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63권 1편
우리의 목적 (훈독본) 9750
1972.10.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말 씀
우리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 단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교가 찾아 나가는 목적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고 또 그것을 찾아 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들이 합하여 가지고 참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나왔습니다.
그 종교가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길을 통해야만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귀결될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종교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많은 종파가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종파들이 생기게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보다 선한 목적을 다짐 지우고 보다 선한 목적을 현실적으로 자기들의 종파권내에서 성사시키기 위한 내적인 요구에서부터 출발한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파간에 분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전진하고 있는 입장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을 높여서 혁신하기 위한 분쟁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의 목적, 혹은 종교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은 절대적인 신을 중심삼고 출발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신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목적이요, 하나의 결과를 다짐짓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목적 지향은 한 방향으로 해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종교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떻게 해서라도 빠른 시일내에 그 목적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경주장에 나선 선수들을 보더라도 출발 당시에서부터 목적점에 도달할 때까지 달리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 달리는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요 하나의 싸움이로되, 달리면서 옆을 보면서 싸운다면 그 두 사람은 그 경주마당에서 달리는 자로서의 목적과 사명을 올바로 지니고서 달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싸움에 있어서는 그 출발에서부터 한 방향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싸우며 경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되, 자기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옆에 뛰는 사람은 어떻고 앞에 뛰는 사람은 어떻고 하는 입장에서 분쟁을 한다면 그는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싸우는 것은 자기의 목적과 더불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횡적인 싸움이나 투쟁은 모두 소모를 의미하는 것이요. 전진하는 힘을 감퇴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어떠한 목적을 딱 결정했으면 그 목적을 중심삼고 밤이나 낮이나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 하고, 일체의 힘과 활동의 방향을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목적과의 거리를 점점점점 단축할 수 있으되, 큰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 횡적인 면을 연결 시킨 환경에서 투쟁하고 싸우려는 내용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원래 정했던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일체를 투입해라
이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단 하나의 길로 전진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인간에게 그런 길을 반드시 명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대해 가지고는 모든 정성을 다 들이라고 했던 것이요. 일체를 다 봉헌시키고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도 남지 않게 전체를 투입해서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치라고 권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단 한번만으로 성사시켜야 하는 가장 귀한 어떠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대하게 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심각한 입장에서 그 목적을 대하게 할 것이냐,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 목적을 대하는 인간에게 그 목적을 이겨낼 수 있고 그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이상의 각오와 힘과 내용을 가지고 결의시키려 할 것은 두말할 바가 없습니다.
만일에 가는 도상에서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일, 한번에 성사해야 할 목적의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목적의 길을 책임지고 나선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든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심각한 입장에서 권고를 할 것이냐, 곁눈도 팔지 못하게 할 것은 사실이요. 밤에도 쉬지 말고 가라고 권고할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일체의 욕망도 전부 끊어 버리고 단지 이것만 목적으로 삼고 가라고 권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목적은 가장 심각한 목적이 아니겠느냐? 여러분의 일생은 가다가 어긋났다고 다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루를 보냈으면 그 하루는 영원히 나와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일년을 보냈으면 그 일년은 영원히 나와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행동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길 외에 없는 목적을 대한 나 자신이 일년을 통해서 전진이냐 후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는 전진이다' 하는 그 전진이 얼마만큼의 전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그 일년의 가치를 측정할 것이 아니냐? 혹은 일생을 통해서 청년시대면 청년시대, 장년시대면 장년시대에 얼마만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을 향해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을 단시간내에 성취하고 싶은 것은 어느누구나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모든 가치는 결정된다
그런데 그 가는 데 있어서 다 일렬로 서더라도 목적에 귀결될 수 있는 것은 한 점입니다. 그 목적이 바라는 상대적 존재를 대하는 데는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중심 노선을 중심삼고 그 주위에 수많은 길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목적과 목적이 찾고 있는 대상이 만날 수 있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내가 딴 곳에서 딴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의 방향도 역시 직선의 길을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직선을 향해서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상대적인 일을 매일매일 접하게 될 때는 그것은 기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은 기쁘더라도 최후의 목적에 상충되게 되면 그 상충되는 가치 추구 앞에 우리는 패자의 서러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좋고 나쁘고 행복하고, 운이 좋았느니 나빴느니 하는 모든 말들은 암암리에 인생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짓는 말이지, 내 개인적인 하루하루의 기분에 따라, 혹은 매일매일 다른 입장에서 자기의 환경 여건에 따라 우연한 인연에서 찾아진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암암리에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자기가 목적하는 내적인 인연을 따라 가지고 좋고 나쁜 것이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이 없이 좋고 나쁘다고 하게 되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쁜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
인륜과 천륜이 엇갈리게 될 때는 천륜을 따라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천륜을 제쳐놓고 인륜만을 위해서 세계로 나섰다 할진대는 그 목적점에서 또다시 천륜을 향한 길이 뒤로 돌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돌아가야 됩니다. 점점점점 목적점에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그 목적의 가치가 가중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점 목적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직행뿐이지 동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결승점을 향해서 달리는 그 사람은 그 결승점에 대해서 일체의 생각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냐, 모든 동작은 그 결승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집결되는 것이 아니냐, 목적의 때가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일체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성을 들인다면 결승점을 바라보는 최후의 순간과 같은 마음으로 출발과 동시에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긴장한 자리에서 생애를 통해 투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등은 못 했더라도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의 목적 달성은 희생과 사랑으로
선의 하나님은 희생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상이한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정성의 측정에 의해 가치가 결정 된다
마라톤 경기에 나간 선수들이 달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이 들어요? 목적을 앞에 놓고 목적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꼴찌를 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뛰어 가지고 결승점까지 와서 쓰러져 죽었다면, 그는 일등은 못 하더라도 그 경기 종목에서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일등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얼마만큼 있는 정성과 생명을 그 길에 투입시켰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정성의 측정에 의하여 가치 결정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기 종목을 통해서도 여실히 알 수 있거들랑 우리의 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등은 못 했을망정 일등한 사람의 몇십 배의 정성을 들였다 하게 된다면 도리어 역사상에 전통으로 남기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종교의 길은 그러한 내용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빨리는 못 가지만 맨 꼴찌가 되더라도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서 전체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면서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합니다.
이제 종교는 하늘 종교와 천륜을 대표한 종교로 혁신돼야
역사 이래 종교가 추구한 목적이 그 완성을 보게 될 때는 인륜의 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륜 완성의 기반을 가지고 천륜을 출발하게 될 때 인간은 영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영원이냐? 하늘이 영원이기 때문에 거기서 영원히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륜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데서만이 영원적인 생명이라든가 영원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욕망이 자기에게 걸려 있는 거라구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자기 중심삼고 편안한 데에 걸려 있는 거라구요. 그러나 편안한 자리에 있으면 망하기 때문에 전부 다 반대로 고통의 자리에 바꿔 놓는 것입니다. 종교의 본질이 그렇게 해서 출발했어요. 그러한 과정을 타파하는 것이 종교가 역사시대에 싸워 나오는 전쟁노정이라구요.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는 어느 주권시대에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희생 하는 전통을 본받아서 나라가 반대할 때 사체를 쌓아 놓더라도 그 반대가 끝날 때까지 싸워서 남아진 무리가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 종교가 된 것이 아니냐, 그런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가지고 세계적 종교가 된 것이 아니냐.
이제는 세계적 종교보다도 차원 높은 하늘 종교, 즉 인륜을 대표한 종교보다도 천륜을 대표한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혁신해야 됩니다. 전세계의 기독교까지도 전부 다 불살라 놓고 고차원적인 것을 위해서 그야말로 일시에 전세계가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갖지 않고는 새로운 천륜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그 새로운 역사적 기원을 다시 이 인류 앞에, 천륜을 대신하여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있다면 재림사상으로 남겨질 사상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걸 바라보게 될 때 보따리를 가지면 가질수록 사고뭉치라구요.
사랑의 사상을 무장해야
우리는 사랑의 사상을 무장해야 합니다. '상대적 환경과 화합하여 하나되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상대적 기준을 이루자. 즉,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서 보다 높은 부모를 맞이하자' 그 사상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목적은 천주주의
최후에는 공산당 이상 끈기를 가지고, 그 공산당이 세계를 제패한다면 우리는 하늘땅을 제패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세계에서는 세계 제패를 들고 나오지만, 우리는 천주주의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목적하는 바가 공산당의 세계 제패가 아니라구요. 하늘땅, 영계의 우리 조상들까지 전부 다 자손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아담 해와,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우리의 맨 말단 손자로 만들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이라구요.
할아버지가 손자 되는 때가 되기 때문에, 천지개벽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천지개벽이 뭐냐?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되고 손자가 손자 되면 그게 무슨 천지개벽이예요? 꼴래미가 일등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을 반대로 돌려 놓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기성교회를 반대로 돌려 놓아야 됩니다.
보고 싶은 훈련을 하고 가고 싶은 훈련을 해라
창조이상세계를 얼마나 보고 싶어요? 아무리 옆에 대포알이 떨어지더라도 그걸 듣지 못하고 잊어버릴 듯이 그렇게 심각한 자리에서 보고 싶으냐?
하나님의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가치이니만큼 최고의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숭배할 수 있는 이상세계라면, 또 그것이 그냥 그대로 가서 건드릴 수 없는 목적체라면 하나님 자신도 심각하게 정성들여서 그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가려면 보고 싶어해야 돼요.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가는 거예요. 보고 싶은 훈련을 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는 가고 싶은 훈련을 해야 돼요.
보고 싶은 곳을 가려면 모든 것을 제사할 수 있어야
그런데 보고 싶은 곳을 가는데 나를 주장해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가느냐? 보고 싶은 곳을 위하여 가는 거라구요.
사람이 성공하는 비결은 뭐냐? 어떤 목적을 대해 가지고 어디든지 가고 싶다하는 일체의 감정을 통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을 빨리 해요. 빨리 만나는 거라구요. 만약 못 만난다면 꿈에서라도 만나는 거예요. 그 이상세계를 만약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게 된다면 고생은 해야 되겠지만 꿈 가운데서 만날 때마다 더 심각하게 대하면 눈을 뜨고도 다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보고 싶어해야 되느냐? 자기 아들을 잡아서 제사할수 있어야 되고, 자기 여편네를 잡아서 제사할 수 있어야 되고, 자기 부모도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씩보다는 부모와 아내와 아들딸을 한꺼번에 잡아서 제사할 수 있는 성의를 가지고 하지 않고는 그곳까지는 갈 수 없는 거예요. 왜 그러냐? 부모는 조상이요. 부부는 상대요. 자식들은 후계자입니다. 그러니 조상과 상대와 후계자를 전부 다 일시에 잡아서 둘로 갈라 놓지 않고는, 가른 자를 하나는 오른발로 밟고 다른 하나는 왼발로 밟고 넘어서기 전에는 이상세계가 못 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에 독자로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 세상적으로 보면 그런 미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런 심정의 내용을 두고 볼 때 정당한 일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랑 아래 서로가 하나돼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움에 사무쳐 가지고 '하나님이 어디 어디 있다' 하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어디든지 개의치 않고 국경을 지나서도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행동을 해서 찾아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곳이 하늘도 통하고, 가고 싶은 곳이 하늘과 통하고, 살고 싶은 곳이 하늘과 통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화합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만 창조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지상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사랑의 경쟁을 해야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천주주의라는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는 그곳 까지 가기 위해서,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있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그 세계를 위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그네 신세라구요. 나그네에게 집을 줘요? 우리가 그런 입장에 있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길이니 이것을 어떻게 단축시키는냐? 투쟁을 하더라도 전진하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전진하는 데 있어서는 서로를 위해야 됩니다.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횡적으로 싸워요? 그것은 좋지 않은 거라구요.
'네가 하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난 더 사랑해야겠다' 해야 돼요. 여기에 대해서 옆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사탄 중의 사탄입니다. 사탄은 그런 자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러면 남편이 사탄이요. 부모가 그러면 부모가 사탄입니다. 그것은 옆으로 싸우자는 것이요. 옆으로 운전해 가지고 못 가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상대했다가는 못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선전하지 않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선전하지 않고 자력으로 가는 것입니다. 달리는 과정에서 알아주면 알아줄수록 그것이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응원을 받다가 꼴등이 되면 면목이 없어집니다.
모든 시련을 극복해야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은 '교파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국가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남북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세계의 시련도 극복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포위망에 휩쓸려 들어가는 이 권을 어떻게 극복하여서 민족의 자주성을 세워 가지고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도적인 판도를 확대시키느냐, 이것을 하기 위해서 천신만고하고 남들이 잠잘 때 준비해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통일교인들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모든 것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의 창조이상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선 우리 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은 밥을 먹어도 그 목적을 위하는 데서 밥을 먹어야 돼요. 하나님 앞에 딴 것을 중심삼고 좋아하면 할수록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뜻을 위해서 자는 것이요. 먹는 것도 뜻을 위해서 먹는 것이요. 가는 것도 뜻을 위해서 가는 것이요. 시집 장가가는 것도, 자식을 기르는 것도 뜻을 위해서 하는 거라구요. 그것을 빼놓고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승자의 길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목적을 향해 가는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목적을 앞에 둔 우리에게 있어서는 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슬픔이 부딪쳐도 그 목적이 성사되게 될 때는 슬펐던 그 기준이 도리어 행복의 요건으로서 하늘에 높은 깃발을 달고 찬양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에서 남보다 수고해 가지고 뒤떨어지고, 수고해 가지고 망한다고 해도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섭리사에 있어서 높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우리로서는 말없이 갈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는 길인 것을 알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시간이 소모돼야 되고, 여기에 자기의 모든 정성이 투입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다하는 그 자리에서 '오직 당신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겠다'는 일념이 아니고는 밀고 나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을 향해 전진해야 새로운 종교이념 세계가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각오로써 목적을 향한 직행, 직방향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우리의 목적은 여러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고, 통일교회의 목적으로서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출발했고, 가고 있느니만큼 있는 힘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갈보리 산정을 향해서 전진할 때와 같은 그런 비참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전진을 거치는 데 있어서 부활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야 세계와 대한민국에 새로운 종교이념이 전개되리라는 것이 뜻으로 본 관(觀)인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그 목적에 대해서 충성을 다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말씀선집 63권 1편, 원문
우리의 목적
1972.10.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0월 1일, 이해에 있어서 4분의 3을 보내고 마지막 3개월의 첫날을 맞는 아침, 초하루 위에 아버님께서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또, 이날은 저희들이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정성을 들여야 할 안식일도 되옵니다. 원리적인 관점에서 볼때 9수를 지나 10수를 넘어서는 첫날도 되옵니다.
금년은 역사적인 운명을 판결해야 할 세계사적으로 중차대한 해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나왔습니다. 이제 10월을 맞이하는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고, 당신의 마음과 뜻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자녀의 명분을 갖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모든 면에서 기대와 소망을 더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기를 이 아침에 다시 한번 다짐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남달리 저희들이 이와 같은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은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연고이옵니다. 그러기에 개척의 노정을 더듬어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아버지! 어제도 싸움이요. 오늘도 싸움이요. 내일도 싸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의 운명을 짊어지신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롭고, 외롭고, 고통스러운가를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생각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갈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을 타일러서 또다시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될 복귀의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의 모든 앞길을 밝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신들 앞에 힘과 능을 더하시어서 최후의 산정을 넘어설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타개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끔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목전에 가까워지는 세계적 정세가 저희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인간의 힘 가지고는 이 모든 환경을 헤치고 나갈 수 없는 고독한 이 민족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남북이 엇갈려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남한 땅을 중심삼고 사방에 에워싸인 이 모든 역사적인 운명은 인간만으로서는 도저히 해결지을 수 없는 외통길로 몰려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가야할 운명도 그런 길로 다가선 것을 저희들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다시 한 번 직시 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워서 무엇을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것보다도, 하늘을 부여안고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긍휼과 하늘의 자비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역사적인 회개를 통하여 하늘의 긍휼을 바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 한 생명을 귀히 보시는 아버지!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당신의 해방의 나라와 승리의 나라를 갈구하고 있나이다.
이들은 당신의 승리의 한날과 더불어 동참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참아 나가고 있사오니, 그 자리까지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인간 자체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놀라우신 은사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옵니다. 그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인간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아도 당신의 지도와 편달이 없으면 안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자기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다 바쳐 놓고, 당신이 다시 동정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저희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내적인 결의를 다짐하게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필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임을 다시 한 번 느끼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을 붙드시옵고 저희들이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지금 이 계절은 모든 만물이 수확기를 바라보는 가을절기이옵니다. 이와 같은 계절이 역사적인 슬픔을 제거시킬 수 있는 가을절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을을 넘으면 겨울절기가 찾아와 혹독하고도 무자비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닌 씨가 되지 않고는 새로운 봄을 맞아 봄동산에 뿌려질 수 있는 새싹의 인연을 찾아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한 생명도 인류역사의 수확기를 맞이한 이 시대상 앞에 확고한 하나의 결실체가 되어, 가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내적인 생명력이 거기에 집착되어서 환경적인 모든 여건을 제압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알맹이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끼게 되옵니다.
그 누구의 힘으로써 보호될 것이 아니라 자체의 힘과 자체의 영양을 가져서 자기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어려운 환경을 돌파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겨울절기와 같은 시련기가 이 민족과 이 세계, 혹은 수많은 종교계에 찾아왔사온데 이때에 하늘이 찾고 있는 참다운 역사적인 열매를 갖춘 생명력의 실체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당신의 관심이요. 당신의 소원이요. 당신의 수확기에 바라는 하나의 대상이 되는 줄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오늘 저희들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이 시간이 되고,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옵소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잊혀질 수 없는 아들딸이 몇 명이나 되오며, 당신의 소원하시는 길을 대신 개척하는 자로 동참시킬 수 있는 기대를 가진 무리가 몇 명이나 되오며, 당신의 싸움터에 당신 대신, 신뢰하고 내세울 수 있는 용사가 몇 명이나 되옵니까? 있거들랑 그의 본질적인 사상과 그의 결의된 충효의 심정을 다짐하시어서 아버지 마음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들이 당신이 기대하고 당신이 소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된다 할진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대와 새로운 소망과 승리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늘이 동원하고 하늘이 밀어주고 하늘이 마음 가운데 두는 그런 아들딸이 여기에 있거들랑 격려해 주시옵소서. 민족을 위한 책임과 세계를 위한 책임을 짊어지고 하늘이 지금까지 전체를 책임지고 나왔던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는, 하늘의 뜻을 상속하는 자들이 많이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찾아온 무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겸손히 마음과 몸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스스로 직시하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기준과 얼마만한 차이를 가졌으며, 얼마만한 일치점을 가졌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 하면서,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고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확립시킬 수 있는 오늘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전선수호라는 과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바쁜 복귀의 행각의 노정을 달려가야 할 저희들의 앞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 각국에서 선두에 서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들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서는 당신의 어린 딸들이 일선에 나가서 싸우고 있사오니, 그들의 갈 길과 그들의 책임과 사명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은사와 자비가 그곳에 넘쳐흐르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이제 10월, 11월, 12월,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이해의 마지막 이 기간에 저희들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시어 그들이 땅 위에 선한 후손들을 따라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데 역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직접 그들 앞에 땅을 대신해서 활동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시사 하늘이 원하는 하나의 세계로서 모든 것이 귀결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총동원시켜 주시옵소서.
선이 새로운 분기선을 가려서 아버지의 영원한 승리의 결과를 다짐지을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사가 통일의 무리들 위에, 만민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우리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 단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교가 찾아 나가는 목적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들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고 또 그것을 찾아 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들이 합하여 가지고 참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참이라든가, 혹은 종교의 목적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어떤 세대권내에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종교는 그 시대를 거쳐 나가고 미래에 연결되는 선의 목적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종교가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길을 통해야만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귀결될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두고 보아도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불교도 종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종교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많은 종파가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종파들이 생기게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보다 선한 목적을 다짐 지우고 보다 선한 목적을 현실적으로 자기들의 종파권내에서 성사시키기 위한 내적인 요구에서부터 출발한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파간에 분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전진하고 있는 입장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을 높여서 혁신하기 위한 분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분쟁하는 두 종파의 목적관은 상반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종교라 하더라도 그 종교는 하나의 최고의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틀림없을 것은 사실입니다. 종교의 목적, 혹은 종교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은 절대적인 신을 중심삼고 출발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숭상하는 신만이 이 우주에서 최후에 승리의 신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분이요. 그리고 그분이 자기들을 통해서, 자기 종단을 통하여 제시해 놓은 교리, 혹은 경서에 소개된 그 길을 통해서 기필코 하나의 승리의 세계로 귀결지어진다는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있을 수 없는 신이 아니냐, 그 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목적이요, 하나의 결과를 다짐짓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목적 지향은 한 방향으로 해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종교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떻게 해서라도 빠른 시일내에 그 목적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경주장에 나선 선수들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출발 당시에서부터 목적점에 도달할 때까지 달리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 달리는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요 하나의 싸움이로되, 달리면서 옆을 보면서 싸운다면 그 두 사람은 그 경주마당에서 달리는 자로서의 목적과 사명을 올바로 지니고서 달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싸움에 있어서는 그 출발에서부터 한 방향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싸우며 경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되, 자기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옆에 뛰는 사람은 어떻고 앞에 뛰는 사람은 어떻고 하는 입장에서 분쟁을 한다면 그는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싸우는 것은 자기의 목적과 더불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싸우는 것이 바쁜 것이 아니냐? 옆을 바라보고서 염려하고 옆을 바라보고 싸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패자의 길을 기필코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주마당에 선 선수들 입장이 아니냐.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들을 보면 종교와 종교끼리 지금까지 경쟁해 나왔습니다. 과거에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불교 등을 이방 종교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종교들과는 상극적인 입장에서 싸워 나오지 않았느냐, 한 종교가 목적하는 자리에 완전히 도달하여서 다른 종교를 잘못한다고 심판한다면 그것은 공인받을 수 있는 권위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목적점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입장에서 서로 서로 싸우는 것은 목적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고 혹은 향하여 나아가는 종교 노정에 도움이 못 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이 계속된 반면, 수많은 종교내에서도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싸우고 있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전진을 촉구하고 목적을 다짐지을 수 있는 그러한 결과를 초래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는 길을 혼미하게 하고 가는 방향과 목적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강화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한 나라를 중심삼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라 온 국민이 철두철미하게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될 때, 상하를 막론하고 위정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가 일치되어 그 목적을 향한 일념으로써 투쟁의 역사를 전개하고 심정을 기울여서 나아가게 될 때, 그 나라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전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적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횡적인 면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상극적인 반작용이 벌어지게 될 때는 반드시 침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번의 싸움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싸워서 내가 이겼다 하더라도 또 딴 패가 나타나 싸움을 걸어 나에게 영향을 주고, 그 패를 이겼더라도 또 딴 패가 나와 영향을 주게 되면 결국 그 자체는 약화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횡적인 싸움이나 투쟁은 모두 소모를 의미하는 것이요. 전진하는 힘을 감퇴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목적을 향해서 필요 요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건을 박탈하는 결과에 도달한다는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종단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요. 한 나라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의 정세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 세계와 공산세계도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바라고 나가고 있습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세계 제패를, 그들 나름대로 바라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해서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충되는 입장에서 투쟁하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목적점에 도달하여서 바라는 이상세계를 완전히 확립시키든가 그 목적을 달성한 권위를 세우는 것입니다. 횡적이라든가 사방으로 싸우게 될 때는 그 싸우는 대상은 목적을 달성한 자체 앞에서는 완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목적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는 세계는 온 인류와 온 세계를 대표해서 싸우면 싸울수록 전세계 앞에 온 인류 앞에 미래의 희망과 미래의 소망과 미래의 목적을 확실하게 하고 격려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혼미케 하고 도리어 가는 길을 혼란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의 현실 정세를 봐서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어떠한 목적을 딱 결정했으면 그 목적을 중심삼고 밤이나 낮이나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 하고, 일체의 힘과 활동의 방향을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목적과의 거리를 점점점점 단축할 수 있으되, 큰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 횡적인 면을 연결 시킨 환경에서 투쟁하고 싸우려는 내용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원래 정했던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일체를 투입해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가야 할 목적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목적을 제정했으면 그 목적을 향해서 직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입장에 서더라도 그 길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직행하고 점진적인 투쟁을 가중시키면 그 목적을 따를 수 있으되,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면 목적에 대한 모든 기세는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단 하나의 길로 전진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인간에게 그런 길을 반드시 명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대해 가지고는 모든 정성을 다 들이라고 했던 것이요. 일체를 다 봉헌시키고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도 남지 않게 전체를 투입해서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치라고 권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외의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달성하고 난 후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목적에 가담시켜서 같은 입장에 놓고 같이 대하는 자리에서 해결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목적에 철두철미하면 철두철미할수록 그 방향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이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연습이 없는 것입니다. 연습이라는 것이 없는 일이라면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철두철미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쌍 하는 일도 실패를 가져 오기 일쑤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아는 입장에서 볼 때, 단 한번만으로 성사시켜야 하는 가장 귀한 어떠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대하게 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심각한 입장에서 그 목적을 대하게 할 것이냐,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 목적을 대하는 인간에게 그 목적을 이겨낼 수 있고 그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이상의 각오와 힘과 내용을 가지고 결의시키려 할 것은 두말할 바가 없습니다.
만일에 가는 도상에서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일, 한번에 성사해야 할 목적의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목적의 길을 책임지고 나선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든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심각한 입장에서 권고를 할 것이냐, 곁눈도 팔지 못하게 할 것은 사실이요. 밤에도 쉬지 말고 가라고 권고할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일체의 욕망도 전부 끊어 버리고 단지 이것만 목적으로 삼고 가라고 권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목적은 가장 심각한 목적이 아니겠느냐? 여러분의 일생은 가다가 어긋났다고 다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루를 보냈으면 그 하루는 영원히 나와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일년을 보냈으면 그 일년은 영원히 나와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행동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길 외에 없는 목적을 대한 나 자신이 일년을 통해서 전진이냐 후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는 전진이다' 하는 그 전진이 얼마만큼의 전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그 일년의 가치를 측정할 것이 아니냐? 혹은 일생을 통해서 청년시대면 청년시대, 장년시대면 장년시대에 얼마만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을 향해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을 단시간내에 성취하고 싶은 것은 어느누구나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모든 가치는 결정된다
그러면 짧은 시간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비례적인 힘의 투입과 시간의 투입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그 목적을 위한 청년시기면 청년시기일수록 그 시기에 얼마만큼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해서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로, 후퇴가 아니예요.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위치의 차이에 있어서 대비되는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라톤 경기에서 선수들이 달리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달리지만 맨 처음부터 선두에 선 사람은 일등이라는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비되는 가치의 인정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중계 방송을 듣더라도 출발선에서부터 누가 일등으로 달리고 있나 하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 노력하여 가지고 선두에 서고,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누가 대표적으로 가장 가깝게 되었느냐, 누가 대표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지금 달리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가치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년을 보냈으면 그 일년이 얼마만큼 의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올해가 1972년이면 1972년 자체가 있었으므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1972년에 우리 통일교회에서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 가지고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수많은 해(年)가 바뀌었지만 그 가운데서 얼마만큼 그 목적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입장에서, 연례적인 해(年)와 달랐느냐 하는 데에 따라 이해가 수많은 해들 앞에 설 수있고 혹은 뒤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루 생활에서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혹은 '오늘은 운이 좋았다'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는 확실히 모르지만 인생으로서 갈 수 있는 행복의 곳을 암암리에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에 천운이 있다면, 천운은 그곳을 향해서 온 인류를 몰아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몰려가는 데 있어서는 옆으로 서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돌아서서 뒤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양은 천태만상으로 각기 다르더라도 몰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몰려가는 데 있어서 다 일렬로 서더라도 목적에 귀결될 수 있는 것은 한 점입니다. 한 점이라는 거예요. 그 목적체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목적체 중심과 내외적인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목적이 바라는 상대적 존재를 대하는 데는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올 수 있는 길은 두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길을 통해야만 오는 것입니다.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중심 노선을 중심삼고 그 주위에 수많은 길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목적과 목적이 찾고 있는 대상이 만날 수 있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요 한 길, 직선상에 설 수 있는 한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얼마만큼 단축되느냐, 이 거리가 얼마만큼 가까우냐에 따라 그 목적의 가치를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계승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것이 멀면 멀수록 그 목적을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단 하나의 길, 두 길이 아닙니다. 그건 두 길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선두에서 달려가는 책임자가 있다면 그는 직선을 향하여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직선으로 달려가야 될 것입니다. 춘하추동 역시 직선을 향해야 되기 때문에, 춘하추동을 구성하고 있는 365일이라는 날들도 역시 직선으로 달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도 역시 직선을 향해서, 아침도 그 직선, 점심도 저녁도 역시 그 직선을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딴 곳에서 딴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의 방향도 역시 직선의 길을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직선을 향해서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상대적인 일을 매일매일 접하게 될 때는 그것은 기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게 될 때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은 기쁘더라도 최후의 목적에 상충되게 되면 그 상충되는 가치 추구 앞에 우리는 패자의 서러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좋고 나쁘고 행복하고, 운이 좋았느니 나빴느니 하는 모든 말들은 암암리에 인생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짓는 말이지, 내 개인적인 하루하루의 기분에 따라, 혹은 매일매일 다른 입장에서 자기의 환경 여건에 따라 우연한 인연에서 찾아진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암암리에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자기가 목적하는 내적인 인연을 따라 가지고 좋고 나쁜 것이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이 없이 좋고 나쁘다고 하게 되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쁜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아무리 현재 입장에서 부흥하고 세계에 자랑 할 만하더라도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 대한민국 사람만으로서 가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전세계가 바라는 소망의 자리에는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물론 현재의 입장에서 국가와 국민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 일이 앞으로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민족 운명의 길 앞에 일치되지 못하는 자리에서 기뻐하게 된다면, 그 기쁨은 결국 슬픈 자리에서 내일의 세계를 향해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는 것보다도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이 길이 확실한 길이냐, 틀린 길이냐, 이것을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래 갈 수 있는 길이냐, 아니냐? 이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갈 수 있는 길이냐, 아니냐? 이것이 한계권 내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만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냐, 혹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인류가 가야 할 길이냐? 그리고 인륜을 대표한 인간만이 갈 수 있는 길이냐? 인륜 외에 천륜이 있으면 천륜은 또 다른 길로 가느냐?
인륜과 천륜이 엇갈리게 될 때는 천륜을 따라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천륜을 제쳐놓고 인륜만을 위해서 세계로 나섰다 할진대는 그 목적점에서 또다시 천륜을 향한 길이 뒤로 돌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돌아가야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점점점점 목적점에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그 목적의 가치가 가중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점 목적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직행뿐이지 동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결승점을 향해서 달리는 그 사람은 그 결승점에 대해서 일체의 생각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냐, 모든 동작은 그 결승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집결되는 것이 아니냐, 목적의 때가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일체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프더라도 '나 아프니 사정 좀 봐주소' 하는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분 혹은 일초라는 똑딱하는 순간, 일생을 두고 보면 지극히 짧은 이 한 순간이 무한의 가치를 전부 다 금 그어 버릴 수 있는 숨막히는 결승점을 대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들이 운동경기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최후에는 한 발자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십분의 일 발자국, 백분의 일 발자국,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일등과 이등은 천양지판입니다. 일등이 하늘이라면 이등은 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등이 높은 산이라면 이등은 그 대상으로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천양지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순간의 차이가 결승점에 이르러서…. 그 한때를 바라보고 그와 같은 심각한 순간의 심정을 일생을 통해서 그 목적에 대한 과정에서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올바른 길을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성을 들인다면 결승점을 바라보는 최후의 순간과 같은 마음으로 출발과 동시에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긴장한 자리에서 생애를 통해 투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등은 못 했더라도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일생의 길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일생의 운명의 길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그것이 전부 다 공통적인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파들이 있지만 그 종파의 목적은 하나,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세계면 세계 평화, 통일세계면 통일세계, 하나의 이상세계의 귀결점을 향해서, 목적점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체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낱낱이 따로따로 달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손가락과 마찬가지 입니다. 열 손가락이 싸워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싸우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반대받는 것은 발전적 현상
통일교회는 새로운 종단으로서 이 세계에 출현을 보게 됐습니다. 수십년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 역사과정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대끼는 일, 가정적으로 부대끼는 일, 그 대하는 모든 일들이 지금까지 자기의 생애노정을 거쳐오는 습관적인 환경에서 당하는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통일교회를 하나 믿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개인이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가정이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교회 전체가 시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때문에 시련을 받았음과 동시에 시련을 당하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통일교회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기성교회에 문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거예요. 좋든 싫든간에 앞으로는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로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핍박도 개인적으로 받았지만, 가정적으로 받았지만, 혹은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았고, 교회적으로 시련을 받고 나왔지만 그것이 우리 자체의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반드시 그 환경적 여건에도 영향을 미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감으로써 여러분의 가정들은 반대적인 입장에서 시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쁜 일이냐, 좋은 일이냐? 만약에 어떤 선수가 있다면 그가 선수로서 결정될 때까지는 그 선수 혼자만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경기종목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연되어 있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배후에서 협조하는데 있어서도 같은 소질을 가지고 있는데, 얼마만큼 협조의 환경을 많이 넓게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러한 기반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빠른 시일내에 출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한 선수가 자라나게 될 때에 그 선수만 노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수가 하나 생겨나기 위해서는 자기의 부모, 형제, 친구 등 관계되어 있는 모든 여건들이 전체 협조할 수 있고 같은 수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환경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빠른 시일내에 출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수 하나가 선수로서 이름이 날 때까지는 그 배후, 자기 자신도 물론 고통이지만 관계되어 있는 환경도 고통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발전적인 현상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좋든 나쁘든간에 반대를 받아 나왔습니다. 통일교회만이 반대받고 통일교회만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진 그 집 식구들도 반대를 하지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일치되지 않는 상반된 자리에서 반대할 뿐이지 고통을 받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하는 사람하고 반대 받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가치 있는 자리에 섰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가 극하면 극할수록, 그 반대를 물리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참된 길이라면 반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의 가치가 작아지느냐? 반대인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반대받는 사람이 도리어 나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받는 그 자리가 참이면 참일수록, 반대하는 환경이 모질면 모질수록 그 길을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가치가 진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해야 인류의 공통 목적인 선으로 나간다
만약 자기 목적을 위해서 간다면 반대도 안 받는 것입니다. 반대받는 그 자체는 벌써, 부모한테 반대를 받고 형제한테 반대를 받고 지금까지 살던 생활 환경에서 반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 나오던 자기의 입장을 유지하는 자리에서 반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 나오던 습관적인 환경을 타파했기 때문에 반대를 받는 것입니다. 결국은 옛날과 다른 나로서 반대를 받는 것이지 옛날과 같은 나로서 반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과 극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제는 저랬다면 반대받을 때는 이런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부모 앞에 절대 순종했지만 오늘은 도리어 부모를 순종시키려고 하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누구를 중심삼고? 나, 아무개의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형제면 형제를 중심삼고 굴복시키려는 입장에 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파탄이요. 도리어 절망밖에 될 수 없습니다.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보다 차원 높은 나라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런 목적이 서 있는 자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기에 그 목적의 가치를 동참시키기 위해서 반대를 받는 것입니다. 결국은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보증받을 수 있는 선(善)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해서 세계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게 선이 아닙니다. 최고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목적 앞에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이 추구해 나오는 길입니다. 선을 따라가는 목적의 길은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의 목적을 중심삼고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방향이 다릅니다. 사적인 것은 나한테로 끌어들여서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지만, 공적인 것은 나를 희생시켜서 굴복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그러면 공적인 것이 왜 선한 것이 되느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나한테로 끌어들여 가지고 남이 내게 붙은 상태에서 내가 전진하려고 한다면,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 다. 짐을 벗어버리고 목적을 향해 투입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목적은 아랑곳 없이 짐을 짊어지고 늘어지겠다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욕심은 결국 자승자박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에서는 온유, 겸손, 희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에 서라, 공적인 길에서만이 모든 개체의 해방권이, 해방 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목적이 자기와 상관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어디까지나 출발도 자기요 목적도 자기를 중심삼고 결정 짓고 나서는 데는 인류가 바라는 공통적인 목적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시키고 나서는 자리는 인류가 바라는 공통적인 목적의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적인 일은 악으로 귀결되는 것이요. 공적인 일은 세계가 소망하는 선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선의 목적 달성은 희생과 사랑으로
그 선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희생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상이한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는, 그것을 드러내는 자리는 반드시 희생하는 그 양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에 따라서 높고 낮은 사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큰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요. 희생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는 높지 못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의 부모들은 그들의 아들딸들을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하고 남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식 대해서 못 해주면 못 해줄수록, 그 마음은 자식들 대해서 잘해 주는 부잣집 부모보다도 더 고통이 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대하는 순간순간에 거쳐가는 애달픈 심정은 부잣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시선에는 눈물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감정이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도리어 눈물이 앞서고 감정이 앞서고 긍휼이 앞서는 자리가 아니냐,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자기는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긍휼이 앞서고 눈물이 앞선 입장에서 '네가 나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말은 절대 못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더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런 자리가 자기에게 낙심을 촉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일수록 '오냐! 조금만 참아라! 남과 같이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안 오면, 내가 힘이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빌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집 자식이라고 전부 다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부잣집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보다 극난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부모가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는 부모일수록 그 인연을 따라 길리움을 받은 아들딸은 미래의 나라를 창건하고도 남을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국자의 출생이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당대에만 웃는 것입니다. 그 웃는 것이 누구와 더불어 웃느냐? 상대와 더불어 웃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더불어 웃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거라구요. 좋다는 말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계를 얼마만큼 동원시켜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기쁨의 비율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
누구나 좋은 일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쁜 일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숨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거예요.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영영 없어진 가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기를 위한 행위입니다. 욕심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의 흐름은 그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것은 자랑을 못 합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자리에서 그런 일을 했다면, 아무리 비천하고,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 그 일을 이루었 더라도 이것은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 높은 자리에 가면 갈수록 더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선악이 가는 길은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성사시키고 뜻을 이룬다는 것은 오늘의 행복을 취하고 오늘의 자기들을 중심삼고 만족을 취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다 큰 선의 목적을 추구하는 그 길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의 안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에게 빨리 가는 길을 제시한다
마라톤 경기에 나간 선수들이 달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이 들어요?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고 쓰러질 것 같은 경각선을 왕래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며 달리는 것입니다. '아이구! 나 힘든데 달릴 게 뭐 있어? 아! 오뉴월 복중에 달릴 게 뭐야? 편안히 쉬지'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나발을 불면서 선전하고 아무리 '나를 따라오면 성공하고 나를 따라오면 목적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염천하에서도 누구보다도 있는 정성을 다해서 그저 이를 악물고 기를 쓰며 달리는 사람들에게만이, 그 사람들로만이 그 목적은 계승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목적을 앞에 놓고 목적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패자의 쓴잔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한 자리에 섰다면 국가의 망신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꼴찌를 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뛰어 가지고 결승점까지 와서 쓰러져 죽었다면, 그는 일등은 못 하더라도 그 경기 종목에서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일등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얼마만큼 있는 정성과 생명을 그 길에 투입시켰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거리의 측정에 있어서 가치의 결정이 벌어지고, 그 사람의 정성의 측정에 의하여 가치 결정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기 종목을 통해서도 여실히 알 수 있거들랑 우리의 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달려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빨리 달려야 됩니다. 종교적 소질이 있어서 빨리 달려 가지고 일등을 했다면 좋겠거니와, 일등도 일등이지만 일등은 못 했을망정 일등한 사람의 몇십 배의 정성을 들였다 하게 된다면 도리어 역사상에 전통으로 남기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소질에 의해서 일등한 것보다도 '이 사람은 경기 종목에서 이렇게 이렇게 생명을 다해 가지고 죽기까지 했다. 꼴등하더라도 죽기까지 하였다' 그게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
소질이 있는 사람과 소질이 없는 사람과 정성을 두고 볼 때는 소질 없는 사람이 일등이라구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역사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 정성을 따라서 나간 사람이 일등은 못 했더라도 소질을 따라서 일등을 한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의 내용을 갖고 나서면, 그 일등한 사람도 정성의 길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그러한 내용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빨리는 못 가지만 맨 꼴찌가 되더라도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서 전체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면서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윤곽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형의 세계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기 위해서는 딴 문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쪽으로 갔으면 저쪽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 하라'고 했고, '쉬지 말고 달려라'고 했습니다. 그런 엇갈린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 한다면 어떻게 달리나요? 이런 상반된 내용을 제시한 이유는 양면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질이 있어 일등을 했다 하더라도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는 데는 뛰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받쳐 들고서 지탱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상을 받았으면 그 상을 지탱시켜서 다음 인계자에게까지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지탱시킬 수 있는 힘, 강인하고 끈기 있는 저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를 대표하는 공적인 입장에 서라
이러한 내용들을 미루어 볼 때, 우리의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새로운 목적을 따라서 나선 길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경주마당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뛰고 있다는 거라구요. 전체가 지금 마라톤 경기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뭣을 하자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만약에 그대로 행치 않게 되면 양심에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고통이 오느냐?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고통이 오느냐? 경기장에 나선 사람은 공적인 존재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면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그 나라의 공적인 운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공적인 운명을 짊어졌으면 공적인 가치를 세워 놓지 못하고 죽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세워진 가치기준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떨어지면 안 됩니다. 내려가면 안 됩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올려놔야 합니다. 그 말은 한 등수라도 더 앞으로 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꼴등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꼴등보다도 한 단계 올라서고, 그보다 더 또 한 단계 올라서고, 그보다 또 한 단계 올라서고…, 정성과 그 달리는 내용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일등을 하면, 그야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둘 다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경기 종목에 있어서 영원한 전통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달린다면 쓰러져서 후퇴할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생각보다도,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달려 가지고 경기에서 일등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서 환영을 받을 때 '그렇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문제구만!' 하면, 이건 '내가 일등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중심삼고 내 욕심으로 이렇게 달렸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환영을 받는다면 그 환영이 도리어 부끄러움이 되는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서 달렸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환영이다' 할 수 있어야지, 자기의 욕심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든지 공적인 규범을 따라서, 운동 종목의 법칙을 따라서 온 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원칙 밑에서 국가를 대표해서 일등을 하게 된다면, 그는 세계가 공인할 수 있고 대한민국이 공인할 수 있는 선수가 됩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비록 개인으로 서 있지만 결코 사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공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내의 수많은 종파들을 대표한 공적인 입장에 서라,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종교를 대표한 자리에 서라, 인간세계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주체자이신 절대자가 바라보는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 그분이 추구하고 있는 목적, 그분의 소원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은 천륜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하고, 인류가 공인하고, 나라가 공인하고, 수많은 종파가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설수록 최고의 존경스러운 공적인 자리가 아니냐, 그런 공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나라를 생각 못 하고, 수많은 종교를 생각 못 하고, 수많은 인류를 생각 못 하고, 영계와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게 된다면, 그는 공적인 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공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천운이 나와 더불어 지금까지 상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양심은 자기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지배받는 것이 아닙니 다. 공적인 욕망을 위해서 지배받기 때문에 잘못하면 당연히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슬쩍슬쩍해 가지고 슬쩍슬쩍 통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공적인 입장에서 달려야 승리한다
법칙적 과정, 즉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법도에, 규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위배되는 날에는 공적인 존재로서는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잘 달렸더라도 맨 마지막 결승점에 이르러 자기 편이 사적인 목적으로 거들어 도달했으면 그것은 일등이 못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혼자 달려야 됩니다. 끝까지 혼자만이 가야 됩니다. 끝까지,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끝까지 공적인 입장에서 달려서 승리함으로써 그 목적을 차지 하게 될 때 그것은 역사적인 승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늘과 땅이 공히 찬양하고 환영할 수 있고,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역사시대의 한 순간을 만들고 영계와 인류와 수많은 종교를 대표한 자리에서 전체의 내용을 통하는 기쁨의 인연을 맺어 놓을 수 있다 할진대는 그것은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개인이 됩니다.
역사적인 개인이라도 개인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가정을 지나, 종족을 지나, 민족을 지나, 국가를 지나, 세계적인 단체로서 끝을 낼 것입니다. 차지한 그 목적은 개인으로서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의 가치라는 것은 전체 앞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국가를 대표한 선수가 차지한 그 영광이라는 것은 그 개인의 영광만이예요? 그건 그 민족의 영광이요. 현실적인 민족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영광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수많은 종파 가운데서 배척을 받고, 어려운 길을 걸어오고, 좁은 길을 달리는 것입니다. 남이 모르는 그런 루트를 따라서 달리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내려가는 길도 있을 것이고, 첨한 산골의 고빗길도 돌아가야 될 것이고, 험산준령을 기어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꺼꾸로 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보면 그래요. 언덕바지를 넘어갈 때 이렇게 가려면 못 가는 경우가 있습니 다. 도리어 이렇게 게는 게 좋아요. 그거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강원도 같은 높은 산을 하루 종일 넘나들어 보면, 이 산정에서 저 산정으로 넘다 보면 벼랑 같은 데 갈 때 꺼꾸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왜 꺼꾸로 가 이렇게 드러누워서 보는 사람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가는 데는 별의별 길이 다 있습니다. 장애물 경주와 마찬가지입니다.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빛나는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냐? 개인의 어려운 길, 가정의 어려운 길, 단체의 어려운 길, 그 나라의 어려운 길을 지금 우리는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국가로서 일등한 국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일등한 민족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일등한 종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세계의 인류가 하나로 통합되어서 '야! 좋은 때가 왔다. 이야말로 인류의 성공을 찬양할 때가 왔다' 역사상에 그런 때가 있었어요? 그곳을 향해서 지금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니, 심판이니 하는 종교는 초기의 좋은 때가 오지 않고 전부 다 기가 막힌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경기장에 선 사람이 달리다가 목적을 달성 못 하면 망하는 거라구요. 망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목적 달성을 중심삼고 보면 망한 거라고요. 패자가 되었으니 망한 거라구요.
어려운 길일수록 가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냐? '아이고! 나 김 아무개로서 출발해 가지고 이렇게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이다!' 할 것입니다. 물론 그 길도 있겠지만, 그렇게 가다가는 한 바퀴 삥 돌아와 가지고는 스톱(stop)한다구요. 삥 돌아왔으면 또 뛰쳐나갈 길이 있습니다. 그 길에서 여러분은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도 수백 명이 모였겠지만,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서 일등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일등이 두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일등 같은 것은 많다구요. 몇 억천분의 일이라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몇 억천분의 일이라면 '같지 뭐! 그것도 일등이지!' 할는지 모르지만 몇억분지 일의 차이라도 일등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숨을 한번 쉬려고 하면서 공기를 들이 쉬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순간인 것입니다. 몇 백분의 일, 아니 몇 억분의 일이라는 순간에 일등은 결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전번 9월 23일이 추분이었습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데, 진정으로 그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것을 보고 느낀 사람이 있느냐? 있어요? 여기 누구 있어요? '야! 이제야말로 밤과 낮이 같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어요? 그 똑딱하는 순간을 절대로 맞추지 못합니다. 모든 운명의 결정은 순식간에 고개를 넘게 되고, 저울이 기울어지는 거예요. 저울이 기울어졌다 할 때는 벌써 그건 다…. 근본에서 그 원칙에서 벌써 금 그어 버리고 쉬고 있을 때 저울이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벌써 그 원칙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일생에 있어서 성공의 정상을 올라서는 사람도 있고 성공을 못 하는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으로 말하면 봉우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아이구 내 정상은 여기다! 여기도 겨우 넘어섰다' 하며 분수령에서 한 발자국만 가면 전부 다 넘어설 텐데도 불구하고 누워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쓰러지더라도 몸뚱이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중앙을 넘어서서 저쪽 편에 쓰러져야 저쪽 나라의 관리를 받지, 몇 백분의 일이라도 그 경계선에서 넘어서지 못하면 이쪽 나라의 관리를 받게 됩니다.
사탄세계와 하늘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기준을 중심삼아서 '아이고 성공이다!' 하며 좋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기준으로 살았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저런 기준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어떠한 산맥을 중심삼고 '어느 봉우리가 높으냐? 할 때에 낮은 곳을 가리키며 '여기가 높다' 하는 사람이 있어요? 높은 산을 중심 삼고 볼 때 제일 올라가 보고 싶은 봉우리가 여기라고 할 사람이 있어요? 그는 미친 녀석입니다.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올라가서 '야! 내가 일등이다? 하고 암만 큰소리로 찬양하더라도, 이쪽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등이고 뭐고 생각도 못하고 숨을 헐떡헐떡하고 있는데, 여기서 춤을 추며 '일등이다' 한다고 그게 일등이예요? 죽을 힘을 다해 기를 쓰고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서는 춤을 추고 있다면 어느 것이 일등이예요? (칠판을 가리키시며) 이게 일등이예요.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또, 높은 곳을 향해서 비지땀을 홀리고 죽을 지경이 되어 올라가는데, 낮은 곳에서 일등이라고 하는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이 구경꾼의 입장에서 보신다면 '야 이 녀석아! 네가 일등이라고 큰소리 치지 마라, 이 녀석아!' 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네가 큰소리치기 전에 저걸 본받아라, 여기 올라서게 될 땐 본받아라!' 본받으려면 이렇게는 못 가는 것입니다. 어렵게 돌아가야 됩니다. 길을 잘못 들면 도리어 안 갔던 것만도 못합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신앙길을 잘못 들어 가지고 고질통이 된 것은 뜯어고치지 못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못 간다구요. 그러니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더라도 누더기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돌아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깨끗이 청산을 해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종교생활도 그렇지만, 살림살이도 그렇습니다. '아이쿠 아무개 남자! 우리 남편하고 정이 들었는데….' 그 보따리가 전부 다 원수라는 것입니다.
산 꼭대기를 넘어야 할 운명인데….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전부 벗어 던져라, 팬티 바람으로 나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평지를 가게 될 때는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저것들 팬티바람으로 춤추러 간다'고 말하겠지요. 평지에 가다가 쉬게 되면 '저것들 보라고, 벌거벗고 산다!'고 흉보겠지요. 그렇지만 흉보는 사람이 망할 패냐, 흉보인 사람이 망할 패냐? 어느 게 망할 패요? 벌거벗었을지라도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만일에 올라가다가 쇠고리 같은 데에 빤쯔가 걸린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팬티를 벗고라도 나설 수 있는 길로 가서 일등 하면 장땡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통일교회
지금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패들은 '선생님이 오늘 또 무슨 말씀하실 것이다. 고생하라 할 것이다! 하지만 말만 그렇다'고 합니다. (웃음) 충신의 가르침은 별것이 아니라구요. 그저 보는 눈에는 침을 놓으려고 하고, 전부 다 달리는 말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고, 자고 있는 사람을 목침으로 대가리를 까려고 하고…. 그게 충신의 가르침이라구요. 그렇다는 겁니다. 전부가 반대입니다. 나 좋다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떨어질 것밖에 없지, 정들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하나님을 위한 충신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길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속아서 나가든 강제로 끌려 나가든 나가게 되면, 나가지 않은 사람보다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망하더라도 세상 사람보다 나은 자리에서 망합니다. 죽더라도 영계에 가게 되면 높은 자리에 갑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므로 통일교회에 와서 좋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예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올 필요도 없어요. 왔거들랑 보따리 싸 가지고 뒤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떨어질 수 없고, 안 갈 수도 없는 길이라면, 그것은 지독한 길입니다. 지독한 길인데 그것이 나쁜 길이 아닙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오면 멋진 것입니다. 그 길이 얼마나 긴 역사의 거리를 갖고 있느냐? 만약 천년 동안 걸어왔다면, 천년 이상의 가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혹은 인류역사와 더불어 비참한 역사를 거슬러서 지금까지 걸어왔다면, 인류역사에 없는 빛나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한 가치의 길이라면 벼룩이 놀라 뛰는 것 모양 그렇게 뛰어서 되겠느냐 이거예요. 뛰더라도 몇십 년은 뛸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이라면 산을 넘어가더라도 평지에서 뛰쳐내려가는 것이 좋아요. 뛰쳐 올라가다가 점점점점 기진맥진해서 팍 쓰러지는 것이 좋아요?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저 산정을 넘고 내려가는 데도…. 여러분들이 산에 가보게 되면, 노루라는 놈은 언덕바지를 치닫는 데는 이게 참 명수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노루라는 놈은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넘어설 때에는 한번 싹 돌아보는 거예요. (웃음) 그것이 틀렸다구요. 거기서 전부 다 총에 맞아 쓰러지고 한다구요. 올라가는 데만 선수인 줄 알았더니…. 노루는 뭐 뒷다리가 길어 가지고 내려갈 때 언덕바지는 못 뛴다고 하는데,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못 뛰긴 왜 못 뛰어? 그건 그 나름대로 뛰는 거예요. 뛰는 걸 보면 뒷다리를 이렇게(흉내내심) 넓히고 뛰는 겁니다. 보라구요. 내려갈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뒷다리를 이렇게 넓히고 앞다리는 모아서 뜁니다. 그러니까 뛸 수 있다구요. 그냥 뛰게 되면 이렇게 꺼꾸로 되거든요. 그러니까 다 살게 마련이라구요. (웃음)
자 그러면, 고개를 올라갈 때에 멋지게 치달아 올라가고, 또 넘어가서 내려갈 때도 달려 내려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겠어요. 그저 할 수 없어서 '아이고 나는 됐소' 하며 꺼꾸로 가다가 쭉 넘어지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어떤 것을 원하겠어요? 하나님도 별거 없지요 뭐, 사람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대개는 그렇습니다.
겨울에 말이예요. 객사하는 사람들이 그래요. 산을 넘고 내려오다가 아주 모진 바람을 막지 못하여 옴폭한 데 양지 바른 곳에 내려오면 '아 이거 참 따뜻한 자리구나! 좀 쉬어 가자' 이럽니다. 싹 앉으면 노곤해 가지고 가물가물 잠이 들어서 얼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길에서는 안일을 용서하지 않아요. 언제나 초긴장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경기마당에 선 선수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후세계의 갈 길을 생전세계에서 넘고 가자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어디까지 갈 것이냐?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디까지 갈 것이냐? 만약에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도, 가야 될 운명입니다. 여러분도 그걸 알지요? 땅 위에서 완성하지 못하게 되면 억천만 년이 걸리더라도 완성할 때까지 땅을 찾아와야 됩니다. 땅을 찾아오는 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과 사람끼리도 사정이 통할 수 있습니다. 눈물을 홀리면 그 눈물로써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죽어서 영이 되어 이 목석 같은 인간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자기가 터를 닦아 가야 할 길이 있다면, 얼마나 비참할 것이냐? 그거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선한 선조들이 있으면 말이예요. 여러분이 일단 통일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코를 끌고 다니면서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해 가지고 전부 다 철석같이 잘되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면 좋겠는데, 왜 선한 선조들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협조를 못 하느냐? 다리가 놓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놓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땅 위까지 내려오기 위해서는 수만 단계의 다리가 놓아져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 하면 큰일이라구요, 큰일.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땅 위에서 누구보다도…. 도의 길이 라는 것은 사후의 세계에 갈 길을 생전의 세계에서 전부 다 넘고 가자 그거예요. 그러려니 쉴 새가 있어요? 이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거와 같다구요. 동네에서 일등했으면 됐지 또 일등을 하라고 합니다. 또 일등하라고 안 하게 되면, 그건 영영 동네의 일등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녀석아! 또 일등해라, 옛날같이 새벽같이 또 나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면에서 일등합니다. 그렇지요? 동네에서 일등한 다음에 면에서 일등합니다. 그런데 면에서 일등했으면 '야 이 정도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잖아? 면에서 일등인데….' 그건 세상 모르는 녀석들입니다. 그렇게 뭐 했다고 뭐 자랑을 하고 이러는 녀석들은 어리석은 녀석들이라구요. 때를 모르고 환경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면에서 일등했다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은 '야 이 녀석아' 일등한 후에도 하룻밤도 지나자마자 끌어내 가지고 또 훈련이라고, '이 녀석아!'이러면서 더 기합을 넣어 또 하라고 죄긴다는 것입니다. 죄기는 사람이 있거들랑, 거 나쁜 거요. 좋은 거요? 우리 아가씨들, 나쁜 거요. 좋은 거요? 「좋은 겁니다」 좋은 거예요? 그건 아는구만, 그것은 좋은 거예요.
그래서 군 선수로 나가서 일등을 했어요. 그렇게 일등을 했는데 누가 와서 '아 이젠 됐어, 우리 군에서 일등했는데 그만하면 됐지' 하는 녀석이 있으면 모가지를 잡고 '이놈의 자식! 내 성공을, 세계적인 성공을 망치려는 이 사탄아' 해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베드로도 마찬가지예요. '아 선생님 그러지 마시옵소서' 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일등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만두라고 하면 그거 사탄이요. 사탄 아니요? 자기 어머니가 반대하게 된다면 그거 사탄이예요. 아니예요? 어머니가, 사탄이지요. 형님 반대하게 되면 형님이 사탄이지요. 동생이 그러면 동생도 사탄입니다. 반대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반대하는 입장이 사탄이예요. 사탄이 별것이예요?
군 대표 선수가 되면 '야, 이 녀석은 소망이 있으니 전체가 훈련시키고 때려몰아라' 해서 훈련해야 돼요. 군대표가 되어 가지고도 자지도 않고 쉬지 않고 해서, 너무 훈련을 해서 군수로부터 서장으로부터 '야! 너무한다. 너무해, 좀 쉬고 하지' 하는 말을 듣게 되면 나가서 꼴등을 했더라도 동정을 받는다는 거예요. 쉬다가 꼴등하면 야 이놈의 자식…. 하고 국물도 없다는 거예요. 이건 뭐 면에서 승리한 것까지도 박탈해 버린다는 거예요. 세상이 그렇지요?
우리가 아는 사람이 군 책임자가 됐으면 도 책임자 되라고 더 무자비 하게 옛날보다 더 브레이크를 거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훈련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훈련하면 도 대표가 되는 거라구요.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가면 갈수록 점점점점 더 치열한 훈련을 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싫다는 사람은 졸장부밖에 못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우리 남자들, 안 그래요.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할 수 없다구요.
자 이건 통일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아, 이거 내가 처녀 때, 국민학교 6학년 때 들어왔고, 고등학교, 중학교 1학년 때 귀에 피도 마르지 않아 가지고 들어왔는데 그때도 고생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들딸을 낳았는데도 또 고생하라고?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 잘못했다구요. 어떤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각을 잘못했든가, 지금 통일교회 선생님이 뭐 이렇다고 평하는 그 사람이 생각 잘못했든가, 둘중의 하나는 잘못했다고, 그렇지요?
둘 중에서 하나는 잘못되었으니 그 하나를 걷어치워야 되겠는데 어떤 것을 걷어치워야 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라는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그걸 평하는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어떤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자, 결정짓고 넘어가자구요. 어떤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평하는 것입니다」 평하는 것을 걷어치워야 됩니다. 그걸 걷어치워야 되는데, 안 들으면? 방해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쫓아내야 돼, 쫓아내야 돼!
때가 가까우면 더 어려워진다
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주목한 가운데 굉장히 찬란하게 하더니, 무슨 40일 뭐 어떻고 어떻고 또 그런 소문이 나더니, 그것도 말고 3년 동안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고 해서 부모들이 '아이쿠! 우리 아들딸 다시는 통일교회 못 들어가게 하겠다' 그럴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래 가지고 나라 살리기 위해서 망했다면, 앞으로 역사에서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그 망한 역사를 반대하다가 망했다면, 그것은 그 나라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재기의 전통적 사상으로 등장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지고 나가는 무리를 반대하는 민족 반대하는 주권이 망했다 할 때는 반대받던 통일교회 패들은 제 2차 새로운 건국, 창건의 사상적 전통으로 남아질 것이 아니냐?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선생님 말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았으면 그렇게 해야 돼요.
때가 되면 될수록 점점 더 부대낄 것입니다. 결론은 그거라구요. 점점 점점 때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통일교회에서 오래 된 사람은 전부 다지쳐서 나가자빠질 거예요. 그런 때가 오거들랑 처음부터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이코 이것만은 내가 책임지겠다' 해야 됩니다. 슬쩍해 가지고는…. 춤추는 데는 용마를 타고 춤추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구, 그렇잖아요? 이왕에 춤출 바엔 후닥닥 남을 타고 춤추지, 태우고 춤출래요? 어떤 것을 원해요? 태우고 춤출래요. 타고 춤출래요? 「타고 춤추겠습니다」 타고 춤춰야 돼요. 그럴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거예요.
먼저 나왔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큰소리하지만 결국은 남을 태워서 이러다가 결국 이러다가 맨 구덩이에 다 가서 쓰러지는데 그것을 살짝 딛고 저쪽 강을 건너가야 된다구요. 그걸 배워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작전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음! 기성교회가 얼마만큼 센 줄 알았더니 뭐 별것 아니구만! 떼거리가 많은 줄 알았더니만 별것 아니구만! 침질해 보니까 별것 아니구만? 그렇다구요. 하나님의 뜻은 하나이기 때문에 챔피언 선수로 기록을 내야 되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고라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 이상 넘어가려니 그 이상 날뛰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이 있고, 나는 놈 위에는 또 뭐가 있다구요? 덮치는 놈이 있다구요. 나는 놈을 덮치려면 얼마나 눈치가 빨라야 되겠어요. 눈이 일방적으로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사방적이 되어 가지고 번개 같이 나꿔채야 된다구요. 요전에 누가 말하기를, 번개불에 계란을 삶아 먹는다고 했지만 말이예요. (웃음)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구요.
자, 이렇게 볼 때, 가면 갈수록 공산당은 죽을 길로 들이모는 것입니다. 그런 공산당이 원수라면 그보다 더하지 않고 이기겠어요. 못 이기겠어요? 공산당이 자기의 최후의 원수라면, 가면 갈수록 죽을 길로 들이몰면서 훈련시키는 공산당이라면 그것을 이기려면 그보다 덜해서 이길 수 있어요. 없어요? 없다구요. 없다구요.
통일의 길은 쉽지 않다
이번에 내가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낀 것이 뭐냐 하면 통일교회 교인 불쌍하다…. 그래서 내가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원조도 해주고 다 그랬지만, 불쌍하다는 거예요. 철모르거든 지금…. 겨울이 올 때가 되었는데 베적삼을 입고 지금 뭐 뛴다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지금은 그렇게 해도 통하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게 되면 솜바지저고리를 입어야 할 텐데 야단났거든요. 그렇지만 솜바지를 못 입고 베적삼을 입었더라도 그 겨울을 달리기만 하면 산다 이거예요. 쉬는 날에는 얼어 죽지만, 베적삼을 입었더라도 뛰는 날에는 맨발로 뛰더라도 동상에 걸리지 않아요. 땀을 흘리고 뛰는데 동상에 걸려요? 계속해서 뛰게 되면 겨울도 모르고 넘어갈 수 없다? 「있다」 (웃음)
자, 이런 것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통일교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뭐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출발했겠어요? 통일이라는 건 쉽지 않은 거라구요. 시일이 걸리게 되면 더 쉽지 않아요. 이놈이 크면 클수록….
여러분이 큰 공장에 들어가면 말이예요. 큰 모터에 호이루가 달려 있습니다. 기계가 전부 원활히 운동을 하게 하기 위한 큰 쓸데 없는 바퀴를 하나 덧붙여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돌아가고 있는 경우는 전기 스위치를 딱 꺼도 돌아가요. 안 돌아 가요? 「돌아갑니다」 스위치를 껐는데도 돌아가요? (웃음) 크면 클수록 돌아가요. 안 돌아가요? 돌아가던 것이 그냥 전부 다 '야 스톱' 한다고 한꺼번에 스톱해요? 전기는 껐지만 아랑곳없이 '나는 간다. 돌아간다' 하는 거예요. 얼마나 돌아가느냐?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점점점점…. 이래 가지고 나중에 멎을 때는 어떻게 돼요? 돌아가려고 하다가 스톱해 가지고 한번 뒤로 쓱…. (웃음) 그것을 나는 경험했어요. 발동기도 이렇게 돌리다 보면 스톱할 때…. '아! 천지의 이치는 인사법이 있다!' 라고 생각했다구요. (웃음) 일을 해서 그렇게 돌아갔으니 반대로 인사를 해야지, 인사법이 있다고 생각해 봤어요.
이러한 자연물도 그와 같은 법도의 작용에 따라서 돌아가려고 합니다. 돌아가기 시작했으면 끝가지, 그 전기가 빠져도 돌아가려고 하는데 통일교인들은 뭐야? 전기를 집어넣어도 '부웅부웅….' 하다가 잘못되면 모터면 모터가 꽝 하는 거예요. 그게 잘된 거예요? 터져 나갑니다. 터져 나가게 되면 이쪽도 못 쓰고 저쪽도 못 쓰고 아무 쪽에도 못 쓰니, 그것은 쓰레기통에 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전기를 집어넣는데 '우-' 하우, '씽씽씽' 돌아가우? 어때요? 뭐 있다구요. 그런 입장에 여러분이 있다구요.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이 안 돌아가면 망했어요. 안 망했어요? 망했다구요.
너무 빨리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위험한 것입니다. 요전에 대구를 가는데 말이예요. 시간이 좀 늦었어요. 두 시간 30분이 남았어요. 대구까지 보통 고속 버스로 네 시간 20분이 걸리는데 남은 시간 내에 달려 보자 해서 두 시간 20분 만에 달려 버렸어요. 그 우리 차가 참 잘 달립니다. 생기기도 잘생겼지만, 잘 달리더라구요. (웃음) 그런 때는 내가 기를 쓸 수 있다구요.
종교 지도자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이거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바빠서 시간이 없을 때는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이보다 더 좋은 차가 있으면 나에게 갖다 주고 태워 주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그러고 싶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고속버스가 시속 백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도 그 고속버스들을 휙휙 지나가 버렸지요. 그것은 이웃 동네 작은 애기를 따라잡기와 마찬가지라구요. 이래 가지고 두 시간 20분 만에 달려갔으니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웃음) 「좋았겠습니다」 자, 이거 시간 내에 가니 기분이 참 좋았어요. 좋았지만 갈 때까지는 어떠했겠어요? 두 시간 20분 동안 조마조마 조마해 가지고, (웃음) 간이 콩알 만해 가지고…. 만일에 까딱만 잘못하는 날에는 날아간다구요. 어디로 날아가느냐? 영계로 날아가는 거예요. (웃음) 그것은 수속절차도 없이 돌입해 버린다구요. 그거 얼마나 심각하겠어요? 이야! 뭐 잠자고 쉬는 것도 어지간해야지요. 잠이 뭐예요? 운전수보다 내가 더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가다가 조금만 까딱하는 날에는 볼장 다 보는 거예요.
빠른 게 좋긴 좋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위험이? 위험이? 「동반…」 동반 합니다. 통일교회가 빨리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위험천만한 사건이 세계적으로 벌어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지금 통일교회 때문에 위압을 받고 있어요.
인륜과 천륜을 세우는 것이 종교의 목적
옛날에는 기성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찾아와서 '통일교회 ! 야, 아무개야! 내 아들 내 딸이 여기 와 있지? 이 녀석 나와' 하면 통일교회의 책임자들, 못 입고 못 먹는 불쌍한 교회장들은 '아이쿠! 나 죽었구나!' 하고 (웃음) 가슴이 철렁해 가지고 '덜커덕 쾅' 했어요. 그런 시대가 있었다구요. 그거 다 지내 본 사람들은 잘 알 거라구요. 요즘에는 반대가 됐다구요. 통일교회의 전도대원이나 혹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정문으로 찾아가서 '목사님 있소' 하면, '어 누구냐? 합니다. (웃음) '누군 누구예요. 나지요!', '나가 누구야! '내가 누구기는요. 교회 찾아온 사람이요', '교회 찾아온 사람 누구야?', '통일교회…', '아!' 꽝…. (웃음) 뒤로 도망가는 거예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반대로 되는지….
그 반대적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게 문제라구요. 그렇잖아요? 망하는 기성교회가 반대로 가야 살겠어요. 바로 가야 살겠어요? 망할 길에 들어선 기성교회가 반대로 가야 살 길이 있어요. 바로 가야 살 길이 있어요? 「반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 반대로 물아 줘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기성교회의 목사들을 전부 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쫓아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백두산 맨 심산유곡에 들어가서, '아이고 하나님 ! 이거 큰일났소' 하고 기도하다가 불이라도 받아 가지고 다시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만, 그냥 뒀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가 길잡이 노릇을 잘해 주고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뭐 우리가 그것을 취미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걸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사람들의 교회를 전부 다 약탈하는 황마적 같은 패들이 아니라구요. 같이 살자는 거예요. 끝날로 가면 갈수록, 파장이 되어서 장거리가 되게 되면 전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박람회가 있잖아요. 종교 박람회가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한번 종교 박람회를 해보자는 거예요. 그 왜 반대를 하느냐 이거예요. 종교 박람회를 하게 되면 종교 통일 현상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종자가 다 같지만 강원도산(産), 전라도산, 그게 있지요? 한국산, 미국산 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보자는 거예요. 거기서 누가 일등하느냐? 박람회에 제시해 가지고 결정을 해보자는데, 왜 야단이냐 이거예요. 통일교회 틀렸어요? 당당한 소리를 하고 있다구요. 그런 당당한, 소위 통일교인들, 우리는 뚜렷한 목적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하나님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내 뜻은 못 이루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은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효의 길이나, 충의 길이 무엇이냐? 충효의 길이 무엇이냐 하면, 내 뜻을 못 이루더라도 부모의 뜻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효의 길이요. 군왕의 뜻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충의 길이 아니냐, 열녀의 길은 낭군의 뜻을 세우고 가는 것이 아니냐? 죽더라도 그것을 세우고 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입시켜 가는 것이 열녀의 길이 아니더냐? 이거 안 그래요?
예수님이 베드로에 대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사랑하는 제자 앞에 당치 않은 말을 한 것도 왜 그랬느냐?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이 제자의 책임인데, 선생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을 협조하고 따라가고 바라야 할 것이 제자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반대적 입장에 서니까 사탄이 아니냐, 사탄이요.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자기 뜻대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거예요. 자기 뜻대로 살았어요?
성인이 자기 뜻대로 살았어요? 아닙니다. 그래서 성인은 뭐냐 하면 하늘을 따라 살아야 된다구요. 공자는 '위선자(爲書者)는 천(天)이 보지이 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 했는데, 천(天)이 뭐예요? 막연하지만 하늘을 따라 살려고 했다는 거예요. 하늘의 뜻을 세우려고 했다는 거예요. 이런 거예요.
한 나라에 애국애족하는 백성이 있다면, 그 백성은 나라의 뜻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나라의 뜻을 세워 가지고 그 뜻을 다 이룬 후에는 뭘할 것이냐? 그 나라가 세계의 뜻을 이어받아 가지고 세계의 뜻을 세우게 된다면, 그 백성은 세계를 지도하는 민족이 되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니냐? 또, 그 세계를 세우게 되면 인륜의 길을 다 세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인륜의 길을 세워 가지고는 뭘 할 것이냐? 천륜의 길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언제나 하늘이 위주가 되었습니다.
천륜을 세워야 되는 거예요. 인륜을 세우는 것만이 종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 사명의 분야는 천륜까지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될 때, 천륜이 지금까지 성사 못 된 것은 인륜이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륜을 완전히 거부하고 부정할 수 있는 완전한 터전을 갖기 전에는 완전한 천륜의 새로운 출발을 못 봅니다. 그것이 종교가 출발하는 원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부정에서부터 시작해요. 인륜 부정이라구요.
이제 종교는 하늘 종교와 천륜을 대표한 종교로 혁신돼야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해라, 욕심을 버려라, 가정을 버려라, 나라를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이 놀음 하는 거라구요. 그랬어요. 안그랬어요? 부정하는 자리에 서서 긍정적인 자체를 다시 재조성하는 데 있어서 인간 본연의 완성적 가치를 추구해 나온 거예요. 그것이 역사 이래 종교가 추구한 목적이 아니냐, 그래서 그 완성을 보게 될 때는 인륜의 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륜 완성의 기반을 가지고 천륜을 출발하게 될 때 인간은 영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영원이냐? 하늘이 영원이기 때문에 거기서 영원히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륜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데서만이 영원적인 생명이라든가 영원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륜과 그냥 그대로 타협하는 자리에선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가만히 보면 사람의 욕망이 무엇에 걸려 있느냐 하면 자기에게 걸려 있는 거라구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무엇이 걸려 있느냐? 자기 중심삼고 편안한 데에 걸려 있는 거라구요. 자기가 편안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러나 편안한 자리에 있으면 망하기 때문에 전부 다 반대로 고통의 자리에 바꿔 놓는 것입니다. 이거라구요. 종교의 본질이 그렇게 해서 출발했어요. 그러한 과정을 타파하는 것이 종교가 역사시대에 싸워 나오는 전쟁노정이라구요.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는 어느 주권시대에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환영받았던 때가 있어요? 전혀 없어요. 대원군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고, 전부 다 온 나라마다 피를 흘리게 하고 모가지를 땄어요. 그 희생 하는 전통을 본받아서 나라가 반대할 때 사체를 쌓아 놓더라도 그 반대가 끝날 때까지 싸워서 남아진 무리가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 종교가 된 것이 아니냐, 그런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가지고 세계적 종교가 된 것이 아니냐.
이제는 세계적 종교보다도 차원 높은 하늘 종교, 즉 인륜을 대표한 종교보다도 천륜을 대표한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혁신해야 됩니다. 전세계의 기독교까지도 전부 다 불살라 놓고 고차원적인 것을 위해서 그야말로 일시에 전세계가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갖지 않고는 새로운 천륜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그 새로운 역사적 기원을 다시 이 인류 앞에, 천륜을 대신하여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있다면 재림사상으로 남겨질 사상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걸 바라보게 될 때 보따리를 가지면 가질수록 사고뭉치라구요.
악이 후퇴하도록 하는 길
자, 개인을 찾았으면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았으면 종족을 찾아야 된다구요. 종족을 찾았으면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찾았으면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민족을 찾았으면 국가도….' 천만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남북이 갈라져 있다구요. 세상은 두 나라가 되어 있다구요. 선한 나라와 악한 나라가 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도 두 패가 되어 있으니 그 민족을 중심삼아서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지금 현재 세계적 대표 국가가 되어 있어요. 남북이 갈라져 있지요? 민족 찾기 운동이예요.
민족을 누가 찾느냐? 민족을 찾는 기록을 누가 갖느냐?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자체의 욕망을 중심삼고 기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공산당이면 공산당의 세계 국가 이념이나 민주세계라든가 전세계 국가를 무시하고 이북이면 이북 자체의 소원을 위한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에서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그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하나의 통일을 바라고 세계가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애국애족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북한보다도 남한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전통적 사상을 올바르게 가려 가져서 북한 사람들이 여기에서 생각을 해서 무엇이든지 전부 다, 하나에서부터 백, 천, 만까지 '졌다' 하는 자리까지 가게되면 자연적으로 악은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북은 천 오백 만을 돌파했어요.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남한 인구가 삼천 오백 만이나 되는데 천 오백 만밖에 안 되는 이북을 두려워 하고 있어요. 이건 사람이 다 된 거예요. 그게 사람이예요? 우선 민족적으로 수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 이건 망신입니다. 망신이지요. 배 이상의 국민을 가지고서 왜 벌벌 떠느냐? 사람이 없느냐 말이예요. 그거 왜 그래요? 못났기 때문입니다. 왜 못났느냐? 싸우기 때문에. 어떻게 싸우느냐? 앞으로 싸운다면 대한민국이 이기지만 옆으로 싸우는 거예요. 자기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구요. 옆으로 싸우니 망하게 마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뭐 옆의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옛날에 유협회장이 욕을 많이 먹었지요. '유협회장 눈을 보면 정기가 있는 것 같애, 그를 보게 되면 뭐 어떻고 어떻고…' 말이 많았다구요. 유협회장이 문제예요? 문제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보고 가야 되겠느냐? '저는 책임자는 어떻고, 그 아무개 책임자가 보기 싫어서 나 통일교회에 못 간다' 라고들 하는데, 책임자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 책임자가 보기 싫으면 딴 도로 이사 가면 되지요. 그 책임자가 필요하면 본부로 이사 오면 되지요. 지금 여기 본부는 김원필이가 책임자인데, 원필이가 보기 싫으면 선생님을 따라오면 되지요. 선생님이 보기 싫으면 그 사람은 죽으면 된다구요. (웃음)
자기 혼자 죽기가 싫으면 선생님을 죽이고 죽으라구요. 죽이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낫기 때문에 죽인다' 하게 되면 선생님도 '예-' 하겠다는 거라구, 알겠어요? 그렇지만 나보다 못한 자리에서 그랬다가는 천벌을 받습니다.
유대교가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서 예수를 죽였다면 조건에 걸렸겠어요? 제사장들 천국 다 갔겠지요. 유대교 천국 다 갔겠지요. 그때에 예수를 잡아서 죽인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다 천국에 갔어요? 천국갔다면 내가 가서 쫓아내려고 한다구요. (웃음) 유대교인들이 천국가면 내가 가서 쫓아 내려고 한다구요.
못 가는 거예요. 왜? 자기보다 더 높은 선을 쳤기 때문입니다. 선을 침범한 만큼 손해배상을 하고야, 탕감하고야, 청산하고야 갈 길을 찾는 것이지, 잘못했던 것을 변상하지 않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수난길에서, 망하지 않고 독립국가로서 등장해 가지고 그들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아랍권의 원수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옛날 예수님이 싸우지 않고 승리했던 기반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제 우리가 다 협조해 줘야 된다구요.
하늘의 힘과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자, 이렇게 보면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이고 뭐고 하는데 그놈의 창조이상이 어떻게 된 거야? 한번 보고라도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내가 한번 보고, 그 다음에는 냄새를 맡고, 그 다음에는 먹어 보고, 그 다음에는 들어 보고, 입어 보고, 마음껏 살아 보고 죽어야 하겠다' 이런 욕심이 많아야 됩니다. 그거 다 못 하게 될 때에는 '한번 보고라도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안 해 봐요? 그 창조목적인지 무엇인지, 너불너불 말은 잘하지요. 통일교회가 입나발은 아주 컸어요. 입나발은 컸는데 기를 써서 나발을 불다 보니 진액이 빠져서 점점 작아진다구요. (웃음) 눈도 소가죽이라는 거예요. (웃음) 결국은 뭐냐? 하늘의 힘, 하늘의 뜻을 모른다는 거예요. 목적이 어떤가를 알아야 돼요. 알아야 된다구요!
오늘 아침에 처음 온 사람은 '뭐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면 그 모가지에 흰 것은 왜 발랐나? 할 거예요. (웃음) 그렇지만 내가 안 아프더라도 붙이고 나오는 것은 내 자유라구요. (웃음) 그럴 수 있어요. 코에다 저울추 같은 것을 달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웃음) '저 녀석 왜 저러냐?'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그런 것을 최후에는 싫어할 사람인데도 그저 지금까지 정성이 지극하거든요.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그 사람이 최후에 합격하느냐, 못 하느냐를 중심삼고 하나의 시험대에 올려 세워 그걸 테스트하기 위해서 내가 시험하는 재료가 될 입장에 서면 코에다가 저울추를 달고 나올 수도 있어요. (웃음) 그럴 때는 그 사람이 제일 꼴불견으로 생각하고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아이코' 하며 한방에 나가자빠지는 거예요. 그러면 시험 문제를 잘 냈어요. 못냈어요? 잘냈죠! 그 시험을 참 멋지게 계획대로 못 치르게 잘 했어요. 못 했어요? 잘 했다는 것입니다. 일등하게 되면 아이구 나 상줄 줄 알았더니 상이 뭐야?'이 녀석아 또다시 출발해, 출발!' 하기 위해서는 그런 놀음을 시킬 수도 있다구요.
통일교회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빼려면, 술병을 한 열댓 개 갖다 놓고 먹고 먹고 먹고, 그 다음에 조금 기다리다 변소에 갔다 와서 또 먹고 먹고 술병을 가득히 놔 놓고 먹으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거기에 세계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을 빼려고 작전하면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저 사람이 지금까지 술을 안 마셨는 데, 왜 술타령이지? 저렇게 술을 먹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저럴까? 거기에는 뭐 있구나!' 그런 사람일수록 무서운 사람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양반 되어서 점잖게, 나랏님도 용상에 앉은 나랏님은 좋은 것 같지만 죽을 지경입니다. (웃음) 그러므로 곤룡포고 뭐고 전부 다 벗어 던지고서 '아이고 좋다. 이게 자유가 좋다' 이러면서 벌렁벌렁 뛰어다니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죽을 지경이면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고 좋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자는 간신입니다.
끈기 있는 것일수록 오래 남아지는 법
하나님도 그렇지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하나님이 잘 내세웠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뭐 이웃을 사랑하고 판단하는 것은 판단받는다는 성경 말씀을 다 해 놓고 말이예요. '끝날에는 네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했는데, 집안식구가 총을 대서 원수예요? 못 가게 만들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성경 말씀을 읽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사탄인지 하나님편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여러분들이 판단하겠지요. 하여튼 전세계 기독교가 문제시하는 대표적인 왕초가 나오긴 나왔다구요. (웃음) 그렇다고 키가 큰 것이 아니고, 눈이 큰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육손 팔손이 된 것이 아니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무엇이 다르냐? 출발한 그 기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근본적으로 다르다구요. 다른데 최후에 가서 어떤 것이 더 좋아질 것이냐 하는 것은 두고 봐야 되는 거라구요. 두고 보는데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큰 그릇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보면 아는 거라구요. 어떠한 길을 가느냐? 자기를 위한 욕심꾸러기로 가느냐, 남을 위해서 희생하느냐 할 때, 남을 위해서 희생하며 가게 될 때는 그건 틀림없이 득세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욕심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간다면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이 세계에 피해를 많이 입혔어요. 사탄세계에서 보면 말이예요. 그런데 이 세계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세계 같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복종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이놈의 세계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세계라면 그 세계에 있는 녀석들이 나쁘다고 하게 된다면 하나님편에 먼 거예요. 가까운 거예요? 가깝다구요.
세계가 '야!' 미국에 가면 미국에서도 '아! 미스터 문 안 되겠다' 고 하고,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 정부에서도 '아! 미스터 문' 그래요. 문제의 인물이 돼 있다구요. 지금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들 한국 사람들은 모르지만 아시아에서 조금만 가게 되면 아시아 근대 사회에서 미스터 문을 빼놓고는…. 정치, 사상적인 분야에 있어서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일을 지금까지 해왔다구요. 그건 한국의 그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모르지만 외국 사람은 알고 있다는 거예요.
밤중인지, 아침인지, 초저녁인지, 새벽인지 뭘 몰라 가지고, 이거 못난 것들…. 개구리 새끼들은 우물 안에서 싸우지요? 못생긴 두꺼비는 척 내려다보면서 '야! 너희들 잘 싸운다'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싸움을 안 하려고 합니다. 우리 갈 길이 바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상에 반대받고 망해 들어가는 기독교 앞에, 기성종교 앞에 반대받는 패가 나와야 빨리 망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이 개조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대한민국의 수많은 종교를 사랑하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 같은 사람을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가 필요해요. 안 해요? 통일교회 자체내에도 필요하고, 기성교회 자체 내에서도 필요하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가면 갈수록 신용받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싫어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 이해돼요? 기성교회는 물론이고, 대한민국도 통일교회 문선생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탄인 공산당도 나를 제일 싫어합니다. 엊그제도 일본에서 조총련이 국제승공연합을 '그 악랄한 패들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내가 보면서 '잘도 노는구만' 했지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야단들이냐 이거예요.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어오면 활엽수는 떨어지고 침엽수는 남아지지요? 끈기 있는 것일수록 오래 남아지는 것입니다.
반대받는 것은 흥한다
기성교회에서는 망한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서는 흥한다고 하지요. 다르다구요. 저기서는 쉬려고 하는데 우리는 안 쉬려고 합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기서는 자기 잘사는 것과 자기 아들딸만 생각하는데, 우리는 아들딸을 버리고 나섭니다. 반대라구요. 전부, 그러니까 저들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은 다르다구요. 다르지요? 달라요. 안 달라요?「다릅니다」 다르다구요. 얼마만큼 달라요? 얼마만큼 다르다니? 비교할 바도 안 된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기성교회 목사들은 기도하게 된다면 말이예요. 그저 '우리 아들딸, 우리 교회, 뭐 어떻고 어떻고…. 남의 교회는 망해도 좋다'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기도를 해도….잘난 사람은 어떤 동네에 가게 되더라도 동네 어른들을 찾아보고 아이들에게까지 눈깔 사탕이라도 사 주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저 사람은 처음 왔지만 좋다' 는 평을 받아 놓고 그 다음부터 자기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인정의 도리예요. 안 그래요? 그렇다구요.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할 책임은 해야 됩니다. 나 자신이 누가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다고 멸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면 환영하는 거라구요. 만나면 좋은 낯으로 대해 줘야지, 눈을 흘기고 '너, 옛날에 원수로 대하던, 우리 통일교회를 못살게 굴던 원수, 고질통 후계자가 들어왔구만, 이 녀석아' 이러지 않는다구요. '아! 왔느냐?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서 달라졌느냐? 여름과 겨울이 반대 입장에서 맞서 가지고 사시 계절을 만들어 나가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있기 때문에 맞서기 때문에 여름이 생기고 겨울이 생기는 거라구요. 그것 필요하다구요. 기성교회가 반대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 망한다구요.
버릇이 얼마나 없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버르장 머리가 얼마나 없겠나, 그저 눈을 곤두세워 가지고 들이밀치고 '이 녀석들 가라' 고 반대를 들이하고, 못 간다고 야단하며 반대했기 때문에 '아이고! 죽더라도 사람이 한번 결심한 것은 망하더라도 가고 봐야지' 하고 나선 거예요.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욱 단결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부처끼리, 지금까지 일생 동안 살을 맞대기 싫어하며 부처끼리 살던 사람인데 맨 추운 방에 딱 둘이 있어서 얼어 죽게 되었다면 붙들게 돼요. 안 붙들게 돼요?(웃음) 붙들지 말라고 해도 불들게 됩니다. 저 구석에서 '여보 여보' 하면서 약한 사람부터 먼저 기어갈 것입니다. 서로 붙들고 비벼대게 돼 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반대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을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우리가 소화시키고 관리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통일교회의 사고방식은 다르다구요. 기성교회는 지금도 우리가 찾아가면 미워하고 있습니다. '요것이 또 왔구나' 하면서 핀세트로 눈알을 빼려고 합니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라구요. 내가 좋은 전법을 하나 생각했어요. 통일교회 젊은 사람이 배후에 배수진을 치고 기성교회를 들락날락하게 되면 포위작전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싸움하지 않고 들락날락하게 되면 죽을 것 같으니까 거기에 전심전력을 하다 보면 딴 것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들락날락을 하면 할수록 빨리 빨리 포위되어 가지고 한 그물에 포위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열심히 통일교회를 반대하느냐? 반대할수록 사고다. 반대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그러니 이거 야단이라구요.
반대 안 하고 너하고 나하고 화해합세. 통일교회 임자네들하고 우리하고 공존이요. 공존' 이런 원칙을 세워 가지고 제 1조 공존, 제 2조 공존, 제 3조 공존, 이렇게 되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뜻을 이룰 수 있어요?
누구 하나가 먼저 머리를 숙이게 돼 있기 때문에…. 빚을 진 사람은 머리를 숙이는 거라구 먼저 까닭 없이 주먹질한 사람은 머리를 숙여요. 안 숙여요? 빚을 졌으면 머리를 숙인다구요. 악한 것은 빚을 졌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선한 것은 빚을 지웠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지 않아요.
자, 그런 길을 지금 이만큼 닦아 왔어요. 이제는 어지간히 올라왔지요? 「예」 이제는 선생님이 '여보' 하면 저쪽에서 '그래, 그래, 그래, 왔어, 왔어, 됐어, 됐어' 할 수 있는 때에 왔다구요. 이제는 세계가 어떻게 되느냐? 점점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입장에 섰습니다. 1974년까지 그렇게 안 되면 통일교회 원리가 거짓말이라구요. 최후의 숨가쁜 마루판 씨름이 이민족 앞에 찾아왔고, 세계 앞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럼 왜 아시아에서 이런 놀음을 하게 되느냐? 최후의 결승전이 벌어 지게 될 때는 점점점점 큰 원수가 나타나우, 작은 원수가 나타나우? 큰원수가… 둘이예요. 하나예요? 세계에서 딱 하나인 것입니다. 최후에 우리가 마루판 씨름을 하려고 하게 되면 세계에는 우리밖에 없다. 하늘도 우리한테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우리 대 누구냐? 공산당이예요. 공산당에 비해 수적으로 약합니다. 수적으로는 약하지만 질적으로는 우리가 더 우수해야 됩니다. 수라는 것은 질의 확대에 의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단 하나라도 공산당으로부터 안팎으로 깨뜨려 부숴 가지고 치더라도 깨지지 않을 수 있는 질의 결합체만 갖출 수 있으면 그것이 맞는다고 해도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맞으면 맞을수록 때린 것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마루판 씨름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북에 들어가게 되면 이북 공산당은 전부 다 사상무장을 하고 있을 테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사랑의 사상을 무장해야 합니다. 거기는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치는 북방문명이라구요. 소비에트 문명에서 온 북방문명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온대권 문명으로 얼음을 가만히 둬도 자연히 녹아날 수 있는 이런 작용을 하지 않고는 두 나라가 망한다 이거예요. 그러니 철두철미한 사상무장을 해야 됩니다.
그 사상이 개인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예요. 공산당들은 공산당 몇몇 간부를 중심삼고 하자는 것입니다. 김일성이면 김일성 이외는 일체 용납하지 않는 거라구요. 모택동이면 모택동 이외에는 일체 용납하지 않는다구요. 자기의 적수가 나오면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거라구요.
우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환경과 화합하여 하나되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상대적 기준을 이루자. 즉,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서 보다 높은 부모를 맞이하자' 그 사상이라는 거예요.
차라리 안 나가는 게 낫다고 해서 떨어진 사람들이 지금 자기 멋대로 장가를 가서…. 이번에 순회할 때 한 사람 만났는데 '이런 사람도 통일교회가 받아 줄 수 있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받아 주지요. 그것을 전부 다 수습은 할 수 있다구요. 그 수습절차가 조금 복잡할 뿐이지, 받아 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목적은 천주주의
자, 이런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통일교회 문선생님밖에 믿을 수가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별 수 없다구요. 죽을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길밖에 없다구요. 그러니까 책임진 사람은 불쌍한 사람 이라구요.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이번에 박대통령배 쟁탈전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이 버마한테 졌지요? 그렇지 않아요? 거 쟁탈전 최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최후에는 둘이 남는 것입니다. 둘이 남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기력이 등등하고 당당하면 할수록 그는 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결정 순간이 되면 될수록, 전부 다 지치고 숨막히는 그 시간이 되면 될수록 그 숨막히는 시간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그 팀은 우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 목적의 한 결정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고 숨 막힌다' 해 가지고, 볼이 굴러오는데 막 달려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저쪽에서 뛰어오는데 한 발자국만 더 뛰면 내가 잡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쿠' 하고 주저하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공산당 이상 끈기를 가지고, 그 공산당이 세계를 제패한다면 우리는 하늘땅을 제패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세계에서는 세계 제패를 들고 나오지만, 우리는 천주주의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천주주의라구요. 천주주의, 목적하는 바가 공산당의 세계 제패가 아니라구요. 하늘땅, 영계의 우리 조상들까지 전부 다 자손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아담 해와,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우리의 맨 말단 손자로 만들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이라구요.
할아버지가 손자 되는 때가 되기 때문에, 천지개벽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천지개벽이 뭐냐?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되고 손자가 손자 되면 그게 무슨 천지개벽이예요? 그런 때가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돌아가던 것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꼴래미가 일등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통일교회가 맨 꼴래미가 되어 있지만 세상이 꺼꾸로 돌아갈 때는 어떻게 돼요? 「일등」 그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못나서, 못나서 이 놀음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을 반대로 돌려 놓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기성교회를 반대로 돌려 놓아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 왔으면 똑똑히 들으라구요. 선전포고를 한다구요. 교회든 무엇이든 암만 가서 해보라구요.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는다구요. 이 밥목사들, 내가 돈을 그저 몇천억 원만 예금해서 '옛다 너도 먹고 물러가라' 하면 춤을 추며 밤에 도깨비처럼 나타나서 '나도 왔소'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할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구요. 밥목사들 별 수 있어요? 조밥을 먹던 사람에게 쇠고기 장조림에 이밥 먹게 해주면, 거기에 그저 혓바닥을 나불나불해 걸려들게 돼 있지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젠 부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알겠어요? 부자가 아니고 부재가 되어야 되겠어요. 부자가 되어 가지고 부재가 되어야 되겠다구요. 기성교회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대학을 세워도 내가 연세대학 뭐 이화대학…. 그 대학들은 전부 다 외국 사람들을 빌어다가 했지만 나는 외국 사람을 갖다가 시켜 가지고 할 거라구요. 다르다구요.
통일교회 본부를 보고 '통일교회 본부가 뭐 이래, 큰소리는 하지만 이렇구만' 그러는데 아직까지 때가, 새끼가 다 자라서 날아갈 때가 안 되었다구요. 아직까지, 그러나 가지는 쓱쓱 자라고 있는 거라구요. 그렇다구요. 여러분이 새둥지 보지요? 맨 처음에 알로 살 때는 포근해 보이지만 그 다음에 솜털난 새끼가 나 가지고 어미 아비가 먹이를 갖다 주면 찍찍 빽빽 하면서 서로 먹겠다고 경쟁하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많이 받아 먹는 녀석은 잘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에서도 이렇게 많이 받아 먹겠다고 그저 바람 소리만 획 해도 '아' 하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 새를 많이 잡아 봤어요. 새라는 새는 안 잡아 본 것이 없어요. 취미가 많았다구요. 어떻게 사는지 생리적인 모든 전후를 알지 않고는 밤잠을 안 잤어요. 철새가 한번 나타나게 되면 끝까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새둥지까지 내려서 보고 새끼가 어떤가 뒤져도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다 알고는 새끼를 딱 꺼낸 다음에는 방앗간에 가서 뭣을 먹나 보는 그런 놀음을 많이 해봤다구요. 어미 아비 새는 바람만 획하면 새끼에게 뭘 먹이느냐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그런 작용을 하는 거라구요. 획하게 되면 흡하고….(웃음) 그렇게 돼야 자라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패들도 툭 하게 되면 '아이쿠 이래야 사는 것이다. 전도도 하고 뛰라면 뛰어야 되는 것이다' 이래야 돼요. 그저 눈을 깜박깜박하며 '아이구, 왜 이래' 이러면 못 자라는 거라구요. 말라 죽든가 하지요.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한번 보고 싶소? 그 세계 한번 보고 싶어요? 안 보고 싶소, 보고 싶소? 「보고 싶습니다」 '자, 이거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고, 얼마나 수단이 좋은지 한번 보고 싶다' 할 것입니다. 안 보고 싶어요? 그러면 세계를 가지고 '하나님 여기 있소, 한번 당신 마음대로 해보소'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고 싶어요? 또 하나님도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안 해 줬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은 하나님
그렇게 못 해줬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 헐떡헐떡하며 고생하고, 하나님의 6천년의 비참한 역사가 이루어진 거라구요. 그 능력만 있으면 마음대로 한번 할 수 있게 '여기 있소, 당신 소원대로 한번 해보소' 하면, 하나님은 '아이구 잘 됐다' 하며 하늘땅을 전부 다 품고 말아 가지고는 척척척 개인으로부터 문서를 꾸미는 거예요. 족보를 꾸밀 것이고, 생활계획을 꾸미고서 인간의 일생이 이렇게 돼야 되고, 이 한 고비를 가게 되면 무슨 경치가 나오고, 호수가 나오고, 무슨 굴이 나오고, 무슨 금강산 같은 것이 나오고, 뭐가 나오고 뭐가 나오고…. 요렇게 딱 한 고비를 가게되면 거기는 좋은 누각 같은, 궁전 같은 안식처가 나오고 그 거기에 들어가면 무슨 음식이 있고, 전부 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거라구요. 그래서 한 발자국 가 보면 그렇게 된 것이 틀림없거든요.
몇 번만 가보게 되면 '아! 틀림없구만, 아! 틀림없구만' 그렇게 되면 끝까지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그 재미가, 고게 그렇게 된다고 가르쳐준 대로 딱딱 들어맞는 재미가,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 있는 재미는 또 다시 없다 하게 될 때는, 그 길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간다구요. 여러분들, 그런 재미 나는 길을 지금 가고 있어요. 못 가고 있어요? 못 가고 있으니 이걸 억지로 끌고 가는데 '아이구 다리야, 어디로 끌고 가요? 미친 녀석은 길잡이도 해줄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미친 녀석은 죽기 전에 갈 지(之) 자로 걷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집은 찾아가지만 이건 자기 집도 못 찾아가고 있다구요.
여러분의 조상이 누구예요. 조상을 모르고 있다구요. '우리 조상이 잔나비지, 잔나비' 이럴지 모릅니다. 내가 원숭이 띠요. (웃음) 그래, 잔나비가 조상이예요? 그래, 여러분들에게 '원숭이의 몇 대, 몇십 대의 손자들아' 한다면 기분이 좋아요? 아무리 굶어 죽게 되어도 원숭이가 먹여 살린다고 하면 '아이코' 소리치고 도망가지, 좋다고 하게 안 되어 있다구요.
이 나라에서 역적이라는 이름만 가진 사람도 사람은 사람인데 역적 됐다는 그 간판 가지고도 이 나라에서 살기 싫어 가지고 전부 다 해외로 나가려고 하고 있는데 말이예요. 원숭이? 사람이 원숭이예요? 그것은 정신이 돌아도 형편없이 돌았다구요.
보고 싶은 훈련을 하고 가고 싶은 훈련을 해라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모르잖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진짜 있어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난 틀림없이 하나님이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 증거를 못 갖고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있다는 것,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자기 생명을 바치고 갈 수 있어요? 못 간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야말로 이제 그야말로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구요.
내가 볼 때는 대가리를 흔들흔들하고 말이예요. 눈꼴 사나운 패들이 많다구요. 그런 패는 안 데리고 간다구요. 따라오려고 하면 그저 돌팔매질을 해서 떨어지게끔 만들어 놓겠어요. 못 따라오게끔 굴구멍에도 들어 가고, 물구덩이에도 들어가고, 떼굴떼굴 굴러가서 선생님을 못 따라오게 할 거예요. 따라올 수 있는 녀석은 따라와 보라고 할거라구요. 그래도 따라올래요? 「예」 따라와야 뭐 생기는 것이 없다구요. (웃음) 솔직히 이야기하지만 생길 것이 없어요.
그저 가고 나서도 또 가고 싸우고 나서도 또…, 세상에서는 싸움 한판 하고 나면 술이든 무엇이든 고기든 푸지게 한번 먹고 낮잠이라도 한번 자고 이럴 텐데, 이건 싸우고 나서는 또 뛰어야 된다구요. '저 놈 잡아라! 더 큰 놈이 있구나!' (웃음) 합니다. 그러니까 쉴 수도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또 말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라….' 거기서 창조이상의 맛이 나요? '아이구! 창조이상이라더니 쓴맛밖에 없고 기가 막히는 맛밖에 없구나! 이게 창조이상이예요? 기가 막힌 맛밖에 못 보는거예요.
그러면 창조이상의 맛은 어떻더냐? 창조이상을 이루면 어떨까? 그 세계를 한번보고 싶어요?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 「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어요? 내 눈이 보고 싶어서 뛰쳐나오리만큼 보고 싶으냐? '아이구, 보고 싶다' 숨막힐 듯이 보고 싶으냐? 아무리 옆에 대포알이 떨어지더라도 그걸 듣지 못하고 잊어버릴 듯이 그렇게 심각한 자리에서 보고 싶으냐? 그 정도 문제가 있을 거라구요. 내가 배 고픈 자리에서 배 고픈 것도 잊어버릴 만큼 보고 싶으냐? 여기에 정도 문제가 있을 거예요.
먹을 것 다 먹고, 들을 것 다 듣고, 볼 것 다 보고, 맛볼 것 보고…. 이걸 무슨 잔치식으로? 그건 하나님의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럴 수 없다구요. 최고의 가치이니만큼 최고의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숭배할 수 있는 이상세계라면, 또 그것이 그냥 그대로 가서 건드릴 수 없는 목적체라면 하나님 자신도 심각하게 정성들여서 그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럼 그게 얼마나 보고 싶어요? 그런 창조이상세계라는 것이 앉아 가지고 말만 가지고 될 것 같아요? 될 것 같아요? 안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보고 싶어한 창조이상세계를 우리가 맞이해서 하나님한테 한번, 그 창조이상세계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도록 드려 보면 어떻게 될까요?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인데 그 사탄 새끼 같은 악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손을 쓰기 시작하면 악한 것들도 쓱 녹일 수 있는 힘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갖고 계실 거라구요. 그런 힘의 작용이 봄바람같이 불어오든가 여름바람처럼 불어 대면 이것이 한꺼번에 전부 다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악하던 사람이 일시에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서로서로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하나님이 사랑을 안 할 수 없는 판국이 될 것입니다. 세계가 전부 다 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해 가지고 지극히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고, 세계 인류가 좋아하고, 웃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행복의 여건이 천지에 넘쳐흐르게 됐다면, 그곳에서 그러고 산다면 그 얼마나 좋겠느냐? 보기만 할래요? 한번 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가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그곳에 가려면 보고 싶어해야 돼요.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가는 거예요. 보고 싶은 훈련을 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는 가고 싶은 훈련을 해야 돼요.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보고 싶은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가 보고 싶다는 거예요. 식구를 보고 싶어해야 되는 거예요? 얼마나 보고 싶으냐? 자기의 영감은 문제가 아닙니다. 영감을 죽여서라도 내가 가서 보고 싶은 사람, 자기 아들딸을 종으로 만들어 놓더라도 보고 싶은 곳을, 그 보고 싶은 상대를 좋게 해 주고 싶으냐? 그래요?
도의 길은 비참하다
그런데 보고 싶은 곳을 가는데 나를 주장해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가느냐? 보고 싶은 곳을 위하여 가는 거라구요. 그 놀음이예요. 그래서 내가 있는 것은 그를 중심삼고 남을 위해서….
여러분,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그럼 있지, 미국에 간 우리 아들, 우리 딸, 아무 대학교 나온 귀염둥이 우리 아들,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아들 딸이 있는데 내가 왜 안 보고 싶겠소?' 이것은 이미 썩어진 거라구요. 그것은 썩어진 나무인 것입니다. 그 몸뚱이가 썩고 있으니 봄철이 되어도 돋아나는 순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다 썩어져서 영원히 없어지면 그 순도 죽습니다. 뿌리를 박지 못한 그런 나무예요.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없어요? 대답을 해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 사람이 성공하는 비결은 뭐냐? 어떤 목적을 대해 가지고 어디든지 가고 싶다하는 일체의 감정을 통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을 빨리 해요. 더디 해요? 성공을 빨리 하지요? 빨리 만나는 거라구요. 만약 못 만난다면 꿈에서라도 만나는 거예요. 그 이상세계를 만약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게 된다면 고생은 해야 되겠지만 꿈 가운데서 만날 때마다 더 심각하게 대하면 눈을 뜨고도 다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그래서 종교 세계에서는 통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거예요.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것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돼 있느냐?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그 나타난 것이 그냥 그대로 들어맞게끔 되어 들어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보고 싶어해야 되느냐? 자기 아들을 잡아서 제사할수 있어야 되고, 자기 여편네를 잡아서 제사할 수 있어야 되고, 자기 부모도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씩보다는 부모와 아내와 아들딸을 한꺼번에 잡아서 제사할 수 있는 성의를 가지고 하지 않고는 그곳까지는 갈 수 없는 거예요. 왜 그러냐? 부모는 조상이요. 부부는 상대요. 자식들은 후계자입니다. 그러니 조상과 상대와 후계자를 전부 다 일시에 잡아서 둘로 갈라 놓지 않고는, 가른 자를 하나는 오른발로 밟고 다른 하나는 왼발로 밟고 넘어서기 전에는 이상세계가 못 옵니다.
왜 그러냐? 타락으로 우리 조상이 어떻게 됐느냐? 하나님을 배반했지요? 또 아담과 해와, 남자 여자가 서로 원수가 되었지요? 그렇지요?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원수가 됐다구요. 이 원수 된 것을 잡아 가지고 제사드리기 전에는 못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그런 길을 부정해야 되니 '가정을 떠나라, 결혼생활을 그만둬라, 자식을 갖지 말라'는 결론을 안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도의 길입니다. 도의 길, 비참한 길이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백 세에 독자로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 세상적으로 보면 그런 미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런 심정의 내용을 두고 볼 때 정당한 일이 아니냐, 부모를 모시고, 여편네를 데리고, 자식을 데리고 그냥 그대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 돼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 아래 서로가 하나돼야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뭐 통일교회가 가정을 파괴한다고 하는데, 내가 파괴했나요? 그건 하늘이 전부 다 파괴시키는 거라구요.
자기 남편보다도 더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가야 된다구요. 보고 싶은 것, 꿈에도 보고 싶고, 실제로도 보고 싶고 밤이나 낮이나 보고 싶은 것, 그 보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훈련을 받아야 돼요. 초등부에서부터 중.고등부를 거쳐 대학에 가 학위를 얻어 학박사가 되고, 그 대학을 지도할 수 있는 총장이 될 때까지는 훈련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런 역사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전부 다…. 자기 집을 버리고 나선 것입니다. 그걸 생명시하고 그리워하면서, 죽을 길도…. 죽음까지도 청산하고 그리움에 끌려가는 거기에서 새로운 운동은 벌어지는 거예요.
보고 싶은 곳….보고 싶으니까 가고 싶은 것입니다. 가고 싶으니까 보고 싶은 것이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러니 몸뚱이는 가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을 한번 가 보자' 가 가지고는 뭐할 것이냐? 있고 싶은 곳…. 가는데 아주 지긋지긋해 '거기에서 죽으면 그뿐이야' 하는 곳, 통일교회가 그런 곳이라면 아예 떠나면 큰일날 곳이지요?
그래,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오고 싶어요? 거 이상해요. 통일교회 말씀을 한번 듣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이 통일교회로 온다구요. 방과 후에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학생의 임무로 알고, 본분으로 알고, 책임으로 아는데, 통일교회 말씀만 딱 듣게 되면 집에 가던 발걸음이 통일교회로 오게 된다구요. 집을 보면 엉성하고 골짜기에 있는 교회지만 여기 오면 '여기서 가지 않고 밥을 먹고 살면 좋겠다. 있고 싶다' 는 생각이 든다구요.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진짜라구요. 있고 싶으면, 다음에는 뭘하고 싶어해야 할 것이냐? 살고 싶어야 돼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가 하나돼 가지고 형제로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지 않으면 이상세계는 안 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틀려요. 안 틀려요? 그리움에 사무쳐 가지고 '하나님이 어디 어디 있다' 하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어디든지 개의치 않고 국경을 지나서도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행동을 해서 찾아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삼천리 강산을 편답하여 온 사람들이 많다구요. 그거 뭐냐? 있고 싶다는 거예요. 아이쿠! 그립다. 가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여기 있고 싶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있고 싶으면 얼마나 있고 싶으냐? 늙어 죽도록, 거기서 시집장가를 가서 아들딸 낳으면서 전부 다 둥지를 틀고 영원히 살고 싶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러한 터전을 이어받아서 그러한 내용이 하늘과 더불어…. 보고 싶은 곳이 하늘도 통하고, 가고 싶은 곳이 하늘과 통하고, 살고 싶은 곳이 하늘과 통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화합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만 창조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지상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바랄 것이 아니냐,
안식할 곳은 창조이상세계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교회에 가자' 하는데 '나는 가고 싶지 않아' 한다면 이건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기에게 젖 주는 어머니가 아침, 점심, 때에 맞춰 젖을 주지 않으면 젖이 아파서 어디 가더라도 그저 아기에게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 사무친 심정이 언제나 앞서야 됩니다.
그래서 사무침이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다 할 때는 결사적이어야 돼요. 그러한 행동에서는 주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직선이예요. 바랐던 때가 안 왔기 때문에 그렇지, 그때를 맞았다면 직선이예요. 그때는 누가 인사하면 인사하는 것도 모르고 간다구요. 인사도 안 받고 도망치듯 직행하는 거예요. 그런 바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 도달해 가지고는 한숨을 쉬면서 '이제야 됐구나, 뒤를 돌아 보나 앞을 바라보나 이제는 내가 여기서 망하지 않는다'고 자기 스스로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보따리를 풀고 '여기서 내가 이제 안식을 해야 되겠다' 하며…. 안식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내가 세상에 있어서 창조이상에 알맞게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평화왕국의 세계에 들어가 거기에서 주권자가 되든가 해서 위함을 받는 자리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나와 주권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다. 서로 서로가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에 의한 부자관계다' 이러한 것이 하늘과 땅, 천륜과 인륜이 화합해서 벌어진 천상의 세계가 될 때, 이것이 이상세계가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런데 통일교회가 그런 걸 찾아가게 된다면, 옛날에 사랑하고 데이트 하던 애인을 데리고 와 가지고 그냥 그대로 결혼 통과시키지 못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냥 그대로 통과시키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구요. 수속을 밟아야 됩니다. 다르다구요. 여기 젊은 사람들 그거 잘 들어요. 근본적으로 다르다구요.
'만일에 그러한 견지에서 가정을 이루고, 세계를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몽땅 바쳐 드리면, 하나님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세상과 다른 그런 세계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이 그걸 받아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한번 보고 싶다. 하나님이 개인을 지도하는 법도의 과정을 내가 한번 보고 싶다. 그때 출발하고 싶다. 그때에 효도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전체가 단결해서 통일교회를 넘어서야
지금 통일교회에서 효도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때에 그야말로 탕감복귀의 운세권내에서가 아니라, 이상적인 운세권내에서 천지가 알아보는 자리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당하게 일생을 거쳐서 효의 도리를 하여 부모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원히 효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설 게 아니냐, 이런 길이 있습니다. 혹은 나라가 있다면 충신의 절개를 갖추어 가지고 그 나라 군왕의 사랑을 받는 충신이 한번 되어 보고 싶다…. 그때에 가서 쉬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성도들은 천국가면 무슨 열두 가지 생명의 알을 먹는 다나? 놀고 그럴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 가서는 충신의 도리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야말로 멋지게 한번 부모를 섬기고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이, 내 마음에 있는 사랑을 다 동원해서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사랑을,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 가지고 충의 도리의 극치를 다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내가 위하면서, 내가 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시면서 최고로 기쁠 수 있는 것이 이상(理想)이 아니냐, 그것이 개략적인 입장에서 본 통일교회에서 목적하는 이상세계가 아니냐.
그 이상세계에 갖다 맞추기 위해서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이라면 지금의 보따리를 그냥 그대로 차고 되겠어요? 안 된다구요. 이걸 떼어 버리지 않으면 못 갈 길을 가게 하는 거라구요. 이런 것이 따라다니면 방해가 되겠으니까…. 눈이 나쁘고 죽을 지경이 되더라도 내몰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서 다 떨어진 다음에는 앙숙이나 원수들이 없는 거예요.
원수의 국경지대를 거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별의별 장애물이 있고, 우리를 전부 다 파괴할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주의하면서 가려 가야 하는데,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가야 된다구요. 밤이나 낮이나 쉴새없이, 빨리 이왕이면 빨리 도착해야 됩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지금은 그런 때입니다. 이제는 많이 올라왔지요.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천주주의라는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는 그곳 까지 가기 위해서,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있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그 세계를 위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그네 신세라구요. 나그네에게 집을 줘요? 우리가 그런 입장에 있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길이니 이것을 어떻게 단축시키는냐, 전진하기 위해서의 투쟁입니다.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서로를 위해야 됩니다.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싸워? 그것은 좋지 않은 거라구요. 알겠어요?
'네가 하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난 더 사랑해야겠다' 해야 돼요. 여기에 대해서 옆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사탄 중의 사탄입니다. 사탄은 그런 자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러면 남편이 사탄이요. 부모가 그러면 부모가 사탄입니다. 그것은 옆으로 싸우자는 것이요. 옆으로 운전해 가지고 못 가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상대했다가는 못 가는 거예요.
동네를 낯선 사람이 지나가게 되면 동네 개들은 짖게 마련입니다. 개야 짖겠으면 짖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그 동네를 지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전부 단결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전체가 단결해서 통일교회를 넘어서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복지로 가자고 출발 명령이 내렸을 때에 모세의 한 지파라도 애급 땅에 남아 있었으면 출발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벌을 주든가 해 가지고 안 가면 전부 다 죽는다는 입장에 서 가지고 떠나게 했듯이, 남편이 죽든가 자식이 죽든가 해서 못살게끔 비참해져야 '아이고 선생님! 죽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최후의 길을 떠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를 강팍하게 하는 거예요. 원수들이 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숨막히는 극동정세와 한반도
통일교회가 이런 엄청난 뜻을 위해서 가야 하는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못 떠나게 된다면 내적으로는 통일교회가 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점점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점점 더 험해질 것입니다.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우리는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늘을 부여안고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할 숨막힌 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보라구요. 일전에 일본 다나까 수상이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발표한 성명의 내용을 여러분들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오대양을 중심삼은 그 모든 내용을 볼 때 이제 일본 때문에 대만이 불쌍하게 됐습니다. 대만은 한국과 통할 수 있는 입장이예요. 약소국가라구요. 대만이 이제 어디로 가겠느냐 할 때 하나의 길밖에 없는 거예요. 소련을 업고 나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이냐? 아시아에 있어서….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그런 것을 내가 권고해 주고 충고해 줄 것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사람을 시켜 가지고 다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야 '아하! 그때 아무개가 얘기하던 것, 그대로 했으면 이렇게 안 되었을 텐데…' 이러는 거예요. 일본도 그래요. '일본은 이렇게 된다' 하고 내가 말을 했던 거라구요. 보라구요. 이제 일본이 중공과 딱 야합해 가지고 소련과 버틸 수 있는 입장에 섭니다. 그런 입장에서 소위 중공하고 소련이 공산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의 적화, 아시아 제패를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는 일본을 자기 편에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국가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번에는 소련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이 자칫 잘못하면 함정에 모가지가 걸려버릴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 있어서는 중공이 소련을 못 당한다구요. 소련은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삼은 극동함대등 지금 방대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래서 미7함대가 권위를 상실할 수 있는 때에 들어온다구요. 대만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 월남이라든가, 이들 나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닉슨 독트린을 중심삼고 후퇴할 수 있는 차제에 있어서 미국은 세계 앞에 권위를 주장할 수 없는 때가 아니냐? 여기에 소련이 강력히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할테야?
인도는 소련의 지배권내에 들어가 있고, 지금 말레이지아에서부터 전부 다 남방안보체제를 재촉하고 있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중공의 남방 진출을 방지하기 위한 소련의 작전이 아니냐.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의 동북 아시아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이겁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일본까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문제라구요. 이것은 일본이 중화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일본이 브레이크만 걸면 되는 거예요. 대만해협을 중공을 시켜서 전부 다 막아 버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일본의 석유 도입 90퍼센트 이상이 그 해협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데 여기에서 선박을 전부 다 물 속에 침몰시켜 버려라, 소련만 같이하게 된다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 인간 노릇도 못 하는 일본 놈들 우리가 모두 극동 군사력을 총동원해서 보호할 테니까 구주(九州) 지방에 상륙해라' 이거예요. 소련이 그런 작전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자기의 장래를 생각해 가지고 그런 긴급작전도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냐, 이래 가지고 만약에 중국을 시켜 가지고 중공으로 가는 일본의 상선 몇대만 땅땅 때려부숴라, 침몰시켜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장사 해먹을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이 아시아 태평양의 해상권은 전부 다 소련이 완전히 장악해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공산당은 전부 소련계라구요. 지금 혼란된 찬스를 이용해 가지고 내적인 면에서 불을 질러 나오면 어떻게 할 테냐 이거예요. 그러니 이들은 중공에 가서 빌게 안 돼 있다구요. 틀림없이 소련으로 가서 '도와주소' 하게 되면, 소련에서는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해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가 만약에 소련의 지도자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구요. 그러면 미국도 몰아낼 수 있고, 일본도 저자세의 입장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몰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 일본이 말을 안 듣게 되면 사할린에서부터 북해도로 내리 미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공산권내에 포위되는 거라구요. 포위되어 버리고 만다구요. 이런 운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를 알아야 된다구요. 자, 중공이 있지, 소련이 있지, 일본이 저렇게 되면 우리는 어디로 갈 거예요? 헬리콥터 타고 날아 간다고 해도 날아가서 앉을 데가 어디 있어요? 태평양 가운데 하와이 같은 섬이라도 우리 땅이라면 좋지만 말이예요. 날아가면 제주도? 제주도 같은 데는 순식간에 쳐들어오는 거라구요. 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거예요?
이제 세계무대를 향해 진출해야 할 때
그러니까 우리 자체가 단결해서 아시아 전지역을 대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똑같은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우리의 몇 배 이상의 수를 가진 이 아시아 전지역을 대해서 말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아시아의 약소국가들은 전부 다 친중공화되어 가고 있다구요. 왜? 거부 하게 되면 앞으로 규탄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가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백방으로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일본의 고위층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몇몇 사람을 희생시켜 수난길에 내세우는, 그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온 거예요. 그것은 대한민국도 모르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만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것이 예상권내가 아니라 예상밖으로 벗어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제 2전략선을 확대 시켜서 세계 방어선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세계의 무대를 향해서 진출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3차 세계순회노정에서 그걸 준비하고 돌아온 거라구요.
자, 이런 때에 왔다구요. 이제는 망하더라도 한번 힘을 쓰고 망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죽더라도 한번 있는 배알풀이라도 하고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고 죽어야 되겠다구요. 이런 때가 왔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그때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인들을 뽑아 가지고 전부 다 '나라를 위해 서라' 한 것입니다.
내가 제일 한스러운 것은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합동 못 한 거예요. 이제 그런 때가 왔습니다. 종교인들은 합동해야 됩니다. 김일성이가 나오게 되면 종교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전부 다 모가지를 자르는 거라구요. 이런 비참한 판국을 앞에 놓고 공동적인 운명에 서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차제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교파 싸움? 안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종교협의회에 참여해 가지고 초교파운동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내가 쓸 비용을 절약하면서 그 놀음 해 나오는 거라구요. 그건 단 대한민국이 금후에 가야 할 방향만이라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저들도 같지 않으면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인 면에서 일대일에서 공산당보다 나은 실력을 가진, 사상무장을 한 실력을 가진 사나이들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대표자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놀음을 하려니 그 어려운 무대에서 도를 바꾸고 군을 바꾸고…. 전부 다 뭐 파당싸움 하는 거예요. 전라도 패, 경상도 패, 경기도 패 해 가지고 뿔개질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우리는 전부 다 합동결혼식을 통해서 사돈의 팔촌을 만들어 놓는다구요. 뜯어고쳐야 되겠다구요. 경상도 패하고 전라도 패가 제일 사이가 좋지 않는데, 그래서 며느리는 경상도 며느리, 사위는 전라도 사위, 전부 다 이렇게 맺어 주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배치하는 것도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 경상도 사람은 전라도로 배치해 놓는 거라구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래서, 땅에서 제일 밟히던 통일교회가 이제는 이만큼 올라왔어요. 국가에서도 강력한 단체로 알고 있는 거라구요. 현정부에서는 통일교회가 정치를 한다면 큰일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우리가 싸우는 목적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공산당이라구요. 세계 공산당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냐? 부모가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가 없다고 하는 녀석은 때려죽여야 할 녀석이라구요. 공산당을 우리가 방어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현정부가 그런 일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우리는 반드시 후원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일은 일대로 하고 천대는 천대대로 받고 있다구요. 좋다는 거라구요. 뭐 관에서도 우리에게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해 주었어요? 그들이 알면 나가자빠질 실적을 가졌지만 우리는 자랑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선전하지 않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선전하지 않고 자력으로 가는 것입니다. 달리는 과정에서 알아주면 알아줄수록 그것이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응원을 받다가 꼴등이 되면 면목이 없어집니다.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세계에서 주도적인 인물이 돼야
중간에서 누가 칭찬해 주는 것은 내가 원치 않습니다. 내가 또 나타나서 선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외국에 나가서는 큰소리를 치고 다니지만, 국내에 있어서는 공식집회를 안 하는 사나이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면서 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최후에 가서 골인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가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움직여서 최후의 결전장에 임할 수 있는 끈기 있고도, 그 목적 달성에 주도적인 인물들을 어떻게 양성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 급선무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 주류의 터전을 인계받아야 할 통일교인으로서의 가야 할 길은 확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느냐, 안 가느냐?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뭐 서 가지고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전진 아니면 후퇴라구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절박한 때에 있어서, 총동원 명령을 내려야 할 때에 있어서, 동원에 응하지 않는 것은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어요.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남북한이 점점점점 교류할 수 있는 때가 되어 오면 되어 올수록 대한민국이 북한보다도 더 큰 배수진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면에서 밀리면 밀릴수록 밀고 넘어갈 수 있는 세력균형을 어떻게 국민 개인 개인에 적응시키느냐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요전에는 우리가 기관에다가 그런 걸 건의까지 했어요. 이북 5도의 권내에 있는 지식층의 사람들을 정부가 돈을 대서 교육을 안 시키면 우리가 돈을 대서 교육을 시키겠다고, 지금 '우리' '너' 할 판이 되어 있어요? 지금, 우리, 너 하게 돼 있느냐 말이예요. 정부가 못 하면 백성이 해야지요.
어떤 때는 우리 통일교회 패들 전부 다 새마을운동에 동원하고 싶다구요. 그러나 그건 외적인 운동이라구요. 새마을운동을 해서 집만 잘 지으면 뭘하느냐? 공산당한테 먹히면 그만이지, 그보다도 새마을운동은 못하더라도 새마음운동을 해 가지고 새로운 사상을 가져서 이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개인을 어떻게 만드느냐? 이것이 우리의 급선무이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은 손을 댈 사이가 없다 이거예요. 지금 그러고 있다구요. 그것이 나라의 현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보다도 차원 높은 입장에서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당당히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은 '교파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국가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남북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세계의 시련도 극복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포위망에 휩쓸려 들어가는 이 권을 어떻게 극복하여서 민족의 자주성을 세워 가지고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도적인 판도를 확대시키느냐, 이것을 하기 위해서 천신만고하고 남들이 잠잘 때 준비해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통일교인들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선생님을 보고 '저렇게 젊은 사람이 주일날 새벽에 와서 한마디하고는 놀고 있는 사람이야' 하겠지만 천만에요. 바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은 모를 거라구요. 지금 우리가 뉴욕 근교에 120만 불짜리 집을 깎고 깎고 깎아 가지고 85만 불에 계약을 해서 며칠내로 중도금 치르기로 했다구요. 여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집은 찾을 수 없을 거라구요. 미국의 어떤 거부가 살던 집입니다. 거기에는 수영장이 세 개씩이나 있고, 헬리콥터장이 있고, 테니스 코트가 있고, 자연 못이 있고…. 굉장한 집이라구요. 그뿐만 아니라 워싱톤에 지금 35만 불짜리 집을 또 사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돈을 쓰고, 대한민국에 학교를 세우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겠다고 하는데도, 대한민국이 협조 안 하니, 이러다가는 대한민국도 망하고 세계도 망하겠으니, 하나를 내버려야 할 때에 들어오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총력을 대한민국을 기지로 하는 것보다도 미국을 기지로 삼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운명으로 몰려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 때문에? 국가가 책임을 져야 될 것입니다. 그건 역사적 지탄을 받을 때가 올는지 모른다구요.
목적을 앞에 두었으면 말없이 따라가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미국이라든가 세계무대에 나가 가지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한 투쟁을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산당과 일선에 서 가지고 피를 흘릴 각오를 하고 생명과 재산을 전부 다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모든 체면이라든가, 체신이라든가 위신이라든가, 그것이 전부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방비하기 위해 총주력하지 않고는 망할 것입니다.
공산당이 내려오는 날에는 통일교회 임자네들부터 모가지를 자를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방비를 해야 합니다. 그 방비를 누가 해주느냐? 백방으로 울타리를…. 미국의 상원의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래서 이번에 갔을 때도 내가 십여 명에 가까운 상원의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에 전부 다 만나 보았다구요. 하원의원들도 만나 보았어요.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런 놀음을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지 않은 시일 내에 아시아에 드러나고 세계에도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의 창조이상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선 우리 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은 그 목적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그 목적을 위하는 데서 밥을 먹어야 돼요. 하루 좋아하는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 좋아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딴 것을 중심삼고 좋아하면 할수록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망이 맞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여기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자는 것도 뜻을 위해서 자는 것이요. 먹는 것도 뜻을 위해서 먹는 것이요. 가는 것도 뜻을 위해서 가는 것이요. 시집 장가가는 것도, 자식을 기르는 것도 뜻을 위해서 하는 거라구요.
일체 그 외의 것은…. 그것을 빼놓고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패자의 길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승자의 길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 적인 결론이 아니냐, 여러분, 패자의 쓴잔을 마신 자는 동정 안 해요. 아무리 어젯날의 승자라 하더라도 그 실전에 부딪쳐 가지고 패자가 되면 절대 누구도 그를 따라가는 사람이 없다구요.
통일교회가 지금은 반대를 받지만 통일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따라오는 사람이 많게 된 것은 뭐냐 하면, 이 단체가 패자가 되지 않을 가망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그런 기준과 세력권을 확대시키면 세계는 반드시 흡수되어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 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들어야 됩니다. 안 되면 창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우리도 창조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목적을 향해 가는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여러분, 목적을 앞에 둔 우리에게 있어서는 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그 목적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부딪쳐도 그 목적이 성사되게 될 때는 슬펐던 그 기준이 도리어 행복의 요건으로서 하늘에 높은 깃발을 달고 찬양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에서 남보다 수고해 가지고 뒤떨어지고, 수고해 가지고 망한다고 해도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섭리사에 있어서 높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우리로서는 말없이 갈 뿐입니다. 여러분은 따라갈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 여러분 앞에 선생님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다시 생활을 정비하고 현재의 급박한 정세권 내에 있어서 이러한 세계사적인 사명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할 차제(此際)가 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단결과 우리의 전체 동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외적인 하나의 축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이것은 우리를 촉구시키고, 격려시키고, 자극시키기 위한 좋은 때가 아니냐, 이때를 놓치는 사람은 비통한 사람이요.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고서 지금까지를 다시 한 번 반성해 봐야 하겠어요. 지금까지 출발한 것이 출발도 하늘로부터 하고 목적도 하늘 중심삼고 해야 되는데, 출발은 하늘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과정에서 나로 말미암아 가지고 '내가 뭐 어떻고 어떻고…. 내 무엇 때문에 뜻길을 못 갑니다'라고들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다구요. 죽음의 자리에서도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런 비장한 놀음을 매일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누가 처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부모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말이예요? 목석 같은 사람이라도 그런 정은 있다구요.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있다구요.
그러면 왜 부모나 처자식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느냐? 우리는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부모들도 나중에는 우리를 따라올 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이래서 출발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가다가 중도에서 패배하여 망하게 되면 나 망하고 부모 망하고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건 세상편에서도 동정 못 받고, 하늘편에서도 동정 못 받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세상도 참소하고 하늘도 참소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사탄보다 더 나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입장에 들어가면 하늘편에서도 참소받고 사탄편에서도 참소받고….그러면 어디로 갈 것이냐? 지옥보다 더 나쁜 곳으로 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는 길인 것을 알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시간이 소모돼야 되고, 여기에 자기의 모든 정성이 투입되어야 됩니다. 그 외에는 단축시킬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북에 들어가서 전도를 해야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누가 전도하러 갈 거예요? 이북에 갈때는 여러분들이 먼저 가야 되겠다구요. 그 이북에 들어가서 치열하고 상반된 여건하에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가지각색의 훈련과 준비를 다 해야 됩니다. 거기 가서 극복할 수 있는 준비를 해 가지고 자신을 갖고 나서기 전에는 남북한을 하늘의 뜻 앞에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이런 엄청난 우리의 가는 길 앞에 가로막힌 여건들을 넘어 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각하고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면 큰 이상의….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 걸려서도 그것을 못 이루었으니, 우리는 몇만 년이 걸려도 그것을 못 이룰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엇으로써 보충하고 무엇으로써 밀고 나갈 것이냐? 정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다하는 그 자리에서 '오직 당신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겠다'는 일념이 아니고는 밀고 나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을 향해 전진해야 새로운 종교이념 세계가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각오로써 목적을 향한 직행, 직방향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우리의 목적은 여러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고, 통일교회의 목적으로서 가져올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오늘이 10월 초하루이니만큼….
1972년도가 이제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나는 10월 초하루가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한 고비를 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계획한 일에 있어서 최후의 싸움의 터전은 숨막히게 급박한 과정으로 우리 앞에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72년, '73년, '74년은 총동원, 총주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물론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렇게 백방으로 후원을 하겠지만, 이때는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제 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의 시대가 아니냐, 그렇지요? 「예」 지금까지 원리를 그렇게 가르쳐 주었지요. 이 제 2차 7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문제가 세계화되는 것입니다. 절박한 때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천지가 뒤넘이칠 수 있는 경각점에, 경계선에, 한계점에 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가 경계선에 접경을 해서 거기서 최후의 결판을 봐야 될 운명이었듯이, 이때가 세계사적인 견지에서 이때가 그러한 입장에서 뒤넘이치던 예수님의 3년노정에 해당 되는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니만큼 여러분 각자가 예수님이 지녔던 사상과 예수님이 지녔던 죽음을 무릅쓴 각오를 갖고,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단결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슬픔의 길을 엮어 나온 거예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이 예수님을 반대했다가 예수님이 죽은 후에 충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아무리 충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금이 간 그릇을 때워 가지고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전한 세계를 상속 못 받는 거라구요. 기독교의 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예수님이 바라던 이상세계를 상속 못 받게 돼 있다구요.
한번은 뒤넘이쳐야 돼요. 맞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게 돼 있기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한테 맞고 있다구요. 그 때리는 채찍이 귀한 것이 아니라구요. 때리는 그 주인의 목적이 귀한 것입니다. 때려서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적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선의 심판이 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출발했고, 가고 있느니만큼 있는 힘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갈보리 산정을 향해서 전진할 때와 같은 그런 비참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전진을 거치는 데 있어서 부활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야 세계와 대한민국에 새로운 종교이념이 전개되리라는 것이 뜻으로 본 관(觀)인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그 목적에 대해서 충성을 다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이 자리는 청파동 통일교회 본부입니다. 갖추어진 자리는 초라하고, 나타난 모습들은 불쌍한 모습들이옵니다. 불쌍하게 된 것도 효도를 하기 위해서 불쌍하게 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불쌍하게 됐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저희들은 아무 한도 없습니다. 부모가 살아 있는 한 자식의 한은 없어지는 것이요. 군왕이 살아 있는 한 신하의 한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 그 부모 앞에 그 군주 앞에 붙들려 가지고 영원히 영원히 '내 영광이 네 영광이 되고, 내 나라가 네 나라가 되고, 내 가정이 네 가정이 되고….내 형제가 네 형제가 되고, 내 자식이 네 혈육이 될 수 있는 인연의 심정을 가졌다'고 축복할 수 있는 어버이를 가진 것, 나라의 중심존재로서의 군왕을 모신 자가 불행한 자가 아닌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제가 지금까지 생애노정을 바쳐 이 길을 개척한다고 팔방으로 달려왔습니다. 때로는 보아서는 안 될 일도 보았고, 당해서는 안 될 일도 당했습니다. 이런 저를 대하는 하늘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하늘은 이 통일교회가 가고, 제가 가는 길을 지켜 주시어서 오늘의 이 자리에 세워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그 누구의 공이 아닌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더라도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자랑할 것이 아니옵니다. 그 배후에서 역사하신 당신의 공적이 큰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공적이 큰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목적과 소신이 언제나 저희들의 바라는 생활권내에서 같이할 수 있는 인연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그 사정을 보시사, 같이해 준 당신의 권한과 당신의 능력과 존엄성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왔지만, 아버지, 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야 되겠고, 통곡을 하면서도 '가야 되겠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에게 효도의 길을 남기고 가야 되겠고, 충신의 도리를 남기고 가야 되겠고, 열녀의 도리를 남기고 가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 할 사명인 것을 알았사오니, 시일이 가고, 연한이 지나 청춘시대를 보내고, 장년시대를 보내고, 혹은 내 일생을 거쳐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무덤으로라도 하늘의 때를 맞아보고 그 밟던 땅이라도 맞게하겠다는 전통을 남기기 위한 싸움길을 주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돌아갈 줄 모르는 자리를 찾아서 직행하면서 상처를 받아 쓰러진 병사의 모습이 되더라도, 총탄을 맞고, 포탄을 맞아서 비참하게 갈래갈래 쓰러진 것이 도리어 하늘에 기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 통일교회를 당신이 갖다 세우고 싶은 곳이 어떤 곳입니까? 피를 흘려서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면 저희들은 전체가 그것을 각오 해야 되겠습니다. 거지와 몰림뱅이, 종의 종살이를 통해서 세계를 해방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것도 저희들은 순응하여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자초해서 그런 거지의 놀음을 해 나왔고, 종의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수난길을 자초해서 개척해 나온 통일교회 무리 였습니다.
아버님, 이제 대한민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시아에서 불쌍한 민족인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역사시대에 이 땅을 찾아 왔던 당신의 설움을 붙안고 이 나라를 박차고 돌아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좋사오니 하늘을 모시는 이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추운 겨울밤에 따뜻한 방을 준비하여 오시는 당신을 모셔 드릴 수 있는, 한 방을 지키는 주인이 있기를 당신이 얼마나 바라셨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방에서는 천년 역사가 시작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 가정 가정에서는 하늘을 모시고, 밀실에서 의논하고 밀실에서 사명을 분부받아야 되겠사옵니다. 한이 맺혀진 무리들로서' 아버지 앞에 충효를 다짐하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절규하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나라를 위해서 싸워 나왔습니다. 비록 통일교회는 보잘것없는 입장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싸워 왔습니다. 아버지, 싸워 나오던 그 나라가 없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끝까지 그 나라를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게 될 때는, 수난을 극복하고, 만세에는 새로운 소생의 길이 이 민족 앞에 채워질 것을 바라고 지금까지 왔사오니, 대한민국을 아버지여, 맡아 주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이 세계사적인 흐름 앞에 불어오는 태풍 앞에 선 어린 고아와 같은 이 한국을 지키시옵소서. 그 한국 가운데서 놀림을 받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 선두에 선 입장에서 나라를 위해 그렇게 울부짖어 오던 무리들이 지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당한 자리에서 최후의 순간을 결하고 아버지의 마음속에 슬픔과 더불어 기억되고, 미래를 다짐하는 기억의 용사로서 남아질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거들랑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은 이 땅 위에 기필코 성사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터전을 남길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당신의 마음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 '72년 후반기를,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 3개월을 통하여 하늘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74년도까지의 3년기간에 역사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의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한 목적을 위하여 투입할 수 있는 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숨막힌 이 기간을, 질식할 것 같은 이 환경을 저희들이 참고 극복하여 넘는 길 외에는 저희들의 소망의 터가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민족 개개인이 여기에 단결해야 되겠고, 민족 전체가 단결하여 이북에 있는 모든….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