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寶甁]
(1)[불교] 물병이나 꽃병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수음 관음보살은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다.
(2)[불교] 밀교(密敎)에서 관정(灌頂)할 때 쓰는 물을담아 두는 그릇.
■ 수덕사대웅전 삼존불 복장 오보병(五寶甁)
https://youtu.be/bJE7P9-s9Sg
https://youtu.be/ptqfUWiRN30
五寶甁은 모두 방형의 직물로 되어 있다.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홍색,
북쪽은 흑자색,
중앙은 황색
으로 동쪽에는 淡靑色紬(담청색주), 서쪽은 素色紬(소색주), 남쪽은 紅色花紋緞(홍색화문주), 북쪽은 黑紫色紬(흑자색주), 중앙은 黃色紬(황색주)를 사용하였다.
● 紬 : 명주 주
[부수] 糹 (실사변, 6획) [획수] 총11획
1. 명주(明紬: 명주실로 무늬 없이 짠 피륙)
2. 모으다
3. 철하다
4. 뽑다, 잣다(물레 따위로 섬유에서 실을 뽑다)
5. 뽑아내다
6.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다)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由(유→주)가 합(合)하여 이루어짐.
보병(寶甁) 안에는 곡식, 약재, 잎사귀, 꽃 등과 함께 五輪種子, 금강저, 번, 산개가 직물로 형상을 만들어 있었다.
오륜종자는 원형으로 각 방위에 맞는 범서가 주서되어 있다.
아래는 국립중앙박물관 주최 '발원' 특별전 출품작 중 고려후기~조선전기 오보병. 목조에 금박,
국립중앙박물관. 관음보살좌상의 복장물로 납입된 오보병으로, 중앙을 의미하는 황금색 병이다.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淨甁)
목이 긴 형태의 물병.
설명
범어(梵語) 군디카(Kundika)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음역(音譯)하여 군지(軍持) 또는 군치가(桾雉迦)라 하고, 수병(水甁)이라고도 한다.
즉, 물을 담는 병으로, 물 가운데서도 가장 깨끗한 물을 넣는 병을 이른다. 정병에 넣는 정수(淨水)는 또한 중생들의 고통과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감로수(甘露水)와도 서로 통하여, 감로병 또는 보병(寶甁)이라고도 일컫는다.
정병은 본래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으로서 승려의 필수품인 18물(物)의 하나이던 것이, 차츰 부처님 앞에 정수를 바치는 공양구(供養具)로서 그 용도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불교의 정병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불교와 함께 우리에게 전래된 것으로, 부처님 앞에 물공양으로 바치는 불기(佛器)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보살의 지물(持物)로서 구제자(救濟者)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편이자 자비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정병과 불·보살과의 관계는 왕자요 구제자요, 길상(吉祥)과 풍요를 부여하는 자로서의 이미지가 서로 복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들고 있는 정병이다. 이 정병에는 감로수가 들어 있어 감로병이라고도 하는데, 관세음보살은 이 감로수로써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갈증을 해소해 준다. 정병은 관세음보살 이외에 미륵보살이나 제석천(帝釋天)·범천(梵天) 등도 들고 있다.
정병의 재료는 토기나 금·은 등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주로 청동과 도자기가 애용되어 왔다. 특히 불교를 숭앙하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는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불전공양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의 불구로서 대량으로 조성되었으며,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고려의 독창성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정병의 형태는 주둥이부분[注口部]·목부분[頸部]·몸체부분[胴體部]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긴 목에 나팔모양의 주둥이가 달려 있고 타원형의 몸체에 굽이 달려 있는 모양이다. 둘째는 긴 목에 테두리가 둘러져 있고 불룩 나온 배 위에 기다랗고 뾰족한 끝이 나와 있으며, 몸체의 넓은 어깨에는 주둥이가 나와 있는 형태로서 여기에는 뚜껑까지 갖추어져 있다.
첫째 형태의 대표적인 예로는 경주 불국사 부근에서 출토된 청동병(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이 알려져 있으며, 둘째 형태의 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국보 제92호)을 대표로 들 수 있다.
문양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가장 특색 있고 독자적인 무늬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도자기와 청동제 정병에 공통적으로 포류수금문과 유로수금문(柳蘆水禽文) 등을 중심으로 한 연판문(蓮瓣文)·여의두문(如意頭文)·당초문(唐草文)·운문(雲文)·뇌문(雷文) 등의 여러 가지 문양이 각 부에 따라 장식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각 부 중에서도 몸체에는 버드나무·갈대·부들·연 등 수생초(水生草)와 함께 오리·기러기·원앙 등 물가 생활에 관련이 깊은 소재를 배치함으로써 생동감 있고 조용한 물가 풍경을 주로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동제의 정병에서 새롭게 보이는 은입사기법은 밀랍주조법(蜜蠟鑄造法)과 함께 청동기 전래 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고려시대의 우수하였던 금속공예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장적(意匠的)인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을 뿐만 아니라 조형성(造形性) 또한 뛰어난 정병은 매우 존귀하게 취급되어 온 물병으로, 종교적인 특수목적을 띠고 주로 사찰에서 사용되었다.
■ 불상 및 불화의 복장(腹藏)
양구 심곡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및 복장유물
(楊口深谷寺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腹藏遺物)
복장(腹藏)
정의
불상과 불화 내부에 안치하는 종교적 물목(物目).
개설
불교에서 예경 대상으로 모셔지는 불상과 불화에는 생명력과 신성성을 상징하는 종교적 물목이 불상 내부와 불화 복장낭에 안치된다. 복장 물목의 핵심은 후령통(喉領筒)으로, 그 안에는 사리를 비롯해 오보병(五寶甁), 오곡(五穀), 오보(五寶), 오약(五藥), 오향(五香) 등 오방과 세상에서 얻어지는 진귀한 물품들이 들어간다. 후령통 외에도 각종 다라니를 적은 진언(眞言)과 경전, 비단 천을 비롯한 복식 등이 들어가는데 이를 통칭하여 복장이라 한다. 이러한 복장 물목은 복장 의식을 통해 생명력을 가지며 성물로서 신성성을 가진다.
복장을 안립(安立)하는 방식은 고려시대에 정립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복장 물목과 그 상징성, 각종 진언,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의식 절차는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간행된 복장 의식집인 『조상경(造像經)』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전한다. 『조상경』의 내용은 후령통에 들어가는 각종 물목과 진언을 포함해 후령통 외부에 놓이는 진언, 문서류, 그리고 황초폭자(黃綃幅子)를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할 정도로 복장의 중심은 후령통에 집중되어 있다. 그 외 불상에서 다량으로 출토되는 다라니와 경전, 복식 및 천 등은 복장이란 관점에서 보면 후령통을 고정하고 내부를 채우는 충전재 역할을 하지만 불상을 제작할 당시 납입되었기에 그 역사성은 상당하다. 이런 이유로 복장으로 출토된 발원문을 포함해 다라니와 경전, 복식과 직물 등은 미술사를 비롯하여 서지학 및 복식사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로서 학술적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불상에 복장을 언제부터 넣었는지 알 수 없으나 간다라 불상과 중국 초기 불상의 정수리에 사리(舍利)를 안치하는 작은 구멍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부터 부처님과 같은 신위력을 부여하려는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남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766) 대좌 밑에 사리호를 안치한 사례가 있어 이러한 인식이 인도와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복장이란 말 그대로 불상 뱃속에 다양한 물목을 납입하는 것의 시원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당(唐)의 문헌에 따르면, 성도(成都) 실상사(實相寺)의 불상에 오장육부의 모형을 납입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 실제 일본 세이료지[淸涼寺]에 소장되어 있는 북송(北宋)의 「목조석가여래입상」(985)에서 오장육부의 모형이 발견되었다. 같은 시기 요(遼)에 건립된 응현 불궁사(佛宮寺) 목조오층탑의 「소조여래상」에서는 부처 치아, 수정, 후령을 비롯하여 각종 경전과 불화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복장을 납입하였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펴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낙산사 관음보살상의 배 안에 있던 진장(珍藏)이 오랑캐로 인해 없어지자 옛 복장에 의거해 심원경(心圓鏡) 2개, 오향, 오색실과 금낭(錦囊) 등을 갖춰 완전하게 복원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실제 고려 후기에 조성된 불상에서도 이와 유사한 복장 물목이 발견되었다. 현재 고려 후기 불상 복장은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274 이전 조성),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1301),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1346),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1346),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88),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89 개금), 안정사 금동여래좌상(고려 후기) 등이 알려져 있다.
「문수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복장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봉과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목에는 작은 방울인 후령(後鈴), 가슴에는 목합(木盒), 복부에는 발원문과 문서류, 맨 아래에는 비단천, 그리고 주변에 다라니 뭉치를 놓는 납입 방식이 확인되었다. 또한 문서류 중 복장 입물색(腹藏入物色)에는 심주, 후령, 사리통, 팔엽통, 황폭자(黃幅子)를 비롯해 오향, 오보, 오약 등 복장의 세부 물목이 자세히 기록되었으며 이 기록은 실제 복장 물목과 일치한다. 이 밖에 목합에서는 진심종자(眞心種子)와 다섯 방위에 맞춰 방형, 삼각형, 원형, 반월형, 원형의 모양을 낸 오방경에 오륜종자(五輪種子)를 적은 진언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고려 후기에는 불상에 후령, 목합, 발원문, 다라니 등을 위치에 맞게 납입하고 목합에는 오향, 오보, 오약 등의 세부 물목을 넣고 진심종자와 오륜종자의 진언을 표기하는 복장 형식이 정례화되었다.
고려시대에 체계화된 복장 물목과 안립 체제, 납입 방식은 조선시대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복장의 물목과 절차 및 진언 등 복장에 관한 모든 내용과 의식을 정리한 『조상경』이 간행될 정도로 규범화되었으며 그 납입 대상도 불상만이 아니라 불화에도 적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조상경』은 용천사본(1575)을 시작으로 능가사본(1677), 화장사본(1720), 김룡사본(1746), 유점사본(1824) 등이 간행되었다. 시기에 따라 『조상경』에는 불상과 불화에서 나타나는 후령통의 형태를 비롯하여 물목 및 진언이 생략되거나 추가되는 등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조선시대 복장의 가장 큰 변화는 후령통의 명칭과 외형 변화이다. 고려시대에 오보, 오향, 오곡, 오약 등을 담았던 팔엽통(八葉筒)은 조선시대에 팔엽후령통(八葉喉領筒)에서 후령통으로 변하였으며, 형태도 합에서 몸체가 긴 원통형에 뚜껑에 긴 관이 솟은 모양으로 변화하였다. 형태 변화는 1490년에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내부에 안치된 후령통에서 확인된다. 납입 당시 모습 그대로 출토된 이 후령통은 두 겹의 황초폭자에 싸여 있으며 근봉지(謹封紙)로 봉해져 있었다. 황초폭자에는 오륜종자의 범자가 오방에 맞춰 적혀 있고 두 겹의 황초폭자 사이에는 발원문과 보협인다라니(寶匧印陀羅尼)가 놓여 있다. 후령통은 원통형의 몸체에 뚜껑은 볼록하고 그 중앙에 긴 관이 솟아 있다. 이 긴 관은 후혈(喉穴)로 고려시대 목합에서 볼 수 없던 구조이다. 해인사 후령통에서 후혈은 오색의 비단천이 감겨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후령통 안에 들어 있는 오보병을 감싼 오색실이 이 후혈을 통과해 외부로 나와 후령통 외부에 놓인 사방경을 감싸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황초폭자로 감싸던 후령통의 외부 물목에 변화가 일어났다. 후령통 밑에는 열금강지도(列金剛之圖)가 놓이고 위에는 팔엽대홍련지도(八葉大紅蓮之圖)와 준제구자천원지도(准提九字天圓之圖)를 두어 후령통을 감싸는 절차가 복잡해졌다. 또한 불상과 다르게 불화의 경우 방통형 후령통이 등장하였다. 이는 불화의 장황 방식이 족자에서 액자로 변하면서 불화 후면에 납입하기 적합하게 변형되면서 생긴 결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대체로 「문수사 지장시왕도」(1774)와 「관음사 현왕도」(1811)처럼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화의 복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1824년에 간행된 유점사판 『조상경』에 반영되어 오늘날까지 복장의 절차로 전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불상에 복장을 납입하는 방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부터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발견되는 복장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복장 문화를 형성하였다. 사리를 중심으로 각종 산물을 오방에 대입하여 체계화된 복장 물목은 후령통을 중심으로 변화 발전하였으며, 이 불교 사상과 지식은 『조상경』에 집대성되어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또한 후령통과 함께 안립되는 각종 다라니와 경전, 복식 및 천 등은 그 시대의 불교 지식과 기술력이 함축된 최고품으로, 한 시대의 문화 역량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처럼 복장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불교 사상과 지식을 함축하고 있으며 문화사적으로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반영된 문화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