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 작성자영준|작성시간26.06.19|조회수43 목록 댓글 0 글자크기 작게가 글자크기 크게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찬찬히살펴보면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비운의왕들을 쉽게찾을수있다 백제의 마지막왕이었던 의자왕 7백년고구려 사직을 접어야했던 보장왕 신라천년사직을 왕건에게 바쳐야했던 경순왕 역시 마찬가지로 5백년 고려사직을 이성계에게 넘겨야했던 공양왕까지 역사는 이들의이름앞에 비운이나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왕조의마지막을 같이 슬퍼해주고있다 그리고 이비운의 임금들은 비운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비장미를 더욱더 돋우었다 백제의 의자왕은 당나라로 끌려가 온갖모욕을 당한것도 모자라 3천궁녀를 거느리며 황음에 젖어지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했다 이런충격 덕분인지 만리타향에서 시름시름 앓던 의자왕은 쓸쓸한최후를 맞이해야했다 고구려의 보장왕역시 당나라로 끌려갔으나 나름생각있는 왕이었는지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키다 쓰촨성으로 유배되는등 굴곡진인생을 살아야했다 신라의 경순왕은 그이름처럼 경순 예의바르게 도리를따르려 하였으나 태자가나서 천년사직을 지키겠다며 뻗대는통에 가정파탄의 슬픔을 겪어야했다 고려의 공양왕은 또어떠한가 그이름처럼 공양 공손하게 양위하였으나 이성계는 이런공양왕을 원주로내쫓고 이도모자라 2년뒤에 공양왕을 죽이게된다 수백년간 이어져내려온 사직을 말아먹었다는 역사적오명에 개인적 비극까지 겹쳐지면서 이들의인생은 말그대로 한의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그런지 우리나라의 전통 무속신앙에는 이들을 왕신으로모시는 경우를 드물지않게 볼수있다 특히경순왕의 경우는 경상북도를 중심으로해 충청북도와 경기도일부 서울까지진출하며 막강한교세를 자랑하고있다 이대목에서 본질적인 의문을 말해야겠다 과연 경순왕은 불행했을까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경순왕이 비운의왕이라고 불려도 되는걸까 라는 의문이다 물론 신라의마지막 왕이라는 타이틀이주는 프리미엄은있다 중생들이란게 마지막 이라는말에 끌리지않는가 더구나 천년왕국이 가져다주는 시간의무게까지 합한다면 비운의왕이라는 타이틀에 부족함은없다 그러나 이런타이틀을 거둬내고보면 어떨까 앞에서언급한 의자왕 보장왕 공양왕의경우 그말년은 비참 그자체였다 자연수명마저 다하지못한 경우도있고 만리타향으로 끌려가 싸늘한감시의 눈초리속에서 여생을 보내야하는 고통도 겪어야했다 그렇다면 경순왕은 어떠했을까 저…전하 크…큰일 났사옵니다 견훤이… 견훤이 뭐어쨌다구 견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자슥은 뭐빨아먹을게 있다고 툭하면일루 넘어오는거야 대충 애들보고 막으라고그래 저기… 그게지금 여기까지 쳐내려왔거든요 927년 포석정에서놀던 신라55대 임금경애왕은 견훤의기습공격 소식에 당황하게된다 거…걸마가 왜 서라벌까지 온거야 그걸제가 어떻게압니까 일단은 살아야 하지않겠습니까 얼른 토끼셔야합니다 견훤의 신라침공 정확히말하자면 경주 기습공격은 피해자인 경애왕으로서도 가해자인 견훤으로서도 피하고싶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은이미 벌어진상태 견훤은눈에 쌍심지를켜고 경애왕과 그측근들을 찾아 헤매고있었다 이자슥 어디갔어 얼른안내놔 저기… 벌써바른거 같은데요 바르긴뭘발라 이게 어디서말하는 네가지 하고는… 확된장발라줄까 전하 경애왕을 찾았습니다 그래 당장끌고와 저기… 그게좀 어려울거 같은데요 응..왜 어됐슴다 경애왕의자살 견훤은 왜뜬금없이 경주를 공격했던것일까 그리고 경애왕의 뒤를이을 신라의왕은 누가 될것인가 견훤에의해 얼떨결에 왕이된 청년귀족김부 아니경순왕 그는 왕위에오른뒤에 별할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붙으려면 고려 한테붙는게 남는장사입니다 FA도 한철이라고 몸값많이 부르는데가야죠 그러다 먹튀라고 욕먹으면 먹튀라뇨 신라가어디가 어때서요 아니… 지금뭐우리가 영토라고 주장할수있는게 서라벌 정도가다인데 어허 간판은어따 팔았습니까 천년사직 이게 중요한겁니다 쟤네들 기껏해야 몇십년도안된 놈들입니다 한반도 정통왕조의 뼈다귀가있는데 이것만한게 어디있습니까 간판값만해도 먹튀논란은 잠잠해질겁니다 당시신라의 사정은 어딘가로 인수합병을 해야할상황이었다 영토라고해봤자 경주근처를 다스리는 정도가다였고 군사력이라고 불릴만한무력도 거의 존재치않았다 이미927년의 경주 기습공격으로 상당수의무기와 기술자들이 후백제로넘어간 상태에서 군비를 재건한다는것은 망국에 가까워지는 신라로선 버거운일이었다 이때당시 신라에게 남은길은 누구한테 붙느냐라는 선택의 문제밖에없었다 후백제보셨죠 쳐들어와서 한짓보셨잖슴까 신라를 아주강간의 왕국으로만들어 버렸잖습니까 지나가는 여자들붙잡아 강간하고 약탈하고… 창고털어간거 보십시오 얘네들한테 갔다간 그걸로게임끝 디엔드입니다 그럼 고려밖에없습니다 왕건보십시오 아가좀 얼빵하게보여도 순박한맛이 있잖슴까 고려 애들왔을때 보십시오 그흔한강간사고 한번일어나지 않았슴다 게다가 백제쪽으로 붙는거보다 고려쪽으로 붙는게 몸값도 화악 올릴수있습니다 계속 후백제한테 발리고 있다보니까 고려애들도 몸이달았거든요 이럴때우리가 고려쪽에붙으면 절마들 정신못차릴겁니다 전하결단을 내리시죠 후백제의견훤에게 판판히깨지던 왕건 후백제의 기세는무서웠다 궁예를몰아내고 왕위에앉았던 왕건은 조직력에서부터 밀렸다 그나마 이런조직력은 시간이 지나면 낫아질수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전투력에서는 견훤에게 상대가 되지않았다 환갑이 지난나이에도 말을타고 전장을누비는 견훤앞에서 왕건은 밀릴수밖에없었다 이야기가 이렇게 돌아가다보니 신라는 자연스럽게 고려쪽으로 눈을 돌리게된것이다 백제야 승리이후의 전리품정도로 신라를 생각하고있었지만 고려로서는 당장신라가 급했던것이다 남은건 가격뿐이었다 최대한 버티다보면 고려쪽에서 좀더쳐줄 겁니다 타격밀리죠 투수력에서발리죠 믿는건 오직하나 수비뿐인데 FA 최대어인 신라를 놓치겠습니까 조금만 더기다리면 대박터트릴수 있을 겁니다 스토브리그를 기다리는 FA자격 취득선수의 마음이랄까 뭐필요한데 응.. 원하는거 다준다니까 얼마야 얼마면되겠어 응.. 아.. 진짜내지갑 다가져가라 응.. 실질적인신라의 군사보장 시스템이었던 고려 그럼에도불구하고 고려는 은근하게 그리고끈덕지게 신라의 마음을돌리기 위해애썼다 이때 경순왕은 어떤반응을 보였을까 어차피망할거면 고려로가야지 견훤한테 나라넘겨봐 살인의 추억찍을일있어 또한번 서라벌이 강간의 왕국이되는 꼴은못보지 견훤덕분에 왕이되었지만 견훤에의해 박살이난 경주를 생생하게목격한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것이다 이제남은건 시기와 가격문제뿐 조금만 더버티면 합당한가격에 신란천년의 역사를 넘길수있을거란 생각을 하던그때 덜컥 일이터져버렸다 저…전하 견훤이… 견훤이뭐 또…또 쳐들어온거야 아뇨 왕건한테 투항했답니다 935년6월 견훤이 나주를통해 고려로 넘어갔던것이다 견훤이왜 멀쩡하게잘있더만 가아들이 또.. 한성질하잖슴까 피가 어디가겠습니까 나이들어 힘빠지니까 애들이 들고일어난거죠 그…그럼 왕건이는 입째졌죠 후백제를 날로먹을수있는 기회인데 당장남궁을 집으로주고 양주땅을 식읍으로 내려줬답니다 이것도모자라 종40명에 자가용으로 쓸말도 10필이나 건넸답니다 엉.. 연봉쎈데 대우는어떤데 에.. 법적으로는 태자보다높고 왕건보다 아래라는 형식으로했는데 꽤깍듯합니다 왕건도 상보 어른이라면서 극존칭을쓰는데 장난 아니랍니다 아.. 그자슥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쳐야합니다 더질질끌다간 값떨어집니다 견훤 그자슥은 좀만더개기지 하필우리가 타이밍 잡고있을때 치고들어오냐 하여튼 일생에 도움이안돼요 견훤의 급작스런투항에 당황 하게되는 신라와경순왕 더지체하다간 몸값이 더떨어질 급박한상황 과연 그들은 타이밍을 잡을수있을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북마크 공유하기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0 댓글쓰기 답글쓰기 댓글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