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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의 동학 - 시천주 기도문(侍天主 祈禱文)

작성자살점|작성시간21.03.07|조회수725 목록 댓글 0

시천주문(제자 주문)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
(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萬事宜)

지기금지 원위대강
(至氣今至 願爲大降)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https://youtu.be/2azrSRqIl1w


https://youtu.be/hbF88MeiKJc

https://youtu.be/pj0-LtdjGYY


https://youtu.be/ZD9V06twnnM


시천주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제시한 '21자 주문'속에 들어 있다.

시천주는 내 마음 속의 천주(한울님)를 모시고 섬긴다는 뜻이다. 동학에서 천주란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동학의 천주는 기독교의 초월적인 유일신과는 전혀 다르다.



초기 동학에서는 초학주(初學呪)·강령주(降靈呪)·본주(本呪)의 차례로 행하여졌다.

그런데

초학주는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萬事宜)’의 13자,

강령주는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의 8자,

본주는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의 13자이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주문을 제자주문(弟子呪文)이라 부르면서 선생주문(先生呪文)을 따로 두기도 한다.

선생주문은 ‘지기금지 사월래(至氣今至 四月來)’의 7자와 ‘시천주령아장생 무궁무궁만사지(侍天呪令我長生 無窮無窮萬事知)’의 14자로 되어 있다.

선생주문은 제자주문과 함께 수행이나 예식 때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대개 제자주문만 사용한다.

강령주는 지기(至氣)가 강령하기를 청원한다는 의미이기에 ‘접령주(接靈呪)’라고도 하며, 천령과 통하게 한다는 뜻에서 ‘통령주(通靈呪)’라고도 한다.

최제우(崔濟愚)가 내림받았다는 21자 주문은 강령주에 본주를 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삼통심주(三通心呪)·통신주(通神呪)·조화주(造化呪)·비공주(飛空呪)·강필주(降筆呪) 등이 있으나, 최시형(崔時亨)은 이 주문의 폐단을 지적하며 금지하기도 하였다.

조석으로 하는 개별 수련 때에는 강신주와 본주를 외운다.


"동학(東學)의 핵심은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 아니라 시천주(侍天主:한울님을 모심)에 있다."


■ 동학에 대한 새로운 주장 김용휘 박사


19세기 말의 대표적 민족종교인 동학을 주제로 고려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용휘(39.사진) 국립 군산대 연구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최근 펴낸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책세상)을 통해 동학의 잊혀진 측면을 새롭게 복원했다.

동학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열기와 함께 주로 역사학계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동학혁명''동학농민운동'등으로 불리며 근대 민중.민족운동사의 일환으로 활발히 연구돼 왔다. 역사학계에서 동학과 관련 수많은 박사논문이 배출된

반면, 철학계의 박사논문은 김 교수가 두번째다. 역사학계의 논문들이 동학의 '사회 개혁'에 주목해 왔다면, 김 교수는 동학의 잊혀진 본령인 '자기 개혁'의 철학성을 되살려내고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동학의 궁극 목표인 개벽은 자기 개혁의 수양에서 출발하며 그것을 표현한 개념이 시천주다.

시천주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제시한 '21자 주문'속에 들어 있다.

시천주는 내 마음 속의 천주(한울님)를 모시고 섬긴다는 뜻이다. 동학에서 천주란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동학의 천주는 기독교의 초월적인 유일신과는 전혀 다르다.

주문이 나오고, 한울님이 나오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을 터이다.

김 교수는 바로 그 점이 동학의 핵심이 시천주에서 인내천으로 바뀌어간 배경이라고 했다.


신비적 요소를 제거하면서 근대적 교단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시천주의 의미가 점차 잊혀져 갔다는 것이다. 아울러 19세기 말 이래 국내 정세가 차분히 수양을 하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간 측면도 작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천주를 빼고 인내천만을 얘기할 경우 가장 중요한 개인의 수양과 수행을 누락시킨다는 것이 김 교수 주장의 골자다. 인내천은 시천주 수양의 결과로 얻어지는 인식의 수준이다.


김 교수는 인내천만 강조하다 보면 한울님이란 존재가 부정되는 오류가 발생한다고 했다.

한울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존중하는 동아시아 전통의 유불도(儒佛道) 사상을 동학은 계승했다.

서양 근대 이성중심주의에 의해 무시당한 그 세계를 이제 복원할 때가 됐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김 교수는 또 "주문을 보통 주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 아쉽다"며 "현대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행할 수 있는 건강 수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1자의 주문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다 보면 저절로 단전호흡이 되므로 자연히 기운이 일어나게 되고 더 빠르게 정신 집중이 되게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별도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동학은 한국 최초의 자생적 학문이자 종교사상"이라고 규정했다.

동학을 '우리 학문'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는 동학의 '동'자에 주목했다. '동국여지승람' '동사강목'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등에 나오는 '동'자와 같은 의미로 조선을 가리킨다고 했다.

김 교수는 "수운 최제우는 말로만 인의예지를 외치는 유학과, 마음 밖에 신이 있다며 외재적 신에게만 의존하는 서학에 맞서는 '조선의 학문'을 세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https://youtu.be/pj0-LtdjGYY




http://m.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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