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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1

후궁인빈

작성자영준|작성시간26.06.17|조회수50 목록 댓글 0
후궁간의암투는 
왕의
잠자리를놓고
시작되지만 
왕자를
생산하고 
성장하게되면
왕의
후계자리를
놓고벌어진다
파릇파릇한
공빈과인빈이
선조의 
사랑을두고 
벌인암투는
일방적으로
게임을이끌던 
공빈이 
체력저하로
별이되는
바람에 
싱겁게끝났다
이제먼훗날
인빈은
막태어난 
의안군을위해 
공빈이남긴 
장성한 
두왕자를 
상대해야했다
정비에게서 
후사가나올
가능성이 
없는상황에서
공빈의 
임해군,광해군 
두왕자는
왕위승계 
순위1,2위였다
1577년봄
선조의 
첫번째여인 
공빈은 
병상에서 
사경을헤매고 
있었고 
두번째여인 
인빈은 
첫아이를 
출산후 
산후조리 
중이었다
여색을탐했던 
선조는 
그러한공백기를 
참기가어려웠다
먹이를찾아 
매의눈으로
궁내를 
스크린하던 
선조에게
한여인이 
눈에들어왔다
공빈과인빈은
한미하지만
양반집안
출신이었다
반면훗날 
순빈으로불리는
이여인은
중인집안
출신이었다
형제들은 
모두유명한
역관이었다
19살로 
한참피어나는
그녀에게꽂힌
선조는
그녀와동침한후
바로숙원의 
첩지를내렸다
파격적이었다
인빈에게도
동침후 
5년만에 
숙원첩지를
내렸었다
선조의사랑을
독점할
꿈에부풀었던 
인빈으로서는
긴장할수
밖에없었다
그녀보다
4살이나어렸다
하지만 
인빈은
그누구보다도
처세에능했다
자기아이를
낳느라
고생한인빈에
대한일종의 
배신이었지만
인빈은
선조에게 
이를따져
묻지않았다 
그녀는
대신순빈에 
대한경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인빈의 
경계를뚫고
선조는
암암리에 
그녀를찾았고 
결국
1580년
아이를잉태한다
하지만 
싸움은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순빈이 
순화군을
임신한뒤 
배가불러오자
선조는
슬그머니 
다시 
인빈을찾았다
자네..
나왔네
기..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그날이후
순빈이
출산할때까지 
온갖아양을 
다부려 
다시선조를 
묶어두는데 
성공한다
순빈이
순화군을출산한
이후에도
선조는 
인빈의처소만
들락거렸다
순..순할순
빈이라는
이름에서도
알수있듯이
순빈은 
인빈과암투를
벌일능력도
성격도아니었다
그래서그런지 
임진왜란시 
피난길에 
인빈을
데리고가면서
순빈도 
같이딜고간다
둘이심심할때 
말동무라도
하게
둘이서 
늘사랑만 
하고살수는
없는노릇이다
순빈은
중인출신이었고
훗날숙종의
장희빈처럼 
영악하지못했다
보고들은것이 
부족해 
더이상
선조의사랑을
되찾아
오지는못한다
그렇게입다물고
조용하게 
살아그녀에 
대한기록을
실록에서 
찾기어렵다
선조의사랑을
독차지하지도
않았다
아들순화군은
개차반으로
살다가요절했다
그러나
그녀자신은
끝이좋다
선조의사후
빈으로추존되어
중인 
출신으로는 
특이하게 
희빈장씨처럼 
빈까지오른다
인빈에게 
순빈은
찻잔속의
태풍이었다
선조의 
총애를받던 
공빈김씨가 
죽은후 
선조가
인빈김씨에게 
사랑의 
발길을옮기자 
의인왕후 
박씨는
선조에대한 
사랑을포기한다
난국물도없군
공빈이 
죽을당시 
임해군은6살
광해군은
3살이었고
아직어머니 
사랑이 
필요한나이였다
알라가지기를
포기한그녀는
대신 
임해군과광해군 
그리고 
후궁들의 
자식들에게
온갖
정성을쏟는다 
의인왕후는
내전에서 
가장
높은위치에 
있었다
하지만후궁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세자로세우려 
설칠때 
말한마디못하고 
속만끓였다 
불여우라
불릴정도로 
지혜로웠던
인빈
김씨는
의인왕후가 
공빈김씨의 
자식들을
총애한다는
사실을알게된다
명색이 
왕비인그녀가
인빈의 
자식들에게
등을돌리는 
일은피해야했다
그녀는
의인왕후의 
환심을사기위해 
엄청나게 
노력을한다
하지만
의인왕후는 
남편의 
사랑을앗아간
여인에게
특별한 
정을주진않았다
두여인은
1555년생
동갑이었다
나도 
여자이거늘 
왕후는남은
불꽃을
광해군에 
대한
사랑에태웠다 
그무렵 
대신들은
이산해의 
동인과 
정철의서인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선조는
인빈과그녀의
삼남 
신성군을 
챙기고자했다
동인영수 
이산해가 
선조의의중을
파악하곤
인빈과연합해 
신성군을
세자로밀자
의인왕후박씨는
서인정철과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광해군을 
세자로밀었다
그와중에 
1592년 
임진왜란이터졌다
도망치듯 
한양도성을떠난
선조는 
평양성에서
의주로 
피난을떠나며 
의인왕후대신
귀인김씨와
숙용김씨를
데리고떠난다 
선조도 
여느남자처럼 
입안의 
혀처럼구는 
여잘좋아했다
임자는
알아서
몸챙기시게
의인왕후는
선조와떨어져
홀로평안도 
강계로 
피난을가게된다
인빈김씨와 
의인왕후
처지가 
주객이전도된
상황이되었다
요즘도 
가족여행을
떠나면
애들은게임기나
휴대폰을
꼭챙기는데
재미없는
팬션에서 
자기나름의 
오락을 
하기위함이다
선조도 
그런마음이지
않았을까 
1593년 
한양도성이
왜병으로부터
수복되자
선조는 
후궁들을딜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의인왕후는 
그후4년간 
계속해주에 
머물렀다
1597년 
정유재란이 
터졌다
선조는
또후궁들과
함께했고 
의인왕후는 
광해군과함께
행동했다
1600년 
의인왕후는
46살의나이로
한많은세월을
뒤로하고 
세상을떠난다
왕비는 
투기하는마음
의도적인행동
수식하는 
말같은것은
마음에두지도
않았을뿐아니라 
권하여도
하지않았으니
대개천성이 
이와같았다
인자하고
온후하며
성실한것이 
모두사실로
저푸른 
하늘에맹세코 
한글자도 
과찬하지않는다
그녀의 
죽음두고 
선조가..
어디자기 
어머니추모사
하는것같다
잠시
언급이되었던 
세작책봉에대해 
조금더 
깊이를더한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2년전인1591년
선조의나이가
40이되었지만 
아직 
세자를정하지 
못하고있었다
요즘이야
40대면 
아직한창이지만 
10대후반에 
혼인을했던 
조선시대때는
할아버지가 
될나이였다
방계혈통으로
왕의 
자리에오른 
선조는 
아버지덕흥군이 
중종의 
서자이니 
엄밀히말하면 
서손이었고 
게다가 
장남도아니고
셋째
아들이었다
왕은커녕 
왕가로서 
대접받기에도 
좀멀리 
떨어져있는 
입장이었지만 
자식이없던 
명종의 
총애를받았다
선조또한 
총명했고
예를알았다
그래서 
사대부들의
반대없이
왕위에 
오를수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평생서손의
콤플렉스에 
시달릴수밖에 
없었다
저멀리서 
대신들이 
수군거리면 
서손주제에
서손주제에라는
환청이들렸다
나의 
자식만큼은
이런고통을 
겪지않아야 
될게야
그래서선조는 
적자를기다렸다
하지만
더이상세자의
자리를 
비워둘수 
없다는것은
그도알고 
신하들도
알고있었다
그래서자연히
세자책봉 
문제가불거진다
당시 
거론될수있는
왕자로는
일찍죽은공빈의
소생이자 
서장자인 
임해군과둘째
광해군이있었고
인빈의 
소생인신성군이
있었다 
하지만장자인
임해군은
난봉꾼으로
신하들의마음을
얻지못했고
모범생
스타일인 
광해군에게
모든신하들의
마음이 
가있었다
동인영의정 
이산해.우의정
유성룡
서인좌의정정철
대사헌
이해수등
동서각당의 
중진들은합의했다
광해군으로
합시다
하지만이는 
이산해가 
서인을 
치기위한
계략에불과했다 
함께 
주청하기로한날
전에 
이산해는
인빈김씨의 
아우김공량을
찾아갔다
좌의정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세운후
신성군 
모자와외가를 
모두죽일것이오
깜짝놀란
김공량은 
한달음에
인빈에게달려갔다
인빈은 
바로선조에게
달려가
눈물로호소한다
정철이 
광해군을세우고
우리모자를 
죽이려하옵니다
정철이 
그럴리가있소
선조는 
일단그녀를 
달랬다
주청하기로한날
이산해는
배가아프다는
핑계를대고 
조정에 
나타나지않았다 
음,,,뭔가있군
입을 
닫아야겠어
같은동인인 
우의정 
유성룡은 
뭔가잘못됨을
눈치채고
정철의 
눈치를살피며
입을닫았다 
성격이급한
정철은
더이상못참고
튀어나가
주청한다
마마
더늦지않게 
세자를 
정하시옵소서
엉..
누가좋겠소
과..광해군이
좋을줄로 
아뢰옵니다
선조는
정철이광해군을
추천하자
바로인빈의
참소가 
생각났다
인빈의 
말이맞군
이것들이 
분노한선조는
호통을쳤다
내나이 
아직마흔도
안되었는데
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왕조에서
후계자의문제는
자칫역모로
이어질수도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예상
밖의반응에 
정철의등에는
식은땀이
줄줄흘렀다 
왕의
나이마흔이면
세자책봉을
이야기한게 
문제는아니었다 
세왕자중에
신성군은
너무어리고
임해군은
누가보아도
많이삐뚤어져
있었기때문에
광해군을
추천한게 
이상할것도
없었다
하지만 
조선은왕조
국가였다 
왕을제끼고 
일부신하들이
추진
할수있는일이
아닌것이다 
좀
도와주시오
정철은 
도움을바라며
유성룡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유성룡의입은
끝내
열리지않는다
같은 
동인이지만 
유성룡은
이산해와 
그리친하지도
않았다
자칫자신도
말려들어
이산해에게 
일타이피의 
찬스를
줄수는없었다
결국형세는
정철과서인이 
독자적으로 
세자책봉을 
추진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역사에서
알수있듯이 
정철이라는
자동차는
후진기어가없다
한번뱉은말을
주워담을수도
없는노릇이고
이미 
광해군을 
세우자고했는데
임금이 
노했다고 
신성군으로 
바꿀수도없었다 
차라리 
악셀을밟자
토..통..통촉해 
주시옵소서
정철은
계속광해군을
세자로추천했고
옆에서 
보다못한 
대사헌등 
서인의중신들도
가세했다
동인은
선조편에서 
서인을씹느라
분주해졌다
결국정철은
악셀을 
밟은대가를 
치르기위해 
유배길에올랐다
선조는
적자가없다면
현재곁에있는
인빈의
소생중에서 
세자를세우고
싶어했다
떠나버린 
공빈보다 
옆에있는인빈을
더챙겨
주어야함은
당연했다
인빈의
첫번째아들인
의안군은
일찍죽어버렸다
선조는
넷째인신성군을
마음에 
두고있었지만
장성한 
공빈의자식을
제치고 
세자가되기에는
나이가 
너무어려 
명분이부족했다
게다가 
광해군은
신하들의 
신망을 
받을정도로
명석하고
유능했다 
선조는
신성군이 
좀더자라 
재능을보여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를
바랬다
그런데정철이 
귀양길을간지
1년만에 
임진왜란이 
터졌고 
일촉즉발의 
위기에 
후계자의 
자리를 
비울수는없었다 
어쩔수없이 
피난도중에 
선조는
급히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분조를맡겼다
애비는
피난갈테니
너가분조를
이끌고 
집잘지켜라
임진왜란은
선조에게는
악몽
이었지만 
광해군에게는
천운이었다
선조가북으로
북으로도망가 
의주행궁에 
머물동안 
세자로책봉된 
광해군은
분조를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위해 
필사적이었다
선조와 
비교되는 
광해군의 
이런활약은
백성들의 
큰지지를받았다
광해군에게는
또다른 
행운이따랐다
1592년11월5일
다시
선조가 
왜군을피해 
의주로 
향하던중에 
신성군이 
병사한다
신성군을잃은
인빈김씨의 
슬픔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너의슬픔은
곧나의기쁨
하지만 
처세에능했던 
인빈은울고만
있지않았다
그토록 
미워하던 
세자광해군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광해군의
편에서 
그의
어미노릇을
자처했다
자기노후는
자기가 
챙겨야한다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금극목
즉금속은 
나무를극한다
수백년된 
큰나무도 
자그맣고 
보잘것없는
도끼한자루에 
의해서 
베어지고
톱과끌은 
나무를자르고
다듬는데 
쓰인다
조선왕실 
이씨속엔 
木이
들어가있어 
김金씨와
이씨간은
전자가 
후자를극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조선초기부터
김씨가 
왕비가되면 
이씨왕에게 
좋지않은일이 
생길수도 
있다고여겼고 
따라서 
세자비나 
왕비후보로서 
사주를
볼것도없이 
김씨는 
왕과궁합이
안맞는다는
결론이내려졌다 
김씨를
왕비에서 
배제하는
전통은
선조시대
후반부인
1602년까지는
잘지켜졌다 
제2대
정종의비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이왕이되기 
훨씬전
조선건국
이전에 
혼인했기때문에 
약간은
예외로볼수있다 
후궁은 
법적인부인이 
아니었으며 
고위직 
궁녀에불과했다
김씨를 
후궁으로
들이는것은
큰문제가 
되지않았다
묘하게도 
선조가
젊은시절 
사랑을주었던 
승은
궁녀3명 
공빈,인빈,순빈
모두김씨였다 
1600년 
의인왕비 
박씨가 
세상을떠났다
슬픔에
잠겨있어야할
선조는
이를계기로
적자에
대한꿈을
다시살린다
싱싱한여인을 
골라야해
후궁공빈
인빈,순빈,정빈
온빈등을통해 
여러왕자를
보았지만 
적자가없으니 
새로왕비를
또맞이하려는
것이었다
1602년
적자를바라던 
늘그막의 
선조는 
금기를깨고 
51살에 
32세연하
이조좌랑 
김제남의딸 
김씨처녀와 
혼인한다
통상적으로 
왕비간택은
초경이 
시작하지도 
않을나이인 
13~16세 
소녀가 
대상이된다
하지만 
선조는..right now
적자를
맹글어야 
했기때문에
매달 
안정적으로
달거리를 
치루는나이의 
처녀를 
왕비로간택했다
당시 
반가처녀들은
17~18세에 
혼인을했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김씨처녀는
약간혼기를
넘어선 
나이였다
하지만 
김씨처녀의 
친정아버지 
정6품이조좌랑
김제남보다 
10살이나많은 
노땅
선조의눈에는
뽀송뽀송한
솜털의 
병아리로보였다
선조와 
김씨처녀의 
혼인당일 
마른하늘에 
폭우가 
갑자기쏟아졌다
선조가 
세 명의 
김씨후궁을들인 
상태에서 
인목왕후김씨마저 
들인일로인해 
사람들이
불길함을느꼈다
선조수정실록
금기를깨버린
선조에대한
하늘의 
경고였을까
한편인빈은
선조의 
총애에서 
점점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나이
49살...
육체는
시들었고
믿을만한 
아들도없었다
왜란이후 
해주에머물던 
왕후박씨를 
대신해 
왕실의살림을
도맡아하며
실질적인
왕후노릇을 
해왔던 
인빈이었다
배신감이컸고
속이쓰렸다
새왕비가 
들어오는날
후궁들은
좋아하지않는
기색이 
역력히보인다 
영감이 
노망났군
조만간 
초상치르는것
아닐지도몰러
그러나 
인빈김씨만이
얼굴빛이
태연했다
포커
페이스를넘어 
오히려 
특별히
기쁜일이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인빈은이러한 
행동으로 
선조를 
끝까지곁에둔다
당시에는 
후궁이왕후가 
되지
못하란법 
자체가없었다
실제로인빈은
피난시절 
왕비처럼
행동하기도했다
의주행궁에 
있을때는
퇴선때문에 
정철에게 
비판받았던 
일이다
퇴선은국왕이나 
왕세자가
음식을먹고남은
음식을 
신하에게 
하사하는행위이다
따라서 
후궁은
할수없는일로
처세가뛰어난 
인빈이면 
자기를왕후로
착각을 
하지않고는
할수없는행위이다
귀인김씨가 
안에서 
퇴선을내보내 
별감이 
상을받들고와서
대신들 
앞에놓았다
정철이 
제일위에앉아서 
어디에서 
가져 왔느냐고
물었다
별감이
대답하기를
김귀인에게서
왔습니다
하니
정철은 
성난소리로 
속으로 
이년이
간이배밖에
나왔나
하지않았을까
내가 
비록못났으나 
어찌 
김귀인이 
먹다남은음식을
먹겠느냐
구지사에게나
갖다드려라
하였다
지사 
구사맹의딸이 
인빈의아들 
정원군의 
부인이기 
때문이었다
사맹이 
좌석에있다가 
상이오자 
부끄러워서
얼굴을숙이고 
일어나지 
못하였다
운암잡록중..
하지만 
선조는적자를 
원했다
자네를빈으로
봉해줌세
그래서
인빈은
50의나이에 
빈에오른다
이렇게 
선조는최소한의 
성의를보이고
젊은 
처자에게로 
돌아서며 
이제는빈이된 
인빈에게 
등을돌렸다
적자
영창대군의탄생
때는
칠월이라 
방안은 
몹시무더웠지만 
첫날밤은 
시간이
흐르는줄도
모르게흘러갔다
그해한여름
선조는 
농사를 
열심히지었다
자식농사
그의
노고에대해 
하늘이 
반응하여 
얼마후 
왕비의몸에는
태기가있었다 
임금은 
너무기뻐 
누군가와 
기쁨을 
나누고싶었다
선조는
오래간만에 
인빈의 
처소로
발길을돌렸다 
문지방에 
먼지가많이 
쌓인걸보니 
내가 
너무무심했군
인빈은 
언제나처럼 
반가이맞았다
사..상감
우러러뵈온지 
퍽오래옵니다
신정재미가 
매우
좋으신게지요
그래참으로 
오래간만이네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정말 
시시때때로
자네 
생각이나서 
그리웠다네
뭐발린소리같은데..
희롱의 
말씀입니다
시시때때로 
그리워졌다면
그토록
오래아니 
찾으셨겠습니까
이렇듯 
선조는순빈이 
임신할때와
마찬가지로
인빈의처소에서 
구정을
흡족이나누었다
인목왕후는 
드디어 
첫아이를낳았다 
그러나 
그아기에게 
방울이없었다
no방울..
딸
정명공주였다 
정실소생의 
원자는
아마내팔자에 
없나보다
선조는이렇게
한탄했다
하지만 
일년이채못가서 
어린왕비는
또다시 
회임을한다 
선조는
또한번
희망을걸었다 
어린왕비를 
극진히대하고
약방에명하여
날마다
지황과녹용을
다려다 
바치도록했다 
한해후에는
두번째 
아이가나왔다
이번에는
다리사이에
방울이보였다
쌍방울...
아들 
영창대군이었다 
축하식에서 
문무백관은 
영창대군 
만세까지불렀다
그광경은
마치세자가
영창대군인것
같은느낌을
주었다 
선조또한 
조신들이 
세자를제쳐놓고 
영창대군 
만세를 
부르는것을
별로탓하지않고 
그저만족한 
미소로 
대할뿐이었다 
평생의한을 
풀었네 
글쎄
하지만
이것을바라보는
광해군의 
마음은
여간쓰리고
아프지가않았다
하지만 
얼마안되어
광해군은
세자로서 
매일임금에게
문안하러 
들어갔는데
하루에도
몇차례씩들어가서 
임금의 
용태를살폈다
항간에 
유영경일파가 
세자
광해군을폐하고
영창대군을
새로세자에
봉하려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까닭이었다
감시였다
나라에서는 
매일임금의
병을낫게한다고 
산천에 
기도를했다
그러나 
선조의병세는
조금도 
호전되지않았다
이때부터 
임금은 
하루바삐 
전위를하고 
죽을생각만했다
너무어려,
그러나 
광해군에게 
전위를할려니 
열불이났다
급기야한날은
광해군이 
문안을
드릴려고하자 
호통을친다
네가 
무슨놈의세자냐
명나라에서 
인준해주지않는
세자가 
무슨세자야
호통치느라 
힘을다뺐는지 
며칠안되어
선조는
마침내 
세상을떠나고
광해군이
등극하게된다
선조의
나이는57살이요
재위는 
41년만이었다
원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인빈도선조와
마찬가지였다
못먹는 
밥에재라도
뿌려야 
속이시원했다
인빈은
비록광해군에 
붙었지만 
전에 
자기소생으로
세자가 
못된것을
늘아쉬워했다
인빈은
투트랙으로
처세를했다
유영경을부추겨
영창대군을 
왕위에 
올리도록 
같이
모의하기도했다
하지만 
연산군의전례를 
생각하며 
자신을 
비롯한가문
자손들이 
살아남기위해서는
광해군이 
왕에오를때를 
대비해야했다
유영경과의 
밀월은 
철저히비밀에 
붙여졌다
이에
광해군역시 
인빈김씨를 
서모라고 
공식적으로
호칭하면서 
선왕의 
후궁으로써
최고의 
대우를해줬다 
그녀의 
소생들대부분은
공신에 
책봉된다
결국인빈의 
3남인 
정원군의아들 
능양군이 
훗날반정으로
광해군을
밀어내고 
왕위에오른다
인빈의
3남정원군
스스로는 
개차반인생을
살다갔으나 
아들이 
인조가되는 
바람에 
원종으로추존된
재수짱인 
인물이다
묘호
으뜸 원은
반정무리들이
자기 
정당화를위한
작품이다
난봉질에만
으뜸이었던
인물에게 
참., 
그녀가 
아들에게서 
바랬던 
왕의자리를 
결국 
손자대에서 
이루어내었다
인빈과
공빈의암투는
결국인빈의
2승으로
막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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