 촉구되는 것을 알고 원수의 본영(本營)을 직시하면서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승리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 시간 시간 다짐하는 무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그 한때를 맞기 위해 온 정력을 기울일 줄 아는,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통일교회 본부라고 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있는 소수의 무리는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자부하려 했던 무리였습니다. 저희들에게 슬픔이 있을 때는 당신 앞에 그 슬픔을 제거해 달라 하였고, 저희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도 당신 앞에 그 어려움을 맡아 달라고 하면서, 저희들이 가는 길에 평탄만을 바랐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와 같은 요구와 이와 같은 입장은 당신이 복귀의 짐을 짊어지고 나오는 길 앞에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적마다 저희들은 말없이 스스로 감수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나보다도 수고로우신 아버지, 나보다도 어려우신 아버지, 나보다도 슬픈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로하며 그 아버지와 같이 동참할 수 있는 말없는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은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누구한테도 당신의 뜻을 피력하지 못하셨으며, 누구한테도 당신의 모습을 들어낸 일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드러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게 될 때에, 당신은 외로운 자세를 감추며 홀로 몸부림치시며 역사적 슬픔을 홀로 부둥켜 안고 오셨사옵니다. 이러한 당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너무나 경솔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뉘우쳐야 되겠습니다.

짧은 자기의 생애를 중심삼고 볼 때, 이렇게 무가치한 자기 자체가 빛나기를 바라고, 좋기를 바라고, '나'라는 존재가 아버지, 당신의 뜻 앞에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고대하던 가련한 자체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당신 앞에 너무나 너무나 철부지하였던 것을 이 시간 다시 뉘우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기와 같이 당신밖에 모르고, 당신의 인연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미련하다면 미련한 저희들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지혜로운 척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사탄 앞에는 지혜로운 자가 돼야 되겠습니다.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당신이 기쁨으로 가거들랑 저희들은 슬픔으로 가야 되겠고, 당신이 슬프거들랑 저희들은 감사함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중심삼고 볼 때는 이것이 상반된 자리요, 상충된 자리요, 이해할 수 없는 역리적 입장(逆理的立場)이기 때문에 당신이 지혜롭기를 바라거든 저희들은 어리석고 미욱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에서 이와 같은 본질의 노정을 가려 가려고 다짐하지 않고는 당신의 승리와 더불어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워하고, 당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부탁드리고 싶어서 내 있는 힘을 다하여 눈물 흘리고 내 정성을 다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생애 노정의 절박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잊고 아버지만을 향하여 울부짖는 저희 자신이 되지 못한 이 불충스러운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불효막심하였던 저희 자신을 용납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를 향하여 당신이 가야 할 걸음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향하여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필코 가야 할 그 길을 가는데는 당신 혼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혼자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려서 가지 않으면 끌고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가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벌을 주고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끌고가야 할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저희를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생명길로 인도하려 하는데 그 인연을 맺지 못하는 불쌍한 저희들, 당신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인연을 가지려 하는데 따르지 못하는 저희들, 당신의 역사적인 권고와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러지 못하는 저희들은 당신이 가는 길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인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시간이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다시 한 번 인연되기를 간곡한 심정으로 고대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당신이 동으로 가라 하시거든 서에서 살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동으로 찾아가야 되겠고, 남에서 북으로 가라 하시면, 그 길이 저희들의 갈 길이 아니라 생각되더라도 가야 되겠고, 당신이 가야 할 길이거든 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저희들의 운명인 것을 진정히 느끼는 자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그 길이 아무리 죽음길이라 하더라도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대한민국을 지켜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대한민국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인의 운명이 그러하면 이 나라의 운명도 그러한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아버지, 당신이 가는 길이 아무리 험산준령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가는 그 방향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과 목적의 귀결점을 향하여 대한민국은 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에게 슬픔을 떼어 맡기는 나라가 되기보다는 당신의 슬픔을 상속 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며 몸부림치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종교도 없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럴 수 있는 충신의 인연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버지, 남북이 엇갈린 이 처참상을 바라보시게 될 때 당신은 얼마나 슬프옵니까? 27년이라는 역사를 지나면서 저희들은 지루한 역사라고 하는데, 당신은 얼마나 지루하였습니까? 밤이 되면 그 밤을 보기 싫어했을 것이고, 아침이 되면 아침 햇빛을 슬픔을 품은 한반도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은 당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사는 저희들이 당신께서 섭리의 뜻을 이끌고 나가는 그 노정을 따라 서글프고도 고독하고도 비참한 그 길을 가게 하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뜻을 안다고 하는 무리가 있는 가운데서 그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외로운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다짐하는 통일의 무리들은 그래도 당신의 심정을 더듬어 가지고 그 뜻이 가는 길을 가겠다고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그 힘쓴 것은 당신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한 수난길에서 힘쓴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평안을 위하여,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하여 몸부림쳤다는 이 서글프고도 원통한 과거를 남긴 사실을 다시 한 번 후회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벌거숭이가 돼야 되겠습니다. 당신 앞에 채찍을 맞더라도 옷을 입고 채찍을 맞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채찍질을 하는 것은 매맞을 자를 회개시키고 거기에서 돌이키기 위한 당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옷을 입고 맞는 그런 자리에 서는 것보다도 벌거숭이로 매를 맞고 아버지의 심정을 가중시킬 수 있는 처량한 자리를 그려 나갈 수 있는 길을 가야만 과거의 잘못을 당신 앞에 빨리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픈 심정을 극복하면서 채찍을 드는 부모의 마음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맞는 자식은 순응하면서 응당 맞아야 한다며 자기 스스로를 책하고, 자기 스스로의 모든 것을 책임지면서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하여 그 채찍에 반항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속에 풀어야 할 아픔이 있거들랑 응당히 풀으시라는 마음으로 참는 모습, 참으며 극복하는 모습, 그러면서 당신을 위하여 눈물지으면서 당신은 슬프신 분이라고 도리어 그 채찍을 붙들고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 또한 채찍을 던지고 목을 놓고 울고 싶어 지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하루하루 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어렵게 되면 아버지 앞에 기도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저희들의 어려움을 당신 앞에 맡기려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수난사를 이미 맡으신 당신은 작정을 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천만사를 맡을 수 있지만, 당신의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맡길 사람이 없는 당신은 얼마나 고독한 분이신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의 어려움을 맡아야 할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어려움을 맡아 주셔야 할 분이 당신이기 때문에, 인간의 서글픔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요, 당신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 인간인 줄 압니다. 그런데 서로 서로가 양분된, 양단된, 서로 엇갈린 입장에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이니 그런 인간에게 요구해 나온 아버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 사실을 이 시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좋은 밥을 먹고 살면서도 그 밥이 나를 원망한다는 것을 몰랐사옵고, 좋은 옷을 입고 나서서 자기를 자랑하는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은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 얼굴을 수그리고 있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저희들이 기뻐 춤추는 그 자리에 당신은 낙망과 처절한 모습으로 한숨과 눈물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에게도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저희를 위하여 그렇게 염려하시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의 생활을 맞는 그 시간에도 당신의 뜻을 위하여 염려하면서 당신이 가는 길을 위해 효의 도리와 충의 모습을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성일이옵니다. 8월을 중심삼고 마지막으로 맞는 안식일이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세월은 덧없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도하여야 할 사명의 때, 그때를 당신이 붙들고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때는 때대로 남아 있사옵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을 붙들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찾아오신 당신의 뜻과 저희가 만나게 된 그 인연의 해후가 슬퍼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중심삼고 불쌍한 대한민국, 이 민족을 찾아오신 그 발걸음이 슬픔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러한 내용을 알고 나설 수 있는 무리는 통일의 무리밖에 없다는 것을 자부하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침에 햇빛을 바라보거든 그 햇빛이 과거에 바라보던 햇빛과 다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거든 그 공기는 옛날과 다른 공기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걸어가는 그 발걸음이 어젯날 걷던 발걸음과 다른 것을 느끼면서 전진적이요, 가중적이요. 입체적인 사연을 추가시켜 나갈 수 있는, 자기 스스로를 다짐할 줄 아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들의 마음의 중심은 당신이오니, 당신의 뜻 앞에 있어서 은은한 당신의 섭리의 방향을 갖출 수 있도록 본성을 통하여 움직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만일에 그 방향에 어긋나게 될 때 저희들을 쳐서라도, 쳐서도 듣지 않거들랑 환경을 정비해서라도 갈 길을 가려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는 가야만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당신의 뜻을 따라서 그 뜻을 세워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쉴 사이 없었던 길,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바빴던 길,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음 졸였던 이 길을 또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과 더불어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이 그러하기 때문에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부탁이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가는 길이 평탄해지지 않고, 당신의 소원이 가중되더라도 당신이 '힘을 다하여 참을 수 있는 길이면 참아라'고 진정 명령할 수 있다면 그 자리를 통하여서라도 가기를 바라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한두 사람뿐만 아니라, 그 수가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당신의 안위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오니, 부디부디 당신이 소원하는 것과 더불어 따라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어린애가 돼야 되겠습니다. 진리의 꿀을 흠모하고, 사랑의 품을 그리워하고, 저희를 바라보고 소망을 품고 반기는 당신의 그 얼굴을 저희들이 그리워할 줄 아는 어린애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같이하여 주옵시고, 오늘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이해가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72년도에 당신의 뜻을 중심삼아 책임수행을 온전히 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에 살고 있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기 생애를 중심삼고 자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나는 이러한 자신 있는 길을 성사하기 위해 났고, 지금 현재도 그 길을 위해 가고 있고, 그런 내일을 맞이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

우리는 매일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굴곡이 많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가 목적하였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낙망하고 혹은 절망하는 자리에 있는가 하면, 그런 자리에서도 자기 스스로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든가, 혹은 동료의 권고에 의해서라든가 혹은 스승, 선배들의 권고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자리에 서 가지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 자기의 소원을 다짐하는 그러한 굴곡이 많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 못 되는 것을 우리는 일생생활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이 같이 사는 가정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가정의 전체 식구가 그 가정의 목적을 위하여, 혹은 잘될 수 있는 길을 바라고 단결하여 거기에 새로운 힘을 투입하게 될 때, 그 가정은 새로운 의미의 전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심적인 부모가 해이하다든가, 혹은 부모는 해이하지 않지만 자식들이 거기에 상충이 되든가 하면 그 가정은 반드시 어제와 다른 가정의 형태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희망적인 가정이었다 하더라도 현재 그러한 결과에 부딪친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슬픈 가정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 그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한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엄연히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은 잘 모르지만, 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으로서 가야 할, 현재에 처해 있는 입장을 넘어서서 가야 할 내일의 소망의 자리가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틀림없이 자신 있는 하나의 방향을 갖추고 나설 수 있기 위해서는, 위로는 주권자로부터 아래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돼 가지고 그 방향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서로서로가 격려할 수 있는 자리를 향하여 가게 될 때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소망이 찾아올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는 위로서 주장하고 아래는 아래로서 주장을 해 가지고 엇갈리게 될 때에는 아무리 그 소망이 좋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후퇴하고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떨어진 자리를 다시 수습하고 옛날보다도 더 결의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전에는 그 떨어진 자리를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 생활을 미루어 봐 가지고 대한민국이 가는 길도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정세면 정세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세계는 그 어떠한 목적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모르지만 세계는 그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 방향을 모르고 있지만, 세계의 운세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간다고 할 때, 그 누구가, 그 무엇이 어떻게 해서라도 그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그러한 곳으로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 방향과 그 목적을 향해서 세계 인류가 같은 방향을 향해야 되고, 그 목적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세계적인 목적인 만큼, 세계 가운데 인류가 살고 있으니만큼 인류가 하나돼 가지고 현재의 입장을 넘어서서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결의의 내용을 인류 가운데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 만들 수 있는 세계적인 그 방향과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될 수 있는 세계를 그려야 되고 하나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만들 수 있는 방향과 목적을 향해서 그리워하고, 거기에 자기의 소신을 두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찾지 못하면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방향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됐으면, 세계가 평화로운 세계가 됐으면, 세계가 행복한 세계가 됐으면 하는 것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고로 역사를 통해서 바라 나왔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뿐만 아니라 현재에 살고 있는 뜻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런 마음을 갖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고 자기가 어떠한 방향을 가려 가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본성의 방향은 은연중에 그러한 최고의 목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고, 그러한 방향을 찾고 있는 사실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 역사도 그래 왔고, 현재의 인류도 역시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한 방향을 취해야 소망의 세계로 갈 수 있어

여기에 있어서 세계 인류가 같은 방향을 그려 가지고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하나될 수 있는 운동이 있게 될 때에 이 세계는 소망적인 세계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 동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로 가자고 하고 혹은 남으로 가자고 하고 북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렇듯 각국, 각 민족, 개개인이 엇갈린 자리에서 요구하게 될 때에는 그러한 소망의 나라라든가, 소망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람 끼리끼리라면 해결점이 없을는지 모르지만, 만일에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가 이러한 세계를 앞에 놓고 어떠한 방향, 어떠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기를 바라는데 서쪽으로 가려고 하고, 이렇게 전부 다 엇갈린 방향을 취해 가게 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동으로도 갈 수 없고 서로도 갈 수 없고 남으로도 갈 수 없고 북으로도 갈 수 없는 그런 어느 한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자기 위치에서 막연하나마 그 소망을 붙들고, 막연하나마 본성의 방향을 붙들고 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자리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라는 겁니다. 자기 부모를 믿던 자리에서 그런 자리로 떨어졌으면, 가정과 같이 나가는 자리에서 그런 자리로 떨어졌으면, 그 부모와 가정을 다 잊어버리고 가정이 가야 할 내일의 소망의 자리를 그리면서 고독한 자리에서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자신이 발견하지 않고는 동정의 손길, 혹은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 있는 길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지금까지 자기 나름의 노력을 한답시고 삐꺽대고 가다가 그 방향을 전부 다 좌절시켜 놓고, 방향을 막아 놓은 데 대해 자기 스스로를 지탄할 수 있는 그런 인간상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바라 나왔던 것이 전부가 허사이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 막연하나마 본성을 붙들고 옛날에 자기가 찾아 나오던 이상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려는 그런 몸부림이라도 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되어 몸부림치면서 어제보다도 새로운 작심과 결의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본성의 마음 방향을 향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그런 모습이라도 남기지 않고는, 하나님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일을 할래야 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 아니냐 하는 이러한 귀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개인을 두고 봐야 합니다. 여러분을 대해 '이제 이 이상 갈 수 있느냐' 할 때에 '갈 수 없다' 하게 되면, 그것은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는 절망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본성을 중심삼고, 나를 중심삼고 재차 출발할 수 있는 인연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하나의 방향을 취해 나오신 하나님과 일치해야

가정이 그런 자리에 섰는데도 가정이 더 나아갈 수 없게 될 때에는 더 나아가지 못하는 그 동기가 무엇이냐에 대해 자기 자신들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안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자기 현재의 입장을 확실히 깨닫고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의미의 방향을 찾아 가지고 그 이상 결의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낙망의 자리라도 낙망의 자리가 되지 아니하고, 그것이 비참한 정상을 갖춘 자리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 무엇이 출발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개인과 가정이 그러하면 국가도 그러한 것이요. 세계도 그럴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개인도 현재 그러한 자리, 절망이면 절망의 도상에 부딪쳐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기 때문에 나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기 가정의 부모도 그러한 운명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도 역시 그러한 운명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대한민국을 포괄하고 있는 이 세계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이러한 자리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러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을 끌고 가더라도 결국은 절망에 부딪치는 것이요, 대한민국이 현재에 어려운 자리에 서 있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러한 자리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서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그런 자리에 서 있고, 가정이 그런 자리에 서 있고, 나라가 그런 자리에 서 있고, 세계가 그런 자리에 서 있다면, 만일에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는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느냐 이겁니다. 우리 인간끼리라면 전부 다 그런 자리에 서 있을는지 모르지만, 절대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자리에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마저 그런 자리에 서 있다면 그건 안 될 일입니다.

자기 개인의 소원을 중심삼은 자신의 일생도 인간이 미급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살이, 우리 일생인 것을 긍정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은 그렇지만 절대자에게 있어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우리는 지금까지 방향이 다른 길로 나왔지만, 절대자라는 분은 그럴 수 없는 방향을 취해 나왔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 절대자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인간이 출발한 그 태초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고, 인간의 역사과정과는 다르지만 절대자인 하나님의 역사과정은 그런 방향을 취해 나갔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방향을 향해 가야 하더라도 인간을 통해서 인간과 더불어 가려면 할 수 없이 그 방향을 중지시켜 놓고, 중간적인 다른 것을 세워서라도 접근시켜 나갈 수 있는 전진적이요 발전적인 방향을 취해 가지고 최후에는 일치점, 귀결점을 바라고 나오는 분이 하나님임에 틀림없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 때가 어떤 때냐 하면 이 세계의 끝날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무엇이 있어 가지고, 우리 민족이 영원히 가야 되겠다고 몸부림이라도 치는 그런 정상이 남아지고, 혹은 전부 다 손을 들고 '아! 이거 큰일났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온다면, 인간이 이제까지 가던 방향이 하나님이 소원하던 방향과 달랐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이 절망의 기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비약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모험을 할 수 있고,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상대적인 자리에서 절대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버릴 수 없다면 이런 어려움이 있으면 있을수록 어느 한 곳에서…. 하나님이 내일의 소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주시려는 소망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소망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소망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취할 수 있는 소망이라면,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과 반대, 혹은 각도의 차이가 있는 방향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방향이 있을 성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이 있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면 불가피하게 내려지는 결론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따라 나오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의 길에는 '끝날'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 끝날이라는 것은 개인의 생활, 운명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요, 한 국가의 운명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중심삼고 끝날이라는 것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끝날에는 지금까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붙들고 끝날을 대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소망을 남겨줄 수 없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끝날이 있는 것이 아니냐? 소망을 남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끝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정에 머물 수 있는 자리지 끝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위한 선결문제

우리 인간이 절망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인간과 하나님이 같은 소망의 길을 찾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거기에는 끝날과 더불어 새로운 길이 우리와 방향을 달리하고 찾아올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러면, 그런 때가 된다면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겠느냐? 자기를 생각하고 현재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때를 피해 갈 길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피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왜? 자기만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절망할 수밖에 없는 자체를 생각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자기의 가정을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가정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나라를 붙드는 것입니다.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세계를 붙드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세계적인 부정을 제시할 수 있는 색다른 자기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문제가 문제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 끝날을 부정할 수 있는 자기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거예요. '현재의 부정이다. 현재의 극복이다' 하는 이것이 현재의 실존철학을 중심삼아 가지고 논의되고 있지만 신이고 무엇이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것을 찾기 전에 부정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선결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어떻게 부정하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부정할 수 있는 나, 혹은 나 아닌 또 다른 무엇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길이, 혹은 그러한 가능성이 없는 한 우리 앞에 이상적인 세계, 하나의 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가 그런 때입니다.

민주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선진국가, 미국 같은 나라가 세계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 민주세계의 그 이념을 실천하여 세계화시킬 수 있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국이냐? 이미 실험을 끝낸 그 틀거리를 우리는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실험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패의 결과로 해결지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현재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산주의 가지고 그렇게 될 것이냐? 그것도 이미 실험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무엇 갖고? 민주세계도 아니요, 공산세계도 아닌 무엇을 갖고?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주장하던 최고의 이념, 세계관이라는 것은 망상적이나마, 혹은 몽상적이나마 혹은 추상적이나마 어떻든간에 그것을 고대해 나오던 그 길이 이미 다 끝나 버렸다 이거예요. 실험해 봐 가지고 끝났다 이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바랄 것이냐? 그러기에 만일 인간 외에 어떤 무엇이 있거들랑 이제는 손을 들고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자체가 되어야 하고 '우리는 안 됐습니다' 하는 현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체 정비를 어떻게 서두르느냐 하는 문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맡깁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깁니다. 죽는 것도 당신에게 있고, 사는 것도 당신에게 있습니다. 이왕 죽일 바에는 오늘의 이와 같은 자리에서 죽이지 마시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방향에 접근시켜서 기쁘게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여기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죽겠다고 하는, 새로운 각도의 소원을 희망하면서 죽겠다 하면 살 길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가 세포로 느낄 수 있는 현재가 아니냐 이겁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이 알고 보고 있다면, 만일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상에 와 가지고 권고한다면 '야, 너희들 살겠다고 해라' 이렇게 가르치겠느냐 이겁니다. 아니라구요. 그 답이 무엇이냐면 죽기를 바라야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밖에 답이 없다구요.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는 살 가능성이 없지만, 자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그 무엇을 찾아 나가는 사람에게는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어떤 문제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이미 때는 그런 때가 됐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런 때를 맡을 수 있는 나 자신이 됐느냐? 가정을 끌고 갈 수 있는 여러분도 말고,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충신의 절개를 지키는 여러분도 말고, 성인의 도리를 다해서 세계를 위한다는 그런 입장도 말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나 자신이 돼 있느냐? 또, 자체를 정비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방향을 가려 가야 되겠다고 몸부림이라도 치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때라는 것은 소식을 전달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끝날이라는 것도, 모든 것을 통고해 놓고 그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우리 인류 앞에 왔습니다. 그러면, 그 때가 왔다가 그냥 지나가든가, 지나가지 않으면 나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오기를 잘했다' 하든가 '온 것이 안됐다' 하든가 두 가지 중에 답을 내고 가야 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누구를 중심삼고? 나를 중심삼고…. 그것이 나를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나라를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세계를 중심삼고 그래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결론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한 개인만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길 바라겠어요? 개인이 그랬다 하더라도 가정이 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나라가 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가 가는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세계가 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때는 한 개인의 해결, 나라의 해결, 세계의 해결이 단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못 했으면 가정으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가정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안 됐으면 나라로 갈 수 있는 단계, 차원 높은 단계가 남아 있다면 더 노력하면 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안 됐으면 세계로 갈 수 있는 단계에서 더 노력하여 국가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나올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전부 다 나 하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내 개인의 문제인 것과 더불어 가정의 문제요, 가정의 문제인 것과 더불어 나라의 문제요. 나라의 문제인 것과 더불어 세계의 문제요, 인류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런 자리에서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나는 개인을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요, 가정을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요, 나라를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요, 세계를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면 이런 때에 있어서 나는 개인을 중심삼고 수습하려다가 끝장을 보고 말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인간이라는 것은 개인만을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일을 하려면, 이왕지사 그럴 수 있는 운명이라면 개인을 버리고 세계의 방향을 중심삼고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죽더라도, 망하더라도 개인만을 위해 가지고 몸부림치다가 망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안 그래요?

나라를 위해 가지고 몸부림을, 안간힘을 다 하다가 절망에 부딪치는 것보다도, 세계를 위해 가지고 몸부림을 치다가 절망에 부딪쳤다면 그는 자기 현실을 위해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두고 미래를 위해 산 사람이라고 할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노력하고 피땀을 흘렸다는 그 사실들은 현재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냐.

이렇듯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는 데는 어떠한 사람을 찾아오겠느냐? 만일에 멍텅구리가 되어 가지고 미래에 대해서 바라지 않고 망한 그런 두 패가, 혹은 두 사람이 있다 하게 되면 하나님은 누구를 더 동정할 것이냐 할 때, 개인만을 중심삼고 끝날을 맞는 사람보다도 세계를 자기의 소망의 터전으로 해 나오면서 몸부림치다가 망한 자리에 떨어진 사람을 더 동정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을 더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최후에 남아지는 사람은 신의 이상세계를 꿈꾸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어떠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어지느냐 하는 결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개인을 위해서 싸워 나온 사람보다도, 개인이 망하더라도 개인을 중심삼고 망하게 될 때에는 동정을 받을 수 없지만, 미래의 가정을 위하여 효의 도리, 형제의 사랑의 인연을 붙들고 미래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동정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사람은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을 위해서 미래의 소망을 품고 나온 사람은 개인이 망하는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개인보다도 가정을 염려하는 그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나마 꺾어 놓으면 소망의 가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실천 못 했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개인보다도 가정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 길에 있어서 망하더라도 소망의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고 쓰러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는 거라구요.

가정과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을 위하는 사람보다도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최후를 맞은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나라보다도 세계를 염려하는 그런 국가와 그런 사상이 있게 된다면 그 국가와 사상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것은 두말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라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도리가 아닙니다. 일족의 가정을 중심삼고 가정주의의 도리가 아닙니다. 민족을 중심삼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세계주의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서 망해 가지고 죽어 갔지만 그들이 가진 사상은 역사시대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것은 누가 남겨 줬느냐? 그 사람 자신이 남기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상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래도 큰 것을 위해서 죽어가는 절망의 자리에 선 그 사람을 하나님이 동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던 사상이 오늘날 인류역사, 문화세계를 이끌어 나왔는데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큰 인물 하면 그 큰 인물은 자기 짐만을 꾸리는 사람이 아니요. 자기 나라의 짐만을 꾸리는 사람도 아니요, 세계를 위해서 세계의 짐을 꾸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더 큰 인물은 어떤 인물이냐? 이 세계의 살림살이를 꾸리는 것보다도 절대자인 신이 있으면 신의 살림살이까지도 꾸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성인이라는 반열에 선 사람은 신의 살림살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꿈꾼 사람들이지, 인간의 이상을 중심삼고 살림살이를 꿈꾼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종교의 종주(宗主)더라 이거예요. 예수,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같은 사람, 그렇지요? 그들은 인간의 살림살이를 꿈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살림살이보다 더 차원이 높은 이상적인 살림살이의 본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상을 그려 나왔던 분들이 아니냐?

이걸 볼 때에, 개인을 위해 죽어가는 것보다도, 자기 개인을 위해 죽어 가는 것보다도 자기 개인을 희생하여 가정을 위해서 죽어간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죽어가는 가정보다도 나라를 붙들고 나라를 위해서 죽어가는 그런 가정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가 자기 민족과 국가만 위해서 싸워 나가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해 싸워 나가는 그런 민족과 국가라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 끼리끼리가 아니라,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신의 나라를 위하여 신의 이상세계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최후에 남아지는 사람으로서 신의 이상을 꿈꾼 그런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은 현실적인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불가피한 결론이라 하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그러한 역사를 추구해 나오기 때문에 끝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끝도 끝이지만 가정의 끝도, 혹은 민족의 끝도, 국가의 끝도, 세계의 끝도, 전부가 끝이 되는 것입니다. 그 끝날에는 전부가 망하더라도 전부가 망하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남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없이는 인간세상을 수습할 수 없겠기 때문에, 반드시 남겨야 할 인물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이 와야 하는 이유

그러면 그 남아질 인물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는 개인을 위해서,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사는 주의라든가 사상이라든가 하는 생활 방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주의 사상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면 되느냐? 인간을 위주한 전체주의면 되느냐? 인간을 위주한 전체주의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인간을 초월해서 신을 위주한 전체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전체주의가 되면 그것은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자로 태어났으면 상대가 될 수 있는 여성을 맞는 것이 최대의 소망일 것입니다. 여성을 맞아 가지고 행복을,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의 소원성취가 다 이뤄지게 될 때에, 그 소원은 횡적 소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상대적 인연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적인 소원이 거기서 출발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난 그런 자리에서 새로운 생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자녀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만이 사랑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서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기를 바라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중심삼고 소원하던 것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도달 못 했다면 그것을 바라는 사람, 즉 세계적인 입장에서 바라는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은 그래도 제 2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세계가 망하는 시대에 남겨 놓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세상 것과 하나님 것은 반대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상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을 반대되는 길로 말했습니다. 세상과 하늘이 서로가 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상충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충될 수 있는 내용, 절대적인 뜻을 품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장에서 상충될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충된 자리에 서는 사람이란 현재의 생활과 현재의 인생관을 부정하는 자리에 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독실한 종교인들입니다. 특정한 타입의 종교인들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래도 끝날에 남을 수 있는 소망의 무리는 인간만을 위하는 무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런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이건 여러분들이 느낄 거라구요.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여러분이 바라는 이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북 사람도 새로운 통일을 바라고 있고 이남 사람도 통일을 바라고 있는 거라구요.

이 세계를 볼 때에 이 세계는 좌우로 갈라져 있습니다. 민주세계에 사는 사람이 이 세계가 자기의 이상 동산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민주세계가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공산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 실험해 본 결과에서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재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다 차고 지나가게 되면 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서 매매되고, 매매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왕래되어야 할 것인데 불구하고, 더 낮은 차원의 것으로 왕래되는 결론을 보게 되었다면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물질문명이 인간이 가치시하는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그러한 뒷받침이 못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을 통한 현재 세계에 있어서 고차원적인 이상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보다도 낮은 것을 중심삼고는 이상을 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높은 차원의 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겠기 때문에, 끝날에는 종교의 세계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중심삼은 승리의 세계가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위주로 해 나왔기 때문에, 그런 목적의 귀결점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끝날이라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처한 인간이 해야 할 일

그러니 이러한 때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비를 해야 됩니다. 개인을 위해서 정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은 이렇게 이렇게 정비돼 있어야 됩니다. 가정이 정비되는 데에는 엄마는 이렇게 가고 아빠는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엄마 아빠가 같은 방향에서 정비돼야 됩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가 정비된 그런 자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을 합하여서 정비된 방향을 가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은 뭐냐 하면 청산짓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비해야 됩니다. 그 정비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이요, 합격할 수 없는 사람은 낙엽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불가피하다구요.

자,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 개인이 정비돼 있습니까? 가정이 정비돼 있습니까? 나라가 정비돼 있습니까? 세계가 정비돼 있습니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개인으로 가고 난 후에는 가정이 가야 할 텐데…. 내 개인이 다 간 다음에 가정으로 출발했으면 좋겠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가정이 다 간 후에 국가로 출발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국가가 가고 난 후에 세계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구요. 될 수 있으면 세계의 출발과 동시에 나라가 가고, 가정이 가고, 개인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길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매를 맞아도 한꺼번에 맞고 말지요. 매도 먼저 맞는 녀석이 좋다고 하잖아요? 매맞은 녀석이 발을 펴고 잔다고 하듯이 말예요. 이왕에 그렇게 지지리 모진 운명으로 끝날 바에는 내 개인으로 가다 허덕이지 말고 개인의 운명을 뭉뚱그려서 가정의 운명과 범벅을 만들고, 가정의 것을 뭉뚱그려서 나라의 것과 범벅을 만들고, 나라의 것을 전부 다 뭉뚱그려서 세계의 것과 범벅을 만들어 가지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방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첨단에 선 우리의 단말마적인 요구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그러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멍텅구리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인간을 찾아온 보람을 느끼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방안이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내 개인을 부정하라 할 때 '내 개인을 가정보다 더 중요시한다' 하게 되면 그 개인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한 개인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또, '아이고, 나라고 무엇이고 우리집, 내 아들딸' 하는 그런 사람, 그런 가정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섭섭하지만 할  없다구요. '아이고 우리나라만, 우리나라만…' 한다면, 그 나라도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다구요.

지금 남북통일을 바라고 있는데, 남북통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냐? 차원 높은 통일의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이북에서 이남에 와 가지고, 또 이남에서 이북에 가 가지고 서로가 '우리 하자는 대로 하자' 할 때는 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손해나는 자리에서는 통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플러스될 수 있는 데에서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남자 여자가 결혼해 가지고 서로 마이너스되는 입장에서는 하나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서로가 이익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세상, 우리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나가는 걸음걸이, 주의 가지고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 사이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별  없이 그 하나님을 붙들고 가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북도 하나님을 붙들고 ‘아이고!’ 하고, 이남도 하나님을 붙들고 ‘아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고' 하는 모습이 불쌍하고, 뒤넘이 치는 모습들이 불쌍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모색 방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도 가정을 위해서 죽어야지. 아이고 가정을 위해서…' 하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는 망하더라도 가정은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아이고 가정을 희생시키다니, 통일교회 믿으면 가정이 파탄이야! 아이고, 난 못 가겠소' 하겠지만 가정 보다도 더 차원 높은 나라를 위한 통일교회이니만큼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 가정을 파탄시킨다면 그 가정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남아질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건 불가피하다구요.

그러니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게 될 때,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세계는 살아 남을 것입니다. 세계가 살아 남게 되면 망한 대한민국은 다시 살아나기 마련입니다. 큰 것을 살려 놓고 내것도 살려 놓으니 결국 나는 이래도 손해가 아니요, 저래도 손해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롭고 이로운 인생길이라고 볼 수 있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세계를 다 희생시키더라도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겠다 할 때에, 세계는 망하더라도 하나님만을 위하는 사상만은 살아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꿈꾸어 나온 것이 종교인들, 어리석은 종교인들입니다.

그렇지만 가만 보면, 종교인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때를 맞기 위해 기다리기 때문에 어리석은 놀음이지, 때가 못 돼서 행사를 못 하는 것뿐이지, 알겠어요? 이건 양반 자식도 별  없다구요.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 별  없다는 것입니다. 피난살이를 해야 되고, 망명객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 때는 성명이 없는 거예요. 여기서 큰소리치면 그늘에서 살게 마련이니. 약자 된 신세의 탈을 아니 쓸래야 아니 쓸 수 없는 것이 그 양반 자식의 신세가 아니겠느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겁니다. 자신도 없는 무슨 주의나, 무슨 세계관, 무슨 국가관, 무슨 가정관, 무슨 부부관, 무슨 사랑관이니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붙들고 자신 있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남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의 세계와 인류를 사랑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겁니다.

사람이 본시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니 그 귀결점에 딱 갖다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맞춘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한테 와서 맞춰 주십시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이 반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맞추려면 등을 대고 맞추라고 하는 겁니다. 등을 대고는 맞추어지지 않으니까 할수없이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전부 다 하나에서 백까지, 죽더라도 전부 갖다 맞추어라 이겁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맞추는 날에는 망할 줄로만 안 세계는 거기서부터 살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국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인간 자체의 상실이 표면화되면 될수록 그것으로 끝나는 인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 나는 죽더라도 하나의 이념을 찾고 있는 본성의 마음은 남아지기 때문에, 그 길을 지켜 가지고 인류와 더불어 사다리 길을 걸어 나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상봉할 수 있는 한날이 있어야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고 나왔고, 또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독재자가 아니라구요. 사랑하라는 것은, 너는 나를 사랑하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네 사랑을 다 받고 난 후에는 틀림없이 나도 너에게 사랑을 하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라는 그 말은 일방적인 말 같지만 일방적인 말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주적으로 하나되자

이렇게 볼 때, 틀림없이 하나님과 세계와 나라와 가정과 개인이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뭉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뭉쳐 가지고 몽땅, 한꺼번에 가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역사는 개인에서부터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나온 역사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 하나님의 사랑복귀 8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이 8단계를 중심삼고 하지요? 아버지여, 개인복귀 완성하고 가정복귀 완성하고…. 그것이 뭐냐 하면 개인복귀 완성은 가정 가운데 있는 것이요, 가정복귀 완성은 종족 가운데 있는 것이요, 종족복귀 완성은 민족 가운데 있는 것이요, 민족복귀 완성은 국가 가운데 있는 것이요, 국가복귀 완성은 세계 가운데 있는 것이요, 세계복귀 완성은 천주 가운데 있는 것이요, 천주복귀 완성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주적으로 하나되자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역사관을 중심삼고 천주주의 (天宙主義)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교인은 멍텅구리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밥 먹기도 바쁜데 천주주의? 흥, 오늘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뭐 영원무궁한 이상주의? 그 미친 녀석들'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미치기야 미쳤지요.

우리의 욕심, 우리의 소원,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꺼번에 하자는 거라구요. 죽으려면 모가지를 딱 잘라 죽어야지 손가락을 딱딱 잘라서 죽겠어요? 그걸 원해요? '아이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할 텐데…' 하고 손가락 하나 잘라 놓고 '아이고, 조금 더 살자구' 그러고, 또 팔목을 잘라 놓고 '아이구 조금 더 살자구' 그러고…. 이렇게 하나하나 자르길 원해요, 뭉청 자르길 원해요?

우리 아가씨들, 어떤 것을 원해요? '아이고, 시집도 못 가 보고 죽으면 큰일이구만, 왼다리든 팔이든 하나 없더라도 시집이나 한번 가 보고 죽어야지' 그래요? 시집가 보고 죽으면 뭘해요? 그건 남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배가되는 거라구요. '아이구, 당신은 나 때문에 불쌍하게 됐소' 하는 거예요. 고통이 배가된다구요. 이왕 죽을 바에는 혼자 죽는 것이 좋다구요, 안 그렇겠어요? 이왕지사 보따리 싸 들고 나설 바에는 역적보다도 충신의 보따리를 남겨 주고 죽어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돼야 된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뭐냐 하면 '에라 한꺼번에 싸워 버리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를 보라구요. 지금 통일교회가 하는 것을 보면 무섭다구요. 내 어제밤에도 청평에 늦게 갔다가 늦게 돌아왔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가? 누가 동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밤에 무슨 도깨비가 붙은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미치지도 않았는데, 그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가? 그렇다고 하루에 밥 세 끼 먹지 다섯 끼 먹는 것도 아니고, 지갑에 두둑하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겼다고 해도 보지도 못하고 나간다구요. 돈이 생겼다고 해도 난 말만 듣지, 만져 보지도 못하고 구경도 못하고 다 흘러가 버린다구요.

자, 이게 무슨 재미예요? 재미가 없다구요. 또,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식구라는 사람이, '선생님을 위해 죽겠소. 선생님이 가는 데로 따라가겠소'라고 맹세한 통일교회 식구라는 사람들이 '아이구 좋습니다. 가겠습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구 나 싫소. 싫습니다' 이러고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겁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놀음을 하는 것은 이왕 지사 매를 맞을 바에야, 역적이 되려거든 그까짓 것 세계적인 역적이 한번 돼 보자는 것입니다.

세계적 역적이 되려면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에 대한 충신의 역사를 남기지 않고는 세계적인 역적이 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적인 역적이 되려는데 누가 가담시켜 주나요? 나라의 챔피언이 되어야 올림픽 대회의 선수로 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나라의 역적이 되어야 세계적인 역적 클럽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라구요. 안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까짓 것 먹다 죽더라도 한꺼번에 물고 죽자 이겁니다. 어디 소화시켜 보고 한번 해보자 이거예요. 그런 놀음이라도 해보고 죽었으면…. 만일에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싹 들게 되면 야, 이거 그래도 통일교회 패들 가운데 추려 가지고 쓸만한…. 누더기도 뒤적거리면 말이예요. 거기에서 보석반지가 나올 때도 있다구요. 그러한 가망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별  없이…. 인종지말을 당해 가지고 인간이라는 무리 가운데 그래도 그러한 가망성이라도 둘 수 있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 무리들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맨 나중 인간으로 남아질 수 있는, 죽더라도 최후의 모습으로 죽자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은 깡패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주의에서 깡패요, 통일교회주의에서 사기꾼이라는 겁니다.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은 종족 앞에 사기꾼이요, 도적놈이다 이거예요. 깡패 도적놈 사기꾼이면 다 됐지요 뭐.

그러한 통일교회가 종족권을 만들었으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라 이겁니다. 남들은 꿈도 안 꾸는데, 지금까지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이고 대한민국을 구한다고 별의별 소문을 내면서 별의별 욕을 다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후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동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걸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라구요. 누가 알아주고, 사람이 알아주는 것, 그들은 전부 다 하나님보다 낮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아줄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 있어서 누가 알아 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뭐 세계야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우리는 가는 거라구요. 이 길밖에 없지 않아요? 이건 여러분들도 이해가 될 거예요? 이러한 것은 끝날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게 참 중요한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에 매를 맞게 되면 한꺼번에 맞자.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제는 통일교회가 어느 정도, 얼마만큼 기반이 닦아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거예요. 공산당이 들어와 가지고 전부 다 휩쓴다 하더라도 통일교회 사람들은 공산당권내에 사로잡혀 죽지는 않을 거라구요. 죽어도 통일교회 귀신이 되지…. 그렇지요? 여러분, 틀림없지요? 「예」 죽어 가지고 공산당 세계에 가서 공산세계를 협조하는 사탄의 영이 될 거예요? 둘 중의 하나는 남아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 거라구요. 망하지 않는다구요.

새로운 방안을 찾아 역사적 종말시대를 책임지자

예수는 죽었지만 영적인 승리 기반이라도 남겼기 때문에 기독교가 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문선생이란 사람이 없더라도 이 사상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는 안심하고….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 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뒤로 두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책임을 하겠다고 세계를 향하여 떠날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 대한민국에 남아야 할 그 사람이 '선생님 가는데 나도 가겠소' 한다면 그건 안 됩니다. 그건 안 된다구요. 그래서 '이 녀석아, 여기 남아 있어' 하고 눈을 부릅뜨고서라도 남아 있게 하는 거예요. 눈을 뜨고 따라오려고 하면 눈을 빼어 봉사를 만들어서라도 남겨 두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세계를 짊어지고 매맞겠다. 세계를 짊어지고 죽어보자'고 하는, 하늘편에 선 사람이 있지 않고는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고 수많은 기독교가 있는 이 문화세계 권내에 망운이 뻗쳐 가지고 이제 갈 수 없는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걸 다 집어치우고 새로운 방안을 찾아 가지고 죽든 살든 하나님 앞에 배밀이를 하고 싸움을 할 수 있는 패당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 모르겠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10년만큼 반대하고 모른다 하더라도 난 11년만큼 반대받고 당신을 위해 가겠다고 한다면 하나님도 별수 있어요? 10년이 지난 후에는 하나님도 '아이쿠 할 수 없지만, 그 녀석 어찌나 지독한지…' 그럴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짝사랑하는 사내가 보기 싫지만 그가 '난 당신을 위해 났고, 당신을 위해 죽을 것이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겠소. 낮이나 밤이나 당신을 위해 살겠소' 그런다면 여자의 마음도 살짝살짝 변하기 마련입니다. '암만 찾아봐도 그 사람 같은 사람이 없다. 누가 나를 위해 죽을 거냐? 나 위해 죽을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다. 사랑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 낫지 않느냐. 얼굴이 조금 못하지마는, 그것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 가지고 여자의 마음이 살금살금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자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 아가씨들.

남자들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야 더 하지요. 그렇다구요. 끈기 있게 정성을 들이고 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의 마음에 여자의 마음이 살랑살랑…. 소식이 없는 것 같지만…. 겨울 가운데서 봄이 되는 것을 누가 아는 사람이 있어요? 겨울과 봄이 바꿔질 때 '야! 이 시간이 진짜 봄이다. 봄맞이하자' 하고 깃발을 들고 축하하는 사람 봤어요? 슬쩍슬쩍 안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가는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사이에 오지 않는것 같은 봄이 와서 떡 자리잡아 가지고 한 계절은 가 버리고 또 한 계절이 와 있더라 이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아침이 온 줄 알았어요? '아침은 어느 때부터냐? 해 떠오르는 시간부터다. 그 아침은 세계적으로 전부 다 다르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일본의 아침과 한국의 아침과 중국의 아침과 저 구라파의 아침은 다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의 아침이 언제냐 할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구요. 지구의 아침 때가 어느 때냐? 그것은 하나님밖에 모르는 거예요. 왜? 지구가 뺑뺑 돌다가 햇빛을 받기 시작한 그때가 아침이라구요. 그 점을 모르지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경도선을 지나는 그때부터예요? 그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모르고 살고 있다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 자 이거 통일교회가…. 아, 뭐 내가 얼마나 반대를 많이 받고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다구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역사적 종말시대에는 '한꺼번에 전부 다 내가 책임지겠소. 내가 책임지겠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라구요. 어느 한 나라가 비운을 맞이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위기일발인 그런 시점에, 충신도 어쩔 수 없는 때에 그 나라에서 그 전시대에 역적의 팻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여보, 걱정 마시오. 내가 이것을 책임지겠소' 했다고 합시다, 충신마저도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그것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하겠어요. 하지 말라고 하겠어요? '에이 역적이 뭘 해, 이 자식아' 그러겠어요? '그 녀석이 역적이 될 만큼 배포도 컸으니까 한번 희망이라도 갖고 시켜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는 망하더라도 나라는 남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감옥에 있어서의 왕초가 충신 꼭대기를 디디고 충신 대신 국운을 책임져 가지고 그 책임을 하게 될 때는, 그 다음에도 역적이예요? 그렇게 되면 충신도 역적이었던 그 사람에게 가서 고개를 숙인다구요. 별  없다구요. 고개를 숙이겠어요, 안 숙이겠어요? 「숙입니다」 군주가 있다면 그 군주도 그 놀라운 재주면 재주, 실력이면 실력, 수완이면 수완에 감탄하면서 '아! 우리나라는 이제 너로부터야…' 할 것입니다. 그때 그 너로부터가 역적 아무에게서부터이겠어요? 아닙니다. 충신 간판을 돌려 붙이게 되고, 충신이 역적이었던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자리에서 충신의 팻말을 찾을 수 있는 길도 있을 성싶다 이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럴 길도 있지요? 「예」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그렇잖아요? 말하자면, 이북에 첩보요원을 보내게 될 때에는 전부 다 살인강도들, 없애야 될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보내게 됩니다. 전부 다 그런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이 나라 백성 누구도 못 하는 놀음을 시켜서,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낼 때에는 이 나라의 당당한 국민으로서 해방시켜 주는 놀음도 있다구요. 마찬가지라구요.

자, 우리 통일교회는 그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왕지사 망하라고 하는 그런 욕을 먹는 패들이 말이예요. 이미 환경적으로 다 망하게 됐다구요. 망했잖아요? 어머니 아버지한테 이미 쫓겨났으면 망한 거지 별 수 있어요? 형제들한테 쫓겨났으면 망한 거지 별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도 뭘 살겠다고 뒤적뒤적하면 '어구구…' 이거 기가 막힌 꼬락서니라구요. 그래 살아서 뭘해요? 또 그뿐 아니라. 세상에 자기 스승들까지도 '퉤퉤' 침을 뱉는다구요. 그렇게 살아 뭘해요? 또 그 나라의 주권자들까지도 '아, 통일교회, 하필 그…. 뭘 해? 이 녀석들' 하는 거예요. 그러니 살아서 뭘해요.

또,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불쌍합니다.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 사람들이 '어, 문선명이가 왔구만' 하고, 미국에 가게 되면 '아, 미스터 문이 왔구만' 이럽니다. 이거야 뭐 거치적거리는 게 많아요. 그게 살 재미가 있겠어요? 꼭 남의 집 살림하는 거와 같습니다. 이건 머슴살이, 낯설이살이다 이겁니다. 이 나라에 있어서, 이 세계에 있어서 머슴살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 머슴살이의 족보라는 게 이게, 백정의 족보라는 것이 이게, 옛날에 충신들이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 백정이 됐다구요, 백정.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야 이건 뭐 백정 놀음하고 있구만' 하면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모르지만, 만약에 역사를 뒤집어 엎어 가지고 밝힐 수 있는 공판정이 있거들랑, 그 백정의 후손은 그 나라의 가식적인 충신 이름을 가진 자들의 꼭대기에서부터 들이칠 것입니다. 소 잡던 망치로 그 충신의 이름을 가진 자들을 들이칠 것입니다. 그 때가 진짜 심판 때다 이겁니다.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자가 되는 길

보라구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머리가 깨졌고, 얼마나 사자밥이 되었고, 얼마나 사라져 버렸어요? 그 족보를 전부 다 들추어 가지고 새로운 세계의 앞에 걸어 놓고 한번 알아보자 하는 그런 운동이 안 벌어지겠어요? 그것이 이제 대심판이라구요, 대심판.

자, 그러면 맨 마지막에 다 망해도 남아질 수 있는 무리는 뭐냐? 아무리 생각해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각하는 방식 이외에는 없다 하는 것이, 아무리 내가 핍박을 받고 저 감옥에 들어가 영어의 몸이 돼 가지고 생각을 해보아도 이것밖에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다구요.

내가 힘내기를 해도 누구한테 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구요. 무엇을 하더라도 지고 싶지 않다구요. 누구만큼 못나서 이 놀음하고 있는 거예요? 욕먹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구요.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 기가 막힌 자리에서 망하면 그것으로 사라지 겠지만, 기가 막히게 비참한 역사를 남기겠지만 그 기가 막힌 자리에서 기가 막힌 성공을 하게 될 때에 역사는 발카닥 뒤집힌다구요.

자, 그러면 여러분, 이왕지사 이래도 사판이요, 저래도 사판으로 이판사판인데, 어떡할 테요? 그래도 죽고 난 다음에 무덤에라도 찾아와 가지고 엉엉 우는 패가 있을 자리에서 죽고 싶어요, '아이고, 퉤, 잘 죽었다, 그 녀석' 그럴 자리에서 죽고 싶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으면 무덤 앞에서 '아이고 그놈의 통일교회 문선생 뭐 큰소리하며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더니 잘 죽었다, 그놈의 무덤. 퉤-' 하며 세상 사람은 그러고 돌아설는지 모르지만, 와 가지고 싫다고 침을 뱉을는지 모르지만 낮에 길을 막으면 밤에 와서 엉엉 울고, 밤에 길을 막으면 새벽에 와서 엉엉 울고, 새벽에도 길을 막으면 잠깐 아침 해뜰 무렵에, 문지기가 잘 때 들어가서 엉엉 울다가 매맞아 쫓겨나고 하는 무리가 계속적으로 있다면 그 무덤은 성공한 사람의 무덤이라구요.

그래서 여러분들, 어디 선생님이 죽게 되면 와서 한번 울어나 주겠어요? 침뱉을래요, 울래요? 응? 여기 남자들, 울래요? 찾아오지도 않을 거라구요. 그래 한번 찾아가 봐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어디 그렇게 생각해요? 「예」 아이구야. 정말 그래요? 선생님을 찾아오려고 하지만 못 찾아와요. 선생님은 뭐 천주주의 사상가라구요, 천주주의 사상가. 그 천주주의를 이를 때까지는 고생바가지라구요, 고생바가지. 자, 그렇다고 해서 이 고생탈을 벗고 싶으냐? 벗었다간 안 된다구요. 벗었다가는 이건 뭐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구요.

나도 어떤 땐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뭐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구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구, 나에게는 청소년시대도 그저, 청년시대도 그저, 장년시대도…' 이젠 반세기가 넘어 가지고 내리닫이 인생길을 향하게 됐습니다. 자, 이건 일생 동안 고생만 하고 쫓김받고 그저 욕먹고 그저 뭐 이러고…. 옛날에 친구들하고도 기가 막힌 사정들이 많았다구요.(웃음) '자. 이러다가 죽겠구만! 그래 남는 게 뭐냐?' 할 때 그거 가만히 보면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없지 않다구요. (웃음)

자 이렇게 볼 때, 이왕에 죽을 바에는…. 내 배때기를 위해서 도적놈이 되고 살인 강도가 돼 가지고 죽게 됐으면 그 녀석을 두고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 모른다. 나 모른다, 이놈의 자식아. 그는 우리 자식이 아니고 후레자식이다. 우리와 관계가 없다'라고 하며 형제들도 관계 없다고 할 것입니다. 전부 다 간판 내 붙이고 선전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부모 형제를 위해서 그 사람이 살인강도를 해 가지고 죽었다 할 때에는 어머니 아버지 혹은 그 형제들은 그 아들이요, 그 동생된 사람이 자기들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할 때 밸이 꼬여져 가지고 터질거라구요. '네가 죽는 대신 내가 죽을 수 있으면 죽어야 될 텐데' 하며 거기에 눈물이 남아지게 됩니다. 그렇지요?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그랬을 때에는 전부가 경멸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동네에 한 집안이 망하게 될 때, 그 집안이 그 동네를 위해서 일하다가 망했다고 동네 전부가 알게 될 때에는 '그 가정이 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이 망해야 될 것인데…' 이러는 거라구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망하겠다고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 때문에 망하고자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주주의를 위해서 망하자는 거예요. 이 천주주의라는 말은 막연해서 여러분의 마음이나 생각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하여튼 제일 큰 주의라구요. 천주주의라구요, 천주주의. 하늘집이니까 하나님도 몰아넣고, 인간도 몰아 넣고 다 몰아넣자는 거예요. 그런데 떡 몰아넣기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주의이긴 천주주의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천주주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거라구요.

자, 이만한 것을 한번 찾겠다고 말하려면 이 세계에서 찾겠다고 하려면, 그것과 싸워 이기려면 세계에서 고생을 제일 많이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이 똑똑한 사람들, 고생을 제일 많이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많이 해야 됩니다」 많이 해야 된다구요. 큰 목적을 품은 사람은 그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간적 투입과 노력의 투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끈질겨야 되겠다구요, 끈질겨야. 어떤 때는 내가 볼때기의 살을 잡아당겨 보면서 '이놈의 볼때기 살이 끈질기기도 하지, 이놈의 가죽이 끈질기기도 하지' 그래 봅니다. 지난 날을 생각하며…. 별의별 고문을 받으면서 가죽이 터져 나갔지만 또 들어붙는 거라구요. 뭐 별의별 꼬락서니를 다 당했지만, 씻고 털고 나서면 멋진 신사도 될 수 있다구요.

끝날을 슬기롭게 맞는 방법

자, 이렇게 말하면 '제목은 저렇게 해 놓고 선생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해요' 하겠지만 이제 결론을 내린다구요.

지금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인간입니다. 알겠어요? 틀림없이 그러한 패들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물론이요, 개인이나 가정이나 물론이요, 나라나 세계도 물론 같은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서 단 한 가지 비법이 뭐냐? 끝날이 될 것인데 끝날의 해결 방안이 무엇이냐? 그 끝날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 이 끝날 가운데 있는 가정 가지고는 안 되고, 끝날 가운데 있는 세계 가지고는 안 되고, 끝날 가운데 있는 우리들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세계 가운데 그러한 새로운 탈피를 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면, 하나님도 망하는 세계를 그래도 인간을 위해 나오던 공적의 터전이라도, 실낱 같은 것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 그 새로운, 색다른 무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 2의 교육 방안을 짜 가지고 출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이외의 방안은 하나님에게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두고 볼 때, 그 길에 적중시키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적중시키는 그때가 어느 때냐?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때라고 말했지요? 그야말로, 지금이야말로 그때입니다. 그러면 그때가 오되 간판 붙이고 오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해가 떠올라 가지고 아침이 되고 낮이 되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하지 않은 기간에 전부 다 지나가 버리고, 또는 와 버리고 말더라 이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변을 중심삼은 모든 시간에 대한 여건들이 아니냐?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거라구요. 그런 과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때는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침은 틀림없이 옵니다. 때는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그때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다 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그런 때가 올 것을 생각할 때, 만일에 그때가 5년 후라 하게 되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5년 후에 온다 하게 되면, 5년 준비가 못된 자기 자신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때를 딱 그 점, 5년이다 해 가지고 딱 그 시간이 돼 올 때는 얼마나 바쁠 것이냐? 여러분, 사형수들이 말이예요. 아무 날 몇 시에 사형받는다 하게 되면 그 사형받을 날이 다가오기도 전에 질려 죽어요. 질려 죽는다구요. 밥이 먹혀지지 않고, 밥이 즐겁지 않아요. 그래 질려 죽는다는 거예요. 감옥살이 오래한 사람들의 사망율이 어느 때 많으냐 하면, 출감하기 6개월 전부터 사망율이 많은 거라구요. 그걸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살이도 많이 하고 그랬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구요.

금을 딱 긋고 있는데 똑딱똑딱하면, 아침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다리는 사람은 열두 시 땡 치고 난 뒤 똑딱똑딱 초침이 쓱쓱 돌아가는 소리를 듣게 될 때 '아이고 재미난다. 아침이 가까와 왔구만.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 텐데, 얼른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얼른 와라, 얼른 와라'할 것입니다. 그때는 그 똑딱똑딱하는 초침 소리가 참 좋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내일이 오면 그 아무 날이 가까와 진다고 할 때, 똑딱똑딱 하는 그 소리에 '아, 아, 아…' 그 소리가 좋아져요. 싫어져요? 싫어져요. 좋아져요? 그걸 좋다는 녀석들은 미친놈이라구요. 싫어지게 되는 거라구요, 하루가 지나게 되면 '아-' 죽을 날이 가까와진다고 생각할 때에, 그때가 되면 될수록 얼마나 조급해지겠어요? 출감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은 잠을 못 자게 됩니다. 잠을 못 자요. 여러분 그건 모르지요? 밥이고 무엇이고 잠을 못 자요.

그러니 이런 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도 초조해 하기 때문에, 그때는 될 수 있으면 그저 못살게끔 하는 그런 작전도 감옥에서는 해요. 한 일주일이라든가 한 달쯤 출감이 남게 되면, 그 전에는 일도 안 시키던 것을 그저 못살게 노동을 시키는 겁니다. 그저 뼛골이 녹아지게끔 몇배로, 벌렁벌렁 기어다니게끔 노동을 시킨다구요. 그렇게 노동을 시키게 되면 밥이고 뭣이고 숫제 잠이 와 죽겠는데, 나갈 생각은 차후다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언제 나갈 생각을 할 여지가 있어야지요. 숫제 잠만 오는데. 그렇게 되면 밥도 없어 못 먹는 거라구요. 잠이 왜 안 와요? 그저 밥숟갈 놓자 마자 쿨쿨하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그저 할 수 없이 고생을 시키고 휘몰아쳐 가지고 생각지도 않은 놀음을 들이 시킨다구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뭐라구요. 「사랑이요」 사랑이라구요, 사랑.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끝날이 되는 줄 알게 되면 말이예요. '아이고 끝날이 몇 시 몇 분인데 똑딱 똑딱 가까와 온다. 세계가 이제 잿더미가 된다. 인류가 망한다' 하는 것을 인류가 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준비한 사람도 못 가고…. 그 때에는 세상 사람들만이 질려 죽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질려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보면, 끝날을 하나님이 안 가르쳐 주길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잘했다는 거예요. 야 이거 끝날을 모르는 게 아이구 얼마나 고마운지…. 알았다간 질려 죽는다구요. 만약에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거 그날만 바라보고 잠을 안자면 큰일나겠으니까 그저 고생을 시키는 거예요. '이놈아!' 하며 알아서 하는 거예요. 그날을 기다리다간 말라 죽겠기 때문에 그걸 아는 하나님이라면 고생시켜야 된다구요. 그저 밤이나 낮이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말이예요. 통일교회 패들은 언제가 끝날이다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패이기 때문에 이들을 살리는 길은 단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그저 뼛골이 녹아지도록 이것들을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를 씌우는데 그것을 입지 않겠다고 하거든 벗기고라도 입혀라 이거예요. 결국 이런 싸움하느라고 시간 보내는 거라구요. 싫다고 야단하더라도 입혀라 이거예요. 그런 반대작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보람

그런 의미에서 보게 되면 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도 있지요? (웃음)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야, 이건 통일교회에 들어맞는 말이다 이겁니다. 죽을 때는 약 주고 살 때는 병 주고…. 병 주고 약 준다는 그 말은 반대되는 말이지만 사랑의 부모로서는 이쪽도 필요하고 저쪽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난세에는 그게 필요합니다. 일본의 도꾸가와 이에야스 같은 사람은 말이예요. 그 난세에 막부(幕府)하고 관부(官府), 그 사이에 서 가지고 아주 다리를 잘 놓았습니다. 이쪽에 가서도 쏙닥쏙닥하고, 저쪽에 가서도 쏙닥쏙닥하며 병 주고 약 주고 하여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쪽 대가리 없어지고 저쪽 우두머리 없어지고 해서 둘 다 없어지게 됐습니다. 그 다음엔 둘째번 대가리들이 또 싸워 가지고 없어지게 되면 그 때에 대장이 되어 가지고 왕초가 된 사람이 도꾸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3단계, 세째번쯤 되는 졸자들이 책임자를 대해서 '아이고 우리 선조로부터 모시던 분…' 자연히 이 놀음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게 수습해 가지고 통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그게 지혜로운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도 통일교회 사람보고 '야야 너희들 그러지 말고 우리 사탄나라에서 제일 좋은 복이 여기 있다'고 쏙닥쏙닥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솔깃해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또, 하나님도 '야야 사탄이가 그러지만 사탄이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여기 있다'고 쏙닥쏙닥하고, 사탄이 비밀 여섯 개 가르쳐 주면 하나님은 비밀 열 두개를 가르쳐 주면서 ‘어느 것이 더 좋으냐? 요게 더 좋아, 저게 좋아? ’할 때, 그렇다고 해서 날뛰며 '아이고 나도 좋다' 하는 게 아닙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가운데 저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놓으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저쪽에서 못하는 놀음을….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하지 못하는 놀음을 하게 되면 세계적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북이 하지 못하고 공산당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서 그들보다 더 지독하고, 대한민국의 삼천만 백성보다 더 지독한 패가 되어 가지고 자기 자랑하지 말고 꾸준히 춘하추동 사계절을…. 산에 나무는 큰 나무가 중심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뭐 이러고 저러고 할 새가 없다구요. 남이야 욕을 하겠으면 하고 말이예요. 양반님이 행차하는 데 동네 개는 짖기 마련이라구요. 그렇지요? 길가에 있던 아이들은 울고 도망가기 마련이라구요. 부작용이 벌어지게 마련이라구요.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다르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교회가 나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자 여러분, 여기 잘 들어왔어요. 못 들어왔어요? 「잘 들어왔습니다」 잘 들어왔지만 가기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그 어렵기 때문에 잘 들어온 거라구요. (웃음)

자, 세계를 위해서 천주주의를 따라가겠다고 해서 누구든지 시험을 쳐서 영점 맞을 것도 백점 맞는다면 어떻게 등수를 뽑겠느냐 말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건 지긋지긋하게, 재긋재긋하게, 빠직빠직하게…. 자, 그래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래야 세계적이지, 그렇지 않으면 뭐가 세계적이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온 보람이 있지, 뭐 아무나 다 동네방네 다니며 바람피우던 녀석들이 와 가지고 여기서도 비람피워 가지고 남아질 수 있다면 그런 통일교회는 틀려먹었다구요. 대한민국에서도 내노라 하는 사람이 들어왔다가도 꼬리를 저으며 '통일교회 원리도 좋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도 좋지마는, 아이쿠 통일교회의 고생은 난 싫소' 합니다. 그런 사람은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똥걸레들이 많이 나왔어요. 우리는 걸레는 걸레지만 비단걸레가 되자는 것입니다. 누더기 똥걸레와 비단 똥걸레가 있다면 비단 똥걸레가 나라님의 왕궁에 들어가 가지고 걸레 놀음을 할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어디에서 끝날의 한 때를 맞을 것인가

자, 틀림없이 때는 옵니다. 때는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의 때와 가정의 때와 국가의 때와 세계의 때가 한꺼번에 맞부딪칠 때가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문제는 뭐냐? 내가 청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청산은 무슨 청산이냐? 개인적으로 청산하고, 가정적으로 청산하고, 민족적으로 청산하고, 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선생에게 '야 대한민국을 떠나라'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면 떠나는 겁니다. 암만 누가 반대하더라도 밀선을 타고라도 떠나는 거라구요. 그런 길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 여편네가 울고 자식이 울고 에미 애비가 반대하고, 어떻게 반대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야, 이제는 너희들하고의 때가 지나갔다' 할 때는 그 때를 맞으려 하다가는 안 되는 거라구요. 세계의 때를 맞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딴 곳에서 그때가 있다면 그때를 맞기 위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안 그래요?

주님이 대한민국으로만 온다는 법이 없다구요. 미국으로 온다면, 미국으로 가야 되는 거라구요. 돈이 없더라도 뭐 어떻게 하든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선조로부터 이민이라도 해 둬야 된다는 말이라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 그래요. 그때는 틀림없이 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맞을 것이냐? 어디서 그때를 맞을 것이냐? 대한민국에서 맞으면 좋겠지요?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한 뜻을 가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최후의 때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건 딴 나라에서 맞아야 됩니다. 결론이 그렇게 나와요. 안 그래요? 그래야지요.

주체와 대상이 어디에서 성공을 이루느냐? 아, 주체가 성공을 할 때는 주체의 자리에서 성공을…. 천만에! 완전한 대상이 있게 되면 주체는 그곳으로 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소원성취는 자기 중앙지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은, 뜻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동떨어진 상대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게 창조원칙이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후의 뜻은 한국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뜻이 한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상대를 결정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바라 보기 전에는, 세계를 대해서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기 전에는 세계적인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대한민국을 몽땅 세계에 줘야 됩니다.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러한 사상을 가졌다면, 선생님 자신도 몽땅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안 그래요?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몽땅 가정 앞에 버리기 전에는 가정이 구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이 구해졌다 하더라도 복귀역사가 거기 가정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을 몽땅 종족을 위해서 버리게 되면, 다시 말해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 있었다 하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면 둘 다 사는 것입니다.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전도하지 않는다구요. 지금까지 비난이 많았습니다. '뭐 승공연합이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다 하는 것은 전도방법이지 별수있나?' 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일 안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출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하지 못하는 놀음까지도 우리는 하려고 책임지고 몸부림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의 무슨 뭐 어떤 것을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가 이 나라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이 나라의 패권을 잡겠다는 그런 꿈이 있는 게 아니라구요. 세계로 가야, 세계로 가야 된다구요.

미리 알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

자, 그러한 때가 우리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은 때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들이 정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비하는 데 있어서는 울면서 정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가지고 정비해야 된다구요. 개인을 이렇게, 가정은 이렇게, 우리 교회는 이렇게, 대한민국 사람은 이렇게, 정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정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때가 어느날 몇 시라고 하게 되면 그때를 중심삼고 '아버지여! 제가 그때를 알았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소'라고 해 가지고 그때를 맞추어 가지고 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여러 가지 종류예요. 그때를 맞추어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때가 오기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다시 말하면, 그 시간이 올 자리를 찾아 그 시간이 오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때를 바라보면서 미리 준비해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느냐? 그 다음에는 그것도 못 돼 가지고 '아이쿠 아무리 봐도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진정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해 왔는데 당신이 나를 몰라보면 되겠소? 내가 보니까 그렇게 준비해야 할 텐데, 아이구 당신이 원하는 대학원을 나와야 할텐데, 아이구 나 지금 대학교 4학년밖에 못 됐소. 2년 몇 개월을 당신이 기다려 주세요' 하는 이러한 처지의 사람 등,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미리 가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때를 맞추어 가지고 벼락같이 달려오는 사람…. 여러분, 기차시간 있지요? 기차 시간, 그것도 마지막 기차 시간이 되면 말이예요. 큰 역 같은데 가 보게 되면 어떤 녀석은 쓱 가 가지고 차표를 떡 끊어 가지고 제일 좋은 데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를 쪽쪽 피면서 '저 녀석들 왜 저렇게 바빠하노?' 하며 구경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렇게 구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헐레벌떡 뛰어와 땀을 흘리면서 '여보, 여보, 차표 한장 주소' 하는 사람이 있고, 뭐 복닥불이 나 가지고 '아이구, 기차야 고장나라. 고장나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차야 고장나라. 아이고, 기관사야 배가 아파라, 무슨 사고가 나라 아이고' 하며 딱 기차 문전에 오자 마자 기차는 '삐-익' 기적을 울리면서 칙칙푹푹 떠나가는 거예요.

그때서야 '아이고, 내 사위 맞으러 가는데, 내 애인 맞으러 가는데, 내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해야 하는데…' 하는 겁니다. 다 나무아미타불 되는 거라구요. 십년 공부…. 그 때는 1초가 늦어 나무아미타불 되고 만다구요. 1초가, 1초가…. 알겠어요? 1분도 아니예요. 1초가 뭐라구요?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거라구요. 그 1초가 아니면, 1분도 그렇다구요. 일분, 요놈의 1분이 내 팔자를 망칠 줄이야 고 누가 알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여보 하나님도 그렇게 용납이 없어 자기고 뭘 하겠어요? 1초를 못 기다려 줘요, 1초?' 라고 한다고 그게 통해요? 그래 가지고 차를 못 탄 사람이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에게 가서 '내가 사실은 못 가긴 못 갔지만 1초 때문에 못 갔는데 당신 1초하고 내 1초하고 거래합시다'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모든 것이 상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 기다려 주세요' 그게 좋소, 나쁘오? '아이고 하나님, 날 봐서 기다려 주세요' 그게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여러분은 다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도 때로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정을 조금 봐주시지 이럴 수가 있나'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아침 해가 떠올라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이 안 맞으면 이 우주 전체에 큰 사고가 벌어진다구요. 1초씩만 틀어진다면 우주 전체가 수천년 수만년 틀어져 나간다구요.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이 '야야, 바빠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없어요? 1초 연장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입니다.

여러분, 분수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공중에 떠다니다가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그 물방울이 '내가 백두산 천지연 한복판에 떨어지는 물이 되겠다'고 하며 떨어진다 하더라도 딱 복판에 떨어지기란 절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조금 에누리해 가지고 떨어지는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360도면 360가지의 분수령이 있겠지만 복판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건 절대적이라구요. 거기 떨어지기가 쉬워요?

'아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죽게 되었으니 살림보따리를 조금 짊어지고 고향에 가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전부 다 치료해 가지고…' 그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자가 '내 아버지가 죽었으니 장례를 지내고 와서 따르게 하소서' 할 때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겨 둬라'고 했습니다. 그런 심각한 말을 한 것은 다 그런 심정에서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그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될 것이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서 기다릴래요.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저 땀이 여기 코 끝에 달랑달랑해 가지고 '아이고 됐다' 하는 요런 사람이 될래요, 아니면 '아이쿠' 하며 울고 불고 하는 사람이 될래요? 세종류 가운데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떠한 사람이 될래요, 우리 아줌마들? 맨 첫번째가 될래요, 아니면 꼴래미가 될래요? 이거 대답을 해야 말하는 실감이 나지…. 어떠한 사람이 될래요. 어떠한 사람? 「첫번 째와 같은 사람요」 이렇다는 거예요. 큰소리로 해야 대답을 해요. 사람이 왜 그렇게 못났어? 이렇게 척 봐가지고 묻게 될 때 대답 안 할 수 없게 되면 살짝 준비하고 있다가 '첫번이요' 그렇게 세 번만 대답을 하게 되면 얼굴이 잘못 생겼더라도 내가 총각님 구해 줄 수 있다구요. (웃음)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암만 미인이면 뭘해요? 여러분, 첫번 사람이 될래요? 「예」 첫번 사람은 남보다도 서둘러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오늘도 뭐 서울에 홍수가 나 가지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는데, 지금 서둘지 맡고 몇 달 전부터 서둘렀으면 그렇게 많이 피해 안 났을 거라구요. '여보, 장마요, 장마요, 장마요, 장마요' (웃음) 그래 가지고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장마가 져도 '장마야 오너라 구경 좀 하자. 야. 그럴 줄 알았더니 내가 참 잘했지' 하는 거예요. 남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데, 자기는 쓱 제방 뚝에 가 가지고 '준비한 사람은 이렇게 편안하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옥달복달 복닥불이 일지어다' 하며 시를 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이 벌받을 녀석아' 그러겠어요? 그런 녀석이 있다면 '아 저녀석. 풍류적인 사나이구만' 그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야 이 녀석. 잘 생겼네' (웃음) 나라도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바빠요, 바빠! 밤도깨비 낮도깨비 다 됐다구요. 밤에도 안 자고 부시대고 낮에도 그럽니다. 그러니 부시대는 선생님의 마음 맞추기 힘들다구요. '아이쿠, 왜 이렇게 볶아 대노?' 그런다는 거예요. 콩을 볶는데 가만히 놔 두면 다 큰일난다구요. 콩은 볶아 댈수록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콩 볶아 봤어요? 딸랑딸랑 자주 흔들게 되면 그것이 알록달록하게 타지도 않고 노르스름하고 푸르스름한 그 빛대로 맛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콩이 될래요? 콩을 볶는다면 어떤 콩을 만들래요? 한면만 타 가지고 깝데기만 싹 벗겨지는 콩이 되겠어요, 제 맛 다 나는 멋진 콩이 되겠어요? 어떤 콩이 될래요? 「멋진 콩이 되겠습니다」 멋진 콩, 그러니 달랑달랑 볶아야 된다 이겁니다. 요것이 콩 볶는 데 장수다 이겁니다. 그렇다구요. 그러니 기분 나빠서 웃지 말라구요. 기분 좋아서 웃으라구요.

자, 우리 남자들도 첫째 번이 되겠어요, 셋째 번이 되겠어요? 「첫째 번입니다」 첫째 번 될래요? 「예」 그러면 밤에 부시대야 되겠어요, 안 부시대야 되겠어요? 「부시대야 됩니다」 첫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꿈에 닭소리를 듣는다구요. 꿈이 생시와 같은 때도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잠을 자긴 한 10분밖에 안 잤는데, 꿈 가운데 닭소리를 듣고 와다닥 열두 시에 일어나서 아직도 열 시간 남았는데, 열 시간 전부터 기다렸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 이 미친 녀석아, 열 시간 남았는데 잠이나 자지 일어나 가지고 뭘하겠다는 거냐? 자야 할 게 아니냐, 내일 피곤한데'라고 할 때 그 사람 대답이 '하나님, 내일은 얼마나 기쁜 날이예요? 그렇게 열 시간쯤 이상 정성을 들이고 기다리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하는 거예요. 뚝딱똑딱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간이 온다 온다' 하며 열 시간 이전부터 기다려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잠 쿨쿨 자고는 그 시간에 맞춰서 복닥불 나게 준비하면 정성이 미급하기 때문에 열두 시에 일어나서 열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한 잠도 안 자는 거예요. 졸면 사고라구요. 졸면 안 되지만, 졸지 않고 초롱눈으로 기다려 가지고 그 시간에 가서 '저는 이렇게 기다렸소' 하게 되면 하나님도 '오! 그 녀석 나보다도 낫구만' 그럴 수 있다구요. 그 때에 거기서 하나님에게 항거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 내가 틀렸지요? ’하면 '아이고, 네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럴 거라구요. 하나님이 틀렸다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고생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 사람이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고생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다구요. 고생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고생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다는 거예요. 군왕이 '야 이 녀석아, 사흘 동안 쉬라고 했는데 왜 오늘 출근해 가지고 이렇게 야단이야? 사흘 동안 쉬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부시대나, 쉬지?' 하더라도 '당신 암만 그렇게 해보소. 난 사흘 동안 이렇게 나와서 놀지 않고 일하고 싶은데, 왜 그래, 왜?' 하고 반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이 녀석 반말한다' 그러면 '그렇다. 이 녀석아' (웃음) 했다고 해서 그를 칠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그럴수록 ‘내게 딸이 있으면 저걸 사위삼을 건데. 아이구 아들이 있으면 저걸 며느리삼을 건데’그런 생각하게 돼 있지, 나한테서 멀리 가라고 그렇게 하겠어요? 어때요? 충신이 되더라도 한 바퀴 돌아 가지고 동서남북을 통달해 가지고 중앙에 들어가는 그런 충신이 돼야 되겠어요, '동쪽에서 충신이 됐다. 이제는 충신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해야지, 나라님 나를 위해 주소' 하는 요런 충신이 될래요? 동서남북을 돌아 가지고, 중앙에 들어와 가지고 충신들이 싸움하겠으면 싸움하고 그저 잠이나 쿨쿨 잘 수 있는 그런 충신이 될래요? 이런 충신은 왕충신이 되는 거라구요. 무슨 딸인지 알겠어요?

공적인 일을 하는 데에는 제재하는 법이 없어

그래서 매도 먼저 맞고 고생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피할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에 대해서도 문선생이 욕심이 많아요. 물론 내가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가까이하지 말라구요. (웃음) 욕심 많은 사람 만나 봐야 이익 되는 것이 있나요? 그렇지만 그 욕심 많은 양반이 자기 남편이 될 때에, 나는 욕심이 없어도 어떻게 돼요? 그의 여편네 됐을 때는 암만 욕심이 없더라도 그 욕심 많은 남자의 덕을 보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럴 수도 있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욕심이 많은데, 그건 무슨 욕심이냐? 그건 문선생을 위한 욕심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한 욕심이요, 하나님을 위한 욕심입니다. 하나님보다 더한 욕심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 하나님까지도 해방시키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을 해방시켜 놓고 만약에 하나님이 장가갈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내가 '하나님을 장가 보내 주었으면 좋겠다'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분 나쁘겠어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기분 나쁘겠어요?

저 나이 많은 80노인도 마찬가지예요. 혼자 사는 홀아비에게 '아이고 저기 이웃 동네에 참 미인인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있던데, 그 아주머니를 한번 중매서리까' 하면 '어-, 그래' 하면서 흥미진진해 한다구요. (웃음) 안 그래요?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 좋게 해주고, 어머니 아버지 좋게 해주고, 군왕을 좋게 해주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누가 마다하겠느냐 말입니다.

자,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나님 장가 보내겠다고 진짜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이단입니다. 성경에 그 말 없지요? 성경에 없다구요. 그런 말이 성경에 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와 싸움하지 않게요? 없다구, 없다구요. 없으니까, 미급이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지는 겁니다. 지게 마련이라구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어느 사람을 취하겠어요? 하나님 좋게 해주겠다는데….

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해방하자, 예수님을 해방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한테 은혜받자고요? 이 도적놈들! 보라구요. 기도할때 '하나님이시여, 우리 아들 죄지어 가지고 지금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 감옥문을 터 주소. 옛날 사도교회시대는 얼마나 이적기사가 많았소. 옥문을 열어 베드로도 나오게 만들었는데, 능력 있는 하나님이 지금은 왜 가만 둡니까? 아이고 하나님' 그렇게 하게 돼 있어요?

이래 놓고는 그거 안 해준다고 해서 '하나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없긴 왜 없어요? 덜 된 녀석이기 때문에 안 해주지, 그걸 해주었다간 어떻게 되겠어요? 전부 다 도적놈은 혼자 다 되겠다 이겁니다. 나라를 말아 먹고 세계를 망칠 패가 되겠는데 그걸 해주겠어요? 안 해준다구요. 베드로 같은 양반들은 자기들 위해 그렇게 갇힌 것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영원히 남아질 공익을 위해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정성들인 그 도수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협조해 주려니, 그를 감옥에 가두어 놔 가지고는 그 도수를 못 채우겠으니 그 도수를 채워 주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나쁜 것은 하나님, 나쁜 것은 예수….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한 번 도와주었는데, 또 와서 '도와 달라' 해서 또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도와줬는데, 또 와서 '야 이 녀석아, 또 도와 달라' 해서 세 번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또 와서 도와 달라면 도와주겠어요? 한 번 도와줬을 때 절을 한 번 했으면, 두 번 도와줬을때는 절을 열번 백번 해야 되고, 세번 도와줬을때는 천번 만번 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회개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교회 들어갈 때 회개하고, 기도할 때에도 회개하고, 나와서는 싸움한다면…. 그놈의 교회는 망해야 돼요, 안 망하면 벼락을 쳐서라도 망해야 된다구요. 이런 교회를 망하게 만들려고 내가 아예 결심하고 나온 사람이라구요. 이런 교회는 망해야 된다구요.

한 번 도와줬으면 다음에는 와 가지고…. 사람이 체면이 있지, 세 번씩이나 잘못해 가지고도 '또 도와주소' 그런 건 인간끼리도 그렇게 못할 텐데 매일같이 죄를 부지기수로 짓고도 '하나님 별수 있소? 인간의 사정이 이렇습니다. 아이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요?' 하면 시시하다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런 예수라면 시시해서 믿지 않아요. 믿지 말라구요. 그런 시시한 예수는.

인간도 한번 약속을 하면 지키게 마련인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니, 그럴 수밖에 없다니…. 회개를 한 번 했으면 뼛골이 녹아지고, 두 번 했으면 얼굴을 못들고, 세 번 했으면 교회도 못가는 거라구요. 산비탈에 거꾸로 엎디어 가지고 울 수밖에 없다구요. 천년 만년 통곡하고, 하나님을 부르지 못하고 통곡해야 할 텐데 뻔뻔스런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배때기를 째 가지고 창자를 꺼내 가지고 전부 다 독수리 밥이 되게 하더라도…. 그런 예수라면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 하나님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신세지웠나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 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말하지요? 새끼들 뭐 한 7,8명 가지고도 부모가 '아이쿠, 자식은 가지인데' 하며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그런 타령을 하고 있다구요. 그런데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 이 30억 인류가 매일같이 전부 다 '하나님, 나 살려 주소. 나 못살겠으니 살려 주소' 하는 것입니다. 한번쯤은 봐줄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기가 막힐 거라구요. 맨 처음부터 지금까지 도와주었는데, 끝날에 가서도 그렇게 해 가지고 될 줄 알아요? 아니라구요. 끝날에는 달라진다는 거예요 무자비한 공판을 내려야 합니다. 비수로 짤라 버려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정이 통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외면하니까 끝날이 되면 모든 것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잎을 좋아하는 패들은 떨어지고, 가는 가지를 좋아하는 패들도 떨어지고, 동삼삭(冬三朔)이 되면 생명의 근원인 뿌리만 맨 복판이 남아지는 것이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 교인들 말이예요. 나는 문선생이란 이름 가지고 내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위해서 기도 안 하는 거라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형제들도 있다구요. 형님이 나를 위해서는 지극히 정성을 들인, 그런 형님이라구요. 그건 가인 복귀역사에 있어서 이미 나면서 복귀한 거예요.

8·15 해방될 것도 다 알았고, 자기가 병이 났으면 기도해서 영적 구원받아 가지고 남이 못 고치는 병도 고친 그런 양반이라구요. 그런 양반을 대해 가지고 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얘기를 한 마디 안 했다구요. 원리 얘기를 한마디 안 했다구요. 매정한 길이라구요. 자기 동생을 위해서는 생명을 각오해 가지고 죽음길도 개의치 않고 움직이던 형님을 놓고, '아, 하나님 우리 형님이 어떻게 됐어요? 조카들 어떻게 됐어요? 묻지 않았다구요. 지금 인민군대에 들어가 있는지 다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못 다한 데에 있어서는, 그 책임을 하기 위해 세계까지 갔다가 돌아와 가지고 자기집에 와야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기의 출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누더기 보따리 끌며 이러고 저러고 다니게 돼 있지 않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내 갈길, 요게 문선생이 가는 길이라구요. 알겠어요? 알겠나, 이 젊은 녀석들? 「예」 알겠어요? 「예!」

그렇다구요. 아까 말한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은 어디일 것이냐? 이렇게 볼 때에, 때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구요. 다가왔다구요. 틀림없이 다가왔다구요. 선생님이 말하던 역사적인 종말시대는 우리의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가 넘겨다 보면 담 너머로 훤히 다 보이게끔 와 있으며, 먼동이 아니라 아침 햇빛이 올라오는 때가 됐다구요. 그런데 그게 안 느껴져요? 여러분, 안 느껴요, 느껴요? 느끼지요? 「예」

끝날에 하나님의 내적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이 돼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바쁜 때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도 그 아침이 되게 되면 관심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공판 시간이 끝나면 잔치가 시작될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내적 잔치 준비를 할 수 있는 이런 때가 됐다는 겁니다. 하늘편의 모든 치다꺼리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땀을 흘리는 사람은 역사적인 땀의 열매를 맺는 것이요, 거기에서 마음을 푼 사람은 역사적인 수난의 한의 마음을 전부 다 향취로써 꽃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 잔치를 준비할 수 있는 동참자는, 그 잔치 시간을 기다리는 그런 사람보다도 사람들을 맞기 위해 하늘편에 선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예요? 안 그래요?

만약에 차표를 살 사람이 뛰어오게 될 때 어느 누가 차표를 떡 사 가지고 있다가 '당신 이렇게 올 줄 알았소' 한다면, 다시 말하면 차표 파는 곳의 문이 잠겨서 차표는 살 길이 없는데, 어느 누가 그걸 알아 가지고 한 장 사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어요? 그러니 앞으로 올 사람들을 위해서 치다꺼리를 하고, 혹은 그 마중을 나가 가지고, 바쁘니까 이제 1초 늦게 되었으니 1초를 재촉하라고, 빨리빨리 가라고 이렇게 독려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볼 때 '에이 녀석아, 너는 차표를 다 사 놓고 했으니 여기서 그냥 쉬어도 될 텐데 뭐하러 바쁘게 나가 가지고 길잡이 하겠다고 이렇게 고생하는 거야, 이 못난 녀석아!' 그러겠어요? 자기 분수 이상의 것을 거기에 희생하고 소모하게 될 때에 그 소모는 도리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친구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주인의 입장에서 주인의 자리까지도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은 그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 나라의 잔치 준비하는 사람 될래요, 아니면 그 잔치에 도착해서 '아이고 잘 됐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고. 어쩌면 이렇게 딱 적시에 왔을까. 똑딱 하기 전에, 똑 할 때 도착했으니 나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없지' 그런 사람이 될래요? 자, 시간 맞추어 오는 사람하고 시간 전에 오는 사람하고 어느 게 나아요? 「시간 전에 오는 사람이 낫습니다」 시간 전에 와 가지고, 그가 올 길목에 나아가 '어디로 걸어오나' 쓱 보면서 한 10분쯤 먼저 와 가지고 '아, 지금 오세요. 당신이 올 때에는 이 길로 올 것 같았고, 당신을 너무 보고 싶고 또 당신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 내가 여기 와 있소' 할 때 '여보 바쁜 생활을 하면서 왜 당신이 10분 손해 봐요? 난 그런 사람 싫소' 그러는 사람 있어요? 10분 먼저 와 가지고 쓰윽 맞아주며 '당신을 미리 만나고 싶어서 길가에서라도 만날 준비를 하고 왔소. 당신이 이렇게 찾아왔소? 미안하오' 할 때 ‘에이 이 녀석아,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10분이면 나라가 변하고 다 이럴 텐데 이 녀석아, 왜 왔어?’ 그래요? '아이고 미안해요' 그러겠지요? 그 사람을 위해 주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완전히 회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에는 복닥불이 나 가지고 '아이고 탕감복귀해야지. 3년노정 가야지, 아이쿠 3년이야. 3년! 이제 몇 개월 남았구나. 아이고 어서 가라. 어서 가'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걸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러다가 떨어지는 사람이 되겠어요? 세 종류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될래요? 첫째 번 될래요, 둘째 번 될래요? 「첫째 번이요」 둘째 번은 안 되겠다는 말이예요? 「예」 (웃음) 둘째 번 되는 사람도 있어야지, 전부 다 일등될 수 있겠어요? 이등 짜리도 있어야지…. 「없어도 좋아요」

그럴 때는, 하나님도 이등이 필요하게 되면 '야 이등은 네가 탔다' 그다음에 '삼등도 네가 탔다'고 해주면 '일등한테 일등 이등 삼등까지 다 주겠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건을 대신 세워 줘 가지고 '이등도 네가 했다. 삼등도 네가 했다' 할 수도 있다구요. 안 그래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하나님이 찾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

자,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도달하지 못한 사람까지도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구요. 하나님의 마음에만 미치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만 기쁘게 할 수 있게 된다면, 놓친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가망성도 있을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가만 보니까 요 시간으로 딱 짜르게 되면 하나님이 열 사람밖에 못 구할 텐데, 10분 연장할 때는 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하게 되면 하나님도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기다리고 싶겠어요? 기다리고 싶을 겁니다

기다리고 싶긴 싶은데, 하나님 자신이 정해 놨다가 자신이 연장할 수 있어요? 그럴 때는 하나님도 마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알게끔, 이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하나님, 10분만 연장이요, 연장이요, 연장이요…' 하며 몸부림치는 한 사람이라도 있게 될 때는 10분을 연장해서 만 명을 구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이 연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기다려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세계 앞에 행복의 터전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엔 '아이고 하나님, 내가 시간이 없사오니 기다려 주시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까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더 추가한 게 됩니다. 이렇게 연장 시킬 수 있게끔 하나님의 공법은 연장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공법이 인간을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한 것이기에 온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그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기다리고 싶겠어요? 응?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기다리고 싶겠습니다」

그러려면 제 시간에 가서 기다리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도, 이 사람은 제일 열심히 가서 기다려야…. 통일교회는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서 '아버지여, 기다려 주세요'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명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욕심이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고 이거 통일교회 가는 길 잊어버리면 되겠소? 내가 그래도 몇 해 동안 통일교회 믿었는데, 내가 그 시간에 맞게끔 들어가야 할 텐데 미급하오니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 엇갈리는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래요? 이 세계가 망운지중(亡運正中)의 절벽에 부딪쳐 최후의 운명의 판가리를 해야 할 이 차제에 있어서 하나님편에 서 가지고 공의의 법도를 장악하시는 권위의 아버지이심이 틀림없기에 그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시여! 좀 기다려 줄 수 없습니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대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러하고 싶으신 사정이 있기 때문에 기다려 주세요'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에게 '야 이 녀석아, 좀 더 열심히 해라. 야 이 녀석아, 좀더 범위를 넓혀 가지고 갈구해라' 하는 소원의 일념이 있게 될 때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진 자리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맞게 된다면 하나님도 사탄 앞에 위신을 세우고 '오냐, 너를 봐서라도 이 망할 세계를 놓고 10분이고 10년이고 기다려 보자'고 할 것입니다. 욥기 같은 데 보면 있지요?

그래 가지고 10년 동안 기다렸는데, 이 사람이 그런 걸 알았으면 그저 밤이나 낮이나 안간힘을 다해서…. 하나님도 그 사람을 보게 될 때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되게 되었는데, 10년 역사가 다 지나가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하나님이 만약에 불을 내린다면 하나님이 회개해야 돼요. ‘야 아무개야, 나 하나님은 네 앞에 면목이 없구나. 그렇지만 공의의 법도를 따라가려니 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하며 하나님이 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는 사람까지 있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어때요?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럴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심판은 누구 때문에 하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서 심판하겠다. 너를 더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사탄도 항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가 들이맞더라도 항의할 수 없고 '그래야지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공법은 '너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역사적인 모든 것을 불태웠지만, 너 하나의 수고를 막기 위해서 심판을 안 내릴 수 없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사랑으로 심판의 목적을 전부 자기에게 귀결시킬 수 있는 그런 단 하나의 길도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심판까지도 조정할 수 있는 동시에, 심판의 목적까지도 자기를 위해서 할 수 있게 되면 심판하고 난 하나님은 어디로 갈 것이냐? 그 다음엔 찾아 돌아오지 말래도 내가 북극에 가면 북극으로 찾아올 것이고, 남극에 가더라도‘너 있는 데 내가 안 갈 수 있느냐?’ 하며 하나님이 따라간다구요. 하나님이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역사시대의 종점에서 심판이 끝난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는 형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이라도 만나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종말심판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참사람의 모습이라고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사람을 꿈꾸며 그러한 사람을 향해 가자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리하여 밤이나 낮이나 '세월아, 네월아 가고 또 가라. 청춘시대야 지나가고 노년시대야 와라.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가다가 다 못 가거들랑 천년 사연을 품고 기도할 텐데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세계를 심판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은 천년 심판의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곳을 바라보고 가 보자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찾는다면 그 자리까지 바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세계와 인류를 위해 기다려 주세요 하는 통일교인이 되자

자, 그런 사람하고 '아이고 내 책임을 못 했으니 하나님 나 망합니다. 아이쿠 하나님' 하며 치마끈 두루마기끈 할 것 없이 그저 붙들고 '이왕이면 날 살려 주고 가소'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연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요? 어느 사람이 되겠어요?

자기 자체가 뒤넘이쳐 가지고 자기 위신을 가리지 못하고 바빠 허덕이는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하겠어요? 그건 죽어도 타락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음이다 이겁니다. 망하더라도 타락한 인간으로서, 역사적인 수고를 하나님 앞에 끼쳐 온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음이 아니냐 이겁니다. 차라리 내가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는 것보다도 '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대로 성취하시옵소서. 내 무슨 말을 하오리까' 하며 달갑게 받을 수 있는, 변명 없이 겸손히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도리어 죽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입장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때가 얼마나 조급하고 시급한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길과 여러분이 가는 길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통일교회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꿈에라도 그곳을 한번 가 봤으면, 내가 60이 되더라도 그곳을 소원삼고 가 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여, 뜻을 중심삼고 기다려 주시옵소서. 빨리 오는 것도 좋겠지만,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생길을 연장하더라도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 사람 말고 '아이고, 내가 망하겠으니 기다려 주소서' 하는 사람은 천당의 최고 자리가 아니라 지옥의 최고 자리에 갈 것입니다. 이 두 경계내에 선 사람이 통일교회 무리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밥을 먹을 때는 하나님 앞에 미안한 생각을 해야 하고, 잠을 자려고 할 때도 하나님 앞에 미안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왔다갔다 왕래하는 데에 있어서는 성공한 결과를 갖지 못한, 보고거리를 갖지 못한 그런 걸음을 죽어도 못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한 하루를 붙들고 천년의 보고 자료를 완성시킬 수 있는 한 시간으로서의 사연을 걸고 투쟁하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갖고 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자기를 중심삼고 '기다려 주옵소서' 하는 그런 사탄의 입장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모든 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운명길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데, 여러분이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발 여러분에게 바라건대 미비한 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는 그것은 안 됩니다. 그건 될 수가 없다구요. 그건 개인의 사정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을 기다려 준다면…. 한 사람 기다려 주고 그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 이렇게 닐리리 동동으로 해 가지고 기다릴 수는 없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때를 세워 가지고 그것을 결정지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니 그것이 연장될 수 있는 길은 여러분이 기다려 달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통해서 대신 어려움을 맞겠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나라의 망운도 방비할 수 있고, 한국의 망운도 방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자그마치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알아 주지 않더라도 그런 면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역사적이며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으로서의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고, 지금 남북이 엇갈린 자리에서 비로소 상봉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나라를 위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문제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비판해 보아야 되겠어요. 비판해 보아야 되겠다구요. 다시 한 번 가려 가지고 현재의 자기 위치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여러분이 알기 바래요.

그래서 나쁜 의미의 '기다려 주세요' 하는 입장이 되지 말고, 좋은 의미에서 '기다려 주세요'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고,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틀림없이 망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한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할 수 없다 이거예요. 또한 망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딴 곳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우리를 키워서라도 그것을 구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아시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하루가 가거들랑 당신 앞에 효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한 달을 지내거들랑 당신 앞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2년, '통일전선 수호'라는 이 엄청난 과제를 두고 그것을 표어로 세웠던 것을 과연 말 그대로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질 자가 이 천지에 저희들밖에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은 불쌍한 분임을 압니다.

아버지, 당신의 가정을 지킬 사람이 어디 있으며, 당신의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지킬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땅 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몰리고 쫓김받고 시들어져 가는 이 무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끝까지 참아 남아지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과 더불어 오늘도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도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참음의 역사를 아직까지 걷어치우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또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천하에 그 누가 자기가 자랐던 고향 땅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고향을 떠난 그 시간부터 황량한 벌판을 헤매어 나오다가 머무른 자리가 통일교회 이 자리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나가기 위해 모인 무리들이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는 무리이었습니다.

이들이 정착해야 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터전, 당신이 축복해 준 그 땅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남북이 통일된 그 땅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기필코 이를 쟁취하지 않으면 저희들은 망해야 할 운명에 처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잃어버리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취할 수 없는 사명을 짊어진 것이 저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거룩하신 마음을 따라 당신의 소원을 따라 당신이 슬퍼하거들랑 저희도 슬퍼하기를 바라고, 당신이 통곡하거들랑 저희들도 그 자리에 들어가 통곡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만은 틀림없습니다. 부모의 거느림을 받는 식구는 부모가 기쁨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그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아무리 자기 개인이 기뻐하더라도 부모의 얼굴에 슬픔이 생기게 될 때 아는 그 개인은 부모의 슬픔 앞에 점령당하는 것이 이치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저희들이 아무리 행복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슬픈 역사적 전망을 앞에 놓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프므로 저희들이 슬프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슬픈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불효의 자리에 서는 것이요, 불충의 자리에 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의 무리는 밥이 없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요, 누구만큼 외적인 호화찬란한 생활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의 비참을 막고 역사적인 비참을 막기 위한 것이요, 우리 후손의 비참함을 막기 위해 대신 땀을 흘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수난길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손들이 죽을 자리를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의 수난은 으례 있어야 할 수난으로 맞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승리의 터전을 남기기 위해서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당신 앞에 바라는 것은 '기다려 주시옵소서' 이제 통일교회와 나는 조급한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는 발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여야 할 책임, 세계라는 문이 열려 가지고 직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손을 대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적 자원인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입장에서 이 일을 책임져야 되겠기 때문에 미친 사람같이 당신의 동정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당신의 동정이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오늘까지 통일교단을 이끌어 나온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으로 하여금 슬픈 눈물을 흘리며 저주와 더불어 돌아서게 하는 그런 통일교회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가 막히고 딱하고 억울하더라도 당신의 손을 붙들고 나는 머무를 수 없는 이 자리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게 되면 여기는 소망의 터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요. 민족과 세계가 다시 희생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 길을 여는 것이 저희들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쌍한 통일교회라도 좋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비난하는 통일교회라도 좋습니다. 이 나라가 핍박하는 통일교회라도 좋고, 세계 만민이 모진 화살을 퍼붓는 통일교회라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버릴 수 없는 통일교회가 돼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 그런 통일교회 교인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당신만이 환영하는 통일교회 교인이면 그만입니다. 이것을 바라는 마음이 일편단심 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충절의 꽃을 피우고 당신 앞에 분향의 향기를 바쳐 드리고, 몽땅 당신의 기억에 남기고 갈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다는, 그러한 생애의 길을 더듬어 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철모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고해 보게 될 때, 사연이 많습니다. 그 사연은 다 구름같이 사라져 버리더라도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당신의 뼛골에 기억돼 있는,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슬픈 사실들은 저희가 기억하게 하소서. 그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기 때문에 내 슬픔을 잊어버리더라도 당신의 그 슬픈 모습을 이어받을 수 있고, 당신의 혈육을 이어받고, 당신의 사정을 이어받고, 당신의 소망의 세계를 이어받는 것만이 통일교회 신자들의 절대적인 소원이오니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여, 저희들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의 운명을 당신이 불쌍히 보시옵소서'라고 저희들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미급한 자리에서 당신 앞에 개인의 염려를 위해 기다려 달라는 기도를 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그마치 통일교회 교인은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고, 세계의 운명을 가로막고 '나를 쳐 주시오' 하던 것이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의 처절한 사정이 아니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며 자기는 망하더라도 후세에 남길 수 있는 미래의 뜻을 붙들고 쓰러져 가던 예수의 심정을 저희들이 동경하며 그 자리를 지켜 갈 줄 아는 통일교회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비참하게 살고 비참하게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디 후손들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절대지조를 끝까지 남기고 갈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하늘이여, 이제 8월 30일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북이 교류하는 시간이 가까와 오고 있사오니, 거기에 하늘의 복을 가져다 주시옵소서. 겨울 동산에 봄의 운세를 미치게 할 수 있는 그러한 하나의 교차점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의 기점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벨이 가인을 찾아가듯이, 이제 찾아가는 모든…. 위에서 찾아가고 아래서도 찾아가는 것이 원리적 방향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행여 수단과 재간을 가지고 찾아가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서, 이번 이 기간을 통하여 세계가 주목하고 있사오니, 이 나라 이 민족의 자주성을 자랑하고도 남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트여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저희들이 바라는 때를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당신이 소원하시는 수난길을 넘어서서 승리의 한 터전을 이 나라 이 민족이 길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의 날, 통일의 날이 오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로 갈 수 있는 이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으시어서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안식의 노정을 승리와 영광과 자랑의 날로 걸음으로써 만민 앞에 칭송하고 자랑할 수 있는 민족정기를 남기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당신의 어린 자녀들의 그 가슴에 새로운 길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고, 생애노정 위에 결의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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