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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결(口訣)과 향찰(鄕札)

작성자살점|작성시간21.05.04|조회수2,71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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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결(口訣) : 구두 끊어 읽기

訣 : 끊을 결


구결은 한문을 읽을 때 편리하게 하거나 한문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한자를 이용하여 조사나 어미 등을 끼워 넣은 것을 말합니다. 구결은 음독구결(音讀口訣)과 석독구결(釋讀口訣)로 나뉩니다. 음독구결은 한자를 음으로 읽으면서 중간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만 넣어서 읽습니다. 석독구결은 한자의 뜻에 맞춰 우리말로 풀어 읽습니다. 표기에 사용한 구결은 한자 획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변형하였습니다.



석독구결을 사용한 대표적인 자료는 불경의 하나인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입니다. 아래의 문장은 구결을 읽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문장을 제시한 것입니다. 첫 구절인 ‘信行 具足’는 ‘신행구족시며’’라고 읽는데, 이때 ‘’’은 한자 ‘乙(을)’을 간략하게 한 것으로 우리말의 조사 ‘을’을 나타냅니다. 같은 방식으로 ‘’’는 한자 ‘爲(위)’를, ‘’는 한자 ‘示(시)’를, ‘’는 한자 ‘㫆(며)’를 간략하게 표기한 것입니다.




향찰(鄕札)

札 : 편지 찰/뽑을/꺾을 찰



향찰은 우리말 그대로를 표현하려 한 차자 표기법으로, 우리말의 문법 요소뿐 아니라 어휘까지도 한자를 빌려 나타냈습니다. 향찰은 시가(詩歌)의 일종인 향가(鄕歌)를 적는 데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主 : 님 주, 주인 주


향찰 표기의 대표적인 예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서동요[신라]’입니다. 아래 서동요의 문장에서 ‘隱(은), 良(량), 古(고), 乙(을), 矣(의), 遣(견), 如(여)’는 모두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를 나타낸 것입니다. ‘善花公主主’에서 두 번의 ‘主’가 나오는데 첫 번째 ‘主’는 한자의 음을 빌려 선화공주의 ‘주’를, 두 번째 ‘主’는 한자의 뜻을 빌려 ‘님’을 적은 것입니다.




독자적인 문자가 없던 고대, 향찰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한 차자표기법 또는 그 문장이다. 향찰로 기록한 가요를 향가라고 하며 현재 주로 향가를 통해 향찰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향찰문학은 『삼국유사』에 삼국·신라시대의 향가 14수, 『균여전』에 고려 초의 향가 11수와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 등 총 26수의 시가가 전해지고 있다.


향찰의 표기는 어절을 단위로, ‘훈독(訓讀)+음독(音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단어의 개념이나 의미는 한자의 뜻을 살리고, 조사나 어미같은 문법관계 등은 한자의 음을 이용했다. 예를 들어 향가 ‘서동요’ 중 ‘선화공주주은(善花公主主隱)’은 한자 ‘善花公主’와 ‘隱’의 음 부분과 두 번째 ‘主’의 뜻 부분을 가져와 ‘선화공주님은’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두나 구결의 표기구조와 유형 상 같지만, 향찰은 완전한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했고 ‘음독+음독’의 연결 구조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두(吏讀)


讀 : 읽을 독, 구절 두, 구두 두



이두는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우리말의 어순대로 문장을 표기한 것입니다. 초기의 차자 표기가 단순히 고유 명사 표기에 머물렀던 반면 이두는 우리말 문장 전체를 표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두 표기는 주로 행정용 문서를 비롯한 실용문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이두 표기의 대표적인 자료인데, 신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두 사람의 다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자료에서 ‘하늘 앞에서’를 뜻하는 ‘天前’은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前天’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말 어순에 따라 ‘天前’으로 적었습니다.



■ 향찰과 이두, 구결의 유사성과 차이

향찰과 이두, 구결은 서로 유사하지만 문체·용도·표기법에 차이가 있다. 이두는 넓은 의미로는 한자 차용 표기법 전체를 가리키나 보통은 한자를 국어의 문장 구성법에 따라 고치고 이에 토를 붙인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두는 한문을 우리말의 어순에 맞춰 재배열하고 일부 부사 등에 한자를 차용한 것이고, 향찰은 한문과 관계없이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완전히 표기했다. 한편 한문의 재배열이 있는 이두와 달리 구결은 한문은 그대로 두고 한문의 독해를 돕기 위해 토만 단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표기는 고유명사나 단편적인 단어표기에서 발생해 이두, 구결, 향찰의 순서로 발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향찰은 차자표기법 중 가장 발달한 표기법이다. 고구려에서 발생한 초기이두문인 변체한문이 신라로 전해져 신라에서 한자를 우리말 어순으로 배열하는 문체가 사용됐다. 그 후 7세기경에 한문에 토를 다는 구결이 발달했고, 향찰은 구결과 우리말 어순의 이두가 접합된 형태로 보인다.


향찰은 문화의 창조적 계승의 한 사례로, 향찰이 만들어진 시대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활발하게 교류되던 시기였다. 우리 선조들은 문화주체성을 살려 한자의 음과 훈을 사용해 우리말을 적었다. 이에 향찰의 보전은 문화전승을 위한 선조들의 뜻을 기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향찰이라는 용어는 『균여전(均如傳)』에 실린 최행귀(崔行歸)의 역시(譯詩) 서문에 나타난 것으로 향찰을 당문(唐文, 漢文)에 대립되는 뜻으로 사용하였는데, 향가(鄕歌)의 문장과 같은 우리말의 문장이라는 뜻으로 썼다.

현재 국어학에서 향찰이라는 말은 향가의 문장과 같이 우리말을 차자로 완벽하게 표기한 문장이나 그 표기체계(표기법)라는 뜻으로 쓴다.

향찰이라는 말은 문헌상으로는 『균여전』에 단 한번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향가·향언(鄕言)·향명(鄕名)이라는 말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향(鄕)’이라는 글자로 자주 표현한 것을 보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자주 쓰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초기학자들은 모든 차자표기를 이두(吏讀)라고 하여 ‘향찰’이라는 개념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는 신라시대의 차자표기법은 ‘향찰’, 고려시대 이후의 차자표기법은 ‘이두’라고 하여 구별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향찰과 이두는 용도·문체·표기법상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두는 고려시대에 와서 갑자기 향찰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향찰이 발달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향찰이 발달한 이후에도 공존하여 사용되었으므로, 이들을 시대의 차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비록 명칭의 발생연대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실재하였던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향찰의 기록으로서 현재 전하여 오는 것은 주로 향가이다. 『삼국유사』에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의 향가 14수, 『균여전』에 고려초의 향가 11수가 실려 전하고,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悼二將歌)」 1수가 있어 모두 26수의 시가가 향찰로 기록되어 전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향찰(鄕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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