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과 한 개는 의사를 멀리한다”는 말이 있다. 사과를 의사에게 세게 던지면 멀리할 수 있다. 뜬금없는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마법 같은 건강 효능을 지닌 단일 식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단지 좋은 식단과 나쁜 식단이 있을 뿐이다. 사과를 전혀 안 먹어도 훌륭한 식단이 될 수 있고, 사과를 많이 먹어도 나쁜 식단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 속의 '화학물질 전체'가 몸속에서 만들어내는 총합적 효과다.
'화학물질'이라는 말을 들으면 앞에 “유독한” 같은 형용사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맥락을 살피지 않으면 '유독한 화학물질'이라는 표현은 사실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살리실산을 보자. 이 물질은 사과를 비롯한 다양한 과일과 채소에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아스피린이 체내에서 대사될 때 생성되는 것이 살리실산이며, 이 살리실산이 혈액 응고 위험을 낮추는 생리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심장마비 치료와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소량 복용한다. 하지만 과량으로 복용하면 치명적이다.
혈액 검사에서 살리실산이 검출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유독한 화학물질이 몸 안에 있다니 걱정해야 할까, 심장 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하니 오히려 안도해야 할까? 맥락을 모르면 답을 알 수가 없다. 어느 정도의 혈중 농도가 위험하고, 어느 정도가 보호 효과를 내는지 알아야 한다. 화학물질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500여년 전 파라셀수스가 “모든 물질은 용량에 따라 독이 된다.” 고 했는데, 여기에 덧붙여, “용량에 따라 치료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음식 속 화학물질에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세상 모든 것은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화학물질이 없는 식단을 고집한다고? 진공 상태에서 아무것도 못 먹을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과 속 화학물질을 살펴보자.
식단에 향기를 더하기 위해, 냄새가 좋은 매니큐어 제거제(아세톤)를 아주 살짝 넣어 볼까? 세균이 있을지 모르니 소독용 알코올(이소프로판올)을 조금 첨가해볼까? 그렇다면 사과를 먹으면 된다. 모든 사과에는 아세톤과 이소프로판올이 들어 있다. 이걸로 독성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된다면, 청산도 추가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니라 모두 자연이 사과속에 넣은 것이다. 사과를 먹으면 위험할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위험할 수가 없다. 그 양이 너무 미미해서 아무 영향도 없다. 사과에는 300가지가 넘는 천연 성분이 들어 있으며, 건강에 미치는 효과는 그 성분 '전체'의 작용이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성분은 '폴리페놀'이다. 폴리페놀의 강력한 항산화작용 때문이다. 최근 항산화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건 아닐까? 항산화제는 과일과 채소에 풍부하며, 우리가 산소를 들이쉴 때마다 몸속에서 생성되는 불안정한 자유라디칼을 무력화해준다. 우린 산소 없이는 살 수 없고, 그 대가는 병과 노화다. 세포가 소비하는 산소의 2~3%는 반응성이 극도로 높은 자유라디칼로 전환되어 다른 분자를 파괴한다. 그 파괴 대상이 단백질, 지방, 핵산 같은 필수 생체분자이면 심장질환, 암, 치매가 생길 수 있다. 심지어 노화 자체도 누적된 자유라디칼에 의한 손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항산화제가 과잉 자유라디칼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다.
식물성 식품에 들어있는 항산화제의 종류는 아주 많다. 비타민 C, E, 카로티노이드 등이 주목을 받지만, 실제 과일과 채소의 항산화 활성은 대부분 폴리페놀 덕분이다. 폴리페놀은 플라보노이드, 안토시아닌, 칼콘, 하이드록시신나메이트 등 여러 물질 군들을 포괄한다. 각 군은 분자 구조의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수많은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고, 구조가 다른 만큼 항산화 능력도 다르다. 따라서 식단에서 폴리페놀의 분포와 각각의 항산화 능력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폴리페놀이 건강에 기여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험관에서 자유라디칼을 중화하는 것과, 암이나 심장질환을 예방하는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주요 연구가 1993년 란셋Lancet에 발표되었다. 네덜란드 연구자들은 65~84세 남성 805명의 식단을 설문으로 조사해 플라보노이드 섭취량을 추정하고, 5년간 추적 관찰했다. 흡연, 체중, 콜레스테롤, 혈압, 운동, 비타민·식이섬유 섭취량 등을 모두 보정한 후에도, 폴리페놀 섭취량이 많을수록 심장 질환 사망률이 낮았다. 주요 폴리페놀 섭취원은 차, 양파, 사과였다. 하루 한 개의 사과가 실제로 차이를 만든 것이다.
폴리페놀의 항암 효과에 대한 증거도 있다. 코넬대 연구진은 대장암·간암 세포에 사과 추출물을 가했더니 증식이 억제되었고, 껍질 추출물이 과육 추출물보다 효과가 뛰어났다. 사과가 유방암 위험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유방암 유발 물질에 노출된 쥐에게 사과 추출물을 각각 사람 기준 하루 1개, 3개, 6개에 해당하는 양으로 먹였더니 발병률이 17%, 39%, 44% 줄었다. 암이 발병한 이후에도 사과를 계속 먹이니 전이 억제 효과가 나타났고, 6개월 후 종양 수가 25% 감소했다. 하루 한 개의 사과 효과가 실제로 입증된 셈이다. 또, 쥐의 뇌세포를 폴리페놀 중 하나인 케르세틴quercetin에 노출시키자, 산화 손상 저항성이 높아져 알츠하이머병 등 뇌질환 위험이 낮아질 가능성도 관찰되었다. 실제로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주스(과일·채소)를 주 3회 이상 마신 노인의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주 1회 미만 마신 집단보다 훨씬 낮음을 발견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케르세틴이 전립선암 세포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과, 식단 속 케르세틴 함량이 폐암 위험과 역상관 관계임이 밝혀졌다. 케르세틴의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고려하면 놀랍지 않다. 사과에는 케르세틴을 비롯해 다양한 폴리페놀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사과를 '건강효능 마법사'라고 부르기 전에, 항산화 잠재력이 더 높은 식품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붉은 강낭콩, 블루베리, 크랜베리는 1회 섭취량 당 항산화력이 사과보다 높다. 오레가노는 사과보다 40배 높다. 중요한 것은 총 폴리페놀 섭취량이다. 현실적으로 사과를 매일 먹는 건 쉽지만, 강낭콩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결국 항산화식품 섭취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섭취할수록 건강에 필요한 항산화제를 복합적으로 섭취할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약 1g의 폴리페놀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품종에 따라 사과 한 개에 100~300mg 들어 있으니, 하루 두 개 정도 먹는 것이 좋다. 누군가 사과에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가 들어 있다고 겁을 준다면 이렇게 말씀하시면 된다.
“자연이 사과에 넣어 놓은 극미량의 포름알데히드가 해로울 수 있다고 해도, 폴리페놀의 이로운 효과가 훨씬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