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성은 공(孔)이요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의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子路)는 그의 字다. 훗날 죽어서 젓갈로 담기는 탓에 공자로 하여금 젓갈식을 끊게 만든 장본인이다
■ 공자의 건달 출신 제자, 자로(子路) = 중유(仲由)
논어에서 자로는 무골(武骨)에다가 성격도 드센 전형적인 호걸형 인물로 나온다.
또한 대부의 가신을 지낼 만큼 정치적 능력도 상당했다.
공자에게 면박을 많이 받지만 칭찬도 받고 공자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후에 위(魏)나라 공실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젓갈로 담겨진다.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한 공자의 행동이 자기 집의 젓갈을 모두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공자 식인설이라는 루머로 잘못 퍼졌다.
‘사기’ 중니 제자 열전
중유(仲由) - 정치에 유능한 제자
자가 자로(子路:또는 계로季路)로 노나라의 변(卞:산동성 사수현)땅 출신이었다.
공자보다 9년 연하로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공자에게 일종의 반면교사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자사상의 정립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었다.
공자의 제자가 된 후 공자의 가장 친한 친구인 동시에 엄격한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자신이 확신하는 원칙에 대해 스스로 엄격했을 뿐 아니라 스승인 공자에게도 거리낌 없이 엄하게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자의 제자중 의(義)의 덕목을 가장 많이 지닌 사람을 들라면 단연 자로를 꼽을 수 있다.
이는 그가 타고난 무골(武骨)이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3천 명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이채를 띤 제자는 바로 자로였다.
그는 성격이 곧고 급하며 괄괄해 대처럼 부러지기는 해도 구리처럼 휘지 않는 위인인 동시에 남에게 지기를 싫어해 곧잘 아는 체하다가 공자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위정편)
공자도 그의 성격은 좋아했다. 자로는 원래 협객이었다. 협객은 원래 용감한 행동을 좋아하듯이 자로는 공자의 명성에 질투심을 느끼고 닭과 돼지를 몰고 공자의 학습장에 나타나 공자의 학습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 공자는 자로에게 온화한 미소와 함께 "자네는 무엇을 좋아하나?" 하고 묻자, 자로는 의기양양하게 "나는 무기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가 "학문도 좋아하나?"라고 물었다. 자로는 기세를 올리며 "학문이 밥먹여 주는가?" 라고 대답했고, 공자는 이 기세를 꺾어 나갔다.
"어진 임금에게 간신이 없다면 정(正)을 잃고, 선비로서 교우가 없으면 듣지를 못하는 것과 같으며, 나무는 줄을 타고 곧아지고, 말에는 채찍이 필요하며, 활에는 화살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격을 바로잡는 교학이 필요하다."
교학 정신의 근본인 공자의 말에 우쭐해 있던 자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산의 대나무는 바로잡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고, 이것을 사용하면 코뿔소 가죽도 뚫듯이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굳이 학문을 닦을 필요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자로의 이런 유치한 비유는 공자에게 있어서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가.
"그대가 말하는 남산의 대나무에 쐐기나 화살촉을 박아 학문을 연마한다면 가죽만을 뚫겠는가?" 공자의 멋진 대답에 자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무릎을 꿇고 공자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자로는 여기서 공자와의 논쟁만으로 항복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와의 첫대면 때부터 자기 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공자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 공자의 나이는 40세 전이었고 자로의 나이는 31세였다고 한다.
그후 자로는 공자를 끔찍하게 생각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공자의 험담을 하는 자가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입을 뭉개버려 공자에게 여러 번 주의를 받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이에 공자는"자로가 나의 문하생이 된 후부터는 나에 대한 험담이 사라졌어."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또 자로는 공자가 전쟁을 싫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꾸중을 각오하고,
"만약 스승님이 원정군의 총사령관이 되신다면 누구를 참모로 쓰시겠습니까?"
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져 공자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공자는
"글세?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두들겨 잡고, 배도 없이 강을 건너려고 하며, 죽음도 불사하고, 덤벙대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겠지."(술이편)
하며 자로의 사랑 확인을 무참히 꺾어버렸으나, 공자는 그래도 이런 자로를 좋아했다.
"자기 몸에 누더기를 걸치고서도 사치스런 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서 태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로뿐일 거야." 하며 칭찬한 것이 그 좋은 예다.
따라서 자로도 이런 공자를 거의 신적으로 존경했다. 그래서 자로는
'악은 일시적으로 번성하고 최후에는 벌을 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공자님 같은 분이 악에 고통을 받아야만 하나?'
하고 하늘을 원망하였고, '성인 군자가 왜 가정적으로 불우해야만 하고 늙어서까지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는가?' 하며 슬피 울었다.
그는 천하를 위해서 슬피 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공자 한 사람만을 위해서 울었던 것이다.
그후 자로는 위나라 대부 공리의 가신으로 있을 때, 정변이 일어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전에 이미 공자는 정변 소식을 듣고 자로는 죽었겠구나 하며 예측을 했다. 그의 급한 성격을 공자는 항상 걱정했었기 때문이다. 자로는 이때 창에 목이 반쯤 끊겨 숨지면서도 갓끈이 끊어지자 "군자는 죽을 때 죽더라도 갓을 벗을 수는 없는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갓끈을 똑바로 매고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62세였고, 그의 시체는 무참하게 토막이 나 소금에 절여져 공자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의 곧은 성격과 급한 성격만큼이나 적도 많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 후 위나라의 사자가 소금으로 절인 자로의 시체를 공자 앞에 내놓자 공자는 이것을 보고 대성통곡하면서 집 안에 있는 소금으로 만든 음식물을 모두 쏟아버렸다고 한다.
일찍이 누군가 증자의 아들인 증서曾西에게 물었다.
"당신과 자로를 비교한다면 누가 더 현명하겠습니까?"
증서가 황공하여 어찌할 줄 모르며 말하였다.
"그분은 제 아버지께서도 경외하셨던 분입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편
자로는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정치가이자 무인이다. 공자(孔子)의 핵심 제자 공문십철중의 한 사람.
본명은 중유(仲由)로, 흔히 알려진 이름인 자로는 자이다. 계로(季路)라고도 부른다. 공자보다 9살 아래다.
공자의 여행 동안 고난을 함께 하였다. 주로 공자의 호위를 자처하며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공자를 여러 번 지켜내기도 했다.
자공, 안연과 함께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 자공이 지(智), 안연이 인(仁)으로 유명하듯 자로는 보통 용(勇)에서 으뜸가는 인물로 꼽힌다.
또한 성격 때문에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비교되기도 한다. 마침 둘 다 '로'자 돌림이다
자로의 집안은 본시 가난하였으므로 자로는 어려서부터 나물밥만 먹으며 자랐는데, 그럼에도 자로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였다. 그래서, 후일 장성하여 출가한 뒤에 고향집에서 백 리나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데다가 그 본인조차 끼니 거르기를 자주하는 형편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로는 자나 깨나 가난한 부모의 끼니 걱정만을 하였으니, 때문에 어쩌다 쌀을 구하기만 하면 쌀포대를 들쳐업고 백 리의 길을 달려 가 부모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이에 관한 기록은 二十四孝의 爲親負米(부모를 위해 쌀을 지다.)편에 실려있다.
2. 공자와 만나다
본래 야인(野人) 출신이었으며, 힘도 셌다. 그 이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자의 말에 의하면 자로가 제자가 된 후에는 공자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어느 날, 공자가 강론하고 있는 현장에 뛰어들어 공자에게 행패를 부리려다가 공자에게 감화되어 제자가 되었다. 오늘날 무수히 나오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 운명이 바뀐 건달' 캐릭터들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남의 일화를 서술하자면 이렇다.
공자가 집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강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로가 들이닥친다. 더벅한 머리에는 관을 썼는데 꿩의 붉은 깃털을 꽂아 장식했고, 거친 가죽 옷의 옆구리에는 단단히 질긴 끈을 묶어 돼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와 긴 칼을 찼으며, 양손에는 각각 수탉과 새끼 돼지를 들고 있으니 전형적인 야인(野人)의 모습이었다. 난데없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쳐들어온 자로를 보고 여러 제자들은 당연히 당황하고 경계하는데, 자로가 뭘 하기 전에 공자가 자뭇 능청스레 선수 쳐 질문을 던지며 대화는 시작된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로가 즉답한다.
나는 긴 칼을 좋아한다.
공자가 은은히 미소 띠며 천천히 말한다.
나는 그런 것을 물은 것이 아니다. 그대가 능한 것 위에 배우기와 묻기[學問]를 더하면 누가 그대를 따라잡겠는가? 나는 이것을 물은 것이다.
자로는 드디어 일갈하기 시작한다. 사실 애초부터 바로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맥락상으로도 잘된 일이다.
배우고 묻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이에 공자가 바로 대답한다.
군주가 간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올바름[正]을 잃는다. 선비가 일깨워 주는 벗이 없으면 들은 바[聞]를 잃는다. 그러므로 길들지 않은 말을 몰 때에는 채찍을 놓을 수 없으며, 활을 잡으려면 도지개로써 바로 해야 한다. 나무는 먹줄을 받아야 곧아지고, 사람은 간언을 들어야 착해진다. 이제 사람에게 가르침과 배움[敎學]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든[物] 바로잡고 닦고 갈아야 재목으로 쓰이는 것이다. 배우고 묻기를 소중히 여긴다면 누구인들 나쁜 일을 하겠는가. 만일 어진 이를 헐뜯고 선비를 미워한다면 필시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배우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자로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말문이 막혔고, 공 아무개가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인물은 아님을 대강 눈치챘지만, 그도 그 나름대로 평소 생각하여 둔 신조가 있고 자존심이 있었으므로 반격을 시도한다.
남쪽 산의 대나무는 휘지 않고 스스로 곧으니, 이것을 그냥 잘라다가 화살로 쓰면 쇠가죽도 뚫을 수 있다. 천성이 뛰어난 자에게 무슨 배우고 묻기가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공자는 여유롭게 대답한다.
그 화살 한쪽에다 꿩의 깃털을 붙여다가 깃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다 쇠를 붙여다가 촉을 만들면, 단지 그 쇠가죽을 뚫음에 그치겠는가!
이에 자로가 즉시 수탉과 새끼 돼지를 내려 놓고 공자에게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감화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다른 여러 설도 있는데, 대부분이 공자에게 맞다이를 신청했는데 예상 외로 능숙하게 상대해 깜놀하거나, 헤이, 자로! 돈 두 댓! 공자가 무난히 버티면서 필부의 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설명해주고 더 큰 것을 배우라며 끌어들였다는 이야기다.
사실 공자의 피지컬도 자로 못지 않았고, 공자의 아버지는 싸움깨나 한다는 무사였으며 맨손으로 관문을 부쉈다는 언급도 있다. 아예 일대일 대결 부분이 빠진 이야기도 있다.
자로는 공자가 문란하기로 유명한 진후 남자(南子)와 회견하였을 때 분개하였으며, 공자는 '하늘이 보고 있느니라' 란 말로 자신의 결백을 두 번이나 맹세해야 했다. 또한 공자가 두 번이나 읍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섬기려고 생각하였을 때도 항의하였다.
자로는 제자라기보다 친구가 아니었나 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으나, 엄연히 자로가 공자를 경어로 부르는 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공자의 친구설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단, 공자의 제자 중에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이 서술되어 있는 것은 자로뿐이므로 자로와 공자 간의 거리가 다른 제자들보다도 친밀하고 가까웠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나이 차이도 9살 밖에 되지 않으므로, 공자도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자로를 살갑게 대했던 듯하다.
3. 공자의 평가
자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며 논어의 안연편에는
자로는 약속을 다음 날까지 미루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맹자에 의하면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결점을 지적하면 기뻐하였고 일단 배우면 깨우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자로는 용맹스러웠고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 때문에 예의바르고 학자적인 취향을 가진 제자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성격은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자의 사랑을 받았다.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했는데 또 새로운 가르침을 들을까 겁냈다(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할 정도로 열심인 제자이기도 했다.
공자는 혈기왕성한 자로를 자주 꾸짖기도 했지만, 한번 가르치면 충실히 따르는 자로를 몹시 아꼈다.
공자 문하에서는 자공과 함께 제후들의 영입 제의가 많이 들어 온 사람이지만 정작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자로가 대신감이냐고 묻자 공자는 "아니, 그건 무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공자가 만족할 정도의 큰 그릇은 아니었다.
논어를 보면 자로는 혼나는 게 일이다. 스승을 위한다고 예법에 어긋나게 과하게 높이다 까이질 않나 심지어 칭찬 듣고 좋아한다고 혼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스승이 자신의 용(勇)을 칭찬하니까 좋아서 자신의 신조로 삼고자 그 말씀을 받아적었는데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려고?"라는 면박을 들었다.
공자에게 하도 깨져서 나중에 온 어린 제자들까지 자로를 무시하자, 공자는 방안에 들일 정도는 아니라도 마루에 앉을 정도는 된다며 감싸기도 한다.
그래도 공자가 '세상이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은거나 할까. 그 때가 되면 나를 따를 이는 유(자로)가 적합하겠지.
유는 나보다도 더 용기있는 인물이니. 다만 사리분별을 못해서 그렇지.' 라고 말할 정도니 재주는 특출나지 못해도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는 사실은 맞는 말 같다.
이 말을 듣고 자기를 스승이 가장 아낀다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에구 저 단순한 놈이라며 까서 자로가 의기소침해진다.
그 외에도 공자의 갈굼을 받는 경우가 잦다.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자 자로가 자신이 무예와 군무(軍務)에 밝은 것을 어필하려고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그땐 저겠죠?"라고 물었는데,
이 때 공자의 대답은 "너처럼 “맨손으로 호랑이와 맞서는 사람, 큰 강을 걸어서 건너다가 목숨을 잃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무모한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일에 임할 때는 반드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니, 나는 신중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일을 성공시키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였다.
이런 자로도 칭찬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공자가 '낡고 해진 솜옷을 입고 여우나 담비 가죽 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 있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라고 한 것. 그러자 자로는 '원망하지도 않고 탐을 내지도 않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라는 시의 구절을 외우고 다녔다. 죽을 때까지. 그런 자로를 본 공자는 '그 정도의 도를 어찌 훌륭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느냐?' 라고 답했다.
이런 점 때문인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제일 인기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4. 죽음
후에,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위출공의 아비 괴외와 자신의 주공 공회의 반란으로 출공이 쫓겨나자 그 소식을 듣고 성으로 갔다. 가는 길에 동문인 자고가 말렸으나 듣지 않고 "그 녹을 먹은 자 그 난을 피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며 성으로 가 반란을 일으킨 자신의 주군 공회를 죽일 것을 괴외에게 요구. 주군을 바꾸어 섬기는 이런 자는 쓰지말고 잡아 죽이자고 한다.
괴외가 거부하자 그들이 올라있던 대(臺)를 불태우려다 장공의 명령을 받은 무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죽을 때 칼에 맞아 머리에 쓴 갓이 삐뚤어지자 "보라! 군자는 죽더라도 갓은 벗지 않는다!"라고 외치고 갓을 제대로 고쳐쓴 뒤 사망.
공자는 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자로의 강직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예견했다고 한다. "아이고 자로가 죽었겠구나" 라고 했다고 한다. 이전에 자로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고 말았다. 자로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때 공자가 했던 말은 "하늘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끊어 버리는구나..."라고 두 번 외쳤다. 공자가 제자의 죽음에 절규했던 이야기는 사서에 딱 2번 나온다. 안회가 절명했을 때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고 했던 것과 자로의 이것. 자로가 죽은 뒤에는 "자로가 내 제자가 된 뒤에, 나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경애하던 스승에 대한 비난을 폭력을 이용해서라도 막았던 자로의 죽음에 대한 탄식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 젓갈로 만들어져 공자에게 보내져, 후대 2천 년 뒤까지 이어질 공자식인설 떡밥이 되었다.
그 시대에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자로만이 아니었건만. 당연하지만 공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집안의 젓갈들을 모두 다 내던져 버리고 멀쩡한 젓갈만 봐도 저 일을 생각하며 입에 대지 못하다가, 결국 자로가 죽은 이듬해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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