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댁

작성자산내들|작성시간14.02.25|조회수11 목록 댓글 1

월남내전은 오래전 1954~1959에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1년 미국의 전쟁개입과 동시 파병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라 할 만한

형태를 갖춘 것은 J.F.케네디정권의 <특수전쟁> 때부터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최초의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불명예스러운 전쟁이었던 것이다.

1959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1975년 사이공 함락 될 때까지 16년이라는 기나긴

전쟁이었고 세계 제2차 대전 못지않은 사상자를 낸 전쟁이었다.

 

5공 시절 월남전을 통하여 어렵던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많은 도움을 준

전쟁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형을 앗아간 전쟁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40여년 전, 비밀 아닌 비밀 같은 추억의 한 토막 꺼내놓으려 합니다. 

 

월남 댁이 우리 마을에 온 것은 아마 1966년쯤 되었을 것이다.

사연인 즉 그 신랑이 해병 청룡부대 부사관으로 월남에 파병되면서 자기 누님이

사는 우리 마을 (우리뒷집)에 인신보관 차원에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서른 안팎의 세련된 미모의 여인, 그리고 서너 살 된 딸 하나,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유배된 그녀, 그녀의 남편은 우리 마을이 그들 모녀의

보호막이 되어주길 기대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동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월남 댁이라고 불렀다.

세련된 미모라고 위에 언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짙은 화장술, 화려한 의상

유혹의 눈웃음을 늘 뿌리고 다니는 요즘 말하는 야한 여자와 유사했었나 보다.

내 나이 한참 이성에 눈뜨는 시절이었으니 많은 관심을 가졌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바로 우리 집, 담 하나 사이에서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었으니...

 

그러나 난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갓 중딩 시골 학생이 도회지에서 온 그녀에게

감히 범접할 생각도 못하고 다만 안타깝게 바라만 봐야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를 맡은 집에서 직무유기 내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라

보아진다. 저녁이면 동네 총각들 하나 둘, 무슨 생각들 하나씩 품고 모여드는

집합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월남 청룡부대(해병) 파병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고향 선배와의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스파크를 일으켰던 모양이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자기 신랑과 같은 청룡부대 출신이고 보니 이것저것

궁금한 점도 많았을 테고 혈기 넘치는 젊은 피 냄새를 맡았던 것은 아닐까?

 

손만 잡아도 소문이 무성한 50여 가호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아무리 신출귀몰한

그들이라고 해도 소문은 비켜가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소문은 조그만 마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문제는 파병에서 돌아 온 고향 선배가 그 월남 댁과 딸을 데리고 사라진 사건이고

억측이 난무한 가운데 그 집 신랑 귀국 날짜가 임박해 오기 때문이었다.

 

소문 듣기에는 그 신랑 성격에 조용히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 신랑이 귀국하기 전에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양쪽 집안은 완전히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다행히도 멀리 가지 못한 그들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남편도 귀국하여 동네에 돼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이겠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아마 그 사건이 누설 될까봐 누이 되는 집에서

극구 말렸을 것이고, 그렇게 한때 많은 염문을 뿌리던 월남 댁은 그 신랑 그리고 딸과

포항을 향해 떠나갔던 것이다.


          -  하성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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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백 | 작성시간 14.03.03 아, 이거 실화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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