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膠柱鼓瑟(교주고슬) - 거문고의 기둥을 풀로 붙여 고정하고 거문고를 탄다

작성자세이지|작성시간20.01.24|조회수94 목록 댓글 0

史記列傳 故事


아교 교(膠), 기둥 주(柱), 연주할 고(鼓), 거문고 슬(瑟)


교주고슬(膠柱鼓瑟)

1) 음훈 : 교주고슬(膠柱鼓瑟)
2) 관련사항 : ① [출전]《史記》〈廉頗 藺相如列傳〉
3) 의미 : 고지식하여 조금도 변통성이 없음의 비유.



유래


조나라에 조사(趙奢)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 괄(括)이라는 아들이 있어 병서를 가르쳤는데 매우 영리하여 뛰어나게 병법을 잘 알았다. 그러나 조사(趙奢) 는, "전쟁이란 생사가 달린 결전이므로 이론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병법을 이론적으로만 논하는 것은 장수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앞으로 괄(括)이 장 수가 된다면 조나라가 큰 변을 당할 위험이 있다." 하며 부인에게 나라에서 조괄 을 대장으로 삼지 않도록 말려 달라는 유언까지 했다. 뒷날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 략하면서 첩자를 보내 流言蜚語를 퍼뜨렸다. "조나라 염파 장군은 늙어서 싸움하 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진나라는 조괄이 대장이 될 것 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流言蜚語에 빠진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대장으 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상여(藺相如)가 극력 반대하면서, "임금께서는 그 이름만 믿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는 것은 마치 기둥[膠柱]을 아교로 붙여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한갓 그의 아버지가 준 병법을 읽었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을 모릅니다."[膠柱鼓瑟] 그러나 임금은 그토록 신임하 던 인상여의 말도 듣지 않고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였다. 조괄은 대장이 되는 그날 로 병서에 있는 대로 하여 전부터 내려오는 군영들을 뜯어고치고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대로만 작전을 전개했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은 이 론만으로 작전을 감행한 끝에 40만이라는 대군(大軍)을 몽땅 죽이는 중국 역사상 최대 최악의 참패를 가져왔다.


거문고의 기둥을 풀로 붙여 고정해 두고 거문고를 타니 조율을 할 수 없게 되어 소리[音]가 제대로 날 리가 없었다.



『주(註)』
⼔ 膠柱: 거문고의 줄을 받쳐주는 받침대. 기러기발 또는 안족(雁足)이라고도 한다.







변통성이 없이 소견이 꽉 막힌 사람


교착(膠着): 아주 단단히 달라붙음, 현상을 유지하여 조금도 변동이 없음


고무(鼓舞): 북을 쳐서 춤추게 한다는 뜻으로 남을 격려하여 힘이 나게 함





거문고를 가락에 맞추어 타려면 줄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이리저리 옮겨야만 된다. 그런데도 한 번 가락에 맞추었다고 해서 아예 받침 기둥을 아교풀로 꽉 붙여 고정시켜 버리면 다시는 가락에 맞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한 번 무슨 일에 성공하였다하여 언제나 그 방법이 성공하는 유일한 길인 줄 알고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변형시킬 줄 모르면 다시는 성공의 가망이 없음을 이야기할 때에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인데 조나라 왕이 명장 '조사'의 아들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려 하자 '인상여'가 말한 다음과 같이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임금께서 이름만 듣고 조괄을 쓰려 하시는 것은 마치 기둥을 아교로 붙여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한갓 그의 아버지가 전해 준 책을 읽었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 모릅니다". 아닌게 아니라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은 이론만의 작전을 감행한 끝에 40만 대군을 잃어버리는 중국 역사상 최대의 참패를 당하였다고 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지나쳐 흘려 버리는 것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 하고, 자신에게 과오가 있으나 그 과오에 대한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병을 지니고 있으면서 의사를 꺼린다'는 의미로 '호질기의(護疾忌醫)'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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