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과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파노라마’에서 기획한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실험에 일란성 쌍둥이 자매인 에이미와 낸시 킹스턴이 참여했다. 2주 동안 에이미는 초가공식품만 섭취했고, 낸시는 신선한 과일, 채소, 집밥으로 구성된 식단을 따랐다. 식사는 칼로리, 지방, 당분, 식이섬유를 동일하게 맞추었고 단 한가지, '가공 여부'만 달랐다.
초가공식품
초가공식품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포장재에 담겨 있으며, 설탕·지방·소금 및 방부제, 감미료, 유화제, 보습제, 인공 향료, 인공 색소 등 여러 첨가물과 함께 기계를 이용해 혼합된 여러 식품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침 시리얼, 냉동 피자, 즉석 수프, 슬라이스 한 흰 식빵, 핫도그, 감자칩이 대표적인 예다.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가정 주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수분해 단백질, 변성 전분, 고과당 옥수수 시럽, 에스테르 교환 오일, 경화 지방 같은 성분들이 성분 목록에 포함된 식품은 초가공식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실험 전과 후에 각각 에이미와 낸시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에이미는 1킬로그램이 늘었고, 낸시는 체중이 줄었다. 에이미의 콜레스테롤과 혈당은 상승했고, 낸시의 수치는 낮아졌다. 단 2주 만에 일어난 변화였다.
가공식품의 무엇이 이런 해로운 효과를 일으키는 걸까? 보통 가공식품은 지방·당분·소금 함량이 높아 문제라고 비판을 받지만, 이번 실험에서 두 식단은 이 성분들을 동일하게 맞췄다. (1) 식감의 차이일까? 예컨대, 분말 귀리는 통으로 자른 귀리보다 혈당을 더 급격히 올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는 가공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어 탄수화물 흡수가 촉진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2) 포장재 때문일까? 플라스틱이나 종이 포장재에서 발견되는 프탈레이트, 과불화알킬물질(PFAS), 비스페놀A는 여러 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3) 초가공식품을 더 빠르게 섭취하기 때문에 포만감 신호가 작동하지 못해 과식으로 이어지는 걸까? "패스트푸드"는 제공 속도뿐 아니라 먹는 속도에도 해당되는 개념인 셈이다.
유화제
유화제는 가공식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식품첨가물이기에 집중적 연구 대상이다. 유화제는 기름과 물이 분리되는 것을 막고, 아이스크림을 부드럽게 하며, 빵이 부스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초콜릿에서 지방이 분리되어 생기는 흰 얼룩 형성을 늦추어준다.
유화제는 장내 미생물군을 변화시킬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장내 미생물군은 당뇨병, 비만에서부터 우울증, 염증성 장 질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건강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크론병과 대장염으로 나타나는 염증성 장 질환의 발생 빈도는 최근 몇 년 사이 가공식품 소비 증가와 발맞추어 늘고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널리 사용되는 두 가지 유화제인 카복시메틸셀룰로스와 폴리소르베이트 80이 장내 세균을 친염증성 종 위주로 급격히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물의 장벽을 보호하는 점막층이 얇아져 세균이 침투해 장벽에 염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체 대상 연구가 필요하지만 어려움이 있다. 식품 공급망에는 60종이 넘는 유화제가 있으며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다. 일부는 장에 해로울 수 있고, 일부는 안전하다. 무작위 대조 연구를 위해서는 한 집단이 유화제가 전혀 없는 식단을 유지해야 하는데, 수천 가지 식품에 유화제가 들어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식이 설문지를 통해 유화제 섭취량을 추정하고, 수년에 걸쳐 어떤 질병 패턴이 나타나는지 추적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파리 소르본 대학의 마틸드 투비에 박사 연구팀이 10만 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유화제 노출이 암 발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 유화제가 단순히 가공식품 소비 전반의 지표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초가공식품 자체와 암 사이의 연관성도 발견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연구팀이 주관한 영국 바이오뱅크 연구는 약 20만 명을 13년간 추적 관찰했는데, 역시 초가공식품 섭취와 암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두 연구 모두 신체 활동, 체질량지수, 칼로리 섭취, 음주, 흡연을 통제했다. 연관성의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위험비'가 약 1.1 수준으로, 이는 연구 기간 동안 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이 가장 적게 먹은 사람에 비해 암 진단을 받을 위험이 10% 더 높음을 의미한다.
결론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와 같지 않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해악에 관한 증거들은 매우 많이 쌓여 있다. 건강하려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많이 먹는 것보다 좋지 않은 것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무엇을 피해야 할지가 분명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