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제(謝肉祭)와 사순절(四旬節)
사순절(Lent)이란 부활절로부터 역산하여 여섯 번의 주일을 뺀 40일간의 금욕기간을 말하는데 이미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 때 제정한 만큼 대단히 유수한 기독교 절기 중 하나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부활절을 앞두고 40일간의 고난기간을 지키는 것은 주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고행하신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40(四旬)이란 숫자는 성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유랑했고, 또 모세는 애굽에서 40년, 미디안에서 40년, 시내산에서 40일을 금식한 후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됩니다. <재>란 죄에 대한 참회의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굵은 베옷에 머리에는 검불을 쓰고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 위에 앉아 참회했습니다.
따라서 사순절은 회개와 자기 성찰, 고행과 헌신의 절기입니다.
고기도 삼가고 일체 술이나 가무도 금하며 근신하고 금욕하는 기간입니다. 초기에는 몹시 엄격하게 지켜져 하루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달걀만 허용됐고, 사제들에게는 단식이 강요되는 일년 중 가장 빡세고 혹독한 고행의 절기였습니다.
흔히 사육제(謝肉祭)로 번역되는 남미와 유럽 가톨릭 국가들의 카니발(Carnival)은 바로 이 사순절 기간 동안의 고기와의 이별이 아쉬워 벌이는 축제입니다.
라틴어 <카르네 발레>(Carne Vale 고기여 안녕)가 어원인 카니발은 삼바 무용수들이 현란한 퍼레이드를 벌이며 <지상 최대의 쇼>를 연출하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과 가면 축제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 피렌체 카니발, 또 꽃마차 퍼레이드로 유명한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캔디와 초콜렛을 뿌리며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독일의 쾰른 카니발, 스위스의 바젤 카니발 등이 유명한데
그 모든 사육제가 원래는 사순절을 앞두고 한번 실컷 먹고 마시며 원없이 즐기자는 뜻에서 유래된 교회력상의 축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교회의 그런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상업주의로 흘러 저질 소비문화와 퇴폐문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그 열기와 관심은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으며 남미 국가들도 자국의 관광산업을 위해 적극 육성하고 있어서 해마다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육제의 열광적인 쾌락과 사순절의 참회, 그리고 이어지는 부활절의 거듭남은 그것이 그대로 우리 인생의 순례 여정을 뜻합니다.
[분수대] '제5의 계절'
동서양을 막론하고 1년은 춘하추동(春夏秋冬)4계절이다.
그러나 독일 쾰른엔 '제5의 계절' 이 있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11분에 시작해 참회의 화요일(올해는 2월 27일)에 끝나는 사육제 기간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사순절(四旬節) 직전의 마지막 3일간이 제5의 계절의 하이라이트다.
원래 사육제, 즉 카니발(carnival)이란 말은 라틴어의 'carne(고기)' 와 'val(격리)' 을 합친 말로 '고기를 사양하는 잔치' 란 뜻이다.
이 때문에 사육제(謝肉祭)를 '辭肉祭' 로 써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부활절로부터 거꾸로 계산해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에 금욕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실컷 먹고, 마시고, 놀아보자는 것이다.
이 기간 중 라인강변의 여러 도시에서 사육제가 열리는데 쾰른과 뒤셀도르프, 마인츠의 것이 유명하다. 이름도 조금씩 달라 쾰른에서는 라틴말 그대로 '카르네발' 로 부르지만 마인츠에선 '파스트나흐트' , 바이에른에선 '파싱' 이라 부른다.
독일의 서남부에서만 사육제가 열리는 이유는 이곳이 가톨릭 지역으로, 나머지 신교 지역에선 너무 무절제하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질펀하다.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독일인, 즉 질서를 잘 지키고 무뚝뚝하며 검소한 독일인들은 온데간데 없고 바보.광대들의 세상이 된다.
같은 날 대서양 건너 브라질에서 벌어지는 리우 카니발이 환락과 광란의 축제라면, 라인 카니발은 전통적이며 다소 정치적이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이 지역을 점령한 프로이센이 이 기간 중 지배계급에 대한 조롱을 허용한 전통 때문이다. 정치인은 물론 광우병 쇠고기, 기민당 비자금 스캔들 등이 올해 도마에 올랐다.
'장미의 월요일' 이었던 지난달 26일 영하의 날씨에도 쾰른과 뒤셀도르프에 각각 1백만명, 마인츠에 50만명의 시민과 광대가 가장행렬에 참가했다. 요란한 차림으로 시내를 누비는 광대들은 기분 좋다는 뜻으로 '알라프' '헬라우' 를 외치며 사탕과 꽃을 거리의 시민들에게 마구 던져준다. TV에 잡힌 시민의 한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인생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겁니다. "
우리도 본디 음주가무를 좋아해 온갖 축제로 흥에 겨웠던 낙천적 민족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여유는 다 어디 가고 하고한 날 쌈박질만 해대는 악다구니만 남았다. 누가 우리의 제5의 계절을 빼앗아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