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자라고 살던 솔개마을이 눈에 선하다 59년 9월11일에 솔개마을 덮친 사라호태풍 때도 이정도는 아닌것같은 기억인데 용당 동명목재10m 땟목이 언덕위에 나둥그러진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태풍에 등대가 떠밀려온것부터 마을 도단집(강철지붕)은 거센바람에 지붕이 날아가 없으니 온동네가 숙대밭이었던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와중에 철부지인 나는 마을가게에 비에 젖은 딱지 줍느라 정신이 팔려 공찌라고 싱글벙글 했으니 부끄러운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다음날 태풍이 지니간뒤에 마을 형님친구들과 신선대로 이기대로 좌초된 대형선박을 구경한적이 있는데 태풍의 위력은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게 어린 나에게는 태풍과 사는것과는 전혀 별게였던것 같다 학교는 이재민으로 교실마다 가득하니 수업은 뒷전이고 다만 학교를 가지 않는것이 수업이 없다는게 신난 아이였으니 아직도 생각나는건 1.2학년때는 교실 책상이 없어 마루바닥에서 엎드려 수업을 했으니 정말 그 시절 가난한 교육환경은 지금 아이들은 상상이 되지않으리라 싶다 내 짱꿍 계집애가 보고싶은 오늘이다 얌전하고 숫기가 없어 교실에서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바닥에 그냥 실례를 할정도니 요즈음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나 간혹 있을법한 어릴적 교실 풍경이 선하다 그때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정이 가득한 풍경이 눈에 그려지고 점심시간이면 깡냉이죽이랑 고학년 올라가면서 빵과 우유를 배급으로 주던 그 시절은 다시는 올리도없지만 인간미 넘치던 그때가 좋아던것 같다 이재민의 고통은 직접 당하지 않으니 알지도 못하고 먹고 자고 한다는것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수없다는건 상상하기 힘들다 한 이재민의 한마디 "전쟁때도 피난같다 돌아오니 집은 그대로 있어 살수 있었는데"하던말 화재로 재만 남은 폐허가 되어버린 집은 멍하니 바라볼수밖에 없다는게 아무리 천재지변이라고 하지만 너무 어이없고 슬픈 현실이다 국가에서 아무리 보상을 해준다해도 2017년 강릉화재때도 그렇지만 이재민의 생활고는 거의 바닥이라고 해야 될것같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보고있는사람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무관심하게 잊혀져 버린다는게 가장 심각한 현실의 우리 모습이다 전쟁보다 더 심각한 이재민을 국가적으로 도와야하는데 민심은 시큰둥하니 화재현장을 보니 첨단시대에 아직 답답한 현장을 보니 한심스럽기만하고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소방관 대우나 현장출동 장비는 언제 국민을 위한 나라가 될까? 나라놈둘이나 정치하는놈들 싹쓸어 담아서 쓰레기 소각장에 태워 버리고싶은 답답한 심정이다 내 주변 이웃을 둘러보고 아주 사소한 작은것이라도 함께하는 동항24회 친구이기를 바란다 추신/나름 생각을 전할수있다는건 행운이다 친구야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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