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간의암투는
왕의
잠자리를놓고
시작되지만
왕자를
생산하고
성장하게되면
왕의
후계자리를
놓고벌어진다
파릇파릇한
공빈과인빈이
선조의
사랑을두고
벌인암투는
일방적으로
게임을이끌던
공빈이
체력저하로
별이되는
바람에
싱겁게끝났다
이제먼훗날
인빈은
막태어난
의안군을위해
공빈이남긴
장성한
두왕자를
상대해야했다
정비에게서
후사가나올
가능성이
없는상황에서
공빈의
임해군,광해군
두왕자는
왕위승계
순위1,2위였다
1577년봄
선조의
첫번째여인
공빈은
병상에서
사경을헤매고
있었고
두번째여인
인빈은
첫아이를
출산후
산후조리
중이었다
여색을탐했던
선조는
그러한공백기를
참기가어려웠다
먹이를찾아
매의눈으로
궁내를
스크린하던
선조에게
한여인이
눈에들어왔다
공빈과인빈은
한미하지만
양반집안
출신이었다
반면훗날
순빈으로불리는
이여인은
중인집안
출신이었다
형제들은
모두유명한
역관이었다
19살로
한참피어나는
그녀에게꽂힌
선조는
그녀와동침한후
바로숙원의
첩지를내렸다
파격적이었다
인빈에게도
동침후
5년만에
숙원첩지를
내렸었다
선조의사랑을
독점할
꿈에부풀었던
인빈으로서는
긴장할수
밖에없었다
그녀보다
4살이나어렸다
하지만
인빈은
그누구보다도
처세에능했다
자기아이를
낳느라
고생한인빈에
대한일종의
배신이었지만
인빈은
선조에게
이를따져
묻지않았다
그녀는
대신순빈에
대한경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인빈의
경계를뚫고
선조는
암암리에
그녀를찾았고
결국
1580년
아이를잉태한다
하지만
싸움은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순빈이
순화군을
임신한뒤
배가불러오자
선조는
슬그머니
다시
인빈을찾았다
자네..
나왔네
기..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그날이후
순빈이
출산할때까지
온갖아양을
다부려
다시선조를
묶어두는데
성공한다
순빈이
순화군을출산한
이후에도
선조는
인빈의처소만
들락거렸다
순..순할순
빈이라는
이름에서도
알수있듯이
순빈은
인빈과암투를
벌일능력도
성격도아니었다
그래서그런지
임진왜란시
피난길에
인빈을
데리고가면서
순빈도
같이딜고간다
둘이심심할때
말동무라도
하게
둘이서
늘사랑만
하고살수는
없는노릇이다
순빈은
중인출신이었고
훗날숙종의
장희빈처럼
영악하지못했다
보고들은것이
부족해
더이상
선조의사랑을
되찾아
오지는못한다
그렇게입다물고
조용하게
살아그녀에
대한기록을
실록에서
찾기어렵다
선조의사랑을
독차지하지도
않았다
아들순화군은
개차반으로
살다가요절했다
그러나
그녀자신은
끝이좋다
선조의사후
빈으로추존되어
중인
출신으로는
특이하게
희빈장씨처럼
빈까지오른다
인빈에게
순빈은
찻잔속의
태풍이었다
선조의
총애를받던
공빈김씨가
죽은후
선조가
인빈김씨에게
사랑의
발길을옮기자
의인왕후
박씨는
선조에대한
사랑을포기한다
난국물도없군
공빈이
죽을당시
임해군은6살
광해군은
3살이었고
아직어머니
사랑이
필요한나이였다
알라가지기를
포기한그녀는
대신
임해군과광해군
그리고
후궁들의
자식들에게
온갖
정성을쏟는다
의인왕후는
내전에서
가장
높은위치에
있었다
하지만후궁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세자로세우려
설칠때
말한마디못하고
속만끓였다
불여우라
불릴정도로
지혜로웠던
인빈
김씨는
의인왕후가
공빈김씨의
자식들을
총애한다는
사실을알게된다
명색이
왕비인그녀가
인빈의
자식들에게
등을돌리는
일은피해야했다
그녀는
의인왕후의
환심을사기위해
엄청나게
노력을한다
하지만
의인왕후는
남편의
사랑을앗아간
여인에게
특별한
정을주진않았다
두여인은
1555년생
동갑이었다
나도
여자이거늘
왕후는남은
불꽃을
광해군에
대한
사랑에태웠다
그무렵
대신들은
이산해의
동인과
정철의서인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선조는
인빈과그녀의
삼남
신성군을
챙기고자했다
동인영수
이산해가
선조의의중을
파악하곤
인빈과연합해
신성군을
세자로밀자
의인왕후박씨는
서인정철과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광해군을
세자로밀었다
그와중에
1592년
임진왜란이터졌다
도망치듯
한양도성을떠난
선조는
평양성에서
의주로
피난을떠나며
의인왕후대신
귀인김씨와
숙용김씨를
데리고떠난다
선조도
여느남자처럼
입안의
혀처럼구는
여잘좋아했다
임자는
알아서
몸챙기시게
의인왕후는
선조와떨어져
홀로평안도
강계로
피난을가게된다
인빈김씨와
의인왕후
처지가
주객이전도된
상황이되었다
요즘도
가족여행을
떠나면
애들은게임기나
휴대폰을
꼭챙기는데
재미없는
팬션에서
자기나름의
오락을
하기위함이다
선조도
그런마음이지
않았을까
1593년
한양도성이
왜병으로부터
수복되자
선조는
후궁들을딜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의인왕후는
그후4년간
계속해주에
머물렀다
1597년
정유재란이
터졌다
선조는
또후궁들과
함께했고
의인왕후는
광해군과함께
행동했다
1600년
의인왕후는
46살의나이로
한많은세월을
뒤로하고
세상을떠난다
왕비는
투기하는마음
의도적인행동
수식하는
말같은것은
마음에두지도
않았을뿐아니라
권하여도
하지않았으니
대개천성이
이와같았다
인자하고
온후하며
성실한것이
모두사실로
저푸른
하늘에맹세코
한글자도
과찬하지않는다
그녀의
죽음두고
선조가..
어디자기
어머니추모사
하는것같다
잠시
언급이되었던
세작책봉에대해
조금더
깊이를더한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2년전인1591년
선조의나이가
40이되었지만
아직
세자를정하지
못하고있었다
요즘이야
40대면
아직한창이지만
10대후반에
혼인을했던
조선시대때는
할아버지가
될나이였다
방계혈통으로
왕의
자리에오른
선조는
아버지덕흥군이
중종의
서자이니
엄밀히말하면
서손이었고
게다가
장남도아니고
셋째
아들이었다
왕은커녕
왕가로서
대접받기에도
좀멀리
떨어져있는
입장이었지만
자식이없던
명종의
총애를받았다
선조또한
총명했고
예를알았다
그래서
사대부들의
반대없이
왕위에
오를수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평생서손의
콤플렉스에
시달릴수밖에
없었다
저멀리서
대신들이
수군거리면
서손주제에
서손주제에라는
환청이들렸다
나의
자식만큼은
이런고통을
겪지않아야
될게야
그래서선조는
적자를기다렸다
하지만
더이상세자의
자리를
비워둘수
없다는것은
그도알고
신하들도
알고있었다
그래서자연히
세자책봉
문제가불거진다
당시
거론될수있는
왕자로는
일찍죽은공빈의
소생이자
서장자인
임해군과둘째
광해군이있었고
인빈의
소생인신성군이
있었다
하지만장자인
임해군은
난봉꾼으로
신하들의마음을
얻지못했고
모범생
스타일인
광해군에게
모든신하들의
마음이
가있었다
동인영의정
이산해.우의정
유성룡
서인좌의정정철
대사헌
이해수등
동서각당의
중진들은합의했다
광해군으로
합시다
하지만이는
이산해가
서인을
치기위한
계략에불과했다
함께
주청하기로한날
전에
이산해는
인빈김씨의
아우김공량을
찾아갔다
좌의정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세운후
신성군
모자와외가를
모두죽일것이오
깜짝놀란
김공량은
한달음에
인빈에게달려갔다
인빈은
바로선조에게
달려가
눈물로호소한다
정철이
광해군을세우고
우리모자를
죽이려하옵니다
정철이
그럴리가있소
선조는
일단그녀를
달랬다
주청하기로한날
이산해는
배가아프다는
핑계를대고
조정에
나타나지않았다
음,,,뭔가있군
입을
닫아야겠어
같은동인인
우의정
유성룡은
뭔가잘못됨을
눈치채고
정철의
눈치를살피며
입을닫았다
성격이급한
정철은
더이상못참고
튀어나가
주청한다
마마
더늦지않게
세자를
정하시옵소서
엉..
누가좋겠소
과..광해군이
좋을줄로
아뢰옵니다
선조는
정철이광해군을
추천하자
바로인빈의
참소가
생각났다
인빈의
말이맞군
이것들이
분노한선조는
호통을쳤다
내나이
아직마흔도
안되었는데
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왕조에서
후계자의문제는
자칫역모로
이어질수도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예상
밖의반응에
정철의등에는
식은땀이
줄줄흘렀다
왕의
나이마흔이면
세자책봉을
이야기한게
문제는아니었다
세왕자중에
신성군은
너무어리고
임해군은
누가보아도
많이삐뚤어져
있었기때문에
광해군을
추천한게
이상할것도
없었다
하지만
조선은왕조
국가였다
왕을제끼고
일부신하들이
추진
할수있는일이
아닌것이다
좀
도와주시오
정철은
도움을바라며
유성룡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유성룡의입은
끝내
열리지않는다
같은
동인이지만
유성룡은
이산해와
그리친하지도
않았다
자칫자신도
말려들어
이산해에게
일타이피의
찬스를
줄수는없었다
결국형세는
정철과서인이
독자적으로
세자책봉을
추진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역사에서
알수있듯이
정철이라는
자동차는
후진기어가없다
한번뱉은말을
주워담을수도
없는노릇이고
이미
광해군을
세우자고했는데
임금이
노했다고
신성군으로
바꿀수도없었다
차라리
악셀을밟자
토..통..통촉해
주시옵소서
정철은
계속광해군을
세자로추천했고
옆에서
보다못한
대사헌등
서인의중신들도
가세했다
동인은
선조편에서
서인을씹느라
분주해졌다
결국정철은
악셀을
밟은대가를
치르기위해
유배길에올랐다
선조는
적자가없다면
현재곁에있는
인빈의
소생중에서
세자를세우고
싶어했다
떠나버린
공빈보다
옆에있는인빈을
더챙겨
주어야함은
당연했다
인빈의
첫번째아들인
의안군은
일찍죽어버렸다
선조는
넷째인신성군을
마음에
두고있었지만
장성한
공빈의자식을
제치고
세자가되기에는
나이가
너무어려
명분이부족했다
게다가
광해군은
신하들의
신망을
받을정도로
명석하고
유능했다
선조는
신성군이
좀더자라
재능을보여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를
바랬다
그런데정철이
귀양길을간지
1년만에
임진왜란이
터졌고
일촉즉발의
위기에
후계자의
자리를
비울수는없었다
어쩔수없이
피난도중에
선조는
급히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분조를맡겼다
애비는
피난갈테니
너가분조를
이끌고
집잘지켜라
임진왜란은
선조에게는
악몽
이었지만
광해군에게는
천운이었다
선조가북으로
북으로도망가
의주행궁에
머물동안
세자로책봉된
광해군은
분조를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위해
필사적이었다
선조와
비교되는
광해군의
이런활약은
백성들의
큰지지를받았다
광해군에게는
또다른
행운이따랐다
1592년11월5일
다시
선조가
왜군을피해
의주로
향하던중에
신성군이
병사한다
신성군을잃은
인빈김씨의
슬픔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너의슬픔은
곧나의기쁨
하지만
처세에능했던
인빈은울고만
있지않았다
그토록
미워하던
세자광해군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광해군의
편에서
그의
어미노릇을
자처했다
자기노후는
자기가
챙겨야한다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금극목
즉금속은
나무를극한다
수백년된
큰나무도
자그맣고
보잘것없는
도끼한자루에
의해서
베어지고
톱과끌은
나무를자르고
다듬는데
쓰인다
조선왕실
이씨속엔
木이
들어가있어
김金씨와
이씨간은
전자가
후자를극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조선초기부터
김씨가
왕비가되면
이씨왕에게
좋지않은일이
생길수도
있다고여겼고
따라서
세자비나
왕비후보로서
사주를
볼것도없이
김씨는
왕과궁합이
안맞는다는
결론이내려졌다
김씨를
왕비에서
배제하는
전통은
선조시대
후반부인
1602년까지는
잘지켜졌다
제2대
정종의비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이왕이되기
훨씬전
조선건국
이전에
혼인했기때문에
약간은
예외로볼수있다
후궁은
법적인부인이
아니었으며
고위직
궁녀에불과했다
김씨를
후궁으로
들이는것은
큰문제가
되지않았다
묘하게도
선조가
젊은시절
사랑을주었던
승은
궁녀3명
공빈,인빈,순빈
모두김씨였다
1600년
의인왕비
박씨가
세상을떠났다
슬픔에
잠겨있어야할
선조는
이를계기로
적자에
대한꿈을
다시살린다
싱싱한여인을
골라야해
후궁공빈
인빈,순빈,정빈
온빈등을통해
여러왕자를
보았지만
적자가없으니
새로왕비를
또맞이하려는
것이었다
1602년
적자를바라던
늘그막의
선조는
금기를깨고
51살에
32세연하
이조좌랑
김제남의딸
김씨처녀와
혼인한다
통상적으로
왕비간택은
초경이
시작하지도
않을나이인
13~16세
소녀가
대상이된다
하지만
선조는..right now
적자를
맹글어야
했기때문에
매달
안정적으로
달거리를
치루는나이의
처녀를
왕비로간택했다
당시
반가처녀들은
17~18세에
혼인을했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김씨처녀는
약간혼기를
넘어선
나이였다
하지만
김씨처녀의
친정아버지
정6품이조좌랑
김제남보다
10살이나많은
노땅
선조의눈에는
뽀송뽀송한
솜털의
병아리로보였다
선조와
김씨처녀의
혼인당일
마른하늘에
폭우가
갑자기쏟아졌다
선조가
세 명의
김씨후궁을들인
상태에서
인목왕후김씨마저
들인일로인해
사람들이
불길함을느꼈다
선조수정실록
금기를깨버린
선조에대한
하늘의
경고였을까
한편인빈은
선조의
총애에서
점점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나이
49살...
육체는
시들었고
믿을만한
아들도없었다
왜란이후
해주에머물던
왕후박씨를
대신해
왕실의살림을
도맡아하며
실질적인
왕후노릇을
해왔던
인빈이었다
배신감이컸고
속이쓰렸다
새왕비가
들어오는날
후궁들은
좋아하지않는
기색이
역력히보인다
영감이
노망났군
조만간
초상치르는것
아닐지도몰러
그러나
인빈김씨만이
얼굴빛이
태연했다
포커
페이스를넘어
오히려
특별히
기쁜일이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인빈은이러한
행동으로
선조를
끝까지곁에둔다
당시에는
후궁이왕후가
되지
못하란법
자체가없었다
실제로인빈은
피난시절
왕비처럼
행동하기도했다
의주행궁에
있을때는
퇴선때문에
정철에게
비판받았던
일이다
퇴선은국왕이나
왕세자가
음식을먹고남은
음식을
신하에게
하사하는행위이다
따라서
후궁은
할수없는일로
처세가뛰어난
인빈이면
자기를왕후로
착각을
하지않고는
할수없는행위이다
귀인김씨가
안에서
퇴선을내보내
별감이
상을받들고와서
대신들
앞에놓았다
정철이
제일위에앉아서
어디에서
가져 왔느냐고
물었다
별감이
대답하기를
김귀인에게서
왔습니다
하니
정철은
성난소리로
속으로
이년이
간이배밖에
나왔나
하지않았을까
내가
비록못났으나
어찌
김귀인이
먹다남은음식을
먹겠느냐
구지사에게나
갖다드려라
하였다
지사
구사맹의딸이
인빈의아들
정원군의
부인이기
때문이었다
사맹이
좌석에있다가
상이오자
부끄러워서
얼굴을숙이고
일어나지
못하였다
운암잡록중..
하지만
선조는적자를
원했다
자네를빈으로
봉해줌세
그래서
인빈은
50의나이에
빈에오른다
이렇게
선조는최소한의
성의를보이고
젊은
처자에게로
돌아서며
이제는빈이된
인빈에게
등을돌렸다
적자
영창대군의탄생
때는
칠월이라
방안은
몹시무더웠지만
첫날밤은
시간이
흐르는줄도
모르게흘러갔다
그해한여름
선조는
농사를
열심히지었다
자식농사
그의
노고에대해
하늘이
반응하여
얼마후
왕비의몸에는
태기가있었다
임금은
너무기뻐
누군가와
기쁨을
나누고싶었다
선조는
오래간만에
인빈의
처소로
발길을돌렸다
문지방에
먼지가많이
쌓인걸보니
내가
너무무심했군
인빈은
언제나처럼
반가이맞았다
사..상감
우러러뵈온지
퍽오래옵니다
신정재미가
매우
좋으신게지요
그래참으로
오래간만이네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정말
시시때때로
자네
생각이나서
그리웠다네
뭐발린소리같은데..
희롱의
말씀입니다
시시때때로
그리워졌다면
그토록
오래아니
찾으셨겠습니까
이렇듯
선조는순빈이
임신할때와
마찬가지로
인빈의처소에서
구정을
흡족이나누었다
인목왕후는
드디어
첫아이를낳았다
그러나
그아기에게
방울이없었다
no방울..
딸
정명공주였다
정실소생의
원자는
아마내팔자에
없나보다
선조는이렇게
한탄했다
하지만
일년이채못가서
어린왕비는
또다시
회임을한다
선조는
또한번
희망을걸었다
어린왕비를
극진히대하고
약방에명하여
날마다
지황과녹용을
다려다
바치도록했다
한해후에는
두번째
아이가나왔다
이번에는
다리사이에
방울이보였다
쌍방울...
아들
영창대군이었다
축하식에서
문무백관은
영창대군
만세까지불렀다
그광경은
마치세자가
영창대군인것
같은느낌을
주었다
선조또한
조신들이
세자를제쳐놓고
영창대군
만세를
부르는것을
별로탓하지않고
그저만족한
미소로
대할뿐이었다
평생의한을
풀었네
글쎄
하지만
이것을바라보는
광해군의
마음은
여간쓰리고
아프지가않았다
하지만
얼마안되어
광해군은
세자로서
매일임금에게
문안하러
들어갔는데
하루에도
몇차례씩들어가서
임금의
용태를살폈다
항간에
유영경일파가
세자
광해군을폐하고
영창대군을
새로세자에
봉하려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까닭이었다
감시였다
나라에서는
매일임금의
병을낫게한다고
산천에
기도를했다
그러나
선조의병세는
조금도
호전되지않았다
이때부터
임금은
하루바삐
전위를하고
죽을생각만했다
너무어려,
그러나
광해군에게
전위를할려니
열불이났다
급기야한날은
광해군이
문안을
드릴려고하자
호통을친다
네가
무슨놈의세자냐
명나라에서
인준해주지않는
세자가
무슨세자야
호통치느라
힘을다뺐는지
며칠안되어
선조는
마침내
세상을떠나고
광해군이
등극하게된다
선조의
나이는57살이요
재위는
41년만이었다
원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인빈도선조와
마찬가지였다
못먹는
밥에재라도
뿌려야
속이시원했다
인빈은
비록광해군에
붙었지만
전에
자기소생으로
세자가
못된것을
늘아쉬워했다
인빈은
투트랙으로
처세를했다
유영경을부추겨
영창대군을
왕위에
올리도록
같이
모의하기도했다
하지만
연산군의전례를
생각하며
자신을
비롯한가문
자손들이
살아남기위해서는
광해군이
왕에오를때를
대비해야했다
유영경과의
밀월은
철저히비밀에
붙여졌다
이에
광해군역시
인빈김씨를
서모라고
공식적으로
호칭하면서
선왕의
후궁으로써
최고의
대우를해줬다
그녀의
소생들대부분은
공신에
책봉된다
결국인빈의
3남인
정원군의아들
능양군이
훗날반정으로
광해군을
밀어내고
왕위에오른다
인빈의
3남정원군
스스로는
개차반인생을
살다갔으나
아들이
인조가되는
바람에
원종으로추존된
재수짱인
인물이다
묘호
으뜸 원은
반정무리들이
자기
정당화를위한
작품이다
난봉질에만
으뜸이었던
인물에게
참.,
그녀가
아들에게서
바랬던
왕의자리를
결국
손자대에서
이루어내었다
인빈과
공빈의암투는
결국인빈의
2승으로
막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