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琴壇]은 공자가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행단(杏壇)이라고도 한다.
행정(杏亭)과 행단(杏壇)을 지킨 은행나무
중국이 원산인 은행나무는 대체로 불교가 전파될 때 함께 들어 온 것으로 짐작되며 숲 속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자라면 친숙해진 나무다. 수백 년에서 천년을 넘겨 오래 살며 우람하고 당당한 모양새에 아름다운 단풍까지 갖고 있다.
은행나무는 궁궐이나 선비들 곁에서 그늘을 만들어주고 쉼터가 되는 행정의 정자나무이거나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의 행단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행정(杏亭)으로서는 이런 기록이 있다.
명종 17년(1562) 3월 4일 임금은 나라의 큰 경사인 가례(嘉禮)를 치르고도 일이 많아서 여태 아랫사람 대접하지 못하였으니, 10일에 은행정에서 잔치를 베풀게 하라고 지시한다. 후원에 있는 은행정에서 2백여 인이 참석하여 축하행사는 성대하게 치러진다. “오늘은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마실 줄 아는 자라면 맘껏 술을 들고 흡족하게 즐기도록 하라.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어 위아래의 정이 돈독해진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무방하다면 경들 이하 당상 이상이 근시 시종들과 어울려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이 어떠한가? 예관(禮官)과 함께 의논해서 아뢰도록 하라.” 고 한다. 그러나 임금의 뜻대로 어우러져 신나게 춤추는 일은 예관들의 반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명종 때이니 후원이라면 지금의 청와대 자리일 터이고, 큰 은행나무가 있어서 나무 밑에 정자를 짓고 은행정이라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은행정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행정이라 하였으며 쉼터의 그늘나무로서 은행나무를 흔히 심었다.
오늘날 경복궁 건춘문 앞에는 당시의 ‘은행정’ 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조선후기 문인화가인 이유신의 행정추상도(杏亭秋賞圖)에도 단풍 든 은행나무 아래 선비들이 모여 국화를 감상하고 있다.
행단(杏壇)의 나무는 조선 순조 17년(1817) 왕세자인 효명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과정을 그린 ‘왕세자입학도첩’에서 만날 수 있다. 대성전 북쪽 담 앞에 두 그루와 대성전 안쪽으로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모양새로 은행나무가 틀림없으며 지금도 살아서 천연기념물 5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이 은행나무를 심은 기록이 나온다. 중종 14년(1519) 대사성 윤탁尹倬이 명륜당 아래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마주보게 심었다. 기초가 튼튼하여야만 학문을 크게 이루듯이, 나무는 뿌리가 무성해야 가지가 잘 자라므로 공부하는 유생들도 이를 본받아 정성껏 잘 키울 것을 당부하였다는 것이다.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대성전 안쪽으로 한 그루가 더 있다. 그래서 서울 문묘의 공자를 섬기는 행단에는 모두 4그루의 은행나무 고목이 500여년의 세월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지금의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 옆에는 궁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 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줄기 둘레 약 세 아름(148cm), 높이 23m의 거대한 고목이다. 이 나무는 동궐도에서도 만날 수 있다. 폄우사 북쪽, 존덕정의 서북쪽에는 연지(蓮池)와 사이에 담장을 쌓고 직각으로 세 번 꺾어 들인 끝에 솟을 대문 같은 태청문(太淸門)이 있는데, 이 문 앞의 연지 쪽 구석에는 곧은 줄기에 타원형의 아담한 수관을 가진 나무가 오늘날의 은행나무로 짐작된다.
존덕정에는 1789년 정조가 직접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세상의 모든 냇물은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의 달은 하나 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왕권을 강화하고 신하의 도리를 강조하는 뜻으로 존덕정을 정비하면서 학문을 숭상하는 행단이란 상징성을 갖는 은행나무를 정조가 심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이처럼 조선시대 행단이나 행정에 심은 나무는 기록이나 그림 및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은행나무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공자의 행단에 심은 나무는 논란이 있다. 행杏은 은행나무와 함께 살구나무도 같은 자를 쓰기 때문이다.
최근 공자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행단의 나무는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문묘의 은행나무처럼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은, 조선의 선비들은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알아왔다.
필자는 행단의 나무가 살구나무 보다 은행나무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살구나무는 초여름에 육질 많은 열매를 맺어 버리고 정작 그늘이 필요한 여름부터 벌써 잎이 엉성해 진다.
오래 살지 못하여 아름드리로 크게 자라기도 어렵다. 살구나무는 행단이나 행정의 나무로서는 적당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