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opengov.seoul.go.kr/mediahub/5310900
글 : 박용근 기자
■ 공자의 사달(辭達)
말과 문장의 목적은 簡易(간이)함의 전달
자왈사달이이의(子曰 辭達而已矣) - 논어, 위령공 제40장
공자가 말했다. "말이란 그 뜻을 전달하면 그뿐이다."
말과 글을 사용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다.
말과 글을 사용하는 이유는 의견과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며, 아름답고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이다.
일부는 말과 글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교묘한 수사법을 사용하고 화려한 비유를 사용하여 읽는 이가 어지러울 정도로 글을 쓰는 이들도 있다. 정작 그러한 글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뭐?'라는 의문만이 뒤에 남는다.
말과 글은 뜻이 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풍부하고 화려하다고 훌륭한 것은 아니다. 말하거나 글 쓰는 이는 자신의 뜻을 표현해 상대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데 중점을 둬야지 본심이 드러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誇張(과장)과 粉飾(분식)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말은 그 뜻이 남에게 전달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말의 정교함(辭巧)보다는 의미의 전달(辭達)에 역점을 둔 공자(孔子)의 입장이다.
辭(사)
죄인에게 낙인찍는 칼의 모양인 '辛(신)'에서 본래 '잘잘못을 따지다'는 의미인데, 후에 '말'이나 '글', 또 '감사', '사양' 등의 의미를 파생함. 조선의 정약용과 일본 오규 소라이는 大夫가 사명을 띠고 외국에 나가 專對(전대)할 때의 辭令(사령)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辭를 문장과 언어의 뜻으로 넓게 이해했다.
達(달)
다다라 이르렀다는 의미에서 '통하다'는 의미 생성. 후에 '통달하다'는 의미 파생. 意志(의지)를 상대에게 충분히 通達(통달)하게 함이다.
而(이)
본래 얼굴의 '구레나룻' 수염의 모양인데, 문장의 어조사인 접속의 의미로 사용됨.
矣(의)
단정이나 결정 등의 어기를 표현하는 어조사 역할(=也)
而已矣는 ‘∼일 따름이다’로, 제한과 단정의 어조를 지닌다.
‘辭達而已矣’에서 한문 문장의 미학 원리인 辭達이란 개념이 나왔다.
辭達은 巧言令色(교언영색)이나 誇張粉飾과는 달리 언어표현에서 簡易(간이)함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辭達은 修辭(수사)와 모순되지 않는다.
修辭는 본래 ‘주역’ 乾卦(건괘) ‘文言傳(문언전)’의 ‘修辭立其誠(수사입기성)’이란 구절에서 나왔다. 북송의 程顥(정호)는 ‘言辭를 닦고 성찰한다면 곧 誠의 경지를 세울 수 있다’고 풀이했다. 종래의 학자들은 ‘문언전’을 공자의 저술로 간주하여 공자가 修辭를 중시했다고 보았다.
‘춘추좌씨전’ 襄公(양공) 25년의 기록에
‘말은 꾸미지 않으면 오래 효력을 갖지 못한다(言之不文, 行之不遠)’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공자의 말로 간주돼 왔다.
공자는 ‘文質彬彬(문질빈빈)’을 군자의 이상으로 삼았기에 言辭에서도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존중했을 것이다.
‘춘추’의 역사기록은 微言(미언)을 통해 서술자의 판단을 공적 평가로 부각시키는 修辭法을 활용했다. 우리도 辭達이면 된다고 강변하면서 거칠고 건조한 言辭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의 뒤에 행한다. '회사후어소(繪事後於素)'의 뜻으로 해석한다. 이 말은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나온다.
자하(子夏)가 시경(詩經)의 구절을 들어 공자에게 물었다.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는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이다."라고 대답했다. 자하는 다시 "예(禮)는 나중입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일으키는 자는 그대로다.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흡족해 했다.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아름다움을 다 드러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내면의 덕성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 만이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다는 말은 문학예술은 인격의 수양을 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공자 문예관의 요체를 보여준다. 즉 문과 질 중에서 질이 우성 형성된 후에야 문이 드러나는 것이 순서라고 하는 관점이다. 공자가 말은 전달할 수 있으면 된다.(辭達而已矣)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자는 한편 수식의 중요성을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문질빈빈(文質彬彬) 연후군자(然後君子)", 즉 "문과 질이 서로 잘 어울어져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이나, "언지무문(言之無文), 행이불원(行而不遠)", 즉 "말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을 펼쳐 써도 멀리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말은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문학에 대한 일정한 긍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