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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뉴스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Emanuel Swedenborg (1688-1772) 는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엔지니어 그리고 철학자

작성자세이지|작성시간19.10.21|조회수990 목록 댓글 0

엠마누엘 스웨덴보그의 성문서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교회를 위한 새로운 철학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Emanuel Swedenborg (1688-1772) 는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엔지니어 그리고 철학자였으며, 그의 마지막 30 여년을 신학 작품들을 집필하며 보냈습니다.


성경 해석 뿐 아니라 신, 인류, 현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본성에 관한 보다 철학적인 작품들을 집필하였습니다.


스웨덴보그는 그가 천국과 지옥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받았고 그 곳 사람들과 얘기도 할 수 있었고, 존재의 영적인 면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가 쓴 것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며, 그 당시 기독교 교회에 퍼져있는 오류를 수정하고, 세계에 새로운 교회를 구축하기 위해 그에게 계시하신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겸손하게 살았고 대중 연설을 피하고 도서 출판에 매달렸으며, 자신이 교회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스웨덴보그를 처음 접하신다면, 다음 작품들을 먼저 접할 것을 권유합니다.


"천국과 지옥"

이 작품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독특하고 자세한 묘사가 담겨 있으며,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들을 기반하여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rcana Coelestia (천국의 비밀들)"

이 12권의 작품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상징적 영적 의미에 대해 구문 단위의 분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엄청난 작업이지만, 구약 성서 이해를 위한 보물 창고와 같습니다.


"부부의 정"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과 정신이 서로 맞물리도록 설계되고, 이로 인해 하나의 진정한 인간으로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몇몇 현대 독자들은 남성의 관점에서 쓰여진 부분에 대해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18세기 언어를 통해 영원한 결혼에 대한 구상을 천국에서의 모든 기쁨의 원천으로 꼽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성한 사랑과 지혜"

과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작품에 확실히 매료되실 겁니다. 가장 철학적인 작품으로, 신은 사랑 그 자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여, 영적 실체와 물리적 현실 그리고 신과 인류와의 관계에 대한 영향을 추적한다.


"신의 섭리"


이 작품은 신께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시고, 우리를 사랑과 천국으로 이끄는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지키시는 방법을 그리고 있다.
본 싸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스웨덴보그의 작품들과 각각의 번역본에 접근하고 싶다면, 이곳을 참조하세요.


■ 스웨덴보그의 생애 ■

인류 역사상 '스웨덴 보그' 만큼이나 주님에 의해 영적 사물의 실체를 확실히 보고 표현한 사람은 아마 전무후무하리라 생각된다. 스웨덴 보그는 천박한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그와 사두 선다싱, 그리고 엑크하르트를 들어 세계 삼대 신비주의자라고 부른다. 물론 선다싱과 엑크하르트가 우리의 영적 시야를 넓혀준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스웨덴 보그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영계의 일을 보고 와서 그것을 기록에 담은 것은 겨우 한 두 권의 분량으로, 그것도 피상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지만 스웨덴 보그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 안에서 뚜렷이 보고 겪은 일들을 그의 30권에 가까운 저서에 기록하여 주님의 은혜를 온 인류에게 전하고 있다.

그의 저서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너무도 엄청난 일들이 말씀의 풀이와 함께 적혀져 있다. 그 만큼 우리는 그 동안 무척 초라하기 짝이 없는 희미한 빛으로 성경을 보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의 글에는 성경의 예언자들과 사도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및 카이사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영계에서 만나 대화한 내용들이 적혀있다. 그러나 이런 비밀한 이야기들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 보그의 저서를 인정하는데 서슴치 않는 이유는 그의 글이 성경 말씀에 지극히 부합하는 까닭이다. 그를 인정하는 자들의 증언을 조금 들어보자.

헬렌 켈러는 나의 종교에서 이같이 말한다. "무엇이 사랑인가. 이에 대해 인간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인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소설가는 기록하고 극작가는 연출하고 신학자는 그 사랑을 드높였다. 또 심지어 호색문인들은 더럽히기까지 했다. 허나 끝내 허우적거리는 자연현상으로 몰아 미궁에 빠뜨렸을 뿐 그 실오라기만은 겨우 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은 미지수로 남겨 두었다. 이 아리숭한 보편적 문제에 대해 혹 누가 어떤 결정적 저서를 내었다면 그것은 임마누엘 스웨덴 보그의 저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처럼 그녀가 지은 나의 종교는 하나에서 열까지 스웨덴 보그의 인물, 그의 과학, 철학, 신학들을 세계적 지명 인사와 비교 대조하면서도 보다 드높게 평가한다. 그는 또 말하기를 "스웨덴 보그의 말은 나에게는 아주 큰 의의가 있다. 그의 말은 미래에 있을 나의 생명에 대한 나의 사상에 새로운 빛과 실재와 통일을 주었다. 사랑과 진리와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높였으며 나의 장벽을 이기는 제일 강한 자극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에머슨은 말하기를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사람보다 참된 생활을 한 사람이다. 또 그는 그 시대를 너무나도 멀리 앞서 있는 거대한 존재였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해하려면 상당히 먼 초점거리가 필요하였다."고 하였다.

토마스 칼라일의 증거 역시 "의논할 여지도 없을 만큼 위대하고도 교양 있는 사람, 공고한 수학적 지능과 가장 경건하고도 천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내게 있어서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또 비장하게 보여지는 사람, 그의 저서에는 누구의 저서보다도 더 많은 진리가 있는 신령계에 있어서 가장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 해가 가고 달이 갈수록 더욱 더욱 빛날 영적 태양의 한 사림이다."고 하였다.

루우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말하기를 "스웨덴 보그의 생애는 물질을 극복하는 영의 승리를 강력하게 나타냈고 그의 교훈의 생기와 영감은 오늘 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가슴에 웅변적 증거가 되어 있다. 세상에서는 양심의 소리가 적고 죽은 듯이 무력하게 보일 때가 있는데 이때야말로 스웨덴 보그 같은 특수한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김필례 여사는 전 수피아 여중고 교장이다. 그는 천국과 지옥을 읽고 "하늘을 보고 땅에서 살다니, 땅에서 살면서 하늘을 보다니!" 라며 놀라워했다.

마지막으로 사두 산다 싱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영계에서 본 많은 것이 스웨덴 보그의 저서에 있는 것과 꼭 같은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에게는 분명히 특별한 은총이 부여되었으며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하여 주께서 부르신 것이라 본다. 그래서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높은 하늘을 본 것이다. 그렇다. 나는 기도하는 가운데 몇 번이고 존경하는 보그를 보았다."

그 외에 '파우스트'를 쓴 괴테, '순수 이성 비판과 실천 이상 비판'을 쓴 철학자 칸트, 윌리엄 블레이크, 랄프 왈도 에멀슨 등도 큰 영향을 받았다.

스웨덴 보그의 영적 눈이 뜨인 것은 1743년이다. 그러나 1745년 4월에야 비로서 천사나 영인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듯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영계의 출입허가는 점진적인 것으로 처음에는 꿈, 그 뒤에는 빛과 음성, 마침내 영인과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자연계에 있으면서 영계를 체험하였고 영계에 있다가도 자연계에 다시 와서 사는, 두 세계 사이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그 날로(1744. 4. 6-7, 1744. 10. 12-13) 그는 세상과학 연구를 포기하고 주께서 그에게 쓰라고 명하신 대로 영적인 것에만 종사하였다. 그 후 주님은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의 육신의 눈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그는 대낮에도 저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천사들과 영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가 이 세상을 뜬 다음에 나타난 기억첩에는 1747년부터 그가 승천하기까지 25년간의 이 같은 경험이 다 기록되어 있다. 그가 최후로 암스텔담에서 '순정기독교'를 출판한 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누가 선생님은 언제까지 사시겠느냐고 묻자 그는 서슴치 않고 주께서 내가 순정기독교를 다 쓸 때까지는 데려가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고 세상을 뜨기 반년 전에 자기는 내년 3월 29일에 이 세상을 뜰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말한 대로 그 날 런던의 한 하숙집에서 향년 85세를 일기로 주님께로 갔다.

스웨덴보그의 생애 2

스웨덴보그의 말 가운데 '사람의 몸을 보는 것은 영혼의 형체를 보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형체를 보는 것은 천국의 형체를 보는 것과 같다. 영혼에 눈, 귀, 입이 있고 또 오장육부가 다 영체로 있다. 또 철학은 이성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종교와 하등의 모순이 없고 철학자야말로 인생을 가장 행복 되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영적 눈이 뜨인 것은 1743년이다. 그러나 1745년 4월에야 비로소 천사나 영인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듯 말할 수 있게되었다. 그의 영계의 출입허가는 점진적인 것으로 처음에는 꿈, 그 뒤에는 빛과 음성, 마침내 영인과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러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칼 롭삼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는 '나는 영적 상태에 들어가려고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일 때문에 또 예언서와 계시록에 약속하신 말씀의 내적 의의를 계시하기 위하여 나를 택하신 것이다. 이전의 나의 목적은 자연과 광산과 해부학을 연구하는데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는 자연계에 있으면서 영계를 체험하였고 영계에 있다가도 자연계에 다시 와서 사는, 두 세계 사이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은 보그의 편지를 보자. '주는 성경의 영적 내용을 인간에게 밝히기 위하여 나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주 친히 내가 무엇을 써야할 것을 내게 밝히셨다. 주께서 나에게 나타나신 그 날로(1744. 4.6-7, 1744. 10. 12-13) 나는 세상 과학 연구를 포기하고 주께서 나에게 쓰라고 명하신 대로 영적인 것에만 종사하였다. 그 후 주님은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나의 육신의 눈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대낮에도 저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천사들과 영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있었다.'

1745년으로부터 1747년까지는 모든 것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준비되어 영계와의 교통이 빈번하였다. 그때부터 히브리어를 공부하여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며 나전어로 주석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60세였다. 그가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2년 동안 9권이라는 책을 내었다.

1748. 3월 4일의 일기를 보면 '나는 이러한 상태에 벌써 33개월이나 있었다. 영인들은 내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영인들의 세계와 천국 여러 사회에도 드나드는 것을 보고 퍽 이상하게 생각하나 나는 이 세상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영적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출판

그가 런던으로 간 것은 창세기 및 출애굽기의 영적 해석인 천국의 비의(신비) 제 1권을 출판할 목적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예측하고 단지 훗날을 위하여 인쇄하여 두려고만 하였다. 또 일반인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저자의 이름을 쓰지 아니하였다. 나전어를 아는 교양인에게만 상대로 한 탓도 있었겠지만 출판 후 2개월 간 판매 부수는 겨우 4부였다. 그 시대의 영적 상태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리는 아니 주의 계시는 책으로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천국의 비의 제 1권은 창세기 및 낙원 상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서는 안 되는 것. 이에는 모두 신비한 뜻이 있어 천지창조는 인간의 영과 육을 새로 창조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제 2권은 1750년 나전어와 영어로 이번에는 보다 아름답고 헐값으로 내었다. 허나 말씀 외에는 아무 참고서도 없는 지금까지 누구도 듣지 못하였고 생각지도 아니한 새로운 신학사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56년까지 27권을 다 출판하였다. 1758년에는 런던에서 우주 안의 제 지구, 최후심판, 새예루살렘교리, 계시록의 백마, 천국과 지옥을 출간하고 이때쯤부터 일반인도 그 책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는 중 1757-1759년에는 계시록 설명을 저술하였다.

1762년 그가 74세에 런던을 떠나 암스텔담으로 향하였다. 7년 후 영혼과 육체와의 교통이라는 저서를 내었다. 그동안 1763년에 주님에게 대한 교리. 새예루살렘교리, 말씀에 대한 교리, 생활론, 신앙에 대한 교리, 최후심판 및 영계,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1764년에는 하나님의 섭리, 1766년에는 계시록풀이, 1768년에는 부부의 사랑, 1769년에는 새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간단한 해설, 1771년에는 그의 마지막 대서인 순정기독교를 나전어로 내었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빠짐없이 논술로 내고 영계의 경험을 입증 삼아 싣고 그 시대의 신앙의 장단 및 오류를 지적하였다. 1772년 5.10.에 고덴불그 로마교회 회의에서 그의 서적 구독을 금지하자 그는 곧 항의문을 내었다. 그가 이 세상을 뜬 다음에 나타난 기억 첩에는 1747년부터 그가 승천하기까지 25년 간의 이 같은 경험이 다 기록되어 있다.

그가 스웨덴의 최고의원의 자리를 물러나 오직 새 사명만 전력으로 다하여 저술에 착수한 것은 60세부터였다. 1760년 그의 72세 때 그는 천국의 신비(비의) 저술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또 고독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관대작이나 어떠한 학자와도 친근하였고 금욕자연한 일이 없었다. 소년 소녀와도 놀기를 좋아하고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다과를 잊지 않았다. 어느 때는 한 소녀가 하도 천국을 보여달라고 이 할아버지에게 조르기 때문에 마지못해 천국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거울에 커버를 씌워두었던 것이다. 좋은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한 소녀를 거울 앞에 앉게 하고 그 씌운 커버를 벗겨보니 거울에는 소녀의 얼굴만 보였다. 천국은 꼭 네 얼굴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가 최후로 암스텔담에서 순정기독교를 출판한 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누가 선생님은 언제까지 사시겠느냐고 묻자 그는 서슴지 않고 주께서 내가 순정기독교를 다 쓸 때까지는 데려가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고 세상을 뜨기 반년 전에 자기는 내년 3월 29일에 이 세상을 뜰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말한 대로 그 날 런던의 한 하숙집에서 향년 85세를 일기로 주님께로 갔다.

* 사람들의 증언

헬렌 켈러 : 눈멀고 귀 먹고 벙어리라는 3중고를 가진 그녀는 일찍이 스웨덴보그의 저서와 내세관에 자기 종교를 더 세우고 '나의 종교'라는 책을 내어 그 번역판만 하여도 70종이 넘고 있다. 그녀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그의 말은 나에게는 아주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의 말은 미래에 있을 나의 생명에 대한 나의 사상에 새로운 빛과 실재와 통일을 주었습니다. 사랑과 진리와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높였으며 나의 장벽을 이기는 제일 강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의 저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는 내가 언제나 가까이 하고 있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저 곤드라 영어에서 자기가 원하는 말을 발견하였으나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이 나는 어쩐지 모르게 새 교회의 교리를 하나씩 나의 종교로 삼았습니다. 내가 이것을 택하는데 있어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안락과 평안을 즐기려는 것보다 고상한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있던 가지가지 것이 이상하게도 서로 얽혀 있는 내 생활에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에머슨 : 보그는 19세기 과학을 상당히 예측한 것 같다. 그의 저서는 외롭고도 노고를 아끼지 않은 학도에게 만족을 줄만한 도서가 될 수 있고 고상한 사상으로 일관하여 있는 '동물계의 경제' 같은 책은 인류의 자랑거리의 하나이다. 이 사람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공상가요 달빛에서 온 삼신산 불로초 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사람보다 참된 생활을 한 사람이다. 또 그는 그 시대를 너무나도 멀리 앞서 있는 거대한 존재였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해하려면 상당히 먼 초점거리가 필요하였다.

토마스 칼라일 : 의논할 여지도 없을 만큼 위대하고도 교양있는 사람, 공고한 수학적 지능과 가장 경건하고도 천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내게 있어서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또 비장하게 보여지는 사람, 그의 저서에는 누구의 저서보다도 더 많은 진리가 있는 신령계에 있어서 가장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 해가 가고 달이 갈수록 더욱 더욱 빛날 영적 태양의 한 사림이다.

루우즈벨트 : 미국 대통령. '보그의 생애는 물질을 극복하는 영의 승리를 강력하게 나타냈고 그의 교훈의 생기와 영감은 오늘 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가슴에 웅변적 증거가 되어 있다. 세상에서는 양심의 소리가 적고 죽은 듯이 무력하게 보일 때가 있는데 이때야말로 보그 같은 특수한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김필례 여사 : 전 수피아 여중고 교장. '하늘을 보고 땅에서 살다니, 땅에서 살면서 하늘을 보다니!' 천국과 지옥을 읽고...

사두 산다 싱 : 나는 영계에서 본 많은 것이 보그의 저서에 있는 것과 꼭 같은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에게는 분명히 특별한 은총이 부여되었으며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하여 주께서 부르신 것이라 본다. 그래서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높은 하늘을 본 것이다. 그렇다. 나는 기도하는 가운데 몇번이고 존경하는 보그를 보았다.

* 보그가 끼친 영향들

1. 헬렌 켈러 여사의 나의 종교
그녀는 말한다. "무엇이 사랑인가. 이에 대해 인간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인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소설가는 기록하고 극작가는 연출하고 신학자는 드높였다. 또 심지어 호색문인들은 더럽히기까지 했다. 허나 끝내 허우적거리는 자연현상으로 몰아 미궁에 빠뜨렸을 뿐 그 실오라기만은 겨우 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은 미지수로 남겨 두었다. 이 아리숭한 보편적 문제에 대해 혹 누가 어떤 결정적 저서를 내었다면 그것은 임마누엘 스웨덴보그의 저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는 과학과 철학과 종교를 하나로 묶어 정연하고 흥미있게 사랑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는 남들이 손대지 않은데서 시작한다. 그의 변증법은 사랑을 치켜올려 눈으로 볼 수 있는 찬란한 등불로 올린다. 곧 사랑은 인간 본질의 근본적 요소라고 인식시킨다. 이 책은 내가 항상 내 옆에 두고 행복을 느끼는 생명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는 바깥 세상의 시끄러운 광기를 벗어나 다복한 순간을 그 안에서 찾는다."

1880년 출생한 그녀는 두 살이 못되어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그녀는 자기의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근 6년 동안 자연이고 정신이고 죽음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도 없었다. 글자 그대로 몸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주체성 없는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어디서, 언제, 나의 뇌가 또다른 세계의 정신적 충격을 느꼈는지 이제는 언어와 사랑에 속한 지식과 자연에 대하여 그리고 선악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진통을 겪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녀가 지은 '나의 종교'는 하나에서 열까지 스웨덴보그의 인물, 그의 과학, 철학, 신학들을 세계적 지명 인사와 비교 대조하면서도 보다 드높게 평가한다.

이 책은 1960년도에는 30개 국어로, 1973년도에는 70대 국어로 번역되어 대학이나 교단에서 널리 전파되었다. 그 중 우리말판 머리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종교를 읽는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올리게 됨이 깊은 우정으로 된 줄을 압니다. 인류에게 대한 이 위대한 종교가 극동에 언제 오게 되었으며 임마누엘 스웨덴보그가 나에게 끼쳐준 나의 내적 빛과 말로 할 수 없는 행복스러운 교훈에 대한 나의 증언에 대하여 어떠한 자신감이 들게까지 한 것은 나를 겸손케 하는 동시에 긍지를 느끼게도 합니다. 내가 가장 귀히 여기는 성경에 대한 보그의 해석은 나에게 많은 보화를 보여 주었으며 이루어보고자 노력하는 나의 영혼의 날개를 돋게도 해주었습니다.

침묵과 흑암의 사막에서도 그의 성경에 대한 해석은 나의 사상과 경험을 우렁차게 감동시킨 내적 시력과 또 청각 개념을 씨뿌려 주었습니다. 보그에게서 나는 나의 눈 어둡고 귀먹은 것이 질병이나 우연이 아니고 오히려 남을 받들고 기쁨을 끼쳐주는데 쓸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굳은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벅찬 나로서는 서슴치 않고 모든 다른 나라말로 말하는 사람들이 그의 심혼을 알아보고 깨뜨려지지 않을 평화 속에서 손에 손을 잡고 살으리라는 승화시를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그녀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보그는 성경이 그냥 세상 물리학적 창조나 히브리사나 고대로부터 이어 내려온 인류학을 다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침을 보여주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2. 괴테
젊은 문학 청년인 괴테는 보그의 신학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의 노년에는 보그가 보여준 새로운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확고한 신앙을 가졌다. 괴테가 직접 보그의 저서를 접한 것은 신학자 헬델을 통해서였다. 괴테는 보그의 저서를 접한 후 1774년 7. 27자 일기에 천국의 신비에 대하여 적어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천국을 보고 온 사람들과 알기를 소원하기도 하였다. 앞서의 관계로 괴테는 보그에 관한 한 헬델과 상의하고 열심으로 보그를 추종하였는 바 괴테의 편지를 보면 보그의 사상이 끊임없이 나타나 있다. 1771년 말에 헬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복수하려는 영인들의 천적 격노가 나의 주위를 소리치며 윙윙댄다' 하여 보그의 영인관이 벌써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 1775년 7. 25일 스톨벨그에게 '우리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선한 영인들이 자기 영혼에게 달콤한 향유를 부어준다.' 하여 모든 인간에게는 최소한도 선한 영인 둘과 악한 영인 둘이 따른다는 보그의 말을 인용하였으며 1781년 라베이텔에게 '나는 누구보다도 보이는 세계 외에 보이지 아니한 저 나라에 마음을 기울이며 보그의 영계를 다 써 볼 심산이다.'고 하였다. 칼라일이 번역한 괴테의 '윌헴 메이스텔' 을 보면 '내 영혼은 마치 몸을 떠나 생각하는 듯 영혼은 몸을 딴 사람같이 아니 자기옷 같이 본다.'고 하여 보그의 영혼과 육체와의 교통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특히 괴테의 최대의 작품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파우스트'에서는 보그의 이론, 경험, 이상이 괴테의 인생을 결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파우스트 419행은 세상 지식만으로는 족하지 않은 파우스트가 보그에게 돌아선 것을 볼 수 있다. '이 신비로운 책은 당신을 인도하는데 족하지 않은가' 라고 하였으며 424행은 보그가 주님의 허락을 받아 저 세상 영인들과 말할 수 있는 것을 인용하여 '영인들이 영인들에게 말하듯 능력의 빛이 나의 영을 빛나게 하리라.' 하였으며 442행에서는 지금까지는 영계가 인류 사회에서 가리워 있었으나 이제는 보그를 거쳐서 열렸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그 성인이 말한 것을 안다. 영인들의 세계는 닫히지 않았던 것을. 네 감각이 둔하고 마음이 굳어 있어 학자여 일어나라 으젓이 적시어 보라.'고 표현하고 있다. 483행 및 512행에서는 각 영인들에게 일종의 후광이 있는 것과 중세기 파우스트 사상이 가지고 있는 영을 영인들의 세계 아래 두려고 하였다.

이 이외에도 많이 있으나 생략하기로 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괴테의 임종시의 마지막 말을 생각해보자. '더한 빛을 달라'는 그의 마지막 말을 어떤 전기자는 괴테의 임종시에 누워 있던 바로 그 머리 위의 창에 가리워 있던 휘장을 열어 빛이 좀더 들어오도록 해달라는 뜻으로 간주하지만 피풀 박사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곧 심중에 보그의 내세계관을 깊이 간직하고 있던 괴테는 임종시에 어두운 방을 좀더 환하게 하는 빛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그의 영적 눈이 떠 있었기 때문에 보그가 말한 하늘나라의 밝은 빛을 달라고 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3. 철학자 칸트
임마누엘 칸트 하면 철학계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 철학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이상주의 또는 심령주의로는 널리 현대 철학의 시조라는 칭호를 듣는다. 1770년 중학교 교사로부터 대학교 교수직을 맡기 위한 그의 연구 논문은 '영인을 보는 사람의 꿈들'이었다. 이것은 그가 실로 보그의 천국 및 영계를 오가며 영인들과 대화를 나눈 기사를 형이상학적 꿈들로 비판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1-1,2 에서는 사후의 영, 간격등차, 시간과 공간, 영도 사람인 것들은 자기의 지성을 초월한다고 하고 자연계와 영계의 두 세계, 천국이란 가장 큰 꼴의 사람, 물과 영과의 차이.. 등을 싣고 있으며 1-3,4 에서는 영계를 오간 것, 질서의 법칙, 오관의 근원, 천국의 실재, 상응론, 의지에 기초한 이성의 실천능력들을 다루고 보그를 광신자의 두목이요 그 책들은 가치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보그와 사람들 간에 일어났던 기상천외한 일들을 꾸며낸 일들로 다루고 자기의 이성은 앞세우고 보그의 경험은 뒷편에 두며 모든 것이 조작이라 보그를 비꼰다. 그러나 훗날 한 인쇄업자가 칸트의 저서를 발행하려 할 때 1771년 이후부터 칸트가 쓴 것에 한하여 책을 내겠다고 한 것을 보면 처음 칸트가 쓴 보그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인 '영인을 보는 사람의 꿈들'은 제외하려 했던 것이다. 또 램버트가 칸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내 생각에 시간과 공간은 사상세계 곧 영계 안의 시간과 공간의 가상이라는 당신의 우수한 학설은 쉽게 공감이 갑니다' 라고 씌여져 있다. 이는 곧 칸트가 겉으로는 보그를 부정하면서도 암중에는 보그의 말을 어느 사이에 자신의 학설로 강의한 것을 증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보그는 이미 자기의 책 속에서 이 세상은 저 세상의 그림자요 시간과 공간은 그 심정상태의 가상이며 탈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Vaihinger 교수는 칸트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또 칸트의 베끼기를 보면 '별들의 거인' 이라는 학설을 펼치고 그들의 총명과 생각에 대하여 쓰기를 그들의 생각이 짙고 옅은 것, 무겁고 가벼운 것, 특히 증거는 없지만 목성 및 토성들의 거인들은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보그의 저서 '우주 안의 지구들'에서 따온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 뿐아니라 우주 안의 다른 별들에도 사람이 살며 그들의 생각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고 성품이 우리보다 착하다고 하는 내용이었다.(과학이 아직 모든 것을 풀어주는 수준이 아니기에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그 후 칸트는 처음과는 달리 보그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면모를 볼 수가 있는데 Du Prel 교수가 지적하는 칸트의 말을 보면 '공간 안의 감각의 세계는 공간이 아닌 영계의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그의 말은 지극히 고상하다. 보그에 따르면 영계는 남다른 참 우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세계야말로 이성의 세계요 감각의 세계와는 구분되어야 할 세계이다.' 여기서 칸트는 보그의 사상을 지극히 고상하다고 실토한 것이다.

나아가 Vaihinger 교수는 칸트의 대표작인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저술 때도 보그의 지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칸트는 말하기를 '영계는 영안으로만 보인다. 사람에게는 이것이 없다. 허나 그 사람(보그)은 이것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영혼불멸은 이것을 갖는데 있다. 감각적, 공간적 견지에서 시간도 공간도 없는 심령으로 가는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저 세상이란 또다른 장소가 아니다. 이 세상의 또다른 견해일 뿐이다.'(칸트의 꿈, 형이상학 강의 p.225, 순수이성비판 A. 393) 또 칸트는 '이 세상은 지나간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한 영적 생명, 감각적 탈(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감각적 세계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모습 앞을 떠도는 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꿈과 같고 자체에 있어서 실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이며 우리 자신을 본다면 우리는 영적 본질의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보게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을 보고 칸트는 학자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고 쇼펜하우에르 조차 칸트의 초자연주의적 이상주의로 그의 철학 사상을 바꾸었다.

4. 윌리엄 블레이크
그는 영국이 낳은 전통적 시인이요 또 화가이기도 하였다. 보그가 주장하는 새 교회 안에서 자랐으며 보그의 신학사상이 좋은 줄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밀톤에 부치는 시를 보면 보그의 새 예루살렘 사상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 그의 시 한 토막을 보자. '불타는 금 활을 가져 오너라 소원의 화살을 가져 오너라 창을 가져 오너라 구름이 비킨다 불수레를 가져 오너라 나는 마음의 투쟁을 끊이지 않을지며 내 손에 든 칼을 결코 잠들게도 않으리라 우리가 영국의 푸르고 아름다운 땅에 예루살렘을 세울 때까지.' 이 악물고 예루살렘을 세워 보겠다는 이 얼마나 굳은 의지의 표현인가. 그는 계시록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푸르고 아름다운 영국 땅에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보그의 사상에 얼마나 감명을 입었으면 그 입에서 이렇게 까지 쓰지 않을 수 없었던가.

5. 랄프 왈도 에멀슨
그는 미국이 낳은 수필가요 시인이요 철학가이다. 한 때는 목회자로서 이름도 떨쳤다. 에머슨이 마음에 손꼽는 다섯명의 시성 중 보그도 끼어있었다. 즉 호머, 단테, 셰익스피어, 스웨덴보그, 괴테였다. 그 중 보그를 말하는 넷째 시연을 보면 그의 심중에 보그가 얼마나 크게 자리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머나먼 북녘 북극의 밤이 화사한 빛을 가로막는 그곳 떠나간 인간의 막다른 골목을 높이 들추어 올린 문턱에서 스웨덴의 임마누엘은 넋을 이끄시네 뭍에서는 눈을 재치고 지하로는 광상을 지나 암흑의 흔적을 보기도 하였고 저주받은 사람은 통곡하고 그 위에서는 최고 천사의 노래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인간에게 들려주기도 하였네.

그만이 영인의 세계를 밟았으니 이정표도 없는 미지의 땅을 걸었네 옆에 서 있는 사람조차 아무 소리도 못듣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귀를 기울인 사람은 하늘에서는 천정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고 땅에서는 땅이 꺼지는 소리를 느꼈네 하네 그가 공중에 씨앗 뿌린 그러나 아무도 돌보지 않던 낱말들은 다음 세대를 주름잡는 창칼이로세' 또 에멀슨은 말하기를 '스웨덴보그의 비상한 천성은 주께서 천사와 인간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지각하였다.'고 하여 보그 안에서의 놀라운 모든 것은 그가 조작한 것이 아니라 비상한 지각이라 하였다.

끝맺음 : 이상과 같이 스웨덴보그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일들을 보고 겪었다. 그는 따로 영들을 불러들이는 일 없이 영인의 세계에 들어갔었다. 성경의 예언자들과 사도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및 카이사도 만났다고 한다. 과연 그의 말과 기록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 이러한 세계적으로 이름난 저명 인사의 증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그의 30권이 가까운 저서를 아직 몇 권 통독도 아니하고 더우기 그 내용이 온 인류에게 끼쳐 주신 주님의 은혜인 것도 묵살하고 어떠한 사람은 마치 천박한 신비주의인양 멀리하고 어떠한 사람은 적대시하며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간직해 줄 수많은 진리의 금강석들을 아까움도 없이 귀한 줄도 모르고 돌보지 않는다. 허나 이러한 무지와 편견이 우리의 독자들까지 어지럽게 하여 싹트는 영원한 생명까지 좀먹을까 하여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증언들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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